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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삼상 5: 6-10 (죽이시는 하나님)우리교회사무엘상

삼상 5: 6-10 (죽이시는 하나님)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사무엘상 5장 6-10절
제목 : 죽이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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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8-10-12 15:29

죽이시는 하나님

2008년 10월 12일 본문 말씀: 사무엘상 5:6-12

(삼상 5: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종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경을 쳐서 망하게 하니』

(삼상 5: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게 못할지라 그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삼상 5:8) 『이에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할꼬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삼상 5:9) 『그것을 옮겨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에 더하사 성읍 사람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종이 나게 하신지라』

(삼상 5:10) 『이에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에그론으로 보내니라 하나님의 궤가 에그론에 이른즉 에그론 사람이 부르짖어 가로되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하고』

(삼상 5:11) 『이에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본처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 죽임을 면케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삼상 5: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받아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의 궤’로 대변이 됩니다. 궤라는 것은 상자입니다. 지금 블레셋 사람들은 상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처치 곤란합니다. 원래 신이란 우리 인간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고 천상의 고요한 곳에 우아하게 사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 보시고 살펴보면서 가련하고 우리 인간의 애로 사항을 해결해주시는 자비로운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이 사는 세계와 인간이 사는 세계가 분리되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약에 신과 섞여 살면, 인간은 신들이 발휘하는 전지전능에 주눅들어 살지가 없겠지요. 약한 자들끼리는 마이너리그에 속하고 메이져 리그는 신들끼리 하시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인간들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신이 사시는 세계와 인간 세계와의 연결점은 신당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거기서 예배 형식으로 성사되리라 여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경우에는, 과격한 신입니다. 연약하고 가련한 인간을 상대로 마구잡이로 횡포를 부리십니다. 여호와 신을 모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죽어나갑니다.

먼저 사람들이 신에게 시비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께서 인간들을 향하여 선제 공격에 나섭니다. 공습이요 폭격하는 식입니다. 선전포고도 없이 말입니다. 신의 이러한 선제공격은 평소에 사람들이 알고 있는 신 답지 않는 태도입니다. 인간들이 신을 향하여 분노하거나 배신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신으로부터 공격받는다는 것은 흔히 알고 있는 신의 품성이 아닙니다.

블레셋 사람들 생각에는 이는 필수 자기네들 신이 있는 곳에 여호와라는 신을 모셨기 때문에 여호와 신께서 열등의식이 들어서 화를 내는 것으로 이해해서 신이 없는 가드라는 곳으로 하나님의 상자를 옮겨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저주는 여전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블레셋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서 평소에 우리들도 동일한 태도를 가지고 여호와에 대하지 않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호와의 궤 안에는 하나님의 십계명이 들어있습니다. 그 십계명 제 일 계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 외이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이 계명은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평소에 자신들이 알고 있는 신이 어떠한 신이며 여호와 하나님은 어떻게 다른 신인가 하는 이 두 가지 점을 다 알고 있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 인간들이 신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이는 무수한 인류의 선배들의 아이디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을 언급하면서 인류 사회는 어떤 식으로 이해했습니까? 사람들은 대자연의 창조자요 운영자로서 신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성과 운영대상 속에 자기 자신들을 집어넣었습니다.

이런 구조에 준해서 인간 자신의 가치란 대자연의 창조주와 어떤 식이라도 연결되어야 있어서 챙길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 방식이 바로 이러합니다. 신께서 자신의 본성을 피조세계를 분배해주는데 그 일부가 인간 속에 들어왔다는 겁니다. 인도 철학에서는 절대적인 신을 상정하고 그 신의 요소 일부가 인간 속에 자리잡았다고 하는데 그 자리잡은 절대적인 신이 바로 ‘자아’라고 합니다.

불교는 이런 인도철학을 개선해서, 인간 속에 들어있는 절대신을 직접 찾아나서는데 되는데 그것이 바로 고행과 금욕의 방식으로 육을 죽이면서 성사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소위 해탈이라는 것은 자아가 곧 신인 것을 스스로 느껴보게 된 지경을 두고 말합니다. 이로서 결국 어떻게 하든 자신들이 신임으로 재확인하는 종교를 갖고자 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예외가 될 수 없지요. 신의 영광을 들먹이지만 실은 자신의 영광을 확장하기 위한 작업의 일부입니다.

이러한 아이디어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들이 신을 언급하는데는 다 그만한 본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가치를 챙기기 위해서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상자 앞에서 당황하는 바는, 자신들의 가치가 무참하게 뭉개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호와의 상자에 대해서 자신들이 먼저 악한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귀하게 생각하는 주변 사람들의 생목숨이 지독한 독종과 고통 속에서 죽어가니 그들의 존재 가치가 형편없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네들은 나름대로 할 도리를 다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입니다. 신에게 섭섭지 않게 해준다는데도 도리어 신 쪽에서 오버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즉 신이면 신이지 왜 우리들이 애지중지 하는 우리 가족들을 죽이느냐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의 상자 자리를 변동시켜 봅니다. 하지만 변동시켜 봤자 그 있는 지역이 죽음과 저주가 떨어지는 지역이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계신 곳에서 저주를 퍼붓게 됩니까? 그것은 본래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즉 언약궤로 나타나는 참 여호와 하나님의 품성은 ‘저주스러움 속에서 자비로움’입니다. 이것을 발휘하기에 그 상자가 있는 곳곳에 저주스러움이 제공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고기를 잡아주자 베드로가 하는 말이, “주여 저를 떠나소서.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발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자기 고유의 가치를 여호와 하나님은 일체 인정해주지를 않습니다. 그래야지만, ‘나 외에 다른 신을 섬지기 말라’가 제대로 적용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계실 자리는 인간이 마련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고상하고 안락한 자리를 마련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 안착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 자신의 터를 만들어나가십니다. 어떻게요? 저주와 사랑이 다함께 보여주는 공간으로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3:16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은 인간이 요청한다고 해서 그 자리에 머물러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그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성을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저주성과 자비성을 아울러 나타내는 자리가 곧 하나님께서 직접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모셔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쪽에서 찾아오실 때만 하나님과의 동거가 성사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더러움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됨을 막지를 못합니다. 거룩한 성령님 찾아오시는 바로 그 곳이 아무리 추잡해도 거룩한 성전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자신의 영광과 가치를 하나님 앞에서 주장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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