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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31-남성과여성,공관복음서2(강의정리)자유게시판로마서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31-남성과여성,공관복음서2(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27)

05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31 - 남성과 여성, 공관복음서2

05,04,02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하나님도 좀 봐주면 안 되나 ??

아마 질문내용을 녹음이 안 되었지 싶은데, 방금 집사님이 한 질문을 요약하면, 아들이 아버지가 세차하는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데, 그만 어리고 미숙하니 실수로 윈도우 브러쉬를 망가뜨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가 아버지의 차를 흠집 내려고, 그런 나쁜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 아직 철이 없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했기 때문에, 아버지도 아이를 벌을 주려고 하다가 그만 타이르고 용서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경우에도 인간이 신이 아니니 실수도 하고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니, 얼마든지 용서해줄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해서 저지르지 않도록 교육을 시켜주고 타일러주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도 그러한데, 하물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더욱 더 그렇게 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집사님의 질문이 아니고, 그쪽에서 그렇게 질문을 한다는 것인데, 그렇지요?

◈ 하지만, 과연 그 기준은 어디서?

물론 그러한 주장이 일리가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제가 주장하는 것은, 그렇게 나름대로 잘해보려고 하는 것이 선인데,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악이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기준을 누가 정했느냐는 것이다. 그것을 인간 본인이 정했는데, 그렇게 본인이 정해놓고는 본인이 "잘하려고 하는데, 왜 그렇게 합니까?" 라고 한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들이 자기들이 살아가는 그 삶의 영역 속에서, 그러한 가운데 자기가 풍물로, 또는 교육을 받은 것에서 여러 가지 기준들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러한 인간들 속에는 그만 타인의 욕망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욕망은 라캉의 표현이다?)

◈ 성경은 우리 인간의 삶의 현장, 그 자체를 공격 !!

그러나 성경은 어느 특정 개인을 두고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일방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는 이러한 장(場)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그 전체를 공격함으로 말미암아서, 이것 말고 전혀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경말씀인데, 그러니 이 성경은 어느 한 사람을 붙잡고서 멱살을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즉 "지금 니가 살아온 터전을 뒤돌아 봐라. 그 터전이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가? 아닌가?" 라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고 생각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아무튼 인간은 모든 것이 자기 선에서 마무리되기를 원하는데, 그러나 성경은 더욱 더 깊이 들어가서 그 배후까지 살펴보게 하는데,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는 그 기준조차도 문제투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다시 한번 촉구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것이다.

◈ 사건을 통해서 구원의 의미가 !!

이것을 좀 어려운 말로 표현하자면, "사건을 통해서 구원의 의미가 나온다" 라고 하는데, 물론 사건은 만남 자체가 사건이니 수많은 사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건들을 통해서 새로운 의미가 나오도록, 즉 자기 반성(?)을 촉구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인간의 자기 배후를 생각하지 않으면 자기 정당화가 되고 마는데, 그래서 로마서에서 말씀하는 대로 하나님의 의는 생각하지 않고, 매일같이 "저도 이만하면 잘했지요?" 라고, 자기 의만 자랑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 속에 자기 의가 있으면 불안해지는데, 왜냐하면 그것을 지켜내야 하니 말이다.

예를 들어서, 자기가 반에서 이번 시험에서 일등을 했다면, 그 다음 시험 때문에 자기는 그만 초조해지고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또 다시 일등을 해야 한다는 요구사항이 주위로부터 주어지게 되기 때문에 말이다. 물론 꼴찌인 학생은, 아무리 불안하고 초조해도 그래도 일등을 단 한번이라도 해보는 것이 소원이겠지만 말이다.

만약에 어느 야구선수가 이번 시즌에서 타율을 3할을 쳤다고 하면, 그 다음에는 당연히 3할 이상을 쳐야한다고 주위에서 그렇게 말들을 하니, 정작 본인은 얼마나 답답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슬럼프가 오고 말이다. 축구도 이렇게 4강에 들어놓으면, 다음 월드컵 감독이나 선수들은 엄청 힘들다는 것이다. 최소한 8강은 들어야 하니 말이다.

◈ 고맙게도, 처음부터 새로 다시 !!

그래서 주님이 참 고마운(?) 말씀을 하셨는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해주겠다" 라고 말이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고 하니, 기준 자체를 아예 처음부터 제로로, 즉 없는 것으로 쳐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항상 처음부터 새로 다시 시작하자는 말이다. 즉 "아니, 너에게 그런 착한 면이 있다니?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구나" 라고 말이다. "너는 당연히 착해야 돼" 라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새롭게 무(無)에서 다시 출발하자는 것이다. 새롭게 말이다.

지금 교황이 까닥 까닥 죽어가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교황이 부러울지도 모르겠는데, 자기가 죽는다고 전 세계에서 중계방송을 하고 난리를 피우니 말이다. 하지만 교황 자신은 참으로 피곤한데, 그냥 조용히 죽도록 내버려두면 되는데, 그렇게 마구 떠들어대니 죽고 싶어도 시끄러워서 죽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너무 '붕' 하고 뛰어주는 것도 좋지 않은데, 그냥 조용히 어느 강원도의 할머니처럼 주님의 품에 앉기는 것이 최고이지 말이다.

◈ 진주야, 이 엄마의 못다 한 꿈을 !!

인간들이 떠드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만든 환상 때문에 그러한데, 즉 자기가 미처 이루지 못한 욕망을 대신해서 이루어달라고, 그렇게 해서 떠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정작 본인은 참으로 힘든 노릇인데, 사실 집에 있는 아이들도 다 그런 부모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렇게 불철주야로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 교재 '뒤에서 본 한국교회'를 살펴보겠는데, 지난 시간에 공관복음서를 했는데, 그 내용을 잠시 정리하면,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 이야기하는 것이, 그 어떤 인간도 이 성경말씀의 단 하나의 구절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키라고 하는 목사들이 있다면, 물론 사기꾼으로 보면 되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 인간들은 전혀 지키지 못하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왜 이렇게 지키지 못하는 말씀을 주셨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어떤 점에서 그렇게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못난 놈인지를 깨우치라고 주셨다는 것이다. 즉 "니 자신을 알렸다" 라는 말이다.

