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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산 12월 12일 강의 고후 11장 4절강의고린도후서

안산 12월 12일 강의 고후 11장 4절

이름 : 우리교회(IP:124.59.87.32)

081212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근거

우리교회(IP:124.♡.87.32)

08-12-13 11:55

관리자(IP:220.♡.41.203)

10-10-27 16:03

http://media.woorich.net/신학강의/2008안산/안산081212고후11장4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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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081212고후11장4절

안산081212고후11장4절,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근거/ 이근호 목사

2010-10-27 11:38:56 녹취 : 박온정

오늘은 고린도후서11장4절부터 할 차례입니다. 제가 한번 읽어볼게요.

『고린도후서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

이렇게 사도가 얘기 했잖아요? 여기에 ‘다른’이라는 것이 세 개 들어가죠? 제가 한번 적어볼게요.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이렇게 세 가지죠? 예수라고 해서 다 같은 예수가 아니고 여기서 다른 예수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고 성령, 영이라고 해서 다 살아있는 영이 아니라 언제든지 다른 영이 나올 수 있고 복음이라 해서 다 복음이 아니고 다른 복음이 나올 수 있다 이 말이거든요.

사도바울이 한 이야기를 설명 하자면, 뭐를 알아야 되느냐 하면요,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쫓아가고 그걸 추종하고 추구하게 되느냐 그 원인이 뭐냐를 알아야 돼요. 어려운 이야긴데, 만약에 어떤 집단에 가니깐 ‘여러부운~ 우리는 다른 예수 잘 믿죠? 다른 영 잘 믿죠? 다른 복음 잘 믿죠?’ 이렇게 외칠 수가 있다 말이죠. 이단에서 얼마든지 이렇게 할 수 있거든요?

그럴 때 사람들은 우리가 믿는 예수는 진짜 예수고 다른데서 하는 건 다른 예수가 돼, 이렇게 돼버리는 거예요. 자기 기준으로 바른 예수가 되고 자기 기준에 안 맞으면 다른 예수가 돼버린다 이 말입니다. 언제든지 다른 복음을 구절을 멋들어지게 자기한테 적용을 시킬 수가 있는 거예요. 그거는 한 자존심일 수가 있는데 사도가 한 다른 예수가 뭐냐, 여기에 대해서 그 사람들이 연구하거나 생각을 잘 안 하려고 해요.

분명히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있다면, 이걸 추종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라는 말이에요 사도바울이. 다 같은 인간입니다. 어떤 사람은 까만 인간 있고 어떤 사람은 빨간 인간 있다, 그런데 둘 다 예수를 부르짖고 둘 다 영과 성령과 둘 다 복음을 부르짖는데 사도바울이 보기에는 한 쪽은 다른 예수고 다른 영이고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둘 다 같은 인간이에요, 같은 인간. 같은 인간 아닙니까, 그죠?

같은 인간인데 어떻게 그렇게 차이가 나느냐를 우리가 알아야 되겠어요, 몰라야 되겠어요? 이걸 알아야 우리는 진짜 복음인 줄 알지만, 우리가 역시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 말입니다. 성경을 볼 때에 이렇게 일방적으로 자기 위주로, 내가 믿으니까 바른 예수고 남 믿으면 다른 예수고, 내가 아는 복음은 진짜복음 믿는 거고, 다른 건 전부 가짜복음이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주장할 수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면 안 되죠, 그러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반드시, ‘당신은 바른 예수 믿습니까?’ ‘믿습니다,’ ‘근거를 대세요,’ ‘근거는? 내가 믿으면 바른 예수지’ 이거는 억지 아닙니까. 이거는 반칙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교회에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것은 가짜 예수로 치부하고 가짜 사탄의 일꾼들이 고린도 교회를 장악했습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말한 거는 진짜예수고…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들이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고 있는 악마의 하수인들이 파견 근무한, 고린도교회를 지배하고 있었잖아요. 그렇다면 사도 입장에서, ‘에구~ 고린도교회들아~ 너희들이 믿는 것은 가짜고 내가 믿는 것이 진짜다,’ 라고 말 할 때, 뭔가 근거가 있어야 되고 특징들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걸 빼놓고 가짜 진짜 해버리면 이 본문은 읽으나 마나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가짜예수 가짜 영 가짜복음을 추적하고 따라가는 이유가 뭐냐, 그 이유는 간단해요, 왜냐면, 날 때부터 이단이에요. 날 때부터 이단이기 때문에 이단인 인간이 진짜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여기서는 인간의 힘에 의해서는 불가능하게 되는 겁니다. 불가능하게 되어 있어요.

이걸 저는 칸막이라고 합니다. 약간 고상하게 얘기하면 장벽인데. 장벽.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고 해서 예수님이 오셨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예수 보기만 하면 다 믿었습니까? 아니에요, 장벽이 그대로 살아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라 하냐면,『너희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막4:23』왜 했겠어요. 눈으로 보고 듣는다고 해서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다 믿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이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을지어다!’

