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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산 11월 14일 강의 고후 11장강의고린도후서

안산 11월 14일 강의 고후 11장

이름 : 우리교회(IP:124.59.86.24)

081114 인간의 자기열심 vs 하나님의 열심

우리교회(IP:124.♡.86.24)

08-11-15 14:02

관리자(IP:220.♡.41.203)

10-11-03 15:57

http://media.woorich.net/신학강의/2008안산/안산081114고후11장1절.hwp
http://media.woorich.net/신학강의/2008안산/안산081114고후11장1절.pdf

관리자(IP:220.♡.41.203)

10-11-03 15:58

안산081114고후11장1절

2010-11-02 09:08:54 녹취 : 박온정

안산081114고후11장1절, 인간의 자기열심 vs 하나님의 열심a /이근호 목사

오늘은 고린도후서11장1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거기 11장2절에 보면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열심 내노니” 이렇게 돼있죠.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니, 사도의 열심은 개인의 열심이다? 아니다? ‘아니다’ 보통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는 건 누구위한 겁니까? 자기위하잖아요. 그런데 여기 보니까 사도가 열심히 하는 것은 누가 있기 때문에? 너희들이 있기 때문에 하고, -한번 적어봅시다 -

첫 번째, 지금 열심을 내는데 지금 성령 받은 사도의 열심과 그렇지 않은 일반사람의 열심을 비교해보자 이 말이죠. 성령 받은 사도의 열심은 뭐냐 하며는, 첫 번째는 누구를 위하여? ‘너희를 위하여’ 성령 받지 않은 육적인 사람들은 다 누구 좋아라 하는 겁니까. 다 자기 좋아라 하는 거죠. 자기 좋아라 열심 내는 겁니다. 이 열심 이 사도바울은 뭐냐 하며는,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는 거죠?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는 거고, 세상 사람들은 어디에 열심이냐 하며는, 역시 누구 열심입니까. 자기 열심 이죠.

자기열심과 하나님의 열심의 차이점이 뭐냐 하면, 세상적인 것은 자기열심인데 이 경우에 자기가 ‘에이, 때려 치워!’ ‘에이, 나 하기 싫어’ 이러면 끝나는 거예요. 자기열심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자기열심이 아니기 때문에 ‘에이~ 때려치워,’이럴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은 자기 일을 중단하는 법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첨부터 자기열심 같으면 지쳐가지고 ‘에구, 못하겠습니다,’ 이래 나오는데 사도의 열심은 뭐냐, 하나님의 열심 이 자기에게 주입되기 때문에 자기는 논스톱nonstop! 멈출 수가 없어요.

목회하다가 하기 싫으면 그만두지, 이러는 수가 없어요. 하기 싫으면 그만이지, 하는 것은 결국은 첨부터 자기를 위한 목회였죠. 목사 자기를 위한. 그런데 사도는 자기가 아니고 누구를 위해서? 너희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그렇게 했어요.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자기열심 자기실력 끄집어내는 것에 비해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열심’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쪽 세계를 영적세계로 보고 일반 사람들 세계를 육적세계로 보는 겁니다.

우리가 이 성경공부를 하는 것이 세상적, 육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성경공부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된다고 하나님이 먼저 이야기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조금 어려운 거 해봅시다. 고린도전서 녹취돼 있거든요? 책을 누가 갖고 있냐 하면 정목사님 갖고 있어요. 책을 주문해서 주시기로 했는데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오늘 잊어버리고 안 가져왔답니다. -새로 나왔어요.- 거기에 보면 무슨 내용이 뭐라고 되어 있냐 하면, 거기에 보면 고린도전후서가 창세기와 계시록사이에 끼어있다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고린도전후서는 창세기와 계시록 중간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고린도전서만 하면 되지 뭘 창세기와 요한계시록까지 하나,’ 이러시면 안 된다 말이죠.

성경 이게 전체라면 창세기 있고 요한계시록 있고 고린도전서가 가운데 있다 그 말이죠. 무슨 얘기냐 하면, 방금 전에 제가 육적 영적 구분했잖아요? 두 번 다시 안 해도 되지요? 영적인 것은 하나님의 열심으로하고 육적인 것은 자기노동으로 한다는 이걸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뭐냐면, 고린도전서 앞에 뭐가 있냐면, 예수님의 생애가 있어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예수님의 생애 안에서 방금 전에 이야기한 사도바울의 열심을 가지고 예수님은 뭐라고 하는지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여러분들 다 아시는 거예요. 마태복음6장에 보면 나오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 입을 것 먹을 것 구하는 것은 누가 한다? 입을 것 먹을 것 근심 걱정하는 것은 누가 한다?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고 너희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됐다 말입니다.

이걸 그대로 여기 안산시내 시민들에게 적용시켜 봐요. 길가는 사람에게 ‘무엇 때문에 사십니까’ 물어보라고요.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를 위해 살잖아요. 이미 예수님께서 이야기한 취지가 무엇이냐 하면요, 예수님께서 이방인들과 육적인 사람들과 앞으로 영적인 사람들을 구분짓는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말이지요. ‘에구, 사람 똑같지요,’ 우리 식으로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지 마세요.

‘사람 똑같죠 뭐, 성령의 뜻을 아는 사람과 약간 모자라는 사람 그 뿐이지,’ 그게 아니고, 영적인 사람 따로 있고 육적인 사람 따로 있다고 제가 얘기한 게 아니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했다 말이죠. 육적인 사람은 무엇을 입을까 마실까 염려한 사람이고, 영적 사람 하늘의 백성은 그 나라와 의를 구한다 이 말이죠. 나는 영적인 사람이라고 할 때 목사가 됐든 집사가 됐든 그런 거 다 떼버리고요, 목사라 할지라도 도대체 그 사람 목회해서 뭐하려고 하는데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그것 가지고 목회하는 사람은 육적인 사람이고 목회를 안 해도 좋아요. 그 나라의 의를 구하면 백수라도 그 사람은 어디 사람이라? 하나님의 백성이라. 이게 예수님의 뜻입니다. ‘나 지금 몸이 아프다.’ 주님께서 ‘어쩌라고?’ ‘몸이 아프니까 낫게 해주…’ 그런 걸 원하지 마세요. 왜냐면, 영적인 사람은 몸이 아픈데 나았다, 그게 아니라 아프든 안 아프든, 설령 몸이 저절로 낫더라도 그 나라의 의를 구하고 있어야 돼요.

