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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아래 언급한 내용에 대한 목사님의 평가는 어떤지?묻고답하기요한복음

아래 언급한 내용에 대한 목사님의 평가는 어떤지?

이름 : 김대식(IP:124.59.87.32)

김을수 집사님이 언급을 한 질문인데
목사님의 생각은 어떠한지 설교 비평 바랍니다.

대구 성우교회 주일예배
2008년 12월 14일 - 에베소서 2:1-3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 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아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과거에는 본질상 지노의 자녀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우리 속에 지극히 큰 능력이 역사하고 있다. -중략-

못되고 교만한 본성을 이기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만드는 능력이 우리 속에 역사하고 있다. -중략-

‘사람의 능력이 바뀌지 않는다.’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이 바뀐다는 것도 맞습니다.
공중권세의 세력에 예속된 자가 삶이 나아질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속에 큰 능력이 역사 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중략-

지극히 큰 능력이 그때그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능력이 나타남으로 우리는 공중권세 잡은 자를 싫어하게 된다. 그리고 코드가 맞지 않게 된다. -중략-

이 본문의 내용은 예수 믿는 사람이 과거에 메여 있는 것을 사도 바울이 질책하고 있는 말씀이다. -중략-

사람의 근육은 사용하지 않으면 연약해 진다. 그러나 많이 사용하는 사람의 근육은 사용하는 만큼 강해진다. 새로운 능력이 아니라 근육 속에 있는 능력을 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큰 능력을 늘 잊지 말고 행함으로써 우리 속에 능력을 드러내는 삶을 살자. -중략-

과거와 현재를 구별하지 못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 답답하게 과거에 얽메어 있는가. -중략-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 이 설교의 취지를 어떻게 보십니까?

요한복음 5장 39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이 말씀 앞에 우리가 과연 끼여들 여지가 있습니까? 교회는 예수님의 몸으로서 교회를 말하는 것이지, 위의 설교내용 처럼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목사, 장로, 집사, 권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도의 과거는 어떻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큰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등 괘변을 쏟아내면서 본인이 정작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라고 한는데, 구체적으로 성도의 삶이 무어냐고 묻고 싶습니다. 이 잡소리를 분별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오직 십자가에서 피흘린 분의 공로만을 자랑하고 인정한다는 것에 대해서 마음으로 동의하며 저와 한 형제임을 고백합니다.’라는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이근호(IP:117.♡.145.20)

08-12-19 18:10

우선 김을수 집사님께서 요약하신 것은 설교의 전체 흐름의 의미를 파악에 함으로 미흡합니다. 특히 -중략- 되어 있는 것이 일방적 김집사님께서 일방적으로 설정한 -중략-이기에 다른 사람보기에 중략 되어서는 안될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 올라온 설교로서는 도대체 설교에 있어 무슨 주장을 하는지 알 길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김대식(IP:124.♡.87.32)

08-12-19 18:39

그러면 직접 파일을 올려 보도록 하지요

이 파일 전체를 듣고 평가를 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근호(IP:117.♡.145.20)