이것은 마치 초등학생에게 수학의 미분적분 시험을 치는 것과도 똑 같은데, 그러니 아이들은 사실상 그 질문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것조차도 몰라서 헤매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너는 초등학생이지, 적어도 대학생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 '나'도 하나님이 되고 싶어 !!

그렇다면 하나님은 자기만 지킬 수 있는 이 무시무시한 법을 왜 우리 인간들에게 주었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아, 너는 결코 하나님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제 말이 맞지요? 그런데 구약을 보면 인간이 무엇이 되고 싶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는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그만 선악과를 따먹고 쫓겨났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경말씀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기본정신은 무엇인고 하니까, 신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나도 신이다" 라는 것인데, 물론 신이 아닌데 선악과를 먹었기에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나님만 신이 아니라 자기도 신이라는 것이다.

◈ 샤르트르 - 자유가 인간을 더 무겁게 한다 !!

이것을 좀 더 풀이하자면, "나를 건드리지 말라" 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가 말한 '자유' 인데, 즉 "인간에게는 자유가 있음으로서, 그 자유가 인간을 더 무겁게 한다" 라고 주장했다는 말이다. 좀 어려운가요?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그 이전까지 인유를 찾아서 목숨을 걸었는데, 그래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라고 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샤르트르는 인간의 실존을 연구하면서 밝혀낸 것이, 인간에게 자유가 있다는 것은, 즉 그렇게 인간이 뭔가를 선택해야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는 무거운 짐이더라는 것이다.

◈ 김 이장, 지금부터 6개월 내에 새 프로젝트를 !!

촌사람들에게 그런 경향들이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즉 남들이 자기에게 뭔가를 시키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하라고 하면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회사의 기획팀장을 시켜서, "김 이장, 지금부터 새로운 프로젝트를 짜보세요. 그래서 6개월 내에 실적을 보고하세요" 라고 하면, 그만 멀뚱멀뚱해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시켜만 주세요. 잘 할게요" 라는 식인데 말이다.

하지만 회사가 요구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지금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이 연초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연구해서 실적을 가지고 와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회사의 수익을 위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수익이 나는 일을 한번 제대로 잘 해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회사도 돈을 벌어야 하니 말이다. 즉 '돈 놓고 돈 먹기' 라는 것이다. 월급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수익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월급을 나누어주던지 말던지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멀뚱멀뚱한(?) 시골사람을 팀장을 시킬 수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비해서 신입사원들은 시키는 데로만 하면 되는데, 은행에서 창구에 있는 신입 여직원에게 "미스 김, 프로젝트를 하나 짜오세요" 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 입출금이 모두 마감이 되고 정리가 되었으면 어서 퇴근해" 라고 하지 말이다.

◈ 그런데 문제는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

아무튼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게 되면 그 자유가 부담이 되는데, 그래서 시키는 데로 하려고 하는데,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그렇게 해놓고는 탓은 전부가 남의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인데, 누군가가 자기에게 시키는 것을 원하면서도, 하지만 책임은 피하려고 하고 말이다.

에리히 프롬은 그것을 성적(性的)으로 표현해서 '매조키스트' 라고 하는데, 즉 얻어맞는데 쾌감을 느끼는 것이 인간인데, 또 그와는 반대로 때리면서 쾌감을 얻는 '새디스트'도 있고 말이다. 구스타브 융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나누면 안 되고, 남성형과 여성형으로 나누어야 제대로 본다는 것이다.

◈ 현대의학은, 남성은 여성에게서 !!

현대에 들어와서 여자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남자들이 놀란 것이 있는데, 여자들은 당연히 '여자' 라는 범주를 만들어놓고, 즉 "여자는 그럴 것이다" 라고 여겼는데, 그런데 남자보다 더 센 여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라고, 또한 남자들 중에서 여자보다 더 약한 남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놀랐다는 것이다.

현대과학에서 주장하기를, 남성 호르몬을 '안드로겐' 이라고 하고, 여성 호르몬을 '에스트로겐' 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원래는 여성인데, 난자에 정자가 결합을 하면서, 그때부터 남성으로 분리가 된다는 것이다. 즉 처음에는 여성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고학 계에서도 최초의 인간은 여성으로 보는데, 즉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라고 해서 키가 150정도가 되는 여자가 최초의 인류라는 말이다. 이것을 유명한 고고학자 '니케(?)' 라는 사람이 발견을 했는데, 그렇게 여성부터 시작해서, 거기에서 분화가 되어서 남성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인간의 세포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를 조사해보면, 그 안에 있는 DNA는 핵 속에 있는 DNA와 달라서 그 계열이 모친의 것으로, 그렇게 계통을 밟아나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미토콘드리아 안에 있는 DNA는 복제가 되니, 그것을 조사해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 그런데, 성경은 남자에게서 여자가 !!

그런데 성경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남자가 먼저 태어나고 그 다음에 여자가 남자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과학이 발달하기 이전까지는 그 성경말씀이 맞다고 믿었는데, 그런데 현대과학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여자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남자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 그런 남성과 여성의 호르몬이 모두 다 끊어지고 나면 남자나 여자가 서로 얼굴 모양이 비슷해지는데, 그러니 결국은 이 뇌하수체에서 만들어지는 호르몬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 호르몬을 바꾸면 남자도 여자가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리수의 경우에도, 그렇게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으니 피부가 탱탱해지고 여자의 성징들이 뚜렷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의 누드사진을 보면 남자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ㅋㅋ). 분명히 염색체는 여성의 'YY'가 아닌, 남성의 'XY'를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우리는 교과서에 나오는 그런 인류고고학의 주장들을 인정해야 합니까?

