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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80919-a 서울강의녹취 : 에베소서 제 19강자유게시판에베소서

20080919-a 서울강의녹취 : 에베소서 제 19강

이름 : 오용익(IP:59.3.201.241)

에베소서 제 19강 (이 근호목사, 2008년 9월 19일-a, 서울의존교회)

에베소서 4장부터 할 차례입니다. 4장을 보기 전에 3장 마지막 부분 20절에,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라고 되어 있지요? 능력이란 힘입니다. 제가 안경집을 들고 있는데 이 안경집을 들어 올릴 때 무엇이 필요할까요? 힘이 필요하겠지요. 만약에 힘이 없으면 이 안경집을 들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못 들지요?

바닥에 있는 안경집을 위로 들어 올리는 데에도 힘이 필요하듯이 이 땅에 사는 우리가 천국에 올라가려면 힘이 필요한 거예요. 놀이동산에 가서 청룡열차 있는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본인이 폴짝 뛴다고 해서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청룡열차를 타고 올라가는 거지요. 그처럼 하늘나라 올라가는데는 하늘에서 힘이 와야 됩니다.

하늘에서 능력, 힘이 오게 되면 이 땅에 있는 우리가 하늘로 올라갈 수가 있어요. 스데반 집사님이 죽어서 어디에 갔느냐 하면 예수님 계신 곳에 갔어요.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죽을 때에 하늘에서 전용차가 왔어요. 하늘에서 전용마차가 왔는데 그 마차가 불로서 장식이 되어 있어서 그 수레를 불 수레라고 했어요.

그 불 수레를 누가 끌겠습니까? 불말. 끄는 말도 불 말입니다. 불 말이 끄는 불 수레가 와서 하늘로 엘리야를 끌어 당겼습니다. 그 능력이 에베소서 3장 20절에 나오는 그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 일하게 되면 그 힘의 일에 의해서 우리는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간다는 이야기가 에베소서 3장 20절에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방금 본 성경을 통해서 두 가지로 나눠보겠어요. 헛된 믿음과 진짜 믿음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진짜 믿음을 좋아할까요, 헛믿음을 좋아할까요? 헛믿음을 좋아하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헛믿음을 좋아합니까, 진짜 믿음을 좋아합니까? 만약에 헛믿음만 있다면 사람들은 아주 맘이 편안합니다.

왜? ‘교회 다녀봤자 헛것이요, 예수 믿어봤자 헛것이요, 예수 10년 믿은 너나, 교회 한번도 안간 나나 똑같이 되었으니까 그 헛믿음 참 좋다.’ 이렇게 됩니다. 헛믿음일때는 사람들이 마음에 부담이 없습니다. ‘나도 헛되고 너도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교회 안가도 괜찮아. 하나님 안 믿어도 괜찮아. 교회 가기 싫으면 교회 안가면 되고 천국 가기 싫으면 천국 안가면 돼지.’ 이게 돼지송이잖아요.

지옥가고 싶으면 가면 되고 안가고 싶으면 안가면 되고 본인이 하고 싶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안하고 싶으면 안하고 싶은대로 안하고. ‘이 세상은 전부 다 헛믿음만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세상 사람들은 학수고대하고 있어요. ‘교회 30년 다닌 인간이나 교회 한번도 안간 인간이나 결국은 똑같이 돼대? 교회 안가도 아무 일도 없대! 별 상관없대! 죽은 뒤에는 천국이 있다고 하는데 천국은 개코나 천국이 어딨어? 아무것도 없는걸. 이 불쌍한 인간들아! 뭐, 예수 피를 믿으면 구원 얻는다고? 봐! 나 안 믿잖아. 안 믿어도 편안하게 죽잖아.’

이렇게 되기를 불신자들은 간절히 고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의존교회 올 때마다 걱정이 하나 있어요. 이렇게 의존교회라고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전부 다 헛믿음 같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의존교회 교인들이 전부 다 헛믿음이라면…. 천하의 이미아 성도의 믿음도 헛믿음이라면….

전부 다 믿음이 헛것이라면 그동안 금요일마다 저녁에 애들까지 불러 모아서 이렇게 성경공부 한 것도 다 헛수고였고 부질없는 짓이었다. 이렇게 결정이 난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목사님, 그럴 리 없습니다. 우리 믿음은 진짜입니다.’ 이렇게 큰소리 치고 싶어서 근질근질 하지요?