08-12-19 22:30

김달원목사님의 설교 요지는 이러합니다. 이미 구원받았다고 여기고 아무런 영적 능력을 행사하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 신자라고 보기 힘들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사는가? 하나님 말씀으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면, (설교자의 예를 들면, 이웃을 돕고, 구제하는 일 등등) 하나님의 선한 일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겁니다. 김달원 목사님은 교회 나오는 사람이 이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과거에 매여있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비록 전에는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 매여서 선을 행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런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적 권세 아래에 놓였기 때문에 '못하겠다'라든지 '할 수 없다'고 자포자기 할 것이 아니라 마치 근육을 자주 사용하는 능력이 나타나는 것처럼 실제로 해보면 선한 능력이 발휘된다는 겁니다. 만약 이런 시도마저 하지 않는 자라면 여전히 과거에 엮매인 사람이라서 신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분석) 김달원 목사님은 신자이냐 아니냐를 능력을 행사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이 목숨은 붙어있는 한, 계속 생각하고 뭔가를 하게 됩니다. 이게 과연 옳은 일인가 성경에 부합되는 행위인가를 쉬지 않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인으로서 궁금한 점은, 과연 내 행동이 성경적으로 부합되는 것이냐 아니면 부합되지 않는 것이냐를 판단하고 반성하는 것이 김달원목사님이 주장하시는 '성령의 선한 일 범주'에 포함되는 태도인지 아니면 그 바깥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비신자의 태도인지가 궁금합니다.
왜 이점이 중요하느냐 하며는, 산 자가 스스로 자부하기를 "나는 선한 일을 했고 내가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점을 내가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김달원 목사님의 '신자'냐 '불신자냐' 하는 판정기준에 의하면 나는 확실하게 신자 맞다" 라고 단정짓는 입장에서 과연 그 사람이 자신을 불신자로 도로 취급하기 위해서 자기가 지키지 못해서 선하게 하지 못한 경우를 근거로 동원시킬 마음이 과연 들겠느냐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야고보서 4:13에 나오는 말씀인, "내가 어느 도시에 가서 장사를 해서 이익을 얻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 그 자체가 아예 생각조차 나지 않도록 사전에 대비하지 못한 악하고 좌악된 기억을 근거로 해서 자신을 다시 과거에 매인 불신자로 취급할 수는 없겠는가 하는 겁니다. 적어도 김달원 목사님의 주장에 의하면 성령이 그 때그때 마다 역사하는 것이 항상 신자와 함께 내재 되어 있다면 신자에게는 절대로 성경에서 악하다고 여기는 생각조차 발생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곧 더이상 신자에게는 성경 자체가 필요치 않고 본인 자체가 걸어다니는 말씀 덩어리가 되어버려 뭘 해도 선한 일만 나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김달원 목사님의 주장에 의하면 신자는 성령의 새로운 능력 안에 있기에 결코 '성령이 능력이 임할 경우에만 착한 일'하는 그런 비영속적인 선한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김달원 목사님은 또 다른 주장을 하셨습니다. 즉 아무리 신자가 성령의 능력 안에 있어도 본인이 자신의 근육을 사용하듯이 사용하겠다고 마음 먹지 않는다면 결코 선한 일이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즉 신자 쪽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하나님 제가 선한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나온다면 항상 내주되어 있는 성령께서 마음껏 선한 일을 하도록 해주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의 내주에 의해서 선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자 본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입니다.
정리 하면 이러합니다. 1. 선한 일을 못하는 자는 신자 아니다. 2. 신자는 성령께서 필요할 때만 선한 일을 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신자는 항시 자기가 선한 일하고 싶다고 나선다면 언제든지 성령께서는 도와주신다. 왜냐하면 신자는 더이상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이기 때문이다.
문제 1. 과연 신자가 하는 모든 일이 자동적으로(아침부터 밤에 취침 때까지 모든 움직임 전부 다) 선한 일인가? 아니면 성경을 봐서 선한 일을 골라 잡아 마음먹고 하겠다고 나설 때만 선한 일이 되는가? 만약에 선한 일을 하겠다고 나설 때만 선한 일이라면 그렇지 않는 시간들에는 얼마든지 본의 아니게 악한 일을 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백화점 쇼 윈도를 지나치다가 갑자가 돈이 있었으면 하는 돈을 사랑하는 경우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다 딤 6:10) 그렇다면 이 악한 생각을 근거로 해서 자신이 여전히 과거에 얶매이고 공중 권세잡은 자에 묶인 불신자라고 규정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만약에 이런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면 이는 김달원 목사님이 주장하신 성령께서는 일시적으로, 우발적으로 선한 일을 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실제로 성립될 수 없는 주장이다. 