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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마가복음 8장 11-20절 제목 : 표 적설교마가복음

막 8:11-20 (표 적)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마가복음 8장 11-20절
제목 : 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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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8-10-19 13:36

표적

2008년 10월 19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8:11-21

(막 8: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막 8:12)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막 8:13) 『저희를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막 8: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 밖에 저희에게 없더라』

(막 8:15)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막 8:16)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막 8: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막 8: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막 8: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둘이니이다』

(막 8: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막 8:21)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예수님과 함께 계실 때,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의 돈이나 열심이나 우리의 성의 표시가 아닙니다. ‘나를 깨달으라’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타인에 대해서 우리가 성심성의껏 나름대로 잘 대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 사람의 마음과 입장을 아는 것은 딴 문제입니다. 아무리 성의를 베풀어도 그 사람을 사정을 이해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처럼 만약에 예수님을 우리 외부에 세워둔 일반 타인 중의 한 분이라면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쓰고 헌신해도 예수님의 본심을 아는 것 하고는 아무런 상관없이 없는 일이 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남들에게 해준 일에만 마음에 담아두게 됩니다. 이러다보니 예수님의 속마음에 대해서 알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답답한 심정으로 여러 번 꾸지람을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으로부터 이런 꾸지람을 받는다는 것조차 이미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 안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는 제자들과는 다른 퉁명스러움을 보이시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뭘 요구했습니다. 과연 당신이 하늘에서 온 자가 맞는지 스스로 증거해보라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표적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찬송가 450장 2절에 보면 이런 가사가 나옵니다. “죄를 지은 까닭에 저의 맘이 곤하니 용서하여 주시고 쉬게 하여 주소서 천국가고 싶으나 저의 공로 없으니 예수 공로 힘입어 천국가게 하소서”

여기서 첫 출발지점이 ‘죄를 지은 까닭에’입니다. 이 죄는 나중에 자신의 선행을 해서 벌충시킬 수 있는 그런 죄가 아닙니다. 바르게 살아보겠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 해소되고 용서받을 수 있는 그런 죄가 아닙니다. 이 죄는 아무리 열심히 살고 경건하게 살아도 그 공로로 없어지지 않는 죄를 말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만 해결될 그런 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를 지은 까닭에’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나 여기 있다’로서 출발을 합니다. 이러한 자기 살겠다는 중심점을 갖고 있으면서 예수님이 하늘로서 온 자의 증거를 얻고자 하니 예수님은 이들의 요구에 호응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나 이점은 제자들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습니다. 이것은 곧 구원이란 우리 인간의 바른 태도나 바른 입장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구원되어야 될 제자들과 구원받지 말아야 될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달리 다루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을 ‘죄를 지은 까닭에’라는 출입구에다 세워두시려 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누룩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입니다.

마치 제가 여러분들에게 “김밥 속의 단무지를 조심하세요”라고 말하니까 여러분들이 알아 듣기를 “하, 놀려가는데 총무로서 미쳐 김밥을 준비 안했구나. 김밥 준비하라고 목사님께서 암시를 주시는구나”라고 곡해하는 식과 같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제자들이나 인간이라면 평소에 출발점은 오직 자기 자신의 존재부터 출발합니다.

즉 ‘나는 나를 위해서 있다’→‘내가 배고프다’→‘배 안고프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나는 예수님을 의지한다’→‘고로 예수님은 나에게 돈 벌게 해야 한다’라는 논리가 성립되는 겁니다. 이런 바탕 위에다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셔도 그 노선를 타고 흐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지은 까닭에’→‘나는 공로 없으니’→‘예수님의 공로로’→‘천국에까지 간다’ 입니다. 바로 이 노선을 위하여 예수님은 누룩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해서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의 노선을 ‘그들 자신’에서 ‘천국’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요? 여기서 예수님은 ‘표적’ 이론을 들고 나오시는 겁니다.

표적이란 곧 흔적입니다. 예를 들면, 사과를 깍으면 사과껍질이 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버리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그 사과껍질을 버리지 않고 ‘신의 흔적’으로 사용하십니다. 껍질을 통해서 실체와 결합케 하시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신의 흔적‘에 대해서 인간들이 잘못 다루고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사람들은 ‘흔적’을 ‘실체’ 인줄 알고 그것을 절대화 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인간들은 자기 행함으로 신의 흔적마저 자기 것으로 장악해서 자동적으로 동일한 효과를 보려고 시도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예배당 앞자리에 앉으면 은혜가 절로 된다’는 공식을 세우려고 합니다. 물론 전에 언젠가 앞자리 앉아서 큰 은혜가 되었던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신의 흔적’인 줄 모르고 마치 ‘신의 실체’ 인양 여기는 겁니다. 신의 흔적이란 ‘현존’과 ‘부재’가 같이 있습니다. 즉 있음과 동시에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행함에 붙잡히지 않게 하시겠다는 의도를 갖고 계십니다. 분명히 제자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먹고 배불렸습니다. 문제는 그것으로 자신들의 '죄를 지은 까닭에‘라는 전제를 잃고서는 자신의 삶을 위해 신의 흔적을 이용하게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작용하시면서도 숨어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손에 붙잡히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신을 붙잡아 매므로서 신에 대해서 주도권을 자신이 쥐려고 합니다. 신을 부려먹을려고 합니다. 신의 흔적인 표적은 그 실체가 따로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하시는 ‘깨닫지 못함’은 여전히 참된 하나님의 흔적은 아직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 실체가 담고 있는 뜻은 무엇입니다.

그것은 왜 ‘예수님의 공로 만’이냐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제자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죄를 안다고 자부하지만 진정한 ‘죄를 지은 까닭에’ 도달하려면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되비쳐봐야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외치시는 것은 자기 제자들이 알아야 진정한 깨달음의 절정입니다.

따라서 그 전에 실시했던 예수님의 일들은 모두 표적이 되는 겁니다. 동시에 그런 표적을 알려주는 대상이 되었던 그 제자들 자체가 곧 예수님의 표적입니다. 즉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존재 자체가 예수님을 말해주는 표적이요 ‘신의 흔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입에서 ‘죄를 지은 까닭에’라는 고백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행사하는 실천력이 아닙니다. 충동입니다.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충동입니다. 그래야 선물임이 드러납니다. 지난 날 충동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매일같이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 계셔서 터뜨리시는 충동으로서 나오는 고백을 통해서 우리의 주도권이 이미 우리 손을 떠났음을 증거해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개별적인 믿음을 주장하지 말고 주님의 공로 속에 함께 들어가서 함께 감사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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