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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81014b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율법자유게시판느헤미야

20081014b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율법

이름 : 한윤범(IP:59.6.189.196)

20081014b 부산강의 : 조지 래드 [신약신학]-율법

(강의:이근호 목사)

래드가 중간기에 율법의 기능 속에서 어떻게 바리새인의 율법으로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씨앗이 되어 바리새인들이 그냥 가져왔느냐? 중간기에 어떤 사고방식이 구성되어 있기에 유대인들이 거기서 들어왔는지 무슨 요소가 있느냐? 그것은 바로 중간기에는 개인적으로 ‘율법, 순종할래, 안 할래’ 해서 순종하겠다는 사람에게 복이 오고, 순종하지 않겠다면 저주 온다. 개인적 순종.

래드의 이야기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은 중간기에 에스라, 느헤미야에 나오는 개별적 순종에다가 무엇을 하나 추가하느냐 하면, 이 글에 의하면, ‘회개함’을 추가해요. 회개란 요소를 추가한 이유가 뭐냐 하면, 중간기에 에스라, 느헤미야에는 어떤 순종입니까? 온전한 순종이죠. 50% 순종이 아닙니다. 온전한 순종인데 막상 해보니 인간이 온전한 순종이 안 된다는 걸 알았거든요.

여기서 문제 되는 게 마카비 시대 들어가면 왜 온전한 순종이 안 될까요? 그 점을 바리새인들은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저 하나님의 법은 이루어야 되겠고, 이루는 게 백성 된 의무고. 말이 어렵기 때문에 그림으로 그려야 돼. 여호와 하나님 계십니다. 내가 무슨 뜻으로 하는지 잘 들어보세요.

여호와 하나님만 생각한다는 점에서 이미 백성 아닙니까? 이건 100%죠. 100% 맞죠. 이 관계가. 그들의 율법 해석에 의하면 이 100% 관계가 되려면 추가적으로 뭐가 필요 하느냐? 추가적으로 하나님 주신 율법이 있잖아요. ‘율법을 100% 지킬 때 그 100% 백성 관계가 유지된다.’ 이래 본 거예요. 아시겠습니까? 이게 안 되면 탈락이라. 왜? 에스라, 느헤미야 거쳐 오면서 개별적으로 집단 구원이 아니고 개인구원이니까.

그리고 난 뒤에 바리새인 쪽으로 오게 되면 100% 안 되는 게 뻔하죠. 인간인 이상. 안 되니까 뭘 집어넣느냐 하면 회개해서 ‘100% 되겠습니다’라고 의사표시만 해도 백성 유지된다는 것이 래드의 생각이고, 지금 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생각했다고 래드가 주장하고 있는 거예요. 의사표시. ‘잘 할게요. 잘 하려고 하고 있잖아요. 주님, 내 마음 모릅니까?’

그런데 이 말 자체가 모순이 되는 게 뭐냐 하면, 이미 여호와와 백성 사이에 100% 관계 맞지요. 맞으니까 율법을 따지고 회개하잖아요. 그러면 이 관계는 어디서 왔느냐? 이거는 율법 관계없이 그냥 관계는 어디서 왔느냐? 이걸 바리새인들이나 래드나 아무도 알아내지 못합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 처음에 이야기할게요. 여호와를 생각한다는 게 백성 아닙니까? 이 관계가 다른 이방인들은 못하잖아요. 왜? 자기 신을 믿기 때문에. 여호와가 나의 신이라고 여기는 그 마음은 어디서 왔느냐? 그 마음에 만약에 진짜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면 어떤 모순이 있느냐 하면, 뒤에 율법 줘도 그 마음이 100% 같으면 율법 있으나마나 관계없이 그 관계는 계속 100% 유지하고 있다 이 말이죠.

그런데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율법 순종 안하면 그 관계마저 와르르 무너진다는 거예요. 어디서 그런 게 있는가? 바로 구약 전체 역사를 통해서 여호와 알아도 율법을 안 지켰다는 이유 때문에 그러니까 여호와께서는 ‘너, 백성이야.’ ‘백성 맞습니다.’ ‘율법도 안 지키는 게 어디서 까불어.’ 하나님 쪽에서 율법을 안 지켰기 때문에 내쳤거든요. 그러니까 ‘하하, 관계입니다.’라고 하는 것 가지고 모자란다고 보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있느냐 하면, 처음에 ’여호와 믿습니다’ 그 자체가 100%가 아니고 이거는 항상 미흡한 관계에요. 이거는 항상 유도리 있는, 이거는 임시방편적인 거예요. 미확정된 거예요.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뭘 보느냐 하면, 뒤에 책 나옵니다. 어려운 대목 있어요. 뭐냐 하면, 바리새인들은 ‘토라’의 완전함이 이미 100%이기 때문에 인간은 여기 있으니까 꼬불꼬불 회개라는 것을 통해서 100%에 접근하면 할수록 그만큼 하나님의 백성으로 더욱더 분명해지고 확연해진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뭘 주장하느냐 하면, 바로 ‘미완료 구원’이에요. 방향은 100%이지만 현재는 70%밖에 안 되는 거예요. 미완료 구원이에요.

