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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8-학개,스가랴,말라기(강의정리)자유게시판말라기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8-학개,스가랴,말라기(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27)

05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28 - 학개서, 스가랴서, 말라기서

05,02,19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구약을 마무리 !!

오늘 이 시간에는 구약의 남은 것을 다 하려고 하는데, 학개서, 스가랴서, 말라기서가 남았는데, 남은 겨울과 더불어 구약이 다 마무리가 되도록 해보자는 말이다. (또 한 시간이 빠졌나?) 먼저 '학개서'를 살펴보겠는데, 이 '학개' 라는 명칭은 선지자 이름인데, 진돗개와 같은 멍멍이 이름이 아니고 말이다.

◈ 학개서 - 앞으로 새로운 성전이 온다 !!

이 '학개' 라는 선지자가 뭐라고 했는고 하니까, 앞으로 올 성전은 지금 성전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인데, 즉 지금 성전은 임시적이라는 말이다. 왜 성전을 이야기하는고 하니, 그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즉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른 곳에서 인간을 만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성도를 성전이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여기 칠곡이나 지묘동에서 우리는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 안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이 가는 곳마다, 즉 집에 가면 집에서, 회사에 가면 회사에서, 또 목욕탕에 가면 목욕탕에서 만난다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 몸 안에서 만나니, 우리 몸이 우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만나는 몸, 즉 성전이라는 것이다.

◈ 우리 몸은 쓰레기통 ??

그런데 이러한 몸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멸망을 받게 되는데, 그러므로 자기 몸이 자기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소유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인생의 행복은 그냥 따라온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우리가 이 몸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치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담기듯이, 그렇게 집안의 모든 근심 걱정이 자기 몸 속으로 쏟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쓰레기통처럼 말이다.

물론 쓰레기는 힘이 좀 들어도 우리가 분류해서 처리할 수가 있지만, 그러나 우리 몸 속에 들어있는 걱정과 근심이 도저히 치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몸을 자기 것이 아니라고 여기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아무 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헤어스타일을 닭 벼슬로 만들든지, 아니면 대머리로 밀든지 말이다.

특히 여자들은 외출을 할 때 얼마나 신경이 쓰는가? 옷도 몇 번을 입어보고, 화장도 한 시간을 해야 되고 말이다. 또한 남자들은 기다려주면서 짜증을 내고 말이다. 그런데 나이가 한 90세 정도가 되면 특별히 무엇을 신경 쓰겠는가? 그냥 벌거벗지만 말고 무엇이든지 걸치고 나가면 되지 말이다. 아니, 나갈 필요조차도 없는가?

◈ 걱정근심은 '내' 몸에서부터 !!

다시 말해서, 그렇게 자기 몸을 자기 것이라고 의식하는 순간부터는 온갖 근심걱정이 다 찾아오는데, 그렇게 자기 몸이고, 자기 인생이라고 여기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고민거리가 다 쏟아진다는 것이다. "아, 정말로 바르게 살아야 하는데"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 순서가 어떻게 되는고 하니까, 먼저 "내 몸이니, 내 인생이다" 라는 것이고, 다음이 "바르게 살아야 한다" 라는 것인데, 그렇게 따라붙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바르게 살아야 복이 온다고 여기니 말이다. 그렇게 자기 몸을 자기가 관리해야 하고, 그런 관리해야 하는 자기 인생이라고 여기니, 당연히 남을 의식하면서 제대로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복을 받는 비결이고 말이다.

◈ 예수님은 진공청소기 ??

하지만 그 몸이 우리 것이 아니라 천국에 계시는 예수님의 몸인데, 그래서 예수님이 모두 다 알아서 잡아당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공청소기라고 할 수 있는데, 모든 것을 잡아당기니 말이다. 김남일만 진공청소기가 아니고, 예수님이 그 원조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십자가로 마구 잡아당기는데, 그런데 그때 나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니 몸은 니 것이 아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잠시라도 잊어버리면, "그래, 내 몸은 역시 내 것이야. 잘 가꾸면서 잘 살아야지. 착하게 살아야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자칫 잘못하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자살과 연결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생이 너무나 힘이 들기에 말이다.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니 어떻게 힘이 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 그런 사고방식은 참으로 위험하다는 것이다.

◈ 인간의 취미생활은, 자살방지용 ??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술과 담배, 도박, 여자, 그리고 과도한 취미생활로 그런 것을 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사람들이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는가? 그런 재미도 없이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사느냐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눈깜고 아웅하는 식인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어디 해결이 되겠는가?

아무튼 이 학개서에서 말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성전은 하나님께서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스가랴서도 그렇지만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성전에서 만나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성전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도 눈이 있는데, 어디 인간이 만든 성전이 마음에 들겠는가? 자기가 곧 창조주인데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직접 지은 성전에만 들어가는데, 그것이 바로 신약시대의 '성도의 몸' 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중요한데, 그러니 우리가 성도라면, 우리가 그 어디 그 어떤 곳을 가든지 간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학개서와 스가랴서의 공통점이란 말이다.

◈ 구약의 끝, 사람의 손에 의한 것은 NO !!

오늘 우리가 구약의 마지막을 살펴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과연 구약시대의 마지막을 무엇으로 장식하고 있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전'에 관한 것이고, 그 내용이 바로,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성전에는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구약의 대미를 장식하는 내용이 바로, 사람의 손에 의한 것은 하나님께서 거부한다는 말이다.

◈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성전에는 없어 !!

그렇다면 구약의 제사장이 어디서 제사를 드렸는가? 그 장소가 바로 성전인데, 그러면 그것은 인간이 만든 성전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지은 성전인가? 물론 하나님께서 지시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이 만든 성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성전은 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 당시에 제사장이 그야말로 휘황 찬란한 복장을 했는데, 그런 제사장과 그 복장이 요즘 통하는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사람이 만든 복장을 했기 때문에 말이다. 그것이 제 아무리 특별나고 독특해 보여도 결코 안 된다는 말이다.

