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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5-다니엘3(강의정리)자유게시판다니엘

05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5-다니엘3(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27)

05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25 - 다니엘서3

05,01,08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사람은 강아지와 같아서 ??

사람이란 자기가 알고 있는 그 범위, 즉 경계에 서면 일단은 만족해하는데,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면 그만 지루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 경계선을 넘어서 기웃거려 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모르던 새로운 세계가 있으면 한 발짝 한 발짝 자기 경계를 넓히는데, 그러다가 어디에선가 무슨 소리가 나면 얼른 자기 자리로 원위치를 하는데, 그렇게 하면서 모가지는 또 다시 내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마치 강아지를 키우는 것과 너무나 흡사한데, 강아지가 살살 기어 나오다가도 누군가가 '휘릭' 거리면 당장에 자기 집으로 들어가서는, 다시 대가리를 내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서 '자기 의식의 회귀' 라고 하는데, 그러니 동물이니 인간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다 본능이라는 것이다.

* 질문(?) - 제가 아는 분이 자산관리공사에 시험을 치는데, 그런데 시험에 통계학에 시그마가 나오고 하니 저에게 오겠다고 하는데, 만만한 것이 저이니 말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모르게 말입니다. 그런 것을 배운다고 하면 좀 얼마나 부끄러우냐는 말입니다.

제가 보니 마치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와도 비슷해 보이는데, 즉 진리가 궁금해서 알기는 알고는 싶은데, 하지만 예수님에게 낮에 찾아오기가 뭐해서 밤에 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집사님이 예수님의 역할이 되는 건가?

* 질문(?) - 목사님, 이 귤이 참 맛있는데 좀 드시죠? 자기 아이가 학원을 그만두면서 학부모가 귤을 한 박스 선물하고 갔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선물을 하고 가면 좋은 학부형, 그냥 모르는 척 그냥 나가면 나쁜 학부형, 그렇게 정해져 있다는 말입니다.

굴이 참으로 맛이 있는데, 좋은 학부형이 선물로 사주어서 그런가요? 하지만 이 귤 같은 과일이 너무 단 것도 조금은 문제가 있는데, 몸에는 조금은 시그러운(?) 것이 더 좋다는 말도 있고 말이다. 아무튼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 목사님, 다니엘서가 정말 있었던 일입니까?

지난 시간에 다니엘서를 했는데, 이 다니엘서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다니엘서가 정말입니까?" 라는 것인데, 즉 다니엘서에서 일어난 일들이 실제로 있었느냐는 것이다. 이미 이 세상 역사가 모두 다 끝이 났다고 하고, 그 뜨거운 용광로 불에서 살아나고, 또 벽에 갑자기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을 쓰고 말이다.

그리고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었는데, 그런데 자기가 꿈을 꾸고서도 그것이 무슨 꿈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가 꾼 꿈이라면 자기가 먼저 알고 있어야지, 설령 잊어버렸으면 자기 잘못인데, 그런데 왜 신하들에게 닥달을 하느냐는 것이다. 자기 꿈을 다시 찾아주지 않는다고 횡포를 부린다는 말이다.

◈ 느부갓네살 왕도 자기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

그것은 바로 느부갓네살 왕에게는 그 꿈이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만약에 평소에 꾸던 꿈 같았으면 그렇게 하지 않는데, 하지만 그 꿈은 자기와 국가의 운명에 커다란 영향력을 준다고 보았기 때문에, 비록 꿈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신하들에게 그런 무리수를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왕이 그렇게 꿈을 찾아내라고 땡깡(?)을 부린 이유가 다 있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느부갓네살 왕은 나라의 운명이 신에게 달려있다고 보았는데, 즉 신의 계획안에 국가의 운명이 달려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신의 계획이 꿈으로 주어졌는데, 자기가 꿈을 잘 꾸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신께서 먼저 손을 보았다는 말이다.

◈ 왕의 '무(無)'가 다니엘의 '유(有)'로 !!

그렇게 신께서 느부갓네살 왕에게 꿈을 꾸도록 하였는데, 그런데 정작 왕은 꿈의 내용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비록 꿈을 꾸기는 했지만,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에게는 '무(無)' 라는 것이다. 분명히 있었는데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왕의 '무(無)'가 다니엘의 '유(有)'로 말미암아서 '있음'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 신약시대의 예수님의 나타남으로서 !!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들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렇게 없음의 상태인데, 즉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그런 것은 몰라도 그냥 대충대충(?) 지나갔는데,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나타남으로 말미암아서 '없음'에서 '있음'으로 바뀌고 말았다는 것이다. "아하,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구나" 라는 것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나니까, 분명히 그렇게 있었는데 또 인간들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어라, 없네. 아하, 그냥 한때 있었구나" 라는 것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십자가도 다 치워서 없어지고, 그 무덤도 병사들이 지키고 하니까 모든 것이 다 원위치가 되었다는 말이다. 즉 예수님은 죽고 제자들은 흩어지고 말이다.

◈ 모든 상황의 종료 !!

그렇게 모든 상황이 다 종료되었는데, 마치 시위를 하다가 흩어지니 다 끝이 나듯이 말이다. 그렇게 한때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이 되어서 상황이 다 끝이 났는데,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이 3일만에 부활을 하시면서 오순절에 성령이 오셨다는 것이다.

◈ 그런데 부활과 성령의 오심으로 !!

그런데 그렇게 되니 무슨 현상이 일어났는고 하니,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긴밀하게 교류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눈에 보이지를 않는데, 그런데도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의 지시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아주 독특한 종족(?)이 등장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 드디어 '제3의 종족'이 등장 !!