신자가 항상 성경 말씀을 의식하면서 24시간을 지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문제 2: 따라서 소위 스스로 신자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즉 늘 선한 일을 내가 하고 있는지 아니하고 있는 지를 살펴서 선한 일을 했다고 자부하는 경우들만 골라 기억해서 그것으로 자신이 지금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새로운 영적 피조물 맞다고 자부하는 사람에 있어서는 성경 말씀 가운에서 임의로 채택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즉 쉽게 지킬 수 있다고 여기는 것에는 자신감을 갖고 덤비지만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 해낼 수 없다든지 하고 싶지 않을 때는 나중으로 미루게 됩니다. 하지만 예를 들면 요한일서 3;16 같은 말씀을 보면,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같은 말씀이 나온다. 김달원 목사님의 의견에 의하는 이 불가능한 말씀도 성령께서 도와주시면 얼마든지 가능하니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덤벼들어서 해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 선한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하루에 몇 번 시도 하면 선한 일이 되고 몇 시간 지속시켜야 선한 일인가? 1초 씩 세번 ? 1분 씩 두 번? 1시간 연달아하면 선한 일이 성사된 것으로 간주할 것인가? 도대체 목숨이 몇 개인데 이것을 여러 번 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에 첫번째 이 말씀을 달성하면 이미 숨이 거두어진 상태이기에 더이상 형제를 위해 바칠 목숨은 아예 남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이 선한 일을 시도하려고 흉내라도 내면 (실제로 하지 않더라도 방향성만 맞으면) 그것을 가상타 여겨 선한 일 범주에 넣어주는가? 행동도 본인이 하고 판단도 본인이 하는 마당에, 즉 행위하는 자와 분석하는 자가 동일인물인 마당에 도대체 어느 인간이 자신을 불신자가 간주하고 싶어 환장하겠는가? 어떤 변명을 늘어놓고서도 자신이 선한 일에 매진하는 신자로 자처할 것이 뻔하다. 이것이 바로 자신을 이미지화해서 살아가는 모양새다.
문제 3: '선한 일에 관심조차 없는 자'가 불신자 인가? 아니면 '선한 일을 시도했는데 성령님이 안 도와준자'가 불신자인가? 아니면 '성령님이 도와주겠다고 해도 따로 하는 사업이 있어 선한 일에 자주 신경 못 쓰서 선한 일을 늘 달성하지 못한 자'가 불신자인가? 김달원 목사님의 주장에 의하면 세 번째 경우도 불신자가 된다. 왜냐하면 실제적으로 이유를 불문하고 선한 일을 늘 못내놓으면 신자 아니다. 즉 김달원 목사님의 주장에 의하면 성령께서는 불숙불숙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늘 권능으로 신자와 함께 있기에 그저 신자쪽에서 먼저 선한 일하겠다는 발동걸기만 학수고대한다. 따라서 신자라는 작자가 만약에 제대로 성경에 나오는 선한 일들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성령은 마냥 기다리기만 한다. 만약에 성령론을 바꾸어서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신자에게 선한 일을 시킨다고 한다면 김달원 목사님의 모든 이론은 다 깨어져버린다. 이렇게 되면 김달원 목사님의 그토록 싫어하는 주장 즉, "여러분, 여러분들이 가만있으면 성령님이 알아서 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입니다. 죽은 듯이 있지말고 근육을 움직이고 사용하세요. 그럴 때만 성령깨서 도와주십니다."
문제 4.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더 크진다. 신자가 된 자가 게으름을 피워서 선한 일을 못해서 불신자로 도로 가느냐 아니면 아예 성령님이 없었기에 게으름을 피웠느냐 하는 것이다. 만약에 애초부터 성령님이 없어서 게으름을 피워서 선한 일이라는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면 처음부터 그 사람에게는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말은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에 처음부터 성령님이 계신 자라면 '게으름 피우지 마. 게으름 피우면 신자 아니야'라는 말을 할 필요조차 없게 된다. 왜냐하면 신자되고 아니되고가 어차피 선한 일에 대한 인간의 자발적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로 달렸다면 성령님 이야기를 불필요한 일이다. (의지가 없는 자아 처음부터 성령과 무관한 자요, 의지가 있다면 어차피 그 자체로 신자라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평) 김달원 목사님은 출발점이 사도 바울과 젼혀 다르다.
1. 죽은 자에서 산 자로 넘어오면서 건네진 능력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린도후서 4:11이 말씀인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를 위하여'가 성립되려면 반드시 우리 산 자가 죽음에 넘겨지는 현상을 동반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작업을 성령님이 하신다는 겁니다.(고후 4:7-9) 김달원 목사님은 이 성령님의 동반현상을 빠트리고 있습니다.
2.사도 바울의 출발점은 구약의 인간관에 있었습니다.. 즉 인간들의 자체적인 모든 시도가 단순히 선한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가 아니라 뭘해도 최종적으로 '자기를 위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놀란 것은, 본인이 선한 일을 안하고 있었다가 아니라 '자신 구원을 위하여 선한 일을 한 그것이 바로 하나님되시는 예수님을 가리고 죽이는 일을 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하여 사도 바울은 육과 영을 명확해 구분지었고 그 구분을 모든 신앙인의 보편적 본질로 규정지었습니다. 즉 인간이 알고 있는 타고난 '하나님 인식'은 근본적 자기를 위한 죄악의 형태였고 '영'은 그 대척점 위치에 있습니다. 무엇이 영일까요? 바로 그것이 죄임을 알게 하는 그 근거로서 나타난 십자가 안이 바로 영의 세계인 것입니다. 따라서 영의 세계에서는 '자기 긍정'이 아니라 늘 십자가 앞에서 '자기 부인'된 상태에 있습니다. 벧전 4: 11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라"