래드가 말하기를 바리새인들은 율법 해석을 잘못했다는 거예요. 왜? 이렇게 마완료적 구원, 회개를 통해서만 접근하는 방법은 율법을 무슨 해석? 문자적 해석을 했기 때문에 이런 결론이 나왔다는 겁니다. 래드가 책에서 이야기하기를.

그러면 저는 래드한테 묻고 싶어요. ‘그러면 예수 믿고는 회개 불필요합니까?’라고 묻고 싶은 거예요. 하지만 래드는 거기에 대해서 답변할 의사가 없지요. 지가 완전히 혼돈스러워. 제가 했잖아요. 율법을 사도 바울이 일관성 없는 걸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자 이래 나와요. ‘사도 바울이 일관성 없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냐?’ 이런 뜻이에요.

그럼 뭐냐? 율법은 영적 해석을 해야 된다. 그 영적 해석의 핵심이 되는 것이 여기 [메시아 시대의 율법] 봅시다. 거기에 뭐라 돼 있느냐 하면, 찾았습니까? [바울은 종말론적 관점에서만 율법해석을 해야 된다.] 그래서 종말론적 관점에서만 해석하는데 ‘종말론적 관점’이란 말을 래드가 사용했지만 여러분 뭔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이 말은 하나마나에요. 종말론적 관점을 전에 강의했기 때문에 다시 하지 않겠습니다.

종말론적 관점이란 이 말을 래드가 사용해도 내가 왜 무시하느냐 하면, 지가 무슨 말인지 몰라요. 제가 보니까 래드는 종말론적 관점은 뭐냐? ‘마지막 때는 뭔가 좀 다른 방식이 있겠다’ 하는 이런 식으로 사용했지, 종말론이라 하는 것이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 있다는 그런 쪽으로 사용하지 안하고 있다고. 이 사람이. 그래서 그건 넘어가고.

이 사람이 종말론적 관점에서 주장하는 것은 뭐냐? 마음속에 뭐가 새긴다? 법을 새긴다. 그럼 래드 주장을 봅시다. 우리 마음 밖에 율법 법전이 있습니다. 이거 지키는 것과 마음속에 법전 지키는 것하고 차이점이 뭡니까? 래드가 어떻게 보면 웃기는 사람이라. 내가 어떤 여자를 사랑한다. ‘나는 내밖에 있는 당신을 사랑해.’ 이거나 ‘내 마음으로 사랑해.’ 이거하고 차이점이 뭡니까? 똑같잖아요.

적어도 마음속에 법이 있으려면 주체와 객체가 바뀌어져야 됩니다. 전에는 내가 주체가 되어서 내 마음 밖에 있는 법을 지키는 주체가 나였다면 내 마음속에 법이 새겨지면 이제는 법이, 율법 완성이 나를 새롭게 제조하고 만들어내는 그렇게 주체가 내가 아니고, 율법 완성이 주체가 될 때만 마음속에 법이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내 바깥에 있는 법 지키다가 내 법 내가 지킨다고 하면 이거는 바깥에 있으나 안에 있으나 마찬가지라니까. 이거는 진짜 상식도 안 되는 이런 이야기를 설명해줘야 되니. 왜냐하면 한국교회가 그러니까.

요즘 우리 교인들 마음속에 법 있는 사람 많이 있습니다. 뭔 뜻인지 압니까? 교회에 성경 놔두고 집에 가니까. 마음속에 법이 있는 거예요. 주일날 성경 늘 있어요. 아마 성경을 차에 두지 마라 하니까 차에 안 놔두고 교회에 놔둬버리는 거예요. 진짜 마음속에 법이 있어요.

마음속에 법이 들어오게 되면 마음 밖에 만약에 법이 있으면 이 마음은 자기 마음이 얼마나 썩었는지가 안 드러납니다. 내가 마음 밖의 법을 ‘내가 최선을 다해 지켜줄게요’ 할 때만 아주 착한 마음이 드러나지 그냥 가만있으면 좋은 마음, 착한 마음 안 드러나거든요. 우리 마음속에 법이 와버리면 이 마음, 이제 죽었어. 이거는 시커먼스라. 얼마나 마음이 썩었으면 법이 안에 들어와서 마음마저 갱신하고 바뀌도록 조치를 할 수밖에 없을까요? 얼마나 우리 마음이 썩었으면. 결국 그동안 바리새인들이 ‘법 지켰다’ 이 말은 마음이 썩어빠졌다는 말이에요.