'오스 구니스' 라는 사람은 이것을 '제3의 종족' 이라고 했는데, 1의 종족도 아니고 2의 종족도 아니고, 제 3의 종족, 즉 인류에 의해서 태어나지 않은 종족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 태어난 종족, 성령을 받은 종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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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의 종족(오스 구니스 저, 이창우 역) (서울:신원문화사, 1981) - 런던 대학 출신의 젊고 유능한 저술가이며, 저명한 학자인 오스 구니스(Os Guinness)는 '제3의 종족' (원제 - 죽음의 재 :The Dust of Death)란 책에서 자유주의자들을 '신학적 패션모델'이라고 풍자하고, 근본주의자들을 '동키호테'로 비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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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제3의 종족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까, 다른 종족은 자기들의 이성으로서 살아가지만, 그러나 이 종족만큼은 실제로 누구로부터 지시를 받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지시를 말이다. 그런 지시가 바로 부활하신 주님과 자기 사이에 '성령을 통해서' 받는 것인데, 그러한 전혀 새로운 종족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니엘서는 이미 앞당겨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까, '인자나라의 백성'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혹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다니엘서 7장에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성도' 라고 하고 말이다. 성도가 바로 그런 자들이라는 것이다.

◈ 아니, 다니엘서에도 제3의 종족이 !!

제가 이 다니엘서를 하면서 신약을 미리 당겨서 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 눈에 보이지 않는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살아가는 아주 특이한 종족인데, 그런데 이 다니엘서 안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더라는 것이다. 소위 제3의 종족이 말이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미리 앞당겨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물론 다니엘이고, 그리고 '빅3(?)' 라고 불리는 그의 친구들인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라는 것이다. 이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남들은 전혀 볼 수가 없지만, 그러나 이들은 그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믿고 살아가는,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살아가는 아주 독특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다니엘서는 바로 이들의 이야기인데, 그러므로 이 다니엘서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가 어떤 입장에 놓여있어야 하는고 하니, 다니엘과 빅3의 입장에 놓여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이러한 다니엘서의 내용에 전적으로 공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 여기서 잠시 '가다머'를 살펴보면 !!

해석학 분야에서 아주 뛰어난 신학자로서 '가다머' 라는 사람이 있는데, 얼마 전에 죽었지요? 아마도 100세를 넘겼지 싶은데, 철학자 중에서는 제일 오래 살았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딜타이'가 있고, 또 그 이전에는 '슐라이에르마흐'가 있고 말이다.

이들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까, 슐라이에르마흐는 성경을 해석하면서 그 당시 그 사람들의 입장이 한번 되어보자는 것이다. 즉 과거의 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를 해보자는 것이다. 여기서 '이해' 라는 것이 말 그대로 'understand' 라는 것으로, '밑에 서다' 라는 것인데, 그들의 입장에 서서 한번 성경을 바라보자는 말이다. 그들이 살았던 그 상황 속에 들어가서 말이다.

그런데 딜타이라는 사람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당시의 그들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해야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릇 성경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글이나 편지의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 그 당시와 오늘 삶의 정황을 하나로 융합 !!

여기서 가다머는 무엇이라고 했는고 하니, 그는 '지평의 융합'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러한 역사와 삶의 정황(Sitz in Leben)을 일치시킬 때, 그렇게 할 때 성경이면 성경, 또 편지면 편지를, 그렇게 그 글을 쓴 사람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당시의 삶의 정황을 알아서 오늘 우리들의 삶의 정황에 일치를 시키면, 그렇게 하면 해석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내용이 그의 '해석학' 이라는 유명한 책에 보면 나오는데, 그것이 오늘날 성경해석학으로 그대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현대 신학자들이 그런 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말이다. 하이데거도 그런 영향을 준 철학자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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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다머 [Hans-Georg Gadamer, 1900.2.11~2002.3.14] - 철학적 해석학을 창시한 독일의 철학자이며 마르부르크에서 1900년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약화학을 가르치는 교수였으며 가다머는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독문학, 역사, 예술사, 철학을 전공하였다. 1922년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28년 M.하이데거에게서 《플라톤의 변증법적 윤리》로 철학 교수 자격을 취득하였다. 1937년에는 마르부르크, 1938년에는 라이프치히, 1947년에는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강의하였고, 1949년에는 칼 야스퍼스의 후임으로 하이델베르크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W.딜타이의 정신과학 방법론과 M.하이데거의 존재론에서 출발하였으나 후에는 독자적 해석학을 전개하였다. 주요저서로는 《진리와 방법 Wahrheit und Methode》(1960) 등이 있다.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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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다니엘서로 돌아와서 !!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고 하니까, 이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와 세 친구들이 나오는데, 그들이 우상을 섬기지 않았더니만 실제로 그렇게 훨훨 타는 불 속에서도 살았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용광로 온도기술을 섭씨 1200도 정도로 본다고 하는데, 참으로 엄청난 온도인데, 왜냐하면 그래도 그 정도는 되어야 도자기나 그릇들이 안료와 합쳐지면서 구워진다는 것이다.

그러한 무시무시한 불 속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가? 인간은 도자기나 아니라 단백질로 되어있는데, 그런데 이 단백질은 100도만 넘어도 전혀 자기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 몸은 수분이 85프로인데, 그렇게 되면 모두 증발이 되고 없다는 말이다. 사실은 36.5도가 적당한데, 40도만 넘어도 그만 정신이 혼미해진다는 것이다.

◈ 아니, 이게 무슨 냄새지?

