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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산 10월 10일 강의 고후 10장 3-4절강의고린도후서

안산 10월 10일 강의 고후 10장 3-4절

이름 : 우리교회(IP:124.59.86.24)

081010 고후10장3-4절 육체와 벌(추상적 신)

우리교회(IP:124.♡.86.24)

08-10-11 13:23

관리자(IP:220.♡.41.203)

10-11-0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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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03 16:06

안산081010고후10장3-4절

2010-11-03 11:30:38 녹취 : 박온정

안산081010고후10장3-4절, 육체와 벌(추상적 신) / 이근호 목사

고린도후서10장 3절에서4절 보면,『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이렇게 돼있죠? 여기 육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육체라는 개념을 오늘도 생각을 해봐야 되겠습니다. 6절에 보면,『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벌하시는 이유가 뭐냐,

5절에 보면,『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그리스도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 그리스도에게 복종치 않은 자에게 그 다음에 뭘 하느냐 하면, 벌을 내리잖아요. 그래서 오늘 “우리의 육체는 병기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는 육체와 벌에 대해서 사도의 생각, 그러니까 주님 생각이죠?
주님의 생각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이 벌 받는 이유가 뭐냐 하며는, 그리스도께 복종하지 않는다고 벌 받는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모두 다네, 이 동네 다…국회의원들 다, 초등학교 교사들 다, 공무원들, 농사지은 사람들, 조계종에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신에게 복종하지 않은 신이 문제가 아니고, 구체적인 예수그리스도죠. 본문에 예수그리스도죠.

신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뭐냐면, 추상명사의 신이 있고요, 고유명사의 신이 있습니다. 추상명사라 하는 것은 인간들이 지어낼 수 있는 신은 추상명사 신이에요.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시고, 이건 모두 추상명사잖아요. 신에게 고유명사를 붙이려면 신이 인간처럼 인격이 신이 육체가 되어서 이 땅에 왔다면 그분에게만 고유명사를 붙일 수가 있습니다.

어이, 김씨. 어이 박씨, 최씨, 고유명사 아닙니까. ‘어이, 근호!’ 고유명사잖아요. 근호 또 없잖아요. 당신 말이야! 당신! 이게 고유명사거든요. 이름 부른다는 것은 이름만 있다는 게 아니고 그 이름에 해당되는 인물이 있다 말입니다. 인간이 고유명사를 못 짓습니다. 이게 성경의 특징이에요. 인간이 신의 고유명사를 못 지어요. 인간은 기껏 뭐합니까. 고유명사를 못하고 추상명사를 하죠.

오! 신이시여! 도와주소서! 이게 뭐여요? 어디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도와주소서. 아닙니까. 자비로우신 하나님 어디쯤 계신지 모르겠으나 이것 좀 도와주소서. 이건 전부다 추상명사란 말이죠. 그래서 추상명사 이거 연구해보면, 추상명사 신 이거는 이방인들,(쉽게 말해서 인간이죠?) 인간에게서 잡아낼 수 있고 조장할 수 있고 만들어낼 수 있는 신은 전부 다 추상명사입니다.

내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우리 조상, 조상, 조상 껍데기에 있는 조상, 최초의 조상을 만드신 그 신, 그런 식으로 해서 전부 다 추상명사가 되는 겁니다. 하지만 고유명사로서의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의 고유명사를 최초로 누구에게 이야기했냐 하며는, -아브라함이 아니에요- 누구냐 하며는, 모세한테 이야기했습니다.

민수기에 나오는 거 보면, 모세에 대해서 뭐라 하냐면, 직접 봤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모세를 무시하지 마라, 모세는 나와 직접 만났다.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직접 만났으니까 만났다는 말은 여기 모세가 있는 게 아니고 모세가 누굴 만났잖아요. 만났다면 우리 인간처럼 어떤 실제로 어떤 분이 되죠, 어떤 분. 어르신네. 분이 계시고, 모세에게 최초로 뭘 이야기했습니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여호와라. 여호와란 고유명사를 이야기했죠? 앞으로는 나를 이렇게 불러다오. 라고 하신 분이 계신 거예요. 그래서 모세에게 충격적인 것은 뭐냐 하며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밑에서 ‘신이시여! 도와주소서!’ 그냥 막연하게 도와 달라, 은혜 베풀어 달라, 신의 가호가 있기를! 막연하게 이야기하는 반면에, 모세가 왜 중요하냐면, 막연한 신이 확실한 어떤 분으로서 -다방에서 마주 앉듯이, 테이블에 커피 놓고 마주 앉듯이 -