법이 우리 속에 들어오면 우리 마음은 처음부터 근원적으로 이거는 율법을 지킬 그런 쨉도 못되는 썩어빠진 마음, 이게 바로 누구 마음이다? 내 마음. 내 마음은 법을 지킨다는 들썩들썩 자체가 귀싸대기 얻어맞을 그런 더러운 마음이다. ‘내가 이웃을 사랑하겠나이다. 이웃이 누구십니까?’ 그런 마음을 품는다는 자체가 썩어빠진 마음이에요.

어쨌든 래드는 하여튼 지가 한 말도 무슨 뜻인지 몰라요. 무슨 뜻인지 모르는데 사도 바울의 율법에 관한 것은 총동원시켜놨으니까. 좋은 이야기는 다 골라놨어요. 여기 보면 뭐냐 하면, 로마서 10장 4절.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서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이거는 여러분 다 알잖아요.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뭐의 마침이다? ‘율법의 마침’이다.

이거는 뭐냐 하면, 바로 율법 안에 뭐가 있었다? 목적하는바가 있었다. 율법의 목적이 있었다는 거예요. 만약에 율법이 우리 마음 밖에 있으면 그 율법은 목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왜냐하면 내가 불러줄 때만 나에게 하나의 의미가 되니까. 그렇지요. ‘율법아, 오늘 마음 좋은데 십계명 중에서 하나 지켜줄까? 지켜줄까? 그래 지켜줄게. 하나님, 오늘도 충성했습니다.’ 이리 되잖아요.

내가 율법을 지켜줄 마음먹을 때만 나한테 하나의 의미가 되는데 바쁠 때는 교회도 안 가고 하다가 안 바쁠 땐 교회 가서 오늘도 의미 되는데, 만약에 율법 자체가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 있는 율법이 만약에 내 안에 들어온다면 내가 율법을 지키던, 안 지키던 그러니까 내 마음속에 법이 있다는 말은 새삼스럽게 내가 율법을 지킨다, 안 지킨다가 성립이 됩니까, 성립 안 됩니까? 성립이 안 되지요.

이 방안에 나만 있을 때만 ‘똑똑똑.’ ‘예. 문 열어드릴게요.’ 되는데 이미 귀신처럼 들어와 버렸는데 유령처럼 들어왔는데 ‘똑똑똑’ 문 열어봐야 아무도 없어요. 이미 들어왔는데. 귀신이 무서운 이유가 뭡니까? 귀신이 무서운 이유가 내 시키는 대로 안한다는 거예요. 지 마음대로 하는 것 아닙니까.

법을 새삼 지키는 게 아니에요. 법이 나를 갖고 놀아. 뭐 하기 위해서? 법 자체가 지니고 있는 뭐가 있어요?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 4절에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목적이 뭐지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이 뭐 되기 위해서? 의인되게 하는 목적. 얼마나 귀한지 몰라요.

그리스도인은 개판입니다. 그리스도가 인정해주니까 그리스도인이지 혼자는 개판 아닙니까. 이 개판 같은 인간은 엉덩이가 무거워. 천당 갈 생각도 안 해. 그렇게 있는데 뒤에서 팍팍 밀어줘. 밀어주는 것은 율법의 목적하는 바죠. 기어이 뭘 이루기 위해서? 저놈의 개떡 같은 인간이 그리스도의 사람 되고 그리스도의 의인되기 위한 목적을 누가 도와준다? 율법이 우리 내부에서 작살내는 거예요. 아예 우리를 작살내. ‘짜식아. 너는 죽어도 싸. 너는 인간도 아니야.’ 작살내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남기게 하는.

그게 어디에?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데 한번 봅시다. 이 말씀은 너무 충격이라. 래드는 여기에 언급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겠어요. 5장 3절에 보면,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할례라 하는 것은 법이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밖에 있을 때는 밖에 있는 법을 지켜야 되는 거예요. 바리새인처럼.

하지만 4절에 보면,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왜 율법을 지키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사람이냐를 설명할 수 있는 율법이어야지 돼요. 이거 설명 못하면 율법해석 잘못된 겁니다.