혹시 촛불 아래에서 밤을 새워 공부하면서 졸다가, 그만 촛불에 자기 머리카락이 타서 냄새가 나서 놀란 기억이 없어요? 전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인데, 아무튼 인간이 이렇게 1200도가 되는 용광로 속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 다니엘서가 과연 진짜인가?

그래서 제가 이 다니엘서를 시작하면서 뭐라고 질문을 했는고 하니, "이것이 진짜입니까?" 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로 일어난 사실인지, 아니면 믿음을 주기 위해서 과장되게 표현한, 즉 과거의 전설을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적당히 각색한 것이냐는 말이다.

◈ 문제는, 지옥행이 많다는 것 !!

좀 더 쉽게 이야기해보면, 성경에서 생명 길로 가는 자들이 적다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그 말은 지옥으로 가는 자들이 많다는 것인데, 그런데 저에게는 그 후자가 더욱 무섭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대부분의 인간들은 다 지옥에 간다는 말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보통 사람들이 "좀 그냥 내버려둬. 그냥 조용하게 살고 싶어" 라고 하는데, 그런데 그런 자들이 대부분이 다 지옥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천국에 간다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본인이 보기에도 굉장히 쓸쓸하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고사하고 말이다. 왜 그런가? 아무도 호응을 해주지 않는데, 그래서 "이거 내가 혹시 또라이가 아닌가? 내가 미쳤나봐?" 라고 여길 정도라는 것이다.

사실은 성도라고 하면 이런 체험들이 모두 다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게 되면 드디어 저쪽에서 반발이 생기는데, 즉 "예수님이 그렇게 말한 것이 진짜인가?" 라고 말이다. 예수님이 멸망의 길에는 찾는 자들이 많다고 했는데, 그것을 가지고 시비를 건다는 것이다. 정말 예수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뭐라고 하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참고서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즉 그 당시의 인간들이 자기들의 신앙심과 믿음을 자랑하기 위해서 그런 책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께 대들기 위해서 !!

그런데 이런 성경말씀 중에서 인간들이 제일 믿기 힘든 것이 무엇인고 하니,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분명한 목적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하나님께 대들기 위해서' 라는 것이다. 어디 처음 듣는 이야기인가요?

보통 교회에서는 인간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라고 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을 공격하고 자기 자신에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 말이다.

왜냐하면,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죄가 인간을 그냥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그렇게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게 인간은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덤벼들고 반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런 성경구절이 있나요?

그것이 에베소서 2장에 보면 나오는데, 즉 죄의 권세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복음의 광채가 전혀 비추어지지 못하도록 한다는 말이다.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 무조건 복음은 안 돼 !!

이 부분이 중요한데, 이렇게 복음을 전하게 되면 그 복음을 부인하고 반발하는 속성이 자극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복음을 전하지 않을 때는 좋은 친구이지만, 그러나 복음을 전하게 되면, 그 사람 속에 태어날 때부터 가진 본능이 어떻게 되는가? 무조건 복음에 대해서 반발을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SF영화를 보면 이런 것이 많은데, 원래는 자기편이었는데 적들이 와서 약물 같은 것을 주입함으로서, 그래서 눈동자가 돌아가면서 갑자기 스파이가 되어서 자기 동료를 마구 죽이고, 그렇게 해서 나중에 주인공과 대결을 한다는 것이다. 혹시 이런 영화를 본 기억이 납니까?

분명히 우리편이고 능력이 있는 요원이었는데, 그런데 갑자기 납치가 되어서 돌아오면서 적군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멀쩡한데, 자기 마음속에서 갑자기 지령이 들어오면, 즉 "이번에는 김 대령을 제거하라" 라고 말이다. 그러면 난데없이 사고를 친다는 것이다.

◈ 만약에 복음만 없다고 하면 !!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만약에 복음만 없다고 하면, 동창회를 가든지 조기 축구회를 가든지 얼마든지 가서 마음껏 웃고 즐기겠는데, 디스코를 추든 부르스를 땡기든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일단 복음을 전하게 되면 눈동자가 돌아가면서 "니가 나를 무시하나?"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제가 말하는 것은, 인간이 이렇게 하나님께 반발하는 것이 무슨 특별히 의적으로 나쁜 짓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마치 범인이 사건을 저지를 때 준비를 미리 하듯이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 중에서 하나가 바로 '성화론' 인데, 인간의 본성상 이런 성화론이 반드시 나와야 하는데, 이것을 믿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지 말이다. 성령을 받았다면 몰라도, 성령을 받지 않았다면 반드시 성화론을 주장하고 믿도록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타고난 인간의 복음에 대한 반발이니 말이다. 그러니 이런 성화론을 믿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것이다.

◈ 혹시 김형희 씨를 아세요?

십자가마을에 올린 '김형희' 라는 분의 글을 보면 참으로 특이한데, 뭐라고 하는고 하니, "그래, 나는 이렇게 개판인데, 성화가 되었다고 하는 인간들을 24시간 동안 비디오로 한번 찍고 싶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거룩한 삶을 사는지 보자는 말이다. 똥이나 오줌을 눌 때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 양반이 주장하는 말이, "자기가 배부르게 먹고 나서 하나 옆 사람에게 던져주는 것이 성화인가?" 또 "우리 인간에게는 원래 신장이 두 개 있는데, 그런데 자기 살 것은 하나 챙겨두고 나머지 하나를 주는 것이 과연 성화인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런 성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거룩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성화의 삶인지, 그것이 정말로 궁금하다는 것이다. 자기는 아무리 완벽하게 살려고 해도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데,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느냐는 말이다.

◈ 누가 성화의 삶을 제발 좀 가르쳐주세요?