구득영(IP:203.♡.97.227)

08-12-19 22:56

에베소서 3장 1절은 성도의 신분에 관한 것인데, 그러니 그 본문을 가지고 그렇게 설교하면, 그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그렇게 이야기했던 '육'의 전형적인 모습인 줄 아뢰오.

이근호(IP:117.♡.145.20)

08-12-20 11:28

김달원 목사님은 주장하기를, 신자는 이미 과거로부터 벗어났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알기 위해서 사도 바울이 과거 시절의 이야기를 기록해 놓았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계속 선한 일을 하는 자라면 더이상 과거에 대해서 새삼 생각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선한 일이 성령의 놀라운 능력으로 이루어지고 있기에 그 자체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찬미하는데 하등 모자람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김달원 목사님의 주장에 의하면 선한 일을 반드시 하게 되는 참 신자에게는 더이상 전에 공중 권세에게 잡힌 때의 시절 이야기를 전혀 기억할 필요조차 없는 일입니다. 행여 어떤 사람이 선한 일을 하다가 성령님의 놀라운 능력을 잊어버리게 되면 도로 과거시절을 회상하면서 다시 잊었던 성령님의 능력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 김달원 목사님의 주장인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그 과거는 결코 신자에게 영원에서 떨어져 나가면 안 되는 과거가 되어 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말이 '과거에서 벗어난 새 사람'이지 실제로는 항상 그 사람에게 과거의 그림자에 묶여 있는 셈이 됩니다. 언젠고 즉시 과거로 되돌아갈 준비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겁니다. '과거를 잊지 않아야 될 자로서 과거로부터 떠나 살아야 될 자가 신자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김달원 목사님은 에베소서 2장에 나오는 과거를 과거완료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완료란 과거와는 달리 현재 신자의 확정된 위상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만약 과거라고 한다면 현재가 되어버리면 과거는 더이상 없는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과거완료가 되어 버리면 과거상황은 사라질 것이 아니라 현재의 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항시 필요한 것이 됩니다. 예를 들면, 12월 달에 들어서면서 "겨울이 되었다"고 표현하지 아무도 "겨울이 지나갔다"고 묘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겨울에 들어섰기에 지금도 겨울이다는 뜻입니다. 즉 에베소서 2:5-6에 나오는 말씀인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는 표현은 마치 인간 개인 속에 흐르는 시간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시간 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 외부에 벌어진 사태들을 시간상의 용어로 동원시켜 표현한 것입니다. 마치 인큐베이트 속에 들어있는 아기를 인큐베이트와 더불어서 설명할 때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츠츠 자기 앞 가름도 못하는 그 간난 아이가 그래도 숨쉬고 사는 것이 외부에 있는 인큐베이트 때문이구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성도가 성도답게 되는 것이 성도가 가진 자생력이 아니라 죽은 자에게 살려낸 그 긍휼과 자비와 부활의 능력이 성도를 휘감고 있고 그 휘감은 능력의 출처가 결코 성도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이라는 인큐베이트의 위력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도가 고백하는 것은 에베소서 2:9에 나오는 바 그대로입니다. "(자기)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리라"
이런 고백이 실제로 어떤 식으로 나올까요? 소위 선한 일을 했다고 자부하는 그 현장에서 나와야 되지 않을까요? 즉 "이 선한 일은 내가 할 수 있다는 나는 신자 맞아"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나는 도저히 이 일을 할 수 없어. 자력으로 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못할 일에 내가 마주치고 놓여 있는 것은 나의 능력을 부인케 하고 오직 나를 사용하시는 예수님의 긍휼의 위력이 은혜이 작용한 결과야. 그렇다면 왜 나는 나의 거듭난 능력으로도 못하는가? 그것은 십자가에서는 나오는 예수님의 의로움만을 쳐다보기 위함이야"라는 고백이 에베소서 2:8의 말씀인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다"가 성사된 겁니다.
성도로 하여금 이런 자기 부인이 성립하시기 위해 성령님께서는 우리도 하여금 말씀으로 쑤셔대면서 우리로 하여금 죄인됨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사람의 모습니다.
육적 사람은 이와 반대입니다. 자기 구원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찬미할 만반의 준비를 하지만 궁극적으로 노리심는 바로 자신의 의와 자기 존재의 정당함과 자기 행함의 정당함과 자기 구원의 당연함입니다. 결코 자기 부인이 나올 수 없지요.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다"는 사도 바울 고백을 과거에만 해야되지 지금에 와서 되풀이 해서는 결코 신자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육에 속한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관심사는 예수가 아니라 예수에게 도움받아 챙길 것 챙겼다고 자부하고 싶어하는 자아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도무지 자기 부인이 안되게 되어있습니다.