‘진짜 믿음 같으면 진짜 믿음의 증거를 내어 보라고요. 증거를!’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진짜 믿음은 아예 없다고 보는 거예요. 강의를 처음부터 새로 해 봅시다. 처음에 제가 뭐라고 했던가요? 여기 땅에 있는 안경집을 위로 들어 올라갈 때 무엇이 있어야 올라갔다? 힘이 있어야 올라가죠. 마찬가지로 스데반 집사가 하늘로 올라갈 때는 하늘에서 올라온 힘, 능력이 있어서 올라갔다고 했지요.

엘리야가 불 말과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갈 때 그것도 힘이 있어야 올라가지요. 이게 참된 믿음이 아닙니까? 그러면 참된 믿음이라면 믿는 사람안에서 무엇이 움직이고 무엇이 활동해야 됩니까? 뭔가 하늘에서 온 능력에 의해서 들썩 들썩 거리는 식으로 그런 힘이 있을 때 그것이 참된 믿음 맞지요? 엘리야처럼, 스데반처럼, 그렇지요?

그런데 의존교회 교인들은 만 날 참된 믿음이라고 말만 해놓고는 들썩 들썩은 커녕 만 날 땅만 바라보고 살고 세상만 바라보고 산다면 뭐가 들썩 들썩 인데요? 뭐 들썩 들썩 하는 것이 있어야죠. 만날 땅만 쳐다보고 있는데. 땅만 쳐다보면서 ‘쟤가 날 미워해요. 저애가 나를 놀려요. 어쩌면 좋아요.’

저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누가 미워하든지 싫어하든지 본인이 지금 들썩 들썩 하고 있으면 그 힘, 세상에서 얻은 것이 아니고 하늘에게 직접 주어진 그 힘에 의해서 산다면 세상 사람들이 무식하다고, 돈 없다고 놀리는 거, 그게 뭐가 그리 대수이며 중요한 문제이겠습니까? 들썩 들썩 하는 능력이 없으니까 ‘쟤가 나를 미워해요, 싫어해요, 놀려요’ 그런 것 가지고 고자질 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제 말이 틀렸어요? 엘리야가 불 말과 불 수레를 타고 가면서 신나게 타고 간 것처럼 그렇게 신나게 타고 올라가면 될 텐데, 지금 신나게 올라가고 있는데 ‘하나님, 쟤가 제 등 뒤에서 나를 쳤어요’ 라고 할 필요까지는 뭐가 있느냐는 겁니다. 아마 엘리야가 ‘하나님, 저 애 좀 혼내주세요. 꿀밤 좀 주세요. 제가 쟤 때문에 한동안 혼났어요.’

이러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냥 놔둬라. 그렇게 너한테는 힘들게 해도 그 애한테는 힘이 없잖아. 능력이 없잖아. 그냥 팔짝 팔짝 뛰기나 하지 위로 천국으로 갈 수 있는 불 수레와 불 말이 없잖아. 너에게는 그게 있잖아. 그게 있는데 네가 그 애를 갋으려고 새삼스럽게 그럴 필요가 뭐가 있느냐?’

이것은 교인들뿐만이 아니고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는 목사 월급이래야 80만원 받고 자기는 500만원 받는다고 나는 목사도 아니라면서 막 놀려요.’ 그러면 주님께서 뭐라고 하겠습니까? ‘80만원 받든 500만원 받든 너는 지금 불 수레와 불 말이 있는데 ….’ 그러면 500만원 주고 마차 빼앗아 버리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땅에 헛된 믿음들을 많이 두시는 이유가 참된 믿음이 있느냐를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 주변을 쫙 포위하듯이 헛된 믿음들을 쫙 깔아 놓은 거예요. 바라기는 지금 의존교회 강의하는 이 두 시간이 참된 믿음이 쏙쏙 나오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에베소서 4장 들어가기 전에 3:20에 ‘하나님의 힘이 너희가운데서 일하고 있구나. 좋다 정말! (이것은 우리 판소리 할 때 나오는 소리 그 정도 이상입니다.) 정말 좋구나. 세상에 하늘에서 내려온 힘이 변변치도 않은 너희들 가운데서 역사해서 너희들로 하여금 들썩 들썩 위를 보고 살아가게 하니 야, 참 좋구나. 이런 참된 믿음을 어느 누가 선물로 받으리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했지만 에베소서 2:8,9에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선물을 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자랑치 못할 것이니 자랑하려거든 예수님으로 선물 받았다고 예수님만 자랑하는 여러분들이 되기 바랍니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지나갔다고 못 본체 하면 안 되고 이렇게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느냐, 거기에 대해서 에베소서 4장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절부터 보면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으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여기 하나가 몇 번 나옵니까?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부르심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하나요, 하나가 일곱 개 나왔어요. 헛된 믿음이 아니고 참된 믿음 같으면 바로 여기 나온 ‘일곱 가지의 하나’(‘일곱 개 중에서 한 가지’라는 뜻이 아님)를 이야기 하게 된다는 겁니다.