‘구한다’라는 말은 ‘…저쪽에 있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여기 혹시 우체국 어디 있습니까,’ 하면 ‘저쪽에 있습니다,’ ‘혹시 미장원 어디 있습니까,’ ‘저쪽에 있습니다, 봤습니다.’ 봤습니다. 나 저쪽에 있는 거 봤습니다. 그 나라와 의는 어디있다고요? ‘저기 있는 것 봤습니다,’ 그 나라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사시면 영적인 사람입니다. 가정 형편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수능을 잘 봤든 못 봤든 상관없이! (아멘)

이것이 우리가 유심히 보면 예수님의 그 구분이 사도바울 편지 속에 고린도교회에서는 어떻게 구원이 되어 지느냐 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바로 서두에 끄집어낸 겁니다. 육적인 사람은 자기열심으로 살고 영적인 사람은 주의열심으로 살고. 육적인 사람은 자기를 위해 살고 영적인 사람은 사도바울 같은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같은 성도를 위해 산다’ 이 말입니다.

갈라디아서6장에 다 아시는 말씀이지만 또 해보면 새롭게 되요. 6장8절에 이런 말씀 있습니다.『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거기 보면 그냥 육체가 아니고 앞에 뭐가 붙어있죠? 뭐가 붙어있습니까? ‘자기’죠. 남의 육체가 아니라 자기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뭘 거두고? 이 말이죠. ‘썩어진 것을 거두고,’

이걸 연극이나 뮤지컬 하듯이 하면 돼요. 심는데 어디에 심느냐 하면, 자기육체에다 심는 자는 거기서 뭐가 맺힌단 말입니까. ‘썩어질 것’이 맺히잖아요. 썩어질 것이. 그러면 결국 자기 육체가 뭐다 말입니까.ㅋㅋ 썩었다는 이야깁니다. 그 뒤에 나오죠? 자기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두고. 그 다음에 뭡니까.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뭘 거두고? ‘영생’을 거두고…

영생을 거둔다는 방법이, 영생을 얻는 방법이 성령 외에는 있다? 없다? 없다! 이 말이지요. 성령 외에는 없대요. 성령 외에는 영생을 얻을 방법이 없다 이 말이지요. 성령을 위해서 심지 않으면 없다, 이 말이죠.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을 위해서 심는 자가 아니면 반드시 자기 육체를 위해서 심는 자고 자기육체를 심는 자가 아니면 반드시 성령을 위해서 심는 자고. 그 중간에 제3의 지역은 없다. 없어요. 또 아니면 흑 아니면 백이고 어둠 아니면 빛입니다.

지금 <피>라는 책을 인쇄 들어갔습니다. 예상하기로는 다음 주 금요일 정도에 나온다고 하는데 피 다음의 책의 제목을 미리 한번 정해봤어요. <소금> 오늘날 맛이 갔거든요. 사람들은 교인이 몇 명이냐 헌금이 얼마냐 이야기하는데 정작 중요한 건 ‘맛’이 갔어요. 맛이 가면 사람한테 어떻게 된다고요? 밟힐 뿐이니라. 아무 쓸모 짝에 없어요. 사도바울은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낸다고 하는데 자기한테 심는 그곳도 맛이 갔어요.

지금 이걸 볼 때 한 달 만에 안산에서 이런 이야기하는데 결국 사람이 세상 흘러가는 대로 가게 되면 자연적으로 그건 넓은 길이고 각자 자기를 위해서 심는 그러한 사람들만 만나뵙게 될 것입니다. 주위에. 아예, 티브이 켤 때부터 나오는 것이 그거예요. 버락! 오밧!마가 됐든지 김정일이 됐든지 이명박이 됐든지 티브이 켜면 나오는 게 전부다 뭐냐, 동서남북 사방 전체가 자기를 위해서 자기 육체를 위해서 심는 그런 행패와 삶의 모습과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는 집단 속에 우리가 한 달 동안 우리가 보내고 있습니다.

천사가 펀드 내려간다고 자살할까요? 택도 없는 소리죠. 주식 폭락한다고 천사가 술 먹고 우울증 걸리겠습니까. 아니지요, 아니지요. 그런데 성도는 천사보다 월등하다 했거든요.
오히려 천사가 성도 귀한 걸 알고 성도 심부름꾼으로서 하나님께서 누굴 붙여주느냐 하면 보디가드 식으로 천사를 보내준 겁니다. 보디가드가 이 세상 것을 훌쩍 뛰어넘으면 하물며 성도라면 그 이상이 돼야 되겠죠. 하나님의 열심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자기열심은 지칩니다.

교인 몇 명 나왔다 들어왔다 그런 것은 따지고 보면 내부의 하나님 사랑이 아니고 자기사랑이 자기 육체를 심겠다는 그런 의미가 강하죠. 그러면 고린도후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이제부터 제가 어려운 게 아니고 성경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좀 어렵게 해보겠습니다. 자, 2절 한번 봅시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이렇게 돼있죠. 열심은 내는데 그 열심내는 목표가 뭘까요.

열심 낼 때 무조건 열심내지는 않을 거고, 분명히 어떤 목표점 도달점을 예상하고 열심 낼 텐데 이건 사도바울의 열심은 하나님의 열심인데 하나님의 열심이 사도열심으로 바뀌어서 열심 내는데 그 목적이 무엇이냐가 2절 끝에 나와 있어요. 그 목적이 무엇이냐를 보게 되면 뭐가 되겠습니까.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에게 드리려고, 그 다음에 무슨 말 나오죠?