김대식(IP:124.♡.87.32)

08-12-20 14:10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일가요?

구원 이후의 삶을 왜 그렇게 목사들이 간섭하고파 안달일까요? 안 그러는 목사들이 없을 정도입니다.
박영선도 그렇구 성화론자들은 서로 서로가 낮은 수준의 성화론이다 라고
자기들 끼리 서로 욕들을 하지만 그나물에 그 밥이라고
별 다른 것 없이 다 고만 고만한 짖만 하는 그야말로 허망한 짖들만 골라서 하고 있네요

지금도 김달원 목사님의 과거 기독교란 무엇인가 라는 특강을 들어보면
정말로 눈치 안보고 누구를 의식 하지도 않은채
겁없이 외쳤던 그 복음을 들으면 너무 너무 놀라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계속 몇년동안 같은 소리만 계속 반복하고
또 계속 누구를 은근히 의식하면서 빙빙 돌리면서 헷갈리게
이랬다 저랬다 라는 갈팡질팡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구를 의식하는 내용을 집어 넣은 때 부터 이건 복음이 아니라.
그 누구를 의식함으로써 의도적인 적을 설정해 놓고
(물론 그 누구란 이근호 죄인이죠 뭐가 겁나서 의식하는지 뭔, 죄인이 뭐가 겁나서)
그 시너지 효과로 결속력을 강화 하는데 급급한 모습인 겁니다.
마치 양무리가 자기들이 악마집단인 것을 감추고자 이단감별사 노릇만 골라서 함으로써
적을 설정해야 그 적에 대한 적개심이 크면 클수록 결속력이 강화 되듯이 말이죠.

왜 잘 나가다 시궁창으로 빠지는 것일까요?

물론 누구든 어쩔수 없다고 봅니다만 왜 그 한 사람의 탐심에
더 심각한 것은 그 많은 사람이 멍청하게 당하느냐 말이죠?

이근호(IP:117.♡.145.20)

