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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3-하나님의고통,다니엘1(묵시개념)(강의정리)-잘린부분자유게시판다니엘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3-하나님의고통,다니엘1(묵시개념)(강의정리)-잘린부분

이름 : 구득영(IP:203.223.97.224)

* 질문 -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묵시적인 내용이 엄청 많겠네요?

많은 정도가 아니라, 그 바탕이 전부가 다 묵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침을 놓는다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렇게 묵시적으로 보려고 하면 성령님께서 오셔야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성령님을 통해서 역사와 묵시를 보려고 하면, 그냥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죽어야만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 예수님의 죽음으로 성령이 임하시면 !!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라고 하면서, 이제는 자기 속에서 예수님이 산다고 했는데, 바로 그러한 순간만은 묵시세계의 관점으로 이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즉 성령님이 임해야 이러한 고백이 나온다는 말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도행전 7장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님도 역시 그러한데,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소서" 라고 주님에게 부탁했다는 말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이런 스데반의 행동을 보고 미쳤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스데반 집사님은 하늘의 주님을 보았는데, 그것이 바로 정말 현실이라는 것이다. 물론 옆에 있는 사람은 스데반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헛소리를 하는 줄로 알았겠지만 말이다.

(행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행 7: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행 7: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행 7: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마찬가지로 지금 다니엘서도 분명히 역사이지만, 하지만 그렇게 역사적인 사건으로만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니엘서를 보면서 장차 오실 묵시적 존재도 같이 보아야만 하는데, 마치 스데반 집사님처럼 말이다. 그렇게 해야 구원받은 자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 질문 - 지금까지 목사님의 구약설교가 다 이렇게 묵시세계를 염두에 두고 하셨다는 것이죠? 진작 이런 설명을 좀 해주시고 설교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물론 제가 설교를 하면서 이미 그런 설명을 다 했지만 그때는 미처 알아듣지를 못한 것인데, 그러니 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렇게 말해도 여전히 알아듣지를 못하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결코 언제 어디서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그러니 교회에 나와서 복음을 들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사생결단(死生決斷)의 문제라는 것이다. 즉 복음과 구원의 문제이니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 질문 - 묵시는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이고, 역사는 우리 인간이 보는 관점이라고 여기면 되겠네요? 그리고 '인자' 라는 것도, 원래 하나님인데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서, 그렇게 묵시세계와 역사세계에서 하나가 되신 분이고 말입니다.

◈ 무엇을 하든 묵시세계를 연결해서 !!

물론 그렇게 보면 되는데, 그런데 제가 집사님의 경우에 너무 바빠서 주일예배나 성경공부에 참석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조금은 걱정이 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렇게 되면 처음에는 묵시로 보았다가 나중에 역사로 끝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이쿠, 제가 이래서 못나오고, 저래서 못나왔습니다" 라는 것이 사실상 말은 맞는데, 그런 것이 눈에 다 보이는 현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그런 순간에도 묵시와 연결이 되었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농땡이(?)를 치는 순간에도 말이다.

그런 바쁜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알고, 항상 역사세계뿐만 아니라 이런 묵시세계를 기억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설령 미국으로 이민을 가더라도 이 전체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묵시세계는 공간이 없는데, 그러니 미국이 아니라 저기 북극이나 남극을 가더라도 항상 함께 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기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든지,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깨는 순간에도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우리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기에,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묵시적 세계와 역사적 세계에서 동시에 일을 하시기 때문에 말이다.

◈ 성도는 묵시세계가 담긴 그릇 !!

지금 예수님은 마치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할 때 그릇에 흙을 그렇게 소복이 담듯이 담고 계시는데, 물론 우리는 이 묵시세계를 원하지 않지만 주께서 담아주신다는 것이다. 물론 가끔(?) 말이다. 그러니 우리의 성도됨이 그때그때마다 삐져 나오는데, 마치 샌드위치의 크림이 살짝 나오듯이 말이다.

아무튼 항상 우리는 역사세계에서 살아가는데, 그런데 가끔 놀랍게도 묵시세계의 그런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언제나 우리는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데, 그런데 가끔 예수님을 생각하고 성령님을 생각하는, 그러한 묵시세계를 담는 그릇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구원받은 자의 특징이고 말이다.

◈ 묵시세계와 역사세계는 공존이 가능한가?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아직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아까 손 목사님을 잠시 언급하면서 이야기한 것인데 말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가 괜찮은 역사 같으면 묵시세계와 함께 공존을 한다는 것이다. 마치 구약의 에녹처럼 말이다.