쉬운지 예인지 어려운지 모르지만 쉽게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드라마에 보면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를 좋아해요. 여자가 자꾸 이상한 소리하는 거예요. ‘자기, 나 좋아해.’ ‘좋아하지, 좋아하지. 정말 좋아해. 나랑 결혼해 줄 수 있겠어?’ ‘나는 너랑 결혼하면 안 돼.’ ‘왜? 우리 서로 사랑하잖아. 사랑하는 것 맞잖아.’ ‘맞아.’ ‘그런데 왜 결혼 안 되는데? 이유를 설명해야지.’ ‘이유는 말 못해.’ 울고 있단 말이죠. 또 해서 ‘내가 모든 재벌 2세의 자리를 포기하고 왔는데 나와 결혼할 수 있겠습니까?’ 여자 하는 말이 자꾸 ‘안 돼. 너랑 결혼하면 안 돼.’ ‘왜 그런데?’ ‘우리는 배다른 남매거든.’ 이렇게 나오잖아요.

율법이 뭘 해석해야 되느냐 하면, 율법을 지키는 사람에게 율법은 뭐라고 해석하느냐 하면, ‘너는 나를 지키면 안 돼’라고 설명이 나와 줘야 그게 율법해석이 된다 이 말이죠. 이게 제대로 율법해석이란 말이죠. 만약에 네가 나를 지키려고 한다면 너는 뭐가 된다? ‘그리스도에서 끊어져야 돼’라는 것이 율법해석 속에서 나와 줘야 이게 율법해석이 제대로 되는 거란 말이죠. 십일조 지키려하면 당신은 뭐다? 그리스도에게 끊어진 자다라는 것을 십일조를 통해서 이 사람은 해야 돼요. 안식일을 통해서 해야 돼요. 한국교회 쓰레기입니다. 똥 덩어리.

그럼 왜 그렇게 설명해봤자 소용없는 이유가, 설명해봤자 신자 아니기 때문에. 애초부터 신자 아니에요. 교회 문 열고 들어올 때부터 신자가 아니고, 예수 덕 보자고 온 사람들이에요. 예수 덕 보자고 온 사람이니까 자기 믿는 사람이지 예수 믿는 사람 아니에요. 신의 해석을 하면서도 전부 누굴 해석한다? 자기 해석하는 사람들이에요.

새삼스럽게 ‘그들에게 설명해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요. 말 해봤자 ‘잘됐다. 헌금 안 해도 된다.’ 그래서 지 마음대로 살 것 뻔하기 때문에. 진짜 성령 받은 사람한테 해석해야지 성령 받지도 않은 사람한테 해석해봐야 그거는 그나마 나오던 헌금도 그칩니다. 손해에요. 줄 때 받아 챙겨야지.

래드가 전혀 그 해석을 못하고 있어요. 래드는 뭐가 뭔지 모르고 있어요. 왜 그리스도에서 끊어져야 되느냐 하면, 왜 그러느냐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게 율법을 중심으로 삼각관계에 있어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 한쪽은 어디로 가냐? 예수 그리스도로 가요. 한쪽은 누구한테? 양발차기거든요. 한 가지는 죄인에게 갔습니다.

근데 죄인이란 인간이 자기를 뭐로 안 본다? 죄인으로 안 보는 거예요. 안 보고 바깥에 있는 율법을 지켜서 이왕 의인인 걸 더 의인되게 하도록 하는 거예요. ‘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의인이다. 하지만 더 의인 돼야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때문에 나는 사도 바울의 명령들을 지키겠다.’ 이 조시로 나가는 거예요. 이거다 이 말이죠.

만약에 그리스도에게서 안 끊어졌다 하면 이거는 율법 전체가 들어온 사람이잖아요. 근데 제가 처음에 뭐라 했습니까? 율법 안에는 뭐가 들어있다? 율법은 폐쇄적이니까 안에 누가 들어있습니까? 예수님이 들어있어요. 예수님이 율법 안에 들어와서 우리 안에 들어오는 거예요. 그렇다면 성도 안에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게 로마서 7장인데. 래드가 로마서 7장 설명할 때 그런 것 전혀 설명 안 하고 있어요.

로마서 7장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뭘 느끼느냐 하면,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 하는 말은 ‘율법 완성 안에 있다’는 거예요. 율법이 들어오니까 제대로 된 율법을 받아버리면, ‘나 율법 지켜서 착한 일 해야지’ 이게 아니라 화로다 망하게 되고

그리고 나라는 인간은 어떻게 연약하냐 하면, 지키고 싶어도 못 지키는 거예요. 왜? 죄가 나보다 더 세. ‘하지마라’ 하면 더 하고 싶어. ‘주님을 사랑하라’ 하면 주님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고 싶어요. 이게 들어있어요. 곤고한 사람이에요. 자력에서 나에서 나를 탈출할 수 없어요.