08-12-20 16:20

성경의 내용을 실제 교회 존립과 일치시키는 것을 통해서 확인하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즉 성경의 내용이 과연 실제로 진리답냐 아니냐를 교회 운영(목회)를 통해서 점검하여 뜻대로 되면 성경 말씀이 과연 진리 맞는 것이고 뜻대로 안되면 진리 아닌 것으로 수정하고 싶은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자기 직업이 따로 있기에 이점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지만 목사는 교회 아니면 따로 일거리도 없고 생계수단도 없기에 교회 운영이 안되면목사와 목사 가정에 직접적이고 총체적인 위기를 직면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 십년의 결처 끊임없이 실험과 실습을 반복하게 됩니다. 즉 무엇이 진리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교회가 존속하고 운영될 수 있느냐가 궁극적 관권입니다. 이래도 해봤다가 저래도 해보다가, 조용기식으로도 해보다가 개혁주의도 해보다가 십자가 복음만을 전해보다가, 치는 설교도 해보다가 희망적인 설교해 보다가 교인들이 학력이 낮다고 지적하면 대학에 가서 못다한 공부도 더해서 교인들 보기에 학력적으로 밀리지 않고 말씀에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해 보다가, 간중 식으로도 해보다가, 안수하고 병고치는 것도 해보다 자꾸만 하면서 과연 이 세상에서 교회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한다가를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연구하고 연구합니다.
목회자 본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영발도 키워보다가, 성경 지식으로 교인들에게 다가가려고 해보다가, 특별 계시받은 것으로 밀어붙여보다가, 기존의 노회와 총회 권위로서 교회를 교인 교회에서 목사 교회로 전환시키려고 하기도 해보다가 이것 저것도 안되면 선교지 찾아 도피해서, 아예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감추는 방식으로도 해보다가 그것도 안되면 사회 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국가 복지정책에 빌어붙여서 교회를 운영해보다가 그것도 안되면 건강 식품, 자연식품을 팔면서 환경신학과 접목시켜 보기도 하고 촌에서 혼자 유기농법으로 농사지어보기도 하다가, 그것도 안되면 정권 바뀔 때 뜨는 정당에서 활동해서 국가 조직에 자리하는 장만해보려고 하다가 그것도 안되면 신학교 운영 위원회에 가담해서 신학교에 취업을 시도해보다가 온갖 것으로 몸부림 칩니다.
이 모든 실험과 실습은 결국 자신이 죄인이라는 점을 까막득하게 모르고 죄인의 인식으로 세상과 성경과 교회를 평가하는데서 문제가 벌어진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나 같은 인간은 진작 죽어야 되고 내일 더 살아 이유가 하등 없다"고 여긴다면 바로 그런 인식이 나온 근거를 십자가에 두고 그것만을 설교단에서 전하게 되면, 그 목사의 소원대로 하나님께서 사람이나 교인들은 눈에 안 보이고 스데반 집사처럼 곧 만날 뵐 예수님만 크게 보이는 법입니다. 목사의 가장 큰 잘못은 교인들을 건방지게 가르쳐야 한다는데서 비롯됩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지 결코 목사가 아닙니다. 목사는 그저 교인들이 불쌍히 여겨 동냥해서 빌어먹여주는 거지의 일종일 뿐입니다.

김을수(IP:121.♡.103.45)

08-12-20 21:47

돈 때문에 목사는 교인들을 협박하고
돈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고
돈 때문에 목사는 교인들의 신앙의 척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개거품 물고 울부짖고
돈 때문에 안재환은 자살을 선택했고
돈 때문에 목사는 강단 앞줄에 앉아 기도하는 척하다 목 디스크로 병원치료 받고
돈 때문에 응급실 환자가 수술 받지 못해 죽고
돈 때문에 목사는 성경을 다 안 다고 거짓말을 하고
돈 때문에 가난한 나라의 젊은이가 용병으로 자원하여 이라크에서 개죽음 당하고
돈 때문에 목사는 무더운 여름날도 긴팔의 와이셔츠를 입고 자기 관리에 여념 없고
돈 때문에 학벌이 없어 길거리 청소를 하다 자동차에 치어 즉사하고
돈 때문에 목사는 교인들에게 참고 인내하면 좋은 날은 반드시 도래한다고 속삭이고
돈 때문에 나의 아버지 술을 선택하고 마지막은 술로 끊을 내고
돈 때문에 교인들에게 선교 한답시고 기도 부탁하면서 은근히 기대하고
돈 때문에 자식들 짜증내고 부모에게 대들고
돈 때문에 목사는 설교 시간에 교인들에게 무식하면 고분고분 날 따르라고 호통치고
돈 때문에 세상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돈 때문에 목사는 교인들의 삶을 훔쳐보는 관음증 환자가 되었고
돈 돈 돈...
십자가를 통해 쪼개짐을 당하지 않는 자는 죽음의 현실에서 품어내는 악취가 돈이라는 것을 모른다

강구만(IP:125.♡.86.243)

08-12-20 22:22

돈 때문에 성도는 돈에 잠겨 허우적 거리지 않고 예수님 피에 잠겨있음을 알게되고! 돈때문에 성도는 돈없이 사는 세상도 있음을 알고 ! 돈때문에 성도는 돈없이 주어지는 용서에 늘 울고싶고 ! 난 그래도 돈 때문에 울고있을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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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6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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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