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삼상 9: 1- 4 (사울의 시작)우리교회사무엘상

삼상 9: 1- 4 (사울의 시작)

이름 : 우리교회(IP:124.59.86.24)

본문 : 사무엘상 9장 1- 4절
제목 : 사울의 시작
듣기 :
, 보기 :

이근호

08-11-30 21:07

사울의 시작

2008년 11월 30일 본문 말씀: 사무엘상 9:1-4

(삼상 9:1)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라 베냐민 사람이더라』

(삼상 9:2)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

(삼상 9:3) 『사울의 아비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한 사환을 데리고 일어나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하매』

(삼상 9:4) 『그가 에브라임 산지와 살리사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고 사알림 땅으로 두루 다니되 없고 베냐민 사람의 땅으로 두루 다니되 찾지 못하니라』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따로 뽑아놓으려는 생각들을 갖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기적과 하나님의 기적이 아닌 것, 혹은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을 구분지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런 판단을 할 자격이 인간에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일생을 살면서 어떤 사건이나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실은 내가 ‘만나 준다’가 아니라 ‘나타남’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만남’일 경우에는 나 자신은 그대로 인데 상대가 새롭다는 인상을 주지만, ‘나타남’으로 이해하기 되면 그 ‘나타남’으로 인해 나 쪽의 일생이 새로운 해석과 의미가 가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과 더불어 십자가졌던 강도는 마지막 순간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생각하소서”(누가복음 23:42)

강도의 입장에서 볼 때에, 예수님은 자신의 죄악된 지난 일생이라도 충분히 예수님의 나라에 합세할 수 있는 일생이 될 수 있다고 해석을 해버리는 겁니다. 이는 곧 단순히 자신이 예수를 만나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자기를 위해서 ‘나타나 주신 것’으로 여기는 겁니다. 더 나아가서 자기를 위한 자기가 아니라 자기 같은 일생도 얼마든지 주님을 기쁘게 하는 주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즉 사람이 자기에 대해서 어떤 해석과 의미를 주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이 그 인간에게 덮쳐버리면 하나님의 일로 제대로 해석되어진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이 그러합니다.

집에 기르던 암나귀를 잃어버려서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끝까지 그 암나귀 찾아와야 하는 사울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의 미래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지루한 일상에서 일어난 대수롭지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대수롭지 않는 일이 실은 백성들이 들고 나오는 요구사항과 관련성이 있습니다.

‘대수롭지 않는 일’이 어떤 인물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기브아라는 마을에서 떠날 이유가 없는 어떤 청년이 자기 마을을 떠나서 본의 아니게 사무엘 선지자가 머무는 라마라는 동네까지 오게 됩니다. 직선으로 간 게 아닙니다. 선지자를 만나야겠다는 목적을 두고 간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와 대면하겠다는 그 목적조차도 이 청년의 뜻으로 조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대수롭지도 않는 일에 종사할 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을 했을 뿐입니다. 본인이 구상하지도 않았고 계획하지도 않은 일에 그는 말려든 것입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이 알고 있는 일과 목적은 결국 하나님께서 벌리시는 일의 목적에 이르는 노선 위에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지루한 일상생활에서 나름대로 보람과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그 일에 매진하다고 자기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다른 일을 꾸미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지루한 일생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보기기에 그냥 백수일 뿐입니다. 그런데 자꾸만 자신도 예상 못한 일로 빠집니다. 뭔가 자신의 계획과 뜻을 가로막은 세력이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내 인생’. ‘내 몸은 내 것’이라는 주장은 모두 헛 주장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그저 본능에 충실하면서 살 뿐입니다. 자기 힘으로 되어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일이 안 되고 있다는 경우도 전혀 없습니다. 뭔가 일은 되어지는데 그 와중에서 자꾸만 자신의 계획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이었던가요? 그 점은 사무엘을 만나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 사무엘이 하나님 계획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다른 모든 인물들은 이 중심을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15-16절에 보면, “사울의 오기 전 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가라사대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아 보았노라 하시더니”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 점을 신기해야 할 것이 아니라 왜 사울이라는 사람은 사무엘이라는 사람이 알고 있는 바를 몰랐어야 했느냐 하는 점입니다. 왜 다같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께서는 중심점을 따로 두고 계시느냐 하는 점입니다. 그 점은 사무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울이 불쑥 사무엘을 찾아왔다면 사무엘은 그저 암나귀 찾고 싶어서 자기에게 점치려온 사람으로만 알게 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무지하기에는 사무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는 사무엘하고 의논해서 사울을 사무엘에게 몰아넣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 암나귀나 걱정하는 사울이나 선지자 노릇하고 사무엘이 전혀 하나님 보시기에 그냥 놀고 있는 자에 불과합니다.