실제로 누굴 실제로 하나님을 만났던 분이 모세입니다. 물론 나중에 모세는 변화산에서 누굴 만납니까. 엘리야와 함께 예수님을 만나죠. 모세의 특징은 실제로 고유명사인 누구를 만났다는 겁니다. 따라서 인간들이 생각하는 신의 말, 신에 복종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뭐라 하냐면, 한번 읽어볼게요.『예수에게 복종치 않은 자는 그들이 벌 받기 위해서 예비 되어 있다. 』-어서 오세요, 막 시작 했습니다 -<ㅡ이걸 꼭 써야 합니까? ㅋㅋ)

그리스도에게 복종치 아니한 자에게는 벌 받게 되어있다. 그리스도에게. 자 그러면 제가 한번 물어봅시다. 벌 안 받기 위해서는 누구에게 복종해야 되죠? 그리스도죠?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려면 무엇을 제거해야 합니까? 이방인들이 생각하는 추상명사적인 신을 어떻게 해야 되요? 버려야 되죠. 왜냐면 추상명사의 신과 고유명사의 신이 구약의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신이면 똑 같은 신이지!’ 할 때 이스라엘은 여호와, 고유명사의 여호와, 여호와 이름을 부르는 고유명사의 신이 누굴 친다? 『나 외에 다른 신을 너희에게 두지 마라,』는 십계명 몇 번째 계명이죠? 십계명 첫 번째 계명을 마치 기수, 깃발처럼 세워, 어디든 계시는 그 하나님 안 믿거든 저주 받는다.라는 식으로 벌 줘라, 식으로 시작한 것이 구약 창세기 아닙니까.

창세기 누가 썼어요? 모세가 썼으니까, 모세가 창세기부터 쭉 기록한 게 뭐냐면, 여호와 하나님이 진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은 이스라엘 내가 만났던 그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6일 만에 하셨던 바로 그분이다 말이죠. 인간도 만드시고, 다 그분이 만들었다 말이죠. 만들었으면 사람들은 ‘아 만들었구나, 잘 알아 모시겠습니다,’ 이게 아니라 싸우라에요. 싸우라. 만약에 안 싸우면 벌주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시간에 우리가 성경 한번 찾아봅시다. 여호수아11장, 벌에 대해 구약전체에서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여호수아 11장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되어 있죠? 고유명사죠? 추상명사 아니죠? 고유명사라 하는 것은 어떤 어르신이 계셔가지고 지시 내린다 이 말이거든요.
『여호수아11:6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그 다음에 뭐라 돼있어요? 몰살시키죠. “내가 그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리라”

그 다음에 7절에 보면 “습격” 나와요 습격. 예? 그다음에 8절에 보면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어떻게 죽이고?” “쳐 죽이고” 그 다음에 11절에 보면,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그 다음에 14절에 보면, “ 이 성읍들의 모든 재물과 가축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탈취하고 모든 사람은 칼날로 쳐서” 그 다음에 “진멸하고” 호흡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20절에 봅시다.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누가 했다? 고유명사 “여호와께서” 그리하신 것이라. 그들에게 저주받는 자 되게 하여, 무엇을 입지 못하게 한다?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 다음에 뭡니까, “진멸하라 하심이라” 바로 이 하나님께 복종하지 아니하면 벌 받습니다. 지금 이시간도!

성경을 사람이 안 보게 되면, 항상 뭐냐, 추상명사의 신이 나와요. 성경을 모르게 되면. 성경을 모르면 추상명사의 신이 나오기 때문에 추상명사의 신은 뭐와 같냐면 꼭 ‘우상’같아요. 우상. ‘오늘도 신의 은혜로…’ 이래 되요. 그건 누구 중심이에요? 우산을 누가 받치고 있습니까. 중요한 겁니다. 우산을 누가 받쳐요? ‘내가’ 받치잖아요. 내가 받친 신에 의해서 내가 보호받죠. 누가 누구를 보호해요? 내가 나를 보호하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 믿어주고,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는 거예요.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겁니다. 이게 뭐냐, 추상명사예요, 이거는! 엉터리예요. 엉터리. 여기는 싸움이라는 것도 없고, 한 명도 남기지 말라 그것도 없고, 몰살도 없고, 진멸 받는 것도 없고, 저주받는 것도 없고, 어떻게 됐든 간에 우산 받친 내 가정만 지켜주소서, 내 사업체만 지켜주소서, 이것뿐이에요. 이게 바로 추상명사의 신이라고요.

성경을 덮어버리면 여호수아 모르고 고린도후서10장6절 이거 모르면 기껏, 아침에 눈떠서 기도한다는 게 뭐냐면, 추상명사화 된 하나님을 신봉하는 그냥 교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도는 아니고 교인. 교회 동호회 정도. 그거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인간의 타고난 본성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방금 여호수아11장에 있는 여호와의 지시가 우리 인간의 아이디어에서 나올까요? 안 나올까요? 둘 중에 하나입니다. 안 나오지요.