여기에 율법의 완성, 나는 뭐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리라?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이런 인간인 것을 깨우쳐서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죽으신 의미를 여기에다가 집어넣지요. 예수님에게서 육신의 죽으심 그것이 뭐냐? 율법의 목적하는 것. 그게 뭡니까? ‘의’잖아요. 율법의 목적이 그리스도 의니까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의가 되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율법의 완성을 통해서 우리 안에서 역사, 우리 안에서 일하고 있어요. 그게 성도입니다.

일하고 있다는 자체가 그릇이 된다는 자체가 뭐냐? 그리스도 의,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손수 해내신 의를 보라! 얼마나 자기 죄를 아느냐? 얼마나 죄를 충분하게 아느냐? 그리고 갈수록 더욱더 아느냐? 이게 바로 그리스도 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래드는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의 의를 목적으로 하는 율법의 완성이다]. 그런데 이 말이 잘못됐죠. 율법의 완성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 완성이라면 뭐도 포함됩니까? 우리가 의인되는 것도 포함됩니까, 안 됩니까? 포함되잖아요. 자꾸 이걸 포함 안 시켜버리면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율법처럼 또 나 밖에 해주고 ‘최선을 다 할게요. 열심히 다 할게요’ 또 이렇게 되는 거예요.

데미무어 나오는 영화, [사랑과 영혼]. 거기 보면 첫 장면에 데미무어하고 어떤 배우가 도자기 굽잖아요. 그 진흙을 구울 때 진흙 덩어리 돌아가는 판 위에 아예 우리가 앉아 보세요. 그러면 문제가 쉽게 해결돼요. 우리가 앉아 있고 주님이 데미무어라. 주님이 손으로 우리를 빗는 거예요. 그릇으로.

어떤 그릇으로? 자비의 그릇의 빗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뭐냐 하면, 주님께서 자기 의를 그리스도 의가 이런 거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고 있는 작업대에 있는 진흙에 해당됩니다. 그릇에 해당됩니다. 전혀 어려운 게 없잖아요. 지가 붙이고 지가 뭐하고 그것 다 뗍니다. 이건 필요 없는 것.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주전자 만들어 줘.’ ‘주전자 만들든 사발 만들든 내 알아서 할게.’ 다 뗍니다.

그런데 래드는 그래 보지 않고 예수님은 율법의 목적이다 해놓고 자기는 여기 있고 중간에 뭐 하느냐 하면, 믿음으로 완성한다는 거예요. 믿음의 주체가 누가 됩니까? 자기가 되니까 결국은 율법을 누가 이뤄요? 자기 이루죠. 뭐로? 믿음으로. 이것은 유대인한테 맞아죽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은 행함 속에 뭐가 포함돼있습니까? 믿음도 포함돼있고 행위도 포함돼있어요. 다 포함돼있어요.

그리고 래드 같은 주장은 유대인이 보면서 그게 뭐냐? 믿음이 아니고 믿음에서 오는 행함이라 해요. 행함에 해당돼요. 행함 속에 뭐도 포함돼요? 회개도 포함돼있다니까요. 이 유대인들의 관점에 이 행함은 바로 야고보서 2장에 나오는 그 행함에 들어가요. 믿음이 없는 행함은 죽음이라. 야고보서 자체가 누굴 대상으로? 그 당시 팔레스타인 유대인 대상이기 때문에 그들이 쓰는 용어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항상 야고보서는 부정적으로 설명하죠.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된다 할 때 그 믿음이 또 내가 전에 율법을 지켰던 마음가짐과 동일한 마음가짐의 믿음이기 때문에 결국 그거는 믿는 것이 아니고, 믿으라는 율법을 내가 지키는 것밖에 안 돼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구원을 얻으리라” 할 때 꼭 옛날 바리새인들이 “나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 행하듯이 바깥에 있는 법조항을 내가 또 하나 추가해서 예수 믿는 법을 하나 지킨 게 돼요. 그것은 바로 지가 이야기한 종말론적인 그러한 율법개념하고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위해서 율법이 뭐가 되느냐? 율법의 마침이죠. 율법은 끝이 났다. ‘율법이 끝이 났다’ 할 때에 끝 다음에 뭐가 있을까요? 끝 다음에는 없지요. 부산서 경부선이 끝나잖아요. 끝나고 난 뒤에 바다지 없잖아요. 여기서부터 래드가 고민이 빠졌어요. 율법이 끝이라면 자칫하면 영지주의처럼 구약성경을 갖다 버려야 되고, 모든 율법적인 명령들은 갖다버려야 되는 그런 딜레마에 빠져버립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내가 여기 있고 주님 여기 있는데 전에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줬는데 지금은 뭐가 있느냐 하면, ‘예수 믿으라’ 하는 그걸 줬다 이 말이죠. 전에는 율법을 믿었는데 지금은 뭘 믿는다? 예수를 믿으니까 예수 믿으면서 뭐라 합니까? 율법은 마침이라. 마치고 나니까 율법은 이건 쓰레기 분리수거해서 버려야 될 것 아닙니까? 이걸 버리느냐 하는 문제에요. 이걸 버릴 거냐, 말 거냐?