구약에서 인간들이 성전을 중심으로 제사를 드리고 안식일을 지키고 무엇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러니 구약의 마지막에 오면 그것은 전부가 다 거부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받은 적이 없다는 말인데, 즉 사람이 드린 것은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 기존의 성전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서?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이 드린 것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전에서 인간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도대체 이 땅에 사람이 짓지 않은 성전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성전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성도의 '몸' 인데, 그렇게 성도의 몸에 하나님께서 직접 오시는데, 그분이 바로 '성령님' 이라는 것이다.

◈ 그것도 몰라? 바로 '니 몸' !!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그 휘황찬란한 성전을 다 제쳐두고 너무나도 초라한(?) '내 몸'에서, 그렇게 만난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은 17장에서 "니가 내 안에, 내가 니 안에" 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구약이 아닌 신약시대라는 것이다.

(요 17: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를 들어서, 죄수들끼리 감옥소에서 만나서 둘이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 과연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겠는가? 당연히 계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몸이 자기들의 몸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게 몸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 하나님은 은혜인가? 인간의 착함인가?

오늘 아침에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의 어려운 것이 무엇인고 하니,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있는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은혜라고 하면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당연히 착한 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당연히 착한 일로 여긴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 감옥소에 가는 것이 착한 일을 해서 가는가? 전혀 착한 일이 아닌데, 그런데 거기에서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전혀 착한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은 착한 일을 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죄인이기 때문에 말이다.

◈ 인간에게 착한 일은 나오지 않아 !!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하는데, 사람에게서는 착한 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만 나오는데, 그러니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은혜라는 말이다. 남을 구제한 것도 착한 일이 아니고 은혜라는 말이다. 감사한 것도 역시 은혜이고 말이다. 교도소에 가더라도 예수님을 믿고, 십자가의 피를 믿게 되었다면 그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제 아들이 교도소에서 이렇게 예배를 드릴 정도로 믿음이 좋습니다. 그러니 제발 빨리 좀 빼내주세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오냐, 알았다" 라고 하면서 당장 빼내주시겠는가? 과연 그러한가?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냐는 말이다.

* 죄수모 : 하나님, 계셔요?
* 하나님 : 왜?
* 죄수모 : 오늘 제 아들놈이 감옥에서 예배를 드렸지요?
* 하나님 : 그런데, 왜?
* 죄수모 : 그 놈이 그런 착한 일을 했잖아요? 그러니 좀 빼내주세요.
* 하나님 : 웃기고 있네.
* 죄수모 : ? ? ?
* 하나님 : Z Z Z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것은 착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비록 교도소이지만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 만남의 장소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튼 인간에서는 착한 일이 나오지 않는데, 그런데 만약에 이웃에게 그렇게 보였다면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야, 나는 너무 인간성이 좋아"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 아이가 공부를 잘했다고 하면 그것도 역시 은혜이고, 물론 꼴지를 해도 은혜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공부를 한번 1등 했다고 해서 계속해서 1등을 하는가? 그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2등을 했다고 쥐어박지 말고, 모든 것을 다 은혜로 여기라는 말이다.

다시 정리하면,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라 누구 것이라고요? '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소유인데, 그러니 주님이 알아서 그렇게 하시도록 그냥 좀 놔두라는 것이다. 이리하든지, 저리하든지, 요리하든지 말이다. 모든 것을 다 주께서 알아서 은혜로 하시는 것이니 말이다.

◈ 진주엄마와 미나리 찌짐 !!

어제 저희 집에서 미나리를 가지고 찌짐을 부쳤는데, 진주 엄마가 맛있게 그런 것은 제법 잘 하는데, 그런데 미나리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엄청 귀찮다는 것이다. 자기 몸(?)을 가지고서 마구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제 맛이 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고 하는데, 물론 우리는 엄청 귀찮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허락하라는 것이다. 주님의 몸인데, 허락이라고 하니 말이 좀 어폐가 있는데, 아무튼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도록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주께서 은혜로 하시는 것이니 말이다.

◈ 역시 남자는 외로워 !!

남자들이 군대에 갔다와서 취직을 하게 되면, 밑에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이공계 계통은 멀리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젊은 나이에 공단 같은 지역에 가게 되면 감수성이 있는 사람들은 굉장히 외로움을 많이 타는데, 그냥 사표를 던지고 보고 싶은 엄마와 아빠에게로 돌아오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게 공장에서 힘든 일들을 반복적으로 계속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몇 가지 회의를 느끼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순노동이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것이다. '피얼리(?) 시스템' 이라고 해서, 그것이 경영학에도 나오고 말이다.

처음에 회사에 들어가서, 사장이 똑같은 일을 그렇게 해주면 월급을 주겠다고 하면, 처음에는 좋다고 하지만 일도 어렵지 않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하게 되면, 그것이 어려워서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어렵지 않기 때문에 하기 싫다는 것이다. 얼마나 지루한지 말이다.

◈ 선생님도 역시 허무해 !!

학교 선생님의 경우에도 그러한데, 물론 월급도 제법 많고 밖에서 보면 좋은 직장으로 보이지만, 그러나 막상 선생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아침에 학교에 가서 떠드는 아이들을 마구 잡아야 하고, 또 분필가루를 마시면서 그렇게 하루종일 아이들과 일에 시달리다가 파김치가 다 되어서 집에 오고, 또 다음날에 학교로 나가고 말이다.

그렇게 고생고생을 해서 월급을 타서 집에 오면, 물론 마누라는 좋아서 입이 째지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나는 무엇이냐?" 말이다. 그렇다고 교장이나 교감은 아무나 되는가? 타고난 아부근성과 치밀한 작전이 있어야만 하고 말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자기 인생을 보내려고 한 것이 아닌데, 그런데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아무런 살아가는 보람도 없고, 재미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40대에 섹스폰을 배운다고 난리를 피우고, 젊은 아이들이 타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운다고 온 몸에 멍이 다 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몸무림 맘부림을 쳐본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것은 건전한 것이지만, 대부분을 다른 것들을 즐기게 되는데, 너무 배부른 소리인가?

◈ 주님 없는 인생의 특징은? 반복성, 사랑, 왕따 !!