에녹은 역사세계에 살다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가는데, 그러니 에녹의 경우에는 이 세상과 더불어 하늘나라도 함께 현실로 바라보았는데, 마치 요즘 사람들이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가듯이 그렇게 천국에 갔으니 말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지만 말이다.

◈ 아하, 그래서 바벨탑 !!

하지만 문제는 노아홍수 이후에 역사세계를 악마가 휘젓고 다닌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뜻이겠지만 말이다. 바로 여기서 등장하는 탑이 그 유명한 '바벨탑' 인데, 인간들이 땅에서 탑을 세워서 하늘에 이르고자 한다는 것이다. 즉 묵시세계에 도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이 탑을 세워서 우리 이름을 하늘에 닿게 하자" 라고 하면서 말이다.

(창 11: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창 11: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 이런, 오만하기 짝이 없는 놈들 !!

우리교회 장로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이라고 하는, 바로 그런 행동인데, 그런데 여기서 주님께서는 난데없이 묵시적 인물을 하나 뽑아버리는데, 그가 바로 '아브라함' 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집사님의 지적대로 구약을 묵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란 말이다.

◈ 아브라함 언약 - 아브라함, 너 거기에 서라 !!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 세상을 역사세계로 보는가? 아니면 묵시세계로 보는가? 아브라함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도 이 세상을 묵시세계가 아닌 역사세계로 바라보는데,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식을 준다고 하니, 자기 마누라는 이미 맛이 갔고(?), 그래서 자기 여종을 통해서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묵시세계가 간섭해서 아브라함을 가만히 두지 않는데, 그것을 구약에서는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니, '아브라함 언약'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 이름이 원래는 '아브람' 인데, 하나님에 의해서 그만 '아브라함'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즉 '높음의 아비' 라는 인간적이고 교만한(?) 이름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국의 아비'로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단코 아브라함의 희망사항이 아니라, 지금도 묵시세계에서 일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소원이라는 것이다.

◈ 성도는, 천국에 가기 싫어도 갈 수밖에 !!

그래서 자기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보여주는 그 길을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마치 천국백성은 천국에 가기 싫어도(?) 천국을 가야만 하듯이 말이다. 왜냐하면, 성도는 묵시세계를 담아내는 그릇이기에 말이다. 마치 바케쓰(?)에 모래를 담아내듯이 주님께서는 성도를 그렇게 담아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돈을 자랑할 때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돈이 없어. 하지만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았는데" 라고 하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식놈이 공부를 못한다고 야단을 치다가도, "참, 공부를 못해도 천국에 가는데" 라고 하면서 그만 그치고 말이다. 물론 가끔 그렇다는 말이다. 정말로 가끔 말이다.

◈ 저는 홀몸이 아니잖아요 ??

그러니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그것이 결코 인위적인 것이 아닌데, 본인이 믿든지 말든지 간에 묵시적인 인물이 오게되면, 묵시적인 그 인물이 우리를 관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본인이 느낄 때고 있고, 그렇지 못할 때가 있어서 그렇지 말이다. 그러니 자기가 제 아무리 엉망진창으로 산다고 해도, 자기는 결코 홀몸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그야말로 가끔씩은 생각이 난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라고 했는데, 그것은 사도바울이 결코 겸손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묵시세계의 그분이 활동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말고 도대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질문 - 만약 시험문제에 "묵시적 관점의 최후종점에 이르는 것을 말하시오" 라고 한다면, 그것을 단답형으로 정답을 요구한다면 뭐라고 해야 하나요?

천국이 내려앉았다고 보면 되는데, 물론 예수님을 통해서 말이다. 즉 예수님을 통해서 이 땅에 천국이 와버렸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서, 이 세상은 이제 예수님의 의해서 휘둘리게 된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렇다면 천국에는 역사가 있나요?

참 좋은 질문을 했는데, 천국에는 역사가 없다는 것이다. 묵시만 있지 말이다. 그런 면에서 주님께서는 시공간을 자랑하는 놈들을 마구 조지는데, "나는 성화가 되었다" 라고 하는 놈들을 말이다. 그러니 결코 성화가 되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전적으로 역사세계에 속한 것이니 말이다.

◈ 천국은, 역사세계가 아닌 묵시세계 !!