이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가 뭐라 했습니까.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 사도행전 끝에 보면 사도바울도 그런 이야기 했잖아요. 실커서 성회 해놓고 ‘그래, 나 안 믿을 줄 알았어!’ ‘그래, 안 믿게 돼있어 원래,’ 돼있다 말이죠. 사도행전 참 이상한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며는, 개 같은 이방인들이 남의 나라 메시야, 유대인들이 믿는 성경과 유대인들이 믿는 메시야를 절대로 믿을 수 없지요. 왜냐면,

그거는 자기들 종족의 문제니까. 이방인들은 다른 종족이잖아요. 다른 종족이 있는, 단군의 후손이 이스라엘이 믿는 여호와 그들이 믿는 신 그들이 믿는 메시야를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뭐가 오게 되었냐 하면 사도가 안수할 때 위에서 뭐가 내려왔습니까? 성령이 내려오니깐 누가 놀랬냐 하며는, 이방인들이 놀래는 게 아니고 유대인들이 놀래버려요. 이럴 수가 있느냐!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성령이 내려 오냐 말이죠. 왜냐, 성령이라는 것은 에스겔에 의하면 하나님의 메시야를 고대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에게 준 약속입니다. 에스겔이나 예레미야에 의하면, 너희들 이렇게 고생하지만 언젠가는 메시야가 오고 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게 되면, 다윗의 자손에 한해서 성령을 주셔서 너희 마음 밖에 있던 율법이 이제는 너희 안의 율법으로 되겠다. 이걸 새 언약이라 하는데. 새로 약속했다 이 말이죠.

누구한테 주는 약속이냐 하면, 어디까지나 다윗의 자손이에요 다윗. 혈통적으로 다윗의 자손에게 준다 이 말이지요.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누구한테 오냐 하면, 전혀 혈통이 다른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옴으로 말미암아 이걸 나중에 사도바울이 해석하기를 뭐냐면, 그들이 유대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들이 여호와를 몰랐다 할지라도, 이사야 같은, 62장에도 그런 말 있죠. 부르지도 않을 백성들로부터 부름을 받겠고. 이렇게 돼있어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임의로, 불러내시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는데 대해서 우리 사도가 어찌 그걸 금하리요. 금할 수가 없다. 말릴 수가 없게 돼있어요. 말려도 안 될 때 성령 받은 거예요. 진짜 예수 믿으면 어떻게 됩니까. 말려야 되는 거예요. ‘교회 안가 안가, 돈만 날리고,’ ‘교회 가지 마라, 네가 착한데 무슨 예수 믿나! 그만큼만 착해도 천당 가겠다,’ 이렇게 한번 말려봐라 말이죠. 극구 한번 말려보자 이 말이죠.

이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와서, 요한계시록에 이어지면, 십자가 이후부터 여기까지는 단순한 그냥 종말이라 하잖아요. 흔한 종말이 아닙니다. 세상 끝나겠지, 전복, 전복이란 뜻은 뒤집는 것. 여기서 알았던 거와 완전히 반대로 뒤집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뒤집어버리면 여기는 값없이 구원을 받아요. 앞에서는 열심히 용을 써야 돼, 열심히 용을 써서 복을 받아야 받을까 말까한데 여기는 완전히 뒤집어버려요.

행함도 없이 성령을 받아 구원받았습니다. 여기는 성령 받아 구원받고, 한쪽은 자기의 열심히 구원받아볼까? 하고 애 쓸 뿐이고, 애를 써서 구원받는 게 아니라 성신을 받아야 구원받아요. 성신도 일시적이에요. 사울 같은 경우 성신 받고 난 뒤에 나중에 뭐가 왔습니까. 악신이 와버렸잖아요. 소용없어요. 종말이란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사람의 힘으로 구원이 될까 싶었는데 이것은 아니고, 종말 때는 시작도 하나님이요, 중간도 하나님이요 끝도 하나님이요.

하나님께서 일해서 일방적으로 구원받는다, 공개된, 구체화된 그 시기가 종말입니다. 그래서 종말이 오는 걸 좋아해야 돼요 우리가. 종말이 오는 것을 좋아해야 되지, ‘아휴~ 세상 끝나면 안 되지,’ 이렇게 초조하면 안 됩니다. 종말이 왔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일한다는 것이 왔기 때문에 이 종말을 가지고 네 자로 하면 ‘기쁜소식’이라 하고 이걸 두 자로 줄이면 뭐라 합니까. ‘복음’이라 하는 거예요.

‘마가기쁜소식’ ‘누가기쁜소식’ ‘요한기쁜소식’ 아닙니까. 이 내용이 뭐냐 하면 내용이. 하나님에 의해서 구원이 성사됨! 완료됨! 이런 거예요. ‘하나님에 의해서 구원이 완료됨’ 자, 이제는 감 잡았지요? 가짜복음은 뭡니까, 가짜복음은 뭘 무시 하냐면, 종말이 와서, 종말 때 와서 이루어진 일을 무효로 돌릴 때, 종말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디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어디를 좋아하냐면 종말 이전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아담에 속했기 때문에 타고난 겁니다. 타고난 거예요. 타고난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

여기서 강의 첫 번째 중요한 게 나옵니다. 지금 가짜예수가 어떻게 생겼어요? 가짜복음 가짜 영이 뭐냐, 그걸 설명하는 중에 있습니다. 사람은 수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수평적으로 자기의 영역을 팽창시키기를 원합니다. 사람이 열심히 활동하는 거요? 다 자기 영역을 옆으로 넓히고 자기 세력을 많이 끌어 모으는데 전념몰두해요.

가짜복음 가짜예수 가짜 영이 뭐냐 하면, 현재 종말이 안 일어났으면 할 때 가짜복음이라 했지요? 종말 이전의 인간들은 뭘 하느냐 하면, 자기를 중심으로 자기세력화해서 자기를 넓히는데 몰두하고, 여기에 동원되는 복음과 예수와 영이 가짜예수와 가짜복음 가짜 영이 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교회부흥이죠. 커지는 거 아니에요, 커지는 거. 목사한테는 교회부흥이고 가정에는 아이 공부 잘하는 거예요. 그리고 한 달 남편 수입이 늘어나는 겁니다.