진짜 믿음 같으면 ‘목사님, 하나입니다. 몸도 하나고 소망도 하나고 …’ 라고 하나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들썩 들썩 하는 하나님이 주신 힘을 받은 사람이구나’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야기 한 것 이해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헛된 믿음은 뭐가 아니냐? 믿음도 하나가 아니요, 주도 하나가 아니고, 하나님도 하나가 아니요, 몸도 하나가 아니요 …, 헛된 믿음은 사적이고, 개인구원, 개별 구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힘이 안 오고 가짜로 하나님께 받았다고 주장하는 인간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개인적인 구원과 개인적인 자기 믿음을 자랑하려고, 자기 득보려고 하나됨을 굉장히 싫어하고 미워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게 좀 어렵지요? 제가 ‘진짜 믿음은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부르심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하나다’고 이야기 하니까 굉장히 쉬운 것 같은데 ‘헛된 믿음은 이렇습니다’라고 할때는 갑자기 여러분이 어려운 눈치, ‘어렵도다. 이래서 누가 믿겠는가?’ 하는 눈치를 보였습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서 헛믿음인가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어린이들에게는 어려운 이야기가 되겠지만 헛믿음을 이야기하려면 할 수 없이 어려운 이야기도 해야겠습니다. 헛믿음이란 내 개인적인 능력으로 예수를 믿을 때 그게 헛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믿게 한 것이 아니고 내 개인적인 결심이나 다짐이나 열성을 내세워서 ‘나 이제 예수 믿는다! 오랫동안 믿는다! 예수님 오실 때까지 천국 갈 때 까지 믿는다’라고 ‘내가 믿는다’라고 했을 때 이게 바로 헛믿음입니다. 진짜 믿음은 ‘하늘에서 주신 선물로 내가 믿어졌다.’ 이게 진짜 믿음입니다.

이게 너무 어렵기 때문에 쉽게 해 보겠습니다. ‘내가 재원씨를 찾아간다. 내 힘으로 재원씨를 찾아냈다!’ 이것이 헛 믿음입니다. 그런데 ‘송 재원씨가 나는 가만히 있는데 어느 날 나를 찾아왔다.’ 이것, 진짜 믿음입니다. 이해되십니까? '당신은 재원씨를 어떻게 압니까?' 할 때 '그분이 날 찾아왔어. 내가 찾아 간 것이 아니고 그분이 찾아왔어.' 그게 바로 진짜 믿음입니다.

‘내가 열심히 찾아다녔더니 결국에는 찾아냈어.’ 이것은 거짓 믿음이고 가짜 믿음입니다. 그래서 ‘내가 찾으려고 애쓰기 전에는 먼저 주님이 나를 안 찾더라. 주님이 나를 찾아온 적이 없어요.’ 그때는 이러면 돼요. ‘예수 믿기 싫으면 안 믿으면 되고 천당 가기 싫으면 안가면 되고, 누가 뭐랬어? 열심히 찾으려고 찾으려고 해도 안 찾아지거든 안 찾으면 되고, 누가 뭐라고 했어? 맘대로 하세요. 맘대로.’

