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행 2" 14-21 (말세의 영)
Re..행 2: 14-21 (말세의 영)
이름 : 이근호(IP:)
말세의 영
2003년 10월 22일
본문 말씀: 사도행전 2:14-21
2:14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2:15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2: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2:18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2: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일은 항상 확정된 규격과 체계와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호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 확정된 체계를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가 오십니다. 예를 들면, 성도들이 보이는 자연 세계의 현상 유지에 대해서 궁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창세기 9:9-12에 보면,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라는 내용 속에서 이미 하나님의 확정된 자연 세계 관리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에 대해서 취소할 의사가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꼭 이대로 하실 분입니다. 제가 왜 설교 초반에 이 말씀을 하느냐 하면, 오늘 본문에서 '말세'라는 말이 나오고 거기에 따른 현상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오늘날 이 시대가 말세에 속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조차 결코 우리 인간들 입장에서 결정지어서는 아니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말세를 어떻게 결정지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확정해 놓으신 말세에 대한 체제에 의해서 그냥 때가 되매 등장된 것 뿐입니다.
즉 말세의 시점을 사람들에게 물은 것도 아니요 하나님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그저 확정된 뜻에 따라 실시된 것 뿐입니다. 그러니까 말세가 되었으니까 성령을 받아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 말세라면 당연히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반대로 성령님이 사람들에게 주어지면 누가 뭐해도 이 세상은 말세에 돌입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말세의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이미 우리가 말세의 문턱을 넘어선 사람답게 거꾸로 세상을 회상한다는 마음으로 세상사를 대하셔야 합니다. 예를들면 가정에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전에 같으면 "하나님 이 문제를 꼭 해결주셔야 제가 이 땅에서 사람사는 것 답게 지낼 수 있습니다"하고 징징그리면서 기도하지만,
문턱을 너머 이미 말세에 접어든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아주머니 그 일을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시시한 일에 해당됩니다. 너무 염려마세요"라고 충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 있어 성령을 받은 사람은, 모이기에 힘쓰고, 서로 나누어 주며 살고, 복음을 위하여 은연하게 순교할 수도 있었으며, 그들이 모일 때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간곡히 희망했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이미 세상의 문턱을 넘어선 자들이 보여주는 자유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자칫 다음과 같이 오해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즉 보이는 현상을 가지고 자신의 신앙을 재정립하려는 자들은 다음과 같이 의문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자주 안모이고, 나누어줄 줄 모르고,세상 근심사에 묻혀 있는 사람은 성령을 못받은 자로 분류시켜 지옥간다고 말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에 있었던 요엘선지자의 외침이 베드로 입에서는 어떻게 바뀌어지는 가를 살펴야 합니다. 요엘 2;29에 보면,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거기는 성령이 나오시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신께서 나타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는 성신의 시대가 아니라 성령의 시대인 것을 아셔야 합니다. 성령님이 보여주고자 하는 모든 일의 취지가 성신을 말씀하던 시대와 다릅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성신과 신약의 성령이 어떻게 다를까요? 구약의 성신은, 하나님이 언약 상대자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언약의 주인공이 인간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신은 이 언약 주인공들을 잘 지켜주는 보조적 역할에 머뭅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령은 다릅니다. 이미 하나님 보시기에 유대민족은 언약을 완성할 수 있는 민족으로서 자격이 박탈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그 어떤 분이 오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하늘이 열리면서 거기서 누군가 오셨지요.
그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모든 하나님의 뜻은 바로 이 분에 의해서만 완성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오직 성령님의 주도 하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 분의 모든 능력과 권능이 전부 성령님의 힘으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뒤, 이 성령님께서 개인에게 떨어질 때에도 예수님의 영으로 임재하게 됩니다. 결코 구약 때 '성신'이 계시는 식이 아닙니다. 성신은, 율법을 지키게 하고 그 율법 정신을 간직하게 만드는 신이시지만, 신약 때의 성령님은 오직 예수님만을 증거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언이나, 환상이나 꿈의 실질적인 내용은 오직 하나, 예수님이 바로 그 구원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라는 점에 모아집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 요엘 2:32에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되어 있지만 예수님께서 오신 그 이후부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19-20절의 내용은 어떠합니까?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이점을 알기 위해서는 요엘 2:1-2를 보셔야 합니다.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찌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같은 것이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
여기에 보면 '여호와의 날'이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하나님의 선지자는 자꾸 말세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도 덩달아 말세를 기다리게 되고 말세에 대해서 낙관적인 생각을 갖게 됩니다. 즉 "마지막 때가 있데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대단히 신나겠지, 그지?'라는 편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때가 '여호와의 날'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여호와께서 직접 나타나시는 날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호와라는 하나님께서 천국의 문을 열어놓고 우리 인간들이 그 열린 문으로 단체로 노래부르면서 천국에 살려고 들어가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날이 아니라 직접 여호와께서 이 추잡고 더럽고 죄악으로 숨조차 못쉬는 이 세상에 뛰어내려오시는 날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거룩한 여호와와 더러운 인간의 만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참으로 경악스러운 사태가 벌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저 뜨거운 태양이 만약 이 지구상공까지 접근한다면 지구는 불바다로 돌변하겠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직접 이 지구에 나타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참담하고 참혹한 저주의 징벌이 온 지구상에 닥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거룩한 여호와 앞에서도 버틸만한 거룩한 사람이 누가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모든 사람은 다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구는 산산조각나야하고 하늘도 땅에도 다 해체되어야 마땅합니다. 그 여호와께서 직접 이 세상을 방문하는 날이 말세요, 세상이 끝장나는 날입니다. 이래도 신납니까? 이래도 감히 거룩한 하나님을 반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반가운 소식이 베드로의 입에서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이 이미 오셨다'는 소식입니다. 말세에 성령이 오게 되면 어떤 혜택이 주어지느냐 하면 바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이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구원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시는 줄 아십니까? "휴유-"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만큼 아슬아슬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뜻입니다. 그야말로 구출되지 아니하면 구출될 수 없었더라는 말입니다.
마치 니느웨성의 심판을 감행하기 전에 요나 선지자의 심정으로 베드로는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요엘서에 나오는 말씀, 즉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라고 말씀에 유념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아예 주의 이름을 찾고 부를 수 있는 능력조차 없었는데 마침 그 성령께서 말세에 나타났다는 겁니다. 요엘서에서 하나님의 신이 하시는 역할을 순전히 여호와의 이름을 찾고 부르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요엘서에는 '여호와의 이름'이라고 되어 있지만 오늘 본문 21절에 보면, '주의 이름'으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그 여호와 되시는 분이 곧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혜택을 입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이 세상을 제대로 말세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꿈이나 예언이나 환상이란 일종이 특권자의 자격을 뜻합니다. 그 내용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미 세상을 벗어난 사람의 눈을 가지고, 오직 예수님 아니었으면 이 세상과 더불어 멸망할 뻔했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자유요, 성령 안에서의 자유입니다. 특히 기쁜 일은 이 성령 오심이 개인적인 자격심사를 해서 성적대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께서 임의로 정해진 자에게만 해당되도록 주신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런 기쁨을 안고 살아가는 성도가 이 세상이 예언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을 버리고, 심지어 자신의 자존심조차 부서진다해도 상관없는 삶을 주신 예수님께 성령 안에서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