수입이 한 달 백만 원 되다가 이백만 원 되면 어떻게 됩니까. 활동영역이 어떻게 되요. 좁아져요? 늘어나요? 늘어나지요. 오백만 원 되면 골프 치러 다닙니다. 골프. 한달 백만 원도 안 되가지고는 골프장이 어딨는지도 몰라요.(ㅋㅋ) 골프장에 가면 혼자 칩니까? 거기 같은 사모님들 만난다고. 거기 사장님 사모님들. 그럼 활동영역이 어떻게 되요? 넓혀지죠?

넓혀지면 어디 안 나옵니까. 교회 안 나오지요. 교회 나오더라도 말씀에는 관심 있습니까 없습니까. 내가 왜 말씀에 관심을 가져요! 내가 옆으로 퍼졌는데… 관심을 가졌다면 모르지요, 한 달에 오백만 원인데 한 달에 천만 원되게 하옵소서. 다시 할게요. 종말이라 하는 것은 세상 끝자락 아닙니까. 끝자락에서는 자기를 믿는다? 하나님 약속을 믿는다? 가짜복음 가짜 영 가짜예수는 종말을 없애버리고 종말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종말 이전에는 누가 살아요? 내가 살려야 내가 살아요. 길가는 사람 붙들고 물어보세요. 누구 힘으로 사는지. 다 지 힘으로 살지. 말씀? 말씀이 어딨습니까. 열심히 뛰어야 자기영역이 확대되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 직업도 없는 계룡산이나 지리산 도사들, 하루 종일 뭐하는 줄 알아요? 하루 종일 책봅니다. 불경 봐요. 도 닦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 아르바이트해보세요. 책 볼 틈 없어요. 왜! 그만큼 자기영역이 확대됐잖아요. 옆으로 퍼져서…

지금 교회도 마찬가지고, 고린도교회도 뭐가 생겼느냐 하며는, 제 글에 이런 게 있어요. 세례식을 앞두고‘라는. 당신은 예수 믿고 난 뒤에 얼마나 손해 봤습니까? 라고 묻고 싶네요. 당신은 얼마나 손해 보면서까지 세례 받으려 합니까. 만약에 예수 믿고 세례 받는 것이 나에게 손해임을 아는 사람은 제대로 세례 받았고. 이익 챙기려는 사람은 세례 받을 자격도 없다했어요.

내가 이정도 손해 보면서도 세례 받아야 된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하늘에서 뭐가 내려왔습니까, 하늘에서 영이 내려와야 이 사람이 거듭나고, 거듭난 사람이 어디 갑니까? 하늘나라 보게 돼요. 이 공식을 주님께서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포기한 적이 없어요. 그리고 이 영은 바람같이 오기 때문에 영이 우리를 붙잡지 내가 영을 붙잡을 수가 없어요.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해요. 성경에 열심히 사랑하라 하니까 열심히 사랑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얼마나 오해가 …

종말의 의미를 모르는지 구약에서는 사랑하는 영이 있으면 우리가 사랑해야 되지만 신약에서는 뭐냐 하며는, 사랑이 먼저 있고 거기에 사랑하게끔 되어 있는 맞춤인간, 새로운 피조물이 새롭게 만들어져요. 신데렐라 알죠? 신데렐라가 신은 신발을 지가 구두 집에서 맞췄습니까? 그런데 왕자는 그 신발을 쥐고 신데렐라 찾아 갔잖아요.(너무 적절한 비유입니다) 근데 신데렐라 언니가 신고자 할 때 발에 들어갑니까? 안 들어가지만 포기했습니까?

억지로 집어넣었지요. 왜 집어넣습니까. 구두임자는 왕자님과 결혼하잖아요. 지금 천국에 있다 하니까 이건 마치 왕자님이 갖고 있는 구두를, 천국이 있고 본인은 천국의, 하늘나라의 왕비가 되어야 하니까 맞지도 않는 신발 억지로 맞추려고 신약성경을 다 지키려 하는 거예요. 이게 말이 됩니까. 신약성경 어떤 것은 지킨다고. 인간이 지킬 수 있습니까?

‘먹는 것 입는 것 족한 줄 알라.’ 저는 사모님(안산나라교회 사모) 그렇게 사는 줄 압니다. 그런데 한 달 수입이 6천만 원 있는데 족한 줄 알라했습니까? 그렇지는 않잖아요. 하나도 없이 먹는 걸로 족한 줄 알지, 지금 아파트 댓 개 갖고 사는데 이것 없어도 족합니다. 이런 인간이 누가 있습니까. 없지요. 없다 이 말이지요. 하필 종말 때는 종말의 특징이 있어요.

우리보고 지키라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먼저 있고 말씀에 맞추는, 합당한 신데렐라 신발이 먼저 있고 그 신발에 맞는 인간이 차후에 만들어지는데 그걸 지가 만듭니까, 영이 만듭니까. 그게 진짜 성령이라니까요. 성령은 뭐냐 하면 반드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이 안 나오면 성령 받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게 안 나오면 성령 받은 사람 아닙니다.

성령을 안 받게 되면, 다시 할게요. 성령은 언제 온다? 성령은 언제 공짜로 온다? 종말 때. 그럼 종말 이전에는 성령이 안 오고 어떻게 해요? 뭔가 열심히 해보는 거죠? 만약에 이 시대에 성령 안 받으면서도 억지로 천당 가려면 뭘 해야 됩니까. 십일조 다 지켜야죠. 택도 없죠. 성경 못 지킵니다. 그런데 종말의 특징이 뭐냐 하면, 완료된 상태거든요. 하나님이 이미 완료된 상태기 때문에 그 완료된 상태를 예수님은 지키지만 다른 사람은 못 지켰다는 것이 이미 구약에서 드러났지요?