에베소서 2:8에 창세전에 예정된 자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줘서 에베소서 2:9에 보면 오직 예수에게만 영광 돌리고 주님의 공로만 드러내게 되어 있다고 되어 있어요. 만약에 내가 예수를 찾아 버리면 이것은 선물이 아니고 내 애씀이고 내 노력이고 내 희생으로 구원받기 때문에 이것은 에베소서에 의하면 창세전에 예정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고 헛믿음입니다. 믿으려고 애쓰면서 한 20년 믿다가 결국에는 나자빠지지요. 이것은 교인들뿐만이 아니고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고, 내가 이렇게 애쓰고 수고하는데 주님이 안 받쳐 주는데 내가 무슨 목회를 하나. 나는 이제 예수와 바이바이 해야겠다. 나는 할 도리 다 했고 성의를 다 표했는데 하나님이 묵묵 응답이다. 할 수 없지 뭐.’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합니다. ‘누가 뭐래? 제 풀에 제가 열광 내놓고.’ 성경에 보면 ‘두드리라 열릴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구하라 얻을 것이라’(마 7:7,8)고 되어 있잖아요. 똑같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창세전에 예정된 사람들이 찾으면 찾아지고 구하면 구해집니다. 그러나 예정되지 않은 사람은 백날 찾아도 안 찾아집니다.

문 안열어줘요. 왜 그러냐 하면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의 자력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앞장세우는 분이 있어요. 그분이 누구냐? 예수그리스도가 하신 일, 그 공로로 인하여 구원받아야 주도 하나요, 예수님의 공로가 하나로 모이게 됩니다.

각자의 노력으로 구원받으면 각자의 자랑거리가 쫙 퍼지겠지만 각자의 자랑거리를 몽땅 일소해 버리고 주님이 주님 되게 주님의 공로가 되려면 주님의 공로 앞에서는 ‘어떤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받았다’ 하는 것을 주님께서는 허락할 수가 없어요. 사람이 잘나서 구원받을 것 같으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적어도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냈으면 모든 사람들의 입을 막고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만 구원받는다’는 공식이 성립될 때 그 때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영광이 되는 거예요. 자기 아들로 인하여 영광받는 겁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3:21에도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이라고 합니다.

항상 예수님 안에서 영광 받지요. 항상 예수로 말미암아 영광 받지요. 에베소서 1장에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광돌리죠. 예수님의 공로 예수님피로 말미암아 영광 돌립니다. 하늘의 힘의 모든 원천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거쳐서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진짜 하나님의 힘을 받는 사람 같으면 하나님을 먼저 보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먼저 보게 되어 있어요.

‘어? 나는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 어떻게 내가 구원되었지? 예수님이 크게 보이는구나. 예수님의 희생과 예수님이 하신 일로 내가 구원되었구나.’ 그것을 새언약이라고 합니다. 새언약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행할 수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새 언약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는데 사람들이 못이룬것을 예수님이 이룬 이유가 새언약안에 나와 있어요.

그 이유가 ‘피와 살’입니다. 이 말은 뭐냐? 인간들이 왜 하나님께 영광을 못돌리냐 하면, 인간 속에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속에 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했는데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고 살이 찢어질 때 비로소 왜 인간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예수님의 피와 살만이 영광을 돌리느냐, 그 이유가 밝혀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예수님이 아니고 예수님의 살이 찢기고 피가 흘린 십자가를 통해서 비로소 인간은 죄인이 되면 모든 구원의 공로는 오직 찢어진 예수님께 돌아갔다는 것이 확실해 지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십자가외에는 내가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전 2:2)고 했어요.

주님께서 우리 이마에 십자가를 들이댈 때 비로소 우리가 드라큐라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름을 고쳐야 돼요. 이 근호가 아니고 이 드라큐라. ‘너 때문에 내가 죽었다. 너 때문에 내가 죽었어’라고 우리 이마에 십자가를 마구 들이대야 됩니다. 마늘도 필요 없어요. 십자가를 들이대서 ‘너 때문에 내가 죽었다’고 하는 그것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불수레와 불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안 오면 내가 전적으로 죄인인 것을 알지 못해요. 약간 어설픈 죄인인줄 알아요. 그러나 내가 뭘 해도 죄고, 뭘 해도 죄가 되는 이유는 바로 십자가를 들이댈 때 ‘아, 나는 아무것도 내 세울 수 없는 완벽한 죄인이군요’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완벽한 죄인으로 드러내는 이유는 바로 이미 빛이 어둠인 우리에게 비추었기 때문에 어둠이 어둠인줄을 아는 겁니다.