그 다음에 ‘중매’ 한다. 중매하고자 사도바울이 자기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중매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일부러 붙여주었다. 사도바울 없이는 중매가 성립 안 된다 이 말 아닙니까. 사도바울 뒤에는 성령님 계시지만…그러면 중매하기 전에, 중매하기 전이라면 우리는 혼자 사는 처자. 요새는 처녀라 하지요? 처자는 남편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중매 이후에 결혼하면 남편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지요.

그렇다면 봅시다. 남편 없는 상태에서 뭐로 바뀐다? 남편 있는 상태로 바뀌는데 이것이 육적인, 자기 육체를 위해서 심는 결혼은 아니에요. 왜! 그건 세상남편 있으니까. 자기의 육체를 내남편 좋아라고 결혼하지 않습니다. ‘에구! 저 인간 살리기 위해서 결혼했다,’ 이런 것은 말 뿐이지 실제론 그게 아니거든요. 다 나 좋아라고 결혼하지 누구 하나 희생하려고 결혼하는 게 아니다 말이죠?

다시 얘기해봅시다. 세상적인 것은 자기를 위하여 육체를 심으면 썩어질 것을 거두죠. 그래서 예수님 모르고 남편 의지하다가 큰 코 다칩니다. 결국 남편 의지하다가 남편도 실망스럽지만 그런 남편을 의지했던 기껏, 인생 목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기껏 남편 만나가지고 그것만 생각하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허탈스럽습니까. 예? 인생이라는 게 하나님 아는 인생이 남편 만나가지고 기껏 남편에게 돈 뜯어먹고 살려고 그런 식으로 한 평생 살다가 지옥 가려는 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그 때문에 성경을 준 건 아니다 말이죠. ‘하나님이여! 왜 계십니까?’ 하고 물어볼 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은 왜 계시며 사도는 왜 보냈으며 고린도후서는 왜 택했습니까, 물어볼 줄 알아야 돼요. 하나님 뜻은 뭡니까. 중매. ‘너 남편 없지?’ ‘남편 하나 있는데 뭐 새삼스럽게 남편이고?’ ‘그거 말고! 진짜 육적인 세계 말고!’ 영적인 세계, 성령에 의해서 믿는 영적인 세계. ‘너 남편 없지?’ 나는 나 혼자 살렵니다. 이러면 곤란하다 말이죠.

나는 누구 믿는다는 것도 싫고, 절에 가는 것도 싫고. 세상에 나는 인간도 안 믿는데 나는 나만 믿습니다. 나는 절도 귀찮고 나는 그냥 살다 세월 무료하게 보내다 그냥 죽으렵니다. 이거는, 자기 육체를 심는 자는 뭘 거둔다? 썩어질 것을 거둔다,입니다. 제가 여러 번 강의에서 그 대목을 집어넣었어요. ‘송장의 모습’에 대해서. 들어봤지요? 썩어져서 벌레가 나오잖아요. 피가 응고되면 맛있는 당분이 되기 때문에 벌레가 생깁니다. 그래서 구멍마다 다 기어나옵니다.

평소 자기가 거울 보면서 그렇게 간직하고 싶었던 ‘나’ 자신이라도 시체가 송장이 되어 있으면 물이 흐르고 그런데도 ‘나’인데도 나를 보기 싫습니다. ‘나’인데도 나 안 보고 싶은 거죠. 그곳으로 하나님께서 줄기차게 몰아가시죠. 줄창 몰아넣고 있다고요. 썩어질 것이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계속 몰아넣고 있어요. 얼굴 토닥토닥 분칠 해봐야 진물 나오고 벌레 나오는 곳에 분칠한다는 것이 얼마나 그게 헛수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자는 자식에게 기대를 거는 거지요. 나는 죽어도 너는 내 뒤를 이어서 살아다오. 여자는 또 다른 남자 만나가지고 희망을 걸고. 나는 중고는 싫다 신품 다오! 자기를 위해 심는 자는 당구를 쳤든 춤을 추웠든 간에 자기를 위해서 심는 자는 반드시 뭐가 거두어진다? 썩은 것이 거두어진다. 이 법칙은 주님이 양보한 적이 없어요. 대법원판사가 퇴직해가지고 몸이 아파서 고민 끝에 한강에 뛰어내려 자살했어요.

자기는 아직도 젊은 판사라고 행각하는 거예요. 나는 늙은 판사다. 이렇게 생각하면 괜찮은데. 나는 대법원판산데 내가 이렇게 망가지다니,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이래가지고 죽는다고. 아직도 착각을 하고 있어요. 조금 더 어렵게 해볼까요? 미래가 내 모습인데 과거가 내 모습이라고 자꾸 우기는 겁니다. 미래가 현재로 흘러들어온 것이 영적세계예요. 영적세계라는 것은 앞당겨서 나에게 밀려들어온 겁니다.

밀려들어오면 미래에 가서 너는 영생 얻을래? 지옥갈래?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미래가 앞당겨서 말씀을 가지고 우리한테 들이대면서,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들이대면서 ‘지금 너 영생 얻을래? 지옥갈래?’ 그렇게 묻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아직 송장되기 전에! 사실은 말이 우리가 살았다고 하지 산송장이나 다름없어요. 젊은 아이들은 이걸 잘 안 믿지요.

교문 앞에서 “수능 잘 봤다~!” “너는 산송장이야,” 하면 누가 믿겠어요. 미래가 앞당겨서 주어지면 나이 불문하고 나이와 관계없이 ‘아하! 내가 죽을 죄인이구나,’ ‘나는 영생 얻을 자가 못 되는구나’ 성경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중매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 뜻은 뭐냐 하면, 내가 영생을 가진다든지 그런 게 아니고, 중매라는 건 남편 없는 자가 남편 생기는 거예요. 누가 남편을 달라했습니까. 우리가 남편이 없어서 환장했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소원이 아니고 누구의 소원입니까. 예수님 자기 소원이에요. 이 부분에서 생각해봅시다. 주일 아침에 한 설교인데요, 에덴동산에 나무가 두 가지가 있었죠? 무슨 나무입니까? 선악과와 생명나무 있었지요? 이 나무가 중요한 나무입니까? 안 중요한 나무입니까? 중요한 나무죠? 중요한 나무라는 이유가 뭐냐, 동산 한 가운데 있으니까. 동산 한 가운데 있으니까 중요한 나무죠.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에덴동산에서 젤 중요한 게 누구라고 봅니까.