물론 받아들일 수가 없는데,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 북경원인 등등, 그렇게 해서 200만년 전부터 나오다가 인간 비슷하게 생긴 것이 50만년 전부터 네안데르탈인으로 해서 나오고, 그리고 5만년 전부터는 크로마뇽인이라고 해서 비로소 인간으로 봐준다는 것이다. 즉 인간으로 보는 것이 크로마뇽인의 5만년 이전부터라는 말이다.

◈ 잠시 고고학 특강을 !!

5만년 이전에 있던 것들을 '원인류' 라고 해서, 인간과 본질이 비슷한 동물들이고 말이다. 그것을 인간으로 보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분 부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불을 사용한다든지, 매장을 한다든지, 또한 도구를 사용한다든지 말이다. 이것을 다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중에서 어느 한가지만 사용하더라는 것이다.

이론 유인원(類人猿)은, 말 그대로 인간과 비슷하다는 것인데, 고고학에서는 이들은 인간으로는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크로마뇽인의 5만년 그 이후부터 인간이고 말이다. 인간 그 이전에 있던 어떤 괴물들인데, 그들은 인간의 특징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유물을 통해서 흔적이 발견되는데, 그들의 유적지 옆에 곡식을 태운 흔적이 있다든지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200만년 전 쥬라기 시대에 공룡이 있었는데, 이러한 공룡의 화석이 5만년 그 이후의 크로마뇽인의 화석이 같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도저히 자기들의 주장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이 발견되면 안 되는데 말이다.

◈ 노아홍수 사건으로 와장창 !!

그러니 제가 보기에는, 그것이 아니라 창세기의 노아홍수 때 이러한 인간과 유사한 괴물들이 공룡과 함께 다 쓸어 담겨서 화석이 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게 노아홍수 때 모두가 땅 속에 파묻혔다고는 하는 것이 오히려 맞는 주장이 아니냐는 것이다.

제가 쓴 '과학의 정체' 라는 책에 보면, 보통 과학자들이 우주의 역사를 200억 년으로, 그리고 지구의 역사를 50억 년으로 보았는데, 또 인간은 200만년 정도로 보고 말이다. 하지만 그 책에 보면, 우주의 기원을 오랜 기간으로 잡는데 대해서, 그 근거가 희박하다고 거기에 대한 반박을 무려 32가지나 실어놓았다는 것이다. 즉 그 책의 주장이, 지구역사가 의외로 그렇게 긴 기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인간들은 왜 그렇게 긴 기간으로 만들어 놓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거짓을 말입니다.

과학이 무엇인고 하니, 현재에 통하는 법칙을, 그 기본이 물리적 법칙인데, 그것이 이러한 역사 속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워놓고 시작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가설(假設)' 이라는 것은 진짜와 가짜를 모두 포함하는 것인데, 달리 다른 것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으니, 달리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거짓이라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 탄소동위원소법칙은 오류가 없나요?

그런데 그 현재의 법칙이 무엇인고 하니, '탄소동위원소법칙' 이라고 해서, '탄소(C)' 라는 물질의 반감기를 사용해서, 그것이 우주 속에 남아있는 것과 지금의 것이 차이가 나면 그 반감기를 가지고 적용시키는 것인데, 물론 현재는 그 이론이 맞다는 것이다.

그것을 고고학의 유물에도 적용시켜서, 그 유물 속에 있는 탄소의 반감기를 계산해서, "아하, 탄소가 이 정도가 남아있으니 몇 년이다" 라고 해서, 그렇게 유물의 연대를 추적해서 측정을 한다는 말이다. 요즘은 이 탄소 말고도 다른 것을 가지고도 하는데, 니켈도 있고, 아무튼 10여가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가설이 1000년 정도는 정확하게 맞는데, 그런데 그보다 더 오랜 된 것은 맞을 확률이 엄청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아는고 하니, 1000년보다도 더 오래된 1500년 정도의 것이라고 해도 그 정도는 다른 고고학적 증거물로 연대를 알 수 있는데, 역사책을 통해서든지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것이 '탄소동위원소법칙'과는 맞지를 않더라는 것이다. 그 기간이 1000년 정도 아래의 것은 역사적인 문헌이라든지 다른 증거와 맞추어보면 제대로 모두들 맞아떨어지는데, 그런데 그 1000년 이상의 것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기간의 오차가 계속해서 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그것이 맞지 않는 줄 알면서도 다른 대안이 없으니, 그냥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이 그 방법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없는 타임머신을 타고 갈 수도 없고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그냥 모른다고 넘어가면 되지 않나요?

과학자들이 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이 자기들의 밥벌이가 되니, 자기들의 입장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의 행동에는 반드시 그 밑에 돈이 있는데, 물론 겉으로는 진리가 어떻고 하지만 말이다.

* 질문 - 그렇다면 그 기간이 몇 억년이 되면 오류가 엄청날 텐데, 그래도 그런 주장을 하나요? 무슨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게 장난치는 여분의 자리가 많아야지 연구비를 타낼 수 있는 핑계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연구를 수행하는 전문인력을 양성하려면 십 수년이 걸리는데, 심지어 실험실의 비커 하나라도 흔들려고 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전문가가 아니라 거짓말 집단소가 아닙니까?

그런 것은 아니고, 하나씩 하나씩 차곡차곡 쌓여 가는데, 이것이 맞으면 그 다음 단계로, 또 그 다음 단계로 말이다. 그리고 '가설' 이라는 것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는 그것이 맞는데, 그런데 과거에는 아무도 그렇게 가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이순신 장군의 팬티가 무슨 색깔인지, 그것을 연구해서 얼마든지 연구비를 타낼 수 있는데, 그렇게 해서 "예, 빨강색입니다" 라고 결론을 내고는 자기는 그 돈으로 놀러가 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연구해서 "아닙니다. 노랑색입니다" 라고 해서 또 연구비를 타내면 되고 말이다. 그렇게 모든 분야는 없는데서 새로운 창조를 해야 돈이 된다는 것이다.

◈ '나'를 건드리지 말라 !!