다시 말해서, 자기는 아무리 해도 예수님의 그 복음 말고 다른 것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데, 그런데 어떻게 인간에게서 나오는 그런 착함까지도 믿어지는지, 그것이 너무나 알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착하게 살아가는 목록을 자기에게 좀 제시를 해달라는 말이다.

이 양반의 주장이 조금 특이하게 여겨지지 않나요? 아니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인가요? 보통 교회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가? "예, 저는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런 새사람이 무엇인지 한번 알고 싶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라고 말을 했다고 해서 새사람인지, 그런 정도는 자기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것은 말고, 진짜로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그 현장을 한번 보여달라는 말이다. 과연 그런 현장에 악이 나타나는지, 나타나지 않는지 말이다.

◈ 하지만, 악은 언제 어디서나 !!

하지만 착한 일을 한 그 순간에 악이 당연히 등장하는데,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면서 교만이 생기고 자만심이 생기고 말이다. "하나님은 내가 이렇게 착한데 월급을 좀 안 올려주나" 아이도 점점 커가고 집도 좀 넓혀야 하는데 말이다" 라는 생각, 또 "오랜만에 구제활동도 조금 했는데, 하나님은 뭐 하시노?" 라는 생각도 든다는 말이다.

* 질문 - 저희 딸이 어제 뭐라고 하는고 하니, 할머니가 아이가 잘못을 해서 때리려고 하니, 자기는 오늘 착한 일을 많이 했으니 때리지 말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 착한 일이 바로 자기가 방 청소를 했다는 것인데, 그것도 5살 먹은 아이가 그런 말을 말입니다.

◈ 할머니, 제가 착한 일을 했으니 때리지 마세요 !!

그럴 때는 딸아이에게 뭐라고 하면 되는고 하니, '스리랑카' 라는 나라에 가면 방 청소를 하고, 빨래도 하고, 그리고 설거지까지 해야만 착한 일이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 청소만 하는 것은 스리랑카 아이들에 비하면 착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상 동남아 그쪽 동네에서 사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참으로 순진하고 착한데, 하지만 그렇게 쓰나미가 와서 다 휩쓸어가니 말할 수 없는 반발심들이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그동안 들키지 않으려고 그렇게 감추어두었는데, 그런 엄청난 쓰나미가 일어나고 나니, 그런 숨겨놓았던 것들도 다 함께 일어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 성화론은 하나님을 규탄하는 방법 !!

그러니 이런 것들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다 나오는 것인데, 즉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악마의 권세아래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대항하는 방법이 곧 성화론인데, 그것이 바로 신에 대한 규탄방법이라는 것이다. 악마의 편에 서서 말이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인가? 그런 규탄하는 인간들을 모아서 다같이 합쳐서 단체로 규탄하는 것이 곧 교회라는 것이다. 무슨 궐기대회 장소라고나 할까요? "신에게 영광을 돌리는데, 왜 나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가?"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성화의 삶을 살았더니만, 이런 복을 받았다" 라고 하는데, 그런 것을 조사해보면 모두가 다 돈을 번 것을 두고서 복이라고 하는데, 그러니 성화론은 바로 그런 축복론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은 사업이 잘 될 때는 몰라도, 부도가 나서 망하면 교회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 기존 성화론은 항상 돈과 관련이 !!

그것을 보고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겠는가? "성화가 된 줄 알았는데, 뒤에서 호박씨를 깟구만, 그러니 하나님이 복을 빼앗아가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화가 되고 안 되고는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못 벌었는지, 그런 것으로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즉 물질의 여부로 측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회에서 주장하는 성화론이라는 말이다. 즉 성화론이 항상 돈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렇게 되면 축복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건가요? 정말 돈인가요?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은, 그렇게 육에서 난 인간자체가 영이 되는 것이 축복인데, 그러니 다니엘서의 세 친구의 축복이 무엇인가? 장차 오실 그분이 자기들을 통해서, 미리 앞당겨서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 축복이라는 말이다.

* 질문 - 물론 기존교회에서 축복을 물질과 관련시켜서 주장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런데 지금 목사님께서도 그런 식으로 주장하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아마도 제 말을 잘못 이해한 것 같은데, 기존교회에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것이 잘못이라는 말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대들고 덤비고 하는데, 즉 인간은 자기 배후에 있는 악마의 하수인이 되어서, 그렇게 하나님에게 데모하기 위해서 인간은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말이다.

◈ 성령이 아니면,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났음을 몰라 !!

인간이 그런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정상인데, 그런데 진짜로 특이한 것은 그러한 자기의 모습을 바라보고서, "아하, 그래서 내가 죄인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건 십자가의 영을, 즉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는, 즉 그런 십자가의 영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자기가 죄인이라고 하는 고백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죄인이라는 것은, 특별히 어떤 못된 사고를 쳐서 죄인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다윗 왕의 경우에도 성령을 받아서 이러한 사실을 알았는데, 그래서 자기가 모친 죄 중에서 태어났다고 놀라운 고백을 했다는 것이다. 즉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가 그만 자기 부하를 죽이게 되었고, 또한 그 부하의 여자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사건들을 통해서 자기가 죄인임을 알게 한 것은 누구의 은혜라는 말인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자기 택한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주님의 은혜라는 말이다. 그래서 언제나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믿는 이 기독교가 얼마나 특이한가? 그야말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 풀무불 속이라도 좋아요 ??