여기 피아노 뒤가 어둡습니다. 그런데 피아노는 자기 뒤가 어두운지 몰라요. ‘나는 피아노, 내 뒤가 뭐가 어두워?’ 이러고 있습니다. 그래서 손전등을 들고 ‘피아노, 네가 어두운가 안어두운가 보자. 피아노 네가 한번 봐라. 어두운가 안어두운가?’ ‘무지 어둡네요.’ ‘어떻게 알았어?’ ‘빛이 비추니까 되게 어두운지 알지요.’

이처럼 십자가라는 그 빛이 비추니까 우리는 그 십자가라는 눈부신 빛 앞에서 내가 말도 안 되는 죄인인 것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날 위해 죽으신 십자가만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나는 십자가 안에 있구나!’ 이것이 바로 창세전에 예정된 자의 진짜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헛똑똑이, 헛믿음은 ‘내가 믿는다’ 이렇게 나와요.

‘내가 믿는다’ 이렇게 되어 버리면 백 명이면 백 명 전부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예수님이 다 달라요. 백 명이면 백 명 다 자기가 믿으니까 하나 될 수가 없어요. ‘네가 나에게 굴복해라.’ ‘내가 네 시다바리가?’ 이러고 있어요. 전부 다 자기가 최고이고 자기가 돛대입니다. 여기서 돛대라는 말은 배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기둥을 말하는데 제일 으뜸을 일컫는 말입니다.

자기가 최고이고 으뜸인줄 알고 ‘네가 나에게 굴복해라’ 다 이러고 있다는 말이지요. ‘내가 이 믿음을 이루는데 얼마나 애쓴 줄 아나? 15년동안 기도했다.’ 이러고 있어요. 그게 헛믿음 아닙니까? 지금까지는 다 아신다고 보고 이제부터 약간 어려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가 지금까지 가짜 믿음과 진짜 믿음을 설명했습니다.

가짜믿음, 헛믿음은 이기주의고 자기밖에 모르는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부터의 이야기가 왜 어려운가 하면 어떤 인간도 자기생각만 하지 남생각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거든요. 사람치고 어떤 사람도 자기생각에만 몰두하지 남 생각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엄마나 콩나물을 무치면서 딴에는 맛있게 무쳤다고 했는데 식구가 다섯식구 같으면 그중에 네 식구가 코를 막으면서 다 못 먹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내가 요리를 잘못했는가?’ 하면서 다시 먹어 보니 자기 입맛에는 괜찮아요. 자기 입맛에 맞춘 것이니까 그 밖의 사람들이 먹으면 짠 거예요. 그럴때 엄마가 뭐라고 할까요? ‘얘들아, 미안하다. 내 입맛에만 맞추다 보니 그리 되었구나. 다음부터는 너희들 입맛에 맞출게’ 라고 할 줄 알았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내 입에 맞춰! 끝! 반찬 하나 만드는 것이 쉬운 줄 알아?’ 요즘 주부들 같으면 ‘돈벌어와. 반찬까지 만들어. 내가 하녀인가? 아니면 기계인가? 남자들 뭐하는데? 마냥 놀면서 뭐하나?’ 추석 때가 되면 여자들이 할 말이 많아요. 남자들은 빈둥빈둥 고스톱 치면서 놀고 있고 남자들은 부엌에서 종일 일하고 파김치가 되고요.

대개들 그렇게 하는데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고 다 시켜서 드세요. 중국집에서 시켜서 먹으면 되지요. 모든 사람들은 남의 입맛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기껏 안 것이 자기 입맛 알았을 뿐인데 어떻게 남의 입맛까지 다 알아서 그것을 맞춥니까? 말이 안 되지요. 사람은 자기를 건널 수가 없는 존재에요.

내가 아는 것이 전부고 나한테 맞는 그것이 진리이고 자기 편하면 그것이 좋은 세상이고 자기 오래 살면 남들은 안 죽는 줄 알고 있고 자기 좋은 대로 남들이 다 따라 해야 되고 사람은 자기 밖으로 벗어날 수 없어요. 그러면서도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뭘 내 몸같이 사랑합니까? 자기 사랑하기 바쁘지. 어렵다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지금부터 어렵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 보면 ‘너희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라’고 분명히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된다는 말을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왜 안 되는가? 인간은 남을 사랑해도 자기가 풍선처럼 늘어나서 사랑하는 것이지 자기를 떠나서 남을 사랑하지는 않아요. 자기가 부풀어지는 겁니다.