못 지키는 말씀을 왜 주었냐 하며는, 못 지키는데 지키는 사람이 있더라,를 보여주는데 그게 뭐냐,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이제는 그 사람의 주도권이 누구한테 있냐 하면 내가 나의 주도권이 아니고 누가 주도권을 가졌냐 하면, 주의 영이 주도권을 쥐게 되어 있습니다. 주의 영이 주도권을 쥐게 되고 징계가 주어지고, 주어지면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은 목적이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는데 목적이 있어요.

종말 때가 되면 위에서부터 출발이 뭡니까. 인간이 여기 있는데 소용없어요. 유대인도 이방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위에서 뭐가 내려온다? 성령이 오죠. 성령이 오게 되면 성령이 내주하죠. 안에 들어오죠? 들어오게 되면 이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그럼 새로운 피조물과 헌 피조물이 차이가 나야 되지 않습니까. 새로운 피조물이 하루 네 끼 먹습니까? 그건 아니다 이 말이죠.

새로운 피조물은 뭐냐 하며는, 성령을 안 받게 되면 이걸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하거든요.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것을 몰라요. 간단한 거예요. 이거. 성령 받은 사람은 그 사람 안에 뭐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작용하고 있다 이 말이거든요. 이거 어려운 논리 아닙니다. 간단한 논리예요. 그러면 은혜는 항상 뭐라 합니까. 은혜는 항상 은혜롭게만 일하죠. 은혜가 임하면 ‘내 공로 아이가~’ 이런 일은 없다 이 말이죠.

‘주여 이것은 선물입니다.’ 이렇게 되지 ‘이것은 내가 알아서 했습니다,’ 이럴 수는 없다 말이죠. 은혜가 주도권을 쥐게 되면 범사에 감사함이 나오죠. 애가 좀 아프다, 공부 못한다, 그것도 무엇으로 해석합니까? 만약 거듭나지 않으면 짜증남으로 해석하지만 거듭난 사람은 그걸 뭘로 해석합니까.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해석하는 거예요. 그러니 성령이 오게 되면 새로운 피조물은 주도권이 누구냐 하면 예수님이 주인이 됩니다.

고린도전서6장19절에 나오죠,『내가 값으로 산 것에 대해서는 이제 너는 너희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내 것이 되었다』했거든요. 어떤 사람은 제가 이런 말 하니까 ‘목사님, 이제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너는 주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하면 지킬 수가 있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해요. 종말이 안 왔을 때의 이야기를 또 하고 있다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빨간색인데(예:붉은매직펜) ‘얘야, 이근호! 이거 검은색이다,’ ‘예, 검은색입니다’ 이러면 될 텐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 ‘왜’ ‘이게 빨간색인데 어떻게 검은색으로 보입니까,’ 이래 나오더라 말이죠. 이거는 은혜가 아니죠. ‘어떻게 내 몸이 주의 것입니까?’ 믿어지는 사람은 ‘주의 것 맞잖아!’ 이리되고, 안 믿어지는 사람은 따지죠. 내 것은 내꺼지 어떻게 주의 것이냐, 그래서 고린도전서6장19절 이것은 틀렸다, 그거 빼고 딴 것 믿을게.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은 믿는단 게 아니라 행한다는 뜻이에요.

‘천하 자식이나 아비나 나보다 더 사랑하면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 했거든요. 믿는 사람은 ‘그렇습니다,’ 하면 되는데 안 믿는 사람은, 이걸 언제 지켜 구원받겠나, 이렇게 나옵니다. 그건 지키는 게 아니라니까! 제가 지키는 게 아니라 하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욕을 하든지… 이근호목사는 방종주의라는 둥, 아무것도 하지 마라했다는 둥, 온갖 이야기를 다하는데 믿는 사람은요, 주께서 지키는 걸 확신하기 때문에 내가 지킬 수 없다는 걸 이야기한 거예요.

주께서 지금 지키고 있기 때문에 주께서 징계해서라도 나보다 주를 더 사랑하게 하는, 그걸 이야기인데 그 사람은 주님이 없기 때문에 지가 안 설치면 그 말씀을 지킬 양반이 없는 거예요. 이 종말이라는 특징은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는 겁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니까 또 묻기를 ‘목사님 기도하면 됐지 또 범사에 감사합니까,’또 이러는 거예요. 범사에 감사하게끔 되어 있을 겁니다.(아멘) 하루에 몇 시간 잡아요. 한 0.5초정도…

0.5초라도 내가 주님께 행함도 없이, 내가 이래사나 저래사나 관계없이 주께서 나를 구원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다. 이게 하루 0.5초가면 그 사람 거듭난 사람이에요.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갑자기 푹 꺼지는 것 같애. 돈 몇 푼 벌라고 열심히 허대면서, ‘차라리 죽자, 여보 이렇게 못 산다, 같이 죽자’ 이러다가 세상에 돈 버나 안 버나 그것 상관없이 전혀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고 말이죠. 덜렁 구원해주시니 이런 법이 어딨냐, 짧은 순간이지만 그 짧은 순간 퍼뜩 떠오르는 그 생각이 바로, 내 속에 은혜가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 말이죠.

그러면 그 전에 스물 세 시간 50분 동안 걱정 고민했던 것이 짧은 그 1분10초짜리 생각으로 인하여 그게 밑에 눌려버리죠. 그 짧은 복음적인 생각이 위를 차지하고 ‘이래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라는 생각은 밑으로 꺼져버리면 주도권이 누구냐면, 아무리 어렵고 못 살아도 주도권은 누가 쥐고 있다? 성령이 쥐고 있는 거예요. 이게 바로 종말의 성령 받은 사람, 하나님이 자기꺼라고 간증하는 사람에게 있는 특징이에요.