만약에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않았다면 우상을 섬기지 않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들도 나름대로는 한 고집을 하니 말이다. 자기들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다가도 풀무불을 보면 기겁을 할 것이고, 설령 그 자리에서 오기로(?) "에이, 죽어버리자" 라고 하면서 자기 몸을 던질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러니 다음과 같이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 뜨거운 풀무불 앞에서 뭐라고 말하는가? "여기서 하나님께서 능히 건지실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지금 죽는다고 해도 역시 그분의 은혜라는 말이다. 그러니 누가 뭐라고 해도, 아무리 핍박이 와도 주님의 은혜를, 그분이 베풀어주신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단 3: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단 3: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단 3: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 질문 - 그런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것이, 기존교회에서 주장하는 것과 목사님의 주장은 어떻게 다른가요?

기존교회에서는 착한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해주시니,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난 그 차이만큼 영광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의 주장은, 예수님을 믿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말이다. 성도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이 좋아서 춤을 추면서, 그렇게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면, 그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흐뭇하게 여기시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런데 보통 우리가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지 않나요?

물론 말로 그렇게 하는 것은 누구든지 다 할 수가 있는 것이고, 그러나 참된 영광은 오로지 예수님을 믿으면서 감사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힘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로 믿게 되었음을 고백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항상 감사하게 되고, 그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에도 보면 뭐라고 하는가? 아들을 영화롭게 함으로서 아버지가 영광을 받는다는 것이다. 빌립보서 2장에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요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 질문 - 그러면 사람들이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은요?

◈ 인간사회는, 상호의존과 상호인정 속에서 !!

그것을 두고 뭐라고 하는고 하니, '상호인정' 이라고 하는데, 즉 사람의 심리에는 남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상호의존' 인데, 인간들이 모여있는 사회는 이러한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가족을 보면 무엇으로 되어있는가? 역시 상호의존과 상호인정이라는 것이다. 제 아무리 애를 먹이는 남편이라고 죽고 나면 뭐라고 하는가? 얼마나 슬퍼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자식이 며칠만 수학여행을 갔다와도 보고싶어하고 말이다.

◈ 만약에 상호인정이 안 되면?

그렇게 상호의존을 하면서 상호인정을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상호인정이 안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냥 이혼을 한다는 말이다. 바로 이러한 두 가지가 되니 가정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쪽이 다른 쪽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해버리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이런 상호인정을 인간들끼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가면 그 속에 누구를 집어넣는고 하니, 하나님과 예수님을 집어 넣어버린다는 것이다. 즉 "내가 하나님을 인정해줄 테니, 하나님께서도 나를 인정해달라" 라는 것이다.

◈ 개별적 의지를 보편적 의지로 바꾸려고 하는 인간 !!

이것을 '개별적 의지' 라고 하는데, 이런 개별적 의지를 보편적 의지, 즉 일반의지로 자꾸만 바꾸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바꾸는데는 자기 확신이 들어가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만의 개별적 의지를 남들도 인정해주는 보편적 의지로 선전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간증집회이고 요즘 설교인데, 목사는 교인들이게 "제가 기도를 했더니만 이렇게 되었습니다" 라고, 그렇게 교인들과 목사간에 서로 상호인정을 하고 상호의존을 해서, 그것을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아까 집사님이 좋은 질문을 해서 이런 내용들이 나왔는데, 이것도 상호인정인가? (ㅋㅋ)

* 질문 - 그렇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어야 가능한 것이네요?

다시 한번 더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야 하고, 우리 인간들끼리 하는 것은 아무 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 질문 - 그것이 목사님이 평소에 이야기하던 "니 성격대로 사세요" 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인간이 자기 성격대로 살아가면, 즉 상호의존과 상호인정을 통해서 살아가면서 하나님마저도 동원시키는데, 하지만 이러 것 자체가 상호인정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것이 아까 이야기한 성화론이 되는데(?), 이것을 헤겔이 말했다는 것이다.

◈ 헤겔의 주장을 좀 더 살펴보면 !!

헤겔의 주장을 조금 더 살펴보면, 먼저 신앙이라는 것이 은혜로서 주어져야만 하는데, 그런데 문제는 이 은혜라고 하는 것은 은혜를 주는 사람이 주어야 받는 것이란 말이다. 그러니 그분이 주지 않는데 어떻게 은혜를 받느냐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은혜라고 말들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약적이 아니라 무제약적이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은혜는 자기가 임의로 필요할 때 빼내어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은혜의 주인이 따로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어서, 자기 통장에 돈이 있으면 필요할 때 찾아서 쓰면 되는데, 자기 통장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은혜를 그렇지가 못하다는 말이다.

◈ 인간들이 무기로 삼는 자기 정당성은?

그래서 인간들이 어떻게 하는고 하니, 이 은혜로서는 자기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니 나름대로의 자기 정당성을 찾는다는 것이다. 은혜 말고 말이다. 그것을 헤겔은 '계몽' 이라고 했는데, 이 계몽은 일종의 깨달음인데, 즉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기 이전에도 자기는 이미 신에 대해서 뭔가를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스스로 깨달아서 그것을 자기의 정당성, 즉 자기 무기로 삼는다는 말인데, 바로 그런 주장을 헤겔이 했다는 것이다.

◈ 헤겔에 있어서, 최종목표는 국가 !!

이것이 바로 성화론인데, 도덕적으로 깨달아서 제대로(?)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도덕적으로 자기를 무장함으로서, 그렇게 도덕적으로 됨으로서 남들이 자기를 인정해주고, 또 자기는 그런 사람을 의존하고 말이다. 그렇게 상호인정하고 상호의존함으로 살아가는데, 그것이 곧 가족이고 시민사회이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국가로서 형성이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회론을 헤겔이라는 철학자가 펼쳤는데, 그러니 철학자들이 그냥 비싼 밥이나 먹고는 누워서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야말로 반박이 안 될 정도로 완벽하게 논리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이런 철학적인 내용을 제대로 알게 되면,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넓어지게 되는데, 즉 어떤 사람의 행동에 대해서, "아니, 저 사람이 왜 저렇게 하지?" 라는 것이 아니라, "아하, 그것은 바로 이런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그렇게 했구나" 라고 말이다. 살아가면서 그렇게 감이 온다는 것이다. 아닌가요?