지금까지는 상식적으로 아시라고 말한 것이고, 아무튼 창세기를 보면 남자인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낙원에서 쫓겨났는데, 그 추방된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신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신만이 신이 되는 것을 거부했는데, 즉 자기도 신이 한번 되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인데, 여기서 건드린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심판을 의미하는데, 즉 "나를 심판하지 말라" 라는 것이다.

◈ 프로이트는 말하기를 !!

그런데 어린아이들은 그것이 아니라,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성장과정에 보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어린아이들 속에는 '이드' 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 '에고' 라는 것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잠재되어 있던 초자아가 점점 크면서 '에고'에 합류가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드' 라는 것은, 그야말로 동물적인 욕구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것을 '리비도' 라고 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자기 종족의 번식을 위한 성욕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인간의 DNA 자체에도 욕망이 있고 말이다.

우리는 보통 인간이 DNA를 소유하고 있다고 보는데, 그런데 챨스 도킨스에 의하면 DNA가 만들어낸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DNA가 오히려 인간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DNA의 본능이 바로 복제인데, 일종의 암세포라고 보면 되는데, 그것은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까지도 불치병으로 여기는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 암세포는 그야말로 왕성한 창조력과 번식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인간의 세포는 과거에 암세포였다 ??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인간의 세포는 과거에는 암세포였다고 주장을 했는데, 그런데 길들여진 암세포는 그만 온순한 세포가 되어버렸고 말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못된 세포 하나가 다시 발작을 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온 몸에 퍼져서 암이 번지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학급에 못된 놈이 하나 있어서 다른 아이들을 물들이는 것과도 같은데, 그러면 다른 아이들이 그것을 견제하면 되는데, 그것이 아니라 자기에게도 평소에 눌려있던 그런 것이 있었기에, 그만 그것이 부럽다는 것이다. "나는 어머님 말씀도 잘 듣고 착해야 돼" 라고 하다가 말이다. 그렇게 되면 학급 분위기가 어떻게 되는가? 이것을 '집단암시', 혹은 '집단최면' 이라고 하는데, 즉 선이 악을 감당하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평소에는 사람들이 악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은 인간에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시바(?), 나도 신나게 하고 싶은데, 그것을 니가 먼저 스타트를 끊는구나. 물론 나도 동참할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도 엄마가 와서 "근호야, 니 뭐하노?" 라고 하면, "예, 알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말이다.

그러므로 이 '이드'는 제거가 되지 않고 평생을 함께 가는데, "AC, 기회만 한번 와바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초자아인 양심은, 이 양심을 라캉은 뭐라고 했는고 하니, 그건 양심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이라고 했는데, 즉 "너는 이렇게 되어야 훌륭한 인간이야" 라고 세뇌를 시킨다는 것이다.

◈ 김정일과 욘사마 !!

북한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어떤 세뇌교육을 받는고 하니, "김일성 수령님이 시키는 데로 해야 돼" 라고 말이다. 그래서 김일성이 죽었을 때 대성통곡을 한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말이다. 그리고 김정일이 방문을 하면 감격해서 그야말로 기절을 하는데, 욘사마(?)의 인기는 비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아줌마는 김정일과 사진을 찍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런데 마침 그때 자기 아이가 자는 바람에 찍지를 못했는데, 그래서 그 아이의 이름을 '후회' 라고 바꾸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미친 집단이 지구상에는 없는데, 그 어떤 종교단체보다도 더하다는 말이다.

◈ 김정일은 욕망의 분출구 !!

그래서 정신 심리학자들은 북한을 어떻게 보는고 하니, 북한 인민들은 자기들의 욕구를 분출할 길이 없으니, 모든 것을 영웅 김정일에게 맞춘다는 것이다. 그것 외에는 욕구를 분출할 길이 없으니 말이다. 우리나라는 프로야구나 프로축구도 있고, 영화관도 있고, 그것이 양에 차지 않으면 인터넷에는 야동도 있고, 또 나이트클럽 '카네기'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그런 것을 다 자본주의의 암적 요소라고 해도 다 통제를 해버렸는데, 그런 것은 가진 자들이 즐기는 것으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도구라는 말이다. 그러니 자기들의 욕망을 풀 곳은 김정일밖에 없는데, 그래서 김정일을 보면 흥분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야말로 난리를 피운다는 말이다.

그러한 욕망을 충족할 때, 그것이 '에고(자아)' 인데, 그것이 부각된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누구인지 분명해진다는 말이다. 그 순간에 자아는 절대자아가 되는데, 즉 '신' 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김정일과 사진을 찍었다면, 그것은 김정일이 자기를 알아준다는 것인데, 그러니 자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김정일도 알아주는 존재이니 말이다.

◈ '신' 이란, 욕망이 충족된 상태 !!

그렇게 절대자아가, 즉 신이 되는데, 그렇게 신이 된다는 것은 모든 욕망이 최고조에 달한 때이고, 즉 모든 욕망이 충족된 상태라는 것이다. 바케쓰에 물에 넘치는 순간인데, 바로 그렇게 짜릿한 순간에는 그야말로 '뽕'하고 간다는 말이다. 그렇게 절대자유를 느끼고, 그렇게 절대자유를 느끼면서 절대 신을 느끼고, 또 그렇게 절대 신을 느끼니, "나를 건드리지 말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투박한 서민들이 집에 올 때 소주 한잔을 걸치는데, 먼지가 날리는 힘든 곳에 일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씻어낸다고 하면서 돼지비개에 소주 한잔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술에 취하면 집에 와서 아이들과 마누라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깨워놓고는 새벽 2시까지 잔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순전히 자기 이야기만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어릴 때 어떻고 저떻고"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를 알아 달라는 소리라는 말이다.

◈ 쉽게 말해서, 인간은 개 !!

그러니 직장에서 상사에게 그렇게 당하다가 술만 들어가면, 술이 바로 마약인데, 왜냐하면 중독성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한 사람은 일단 술만 들어가면 대뇌피질의 작용이 중지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서 시상하부가 발달하는데, 이 시상하부는 진화론자들에 의하면 파충류가 발달한 것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서 그냥 인간은 개라는 말이다.