그러므로 우리 인생이 무엇인지, 언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지, 이것을 정리해보면, 첫 번째는 '반복성' 인데, 아무튼 인간은 이런 반복적인 일로 인한 지루함을 견디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으니 말이다. 이것이 참 중요한 이야기인데, 인간에게 이렇게 장래가 불확실하게 될 때는 불안에 떨고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매일같이 이런 짓만 하다가 늙어서 죽는가? 인생은 풍요롭다고들 하는데, 그런데 나는 무슨 돈 버는 기계도 아니고, 이게 뭐꼬? 나중에 몸도 다 망가지고 병들어서, 그냥 땅 속에 들어가면 그것으로 그만이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가 바로 '사랑' 인데, 즉 "누가 나를 사랑해주지?" 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객지에서 직장생활을 해도 어떤 경우에 견딜 수가 있는고 하니, 교회에 나와서 애인을 만들었을 때, 그리고 직장에서 경리를 보는 아가씨와 눈이 맞아서 사귈 때, 그때는 직장이 지루해도 좋다는 것이다. 그 여자를 만나는 재미가 있으니 말이다. 인간은 그렇게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무시당함' 인데, '왕따' 라고 할까요? 조금은 다른 의미이지만, 아무튼 그 지역의 토박이들이나 직장이나 무시를 당할 때에 말이다. 이때 사람들은 엄청나게 외로워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전부 다 무엇인고 하니, 즉 "내 인생은 내가 가꾸고 관리한다" 라는 입장에서 그 어디로 가보라는 것이다. 이러한 3가지 때문에 고민을 하는지, 안 하는지 말이다.

특히 학교에서 남들은 다 교장이고 되고 교감이 되고 하는데, 자기는 진급도 하지 못하고 평교사로 있을 때, 그것이 얼마나 비참한지 말이다. 공무원의 경우도 그러한데, 남들은 7급 시험을 준비한다고 하는데, 자기는 그냥 아무 것도 못하고 가만히 책상에 앉아 있으면 말이다.

◈ 여기, 아무도 없어요 !!

얼마 전에 50살을 먹은 7급 공무원이, 7급이면 결코 낮은 직급이 아닌데 말이다. 승진시험에 탈락을 해서 자살했다는 말이다. 자기 생각에는, 자기 나이 50에 승진을 하지 못하면 남들로부터 무시를 당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말이다. 월급이 문제가 아니고 말이다. 자기만 제외하고 나머지 동료들은 승진을 다 했는데, 자기만 달랑 혼자가 되었으니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배부르다고 일축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인생을 자기 것이라고 여기면 이런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의 인생으로 바꾸어버리면, 그렇게 목말라하는 사랑도 주님으로부터 받고, 장래도 이미 천국으로 보장이 되었는데, 그러니 제 아무리 무시를 당해도, 지옥에 갈 놈들이 천국에 갈 사람을 무시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시가 되겠는가?

◈ 성도의 특징은, 주님의 인생을 사는 자 !!

그러므로 자기 인생이 아닌 주님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이 세상에 없는 사랑을 공급받아서 베풀게 되고, 또한 이 세상이 없는 희망도 역시 베풀 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의 인생이 아닌 자기 인생이 되면, 앞에 말한 그 3가지는 항상 따라온다는 말이다. 특히 객지에서 생활을 해보면 이런 것을 피부로 실감나게 느낀다는 것이다.

* 질문 - 3가지가 다 그렇게 따라다닙니까? 아니면 한 가지라도 따로 따라다닙니까?

물론 이것이 3가지이면서도 하나로 볼 수 있는데, 서로가 이리저리 얽혀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불쑥, 저기서 불쑥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특히 경상도 사람이 서울에서 생활을 하든지,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에서 생활을 하면, 교회에서 아무리 서로 친하게 지내도 그런 서먹서먹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토박이들의 텃세가 얼마나 심한지, 물론 자기들은 권리라고 하는데, 그런 기득권이 얼마나 끈질긴지 모른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서로 "우리는 서로 친구 아이가" 라고 해도, 언제 등뒤에서 엉뚱한 짓을 할지 모르고 말이다.

바로 이러한 것이 우리 인간의 인생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구약을 통해서 이런 우리 인생전체를 아예 바꾸어버린다는 것이다. 자기 인생이 아닌 주님의 인생으로 말이다. 이것저것 하나 하나씩 바꾸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바로 그러한 작업을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시는데, 즉 "니 인생은 이 인생이 아니라, 나의 인생이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거기에 동원된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고 말이다.

◈ 학개 선지자 - 울지마. 앞으로 새로운 성전이 !!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는 이 학개 선지자는 무엇인고 하니, 조금 짧게 하겠는데, 현재 있는 이 성전과 이스라엘 자체를 포기하라는 것이다. 물론 스가랴 선지자도 그렇지만 말이다. 즉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인생을 포기하고 미래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성전보다 더 나은 새로운 성전이 올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학개 선지자는 그 당시 성전을 하나 새롭게 세워놓고 하는 말이 "지금 이 성전이 과거의 성전보다 못하지? 아무튼 이 성전은 부수어져야만 돼" 라고 했는데, 그때 백성들이 울고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그 당시 새롭게 지은 성전이 너무나도 초라하니 말이다. 그래서 학개 선지자는 백성들을 보고 "울지마. 앞으로 새로운 성전이 올 것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 새 성전은 바로, '내' 안에 !!

그렇다면 앞으로 새롭게 다가올 성전은 무엇인가?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인생이 아니라 주님의 인생으로 바꾸어서, 즉 그때부터는 주님이 구약처럼 성전에, 즉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이 계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학개 선지자가 바라본 마지막 때에 구원받은 자들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소유가 된 주님의 인생이 되면, 외로움을 타고, 사랑을 갈구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그런 것에 주눅이 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들이 자기를 무시하고 함부로 해도, 어차피 자기 인생이 아니라 주님의 인생이기에, 즉 주님께서 다 알아서 책임을 져주신다는 말이다.