다시 말씀드릴게요. 우리가 성령을 받지 않으면, 성령 받지 않은 사람이 하는 일은, 적어볼게요. 중요하기 때문에. 성령 없는 사람의 특징은 자기 세력 넓히기 자기 세력이 충분하게 넓혀지면 인생 성공한 거고, 자기 세력이 쪼그라들면 인생 실패한 거고, 자살로 이어지고 자기 세력 넓혀지면 이거는 의시대고. 그런데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은 뭐냐 하며는, 이것, 세력을 넓히든 안 넓히든 -나 이제 세력 안 넓힌다,- 이럴 필요 없어요.

넓히든 안 넓히든 구원은 누구한테 있다? 구원은 주인한테 달려있지 내가 안 넓히죠. 안 넓힌다고 천당 가는 것도 아니고 넓힌다고 지옥 보내는 것이 아니고 구원은 어디까지나 성령께 달렸다는 것이 믿어지는 거예요. 믿어지는 이것이 종말 때 주어지는 진짜 영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은 진짜예수 진짜복음 진짜 영은 세 가지를 알고 하나도 모르게 되죠. 뭐냐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높이면 그것은 진짜예수고, 자기 세력화, 현재 나 이만큼 가졌다,는 것을 의시대고 자랑한다면 이것 빼놓고 내놓을 게 없으니까. ‘복 받으라 이만큼 잘됐다’ 하면 이거는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이다 말이죠. 그러면 다시 묻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른 복음을 좋아할까요? 진짜복음을 좋아할까요? 다른 복음을 좋아하죠. 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일하기 때문에 자기세력화 시키는 거, 자기 영역이 넓혀지는 거 외에는 다른 희망이 없어요.

그래서 대구 강의할 때 그랬어요. 오늘날 한국교회는 당당하다. 왜냐면 희망이 상품이고 교인들은 그 희망을 사면 이게 교회부흥이에요. 희망이 뭐겠어요. 자기영역을 넓히는 거죠.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 공부 잘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남편 사업 잘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교회 부흥될 수 있습니까. 희망, 자기영역을 넓히는 희망을…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것만 설교하고 오늘 교인들은 그 희망을 안고 희망 따라서 뿌듯하게 기분 좋다고 헌금내고, 그래서 유지되는 것이 오늘날 교회입니다.

그러니 고린도후서 11장, 여기에 앞으로 나옵니다만, 그러면 사도가 뭘 전했는가, 미리 얘기할게요. 『고후11:24~27 24,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26,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

이렇게 이야기할 때 교인들이 ‘나도 그리해봤으면...’매달리게 안 매달리게? ‘좀 가주소! 우리 교회 당신 같은 당회장 필요 없습니다,’ ‘당신은 위대한데 우리는 당신을 따라갈 여력이 없습니다, 부담돼서 교회생활 못합니다,’ 잘됐다, 훌륭하다, 성장했다, 커졌다, 뛰어나다, 위대하다,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을 우수수 쏟아 내 줘야 돈 주고 그걸 살 수 있는 희망을 사니까.

뭘 원하십니까. 출세하길 원하십니까. 건강하길 원하십니까. 헌금하고 기도하면 다 됩니다. 점치듯이 이런 게 있어야 교회 오는 보람을 느끼겠는데 이래버리면 그 사람 교회 안 나온다 말이죠. 그러면 묻습니다. 사도가 이 이야기를 왜 했을까요? 왜 사도가 사람들이 원치 않은 이 이야기를 왜 했을까요. 내가 자랑할 것은 고난 받은 거밖에 자랑하지 못한다, 라는 이야기를 왜 했느냐 이 말이죠.

그것은 바로 칸막이입니다. 칸막이. 하나님의 능력의 칸막이가 지상에 와도 없어지지 않는데 구원받지 못한, 지옥 갈사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자기를 중심으로 모든 활동이 누구한테 귀속돼야 되요. 결국은, 아무리 일을 벌여도 누구 좋아라고. 나! ‘나’가 살아있어요. 성령 받지 못한 사람들은 ‘나’가 살아있기 때문에 교회 다니고 목사 되도 항상 어디로 가야돼요. 내가 잘되고 내가 훌륭하게 되어야 해요.

사도바울처럼 그리 나오면 안 됩니다. 그런데 칸막이 바깥의 구원받은 사람, 성령의 세계에서는 자기가 부서지고 깨지고 망하고 매 맞고 하는 이것은 결국 뭡니까. 관심은 내가 아니고 누구? 고생한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라 이미 구원받았기에! 주님의 은혜 받았기에! 이런 고생도 내 구원을 취소할 수 있다? 없다? 이런 고생도 주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아니한다. 주님을 증거 하기 위해서 이 고생을 한 거예요.

그게 고린도후서12장8절9절 나옵니다. ‘내가 약한대서 강한’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내 약한대서 주님의 은혜가 크게 드러난다. 나처럼 돼야 칸막이 안에 있는, 같은 성령 받은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우리 안에 뭐가 있다? 은혜가 있다. 은혜라는 것은 자기가 살아 있는 것 같으면 지 좋아하는 은혜지만 나중에 칸막이 안에, 천국에 갈 사람의 은혜라는 것은 나 좋아라고 하는 은혜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더욱더 깊이 알고 주님의 공로를 더욱더 크게 드러내기 위한 은혜였다.