여기서 대뇌피질은 이성적인 것, 즉 판단력과 윤리 도덕적인 부분인데, 그런데 술을 마시면 이 부분이 연결하고 있는 뉴런의 시놉스(신경?)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변형계(?)에서 멈추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개라는 말이다. 그렇게 되니 전봇대만 보이면 오줌을 누게 되고, 물론 거기에 대해서는 전혀 양심적인 가책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마누라가 밥상을 차려와도 발로 차버리고, 잠자는 아이를 깨워서 괴롭히고 말이다. 그리고는 아침에 일어나서는 전혀 모른다고 발뺌을 한다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그것이 '이드' 지만, 현대생물학에서는 변형계가 발달한 대뇌피질이 끊어진 상태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인간이 아침에 일어나면 "마누라, 어제 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 목이 왜 이렇게 뻐근하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왜 그런 현상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나요?

이 사회에 나가면 인간에게는 자유가 없는데, 그런데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만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 그 순간만은 신이 되는데, 그러니 술을 마실 수밖에 없고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

그렇게 되면 술로 해소할 수 있는 것을 다른 것으로 해소하게 되는데, 경마나 경륜, 그리고 도박으로 할 수도 있고, 물론 건전하게(?) 등산이나 낚시나 바둑 등으로도 가능하고 말이다.

* 질문 - 혹시 목사님은 이런 강의로 그런 것이 풀어지나요?

물론 강의로 푼다고 하면 좀 곤란하고, 주님을 생각하면서, 즉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굳이 푼다고 하자면, 그렇게 푼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렇다면 술과 담배도 전혀 하지를 않고, 취미생활도 별로 관심이 없고, 성경말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가요?

인간의 욕망이 변형되면, 그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든지, 또 환경운동과 같은 NGO 활동을 통해서 푸는 사람도 있고 말이다. 물론 정치를 통해서 푸는 인간도 그렇고 말이다. 방금 질문한 것을 헤겔은 아주 간단히 말했는데, 두 글자로 '노동' 이라고 말이다.

◈ 사람은 할 일이 없어서 농사를 짓는다 !!

그래서 제가 "사람은 할 일이 없어서 농사를 짓는다" 라고 했는데, 물론 농사를 짓는 사람이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할머니들이 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텃밭에서 일을 하는가? 그런 일거리도 안 되는데 말이다. 집에 그냥 있으면 아프다는 것이다. 어디로 놀러 가는 것도 가끔씩 가야 재미가 있지, 매일같이 가면 지겹다는 말이다.

* 질문 - 목사님은 지금까지 술을 마시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데 술을 마셔도 조용히 먹고 집에 가서 술 주정도 하지 않고 그냥 자는 사람도 있잖아요?

좋지 않다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모습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한 것인데, 그 사람은 술 주정이 그렇게 자는 것이란 말이다. 꼭 누구에게 피해를 준다고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제가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하다보니 그런 것이고 말이다.

프로이트는 사람들의 이런 술 주정에 대해서, 그것은 인간의 상흔, 즉 마음속에 있는 과거의 상처라고 했는데, 즉 그런 상처의 정도에 따라서 술 주정이 조금 순한 사람도 있고 심한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술만 취하면 자기 첫사랑을 이야기하는데, 마누라가 옆에 있던 없던 간에 말이다. 왜 그런가? 자기 첫 사랑에 대한 아픈 추억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상흔(傷痕), 즉 과거의 상처는 주로 어릴 때 가족들에게 받는다고 했는데, 아버지로부터의 언어적이든 물리적이든, 그런 폭력과 같은 것이 말이다. 또한 지나친 학대나 괴로힘을 당하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부모들의 지나친 싸움 등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말이다.

* 질문 - 목사님께서는 사람이 술을 먹는 이유가 그 당시에 신이 되고 싶어서 그렇다고 하셨는데,

절대자아로서 자아 폐쇄적이고, 또한 취해서 자게 되면 그 자체가 평화(?)이니, "신이다, 아니다" 라는 그 자체를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신이 되고 싶다" 라고 하는 것은, 신이 아직 되지 않았으니 그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안락사(?)' 라고 할까요?

* 질문 - 그것이 욕망의 충족상태인가요?

물론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는데, 잠이 오면 자기 편하게 그냥 자면 되고 말이다. 가족들이 불편하든 말든, 그것은 자기에는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행동이 신이 되려고 하는 일종의 과정이라는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술을 마시면 평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요?

아까도 말했지만 그것은 자기의 상흔 때문에 그러한데, 과거에 받은 상처가 심하면 많이 괴로워하고, 상처가 작으면 작게 괴로워하고 말이다. 하지만 결국은 모두가 다 자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튼 주어지는 것이 평화라는 말이다.

◈ 이제 다시 진도를 !!

다시 진도를 나가겠는데, 그렇게 해서 인간이 신이 되려고 했는데, 하지만 낙원에서 추방된 상태이기 때문에 어찌되었던 간에 자기 힘으로 스스로 살아야하는 과제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 에덴동산의 특징이 "그냥 주시는 데로 받는다" 라는 것인데, 그러니 에덴동산에는 인간의 노동이 없는데, 즉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들은 에덴동산을 채집시대로 이야기하는데, 수렵시대 이전의 단계인 채집시대라는 것이다. 그냥 열매를 채집해서, 즉 따서 먹으면 되는 시대라는 말이다. 이에 반해서 수렵은 찾아다녀야만 하는데, 채집은 그냥 주어지는 것을 따서 먹으면 된다는 말이다.

* 질문 - 목사님은 방금 에덴동산에는 인간의 노동이 없다고 하셨는데,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그렇게 에덴동산을 관리하는 것도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헤겔에 의하면 노동이라는 것은, 자아가 어느 정도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을 두고 노동이라고 했는데, "아하, 내가 이 정도까지 되는구나" 라고 자기를 확인하는 것을 두고 말이다. 그래서 배관공이 배관을 잘하면 "역시 나는 배관공으로 왔다구나"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질문 -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할 일이 있다는 차원에서 노동이라고 할 수도 있나요?