◈ 언제나 자유로운 남자, 사도바울 !!

사도바울이 언제 외롭다고 한 적이 있는가? 자기가 살던 온 지역을 다 돌아다녔는데, 로마까지 가고 말이다. 가는 곳마다 인정을 받기는커녕 그렇게 박대를 당하고 설움을 당했지만, 하지만 언제 외롭다고 하면서 자기 신세를 한탄한 적이 있었는가? 언제 고향으로 보내 달라고 징징거린 적이 있었는가?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어디로 갈까요? 마음대로 하이소. 저는 모든 것이 다 OK입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리들처럼 외로움을 타기는커녕 그야말로 자유롭게 돌아다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자기 인생이 아니라 주님의 인생이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살든지 죽든지 주의 것이로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성령을 받았다면 우리도 그러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 질문 - 그렇다면 학개 선지자에 의하면, 지금 기존의 교회는 완전히 박살이 났겠네요? 그리고 그 당시 사람들은 성전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지낸 것인가요?

물론 지금 한국교회는 말할 가치도 없는 것이고, 그리고 뒤에 질문한 것은, 그것은 아니라 오히려 이 학개 선지자 시대에 사람들이 성전을 짓는데 동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학개가 "너희들의 집구석은 그렇게 짓고 난리를 피우는데, 왜 성전을 짓지 않는가?"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학 1:3)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학 1:4)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 말씀을 모르니 돈으로라도 해결해야 !!

그런데 사실 그런 의미가 전혀 아닌데, 목사들이 이 구절을 이용해서 성전건축을 독려하는데, 왜 자기들의 집은 그렇게 좋게 지어놓고는, 성전은 이 모양 이 꼴이냐고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그래도 성도라고 하면 성전은 하나 아름답게 건축해놓고 천국에 가야지, 거기에서도 할 말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보통 이 두 가지를 가지고서 구라를 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경공부를 해보면 그것이 다 거짓말인 줄 아는데, 왜냐하면 새로운 성전은 지금 눈에 보이는 교회당이 아니라 성도의 몸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모르면 목사들이 하는 말이 맞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 학개서 1장 4절을 가져다대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건축헌금을 한 구좌 할까, 두 구좌를 할까, 그런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 몸이 성전이니 말이다.

그러니 평소에 성경공부를 하면 시험에 들지 않는데, 그런데 농땡이를 치다가 마귀를 만나면 아쉬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마귀도 주께서 다 사용하시는 것인데, 우리가 게으름을 피지 말고 말씀을 공부하라고 말이다. 아무튼 분명한 사실은 "내 몸이 성전이다" 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성경을 이야기해도 항상 돈이 되는 쪽으로 가네요?

그것이 목사의 특징인데, 달리 성경을 했겠는가? 그런데 교인들은 그런 성경에 관심이 없으니, 사실 당해도 달리 할 말이 없는데, 그러니 항상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얼마나 목사들이 엉터리인지 좀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 어디, 똑똑한(?) 목사님 안 계셔요?

이것은 여담(?)이지만, 그래도 기존 교회가 부패했다고 하면서 뛰쳐나온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닌데, 그런데 그들에게 소개해줄 목사가 없다는 것이다. 그 정도라면 교인들이 보통 수준이 아닌데,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보통 자기들끼리 모이고 만다는 것이다. 목사가 와서 설교를 해도 별 다른 이야기도 없고, 오히려 자기들보다 수준이 떨어지니 말이다.

미국에 갔다와도 정신 상태가 그 모양이니, 성경을 이야기하고 설교를 해도 기존 교회의 목사들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조금 세련되게 하는 것에 불과하지 말이다. 그렇게 하다 결국은 자기들끼리 그렇게 모이는데, 도저히 믿고 맡길 그런 목사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교인들이 성경을 제대로 알게 되면 목사들이 긴장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교인들이 자기들의 노하우와 은밀한 것을 모두 다 알게 되어버리면, 그때부터는 자기가 하는 말이 먹혀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카리스마가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마치 가정에서 여자가 공부를 많이 하게 되면 남자가 기가 죽듯이 말이다.

◈ AC, 여자가 뭘 안다고 !!

보통 남자들은 돈을 번다고 정신이 없는데, 여자들은 주부문화센터 같은 곳에 가서 책도 보고 강의를 들으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여자는 거기에서 배운 것을 가지고 좋은 뜻에서 가정을 위해서 남자에게 조언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남자가 가만히 있겠는가? "머라꼬? 니가 무엇을 안다고 남자를 무시하나" 라고 하면서 화를 낸다는 말이다.

하지만 저는 여자의 말을 들어서 손해난 가정을 거의 보지를 못했는데, 완전히 없다고 하면 안 되겠지만 말이다. 왜 그런고 하니, 여자는 자기 가정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러한데, 생각하는 것이 아무래도 덜렁덜렁 거리는 남자보다는 깊다는 것이다.

◈ 이제 '스가랴서'를 !!

이제 '스가랴서'를 살펴보겠는데, 다시 이야기하지만 학개서가 말하는 것은 "우리 몸이 성전이다" 라는 것이고, 그러니 제발 자기 몸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주님의 것이라고 해도 고민이 따라오는데, 왜냐하면 주부들이 김치전이나 미나리 전을 뒤집듯이, 그렇게 주님께서 마구 요리를 하니 말이다. 하지만 성도는 주님이 그렇게 하시도록 그냥 내버려두는데, 마치 사도바울처럼 말이다. 물론 성도가 아니면 말고 말이다.

◈ 천사에 의해서, 성령에 의해서 성전을 짓는다 !!

이 스가랴서의 주제는 "천사에 의해서, 그리고 성령에 의해서 성전을 짓는다" 라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고 쉽지요? 성령님에 의해서, 천사에 의해서 말이다. 여기에 비해 학개서는 "지금의 성전은 성전이 아니다" 라는 것이고 말이다. 성전을 짓기는 짓지만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즉 성령에 의해서 지어진다는 것이다.