바리새인들이 뭐라고 했는가? 자기들은 이레에 두 번씩 금식을 하고 십일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저 놈들은 죄인이고 우리는 의인이다" 라는 것인데, 묵시세계는 바로 그런 놈들을 완전히 박살낸다는 말이다. 그것은 역사세계이고, 자기들끼리의 경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 아무리 "나는 목사이다, 집사이다" 라고 해도, 그것은 자기들끼리의 경쟁이고,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로마서 8장에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라고 하는데, 그러니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오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즉 그런 묵시적 요소가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적인 역사적 요소들은 아무리 집어넣어도 모두다 발로 차버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질문 - 그러므로 묵시는 오직 성령이 오셔야만 가능하지, 인간의 힘으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러한 묵시적 존재가 된 인간의 특징이 바로 십자가의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본다는 것이다. "아하, 그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구나" 라고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우리하고 맞먹는 그런 인간이 아니고, 묵시적 존재로서 자기 택한 백성을 건지고, 나머지는 모두 정죄하고 멸망시킨다는 것이다.

* 질문 - 결국 묵시세계와 역사세계를 구별하는 것이 성경에서 가장 튼 테두리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그러한데, 이러한 묵시를 모르는 인간들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우리나라 김동리의 소설에도 그런 것이 나오는데, 예수는 역사적으로 어떻고 하면서 말이다. 즉 예수는 억울하게 정치적인 처형을 당했다고 하면서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영화 '다빈치 코드'도 그런 것인가요?

그것이 영화로 만들어져서 최근에 히트를 쳐서 그렇지, 이미 과거에서부터 그런 종류의 책들이 이미 수십 권이 넘게 나왔다는 것이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했다든지, 또 성배에 관한 비밀이라든지 말이다.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가? 인간들이 성령을 받지 못해서, 바로 그런 식으로 예수에게 접근해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 예수님, 당신은 누구세요?

하지만 막상 그렇게 접근을 해도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는가? 그것이 마태복음 16장에 나오는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뭐로 보는가?" 라고 하니, 제자들이 뭐라고 하는가? "예, 세례 요한,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또 베드로에게 물으시니 베드로가 뭐라고 하는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베드로를 천국에 넣어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라는 것이다.

(마 16:13)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4)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마 16: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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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빈치코드 [The Da Vinci Code] - 2003년 3월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소설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10여개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교사 출신의 미국 작가 댄 브라운(Dan Brown:1964.6.22~)이 쓴 스릴러 소설이다. 내용은 루브르 미술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계기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 등에 숨겨진 암호를 풀면서 그리스도교를 둘러싼 비밀에 접근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미국에서 50주 이상 베스트셀러 5위 안에 들었고, 약 7백만 부가 팔렸다. 한국을 비롯한 영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세계 40여 개 나라에서 판권계약을 하였고, 10여개 나라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05년 중반부터 같은 이름의 영화가 제작되어 2006년 5월 19일 미국, 같은 해 5월 18일 한국에서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가톨릭과 기독교인들로부터 교회의 역사를 왜곡하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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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그렇다면 아까 말씀하신 그 마르다는 전혀 묵시세계를 몰랐다는 것인가요?

물론 몰랐는데, 그래서 하는 말이 "일찍 왔으면 우리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인데, 이제 오셔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므로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 것은, 그렇게 묵시세계를 전혀 모르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렇게 우셨다는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 평소에 친한 사이인 나사로가 죽은 것이 슬퍼서 울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완전히 잘못 배운 것이고 말입니다.

◈ 예수님의 눈물, 그건 아니잖아 !!

그것은 완전히 엉터리이고, 예수님은 너무나 답답하고 통분이 여겨서 울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고통으로 울었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묵시세계를 가지고 왔는데, 그래서 살아서 믿어도 천국이고, 죽어서 믿어도 천국인데, 그런데 왜 죽고 사는 그런 작은(?)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원망하느냐는 것이다. 즉 예수님도 몰라보고 역사세계에 갇혀서 그렇게 있느냐는 말이다.

물론 역사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죽고 사는 것은 오히려 엄청나게 커다란 문제이지만, 하지만 사도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심지어 베드로는 감옥에 갇혀서도 쿨쿨 잤다는 것이다. 사도바울도 감옥에 있을 때 주님께서, "바울아, 이제 로마로 가야지" 라고 하면서 그냥 로마로 데리고 갔다는 말이다.

◈ 왜 두려움이 생기는가?

그렇게 묵시적 존재가 실제로 활동을 하는데, 하지만 우리는 그런 소리를 하다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런 헛소리는 더 이상은 하지마" 라고, 그렇게 욕을 얻어 먹을까봐서 걱정이나 하고 말이다. 남들이 자기에게 뭐라고 자꾸 빈정거릴까봐서 두려워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게 되면 그런 두려움조차도 모두 다 사라진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성령을 받으면 마치 구름 위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오나요?