에덴동산에서는 할 일이 없는데, 왜냐하면 만약에 에덴동산에서 할 일이 있다고 하면 천국에 가서도 역시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국에서 차등이 생기게 되는데, 즉 누가 일을 잘하고 못하는지 구별이 되니 말이다. 즉 같은 과제가 주어지면 반드시 등급이 생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선생님이 자기 반에 찰흙을 주면서 얼룩말을 만들라고 같은 과제를 내게 되면, 반드시 잘 만든 학생이 있고 그렇지 못한 학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천국에도 엘리트반이 있고 열등반이 있다는 말인가? 학교에서도 그러한 반을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마음의 상처를 주었는가? 아마 공부를 못하는 학생 같으면 그런 천국을 천국으로 여기지 않지 싶은데 말이다.

물론 '일'의 개념을 넓혀서, 인간이 움직이는 것조차도 일로 보면 그렇겠지만, 사실은 "일을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 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일의 목적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무엇 때문에 일을 했느냐는 말이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왔을 때는 무엇 때문에 나왔는가? 자기 힘으로 이 저주받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형벌로 보는 것이 창세기 3장이고 말이다.

◈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지 !!

그러므로 인간은 그 자체가 이미 저주받은 존재인데, 왜 저주를 받았는가? 그 기준이 무엇인고 하니, 이 세상이 에덴동산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만약 부잣집에서 그냥 호위호식을 하면서 자란 놈 같으면 이 세상이 좋다고 할지 몰라도, 하지만 달동네에서 매일같이 힘들게 자란 사람에게는 이 세상에 대한 응어리가 지게 되는데, 그래서 이를 악물고서 "나도 돈을 벌어야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 모은 돈을 사기를 당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되면 피해자가 되는데, 하지만 피해자는 반드시 가해자로 돌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너도 한번 당해봐라" 라고 하는데, 즉 사회 전반에 대한 알 수 없는 복수심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특히 몸이 아픈 사람은 건강한 사람에 대한 복수심도 있고 말이다.

◈ 이제 본론인 공관복음서를 !!

그러니 이것은 결국 인간은 저주받은 몸이라는 것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나는 저주받은 몸이다" 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여기에 집어넣으면, 즉 "오른 뺨을 때리거든 왼 뺨을 내놓아라" 라는 것인데, 그런데 우리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겉옷을 빼앗아 가면 속옷까지 내주어라" 라고 하는데, 그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또 "누가 돈을 꾸려고 하면 그저 주어라" 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우리 인간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우리 인간을 너무나도 잘 아시면서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 우리 인간은 그것을 할 수 없어야 하는데, 만약에 그것을 우리가 해낸다면 주님의 십자가가 그만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예수님은 왜 그런 황당한(?) 말씀을 !!

아무튼 이 공관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는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그러한 것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그런 것을 지옥에 갈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 인간들이 도저히 지키지 못할 말씀만 하시는데, 왜 그렇게 하시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본래적인 위치가 곧 저주를 받아서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가? 그것은 너무 위장을 잘하기 때문인데, 우리가 마귀에게 제대로 배운 것 중에 하나가 철저하게 자기를 기만하는 수법인데, 즉 "나는 착하다, 교회에 다닌다, 술과 담배를 끊었다, 여자를 끊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그래서 교회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고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하는데,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자기를 기만하는 노래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차라리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라고 하는 것이 훨씬 더 복음적이라는 것이다.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사랑타령을 한다는 것 자체가 "니가 나를 사랑해주어야, 나도 너를 사랑해줄게" 라는 것인데, 즉 "당신이 나를 사랑해주면 훌륭한 사람이야. 그렇지 않으면 인간도 아니야" 라는 것이라는 말이다. 왜 그렇게 하는고 하니, 이 세상의 모든 기준이 바로 자기 사랑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얼마나 이기주의적인 모습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그런 노래를 부르면 얼마나 감동이 오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서 있는 사람이니 앉아 있는 사람이나 다같이 눈물을 줄줄 흘리는데, 보통 교회에 처음 온 사람을 세워놓고는 그런 노래를 부르는데, 소위 '축복송' 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 술집 대신에 교회를 !!

그런 것이 전부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빙자해서 절대신인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것인데, 그러니 술집에 가는 대신에 교회에 간다는 말이다. 술집에 가면 돈도 많이 들고 같은 술꾼들이 노래를 불러주지만, 그러나 교회에 가면 점잖은 목사님과 예쁜 성가대원들이 그렇게 자기를 위해서 정성껏 노래를 불러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어떻게 되는가? 순간적이나마 자기의 욕망이 달성되고, 또 죽어서도 좋은 곳에 간다고 하니 그 무서운 사후의 세계도 보장이 되고,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얼마나 좋으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의 실상이라는 말이다.

◈ 예수님왈, '니 자신을 알렸다' !!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러한 우리 인간들이 지키기 불가능한 말씀을 들이대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자리는 저주의 자리가 합당하다고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의 택한 백성은 그런 저주가 합당한 상태에서 그냥 두는 것은 아니고 말이다.

에스겔 37장을 보면 해골이 나오는데, 그 해골들이 사람이 되는데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을 주니, 그 말씀에서 능력이 나와서 그 능력이 이 해골들을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에스겔서에 의하면 그러한 말씀이 완성된 상태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곧 '주님의 사랑' 이라는 말이다. 인간의 사랑이 아닌 주님의 사랑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따내려고 하는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로지 주님의 사랑이 덮쳐와야만 해결이 되는 것이지 말이다.

(겔 37: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겔 37: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 잠시 '사랑과 전쟁'을 감상하면 !!