(슥 4: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그야말로 '아멘' 인데, 무슨 의미인가? 쉽게 말해서 "힘 빼라" 라는 것인데, 즉 "너희들, 나를 믿지?" 라고 한다는 말이다. 보통 남녀청춘들이 연애할 때 무엇이라고 하는가? "현숙이(?), 나를 믿지?" 라고 하는데, 그러면 상대방에서 "응, 나는 근호씨만을 믿어" 라고 하고 말이다. 아닌가? 바로 그런 사이가 하나님과 성도의 사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너희들이 나를 믿는다면 힘을 빼라. 너희들이 설치지 않아도 일은 다 되게 되어있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처럼 논다든지, 일을 잘못 처리한다든지, 실수가 있는 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말씀대로 완벽하게 진행하시는데, 즉 자기 약속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전능하신, 완벽한 분이라는 것이다.

◈ 오직 '나'의 신으로 !!

그래서 여기 있는 4장 6절의 말씀을 보면,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가 성전이 된다는 것인데, 굳이 우리가 설치지 않아도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구와 일을 하시는가? 인간이 있어야 주의 일을 하는가? 그것이 아니라 그런 일군이 바로 천사들이란 말이다.

이 스가랴서에는 천사가 많이 등장하는데, 하나님은 바로 그 천사들을 통해서 일을 하고 계심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천사와 성령님의 공통점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런데 우리들이 일하는 이 팔과 다리의 근육은 그대로 눈에 다 들어온다는 것이다.

◈ 이 세상일은 시간이 해결 !!

물론 믿음이 없는 이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그것만을 의지할 수밖에는 없겠지만,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렇게 눈에 보이는 힘을 모두 다 빼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그냥 그럴려니" 라고 하면서 지나쳐버린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우리가 자기 힘을 빼게 되면 '시간'이 해결하게 되는데, 이것이 조금은 상투적인 표현 같지만 사실 굉장히 좋은(?) 말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간이 해결한다" 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고 하니까, 시간이 지나가면 다 저절로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 아, 쓰나미 !! 왠, 쓰나미 ??

우리가 뉴스를 보면 가끔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는데, 이번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쓰나미 사건' 이라든지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끔찍하고 상상하기도 싫은 사건이라도, 몇 개월만 지나버리면 모두가 다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좀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는 부부싸움의 경우에도, 사실은 반복만 하지 않으면 되는데, 분명하게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되풀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시간이 지나면 모두 다 잊어버린 것을 되풀이하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 진주야, 니 옷은 니가 좀 빨아라 !!

제 딸인 진주하고 진주모친하고 가끔 말다툼을 하는데, 물론 저하고 싸우지 않는데, 저는 그런 말이 떨어지기 전에 이미 다 한다는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밥을 먹을 때도 따뜻한 자리가 두 군데이고 찬 자리가 한 군데라면, 저는 제가 알아서 먼저 차가운 곳에 앉는데, 그렇게 하면 말썽의 소지가 없다는 말이다. 밥을 먹고 물이 없으면, 또 진주하고 진주모친하고 다툴 것이 분명하니, 먼저 제가 미리 떠다놓는다는 것이다.

지금 제가 저의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ㅋㅋ), 그렇게 아무리 방지를 미리 해도 서로 싸우는데, 그러면 제는 시간을 측정하는데, 그러면 5분만에 모두 다 사라지고 만다는 것이다. 분명히 이틀이나 삼일 정도는 갈 삐침인데, 그런데 이 두 사람은 희한하게도 5분만에 그렇게 하고 잊어버린다는 말이다.

◈ 이 세상에 심각한 문제는 없어 !!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이 세상에 심각한 문제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면, 마치 잉크에 물을 많아 부으면 잉크가 모두 묽어져서 사라지듯이, 그렇게 없어진다는 말이다. 세월도 이와 같은데, 세월은 마치 양동이에 담긴 물과 같아서, 세월이란 물을 부어버리면 다 없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냄새가 나는 것도 물과 섞어버리면 더 이상 나지 않듯이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시간에 희석이 되고 떠내려가면 그대로 두면 되는데, 그런데 그것을 다시 건져 올리고, 다시 찾아내겠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하, 그런 것이 있었지" 라고 하면 되는데, 그런데 따라가서 다시 찾아온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정말로 그렇게 되는지 내가 두고 볼 거야"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엄청 커지게 되니,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 질문 - 자기는 잊어버렸는데, 그런데 기억이 또 다시 떠오르면 어떻게 하나요?

그럴 경우에는 "아하, 그때 그랬었지" 라고 하면서 흘러보내라는 말이다. 지금 현재가 중요한 것이지 과거가 문제가 아닌데, 즉 과거는 흘러갔다는 말이다. 즉 우리가 살아가면서 너무 그렇게 과거에 연연해서 살라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 스가랴서는 묵시의 세계를 !!

아무튼 이 스가랴서에서 천사와 성령님이 성전을 짓는다고 하는 것은, 지금 제가 여기에서 '묵시'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시간'을 언급했는데, 묵시의 세계에서는 "힘 빼라, 힘 빼" 라는 것인데, 여기에서 이 시간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즉 "반드시 오늘 해야 한다" 라든지, 아니면 "내일 해야 한다" 라고 하는 것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오늘 하든지, 내일 하든지, 힘을 빼라.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고" 라고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묵시의 세계에서는 모든 계획이 이미 확정이 다 되었기 때문에, 그러니 그런 확정된 계획을 천사와 성령이 처리를 하기 때문에, 그러니 우리 인간이 무엇을 언제 어떻게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그런 쓸데없는 걱정 근심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힘을 빼고 살면 되는데,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계획을 하고 실행을 하시니 말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말이다.

◈ 학개서와 스가랴서 !!

앞에서 본 학개서의 경우에는,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는 계시지 않는다" 라는 것이고, 그러니 학개서의 성전은 자기 몸이라는 말이다. 즉 "내 인생은 더 이상 내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인생이다" 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스가랴서는 "힘 빼라. 사람이 아니라 천사와 성령께서 다 알아서 하신다. 그러니 니는 구경이나 해라. 그리고 시간에 대해서 너무 초조하게 여기지 말고, 일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니, 니가 굳이 거들지 않아도 돼" 라는 것이다. 그것이 아까 살펴본 4장 6절의 말씀이고 말이다.

