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장로의 개가 되어버린 교인들
목사와 장로의 개가 되어버린 교인들
이름 : 김대식(IP:124.59.87.32)
목사의 개가 되어버린 교인들
081218
오늘날 참 신기하게도
성령(거룩)을 빙자해서 눈에 보이는 교회 중심으로 인해
목사 라는 자들이 개들을 양산해 내고 그 개들을 기르고 있다.
도리어 목사가 유일하게 모두다 반대의 길로 가더라도
유일하게나마 교회의 소모품이 되어야 할 텐데
목사가 소모품이 되어버리지 못하고
그 목사를 중심으로 해서 개들이 양성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음을 중심으로 해서
목사가 복음을 위해 소모품이 되지 못하는 시점인
더 이상 새것이 나오지 않는 시점이 될 때
(새 것이란 신상품이 아니라. 새언약의 십자가 피 정신이다. 새 영이신 성령은 오로지 피 중심이다.)
교인들은 이제 더 이상 새 것을 내지 못하는 목사를 가차 없이 버리고
새것을 내 놓을 수 있는 목사를 대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다른 전체 교인들을 위해서 섬기는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에 목사의 트릭에 넘어가버리면
도리어 목사의 개들로 전락해 버리게 되고
그 목사를 중심으로 해서
정치적인 세력이 활성화 되고
더 이상 건드리지 못하는 난공요새가 되어버린다.
(새 영의 반대인 악령의 집단으로 가인처럼 가인성의 확대 팽창 채우기에 평생 부적으로 도배한다.)
부려먹어야할 개를
개가 무서워 부려먹지를 못하고
반대로 부려먹어야 할 개에게 도리어 부림을 당하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정말 복음만을 위한다면 가차 없이 버려야 할 소모품인 목사를
(설사 버린다고 해서 그 목사가 나쁘다거나 잘못된 인간이라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반 교인의 자리에 앉으면 될 일이다.
- 처음 자리, 은사 자체가 사건중심이지, 인간중심이 아니기에, 또 모든 은사는 처음자리 되돌려놓기 위해 주시는 선물이다. 선물 받아야만 할정도로 무능하기 떄문이다. -
일반 교인의 자리에 앉아서 복음에서 날마나 생산되는 새롭게 샘솟는 사랑을 보면 될 일을, 억지로 그 자리를 유지, 사수해 버리면
이거 교인들에게 엄청난 무거운 짐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사울왕을 보라 일부러 성령 넣었다. 악령넣었다 하시는 이유를-
남도 죽고 자기도 죽고
자기도 지옥 가고 남도 지옥 같이 가는
자기도 천국 안 갈려고 하고 남도 천국 못가도록 막아서는)
(마 23:13, 개역)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그놈의 정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 트릭(정치처세술)에 속아 넘어가서 인지?
뺨따귀를 때려도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다른 뺨을 때리라고 대어주는 꼴이다.
(고후 11:20, 개역) 『누가 너희로 종을 삼거나 잡아 먹거나 사로잡거나 자고하다 하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그런 속물이 된 목사의 개가 되는 것이 그렇게 좋은가?
어느 정도로 속물인고 하니
설교 속에 녹녹히 녹아져 있다.
그래서 그것 들킬까봐 설교도 잘 내어놓지를 않는다.
항상 주님만을 보고 주님을 눈치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 눈치를 늘 본다. 사람을 의식한다.
자기의 말이 안 먹혀 들까봐 늘 전전긍긍하고
자기의 말에 반대되는 자를 늘 경계하는 의식을 은연중에 비추인다.
결국 교인 하나 삼켜먹을려고 자나 깨나 교회 교회 교회만을 신경 쓴다.
뭐가 그리 겁이 나서 그렇게 할까?
그렇다 교회가 자기를 버릴까봐 겁이 나는 것이다.
사랑(미래완료)이 없기에 늘 미완료로 다가오는 미래가 두려운 것이다.