우리 인간에는 이런 모습이 있는데, 남자나 여자나 다 똑같은데, 자기가 그렇게 정성을 다해서 밥을 해주고 냄새나는 속옷을 빨아준 자기 남자가, 그만 다른 여자와 히히덕거리면서 있는 현장을 발견했을 때, 그만 그 사람은 눈이 뒤집히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짓을 할지 자기도 모르는데, 그때 가까운데 흉기가 있으면 곤란하고 말이다.

물론 자기가 발로 차버린 인간이 그렇게 할 때는 조금은 덜한데, 아깝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남자를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한 경우에는 당연히 그 보상이 자기에게 와야만 하는데, 그런데 다른 여자와 놀아날 때, 그것은 인간이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남자들은 여자의 '질투' 라고 하는데, 그러면서 별 것 아닌 것처럼 지나가려고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여자가 다양한 직장생활을 하게 되고, 남자처럼 퇴근을 하면서 술도 마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카페에서 다정하게 식사를 하고 있는 자기 아내를 보았는데, 그런데 앞에 있는 남자는 자기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업상(?) 아는 남자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그만 남자가 자기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즉 남자는 질투를 하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그런데 그 이후로는 자기 아내가 무슨 짓을 해도 하는 짓마다 모두 밉다는 것이다. 말 한마디 한 마디마다 일일이 시비를 걸고 싶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결국은 신구(?) 선생님을 찾아가게 되고 말이다.

◈ 이 놈의 인간아, 죽어라 !!

이것을 신약성경인 산상설교에서는 죽이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는데, 즉 인간은 자기 사랑을 빼앗기에 되면 그런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은 '집착' 인데, 즉 많이 사랑한다는 것은 많이 집착한다는 것인데, 그러니 사랑한다는 것은 모두가 거짓말이고, "너는 내 꺼야" 라는 것의 다른 표현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인간은 자기 것이 남의 것이 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은 상대방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에게 속박시키는 것이란 말이다. 프로이트는 그러한 힘을 두고서 '리비도' 라고 했는데, 그러니 그 힘은 철저하게 자기 소유로 고정시키는데 동원되는 힘이라는 것이다. 자기 것으로 말이다.

◈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

그것이 바로 사랑인데,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랑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발휘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사랑의 의미가 전혀 달라지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주 이기적인 목적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지독한 사랑인지, 전혀 우리 인간들이 하는 사랑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심지어 자기 아들을 어떻게 하셨는고 하니, 저주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자기 아들로 하여금 그 저주를 대신 가로막게 해서, 그렇게 해서 십자가에서 자기 아들을 버리면서까지 우리들을 뽑아내어서 하늘나라에 심어놓으신다는 것이다. 바로 그 지독한 사랑이 이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사랑이고, 산상설교에 나오는 사랑이고, 곧 십자가의 사랑이라는 말이다.

바로 이런 십자가의 사랑으로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성도에게는 무엇이 포함되는가? 예수님을 믿는 인간에게도 원래 리비도가 들어있는데, 즉 자기 사랑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과는 정반대가 되는 아주 이질적인 새로운 사랑이 들어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희생적인 아가페의 사랑이라는 말이다.

◈ 성도의 삶은, 치고 박고 싸우는 과정 !!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사랑이 서로 어떻게 지내겠는가? 서로 싸우겠는가? 아니면 사이좋게 잘 지내겠는가? 그야말로 매일같이 치고 박고 싸우는데, 그것이 바로 성도의 삶이라는 말이다. 즉 성도가 성도로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런 과정이라는 것이다.

* 질문 - '에고이즘'이 '아가페'와 반대되는 것이 아닌가요?

에고이즘 밑에 비리도가 있는데, 그것은 그야말로 동물적인 사랑이라는 것이다. 무조건 자기 새끼를 낳음으로 자기 영원성을 확보하려는 말이다. 만약에 자기 자식이 없으면 그대로 끝나게 되니, 목숨을 걸고 자식을 번식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도 아기를 낳지 못하면 괴로운데, 그런데 아예 결혼을 하지 않으면 그런 괴로움도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둘 다 자기 자식이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물론 이런 것이 인간의 신비로운(?) 점이라고도 할 수 있고 말이다.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가? 주로 여자들이 많은데, 결혼을 하게 되면 자기 자유를 잃게 되고, 그렇게 매인 몸이 되어서 잔소리를 들으면서 사느냐는 것이다. 자기 인생은 자기 것인데, 그런데 결혼을 하게 되면 그런 자유가 아닌 의무감에 사로잡힌다는 말이다.

◈ 결혼이란, 밥 도, 마 자자 ??

그래서 결혼한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하는가? 다들 행복은 길어야 3개월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신혼여행을 가서 싸우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고 말이다. 사랑은 대부분이 3개월인데, 특별한 경우에는 6개월이고 말이다. 그 다음부터는 서로가 의무감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결혼하기 전에 사랑한다고 하는 것도, "너는 내 꺼야" 라는 것인데, 즉 "내가 그만큼 공을 들였으니 나에게서 도망가면 죽어. 그러니 너는 내 노동의 대가야. 나의 위대함은 네가 나와 결혼을 함으로서 확인이 되는 거야" 라는 의미인데, 그러니 자기의 위대함으로 그런 사랑과 결혼으로 확인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인간들끼리의 사랑은 별 의미가 없네요?

방금 이야기했듯이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있는데, 그러나 그 사랑이 자기 위대성을 확인하려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위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외치는 사랑은 아무리 좋은 말로 꾸며도 결국은 자기 욕망이고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결혼을 빨리 하고, 적은 사람들은 결혼을 미루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결혼을 하기 힘드는데, 그런 욕심이 젊을 때만큼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철이 들고 자기 자신을 깨닫는 것인데, 즉 "내가 결혼해서 상대방을 불행하게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라고, 실제로 노총각들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 나이가 들면 철이 좀 들기도 하지만, 그러나 !!