인간으로 보잖아요. 하나님은 그리 안 봐요.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중요한 걸 인간으로 보는 게 아니고, 선악과와 생명나무를 더 중요시 여깁니다. 이거 훼손하면 추방당한다는 겁니다. 네가 만약에 선악과를 훼손하면 생명나무도 훼손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점이 어려워요. 선악과를 따먹게 되면 뭐를 못 따먹게 된다? 생명나무 못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어떻게 됐습니까. 추방당했지요.

선악과 따먹었으면 생명나무 못 따먹어요. 둘 다 훼손한 게 돼요. 선악과 훼손한 게 생명나무 훼손한 거라고요. 선악과 따먹은 인간을 추방했다는 거는 에덴동산을 누구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까. 인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죠. 인간을 보호할 것 같으면 선악과 따먹어도 인간을 계속 살게 하겠지만, 선악과 다쳤다고 해서 인간을 추방한 것 보니까 첨부터 하나님은 인간위주가 아니고 무슨 위주다? 선악과와 생명나무 위주죠.

그걸 보호하는 거예요. 혹시 들어올까 싶어서 뭘 집어넣습니까. 두루두루 화영검으로 차단시켜 놨잖아요. 육의 사람은 날 때부터 항상 생각하기를 누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생각하다 보니까 하나님도 누굴 위한 하나님? 무조건 나를 위한 하나님인 줄 알고 있다 이 말이죠. 에덴동산의 그 취지와 틀려요. 나를 위한 하나님인 것 같으면 나를 위한 하나님 자체가 이거는 남편이 없기 때문에 지 혼자 상상으로 지어낸 종교고 지어낸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하루 온종일 스물네 시간 있어도 주님을 위해 고민한 게 아니고 나를 위해서 고민하는 겁니다. ‘주님, 뭐합니까, 나 안 도와주고!’ 맨날 그거예요. 처음 한두 번은 하나님 뜻대로 하면 참을 수 있으면 인간은 참아요. 그게 반복되면 못 참습니다. 왁, 하고 덤빕니다. 그 대상이 하나님이든 누구든 물불 안 가리고 막 덤빕니다. 내 인생을 왜 이렇게 힘들게 하냐는 거죠.

결국은,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면서 무조건 내가 왜 사는지 모르면서 자기 일변도로 자기 지키기로 나가요. 그런 마음으로 교회 와서 빌어도 이것은 자기를 위한 기도기 때문에 교회 나간 게 아니고 어디갑니까. 절에 간 거예요. ‘동신 절,’ ‘우리 절,’ ‘안산제일교회 절,’ 주일 날 절에 간 거예요. 절에. 그러면 바른 교회 있습니까? 바른 교회 없어요. 우리교회도 마찬가지 없습니다. 그러면 교회 없나? 천만에 말씀! 바로, 인간들이 만들어낸 교회는 교회가 아니구나, 하는 그들이 바른 교회에 소속된 자들입니다.

영에 속한 자들. 영에 속하니까 육이 뭔지 알잖아요. 남편 있으니까 남편 없던 시절을 소상하게 다 꿰뚫고 있는 겁니다. 남편 있으니까! 예수님 있으니까! 그래서 문제 내봅시다. 자, 에덴동산 쫓아낼 때 생명나무 되시는 분이 다시 어떤 사람을 에덴동산이라는 천국으로 불러낼 때 이 사람은 어떤 신분으로 불림을 당할까요? 오늘 본문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뭡니까, 그리스도의 신부겠지요 신부. 정결한 처녀니까.

선악과 훼손해가지고 생명나무까지 훼손할까 싶어서 쫓아냈어요. 쫓아낸 뒤에 다시 쫓아낸 그 인간을 생명나무 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를 때는 ‘나’ 자격이 아니고, 나 이근호 자격이 아니고, 그런 거 다 떼버리고 어떤 자격, 어떤 신분으로만 뽑아낸다? 누구누구의 마누라,(아, 이거 아니구나) 누구누구의 신부의 자격으로만 온다 이 말이지요. 당신 누구요? 할 때 ‘나 이근호요,’ 하면 안돼요. 나는 그리스도의 신부된 사람이다. 이렇게 이야기해야 돼요. 사도의 편지 앞에 꼭 붙는 게 있지요. 그냥 바울이라 하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의 종 사도 바울’ 이러죠.

꼭 앞에 수식된 게 있죠. 하나님의 보내신 사자, 하나님 보내신 종 사도바울, 그렇게 이야기한다 말이죠. 세상 사람들은 자기 이름 이야기해도 못 알아 본 거예요. ‘나는 나다!’ ‘나는 나다.’ ‘ 누구의 신부인데…’ ‘그런 거 없어’ ‘나 혼자뿐이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불신자들 세상의 모든 사람들 다 마찬가지입니다. ‘내 인생 내가 개척한다.’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한다’ 내 장래 내 소망을 이룰 거야! 그게 바로 육적인 사람인 반면에, 신부가 된 사람 같으면, -여러분 결혼해봐서 알겠지만- 신부가 된 사람에게 있어서 남편은 뭡니까.

자기 인생을 어떤 처분까지 전폭적으로 책임져주어야 할 사람이 남편이잖아요. 자기는 없어져요. 누구누구의 아내가 되잖아요. 그래서 어떤 집안의 일을 치려면 신자 같으면 누구한테 미룹니까. ‘우리 남편보고 이야기하세요.’ 그래서 옛날부터 모든 집에, 인감도장, 계약서, 그거 누가 합니까. 가정의 대표자가 누구예요. 베드로후서인가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브라함보고 뭐라 했어요? ‘나의 주’라고 했죠.