지난 주일날 설교했지요? 세상 요새 어느 교회 어느 교인이 교회 문을 발칵 열면서, ‘주여! 쓴 잔을 마시기위해서 왔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세상에. 그렇잖습니까? 교회문 열고 ‘주여, 왔습니다, 복 주세요,’ 이렇게 엎어진 사람은 ‘주여, 저에게 쓴 잔을 마시게 하옵소서,’ 이렇게 외치면서 문 여는 사람이 누가 있냐고요. 그만큼 교회가 사기집단이에요.

오늘도 교회 왔습니다. 복 안 주기만 해봐라, 하고 오잖아요. 그런데 그 교회 목사님이 복음을 전한다, 그럼 뭘 느끼냐, 내가 또 다시 칸막이 저 쪽,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생활했는데 오늘 이렇게 복음을 주셔서 칸막이 이쪽, 주님의 사랑 안에서 환난이나 곤궁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어떤 것도 주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은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나에게 그런 사태가 벌어졌구나,

생각해보세요. 내 몸이 내 것이 아닌데 내 옷이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게 대수냐 이 말이죠, 내 몸이 내 것이 아닌데… 내 몸이 내 몸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모든 수고와 무거운 짐을 내려 놔라 이 말 아닙니까. 내려 놓으라 그 말이거든요.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11장에서 기존의 목사들이나 기존의 당회장 설교자들을 마귀자식이라 할 때 다 근거와 이유가 있어요.

그 근거 이유가 고린도후서 11장후반과 12장에 나오는 것을 엮어서 교인들에게 설교를 해주어야 합니다. 목사가 설교하게 되면 교인들이 자기 점검하기 보다는 방금 설교한 걸 가지고 누굴 점검하겠어요. 설교자인 그 목사한테 증거를 들이댈 것 아닙니까. ‘가만있어보자…우리 목사님은…’ 목사의 탐욕과 욕심이 들통 나잖아요. 그런데 어느 바보 같은 목사가 그걸 열심히 설명하겠습니까. 잘라버리고 뭐만 하냐면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이 있는데 여러분은 다행스럽습니다. 여러분 복 받은 거예요.’(ㅋㅋ-사기꾼들-녹취자)

‘잘 오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바른 예수 바른 교회인데 옆의 교회는 이단입니다,’ 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이죠. 그러면 교인들은, 어째서? 왜? 뭐땀시? 어떤 면에서 그러냐고 묻기는 그거하고, 일단 희망…희망을 돈 주고 사기 때문에 ‘다행입니다. 저쪽 교회 가려다가 기도하는데 이쪽 교회오라해서 왔는데, 참 잘 왔네,’라고 스스로 자화자찬 자기 체면 걸어서 다행스레 여기고 감사헌금내고 한다 이 말이죠.

절차를 봐야 되는데 보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러면 옆의 교회도 마찬가지라, ‘여러분 참 다행스럽습니다. 옆에 갔으면 클날 뻔했습니다.’ 강씨네 이씨네 가게 차려놓고 서로 싸우듯이 둘 다 자기들이 진짜예수라! 진짜복음 진짜 영이라. 자, 그럼 이야기를 더 해봅시다. 이럴경우에 지금 여기 사도와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전하는 거다, 했을 때 부정적 사고 아닙니까? 잘 못된 짓 하니까. 이 부정적 사고의 설교가 그 당시 고린도교회에 도움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교회 외형 키우는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되죠. 자칫하면 이 말 곧이듣고 작아질 수도 있고 깨질 수도 있잖아요. 교회란 이 조직이 깨어져버리면 이 세상에는 세력을 넓히는 것이 목적인데 백 명 모이는데 오십 명 모이면 목회 실패하는 게 되잖아요. 그러니깐 다른 예수 다른 복음 전하는 목사들이 강력하게 누굴 반대하겠어요. 사도바울을 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 본문 상황입니다.

오늘 한국교회와 전혀 다를 바 없어요. 그래서 대구 강의할 때 한국교회 당회장 목사한테 두 가지 위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뭐냐, 자기보다 똑똑한 부교역자 들어올 때 위기 느끼고 진짜 복음만을 사랑하는 교인 들어올 때 아~이거 위기입니다. 왜냐면 아무리 목사 설교해도 집사는 속으로 뭐라 합니까, ‘목사, 니는 그래 사나?’ 할 게 뻔하기 때문에 ‘너나 잘 하세요~’

바른 예수를 믿기 때문에 목사를 믿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 앞에서는 모든 게 죄인 것을 믿기 때문에 그 중에 목사도 포함되지요. 예수를 믿기 때문에 목사가 잘난 척 하는 것은 먹혀들지를 않지요. 그런 집사 오면요 종용히 불러다 나가라고 합니다. ‘조용히’가 아니라 ‘종용히’ 왜 그러냐 하며는, 어떤 인간도 자기 세력 넓히는데 혈안이 되어 있어요. 자기 세력 넓히는데. 세력 넓히기 위해서 가난한 교인들은 천대하고 부한 자들은 환영하죠. 이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야고보서에 나옵니다.

