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0: 3- 6 (새 사람 되리라)
삼상 10: 3- 6 (새 사람 되리라)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사무엘상 10장 3- 6절
제목 : 새 사람 되리라
듣기 :
, 보기 :
이근호
08-12-14 17:00
새 사람이 되리라
2008년 12월 14일 본문 말씀: 사무엘상 10:3-6
(삼상 10:3, 개역) 『네가 거기서 더 나아가서 다볼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거기서 하나님께 뵈려고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이 너와 만나리니 하나는 염소 새끼 셋을 이끌었고 하나는 떡 세덩이를 가졌고 하나는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가진 자라』
(삼상 10:4, 개역) 『그들이 네게 문안하고 떡 두 덩이를 주겠고 너는 그 손에서 받으리라』
(삼상 10:5, 개역) 『그 후에 네가 하나님의 산에 이르리니 그곳에는 블레셋 사람의 영문이 있느니라 네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으로 들어갈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산당에서부터 비파와 소고와 저와 수금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오는 것을 만날 것이요』
(삼상 10:6, 개역)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사울이라는 사람은 자기 고유의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나귀를 키우며 생업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자기 고유 영역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만으로 봐서는 사울이라는 사람은 영원히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려고 시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타인의 영역이지 자신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이란 자신의 영역에 목매답니다. 결코 자기 것 버리고 타인의 일에 매진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이 구축해놓은 사업이나 업무나 인생에 모든 것을 다 걸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세월 지나가면 60살도 되고 70살도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죽겠지요. 따라서 이런 사람은 어디까지나 자기 인생에만 전부를 바치고 산 사람입니다.
사울도 그러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국가나 민족의 운명을 거창하게 생각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무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의 능력에 의해서 사울이라는 사람은 본의 아니게 자기 영역이라는 테두리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타인의 영역이 침투해 들어와 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결코 의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는 본의 아니게 벧엘로 향하는 일단의 사람들과 만나야만 하는 운명입니다. 그런데 벧엘이 무엇하는 곳입니까? 창세기 28장에 보면, 야곱은 우연히 벧엘 지역을 가다가 꿈을 꾸게 됩니다. 그 꿈에서 천사가 자기 머리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하늘에 구멍이 생겨버린 것입니다.
하늘의 구멍이 있기 전에는 인간 세상은 그 자체로서 우주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하늘의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 위로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이 드러나면 졸지에 이 지상은 그저 지하 세계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은 곧 지하세계의 일원으로 평생을 살다고 시간이 가면 그냥 지하 세계가 우주의 전부인 줄 알고 죽게 될 뿐입니다.
야곱은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러줍니다. 곧 ‘하나님의 집’이지요. 유일하게 하늘과 땅이 내통하는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3:15-16에 보면,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 완전히 구멍이 통하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하늘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인간은 자기 일에만 몰두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사울에게 사무엘을 통해서 자기 영역에서 벗어나 타인의 영역을 접촉시키는데 여기서 말하는 타인의 영역이란 단순히 남의 구획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영역으로 통하는 접촉영역을 두고 말합니다.
즉 사람들은 자기 영역에서 영적 영역으로 나아가는데 어떤 기적이 필요하다고 말들합니다. 문제는 그 기적이라는 것은 자신이 반가이 맞이할 만한 기적이어야 한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장에 2장에서 보면, 사람들이 고대하고 기대하는 그런 기적으로서는 결코 하늘 나라의 비밀에 접촉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화장품 가게를 열었다고 칩시다. 그 사람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그 화장품 가게 운영에 매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가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옆에 교회가 있고 누가 복음을 이야기해도 귀에 안 들어오게 됩니다. 왜냐하면 더 중요한 일이 바로 이 화장품 가게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어느날 자기 가게 근처에 자기보다 더 큰 화장품 가게가 오픈하면서 갑자기 단골마저 그쪽 가게로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마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울이 갑자기 집에 있는 나귀에 집나가게 된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화장품 집 가게 주인은 너무 답답해서 근처 교회에 나가 자신의 한을 내놓고 기도하면서 어떤 신의 기적을 부탁하게 됩니다.
더도 덜도 말고 전처럼만 장사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자기 딴에 영적 세계 접촉한답시고 교회를 찾았고 자기 딴에 영적 세계와 연결되었다고 예수 이름 붙여가면서 기도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 기도 내용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납득이 되고 이해가 되는 내용일 뿐입니다. 자기 것이 부셔지거나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과 같은 인식으로 세상 살아갈 수 있는 기적의 내용으로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자기 앞에 있는 남의 가게가 문닫게 되고 자신의 가게가 번창하면 자신은 영적 기적을 받았다고 우기지만 실은 전과는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삶을 계속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기적이라고 하지 않고 악마의 유혹이라고 말합니다. 더욱더 천국 못가게 못을 박는 악마의 행위인 것입니다.
진정한 기적이란 사람들로부터 ‘어리석다’는 평을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신약 성경은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어리석다는 평을 받는 그 십자가의 능력이 실은 유일하게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은혜로운 기적이라는 겁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부활했다는 것을 기적으로 이해한다면 사람들은 얼시구나 하고 수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자신도 죽음에서 도로 살아나 영원히 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부활의 의미를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말하는 그런 기적이라고 하지 않고 십자가를 두고서 사람들은 어리석은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든 세상이 망해도 자기 것 안 망하면서 그렇게 가슴 아파하지를 않습니다. 다른 교회 다 망해도 내 교회 안 망하면서 우리는 신나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십자가라는 것은 내가 망하고 내가 죽어야 될 자임을 말해주는 겁니다. 그것을 유일한 하나님의 기적으로 반길 수 있다는 자가 진정 성령으로 인해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울은 벧엘로 올라가는 선지자와 합류되어 그도 예언을 하면서 하나님의 신이 충만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죄인줄을 모릅니다. 이렇게 성신받은 사울은 나중에 자신의 가치를 위하여 상대방을 죽이려고 하는 악신을 받게 됩니다. 비록 남들보기에 하늘의 기적을 받은 자라고 할지라도 참된 기적은 못받은 겁니다. 참된 기적이란 자신의 죄인됨을 십자가 피 앞에서만 아는 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온전한 새사람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어리석은 십자가가 유일한 구원의 능력임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