아내들이여 남편을 ‘주’라고 하라. 단, 남편은 어떤 경우냐 하면 복음을 아는 남편. 복음을 아는 남편은 무슨 뜻이냐 하면, 교회 다니는 남편을 말하는 게 아니고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서 목숨 바친 것 같이 아내를 버리지 않고, 아내를 위해서 살 남자 같으면 복종하라, 말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죽겠다는데 복종 안 할 사람이 누가 있어요. 자기를 위해 죽겠다는 사람 없어서 복종 못하지. -정목사님 아내를 위해서 목숨 바칠 각오가 되어 있어요? -

그거 각오돼 있다고 말하면 틀렸어요. 왜냐면, 각오됐다는 자체가 이미 허풍입니다.ㅋㅋ
정답은 주께서 아실 것입니다. 어쨌든 현재 남편과 아내 사이라하는 것은 자기계획 자기소망 자기비전은 자기가 일부러 만들 이유도 없고 필요치 않습니다. 왜냐면 남편의 목적이 내 목적이고 남편의 미래가 내 미래고 남편의 가진 세계가 내 세계고 남편의 영역이 나의 영역이고 그런 거예요. 그때 그걸 바로 ‘아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창세기2장에서 남편과 아내가 두 사람이 한 몸이 된다 할 때, 이것은 둘이 하나 되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니고, 여자가 아내에게 합쳐져서 하나예요. 몰랐어요? 왜냐면 처음 창조가 뭡니까. 처음 창조가. 그 때문에 남자 여자 동시에 짜잔! 나오는 게 아니고 남자 만들고 그다음에 남자 일부로서 여자를 만들어놓고서는 다시 남자 몸에 붙은 하나가 되게 하시는 거예요.

이것은 창조가 뭐로 바뀌느냐 인간 속에 뭐가 있었다? 대상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 그 사랑으로 인하여 비록 남들 보기에 두 사람이지만 그 사랑으로 인하여 다시 한 몸 되요. 그사랑을 아담은 뭐라고 표현했냐 하며는, "내 살 중에 살이요, 내 뼈 중에 뼈로다,‘ 기억나십니까? 그런 이야기 했다고요. 결혼하고 난 뒤에 그 이야기 해본 적이 언제적인지…내 살 중에 살이요 내 뼈 중에 뼈라…

그 말은 그런 용어를 쓰라는 말이 아니고, 당신은 딴 몸이 아니고 나와 한 몸이란 뜻이에요. 그 말은 곧 사랑이라, 사랑한다는 뜻이에요. 이 사랑의 몸이 창세기에서 그대로 사도바울의 편지에 이어진다면 그리스도와 우리가 한 몸이 되겠지요. 요한복음에도 나오잖아요. ‘네가 내 안에서 하나가 되라’ 이 말은 네가 책임지라는 말이 아니고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에요.

하나 된, 남편 되는 내가 네 인생을 책임질 테니까 너는 하나의 신부로서 올 뿐이라는 거예요. 그다음에 요한계시록22장에 보면 나오죠. 하늘에서 뭐가 내려오죠? 그 신부가 내려오는데 신부의 단장한 것이, 신부가 화사하게 단장하는 격식의 수준은 남편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주는 수준에서 신부가 화려합니다. 신부의 화려함은 무엇을 보여주냐, 그를 화려하게 만든 남편의 영광스러움을 이야기해줘요.

저 신부가 저렇게 아름다운 걸 보니 남편은 정말 대단하다, 그런 뜻입니다. 지금 이 강의 전부가 자기를 위해 심는 그런 육적인 사람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그런 이방인들의 세계가 아니고, 그의 나라와 의라는 내용 속에 이게 들어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했지요. 이런 걸 구하면 되는 거예요. 그 나라와 의를 구하듯이. 예수님이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은 성경전체의 세계가 육의 세계와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 있다는 세계가 이런 거예요. 이런 세계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무엇을 입을까 마실까 먹을까 염려하고 그저 자기를 위해 심고 오늘도 심고 내일도 심고 모래도 심고 심다보면 무엇을 누락시키냐 하면, ‘내가 누구지?’ -꼭 최진실 같애- ‘에구, 리플단다 죽어뿔자’
자기 자살하는 거 주님한테 물어봤습니까? ‘남편이여, 상담할 게 있는데 나 죽어버릴까요?’ 그렇게 물어봤냐 말입니다. ‘죽어라,’ 하면 죽으면 돼요.

자살한다고 지옥 가는 게 아닙니다. -햐, 오랜만에 또 충격적인 이야기를…-자살한다고 지옥 가는 게 아니고, 자살에는 여러 종류가 있거든요. 자발적 자살도 있고 타의에 의한 자살도 있어요. 옛날 순교자들은 타의에 의한 자살한 사람 있습니다. 있는데 중요한 것은 자살 않고 숨넘어가도 자기 남편의 존재를 자체적으로 거부해버리면 그거는 성도 아니지요. 그럼 목사님, 우리가 남편 있다고 꼭 꼭 씹듯이 씹어야 됩니까? 그래야 하나님 영광됩니까? 이렇게 따진다면 아까 제가 강의한 것, 하나님의 열심이 그 사람한테 있기 때문에 알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열심이 있다면 하나님의 열심이 그 사람을 가지고 신부를 신부답게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안 놀아요. 주님께서는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거든요. 요한복음에. 아버지가 일하시니 주님께서도 일하시는 그 일꺼리가 뭐냐면, 신부를 신부답게 하는 것. 신부답게 하는 게 뭐냐 하며는, <자기 절망>이에요.

어렵죠? 자기 절망…신부답게 하는 게 뭐냐면 웨딩드레스 입고 ‘예수 최고다!’ 돌아 댕기면 그거는 미친년이고, 예수 내 남편, 이러면 미친년이고. 그게 아니고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를 위해 심고 끊임없이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하거든요. 이걸 항상, 수시로 미래로서 오는 단절. 차단막. 육적세계가 영적세계에 오게 되면 차단돼버려요.