우리교회에도 늦게 결혼한 분들이 좀 있는데,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보면, 자기 한 몸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면서 결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미안한지, 그래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말 시건(철?)이 났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더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 자기 때문에 남들이 피해를 보는 것에 대해서 민감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이가 많아서 결혼을 한 사람들은 일찍 이혼을 할 가능성이 많은데, 왜냐하면 흠뻑 서로에게 빠지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면서도 서로가 엄청 조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심하다가 보면, 그것이 부담이 되어서, 말로 함부로 하지 못하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차라리 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는, 어떻게 보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말이 맞기도 한데, 왜냐하면 서로에게 배려를 해주니 말이다. 그래서 서로가 좋은 친구로 남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 내막을 파헤쳐 보면, 양다리를 걸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성경말씀은 무엇인고 하니, 그렇게 해서 결혼을 했던, 아니면 고고하게 혼자서 살던지 간에, 그것이 하늘나라에서 보면 그야말로 도톨이 키재기에 불과하지, 그것이 무슨 그리 대단하게 차이가 나느냐는 것이다. 인간들끼리는 키가 좀 크고 적고 할지 몰라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가 다 똑같다는 말이다.

◈ 공관복음서를 다시 정리하면 !!

오늘 공관복음서를 끝내겠는데, 다시 정리를 해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인데, 그러니 자기 자신이 훌륭한지 그렇지 않은지, 그런 것은 남들과 비교할 필요가 없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전부가 다 똑같다는 것이다.

◈ 홀로 가신 길에서 이웃사랑을 !!

그렇다면 이 공관복음서의 나머지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홀로 가신 길' 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전혀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데, 그런데 홀로 가면서 모든 것을 다 지키신 분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홀로 다 지킨 것이 '이웃사랑'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누가복음 10장을 한번 살펴보자.

(눅 10: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0: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눅 10: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눅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눅 10: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이 본문은 유명한 말씀인데,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어떤 계명이 크냐고 물으니,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하는데, 그 율법사가 뭐라고 하는가? 자기가 그래도 율법사이니 하나님의 사랑은 좀 아는데, 그러면 이웃사랑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즉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는 대목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러니 제가 계속해서 강의를 해온 바에 의하면, 지금 이 율법사는 율법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인간은 율법을 지킬 수 없는데,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는데, 그런데 율법사는 오해하기를, 자기가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 예수님, 제 이웃이 누구입니까?

그러니 이 율법사에 의하면, 그 이웃이 누구인지 그것만 알면 이웃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의무라고 여기기 때문에 말이다. 그것이 율법사의 백성들에 대한 임무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그 이웃이 누구입니까?" 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한 예를 들었는데, 그것이 소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라는 것이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더 적합한데 말이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서 피를 흘리고 있는데, 거기를 3명의 사람이 지나갔다는 것이다. 제사장과 레위인과 어떤 사마리아인이 말이다. 여기서 제사장은 목사라고 할 수가 있고, 레위인은 교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을 그냥 강도를 지나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왜 그냥 지나갔는가? 길을 가던 사람에게 누가 강도짓을 했는가? 전혀 자기들이 아니라 당연히 강도라는 것이다.

◈ 이 목사님,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

예를 들어서, 우리 옆집에 도둑이 들어와서 다 훔쳐갔는데, 그런데 그것을 제가 통장을 털어서 갚아주어야 하는가? 아무리 이웃이지만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두고 잘못했다고 하기에는 곤란한데, 자기가 강도가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제사장과 레위인은 상당히 합리적이고, 모범적인(?) 행동이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3번째 사나이인데, 이 사마리아 사람은 마치 자기가 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것처럼, 피해자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다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즉 싸매고, 치료하고, 그 당시 병원인 주막에 데리고 가서 추가비용이 대한 보증까지 다 해주고 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마리아인이 그렇게까지 행동한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가? 옆집에 도둑이 들어서 모두 다 털렸는데, 그런데 제가 그 집에 가서 모두 다 보상을 해주고 위로금까지 주었다고 한다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마음의 근거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말이다. 화재보험사의 직원도 전혀 아닌데 말이다. 제 말이 좀 어려운가요?

◈ 사마리아인도 역시 탤런트 !!

그 근거가 무엇인고 하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했는데, 아까 제가 뭐라고 강의를 했는고 하니, 말씀은 그 자체에서 능력이 나온다고 했는데, 그러니 이 사마리아인의 경우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 사람을 데리고 무엇이 이웃사랑인지를, 바로 그 참된 이웃사랑을 이 사마리아인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해서 이 지상에 펼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마리아인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그 알맹이는 누구인고 하니, 이 비유를 의도적으로 끄집어낸 예수님이 바로 그 사마리아인의 자리에 있어서, 그야말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마치 강도를 만난 자와 같은 우리들을 예수님께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전혀 고쳐주지 않아도 되는데 몸소 다 치료해주시고 싸매어 주셨다는 것이다.

◈ 그러면 '구원받았다' 라는 의미는?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는 것을 성취하는 차원에서 그 사랑을 무상으로 우리에게 적용을 시킬 때, 비로소 우리는 나음을 입는다는 말이다. 이것을 두고 성경말씀은 "구원받았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요?

그러니 강도를 만난 사람은 무엇을 했는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평소처럼 볼일을 보러 자기 갈 길을 간 것이지 말이다. 그러다가 강도를 만나서 그냥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데 분주하고 움직여서 그 사람을 치료하고 여비까지 다 챙겨준 것은 사마리아인이 다 했다는 것이다.

◈ 결론은, 예수님의 이웃사랑 !!

사실은 이 사마리아인은 없고, 예수님이 비유로 지어낸 이야기인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 본인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일은 이 지상에서 이웃사랑을 성취하기 위한 작업인데,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비유의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사가 이 말씀을 이해했는가? 못했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까, 자기는 강도를 만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자리에 앉아서 말씀을 이루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간에게서 과연 이것이 가능하겠는가? 인간의 사랑은 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웃을 사랑하기는커녕 착취하고 소유하려는 자기 욕망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눅 10: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눅 10: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눅 10: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눅 10:33)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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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