그 이유가 뭐냐, 고린도후서10장3절에 우리가 뭐기 때문에? 우리가 육체이기 때문에. 사도바울의 편지에서 ‘육체’란 말은 뭐냐 하며는, 진짜 하나님께 반발하는 습성을 가진 우리의 몸. 우리 자아. 그걸 육체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하나님을 반발할 때 놀랍게도 추상명사의 하나님 가지고 뭘 반발해요? 고유명사의 하나님을 반발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비해서 고유명사의 하나님이 준비한 게 뭡니까. 뭘 준비했죠? 한 자로.<벌>을 준비했어요.

방금 제가 한 이 이야기가 일반적인 사람이 들으면 화를 돋우는 분개하고 격노케 할 수밖에 없는 말씀을 방금 이야기했어요. 나 하나님 믿는다는 말을 바락바락 해요. 나는 안산의 어느 교회 다닌다는 말을 아주 발악을 해요. 그런데 이야기 들어보면 아까 여호수아11장 읽어봤죠? 여호수아 11장이야기가 전혀 안 나옵니다. 안 나오고, 뭐가 나오냐면 -제가 단어하나 쓸게요 - 여호수아11장에는 하나님의 약속 언약 그런 거 안 나오고, 오직 이거 하나 나옵니다.

<간절함>이죠. 간절함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어요. 간절한 기도, 간절한 전도 간절한 헌금 간절한 충성. 이게 바로 한국교회고, 사람들에게 먹혀들어가죠. 고유명사의 하나님은 모르고 추상명사의 하나님만 알기 때문에. 추상명사의 하나님은 나를 지켜주는 신, 그 신만 알기 때문에 이 신만 알았을 때 ‘성경이야기는 더 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성경전체 보다도 뭘 더 내세웁니까. 간절함. 간절함만 있으면 됩니다.

여호수아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신명기에 뭐가 적혔는지 고린도후서10장에 무슨 이야기가 있는지 전혀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들려줘도 거부하고 그딴 거 안 들려도 발악하고, 오직 자기한테 ‘간절함’ 간절한 기도, 간절한 예배, 간절한 선행.-간절한 선행 하나 빠졌다- 간절한 구제, 이것만 있으면 복 받는다, 사업 잘 된다 이래 보는 겁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공부하는 '육체‘라는 것이요, 쉽게 생각 안 되지요. 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한 구절만 뽑아내면 신명기고 여호수아고 다 따라 나와야 되요. 이 구절만 뽑고 신명기는 따로 하고, 이런 거는 없어요. 신약을 들추면 구약이 고구마줄기처럼 줄줄 달려나와야 되요. 신약성경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구약을 다 설명해야 된다고요. 구약의 여호와가 예수그리스도 주님이 되기 때문이에요.

같은 주님이기 때문에 같은, 동일한 계획이 나옵니다. 그래서 옛날 계획을 알지 않으면 지금 계획이 무슨 바탕에서 나오는 계획인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방금한 거 첨부터 다시 한 번 해봅시다. -늦게 오신 분도 계시니까 다시 하겠습니다. 다시해도 괜찮죠? 중요한 거니깐. -

고린도후서에서 진짜 이상한 게 그리스도께 복종하지 않으면 벌준다는 게, 신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벌준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어요. ‘자기를 만들어준 하나님께 복종 않으면 벌 받아도 싸지,’ 이러거든요. 그게 아니고, 신에게 복종하고 않고 가 아니고 아까 뭐라했습니까. ‘그리스도에게’ 흔히 예수쟁이, 예수교! 그 예수에게 복종치 아니하면 벌준다는 거예요.

그러면 목회자 입장에서는 뭘로 바꿔줘야 되요? 그들이 알고 있는 추상명사의 신을 무엇으로 바꿔줘야 합니까. 그리스도로 바꿔줘야 되는 거라. 사람들이 안 바꾸려 해요. 사람들이 안 바꾸려합니다. 바꾸면 곧 자기가 무식하다는 뜻이에요 그게. ‘아~ 나 그동안 무식했구나,’ 이렇게 되기 때문에 안 바꾸려 해요.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옳고, 목사한테 성경이야기 하면 이미 오른 바탕에서 하나 더 추가되기를 원하지 기존에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엉터리고 그거는 내가 지어낸 것이고, 예수그리스도부터 새로운 하나님을 알겠다는 사람들 그런 의사 없습니다. 그럴 맘이 없어요.

예수님께서 등장하신 배경이 어떤 배경이었습니까? 불교였습니까? 이슬람교였어요? 예수님 태어난 교가 무슨 교였습니까. 유대교! 유대교가 뭘 믿습니까. 세상에… 여호와를 믿잖아요. 여호와를 믿는데 너희들이 믿는 것은 사탄이고 ‘우리 아버지는 나와 함께 있다,’ 했거든요 예수님께서.