그 놈의 교회가 뭐길래? 교회에서 쫓겨날까봐? 겁이 나는 것일까?
즉 교회가 자기의 직장인 셈이다. (눈에 보이는 교회만이 미래가 되어버린 우상이 된 교회)
교회가 자신을 해고 하면 자기의 생계가 위협을 받고
처자식의 미래는 암담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교회야 말로 자기의 유일한 우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교회 없이는 밥 못 먹고 사는 것이니까?
그래서 그런 일을 애초부터 방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넉넉하게 소모품이 되도록
교인들이 얼마든지 이용해 먹을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내어주는 것 자기부인이(소모품) 아니라.
그 반대로 철저하게 교인들을 자기의 개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의 자리는 슬슬 권력화 권위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오야봉
이런 뻔한 깡패 짓을 누가 봐도 다 아는 그 정치술에 넘어가는 것은
같은 생각을 그 목사와 똑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인들 역시 속물들이기에
그래서 주님이 정작 미천한 것들을 통해서 알려줘도 눈에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몇 년 전에 공원에서 아는 형이 나 보다 1-2살 많은데
젊은 나이에 장로가 되었다고 은근히 자랑을 하면서
아직도 너거 교회는 장로도 안 세우냐 라고 비웃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목사 조차도 없고
교인들 전부가 목사요 주님의 종들이요 전부다 종(소모품) 이다 라고 하니
갑자기 그 형이 이야기 내용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할 말이 없기에 …….
속으로 너도 목사 개가 되었구나? 쯧쯧쯧. 그 개 된 것을 자랑하다가 깨개갱 된 것이다.
목사 개가 된 것이 마치 훈장이라도 단 것처럼 자랑을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목사의 정치 술에 완전히 코 끼여서 평생을 밥풀떼기로 삼은 줄도 모르고
그 감투 쓴 것을 좋아라하고 자랑을 했으니,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조차 모르기에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목사란 소모품 이다.
단물 빨아먹고 더 이상 새것이 나오지 않으면 뱉어버리면 된다.
모든 직분 또한 마찬가지이다. 처음의 그 낯설은 첫사랑의 자리로 되돌리기 위해 은사를 주셨다.
성령께서 십자가 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사랑이라는 새것을 발생시키고자
잠깐 사용하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는
그야 말로 십자가의 피 중심의 사건 중심이다.
억지로 새것도 나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질질질 끌고가는 그 억지성이야 말로
인간들의 정치조직이 되기 딱 십상이다.
그 회칠한 무덤을 인간들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주님은 속지 않는다.
그 목사를 살리는 길은 소모품으로 봐야 그 목사도 살리는 길이다.
다른 직분도 마찬가지이다. (교인들 조차 소모품자세로 못 보면 목사를 되돌려 놓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역으로 교회에서 목사의 오른팔 왼팔이 되는
그 경쟁 속에서 살아남고자 이리 저리 눈치를 보아야 하는
그야말로 더럽기 짝이 없는 조직 속에서의 생존만을 추구할 뿐이고
조직 조차도 생존을 질질질 끌기 위해
교인들 가정을 피 뽑아 먹는 흡혈귀로 전락할 뿐인 것이다. 조폭 깡패들 따로 없다. 거룩한 옷 입은 성화된 조폭
그 꼴 당하기 싫으면
목사에게서 새것(성령)이 나오는지 끝까지 추적해야 하고
아니면 몇 년 전 것 계속 우려먹거나
아니면 인간을 눈치 보고 사람을 의식하면서 설교 내용을 채운다면
당장 끌어내어서 내쳐야 한다.
예복(새 옷)을 입지 않는자는 내침이 마땅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예복(피=완료=십자가복음) 아니면 다 가짜로 규정할 줄 알아야 한다.
(마 22:12, 개역)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마 22:13, 개역)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마 22:14, 개역)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