못 버리니까 어떻게 되느냐? 믿는 내가 다시 율법을 지켜줘야 아직도 율법을 믿는 그 의미를 내가 채워줘야 된다 말이에요. 그 값을 해줘야 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구멍가게 와서 외상값 얼마 남았습니까? ‘한 이 만 원 있었는데 다 갚았네요.’ ‘갚았지요.’ 돌아서서 ‘얼마 남았는데요?’ ‘이 만 원 있었습니다.’ ‘얼만데요?’ ‘왜 자꾸 옵니까? 갚았다는데. 마쳤다는데.’ 외상 이상해서 ‘얼마 남았는데?’ 자꾸 묻는 거예요. 왜 자꾸 묻는가? 돌아서면 빠이빠이를 해야 되거든. 안녕, 아듀 해야 된다고.

로마서 10장 다시 봅시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서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여기서 래드가 말하기를 [율법 자체가 폐지됐다는 것이 아니라 의를 이루는 방편으로 마지막에 이르렀다].

여기서 율법의 의에 대해서 계속 말하고 있기를, 래드의 주장입니다. [그리스도는 믿는 모든 사람의 의를 목적으로 한 율법의 완성이다. 즉 그리스도는 믿음을 근거로 두고 의로움이 모든 사람에게 유지하기 위해서 율법이 끝맺게 했다는 것이다.] 그게 하나의 해석이고. 또 다른 해석은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가 영향을 미치는 한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다. 즉 율법 자체가 폐지됐다는 것이 아니고 의를 이루는 방편으로써 마지막에 이르렀다.]

그래서 자기는 뭐냐? 뭐가 바람직하단 말입니까? 두 번째 해석이 바람직하다 이 말이에요. [바울은 율법의 완전한 폐기로 말미암아 믿는 사람에게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바울은 율법을 떠나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관련을 맺는 가운데서 율법의 완성을 주장하며 그 결과 율법은 믿는 모든 사람의 의를 위한 방편으로 끝을 맺게 됐다고 주장했다.]

지금 제 번역에는 방금 읽었던 이렇게 됩니다. 내가 보기에 첫 번째, 두 번째 차이점을 모르겠어요. 이 사람이 뭐라고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어요.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왜 자꾸 이 사람이 율법에 대해서 율법 지키는 것에 미련을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제가 보기에는 이건 뭐냐 하면, 주체 문제에 대해서 이 사람이 지금 혼선을 하고 있어요. 지금 주님께서 노십니까? ‘야, 율법 지키는 것 나 안 한다. 이제 네가 해라.’ 하고 우리한테 맡겨 놓고 주님은 가만히 놀고, 많이 지키면 상 많이 주고 그런 거예요?

율법의 완성을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뭐라고 돼 있느냐 하면, 두 자로 이야기했죠. ‘사랑’으로 돼있지요. 요한복음에서 이 사랑을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주신 마지막 새 언약에 의한 계명입니다. 옛 언약의 계명은 율법이에요. 근데 새 언약의 계명은 두 개, 세 개가 아니고 오직 뭐밖에 없다? 하나밖에 없다 해요. 여기 하나가 중요해요. 하나에 모든 해결책이 다 나옵니다. ‘계명이 하나밖에 없다’ 이 말은 어떤 것을 해도 백 가지 계명, 무슨 계명이라 해도 하나란 말은 둘을 용납하지 않는 거죠.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 인간 속에 계명이 여러 개 있잖아요.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로마서 13장에 나오는 말입니다. 있더라도 이 중에 하나가 아니라 여기에 하나라 하는 것은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해놓고 이걸 붕~ 뛰어넘어서 저 뒤에 뭐가 있어요? 저 뒤에 묶어져 있는 사랑, 하나로 됐다는 말은 뭔 뜻이냐 하면, 그전에 수백 개 있었던 것이 이제는 뭐로 됐다? 그냥 하나가 아니고 뭐다? 완성된 하나죠.

그러면 이 여러 가지 계명이 사랑으로 완성될 때 여기 누가 개입했습니까? 예수님이 개입했죠. 예수님이 개입할 때 여기 예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써 누가 참여되게 됐습니까? 우리 자기 백성이죠. 모든 인간 아닙니다. 택한 백성이죠. 택한 백성 있고 거기에 누가 있고? 예수님이 있을 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주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했죠. 이게 사랑이다. 사랑이란 혼자 사랑이 안 되잖아요. 사랑이란 대상이 있을 때 되잖아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이 사랑 속에 너희가 놓여있는 것, 이게 우리가 이걸 지켜나가는 모든 것의 목적이고, 율법의 마침이 되는 겁니다.