그러면 예수 믿는다는 게 뭐에요? 심지어 구약성경을 달달 외우고 있는 유대교인들이 알고 있는 그 하나님마저 그거는 말짱 엉터리고, 예수님이 알고 있는 그 하나님으로 교체를 하겠다고 했을 때 그때 유일한 뭐가 되느냐 하며는, 유일한 성도가 되죠. 성도…

제가 멀리 나가있는, 외국에 나가있는 제 딸에게서 며칠 전에 전화가 왔어요. 전화 통화를 하면 상당히 복음적입니다. 복음적인데, 독일에 교회에서 목사가 심방 와서 설교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엉터리 같대요. 뭐라 하냐면, 요한복음 3장16절 아시죠? 그걸 설명하면서, 하나님은 세상을 다 사랑했는데 인간들이 그 예수를 안 믿어서, 그래서 지옥 간다,고 설명을 하는데 뭔가 아닌 것 같은데 뭐가 아닌지를 모르겠다는 거예요.

제 딸이 신학전문가도 아니고 모르죠. 그래서 이랬어요. 요한복음17장9절을 찾아봐라. 그래서 전화로 찾아봤어요. 내 딸도 찾아보고 저도 찾아봤는데 뭐냐면,『요17:9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요한복음3장10절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라고 돼있죠.

사람들이 그걸 보고 뭐라 하냐면, 추상명사의 신을 믿는 그들은 어떻게 이해합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한 게 당연하다, 이래 본 거예요. 왜! 추상명사의 신이니까. 고유명사의 신이 아니고. 인간이 지어낼 수 있는 신이니까. ‘신의 주특기가 뭐냐, 자기가 만든 것을 사랑하는 게 주특기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말이죠. 그런데 요한복음17장9절에 보니까, 하나님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그 중에 뭡니까, 세상 중에 오직 아버지로부터 택한 자, 그들만 사랑한 거예요.

그러니까 요한복음3장16절의 세상 사랑한다는 말은 전체로 볼 때 사랑하는 것 같지만, 세상 중에 있는 자기백성만 사랑한 거예요. 그게 요한복음 뒤에 쭉 나오죠. 내가 다 사랑한 것이 아니고 너희들만 사랑한다, 그것도 끝까지! 끝까지 사랑한다.(주여!) 요한복음14장에 나오죠? 끝까지 사랑한다고. 만약에 하나님이 세상을 그냥 사랑해버리면 (추상명사) 하나님은 뭘 취소해야 됩니까. 멸망이란 말 취소해야 되고, 지옥이란 말 취소해야 될 거예요.

왜! 그건 사랑이 아니니까. 사랑이란 말은 멸망 없는 게 사랑이거든요. 멸망 없는 게 사랑이고 진멸 없는 게 사랑이거든요. 그런데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10장5절에 보면 그리스도에게 복종치 않는 자에게는 뭐한다? 벌준다 했지요. 이 벌이 어디서 나왔냐 말이죠. 내가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게 그거예요. 이 벌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지어낸 게 아니고 일관되게 흘러온 계획이 있어요. 그 계획이 뭐냐 하며는, 아까 그 계획이 여호수아 몇 장이이었습니까.

여호수아 11장에 있는, 모세에게 당부하고 여호수아에게 당부한 게 있지요? 그게 뭡니까. 이런 자들은 절대로 은혜 받으면 안 되고, 저주를 꼭 받아야 되고, 그리고 그 사람들은 한 명도 살려주지 말고, 어떻게 하라? 진멸해야 되고, 심지어 더 무서운 용어, ‘몰살’하라는 말 나오죠. 몰살…해버려라. 지금 그 취지가 구약 때부터 여호수아11장에 나오는 그 취지가 흘러 흘러 들어와서 지금 어디까지 흘러들어왔다 말입니까. 고린도후서까지 흘러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가 여호와고 여호와가 예수그리스도 됐는데 결국 예수그리스도가 하고자 하는 일은 옛날에 여호수아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일과 똑같은 거예요. 뭐냐 하며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만 내가 따로 추려내겠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 구원받은 자만 추려내고 너머지 하나님께 복종치 않은 자는 전부 다 하나님이 벌주려고 오셨다. 그걸 분명히 합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뭐냐, 성도라 하는 것은 하나님 고유명사적 인격, 어떤 분, 어떤 어르신이 있기 때문에 고유명사 이름을 붙이거든요. 고유명사가 있다는 것은 분명히 살아 계시다는 뜻이에요. 살아계신 분이 그냥 살아계신 분이 아니고 뭘 갖고 있다? 계획을 갖고 있는데 그 계획 속에는 뭘 포함 되냐 하면, 뭐가 포함됐습니까. 그리스도에게 복종치 않은 자에게는 ‘벌’내린다는 계획을 반드시 실현시키는 그 그리스도. 그 하나님을 우리가 믿을 때의 인식을 가지고 우리자신을 바라봐야 되는 겁니다.