아! 이게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닌데… ‘내가 이래 살면 세상 사람과 똑같은데…’ 내가 뭐, 다른점이 있어야 하는데 다른점이 뭐지? 라는 것을 생각나도록 어떤 말씀을 준다든지 기도가운데 은혜 받는다든지 해서, 가시가 옆구리를 푹, 쑤시듯이 짧은 칼로 쑤시듯이 ‘정신차렷!’ 하고 쑤시고 드는 게 있어요. 내가 세상살이 꼬락서니는 이래도 세상 사람과는 달라야 돼, 다르다는 게 전도하고 설치고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을 이래 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아는 거예요.

이건 이방인들이 사는 것이고. 자기가 사는 것이 썩어질 것을 거두는 것이 기억나게 하는 것입니다. 소금이 무엇이 없으면 밟힌다? 맛이 없으면. 신부가 신부 값을 해야 되고 남편이 남편 값 하는데 신부가 신부 값 못해선 안 되겠죠. 주께서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 값을 하게 합니다. 신부 값이 뭐냐 하며는, 헌금 많이 하고 그런 게 아니고, 남편이 있다, 우리 남편 저기 있다. 미장원 있고 우체국 있듯이 우리남편 저기 있다.

손가락질 해 가면서 나는 그걸 의식하면서 산다.-늘 스물네 시간은 아니지만-^^* 늘 의식하면서 산다, 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것을 뭐라 하냐면 -말 자체가 재밌어요- 예수는 안 믿지만, 성도가 예수는 안 믿지만 몰래는 믿는다. 말 되죠? 예를 하나 들게요. 아주머니들 모이기로 했는데 ‘오늘은 나 구역예배 못 간다,’ ‘왜?’ ‘오늘 제사지낸다, 오늘 시가집에 제사 있다,’ 이러거든요.

오늘 구역예배 모이는데 시가집 제사 있다. 성도답지 않죠, 예수 안 믿는 거지요? 하지만 돌아서서 무슨 생각합니까, ‘내가 이래 제사지내는 게 나쁜 건데…’ 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혼자 알고 있죠. 그걸 몰래 믿는다. 남편이 옆에 있다가 ‘너는 교회 다니면서 제사 이런 거 하면 되나!’ ‘요새 교인들 제사 다 드린다,’ 하면서 뭔가 찝찝하지요. ‘주여! 나 몰래 믿습니데이,’ 몰래한 사랑 알지요?

드러내놓고 믿는다는 것도 믿을 게 못돼요. 드러내놓고 믿는다는 것도 수상해요. 된통 맛을 못 봐서 그래요.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나는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 예수 믿으면서 돈 사랑하지 않는다.’이것은 돈 맛을 못 봐서 그래요. ‘나는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 염려하지 않고 산다!’『딤전6: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나는 이제 예수 믿는다, 이젠 아무 욕심 없다. 애가 공부를 못하든지 상관없이 먹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안다! 그거 인생 살아보면 얼마나 험난한가를 뒤에 가서 알게 되요.

하지만 성도는 뭡니까, 그러한 실수와 실패, 엎어지고 자빠져도 주께서 그렇게 하게 하시지만 성도에게는 뭐가 있습니까. 혼자 몰래 믿는 구석이 있어야 됩니다. ‘에구~ 참 말씀대로 안 되는구나,’ 사실은 그게 말씀대로 안 되는 게 아니고 말씀대로 된 거지요. 왜! 먹는 것 입는 것 그것으로 족한 줄 알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너는 죄인이다’하는 것. 그게 말씀대로 되는 거예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 ~ 하라’ 하고 ‘~ ~ 하지마라,’ 하는 게 성경에 나오면 사람들은 무엇 무엇 하지마라, 하는 것 자체를 안 지키고 무엇 무엇 하라,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나 이 말씀이 있는 것은 무엇 무엇 하지 마라도 우리에게 해당되고 무엇무엇 하라,는 것도 우리에게 해당되는데 ‘하라,’ 하는 것은 안 하는 거에 해당되고, ‘하지마라’는 반드시 하는 거에 해당된다 이 말이에요.

빨리해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먹어요? 다시 해볼까요? 성경에 ‘~ ~ 하라,’하는 거 있잖아요. ‘범사에 감사하라’ 하라 아닙니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라’ 하라 아닙니까.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라 아닙니까. ‘하지 마라’는 거 있잖아요. 욕심과 그런 거는 하나님 유업을 이루지 못한다, 가 있다고요. 나왔을 때 우리는 ‘하라’는 것만 지키려 애쓰고 ‘하지마라,’ 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 말이지요.

그렇지만 성경은 ‘하지마라’는 것도 우리에게 적용되고 ‘하라’도 적용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라는 것은 않게 되고 하지마라는 것만 골라 하는 식으로 우리에게 적용된다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절대 독립적으로 구원되는 법은 있다? 없다? ‘없다!’ 반대로 하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이 혼자 끄덕 끄떡 착한일 해서 혼자서 천국 문 열 수 있다? 없다? 있을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예수그리스도의 신분이다 그랬어요.

옆에 있는 저 인간 누구고? 주님이 옆에 있다가 ‘내 신부입니다’ ‘통과!’ 내 이름은 없어져요. 내 이름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고 누구이름으로 구원받는다? 예수이름으로 구원받는다.「그 나라와 그의 의」라는 내용 속에 그게 들어있어요. ‘그 나라와 그의 의’ 속에 우리가 예수이름으로 구원받았다 이 말입니다. 내 이름은 없어요. 그러면 너는 뭐냐! ‘나는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니 이미 죽은 채로 질질 끌려가요. 죽은 채로.