계명이 하나 있다는 말은 또 하나 추가적인 하나 있다는 말이 아니고, ‘계명 끝났구나’ 이 말이에요. 그러면 이 하나는 지키는 것이 아니고, 이건 뭐냐 하면, 보여주는 것이죠. 헌금을 한다. 뭘 하라? 사랑을 하라. 이 말은 지키는 사랑으로 헌금을 해 달라. 사랑을 보태는 게 아니고 결국은 헌금이 나오는 게 아니고 마지막에 뭐가 나와야 돼? 사랑이 나와야 돼요.

‘나, 너 간음 안 했지.’ 이러면 안 돼요. ‘내가 너 간음 안 했다’ 하면 안 되고, 적극적으로 말하면 뭐가 돼요?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이래되겠죠. ‘분을 품되 해지도록 품지 마라’가 나오면 안 되고 나 뭐한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드디어 해 진다, 해 진다. 이제 분 안 품는다.’ 이게 아니라 ‘사랑한다’에요. ‘나 술 안 취합니다’ 나오면 안 되고 뭐 해야 돼요?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뭐 할 것이다? 저주를 받을 것이다. 쉬지 말고 기도했지. ‘쉬지 말고 기도했습니다’가 나오면 안 되고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온유와 화평과 자비와 양선은 바깥에 나올 때는 새 언약에 맞는 계명이 나와요. 새 언약에 맞는 계명은 뭐가 나와야 되느냐? 사랑이 나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야기할 때. 오늘 전부다 피곤해하시는데 강의를 많이 못 하겠네. 시간 보고 알아서 내가 끝내겠습니다. 너무 피곤해하시니까.

사랑이 나오는데 이 사랑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줘서 나오는 사랑이기 때문에 주님이 여기서 우리를 조져버리죠. 성령께서 임해야 우리가 사랑이 나오게 돼있어요. 성경의 영적 해석이라 하는 것은 반드시 뭐냐? 주님의 사랑이 증거 될 때 그게 영적 해석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어디서 확실해집니까? 바로 십자가에서 십자가의 피로 내가 널 위해서 죽었다. 그 십자가 피로 사랑이 나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내가 널 위해서 죽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 처지 있잖아요. 우리 형편 이건 깡그리 무시하죠. ‘제가 뭐 지켰잖아. 열심히 했잖아.’ 이거는 완전히 어디 앞에서 무시당합니까? 예수님 죽으심 앞에서 깡그리 무시당할 때 그게 바로 성령을 통한 사랑이 나오는 겁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의 모든 명령들은 그 밑바닥에도 사랑이요, 그 나오는 해석도 주님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가 사랑이 나오게 돼있습니다. 그래야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나오는 성도들의 고백하고 같은 고백이 사도 바울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제가 이걸 설명을 못하겠어요. 왜냐하면 래드가 너무너무 지금 전부다 헷갈리고 있어서. 지금 내가 적어놓은 게 많은데 전부다 엉터리 이야기하고 있어요. 래드가 이런 이야기했어요. 뭐냐 하면, [율법하고 약속이 다르다]는 거예요. 참, 이런 말 할 때는.

마지막으로 봅시다. 명령에 대해서.

주님 안에 있는 사람은 자기 백성 앞에 중간에 뭐가 있습니까? 성령님 계시잖아요. 그죠? 그렇다면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 가지고, 명령이든 율법이든 하여튼 말씀 가지고 성령께서 일하게 됩니다. 명령하게 되지요. 그러면 예수님 자체가 모든 율법의 완성이고 말씀의 완성이기 때문에 성령님은 이 완성된 것을 우리를 통해서(우린 그릇이니까) 밖으로 드러나죠. 밖으로 드러나기를 원한단 말이죠.

그렇다면 성령님께서 명령을 하실 때 예를 들어서 성경 하나 찾아봅시다. 갈라디아서 6장 8절, 누가 읽어보세요.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거두리라’ 했잖아요. 명령이라 하는 것은 그냥 명령이 아니고 하나님의 고집이고, 하나님의 열심이 되는 겁니다. 육을 심는 자는 반드시 육을 거둬야 돼요. 협박하는 것이 아니고 육에서 영으로 넘어오질 못해요. 그거는 우리에 해당사항이 안 됩니다. 육을 심는 자는 육을 거두게 돼있고, 성령을 심은 자는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이 명령을 누가 하느냐 하면, 성령께서 왜 오셨겠어요. 이거는 우리가 못합니다. 성령께서 하십니다. 그런데 ‘왜 자꾸 이 목사 당신은 우리가 못한단 이야기를 하느냐’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날 공격하기를. ‘딴 건 좋은데 우리가 못 한다 이야기를 하지 말라.’ 그 대신 뭐로 바꿔라? ‘성령 받은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줘야 되는데 못한다고 이야기하니까 교인들이 안 하잖아.’ 이런다고.