그야말로 '스카이 콩콩' 인데, 그런데 그런 느낌이 불과 2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2초라고 해도 그것이 삐져서 나온 것인데, 마치 샌드위치 빵의 잼이 나오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냐는 것이다. 아무나 그렇게 삐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꿈속에서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틀림없이 개꿈인데(ㅋㅋ), 다음에 또 그런 꿈을 꾸려고 하니까 말이다. 아무튼 성도는 언제나 감사가 넘치는데, 물론 2초 동안 말이다. 하지만 십자가를 항상 기억하라는 것이다. 즉 "십자가는 크고 나는 작다" 라는 것인데, 그런 묵시적 십자가를 말이다.

◈ 십자가는 크고 나는 작다 !!

그러므로 자기가 하는 사업이 아무리 번창하여 잘되고, 또 부부사이가 그야말로 잉꼬처럼 화목해도,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그와 반대로 사업을 하다가 완전히 말아먹고서 노숙자 신세가 되고, 또 이혼을 수백 번을 해도 그렇다는 말이다.

마귀는 항상 어떻게 유혹하는가? 역사를 크게 해서, 즉 "너는 역사적 존재이다. 그런데 왜 이런 나쁜 짓을 했는가? 아니, 그렇게 해서 천당을 간다고? 에이, 이 나쁜 놈아. 그것은 니가 잘못 배워서 그런 것이야. 너는 반드시 성화가 되어야해" 라고 한다는 것이다.

마귀가 그렇게 목사의 입을 통해서 유혹을 하는데, 그렇게 하면 그 묵시적 십자가는 그만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크게 보이면서,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 그런 것을 의식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서 두려움이 생기게 되고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십자가는 그냥 자기를 구원시켜주는 도구로, 즉 꼬리로 전락하고 말겠네요?

물론 그러한데, 혹시 재수가 좋을까 싶어서 목에다 걸기나 하고, 이게 다 마귀의 작전이라는 말이다.

* 질문 - 예수님 당시보다 지금의 이 역사세계가 약한(?) 것도 아닐텐데, 그런데 왜 그때처럼 그렇게 강하게(?) 느끼지 못하나요?

◈ 성경이 계시로서 완성이 되어야 !!

결코 그때보다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닌데, 이것이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놀랍게도 이러한 사실을 몰랐는데, 그러니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세례요한보다 크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지금은 성경이 이미 완성이 되었는데, 그 이전까지는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당시 고린도교회 교인들도 모두가 엉망이었는데, 왜냐하면 그때까지는 아직 성경이 확정이 되지 않아서, 중구난망 식으로 자기가 은혜를 받은 것을 다 그렇게 떠벌이고 돌아다녔다는 말이다.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계시인 것처럼 말이다. 물론 성경이 확정된 지금도 그런 인간들이 수없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 성만찬의 경우에도 !!

예를 들어서, 그 당시에는 성만찬을 잘못 거행하게 되면, 어떤 사람은 병이 들고, 심지어 죽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이 성만찬을 통해서 일하고 있음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성만찬이 성경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계시가 지금의 성경으로서 확정이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 성만찬을 성경에다 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성만찬에 계시적 의미를 보태면 안 된다는 말이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고 하면 지금 큰 문제가 일어나고 마는데, 아니 성만찬을 누가 집행하는가? 당연하게 목사가 하는데, 그러면 목사라고 그럴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아니, 목사는 죄가 없는가?

그러니 그 당시에 성만찬을 잘못 거행해서 죽은 사람은 지옥에 간다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천국에 빨리 보낸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첩과 관계를 맺은 아들이 그만 죽는데, 그것은 바로 몸은 죽고 영혼은 천국에 보내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서 묵시적 활동이 지금 교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 이제는 십자가로 모여야 !!

그리고 지금은 교회에서 십자가의 고통을 함께 할 때, 그렇게 해서 떨어져 나가는 자들과 십자가로 모이는 자들과의 구분이라는 말이다. 물론 지금도 죽게 되는 특수한 경우도 생기기고, 또 병이 낫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 핵심은 무엇인고 하니, 사업이 잘 되고 병이 낫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십자가가 크게 보이는가?" 라는 말이다. 물론 자기 자신은 작아지고 말이다.

바로 이러한 십자가의 복음에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현상이 일어나면 다같이 모이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니, 억지로 어떻게 하겠는가? 지옥의 백성들을 불러다가 복음을 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지금은 역사 속의 묵시가 함유되어있는 것이고, 구약은 역사 속의 묵시가 활동하는 것으로 보면 되나요?