하라 하면 않고 하지마라 하면 하는 죽은 자. 죄를 죽은 자로 하는 거예요. 옛날 서부영화에 ‘장고’라는 영화가 있어요. 끝장면 보면 장고라는 주인공이 멕시칸 적들 앞에서 무엇인가를 끌고 가요. 관을 끌고 간다고요. ‘누가 한 명 죽은 모양이지?’ 놀리잖아요. 나중에 보니까 관속에서 뭐가 나옵니까. 연발기관총이 나오죠. 주님은 장고고 우린 끌려가죠. 하튼, 끌고 가든 손잡고 가든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딥니까. 주님 가시는 곳에 우리가 가는 거예요.

그럴 때 가도록 중매쟁이가 등장하는데 왔다가 사라지고 사라졌다 다시 오는 그 중매쟁이 누굽니까. 사도바울… 사도바울은 뭘 들고 옵니까. 자기열심이 아니고 무슨 열심? 하나임의 열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와서 우리로 하여금 너는 신부야, 이미 너는 신부야 라고 이야기해요. 바로 우리는 이러한 내용 속에 예수님의 이름 속에 이런 내용이 풍부하게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한번 봅시다, 그 뒤에-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처럼 각각이, -야~ 또 어렵다, 어렵다 - 뱀이 어디서 첨 나왔던 뱀입니까. 창세기2장 3장에서 첨 나왔지요? 하와는 어디 나옵니까. 창세기2장 3장이잖아요. 고린도전서 쓴 시기는 AD 53년경이란 말이죠. 예수님 돌아가신지 20년 정도 됐을까? 예수님 돌아가시고 부활한 이후 그때 AD 53년경은 이미 창세기 이야기는 지나간 이야기 아닙니까?

그렇잖아요. 뱀 이야기 여자이야기 지나간 이야기잖아요. 그러나 성경은 희한하게 성경 말씀 안에서 보면 말씀 안에서는 역사가 모든 역사가 한 말씀 안에 다 들어있어요. 역사가 철도레일처럼 뻗어가는 것이 아니고 역사가 뭉텅이로 뭉쳐있다 말이죠. 뭉쳐있는 이걸 묵시라 합니다. 쫙 펴는 게 아니고 뭉쳐있는 거예요. 여러분 자녀 키우면서 애가 맘에 안들 때 이런 소리 하잖아요. ‘쟤 하는 행세 보니까 꼭 지 어릴 때 하는 것과 똑같다,’고 하잖아요. 걔는 그게 기분 나쁜 거예요. 자기 어릴 때는 지나간 거예요. 그렇죠? 철도레일처럼 지나간 과거인데 엄마는 그걸 뭐로 본다? 과거로 보지 않고 계속 현재화해서 본다 이 말이죠.

성경말씀에서 창세기 이야기는 끝났으니 창세기 하와하고 뱀하고는 상관없겠네. 천만에 말씀! 창세기의 뱀이 여전히 어떡합니까? 고린도전서 세계에서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하나 들면 다 따라 나와요. 고린도전서를 들면 요한계시록부터 창세기까지 다 딸려 나와요. 여러분 지남철 쇳가루 휘익 저으면 자석에 쇳가루가 한 개 붙습니까? 두 개 붙습니까? 우르르 다 올라오지요.

그 붙은 거 하나 떼 가지고 분석해보세요.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다 붙어 있다 이 말이죠. 그게 뭐냐 하면 모든 것이 복음을 향하여 <십자가를 향하여> 전부 집결돼 있어요. 그래서 이러한 사도가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뭐한다? 우리로 하여금 남편 없는 상태에서 뭘로 바뀐다? 남편 있는 상태. -오늘 이거 잊지 마세요!- 남편 없는 상태에서 누가 있다? 남편 있는 상태로 바뀔 때에 누가 방해하느냐. 방해하는 세력이 누구다? ‘배암!’

이걸 가지고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며는, 이걸 바로 영적생활권 또는 영적싸움이라 해요. 영적싸움에 반드시 누가 들어가야 됩니까. 영적싸움에는 반드시 ‘배암’이 들어갑니다. 뱀이 들어가죠, 뱀이. 그런데 안산시민들은 평소에 뭐가 안 들어갑니까. 뱀이 안 들어가지요. -뱀탕하는 사람 빼놓고 ㅋㅋ- 하루 일과 중에 뱀 생각합니까? 않지요. 왜! 자기를 위해 심는 자는 뱀 같은 거 필요 없어요. 자기를 위해 심는 자에게는 뱀 같은 거 필요 없어요.

그거는 묵시도 필요 없어요. 성령도 필요 없어요. 그거는 자기 열심으로 자기에게 퍼 부으면 끝나는 겁니다. 뱀이 있어요. 지금 예수님 부활했죠? 맞죠? 부활이 무슨 뜻이냐 하면 문 닫혔는데 들어오는 게 부활입니다. 요한복음에 나오죠. 문 닫혔는데 들어온다고. 문 닫혔는데 들어오는 것이 예수님 부활이라면, 마귀도 못지않죠. 마귀가 샷시문 못 뜯어낼 이유는 없어요. 마귀가 창문 닫아놨다고 못 올 이유 없다 이 말이죠.

제자들이 무서워서 문 닫아놨는데 주님께서 그 가운데 서있었잖아요. 문 열어주지 않았는데 왔다 이 말이죠. 그 부활의 능력이, 열심이 지금 사도와 함께 있어요. 그리고 그 부활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부활 들어오라고 이 말씀 하는 겁니다. ‘너는 신부다,’ 할 때 뭐가 있다? 우리 신랑 되신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확연하게 있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영적싸움이 되는데, 영적싸움의 대상자가 누굽니까. 한쪽이 예수님이라면 또 한쪽이 누구예요? 뱀 아닙니까. 뱀은 누구 열심으로? 뱀 열심으로. 사도바울은 누구의 열심으로? 하나님의 열심으로. 하나님이 주신 열심과 뱀의 열심이 만나는 장소가 바로 인간 아닙니까. 육적인 사람들은 이걸 이해 못하죠. 이해 못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고 하죠. ‘뭐라 하긴요, 성경 고린도후서 11장에 있잖아요.’ ‘난 봐도 그런 거 안 보이는데?’ 안 보일 수밖에 없죠.