마치 집에서 엄마가 설거지를 하는데, 아이가 와서 거든다고 하면 엄마가 뭐라고 하는가? "니는 저기 가서 만화영화나 봐라. 이것은 엄마가 다 알아서 할게" 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 바로 그러한데, 우리가 하려고 설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이 스가랴서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 목사님, 지금 석유가 다 떨어졌는데요?

그런데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여기에 대해서 꼭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는데, "교회당에 바닥에 장판을 교체해야 하는데, 그것도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합니까?", 혹은 "지금 난로에 석유가 떨어졌는데, 그것도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됩니까?" 라는 식으로 말이다.

◈ 천사와 성령님이 하시는 것은, 바로 구원문제 !!

이런 경우가 우리가 종종 당하기 때문에 이것이 중요한 문제인데, 천사와 성령님이 하시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의 '구원문제' 라는 것이다. 그러니 제가 지금 하는 이야기는, 이 구원문제에 관한 한 우리가 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힘 빼고, 손을 완전히 놓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손을 집어넣는 것이 문제이지 말이다.

지금 주께서 하시는 것이 영생에 관한 것인데, 그러므로 교회당 바닥에 장판이나 타일을 까는 것은 영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석유가 떨어지면 우리가 부지런히 채워 넣어야 하고, 자동차가 있으면 운전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청소도 열심히 해야 하고 말이다.

◈ 구원은, 인간들이 이미 구약에서 다 시도를 했지만 !!

이러한 구원문제는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상 아무 것도 없는데, 이미 구약시대에서 모두 다 해보았다는 것이다. 이 학개서에도 성전을 짓고 다 해보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하는가? 인간의 손으로 지은 것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는 말이다.

구약에서 그렇게 십일조도 드리고, 제사도 지내고, 절기도 지키고, 모든 것을 다 시도해보았지만 실패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거룩함과 성실함과 착함과 열심을 가지고 아무리 하려고 했지만 안 되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하고, 그 어떤 것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즉 성령으로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너무나도 명확한데, 그러니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구원문제에 대해서 "내가 이렇게 악한 짓을 했으니 구원이 되지 않을 거야" 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계획된 대로 확정된 상태로 변함없이 진행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것이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이다. 잘하면 주면 그런 표창장이 아니고 말이다. 100% 완제품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여기 있다. 받아라" 라고 하면서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구원문제는 흔들리면 안 되는데, 그럴 이유도 없고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예수님을 믿고 난 뒤의 삶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구원문제와 일상적인 일을 구별하지 못해서 그런가요?

구별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도 인간의 협조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마귀의 발상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이 없으면 하나님의 구원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이다. 구원을 받는 당사자가 바로 자기 자신인데, 그러니 본인이 협조하지 않는데 어떻게 구원이 되느냐는 말이다. 그런 말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인식이 구원도 마치 설거지를 하는 것과 같이, 인간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물론 그러한데, 하지만 자기가 설거지하는 것과 주님의 구원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전도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인간의 전도여부에 따라서 주님의 구원하심이 결정되는가? 그래서 사도바울이 그렇게 자기 목숨을 바쳐서 열심히 전도를 했는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믿음이 없으니 구원이 외부에서 마치 햇빛처럼 날아온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정말 그렇다고 믿어지게 되면, 그것보다 더 마음 편하고 기쁜 일이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자기는 도저히 믿어지지를 않으니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오늘밤에 당장 소리 없이 죽어도 천국에 가는데, 그것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그 기쁨소식을, 즉 복음을 전했다는 말이다.

* 질문 - 기존교회도 그런 사람이 간혹 있지요?

물론 있는데, 하지만 참으로 고난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하고 말이다. 언젠가는 주님이 그런 사람을 따로 불러내는데, 하지만 먼저 그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는 말이다.

* 질문 - 인간이 구원에 대해서 자기 역할을 요구하는 하는 것은 타고 난 것이지 않습니까?

물론 타고난 것인데, 천국에 가려면 그래도 자기도 마음대로 뭔가 한 것이 조금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오늘 아침(?) 설교가 그것인데, 그래서 제가 "그것이 바로 우리의 상식인데, 미안합니다. 성경은 그것과 다릅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 인간들의 상식에 대해서 항상 뒤통수를 친다는 것이다.

* 하나님 :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준다. 믿어라.
* 인 간 : 못 믿겠습니다.
* 하나님 : 그러면 니 마음대로 해라.
* 인 간 : 예, 해보겠습니다.
* 하나님 : 어디 되는지 한번 보자.
* 인 간 : ? ? ?

◈ 인간이 한번이라도 안식일을 지킨 적이 있던가?

하지만 이미 하나님께서 구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모두 다 해보았다는 말이다. 성전도 짓고, 십일조도 하고, 또 안식일도 지키고 말이다. 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과연 성공을 했는가? 그것이 아니라 모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단 한번도 안식일과 십일조를 지킨 적도, 드린 적도 없다는 말이다.

아무튼 이 스가랴서는 "제발 힘을 좀 빼라" 라는 것인데, 물론 이렇게 말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너무나도 좋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여기 스가랴서 3장 1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 옆에 누가 있는고 하니, 물론 대제사장 여호수아도 있지만 '사단'도 있다는 것이다.