내가 부풀어져서 남에게 사랑한다고 나오지 뻥하고 터지면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 버려요. 사람은 자기 자리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애들이 엄마보고 하는 소리가 뭡니까? ‘엄마가 내 맘 알아?’ 우리 의존교회 학생들은 엄마에게 그렇게 항의하지 않지요? ‘엄마가 내 맘 알아? 왜 엄마는 엄마밖에 모르고 내 맘은 왜 안 알아줘?’ 이런 소리 하면서 대들다가 한 대 더 맞곤 하죠.

사람은 왜 자기밖에 모르는가 하면, 선악과를 따먹을 때 큰 일이 있었어요. 이때 큰 오류가 벌어졌어요. 선악과를 안 따먹은 상태에서 있을 때에는 이 선악과와 생명나무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있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한 겁니다. 이것을 따먹으면 거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속성이 나오기 때문에 마귀도 그것을 알아요. 그래서 마귀가 따먹으라고 했지요.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는 갑자기 선악과가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저 선악과 때문에 내가 고생하게 되었다’ 라는 식으로 선악과하고 자기입장하고만 결부를 시켜요. ‘원인은 선악과이고 그것을 따먹은 결과로 내가 죽게 되었고 이마에 땀 흘리면서 살도록 저주받게 되었다’고 하는 겁니다.

아담과 하와도 그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찾아왔을 때 ‘저 여자가 따먹으라고 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하고 그 선악과의 이유를 자기신세 망친 것과 결부를 시키는 거예요. 이게 어려운 이야기인데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의 인간들은 어떤 일이든 그게 나에게 무슨 이익이 있느냐, 무슨 손해가 있느냐, 전부 다 최종적으로 나로 연결시켜서 세상을 하나하나 해석하는 거예요.

원래 선악과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렇게 보지 않고 모든 것을 원인과 결과로 봐가지고 ‘선악과 때문에 내가 당했다.’ 그러면 선악과 심은 분이 누구란 말입니까? 하나님이죠. 그러면 결국 자기 잘못된 것이 누구 책임이다? 하나님 책임 아닙니까?

하나님이 아예 선악과 심지도 않았고 심어 놓더라도 저 한구석에 심어 놓든지, 가운데 둘 거면 신경 별로 안 쓰이도록 만들어 놓든지 아니면 못 따먹게 철조망을 쳐놓든지 고압선을 흐르도록 해서 접근을 못하게 해야 하는데 아무런 대책도 안 해놓고 그냥 말로만 ‘따먹지 마라. 죽는다’고 해놓으니까 따먹고서 ‘선악과 때문에 신세 망쳤으니까 책임져. 선악과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되지 않았으니 책임져’ 하고 나옵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기다렸던 드디어 들통 난 인간의 근원적인 죄입니다. 죄가 뭐냐? 죄란 나밖에 모르는 것. 세상 모든 것을 나와 결부시키고 나와 연결시켜서 나에게 무슨 이익이 있느냐를 계산하고 나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 이게 바로 우상입니다.

구약에서는 나라는 것이 그렇게 문제성 있는 것으로 안 드러나지만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으로 오셔서 하나님아버지께서 예수님의 육신의 몸을 죄 있다고 저주함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이 몸 자체에 문제가 있구나. 이 내 몸 중심으로 사는 이것이 문제가 있구나. 내가 바로 아담의 몸, 저주받을 몸을 지니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거예요.

사람이 ‘나’라는 것이 어디서 발생되는가? 자기가 갖고 있는 신체를 보고 ‘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것은 하나의 예니까 상상해보세요. 제가 한 윤범 목사님의 몸에 들어갔다. 또 한 윤범 목사님이 제 몸에 들어왔다. 그러면 이 근호 제 몸은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한 윤범 목사님의 몸에 있다고 보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바뀐지도 모르고 ‘저, 한 목사님!’하고 부르니까 한 목사님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 ‘왜요?’ 이러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듣고 있다가 ‘당신은 한목사님이고 내가 찾은 것은 이 목사님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목사인데요?’ ‘그러면 증거를 대 봐라.’ ‘어? 몸이 다르네? 몸은 내 몸이 아닌데 나는 나다.’