성경 가운데서 자기를 위해 심는 것만 필요한 사람인데. 기도 아니면 나갈 일이 없다. 이런 거 있잖아요. 자기 이익만 챙기니 이런 거 안 보이잖아요. 성경을 봐도 누굴 위해 본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보기 때문에> 이런 게 안 보인다 이 말이죠. 성경은 예수님이 우리한테 뭘 해줬냐가 성경이지, 내가 여기서 뭘 챙기면 구원 받는가 이건 아니거든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입장에서 지 혼자 자유로 한다는 것은 뭐로 바뀐다? ‘단독자’ 또는 스스로 자기를 발휘하려는 생각으로 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이거는 누가 유혹한 겁니까? 뱀이 그렇게 한 거예요. 뱀이. 여기 한번 봅시다.『고린도후서11:3 뱀이 간계로 하와를 미혹함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여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부패한다는 말은 인간은 그리스도 없으면 그 자체가 부패예요. 그리스도 없으면 누구를 위해 살게 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없는데 누굴 위해 살겠어요. 지를 위해 살게 되어있지. 자기 옆에 아무도 없는데 당연하게 자기를 위해 살게 되어있죠. 그래,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과 이야기해보세요. 누구이야기 나옵니까. 자기 이야기밖에 안 나와요. 자기 이야기.

목사님 성경말씀 어떻습니까. 그거하고 우리교회하고 발전한 게 있습니까? 꼭 우리, 내 교회, 그 교회를 목사로 보고 목사를 업주로 보는 거예요. 업주. 업주예요. 업소의 업주. 대화가 안 된다니까요.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해주셨는가, 그건 답변 않고 우리가 앞으로 뭐할 건가. 그런 거만 이야기 한다니까요. 자기를 위해 심는 것을 되풀이한 것 밖에 안돼요. 그런 사람을 가지고 이걸 뭐라 하냐면, 4절에 보면 이걸 가지고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

같은 말이죠?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 그런 것들이 그 당시에 있다? 없다? 있다. 있으니까 영적싸움이 되는 겁니다. 그게 없는 게 아니에요. 우리의도 같으면 그런 게 없으면 좋겠는데 없는 게 아니고 그들이 있어야, 진짜예수 진짜복음 진짜 영이 구분이 되기 때문에 그래요. 일부러 환경을 가짜 예수 가짜 복음 가짜 영으로 깔아놓고 그 말은 누굴 위해 산다? 예수를 들먹여도 자기를 위해 열심인 거예요.

그런 사람 속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가 진짜 저 사람처럼 날 위해 사는지 아니면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지, 성경대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지. 부인이 안 믿는 사람들은 진짜 몰래 믿는 사람은 ‘이게 내 인생 아닌데 …’ 라고 자기세계를 돌아보라 이 말이죠.

밥 먹고 살다보니까 온갖 소리 다 했는데, 살다보니까 이게 참새보다 더 못하고, 짐승보다 못한 거예요. 왜? 참새 짐승은 그냥 날고 살면 되지만 인간은 뭐하라?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래야 인간 아닙니까. 인간이 뭐예요. 예? 연봉 높은 게 인간이 아니고,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 않으면 이방인들, 지옥 갈 사람이 하는 짓이다 이 말이죠.

4절은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비꼬는 거죠? ‘야~ 멋지다야~’ 사도바울이 이런 소리 하면 이단들이 뭐라 할 것 같습니까. ‘네 생각은 부정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맨 날 부정적 사고방식이고, 교인들로 하여금 부정적 사고방식을 심어주고 … 맨 날 이런 소리 한다고요.

‘좋은 게 좋지! 교회 부흥되면 그만이지 뭐,‘그런 거 따지냐,’ 그래서 소금은 양으로 측정하는 게 아니고 주님은 무엇으로 측정한다? ‘맛으로’ 맛이 가면 양이 엄청나게 많아도 그거는 소금일 수가 없고 하나의 모래에 지나지 않죠.

어둠의 세계에서 필요한 것은 많은 어둠이 아닙니다. 어둠에 필요한 것은 등불입니다. 등불. 예, 너희는 이 세상의 뭐가된다? 등불이 된다. 어둠의 세계에서 큰 덩어리 어둠이 필요한 게 아니고, 큰 예배당 작은 예배당이 아니고, 그냥 빛이에요. 등불이에요 등불. 복음의 등불은 빛이듯, 맛이 없는 것은 양이 많은 것 필요한 게 아니고 그냥 뭐가 필요해요? 그냥 ‘소금’ 그것도 맛이 조금이라도 있는 소금.

끝으로 말씀드립니다. 이거요? 주님께서 주님의 열심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께 그렇게 합니다. 제가 고함지른다고 여러분 이해될 건 아니고 여러분 속의 성령께서 ‘그게 맞다,’ 예수면 다 같은 예수인 줄 알고 복음은 다 복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분명히 있구나! 그렇다면 다른 복음은 뭐지? 하고 관심을 가져보세요.

다른 예수가 뭐지? 다른 성령이 뭐지? 성령 하면, 다 성령 받은 줄 알았는데 다른 성령이 있다는 거예요. 흔히 성령이 아니고서는 주라 할 수 없다 했잖아요. 하지만 그 성령가운데 다른 성령이 있을 수 있다 그 말이에요. 다른 예수가 있으니까. 그러면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은 뭐냐, 그거는 아쉽지만 그거는 12월에. 12월 달에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짐승만도 못한 생활, 세월만 보내는 생활, 저희들 생활입니다. 들풀만도 못한 그런 존재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짐승만도 못하지만 주의 열심이 계셔서 저희들, 우리의 신랑이 누구인가 알게 해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제 신랑이 있으니 세상 입을 것 먹을 것 너무 염려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신랑이 이렇게 훌륭하다는 것을 살아생전에 증거 할 수 있을까, 그것만 생각하는, 그런 열심만 있는 성령을 위해 심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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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