성령께서 주님으로부터 어떤 명령을 받고 말씀을 받을 때는 우리 자신이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를 알려주는 같은 말씀이죠. 술 취하지 말라. 여기 나와요. 온 이웃 사랑을 한 말씀에 이룬다. 이 말씀을 볼 때 우리도 눈이 있잖아요. 본다고요. 갈라디아서 5장 14절에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그게 다 우리가 들리잖아요, 이게. 들리면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우리 속에 육체의 욕심이 들썩들썩 거린다고. 이 말씀에 대해서.

사람이 한 소리 들으면 가만있는 법이 없어요. ‘그래 이것 지켜야 돼.’ 내 육체가 들썩들썩 거려요. 근데 16절에 보면,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이 말이 왜 우리한테 필요 하느냐 하면, 우리가 지금 들썩들썩하기 때문에 이 말이 필요한 거예요.

‘육체의 욕심을 이루면 안돼. 정과 욕심대로 하면 안돼. 네가 이웃 사랑해도 네 것 돼버리면 너는 시기와 질투와 네 자랑밖에 안돼’라고 자꾸 통보해주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뭐냐 하면, ‘아하, 우리 속에 있는 육체가 누굴 거슬리느냐? 역시 성령을 거슬린다는 것을 알 때 갈라디아서 5장 17절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거예요. 육체의 소욕이 뭘 건드린다? 성령의 소욕을 건드린다는 것을 ‘아하, 그 말씀이 맞구나.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맞구나.’ 왜? 내가 나쁜 놈이니까.

결론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 우리 ‘주여, 이미 예수 믿습니다. 그 이야기는 저기 안 믿는 사람에게 하세요. 우린 예수 믿으니까 나보고 하지 말고 저 사람보고 하세요. 우린 예수 믿습니다. 우린 돈 안 사랑하고 주님 사랑합니다’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주님 뜻은 뭐냐 하면,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것을 안 믿는 사람한테 안 가르쳐주지.’ 누구한테 알려주지? 너한테만 알려주지. 왜? 너는 말씀을 증거하면 그만이니까. 네가 ‘나 돈 사랑 안 했습니다’ 이게 목표가 아니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나쁜 놈이라는 것을 너한테만 알려줄게’ 이게 성령의 뜻입니다.

‘육체를 심는 자는 섞어질 것을 거두고’ 그걸 거두게 해요. 누구한테? 우리한테. 거두게 합니다. ‘봐 내 말 맞지롱. 너 주식, 펀드해서 반 토막 났지롱. 욕심 부리니까 꼴 좋지롱. 섞어질 거두니까 걱정, 근심만 오지롱.’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말씀대로 되잖아. 그걸 불신자한테 간다? 아닙니다. 누구한테? 성령을 통해서 누구한테만? 신자한테만 오는 거예요.

그래서 결론이 뭐냐? 성도는 자기 구원문제가 아니라 말씀이 과연 진리라는 것을 드러내는 그릇과 도구로써 우리를 사용한 겁니다. 과연 말씀이 거짓이 없고 진짜구나.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이여, 이거는 나쁜 놈이나 하지 우리한테 이야기하지 마세요. 아, 그거는 내가 할게요’라고 우리가 골라잡지 마세요. 여기 있는 모든 말씀은 우리한테 별똥별처럼 떨어집니다. 계속해서 매일같이 떨어집니다. 우당탕탕 소리가 날 정도로 말씀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아, 이건 베드로전서의 말씀 딱 맞나. 이건 누가복음 말씀 딱 맞네.’ 우리는 감탄만 하면 돼요. ‘야, 진짜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하는데 딱 맞네.’ 우리는 감격과 ‘그 나라 그 의를 구하라 먹는 것 입는 것 이거 나한테 딱 맞나’ 그러니까 말씀이 그대로 진리라 하는 그걸 감탄하고 감격하고 주께 감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이 주신 사랑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받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명령 하나하나, 말씀 하나하나, 모든 율법 하나가 어떻게 그게 진리인가를 이 거룩한 말씀이고 율법에는 하자가 없음을 우리를 통해서 분명히 드러내는 그 재미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제가 이 강의하면서 래드의 글의 전체 방향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율법을 지킬까? 이쪽 방향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을 보고서 설명하려고 하니까 설명이 안돼. 전체를 다 뒤집어야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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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7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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