그동안 나, 나 이것은 습관이었고 그냥 지어낸 거예요. ‘나’라는 것이 없어요. 하나의 생명체만 있을 뿐이지 ‘나’라는 것이 없다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생명체를 이름을 붙여요. ‘이제부터 나는 너를 나, 라고 부른다.’ 자기가 자기 맘대로 ‘나’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런데 이 생명체는 누구의 것입니까? 이 생명체는 누구를 증거 하기 위함입니까?

예수님을 증거 하라고 예수님이 만든 몸인데 우리는 그것을 빼앗아서 누구를 증거 한다? 허망한 나를 증거 하기 위해서 내 신체가 있는 줄로 그렇게 여기고 있는 겁니다. ‘나 잘났다. 나 훌륭하다. 나 똑똑하지?’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것이 헛된 믿음, 불신자들의 생각이 아닙니까?

(질문) “당신은 누구거죠?”

(답변) “나는 내거지.”

(질문) “그러면 그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이 나라고 여기는 그 ‘나’가 어디에 들어 있습니까?

(답변) “…….”

할 말이 없어요. 그 사람들은 할 말이 없다고요. ‘이 몸이 바로 나인데….’ 그것은 물질 덩어리이고 ‘나’가 어디 있어요? ‘글쎄, 없네.’ ‘나’라는 것이 없어요. 고린도전서 6장에 보면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이제는 누구의 것이다? 주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우리는 창세전부터 예수님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것이었는데 자꾸 뭐라고 우기는가? 예수님의 것이었는데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마귀가 들어가서, 귀신이 들어가서, 귀신이라는 것이 죽은 영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악마의 졸개들이에요, 악마의 졸개들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네 몸은 네 것이다. 잘 챙겨라. 빼앗기면 안 돼. 빼앗기면 안 돼. 네 몸은 네 꺼야’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만 날 시합을 하죠. ‘네 몸이 좋은가, 내 몸이 좋은가? 내 몸에는 왕(王)자가 있다.’ ‘어? 내 몸에는 똥배뿐인데, 아이고 부끄러워라.’ ‘음메, 기살아!’ 모든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해도 자기와 결부된 것만 행동을 해요. 그러니까 얼마나 큰 죄입니까? 자기와 결부된 것만 하니까 얼마나 큰 죄입니까?

지금 부산은 난리입니다. 롯데자이언트가 한국시리즈에서 2등하고 있다는 거예요. 부산에서 홈경기 할 때는 부산갈매기 노래 부르고 난리입니다. 전부 다 한 마음 되었어요.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느냐 하면, 부산 사람들한테는 LG도 안중요하고 대구의 삼성 라이온즈도 안중요하고 전라도의 기아도 안중요하고 오직 롯데자이언트가 최고라.

이처럼 모든 인간은 자기와 연관되어 있을 때만 그것이 최고이고, 그것만 사수하고 그것이 진리이고 생명인줄 알고 있어요. 이게 바로 하늘에서 주는 힘, 구원의 능력이 안 올때 일어나는 현상이 그 현상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밖에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한테도 ‘하나님이여, 왜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십니까? 내 인생 왜 이렇게 망가뜨리십니까? 전생에 나한테 무슨 업보가 있어서 내 팔자를 더러운 팔자 만들었습니까?’

전부 다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 이것을 집어넣어요. 이것이 무슨 자입니까? ‘나’를 집어넣어요. 몸도 하나요 주도 하나인데 무슨 그런 이 다 있어요? ‘나를 구원해주소!’ 이것 참!! 주님께서 그럽니다. ‘네가 뭔데?’ ‘나는 교회도 잘 다니고 성경공부도 잘 참석했으니까 날 구원해 주소.’ ‘네 마음대로 하세요. 그런데 네가 아무리 찾아와도 너는 나 있는 곳에 못온다.’(요 7:34-36)

나를 흡수시켜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주님은 나 이전에 주님의 것, 주님의 몸을 영화롭게 만들어요. 주님은 나 빼고 자신의 몸인 우리의 몸을, 흙으로 된 몸을 하늘의 형상으로 만드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자기 것 자기가 가지고 가요. 저기 신발장이 있어요. 어떤 마음 나쁜 아이가 신발장에서 좋은 신발을 보고 예쁘니까 자기 이름, ‘김 효실의 것’이라고 썼어요. 그 옆에 보니까 구두가 좋은 것이 있네요. 그것도 ‘김 효실의 것’이라고 써놓고 전부 다 자기 것이라고 이름을 써놓았어요.