이게 오늘 강의 일부입니다. 고유명사와 추상명사, 추상명사와 고유명사, 추상명사의 하나님을 뭐로 바꿔라? 고유명사의 하나님으로 바꿔라. 그냥 바꿉니까? 이름만 바꿉니까? 아니죠. 추상명사일 때 몰랐던 게 고유명사로 바뀔 때는 확실한 뭐가 있었다? 그걸 한 자로 뭐라 했어요? ‘벌’ 벌 받을 자에게는 벌이 온다. 그리스도에게 복종치 않을 때는 벌이 온다. 그것까지 수용해야 제대로 고유명사 하나님을 아는 게 된다 이 말입니다. 이게 1부입니다.

제2부.

제2부가 더 어려워요. 1부와 연속해서 한번 봅시다. 1부 끝에 제가 이 이야기 했죠? 추상명사의 신이니까 그냥 신이죠? 자비하시고 창조하시고 전능하시고 추상명사의 신입니다. 어떤 계획은 없고 하나님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기대심리. 자기 기대에 의해서 막연하게 오는 신. 그게 추상명사의 신입니다. (추상적인 신) 보통 그걸 신이라 하죠?

이런 신, 이런 하나님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이게 2부 순서의 첫 번째 관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 있습니까? 없지요. 그렇다면 태어날 때부터 아담의 죄성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태어나서 유치원에 다닐 때 하나님께 기도하라면 잘 기도해요. 그래도 하나님을 몰라요. 하나님이라 하는 것은 내가 그리고 있으면 나보다 위대하신 분, 나를 만든 분, 있는데 그 추상명사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을 다 품고 있다 이 말이죠.

다 품고 있는 사람이 여기다 성경말씀 좋은 구절 얘기해줘 봤자 이걸 뭐로 해석합니까. 추상명사적인 하나님으로 전부 다 해석을 하게 마련인데 이런 해석을 하지 않고 예수님처럼 해석하는 위인이 이 세상에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 말이죠. 이게 아까 고린도후서 10장3절에 의하면 육체대로 행하는 거예요. 태어나는 대로. 그래서 이 시간 여러분 조금 어렵지만 육체와 정신에 대해서 잠깐 언급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들어보시면 약간 신기하다, 신기하다는 걸 느낄 거예요. 육체가 먼저입니까, 정신이 먼저 입니까. 결론부터 내리면, 신체는요 내가 있다 없다 해도 계속 있는 겁니다. 심지어 내가 죽어도 내 가족은 내 시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요. 나는 정신이라도 육체는 잃고 자시고 없이 그냥 있잖아요. 그렇다면 육체는 있는데 정신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며는, 육체에서 만들어내는 건 뭐냐, <허구>입니다. 허구. 허구예요.

그러면 첫 째 문제가 남는데요, 문제. 육체가 먼저냐 정신이 먼저냐 제가 이 말을 하고 싶은데 문제는, 질문은요. 육체가 먼저다, 정신이 먼저다, 어느 게 맞는지 그 문제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믿음 좋아요. 믿음 좋고 기도도 좋고 좋아하는데, 배고파보세요. 믿음 좋으면 배 안 고픕니까? 속 쓰린 거 열나는 거, 믿음 좋으면 열 안나요? 아무 상관없지요? 그러니까 교회 오는 것보다 뭐가 우선이에요. 배고픈 게 우선이죠.

하나님 믿는 것보다 뭐가 우선입니까. 배고픈 게 우선이죠. 돈이 우선이고. 그러니까 하나님을 달라는 것은 내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하나님 돈 벌게 해주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내 몸 아프고 배고픈 이걸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을 2차적으로 불러대게 마련이죠. -당신이 그렇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뭐냐- 그건 간단하죠. 아무리 하나님 찾더라도 배고프고 몸 아프면 교회 있다가도 어디를 가야됩니까. 집에 가야죠. 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육체가 먼저고, 정신이라는 것은 육체에서 나오기 마련이니까 정신이라는 것은 육체에 돌돌(졸졸?) 따라 다니는 뭐와 같냐면 그림자와 같은 거죠. 어떤 그림자? 검은 그림자. 1번이 맞는 것 같기도 해요. 정신이 육체보다 먼저다, 는 경우 이번에 있었죠? 어떤 여자배우가 자살했죠? 그 사람의 집에 양식이 떨어졌습니까? 강도가 들어서 그 사람 뒤통수를 쳤습니까? 누가 그 여배우를 죽였습니까? - 야...중요한 문제 나오는데 - 누가 그 여배우를 죽였어요.

자기 자신이 죽였지요. 자기 자신이 기분 좋게 가만있는데 ‘어, 어, 팔이 움직이네, 팔이 왜 내 목을 조르지?’ 이래서 죽었습니까? 이래 보면 뭐가 우선 같아요? 육체가 아니고 정신이 먼저며 육체라 하는 것은 똘마니, 정신이 시키는 대로 ‘오늘 영화 보러 가!’ 가면 따라가는 거예요. 오늘 막걸리 한 잔, 막걸리 한 잔 해야지, 가만있는데 팔이 막걸리 주는 게 아니고 막걸리 한 모금 머릿속에서 먹고 싶다고 하면 하는 거예요.