* 질문 - 그러므로 성화론이 주장하는 것도, 하나님이 계몽의 주체이고 인간은 객체로서, 즉 하나님의 지시를 우리 인간들이 제대로 알아서 하면 된다는 식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것을 인정받고 싶어하는데, 예를 들어서, 옆집에 있는 부부가 서로 서로 인정을 해주고 의존하면서 사이좋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아하, 저것이 이근호 목사가 그때 칠곡 성경공부시간에 이야기한 바로 상호의존이고 상호인정이구나" 라고 여기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달 뒤에 그 집에서 그릇이 비행접시가 되어서 날아가면서 여자가 같이 못살겠다고 이혼을 하자고 난리인데, 왜 그런고 하고 살펴보니, 남자가 여자를 너무 무시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것을 보고는, "아하, 저것이 곧 상호의존과 상호인정이 깨어져서 가정이 무너지는구나" 라고 여기면 된다는 말이다.

◈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바로 여러분 !!

물론 이런 철학을 전혀 몰라도 이런 것이 있는데, 쓸쓸하고 외로울 때 누군가가 옆에서 위로를 해주면 좋다는 것이다. 철학적 용어인 상호의존이고 상호인정을 다 때려치우고, 일자 무식한 사람이라고 해도, 옆에서 누군가가 돈을 주지 않아도 와서 말을 걸고 들어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엇인고 하니, 인간이 개별자인 자기를 특수화시키고 신격화시키는 하나의 절차를 밟고 있다는 것이다. 개별자에서 보편적인 진리에 이르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다가 둘이 눈이 맞으면 그냥 같이 살면 되고 말이다. 나중에 한바탕 싸우면 헤어지면 되고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만났다가 헤어진다는 것이다.

동대구역 같은 큰 기차역을 보면 철로가 어떤가요? 만났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또 만나고 한다는 말이다. 사다리 타기도 역시나 그렇고 말이다. 만났다가 따로 가고, 또 그렇게 하다가 만나고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렇게 사는 것이 부러운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 그냥, 편안하게 살면서 지옥으로 !!

이것이 바로 오늘 첫 번째로 강의한 "편하게 살면 지옥에 간다" 라는 것인데, 사실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다들 그렇게 편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어, 내가 왜 이러지?" 라는 것은 없고, 친구들을 비롯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모였다가 흩어지면서 살아가니 그것이 맞는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는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찾는 자가 많다는 것이다.

* 질문 - 하지만 그들도 이런 딜레마에 대해서, 즉 지금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지 않나요?

물론 힘들게 사는데, 왜 힘들게 사는고 하니, 자기들이 연약하다는 것을 아는데, 그것을 신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정작 하나님의 은혜는 받지 못했기에, 계속해서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도덕적으로 해서 확인을 하는데, 즉 자기보다 더 도덕적인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 도덕적으로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으면서 !!

예를 들어서, 교회에서 목사가 집사에게 뭐라고 하는가? "집사님, 이번에 아들이 좋은 회사에 취직을 했다면서요? 그렇게 교회에 충성을 하더니만 그 어려운 회사에도 다 들어가고"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집사가 목사에게 인정을 받으니, 집사는 뭉치 돈을 아끼지 않고 교회에 헌금을 하면서, 그 교회에 말뚝이 되면서, 그 교회에서 목사로부터 계속해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가 교회에 늦게 나온 다른 집사가 더 많은 돈을 헌금하면서 목사에게 사랑을 받게되면, 그 집사는 삐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로투표를 해서 자기 표가 나중에 온 그 사람보다도 적게 나오면 열을 받아서 교회를 떠나고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십자가의 능력을 무능한 것으로 여기는 모양이죠? 그런데 '+알파' 라고 하면 좋은 것으로 여기고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인데, 즉 복음은 무조건 거부한다는 것이다. 전혀 이유도 없이 말이다. 왜 그런가? 자기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왜 타락을 했다고 하면서 그냥 일방적으로 밀어 부치느냐는 것이다. 복음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 우리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

제가 지난번에 안산에 가서 강의를 했는데, 그 강의 핵심이 바로 "우리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라는 것이었는데, 그때 10명 정도가 모였다는 것이다. 그분들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물론 다니다가 실족한 사람도 있고, 아무튼 여기 있는 우리보다는 그렇게 교회에 경험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날 강의내용이 무엇인고 하니까, 이렇게 더러운 구정물(?)이 있는데, 그 물이 자기에게 당연히 밀려와야 하는데, 그런데 그 더러운 물이 들어오지 않고 옆으로 그냥 흘러가 버렸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니 당연한 그 저주를 우리에게 퍼부어야 하는데, 그런데 그러한 우리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아니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른 길로 흘러가 버렸는데, 그런데 그곳에 보니 하나님께서 따로 마련해놓으신 분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고, 그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감당하도록 그렇게 죄에 대한 벌의 방향을 틀어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이 고린도후서 5장의 말씀이고 말이다.

(고후 5: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 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것을 가지고 1시간을 강의했는데, 나머지 30분은 신혼부부 집에서 했기 때문에 신혼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말이다. 물론 녹음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 엉뚱한 상상은 하지 마시고, 엉뚱한 교육을 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아무튼 밤이 늦도록 했다는 것이다. (ㅋㅋ)

◈ 과연 다니엘서의 이야기가 진짜인가?