전부 다 이름 적어놓고는 ‘가져가기만 해 봐라’ 그랬는데 ‘어, 내 구두 여기 있네. 그런데 누가 다른 이름을 적어놓았지?’ (이름을 쓱쓱 지워버리고) 가져가 버립니다. ‘어? 그거 내 구두인데….’ 자기 것? 자기 것은 없는 거예요. 예수님의 것을 가지고 전부 다 ‘김 효실, 나의 것, 이 안경도 내 것, 코도 내 것 귀도 내 것….’ 전부 다 자기거래요.

아니, ‘나’라는 것 자체가 없는데 무슨 자기 것이 있습니까? ‘나’라는 것이 언제부터 있다고요? ‘나’라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자기 몸이 죽어가니까 ‘신이시여, 나를 왜 저주하십니까?’ 하고 그때부터 ‘나’라는 것이 발생되었어요. 처음부터 우리의 몸은 주님의 것이었지 창세전부터 내 것은 없어요.

예수님은 자기 것 찾아갈 뿐입니다. ‘어…? 내 것! 내 것!’ 이러면 안돼요. 그래서 진짜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이런 고백을 해야 합니다. ‘주여, 나는 내 몸이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내 방식대로 구원받으려고 했는데 주님께서는 새치기로 와가지고 예수님 자신의 필요와, 너는 네 것이 아니고 내 것이야, 라는 식으로 나를 주님의 것으로 가져가시는군요.’

구원은 소유가 아니고 편입, 또는 소속됨입니다. ‘네가 내 속에 편입되었다. 네가 내 속에 들어와라. 너는 이제 네 것이 아니야. 이제는 내 것으로 합류해.’ 소유가 아니고 합류입니다. 합류되니까 합류된 이 마당이 무슨 마당이냐?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라고 하는 겁니다.

자연적으로 하나에 합류되는 겁니다. 우리 남자들은 나이 스무 살이 되면 어디 갑니까? 군대에 가죠. 군대 가기 좋아요, 싫어요? 솔직하게. 군대 가기 싫으면 집에서 혼자 군대생활 하면 안 될까요? 집에서 인터넷 보면서 군대생활 하면 안 되겠어요? 요새 교회도 인터넷 교회잖아요. ‘저, 군인아저씨, 저는 군대체질이 아니에요. 그래서 군대 짬밥 같은 것도 잘 못 먹으니까 그냥 집에서 혼자 군대생활(병정놀이)하겠습니다.’

이게 허락이 됩니까, 안됩니까? 허락이 안 되지요. 우리 집을 떠나 어디로 가야합니까? 합류해야 되지요. 그 합류하는 곳이 어디라고 했습니까? 그게 바로 ‘군대’, 합류하는데, 내 것을 버리고 심지어 내 머리카락도 머리고, ‘부모님 안녕히 계십시오’ 인사하고 아름답게 기르던 머리 홀랑 깎고 논산훈련소 들어갈 때, ‘친구들아, 잘 있거라. 나는 고생하러 들어간다’ 이렇게 합류해야 돼요.

군에 가서 남들 다 아침 새벽 5시 30분에 구보하기 위해서 일어나는데, 혼자 침상에 누워 있습니다. 중대장이 와서 ‘야, 일어나라’ 하니까 ‘나는 아침 10시에 일어나는 타입입니다.’ 이게 됩니까, 안됩니까? 그 때 그 중대장이 뭐라고 합니까? ‘군대는 하나야!’

교회 오는 사람이 나이가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직분이 다르고, 다 다르더라도 주님께서는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교회를 뭐로 봅니까? 몸도 하나요, 교회도 하나요. 하나로 보는 거예요. 제가 아까 강의하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인간은 자기를 타넘을 수 없다고 했지요? 인간은 나를 타넘을 수 없어요.

그래서 어떤 인간도 자기가 자기를 비워서 구원받는 방법은 없습니다. 왜? 인간은 어떤 식으로도 자기자신을 타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참된 믿음을 보니까 ‘몸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어째서 사람은 도저히 안 되는 이런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가? 10분 쉬고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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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30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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