담배 한 개 피우고 싶으면 담배 피우는 거예요. 자, 문제는 정신이 먼저예요 육체가 먼저예요? 어느 게 먼저입니까. 누가 와서 강도질 하지 않았는데 자기가 자기 목을 조른다는 거예요.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정말 이상하죠? 동물에는 뭐가 없다? 동물에는 대체로 자살이 없다 하죠. 자살 같은 경우 많이 보고되고 있습니다만, 동물은 자살이 없지요. 그래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하나님의 벌이 어떻게 오는가 봅시다.

여호수아11장 다시 한 번 봅시다. 여호수아 11장6절에 내일 이맘때에 몰살한다 했지요? 8절에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하고 그 다음에 뭐라 되어 있어요? ‘몰살’ ‘쳐 죽이고’ 그 다음에 11절에 보면 ‘칼날로 쳐서 진멸’ 그 다음에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전부다 이게 벌이죠. 그죠? 그 다음에 14절에 보면, ‘모든 사람은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으니’ 돼있지요? 이게 전부 다 벌이죠? 자 묻습니다.

이 벌이 외부에서 옵니까? 내부에서 오는 겁니까. 이 벌이, 외부에서 이스라엘 군대가 치죠? 여호와의 그리스도에게 복종치 않아서 받는 벌은 내가 정신이 우선인가 육체가 우선인가 이렇게 따지고 드는 것 없이 어디서 온다? 그걸 따지고 있으나마나 소용없이 어디서 옵니까. 외부에서 오죠. 이걸 어느 책에서 뭐라고 얘기 하냐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공습이에요 공습. 그때 안산에서 공부하면서 육체가 먼저일까 정신이 먼저일까, 배고프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잠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잠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잖아요. 육체가 먼저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자살하는 거 보면, 그리고 남을 미워하는 걸 보면, 보통 미워할 때 그 사람이 날 때려서가 아니잖아요. 어떤 탤런트는 보기만 해도 미운사람이 있어요.(저두요,,ㅋㅋ) ‘저 인간 좀 그만 나왔음 좋겠다,’ 왜 그래요!

그 사람이 돈을 훔쳤어요? 그 사람이 욕을 했어요? 그냥 티브이에 나오기만 하면 밉상스러운 거 있잖아요. (목사님들은 안 그런 줄 알았는데요) 어떤 부모는 자식 중에서 보기만 해도 미운 자식이 있답니다. -저는 딸 하나라 천만다행입니다- ‘에구 네 형 봐라, 형은 저래 사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고~!’ ‘저거 어디 가서 안 죽나 어디 가서 차에 치어 안 죽나,’(세상에나...이런 사람이 있다니) 진짜로 자식도 부모 애먹이면요, 술 먹고 빈둥빈둥 해보세요, 나이 서른 넘어가지고… 도끼로 쳐 죽이고 싶어져요.

왜냐 하면 자식 꼬락서니 때문에 누가 욕을 얻어먹어요? 부모가 욕 얻어먹어요. 자식이 부모를 때렸는가요? 아니죠. 자식이 부모한테 잠 못 자게 하는가요? 아니잖아요. 자식이 부모한테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정신적으로 부모는 그 자식이 미운 거예요. 왜? 자기 기대치에 못 미치니까 화딱질 나는 거예요. 화딱질 나니까 모든 장기가 스트레스 받아가지고 원활히 안 돌아가지고 쓰러지는 거예요.

그런데 왜 이렇게 육체가 먼저일까 정신이 먼저일까? 이런데 왜 벌이 옵니까. 왜 벌줍니까. 주님께서는 육체에 벌을 줘요 육체에. 아까 이스라엘에게 벌 받는 이방민족들 육체로 진멸당해요. 하나님 보시기에 뭐가 중심이냐 하면, 정신이 중심이 아니고 하나님은 뭘 봅니까? 육체를 보면서 그 육체가 누구 거냐 말이죠. 그 육체가. 그 육체가 바로 하나님 건데 왜 육체를 너희 맘대로 굴렀느냐 하는 걸 따져서 벌주는 거예요.

제가 아까 목욕탕에서 목욕하는데 뜨거운 탕에서 한 십분 쯤 있어보니 진짜 힘들어 못 있겠어요. 스스로 약속한 십분 지킨다고 해놓고 육체가 이렇게 답답하니까, 누가 나를 건져주지 아니하면, 나의 육체에 가한 벌을 제거하지 아니하면, 내가 어떻게 살 길이 없다는 걸 제가 스스로 경험 해봤어요. 실험삼아 해봤는데 …이제부터 좀 어려워요. 어렵습니다.