아무튼 지금 우리가 다니엘서를 이야기하다가 좀 엉뚱한 길로 갔는데, 이 다니엘서의 내용이 정말로 사실인가? 이렇게 다니엘서를 공부를 다하고 나서도 마지막에 우리에게 부딪치는 것이 바로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의 이야기가 진짜인가?" 라는 것인데, 그것이 정말로 진짜라면 우리에게도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과 같은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얼마든지 하나님을 부인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서 하면 되는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정말 진짜라고 하면 우리는 어떤 처신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대한 대답을 이 다니엘서가 해주고 있다는 말이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다니엘서의 내용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우리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처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음을 이 다니엘서가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 인자가 되는 분께서 상황을 그렇게 !!

무슨 말인고 하니, 인자가 되는 분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인데, 즉 우리에게 주어진 나쁘다고 하는 모든 상황들이, 즉 그런 악한 이 세상의 권세조차도 인자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깔아놓은 상황임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정답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약에 이 다니엘서를 모른다고 하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신앙생활을 잘해야지" 라고 하다가, 만약에 복음을 무시하는 나쁜 놈들이 왔으면, "하나님이여, 저런 나쁜 놈들을 이기게 해주세요. 제가 더욱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 하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잘못인데,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하는, 즉 아까 말한 상호인정 속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야, 내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드디어 저 나쁜 놈을 이겼다" 라고 말이다. 즉 그런 복음을 알지도 못하는 나쁜 놈을 말빨로서(?) 자기가 이겼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말 믿음이 있다고 하면, 그런 복음을 반대하는 나쁜 놈들이 온 것조차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내어주셨다고 하는 것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뭔가 이유가 다 있어서 보내었다고 하는 것까지도 다 포함해서 믿어버리자는 말이다. 그런데 만약에 "저 놈을 이겨야만 돼" 라고 하면서 밤잠을 설친다고 하면, 그것이 과연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다니엘서는 천박한 패싸움이 아니라 !!

다니엘서의 경우에, 다니엘의 세 친구는 승리했고 나머지는 다 패배라고 보면, 그것은 천박한 패싸움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교 등의 이단으로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어느 한 사람을 전도하면 승리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패배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파트 벨을 눌리면서 뭐라고 기도하는가? "주여, 승리하게 하소서" 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런 것은 여호와의 증인이나 안식교는 물론이고, 선교단체나 큰 교회에서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들을 소위 '리더쉽' 훈련시키면서 마치 전투를 하듯이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그러니 어떤 사람들이 그런 것을 좋아하겠는가? 평소에 패배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동기유발이 된다는 것이다. 즉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고 하면서 노래를 부르면서 하니, 눈물을 흘리고 난리라는 것이다. "그래, 난 하나님의 사람이야. 이 인간들이 내가 파출부를 하고 배달을 한다고 무시했지? 이제는 내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하나님의 전투에 참여하는 거야"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 질문 - 이미 예수님이 승리를 했는데도 그렇게 합니까?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일종의 오기인데, 심지어 이런 것도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 딸아이가 피아노를 제대로 치지를 못하는데, 부흥회에 가서 피어노를 치라고 하는 계시를 받고 나서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는데, 얼마나 잘 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도 그때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라고 말이다.

이런 오염된 사이비 간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데, 그런데 속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 사기라는 것이다. 그런 것은 딴따라(?)를 해보면 다 알게 되는데, 그렇게 음악이 연주되면, 나팔소리가 나고 드럼이 '두두둑' 하고 소리가 나면 자기도 모르게 흥에 겨워 코드가 생각이 나고 연주가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연습해도 안 되던 박자가 맞아지고 말이다.

* 질문 - 병이 낫는 것도 그런가요? 할렐루야 기도원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하던데요?

모두가 다 마찬가지인데, 그런 돌발적인 것을 한번쯤은 다들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암이 낫고 하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도 모두 하는 것인데, 절에서도 그러한 간증집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개별적인 것을 확대해서 보편화시켜버리는데, 그러면 진리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 모든 상황은 다 하나님께서 !!

우리가 이렇게 다니엘서를 살펴보면서, 아직 다니엘서의 핵심적인 것은 다루지 않았는데, "다니엘과 세 친구가 승리를 했으니 우리도 승리하자" 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들의 데모를 해서 느부갓네살 왕은 물러가라고 한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우상을 부순다면서 도끼를 들고 설친 것도 아니고, 마치 단군상을 자르고 부수듯이 말이다.

바로 그러한 것조차도 하나님께서 다 뜻이 있어서 직장을 준 것이고, 이러한 모든 상황들을 다 허락하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주면서도 그런 것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인데, 그런 것은 다 허상이고 그림자이니 말이다. 짐승의 꼬리(?)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 다시, 이 다니엘서가 과연 진짜인가?

다시 한번 더 강조하지만, "이 다니엘서가 과연 진짜인가?" 라는 것인데, 그것이 진짜라고 했을 때에 나타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처음에는 그 신상이 금이 있었는데, 마지막에는 가치가 떨어지는 흙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조그마한 돌맹이가 날아와서 이 발을 치니까 그만 신상이 무너지면서 부서져서 먼지가 되어서 날아가 버리고 마는데, 그 돌맹이는 거대한 태산을 이루고 말이다.

(단 2:31)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단 2:32)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단 2:33)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단 2:34)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단 2:35)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 기쁜 자와 초조한 자 !!