가난한 자가 오니까, ‘저 뒤에 …부자가 오니까, 어서 오십시오, 여기 앉으세요 여기.’이렇게 한다고 야고보서에 나오죠. 그게 왜 그러냐 하며는 내 교회이기 때문에, 내 교회고 내 것이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리고 내 인생은 누구 것이다? ‘내 인생은 나의 것~!’ (최진희의 내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노래 반소절 하심)노래 있잖아요. 고린도전서1장에 보면 그게 아니죠. 내 인생은 누구의 것? 주님의 것. 주님의 것이라고 고생하란 말이 아닙니다. 잘 되든 못 되든 그 평가는 누가 한다? ‘내가 내릴 게 내가,’

네가 그걸 은혜라 여기면 그건 잘 살아도 은혜고 가난해도 내 인생이라 여기면 이건 인생 망한 거다 그겁니다. 진도 나가봅시다. 이렇게 해놓고 고린도후서11장 12장 어떻게 된 지 아시겠지요? 여기 11장4절에 봅시다.『…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 너희들이』그다음에 ‘너희들이’ 자린데 만약에 이걸 옮긴다면 비꼬아야 되니까 ‘잘 용납하는구나, 이 철없는 인간들아’ 그렇게 되어 있죠? ‘너희들이 다른 복음을 잘 용납하는구나,’

잘 용납했어요. 왜, 신앙이니까.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은 내가 성공할 수 있는 희망을 제공하기 때문에 술술 용납되는 거예요. 그래서 6절에 뭐라 합니까?『내가 지극히 큰 사도보다도 부족함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내가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뒤에 보면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9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것이 잘못 됐느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것이 잘못 됐느냐 이 말이지요.

그 당시 고린도교회 당회장이나 목사들 설교자들은 뭡니까, 사도바울이 오는 거하고 정 반대로 나갔지요? 월급을 많이 받아야 권위, 영빨이 산다 이거예요. 월급을 많이 받아야. 적게 받으면 사람들이 무시해서 박사 학위는 서너 개 걸쳐야 되고 뭔가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을 충족해줄 때 자기는 종이라고 자부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도는 뭡니까, 정 반대로 간 겁니다. 왜 낮아지고 모자라고 이렇게 나갑니까? 누구를 증거 하기 위해서?

나같은 모자란 인간도 구원했으니까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랍냐 이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그것 가지고 구원 못 받는데, 나 같은 모자란 인간도 구원해주니 주님의 큰 구원을 어떻게 값을 주겠느냐. 값을 주고 못 사기 때문에 값으로 칠 수가 없다 이 말이지요. 11절에 봅시다.『고후11:11 어떠한 연고뇨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

13절에『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 좀 설명해야 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지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종이 있고 -두 종류가 있지요?-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참된 그리스도의 종은 누가 만듭니까. 예수님이 종을 만든 거고, 주장하는 사람은 본인이 된 거예요. 본인이.

본인이 종 됐지요. 그리스도의 종은 예수님에 의해 종이 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사나 죽으나 누구밖에 몰라요? 자기를 종 되게 한 예수님밖에 모르지만 이 사람은 항상 사는 동안 누구만 자랑해요. 진짜 그리스도 종은 그리스도만 자랑하고 ‘나는 그리스도 종인데 누가 나를 무시하나,’ 성령 받은 사람은 대번에 알아요. ‘아, 사기구나~’ 일반인들은 ‘저 위대하신 그리스도 종을 눈으로 볼 수 있다니...’ 감격해요, 감격해.

‘저 사람은 그리스도만 너무 좋아해 싫더라,’ 이러고. 그래서 갈라디아서 1장에서 뭐라 했습니까, 내가 사람을 좋게 하면 뭐가 아니라? 내가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사람을 좋게 하면 누구다? 백퍼센트. 이건 사기꾼이다, 말이죠. 그리스도가 그리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종도 그리스도와 닮게 돼 있어요.

그리스도가 십자가 지고 죽기까지 복종했답니다. 그리스도는 희생을 하며 살았어요. 이땅에서 대우 받으려고 사는 게 아니고.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을 포기해버리고 사람보다 더 낮은 자리, 오히려 사람한테 미움 받고 배척받는 사람의 거름이 되는, 대속물이 디는, 그 자리로 갔다 이 말이지요. 그리스도의 종도 그 길로 갈 거고 가짜들은 그리스도를 빙자해서, 그리스도를 이용해서 사람위에 군림하려 하겠지요.

너무나 명명백백한 성경인데. 방금 이런 이야기를 일반교회 헌신예배 때 했다, ‘오늘 설교 좋았습니다.’ 뭐, 어떻다, 간식 먹고 봉사하려고 집에 갔다. 다 끝난 뒤에 뭐라 하는 줄 아아요? 설교가 너무 부정적이라고 합니다. 진리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원한 게 아니에요. 왜냐! 이 교회가 주님의 교회가 아니라 전 재신 바친 ‘나의 것’

이 교회는 주님의 교회가 아니고 나의 것이기 때문에 나의 것이기 때문에 반토막내고 나의 커가는 것을 방해하는 자는 그게 진리가 됐든 예수가 됐든 예수 종이 됐든 하나님이 됐든 인간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어느넘이 내 것을 건드려!’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요. 그래서 밀려서 죽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예수님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피해자고 가해자는 누굽니까. 우리 모두가 가해자입니다.

이 사실을 가해자로 살고 싶어서, 살아야하기 때문에, 내 인생을 내가 살아야하기 때문에 밀칠 수밖에 없고 넘어질 수밖에 없는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 성도고, 내가 이렇게 성실하게 사는데 뭐가 잘못 됐냐고 십자가에서 자기 죄를 모른 사람은 신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여 저 참 순수하지요? 성실하지요? 이렇게 순수하고 성실한 것을 하나님이 이해해 주세요.