(슥 3: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 인간의 죄를 가장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자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죄를 가장 적나라하게 알고 있고 지적하는 자가 누구인가? 물론 하나님은 빼고 말이다. 친구인가? 마누라인가? 목사인가? 누구인가? 바로 사단이란 말이다. 사단, 즉 악마는 우리의 죄를 지적함에 있어서 실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악마의 별명이 곧 '고소하는 자' 인데, 그야말로 소고하는데는 귀신(?)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악마는 우리가 미처 모르는 죄까지도 모두 다 알고 있다는 말이다. 지난밤에 꿈속에서 우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우리는 미처 꿈을 꾸었다는 것 자체도 제대로 모르지만, 그러나 악마는 그 꿈의 소상한 내용까지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욥을 누가 잘 아는가? 악마가 잘 아는데, 그래서 그 누구라도 악마가 고소하겠다고 하면, 거기에 대해서는 당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가롯유다가 다른 사람들은 다 속였지만, 예수님과 자기 속에 있는 악마는 속이지를 못했는데, 그래서 가롯유다는 자살을 했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기가 잘못했다고 뉘우치고, 또한 받은 돈도 돌려주었으니 얼마나 착한(?) 사람으로 보였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과 악마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악마가 인간 속에 있는 양심하고 상관이 있나요?

물론 악마가 양심은 아니지만 그 양심을 사용하는데, 즉 "니가 양심대로 살지 않았나? 그런데도 니가 신자야? 그러면서도 오늘밤에 죽어도 낙원에 간다고? 웃기지 마라. 니가 도대체 한 것이 뭐가 있다고 낙원에 간다는 말이야? 그렇게 예수님을 모독하면서 말씀에 어긋나게 살았는데도 천당으로 간다고? 그래도 어느 정도 말씀을 지키는 시늉이라도 좀 해야지. 뭐, 예수님의 공로로만 간다고? 웃기지 마라. 어디서 그런 거짓말을 배웠나?" 라고 말이다.

이러한 악마의 목소리가 기존 교회 목사의 입을 통해서 마구마구 터져 나왔는데, 그러고 그런 소리를 듣는 교인들의 입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멘' 이라는 소리가 드높고 말이다. 왜냐하면, 자기 속에 들어있는 악마와 그 궁합이 제대로 맞기에 말이다. 목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와 말이다.

◈ 여호수아야, 옷을 벗어라 !!

그런데 이 스가랴서 3장에 보면 어떤 장면이 나오는고 하니,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그 더러운 옷을 벗겨버린다는 것이다. 누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하시는가? 사단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여호수아가 입고 있던 더러운 옷을 벗겨버리고 새로운 옷으로 입힌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만 악마가 할 말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슥 3: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슥 3: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슥 3:5)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이것이 신약시대에 오면 성도는 예수님의 옷을 입게 되는데,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갈 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 성도는 자기 옷이 아닌,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 !!

다시 말해서, 성도는 자기 옷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지난 주일에 이 부분을 설교했는데, 그런데 스가랴서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겨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 입힌다는 것이다.

이것을 바로 악마 앞에서 그렇게 하는데, 그렇게 되면 악마가 더 이상 우리에게 고소할 것이 있는가? 없다는 말이다. 다만 성도에게만 말이다. 성도가 아니라고 하면, 하나님의 이런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누구의 똘마니가 되는가? 죽을 때가지 악마의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질문 - 자아와 악마는 어떻게 여겨야 하나요?

인간의 자아 속을 이미 악마가 점령했는데, 물론 믿지 않는 자들은 말이다. 하지만 성령이 오게 되면 악마가 떠나는데, 그러나 성령이 오지 않으면 계속해서 악마가 그 사람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 질문 - 하지만 성도의 자아도 악한 생각을 하잖아요?

그것은 주위에서 들은 것 때문에 그러한데, "이것은 나쁜 것, 저것은 좋은 것" 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또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항상 그러한 마음이 있고 말이다. 그래서 악마가 자꾸만 믿는 자를 유혹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악마는 무엇인고 하니, "니는 나쁜 짓을 했으니 끝났어. 예수님의 피로 도배를 해봐라. 해결이 되는지? 니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웃을 일인데, 그러니 너의 인간성으로는 도저히 안 돼. 그냥 포기해라. 너는 전혀 거듭나지 않았어" 라고 한다는 것이다. 악마가 그렇게 속삭인다는 말이다.

◈ 누가 너를 송사하리요 !!

그렇게 악마가 성도를 자꾸 협박하도록 허락하는데, 왜냐하면 성도로 하여금 악마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로마서 8장에 보면 "누가 너를 송사하리요" 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러니 결코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롬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 신앙은 교회생활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

이렇게 되면, 신앙은 전혀 교회생활과는 상관이 없는데, 교회생활은 그냥 변죽이고(?), 즉 우리의 움직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진짜 핵심은 교회생활이 아니라, 즉 예배시간에 지각을 하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니라, 헌금을 하고 말고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신앙생활은 "도대체 내가 무엇을 믿는가?" 라는 것인데, 즉 "내가 어떤 사실을 받아들이는가?" 라는 것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일주일에 교회에 몇 번을 나가고, 전도를 몇 명하고, 또 예배당 청소를 얼마나 열심히 잘하고 하는,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사실을 자기의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가? 아니면 그냥 참고사항으로 듣고 마는가? 그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자기 양심이 있으면 최선을 다해야지" 라고 나온다면, 그것은 정말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런 자는 결코 악마의 종의 위치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가 평소에 하는 말이, "제발이지 좀 뻔뻔스러워지세요" 라는 것인데,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그런 창녀의 위치에까지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어떤 특정집단을 가두어놓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면 어떻게 되지요?

그래도 역시 안 되는 놈들은 안 되는데, 오직 성령이 임해야만 되는 것이지 말이다. 즉 복음을 전하는 것과 성령이 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그런 복음의 소리를 듣고 '아멘' 이라고 해도, 외부와 조금이라도 접촉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역시 나는 안 돼. 겨우 몇 일도 가지 못해. 그러니 더 이상 나에게 믿음을 강요하지 마세요. 도저히 안 되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 이제는 예수의 십자가 이야기는 그만하고, 차라리 편안하게 '착한 일을 하면 좋은 곳에 가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곳에 간다' 라고 하세요. 그러니 이제 그만 합시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 질문 - 지금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런 사회적 논리(?)가 너무나 어려서부터 주입이 되어서, 그것이 지금 목사님의 말씀하시는 논리와 너무나도 상반된 것이기에 받아들이기가 곤란하지 않나요?