백수들이지요. 물론 자기 딴에 정기적으로 반복하는 일상적인 일들이 산재해 있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산당에 올라가서 제사들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이 흔히들 해내고 있다는 그 ‘하나님의 일’은 전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저 자기 일상의 일일 뿐입니다.

그것은 한다고 해서, 혹은 안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망쳐지는 일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이러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일은, 인간들이 종교적으로 보이는 일이라든지, 생계에 관련된 사업을 하든지 간에 각자 일상적인 일에 몰두하면서 전혀 그 일과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일의 주체에서 인간이 배제됨을 뜻합니다. 백성들이 왕을 달라는 그 요구조건 또한 인간들의 타고난 일상적 사고방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이란 그런 인간들의 일상성 속에서 피어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하는 일에 의미를 담으려고 합니다. 제 딴에 중요하고 대단히 중요하다고 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는 곧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는 말은 자신들이 내뱉은 요구사항이나 의지도 신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의 뜻은 하나님에게 받아져서 참으로 중요한 계획을 위해 소모되는 중요한 요구조건이 됩니다.

문제는 부정적으로 쓰여진다는 겁니다. 즉 “절대로 저런 식으로는 살아서는 안돼”를 보여주는 것이 인간들의 일상적인 일들입니다. 이 점을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계획은 차질없이 이루어져가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왕을 구했다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모독하는지 인간들은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그저 그것조차 지루한 일상적인 일이요 평소에 품고 있었던 속마음이기도 합니다. 』

하지만 그런 포부가 하나님의 뜻에 준해서 철저하게 무시당할 때, 이것보다 더 신나는 축복이 또 없을 것입니다. 부정적으로나마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고 있다는 드러나는 그 틈새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수 벌리시는 작업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이런 식으로 서로를 부정하는 상황 안에서 만나게 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자기 나름대로의 의미를 두지 말게 하옵소서. 단지 자신이 하는 일이 자신의 죄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일로 보게 해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68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6,967 강의 [죽은 신을 위하여 ]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8-12-03
6,966 우리교회 [일반] 철학과 신학의 허상 시리즈-죽은 신을 위하여 [철학] 최고관리자 08-12-03
6,965 우리교회 사 63:15-19 (주의 성소) 이사야 최고관리자 08-12-03
6,964 강의 부산 12월 2일 조지래드24 교회론 (유기체 냐 vs 사건 이냐) [신학] 최고관리자 08-12-02
6,963 자유게시판 고린도전후서 녹취록 재발간 - 최고관리자 08-12-02
6,962 자유게시판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9-구약총정리(강의정리) - 잘린부분 마태복음 최고관리자 08-12-01
6,961 자유게시판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9-구약총정리(강의정리) 레위기 최고관리자 08-12-01
6,960 자유게시판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8-학개,스가랴,말라기(강의정리) 말라기 최고관리자 08-12-01
6,959 자유게시판 08대구강의14-실존주의철학(샤르트르와야스퍼스의사상)2 - 잘린부분 [철학] 최고관리자 08-12-01
6,958 자유게시판 08대구강의14-실존주의철학(샤르트르와야스퍼스의사상)2 [철학] 최고관리자 08-12-01
6,957 우리교회 [주보] 12월 7일 주보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8-11-30
열람 ➜ 우리교회 삼상 9: 1- 4 (사울의 시작)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08-11-30
6,955 설교 마가복음 9장 9-13절 제목 : 예수님과 엘리야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8-11-30
6,954 우리교회 막 9: 9-13 (예수님과 엘리야)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8-11-30
6,953 강의 광주 11월 28일 딤전 5장 24절, 6장 5절 디모데전서 최고관리자 08-11-29
6,952 자유게시판 20081114-(2) 서울강의녹취 : 에베소서 제 24강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08-11-27
6,951 자유게시판 20081114-(1) 서울강의녹취 : 에베소서 제 23강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08-11-27
6,950 우리교회 사 63: 7-14 (모세의 날) 이사야 최고관리자 08-11-26
6,949 묻고답하기 고린도전후서 녹취록에 관하여 - 최고관리자 08-11-25
6,948 강의 대구강의 11월 25일 불교의우주론과구원론(관-구선) [신학] 최고관리자 08-11-25
6,947 자유게시판 이태현목사님 사경회 인터넷 생방송안내 로마서 최고관리자 08-11-24
6,946 자유게시판 08대구강의13-인간구원을위한신학3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8-11-23
6,945 우리교회 [공지] "08 십자가 마을 겨울 수련회장 찾아가기 아가 최고관리자 08-11-23
6,944 우리교회 [주보] 11월 30일 주보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8-11-23
6,943 우리교회 삼상 8: 4- 9 (왕 제도)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08-11-23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