내가 나쁜 놈이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끝으로 한 가지만 더 해봅시다.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께서 모든 애굽에 사는 사람들은 다 죽였지요?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애가 없습니다. 애굽 사람들도 맏아들은 다 죽였지요. 지금은 아파트 8시나 9시 되면 뭐 할 때에요? ‘너는 내 운명’인가 연속극할 때지요? 아파트마다 항상 단란한 시간입니다. 웃음이 함박꽃이 피었어요. 그때 집 없고 절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 ‘저 15층 아파트는 매일 같이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얼마나 행복하노,’

다복하기 그지없지요. ‘엄마, 나 오늘도 백점 맞았어,’ ‘에구~ 내 새끼 잘했다,’ 웃음꽃이 만발한 거예요. 그 행복이 우리 사는 목적이 되는 그 행복. 소박한. 욕심도 없어. 아주 소박한. 한 달 수입 1500만 원쯤 되고 (ㅋㅋ), 아주 소박한. 연봉 1억 이상 되고 아주 소박한. 자가용 두 대는 기본인 아주 소박한. 그 소박한 꿈이 세상사람 목적인데 그건 애굽시대에도 마찬가지였어요.

그 때 하나님께서 난데없이 그 귀한 자식, 젤 중요한 맡아들 다 죽여 버렸죠. 한 사람도 없이 다 죽였잖아요. 할 때, 전국이 애통하고 애곡하지요. 그럴 때 애곡이나 애통의 틈새에 누가 나타나느냐. 그동안 한껏, ‘너는 내 운명’연속극 보면서 재밌어하는 그 웃음. 웃음꽃이 만발한 단란한 가정. 거기에 하나님의 죽음의 천사가 방문해서 아들을 죽여 버리면 그 웃음꽃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온 아파트 천지가 뭐가 되겠습니까. 통곡의 바다, 울음바다가 되겠지요.

뭐라고 울겠습니까. ‘신이시여! 건강한 애를 왜 갑자기 데려가시나이까, 왜 죽이십니까,’ 하죠? 예? 그럴 것 아니냐 말이죠. 왜 웃음의 보따리인데 그걸 죽여버렸으니까. 그럴 때 바로 아브라함이 누굴 바치고? 이삭을 바치고 야곱이 요셉을 잃어버리고. 바로 이런 가장 큰 사건을…어떤 독자입니까. 미운 독잡니까? 가장 사랑하는 독자를 잃어버릴 때, 그때 어떤 인간도 하나님 앞에 원망 않을 인간 없고. 울면서 원망하고 울면서 대적할 겁니다.

그 대적에 따라서 누가 죽느냐, 하나님의 자기 아들 죽였어요. 그래서 어떻게 신자가 되냐 하며는, 내 아들 죽였다고 대들다가 그 대듬에 의해서 누굴 죽이냐 하면, 하나님 아들 밀쳐서 죽일 때, 하나님 아들 죽였다는 애통함으로 바뀔 때 그 바뀐 상황이 바로 신자입니다. 그게 바로 신자입니다. 너무 길었나? 다시 할까요?

하나님이 내 아들 빼앗았으니까 나의 모든 웃음과 행복 다 빼앗겼지요. 화나지요. 화난다고 하나님께 대드니깐 그 대듬의 여파가 뭐냐 하며는, 하나님께 뺨때리고 하나님이 내 인생 망쳐 놨다고 밀칠 때, 밀쳐 넘어졌을 때, 그때 돌아서서 -성령 받아야 가능하지만- 내가 내 아들 귀한 줄 알아다 결국 누굴 죽였다? 하나님을 원망한 죄인이 바로 접니다. 라고 할 때 그게 진정한 하나님께 대한 애통이다 말이죠. 그 자가 바로 신자예요.

이 방식 외에는 어떤 방식도 구원하는 공식은 없습니다. 이제부터 아파트 웃음소리가 나거든요, 저 자기아들 뺏어 가면 웃음소리가 원망의 소리로 바뀔 거예요. 아브라함의 언약이 그거예요. 아브라함의 언약이 그거예요. 이삭을 바쳐야 아브라함 언약이, 이삭 안 바치고 하나님 사랑합니다. 이거는 아브라함 언약 아니에요.

가장 중요한 것, 내 웃음과 행복의 원천을 살짝 뺏어감으로 말미암아 갑자기 나도 모르는 내 속의 분노가 팍! 치밀어 오르면서, ‘어디 하나님이라고 내 것을 건드려!’ ‘하나님 너 죽었다!’ 하고 달려들어서 예수를 모독하고 미워할 때, 돌연, 성령이 와가지고 최초로 내가 진정 누구냐를 십자가 앞에서 처벌하는 거예요.

내가 평소에 얼마나 하나님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저주하는지를. 그들은 교회 다니고 봉사한다고 아닌 줄 알았지. 막상 내 귀한 것을, 정말 귀한 것, 빼앗기고 난 뒤에는 모든 저주와 마귀적인 본능이 다 튀어나와서 하나님을 미워할 때. 그 미워하는 모습이 나의 진면목이었습니다. 그때 뭐라 합니까. ‘바로 너 같은 죄인을 위해서 내가 용서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피 흘렸다,’ ‘이 피가 너의 생명이라.’ 할 때 그 사람은 뭘 느낍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나 같은 죄인의 괴수도 구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더 깊이 알아보니까 창세전에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구원한다는 그 맞춤. 그 말씀에 맞추기 위해서 이 땅에 몇 년도에 태어나서 새로운 피조물로 주께서 달라지게 해서 모든 것이 주의 은혜인 것을 이제는 증거 하는 사람으로 살도록 하시려는, 그것이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의 영역이 얼마나 커졌느냐 넓혀졌느냐 이익을 봤느냐,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살다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싫어하고 예수님을 미워하고 등 돌리려고 하루에 수십 번 더 마음에 다짐에 다짐을 했던 저희들, 그런데 창세전부터 예정하사 십자가 피 흘려서 나 같은 죄인도 구원해주신 이제부터 이 사랑만 감사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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