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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가벼움과 무거움설교마태복음

Re..마 11:28-30 (가벼움과 무거움)

이름 : 이근호(IP:)

가벼움과 무거움

2003년 10월 26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1:28-30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교인들 가운데 자기가 자기를 심판하려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보기에도 자신이 참 한심하다고 느끼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이 땅에 오신 심판주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는지를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심판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하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벌 주면 안됩니다. 그런다고해서 우리의 죄 의식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표면에 떠오르는 죄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자들은 예수님에게 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있어 문제 중의 하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겁니다. 각종 취미 활동과 여가 활동이 빈번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그 때 그 때마다 풀어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고 계속 누적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의식, 죄책감입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런 짓을 하지 않아야 되는데"하고 후회합니다. 그러고 나서는 스스로 자기에게 징계를 감행합니다. 채찍가지고 자기를 차마 내려치지는 않는지만 그 대신 유별나게 갑자기 교회 일에 열심을 내고 적극 가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난데없이 가정에 불상사가 생기면, 그동안 하나님께서 봐주고 있는 징벌이 한꺼번에 자기에게 덮쳐진 것인양 여기고 그것을 감수하려 합니다. 그러니까 언제 그 축적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가 덮칠까 늘 조마조마한 겁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그런 마음 자세 조차 죄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기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말씀 앞에서 그런 의식은 죄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즉 예수님을 기껏 자기 가정의 행복이나 지켜주는 경비원으로 간주했다는 잘못을 지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사들은 바로 이런 교인들의 약점을 충분히 이용하기 위해서 대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의 정신이 나약 할 때를 노려 돈을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상습적으로 강탈해내고 있지요.

여러분 성도와 성도 아닌 사람의 차이점은 어디 있다고 봅니까? 쉽게 생각하세요. 사랑받으면 성도요, 사랑받지 못하면 불신자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무의식 속에 적체되어 있는 죄의식으로 인해 자기를 무겁게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는 그 인간의 모든 능력으로도 해결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윤리란, 그 가치관 자체가 죄로 인해 오염된 것입니다. 즉 "저것은 죄야, 저것은 나쁜 것이니까 기피해야 돼"라고 단정을 하게 되면, 그 단정의 기준조차 죄에서 나왔기에 결코 믿을만 한 것이 못됩니다.

그러니까 믿을 수 없는 하자가 있는 기준을 가지고 죄라고 스스로 규정한 것을 놓고 스스로 자신을 단죄하는 것 조차 죄가 되는 겁니다. 실제로 사람의 윤리적 도덕적 기준이란 오직 하나뿐입니다. "나는 우선적으로 살아남아야 될 위인이다"는 겁니다.

사람이 자기 생존 위주로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꼭 남에게 나쁜 짓을 해야 죄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이 여기 존재하는 것 자체가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막상 무슨 생존에 위협이 되는 터지면 그토록 '사랑, 사랑'을 외친 자도 우선 자기부터 사는 방향으로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에 나서게 됩니다.

나라보다 나를 더 사랑하게 마련이고, 교회나 하나님보다, 가족보다, 친구보다 나를 더 사랑하게 마련입니다. 자기가 일단 살아 있어야 비로소 세상은 살만한 곳으로 보이게 마련입니다. 이 '자기 위주'의 윤리관도 도덕관은 자기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다 갖고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자기 쪽에서 남에게 사랑을 배풀고 잘해주려고 해도 항상 최후에는 자기 위주로 돌아서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가 자기를 소유하는 식으로 인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편히 쉬게하겠다"는 겁니다.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해서 예수님에게로 오면 편하게 쉴 수있는가를 여기서 알아 보아야 겠지요.

지난 시간에 우리는 선택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선택해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자만이 구원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도 우리의 의사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선택적 의사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즉 자기를 자기 소유화하는데서 탈피된다는 말입니다. 마치 참새가 스스로 자기 운명을 결정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지난 날의 잘못을 후회하면서, "그 때 그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3차까지 안 가는 건데"라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스스로 술집 2차까지만 가서 돌아올 위인같으면 구원도 자기 행함으로 구원될 사람입니다. 그런 능력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죄로 인한 절망을 주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그 죄의 무거움은 인간이 그 어떤 노력이나 열성이나 순결성으로 해결되지 못함을 확실히 하십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은둔 생활을 해도 덜 죄인되는게 아닙니다. 여전히 계기가 되면 죄를 폭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게로 오라"고 하시는 겁니다. 어떤 이들은 너무 자존심이 크서, "나는 낯짝이 있지. 그런 큰 죄를 지어놓고 어떻게 예수님 품으로 기어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내 갈길로 갈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롯 유다와 같은 자들입니다.

이 사람은 일종의 자기가 자기에서 벌을 세우는 식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심판주가 하시는 심판을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내게로와서 내게 배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와서 뭘 배워야 된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선택된 분입니다. 즉 자기가 스스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일이 과연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0:28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사실 남에게 다 내어준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는 눈으로 보면, 대단히 실패한 인생이라고 정리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맙게 여기지만 막상 그 십자가 인생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 이 진리를 말해줍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일생을, 아버지의 뜻을 그려내는 도화지로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자기 백성에게 다 내어놓은 것입니다. 남을 자기에게 끌어당겨 자신을 더욱 자기 소유로 견고히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대속물을 남들에게 주기 위한 인생을 사셨습니다. 바로 이 점을 배워라는 겁니다.

단순히 영원히 자기 것에 속한 '자기'가 되기 위해 살면 계속 쌓이는 죄로 인해 그 인간은 대단히 무겁게 되는 법입니다. 여기서 이사야 53:5를 봅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는 당연히 허물이 있는 자이요, 그래서 당연히 죄악이 있는 자임을 수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힘든 것은, 자신이 훌륭할 경우에만 하늘에게 복이 온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자신이 죄인 된 것을 아는 자에게만 하늘에서 복이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말씀을 좀 더 진전해 들어가게 되면, 그의 찔림이 나오고 '채찍'이 나옵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스스로 자신을 쳐서 고문한다고 구원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차라리 모든 죄에 대한 징벌과 저주는 바로 이 말씀으로 예언된 그 하나님의 종에게 맡겨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대속의 죽음입니다. 이 대속의 죽음이 곧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속에 담겨 있어 늘 출렁거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이 지구상에 어디를 가도 그 자리가 용서의 자리가 되게 하시고, 복의 자리가 되게 하시고,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완벽함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담아준 사랑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그 모습에 보고 참으로 즐거워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런 사랑을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우선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자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소유에서 떠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을 증거하라고 선택된 자입니다. 베드로전서 4:8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여러분, 잠에서 이불 덮고 주무세요. 그렇지 않으면 감기 걸립니다. 그러나 낮에는 허다한 죄, 즉 그 많은 죄도 다 덮어주시는 사랑의 이불을 덮고 사세요. 그렇지 않으면 절망이요 말망의 길로 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다한 죄를 채찍 맞은 고난으로 용서했듯이 우리도 이런 사랑으로 이웃 속에서 삽시다. 서로 서로 허다한 죄를 덮어주며 삽시다. 이미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이니 사시는데 가벼울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사랑보다 더 귀한 것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채찍으로 생겨난 이 사랑만 늘 삼키며 사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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