내가 육체가 먼저냐 정신이 먼저냐 따지고 있는 이판에 갑자기 어디서 온다? 공습이죠. 아까 공습 얘기했죠? 공습해서 주님께서 벌 내리십니다. 벌 내리는데 그 벌 내리시는 기준이 고린도후서6장10절에 보면 벌 내리는 기준이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뭐에게 복종하지 않은 자에게?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않은 자에게. 그러면 이 이야기를 첫 째, 1부 2부 한번 연결해 봅시다. 본문은 마찬가진데 오늘 성경본문과 관련해서 연결시켜 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에게 -고유명사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복종치 않은 자에게는 왜 외부적으로 공습하듯이 뭘 내린다? 벌 내린다. 그렇게 돼버리면 이 벌은 인간이 육체를 가지고 어떤 정신을 나타내고 자기 나름대로의 육체와 안정이 어떻게 결합되고 아무리 이해해도 벌은 어디서 옵니까. 자기가 아무리 심사숙고하고 체험을 많이 해도 벌은 외부에서 오는 거예요. 외부에서.

그렇다면 이렇게 보면 앞의 뭐가 설명되느냐 하면, 4절을 보죠.『고후10:4-5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이렇게 돼있죠? ‘모든 이론’은 결국은 육체에서 만들어낸 것이고 정신은 어디서 나왔다? 육체에서 만들어낸 것이고 육체에서 만들어낸 모든 이론은 그리스도의 생각들과 전혀 안 맞는 것들만 나오게 돼있다 이 말이지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게 이겁니다. 뭐냐 하며는, 인간의 모든 정신은 뭘 빼버린다? 외부에서 오는 벌준다는 것을 빼고 남은 정신이 뭐냐, 모든 철학이고 모든 과학이고 육체의 생각이다 이 말입니다. 길게 얘기했는데 간단하죠? 모든 벌 받을 짓이 뭡니까? 벌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정신을 잘 구상하고 자아를 구상한 것…이것이 바로 벌 받을 짓이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벌 안 받을 짓이 뭡니까. 간단하죠. 나의 육체는 누구 것이다? 바로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라고 하는 사람에게만 뭐가 나온다? 벌이 안 오게 돼있고, 그래서 자꾸 벌주시는 그리스도를 제거하고 자기 육체와 육신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 온갖 정신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뭘 받게 되어 있다? 벌 받게 되어 있다 이 말이에요.

이걸 구약의 여호수아와 관계되면 이렇습니다. 지금 하나님과 계약한 사람이 누구냐, 제가 수요일 날 그런 얘기 했는데, 집안에 무슨 일이 있어서 그걸 알았는데 토지계약서 본 적 있죠? 토지계약서 아니라도 전세계약서 봤죠? 전세계약서 쓸 때 계약서대로 하죠? 그걸 읽으면서 여러분 못 느꼈습니까? 하나님도 우릴 구원할 때 계약서대로 구원하면 좋겠다는 생각 못 해봤습니까? 굉장히 편리하겠죠. 예? 뭐냐 하면 인감증명서 두 통, 주민등본 떼 가지고 인감도장 가지고 도장 찍은 날 도장만 찍으면 계약체결 되지요?

하나님이 우릴 구원할 때 그렇게 구원한다면 그것도 확실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계약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여, 저 마음 착합니다. 저 마음 뜨겁습니다.’ 이건 소용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나님의 계약서가 있는 이상 그런 소리는 하덜덜덜 하지 마란 말이죠. 할 필요 없죠? 그런 거는 추상명사의 신에게서나 한다 이 말이지요. 잘 들어보세요. 고유명사의 하나님께서는 그냥 하나님이 계신 게 아니고 우리를 구원할 때 뭘 작성했단 말입니까.

계약서를 작성한 대로 구원한다는 그런 계획을 우리에게 내민 것이에요.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러며 우리 쪽에서 뭐하면 되요? 하나님 인감증명서 몇 통 뗄까요? 이러면 되죠? 저는 도장 찍으면 됩니까? 그러면 되지요? 그 계약서를 두 자로 뭐라 하는 줄 알아요.? <하나님의 언약> 다른 말로 “하나님의 계약” 여러분 아셔야 됩니다. 하나님은 계약서대로만 구원하신다.