이러한 모든 결과를 다니엘이 미리 다 알았는데, 그래서 기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에 대해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을 둘러싸고 있는 느부갓네살 왕과 이방신을 믿는 그의 신하들이 과연 이런 결과를 알고서 믿겠는가? 당연히 믿지 않는데, 그래서 그들은 발악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다니엘아, 니가 꿈을 그렇게 해석을 잘하나? 뭐, 니가 믿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정복한다고?" 라고 하면서, 다니엘을 핍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온갖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다니엘에게 압박을 가한다는 말이다.

◈ 니가 내일 교회에 가는지 한번 보자 !!

쉬운 예를 들면, 쫄따구 때에 군대에서 교회에 가려고 하면 고참들이 뭐라고 하는가? "너거 예수쟁이들은 주일성수를 해야 된다면서? 그런데 과연 내일 교회에 가는지 한번 볼까?" 라는 식으로 나온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고참들이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하도록 작전을 짜는데, 물론 고의적으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신앙인들을 불안하게 하고 시험에 들게 하는데, "뭐, 니가 내일 교회에 나간다구? 과연 가는지 나하고 내기할까?" 라고 하면서 고참들이 괴롭히는데, 바로 그런 상황들을 하나님께서 일부러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 때 졸병들은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내일 교회만 나가게 해주면, 고참님의 근무를 제가 대신해서 서겠습니다" 라고 아부를 해야 하는가? 그러한 것까지도 하나님께서 다 작정하시고 예정을 하시는데, 그렇게 해서 고참이 끝까지 괴롭히면 교회에 안 가면 된다는 것이다.

◈ 고참님,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

그렇게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면, 그것을 보고서 고참이 뭐라고 하겠는가? 전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라, "니가 오늘 교회에 빠져서 앞으로 벌을 받을 거야" 라고 할 것이 분명한데, 바로 그때 "고참님, 그런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그래야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믿음이 엉터리인 사람은 뭐라고 하겠는가? "나는 그렇게 가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했으니 책임을 하나님이 지소. 나에게 하나님이 저주를 하면 안 됩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신앙생활을 지금도 많은 교인들이 하고 있는데, 물론 신앙생활이 아니지만 말이다. 군대가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그렇게들 하고 있다는 것이다.

◈ 고난의 기간들이 !!

아무튼 우리가 이렇게 다니엘서를 보면서, 그런 역사의 종말을 다 알았고 그것을 믿는다면, 그렇다면 다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데, 그것을 두고 '고난의 기간'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결과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우리들을 더욱 더 약하게 만들고, 심약하게 만들고, 또한 낙담하게 만들고 하는데, 바로 그런 요소들이 계속해서 평생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평생을 통해서 말이다.

◈ 사랑하기 때문에, 뿌직 ??

나름대로 열심히 목회를 해서 성공(?)했다는 소리도 듣고 했는데, 그런데 어떤 일이 발생해서 그만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랑해서 그러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목사가 정말 성도가 맞다고 하면, 성도의 목적이 무엇인가? 오늘밤에 죽어도 낙원에 가면 그만인데, 그런데 목회가 잘되고 하니 낙원보다는 잠시 동안 자기 교회에 안주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목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래서 그 교회를 박살냄으로 말미암아서 "아하, 나는 지금 죽어도 구원을 받잖아" 라고 해서, 그 목사가 교회가 아닌 하늘의 낙원을 바라보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신다는 것이다. 물론 목사가 아닌 다른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그렇게 성령께서 수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하신다는 것이다.

◈ 왜 4마리의 짐승들이 등장하는가?

이제 다니엘서를 좀 알겠지요? 이 다니엘서는 이미 결과는 다 아는데, 즉 하나님께서 정답은 이미 다 보여주었는데, 문제는 그 정답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짐승들이 공격을 하는데, 4마리의 짐승들이 4차례에 걸쳐서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그 4마리의 짐승들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겠는데, 그리 만만한 내용이 아닌데, 조금 힘이 들어도 참으시고, 그래도 알아야 되니 말이다. 다니엘서 7장을 한번 살펴보자.

(단 7:1)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단 7:2) 다니엘이 진술하여 가로되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단 7: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단 7: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단 7: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단 7: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단 7:7)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네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단 7: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 바다는 땅을 침범하면 안 되는데, 그런데 !!

아이쿠, 안경을 안 가지고 왔는데, 나이가 드니 몸도 그렇지만 머리도 맛이 갔는데(ㅋㅋ), 그건 그렇고 여기 3절에 보면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창조에 의하면 원래 바다는 육지와 구별이 되는 것인데, 즉 바다는 땅을 침범하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창세기나 예레미야서 등에 보면 나오는데, 하나님의 창조언약에 의하면, 바다는 땅을 점령하지 못하도록 되어있고, 그 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장소인데, 그런데 4마리의 짐승들이 바다에서 땅으로 올라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결국 이 땅의 멸망을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 짐승들이 바다에서 왜 올라오는가?

그렇다면 여기에서 질문을 하나 하겠는데, "그동안 가만히 있던 짐승들이 바다에서 왜 올라오는가?" 라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 조금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아마 제가 답변을 해야 되지 싶은데, 잘 한번 들어보라는 것이다.

◈ 포로로 잡혀온 것인가? 아니면, 침투한 것인가?

지금 여호와는 어떤 위치에 있는 신인고 하니까, '유다' 라는 한 나라의 신의 입장이 아니라(?), 지금 전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바벨론의 '마르둑' 이라는 신에게 잡혀와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즉 유다가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와 있으니, 여호와 신도 역시 마르둑에게 잡혀있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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