물론 서로가 전혀 엉뚱한 논리이지만, 그러나 성도는 그런 것을 다 알아야 하는데, 이 세상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교회에 나오는지 말이다. 그러한 불신자들의 모습을 알아야, 현재의 자기 모습과 비교가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런데 완전히 밀폐된 공간에서 복음의 말씀만 가르치게 되면요?

결국은 주께서 다 알아서 하는 것인데, 자기들만의 밀폐된 공간이 문제가 아니라 말이다. 자기들끼리 모여도 그것이 사회이니, 결국은 택함을 받은 자만 구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환경이 문제가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 세상의 것으로, 즉 자기가 잘나서 구원을 받는, 그런 재미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저 자신도 성경말씀을 보면서 저 자신에 대해서 깜짝 깜짝 놀라는데, 그 성경말씀이 믿어진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인데, 그런데 뻔뻔스럽게도 믿는다는 것이다. 남들처럼 나쁜 짓은 똑같이 다해놓고, 그런데 공짜로 날름 먹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아무튼 목사님의 강의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데요?

그것이 놀라운 사실인데, 어떤 사람은 제가하는 강의가 도저히 귀에 거슬려서 도저히 듣지를 못하겠다고 하는데, 또 어떤 사람은 편안하게 들으면서 숙면을 취한다는 것이다(ㅋㅋ). 아무튼 그런 공짜로 먹으려고 하는 것이 신앙인데, 다른 사람들은 악마에 휩쓸려서, 이 악마는 항상 우리를 착하다고 꼬드기는데, "최선을 다하고, 완벽해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 아, 똥 산 기저귀 ??

그러나 여기에 반해서 복음은 어떠한가? 우리 인간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뻔뻔스럽다는 것이다. "낯짝이 아무리 두꺼워도 그렇지 어떻게 그것을 받아들이는가?" 라고 하는데, 성도는 그런 낯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갈아치웠으면 우리는 기저귀를 갈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부끄럽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성도는 아무리 똥을 사도, 그러한 똥 산 기저귀가 없는데, 주님께서 다 갈아치웠으니 말이다. 그것도 최후의 적인, 최고의 고소자인 마귀가 보는 앞에서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누가 하는가?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가? 아니라는 것인데, 그것을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스가랴서가 보여주는데, 오직 천사가 하고, 성령으로 한다는 것이다. 즉 성령으로 하시는데, 그것이 천사와 도와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이 아니고 말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 천사가 찾아오고 하는데, 사도바울이 성령의 능력으로 옥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천사가 와서 열어주면, 사도바울은 그냥 나오면 된다는 것이다. 베드로도 천사가 감옥 문을 열어주어서 나왔고 말이다. 예수님께서 부활을 하시고 난 뒤에 그 사실을 제자들에게 누가 가르쳐주었는가? 그것을 천사가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천사는 엄청 바쁜데, 우리들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말이다.

* 질문 - 성령이 계시는데, 천사의 역할이 또 따로 있나요?

사람이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렇게 천사가 하는 것도 성령께서 다 하신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성령이 천사를 부리니 말이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시도요한에게 천사가 오는데, 그 천사의 주의 성령이 보내었다는 것이다. 성령에 감화되어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데, 마치 성도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일을 주의 일을 하듯이 말이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잊어버렸지 싶어서 다시 반복하는데, "왜 천사가 합니까?" 라고 질문을 하면, 무엇이라고 답변을 해야 하는고 하니까, "인간이 했는데 이미 구약에서 실패를 했다" 라는 것을 먼저 이야기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힘을 빼라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의 힘으로 하면 반드시 실패를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렇게 실패를 하면서도 꼭 자기 자랑을 빼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결국에 구약성경에 말씀하는 것은, "너희 인간들은 이미 실패를 했으니, 더 이상은 설치지 마라" 라는 것이네요?

물론 그러한데, 그 실패라는 것이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즉 영생을 주는, 하나님의 의(義)에 관한 문제는 손을 빼라는 말이다. 인간은 항상 그런 실패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니 무엇을 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에게서만 나오고, 그것을 성령을 통해서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 마귀는 성도를 고소해도 효과가 없어 !!

그러니 이 하나님의 의가 성도에게 있는 이상, 마귀는 성도를 고소할 수가 없는데, 하나님의 의(義)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의인이 되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예수님에게 나온 것이지, 우리 인간의 행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교회당 바닥에 타일을 붙여야 한다고 하면, 그런데 타일을 부치는 것하고 예수님의 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바닥에 타일을 제대로 못 붙인다고 예수님이 주신 의가 없어지는가? 그것은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물론 타일을 잘못 붙이면 보기 싫으니 제대로 붙여야 하고 말이다. 삐딱하게 붙여야 구원을 받는다면 몰라도, 그러니 타일은 반듯하게 하면 보기 좋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구원과 상관없이 열심히 사는 것인가요?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것인데, 공부도 열심히 하면 죄를 짓고, 피아노도 열심히 치면서 죄를 짓고 말이다. 부부생활도 마찬가지인데, 서로가 열심히 죄를 짓는 것인데, 그래서 상호기만, 상호위선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보시게 완벽하지 않다는 말인데, 그래서 죄라는 것이다.

* 질문 - 이렇게 성경을 조금만 봐도 성경이 우리의 죄를 고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런데 그것을 우리는 그것을 기존 목사가 가르친 데로 "무엇을 하라" 라는 것으로 여겼으니, 얼마나 기가 찰 노릇인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목사님, 그렇지요?

성경에서 "너희는 거룩하라" 라고 하니, 그래서 목사들은 "여러분, 거룩하세요" 라고 한다고 주장하는데, 하지만 성경에는 이미 '거룩하라' 라는 것에 대한 기준이 이미 나와왔는데, 그 기준을 빼버린다는 것이다. 무엇이 거룩한고 하니, 예수님을 믿는 것이 바로 거룩인데, 그런데 목사들이 자기가 생각하는 거룩을 그 기준에 가져다댄다는 것이다. 자기가 예수도 아니면서 말이다.

* 목사 : 여러분, 거룩해야 합니다.
* 성도 :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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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30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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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