무슨 말인지(??), 아무튼 제가 말하는 그 핵심이 고린도전서 1장과 2장에 나오듯이 바로 '십자가' 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이 십자가가 세상 사람들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들어버리는데, 그러나 구원받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이고 말이다. 그래서 자기는 세례를 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십자가를 증거하러 왔지 말이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19)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 질문 - 그러니 지금은 성만찬이 문제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나오는 것이 묵시적이라는 말입니까?

그러니 이 십자가가 전부라는 말이 아니라 최종적인 것이란 말이다. 병 고침도 아니고, 예언도 아니고, 방언도 아니고 말이다. 오직 최종적인 것은 십자가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십자가에서 묵시가 나오는데, 그 묵시를 이야기하는 것이 성경말씀이란 말이죠?

물론 그러한데, 왜냐하면 십자가로 말미암아서 이 세상이 묵시세계로 들어가 버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모든 성경은 십자가를 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십자가는 성령이 아니고서는 전혀 모르는 것인데, "이 십자가 정도는 우리 힘으로 알 수 있지 않을까?"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서 사도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라고 했다는 것이다. 병 고치는 은사나,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는, 자기는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고전 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러니 이렇게 십자가가 최종적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인간의 행함으로서 구원되는 시기는 다 끝이 났다는 것이다. 오직 묵시적인 십자가에서 나오는 용서만이 구원이 되지 말이다. 그러니 자기가 행동을 어떻게 했다든지 하는,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또 행동을 잘못해서 죄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 십자가에서 떨어지는 것이 곧 '죄' !!

그렇다면 무엇이 죄인가?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떨어지는 것이 곧 '죄' 라는 말이다. 즉 착한 일을 다하지 못하고 미흡한 것이 죄가 아니라,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이 죄라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악한 마귀의 힘이고 말이다.

그러면 이렇게 십자가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는데, 엄청 많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자들이 바로 목사들인데, 주님의 십자가를 거부하고 자기 교회 키우기에 전심전력을 다 기울인다는 말이다. 그 교회가 자기 생계가 되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자기 교회에서 감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야기하는 놈들은 모두 다 밖으로 쫓아내어 버리는데, 바로 그것이 마귀의 힘이고 마귀의 역사(役事)라는 말이다. 이렇게 마귀는 십자가를 외칠 때 비로소 등장한다는 것이다.

◈ 묵시는 싫어, 역사가 좋아 !!

예를 들어서, 집사님이 다른 사람에게 이 십자가를 이야기하면 뭐라고 하겠는가? "아니, 그렇게 복을 받아놓고는 또 십자가 이야기는 왜 또 하지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무엇을 십자가로 여기는가? 예수님을 믿으면 술 담배를 끊고, 착한 사람이 되고, 사업도 잘되는, 자꾸만 그런 것들만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집사님은 묵시를 이야기하는데, 그쪽에서는 자꾸만 역사로서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쪽은 기껏해야 아는 것이 역사이기 때문인데, 즉 어릴 때 유아세례를 받은 것, 또 20살 때 기도원에 가서 은혜를 받은 것 등등, 자꾸만 그런 역사적인 것만을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 모든 것은 이미 십자가로서 '끝' !!

그러니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데, 교회에서 무슨 이야기해도 주님의 십자가는 이야기하지 않고 계급과 질서나 이야기하려고 하고 말이다. 이미 십자가로서 모든 것이 다 끝이 났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이다. 아니, 교회에 무슨 계급과 질서가 필요한가? 군대라도 만들어서 어디 파병할 일이 있는가?

지금 도대체 우리나라에 이러한 십자가를 아는 신학교 교수가 있는가? 아니면 십자가를 아는 목사가 있기를 하는가? 물론 교인들도 그렇고 말이다. 그런데 교회당은 왜 그렇게 많고, 교인들은 교회당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가?

그러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까, 우리나라에 불교가 너무 강하고, 또 유교가 너무나 강하고 해서, 그래서 인간들이 그런 자기 재앙을 해소하기 위해서, 즉 자기 고통을 좀 어떻게 해보려고 점잖하신 산타클로스와 같은 하나님을 찾아온 것이지, 결코 주님의 그 십자가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성령을 받지 않으면 이런 사실을 결코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느냐는 것보다도, 예수님께서 우리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를 2000년 전의 역사로 돌아가서, 그때 그 십자가 앞에 우리 자신을 강도처럼 같이 매달 수 있고, 또 마리아처럼 오직 십자가만을 쳐다보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08,09,20 새벽 1시 42분에 마침.

오늘로서 KBS '1박2일'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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