간단합니다. 그 앞에서 눈물 흘렸습니다. 금식했습니다. 그딴 소리 소용없어요. 여러분들 전세계약 하면서 ‘주인님, 저 눈물 흘렸습니다.’ 그런 거 소용없어요. 아이가 둘인데 한번 봐주세요. 그런 것도 필요 없어요. 계약서대로 합시다. 2년 만기입니다. 나가주세요. 아주 냉정하고 냉정하듯이 하나님께서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말은 무조건 냉정해서 만약 이 계약서 위배되는 사람은 진노하고 저주하시기 때문에 여호수아 11장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한번 정리합시다. 고유명사의 하나님 계시다. 그 다음에 그 하나님은 구원을 어떻게 한다? 뭘 작성했다?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서대로 작성 않으면 뭘 받는다? ‘저주’받는다. 아주 간단해요. 그러면 계약서대로 하면 뭘 받는다? 영생 얻고 천국가고 구원받는 겁니다. 죄 용서받고 영원히 살고, 구원...언약 한방이지. 하나님은 언약만 하면 다 한 거예요. 그래서 여호와를 뭐라 하냐면 ‘나는 언약의 하나님이다,’

그런데 지금 뭐가 어렵다 하냐 하며는, 하나님의 계약서대로 하는데 그 계약서가요, 십계명 아닙니까. 직접 계약서를 받았잖아요. 하나님의 십계명 받았으니까 그 십계명의 첫 계명에 뭐라고 돼있죠?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했죠? -아~여기서 참 문제가 되요 - 이미 인간의 육체가 여호와 하나님을 나름대로 섬긴다고 섬겼지만 인간의 육체에서 뭐가 나옵니까.

본인도 모르는데 다른 신이 나온다는 게 문제예요. 다른 신이... 추상적인 신이 나온다는 거예요. 참 육체에서 진짜 계약의 신이 나오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어요. 예수그리스도만이 참된 계약의 하나님 나오고 아담의 후손 모든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다른 신을 안 섬겨야 마땅한데, 계약서에 의하면. 예? 여기 도장난이 있는데 도장을 찍어야할 곳에 찍어야 되는데 사람의 육체가 엉뚱한데 찍어버린 거라,

직인난이 있는데 (도무지 기록할 수 없는 현장 액션모드 ㅋ) 못 찍어요. 그리고 계약서 내용이 복잡해. 십계명뿐만 아니고 신명기 출애굽기에 보면 계약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특히 산상수훈 같은 경우에는 더 추가되지요? 특히 십계명 마지막에 뭡니까, 탐내지 마라, 그런 게 있다고요. 그래서 어떤 부자청년은 예수님께 와가지고 계약서대로 다 했다고 주장했잖아요. 주님께서 추가해버리죠. 뭡니까. 「모든 것 팔아서, 네 재산 다 팔고 날 따라 오너라」오늘날 목사들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없어요.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와 열두 제자들 다 버렸다지만 다 버린 게 아니에요. 왜냐면 열두 제자 모두 재산을 주님께 바쳤지만-가족을 다 버렸지만- 열두 제자는 뭘 못 버렸습니까. 육체를 못 버렸어요. 육체. 육체에서 뭐가 나왔습니까. 자기 딴엔 그리스도가 나온다고 했는데 그리스도가 안 나오고 자꾸 다른 신이 나온 거예요. 다른 신이.

그래서 베드로가 예수님 마지막 만날 때 몇 번 부인했습니까. 닭 울 때 세 번 부인했잖아요. 다시 말해서 계약서에 도장 찍어야할 곳이 있는데 우리는 아무리해도 육체에서 뭐가 나와요. 다른 신이 나올 때 어디다 찍느냐면 다른데 찍는 거야!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약서를 줘도 지킵니까? 못 지킵니까?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면 우리 육체 속에서 다른 신이 나와요 다른 신이.

우리는 여호와, 여호와 말은 쉬워요. 예수님, 예수님 하지만 그 예수가 진짜 예수님이 원하는 예수가 아니고 내 육체가 원하는, 내 육체의 기대치. 내 육체가 원하는 그런 예수가 내 입에서 나오니까 제대로 그 계약서를 맞출 수가 없는 겁니다. 제가 지금 중요한 이야기를 해요. 뭐냐 하며는, 하나님은 계약서대로 하는데 우리가 계약서대로 싸인도 제대로 못해, 싸인도. 싸인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해요.(아멘)

오늘 본문 같은 경우에, 10장17절 봅시다. ‘자랑하는 자’는 어디서 자랑하라?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후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주께서 칭찬하는 자, 라 되어 있지요? 글쎄 이게 불가능하다니까요. 우리한테는. 왜냐면 주님이 안보이잖아요. 손목사님 저에게 칭찬해보세요. 들리거든요.

주님의 칭찬 들립니까? 무슨 이야기 하느냐 하면요, 우리가 육체가 있잖아요. 육체에서 뭐가 나와요. 배고픔이 나오지요? 속 쓰림 나오죠. 우리에게서 나오는 건 이런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에게서는 뭐가 안 나옵니까. 주님은 안 나오잖아요. 그런데 성경, 계약서에는 뭐라 합니까. 주님 안에서 칭찬받는다 했잖아요. 주님이 안보이는데?

저는 한국교회에다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뭐냐 하며는, 자기 혼자 있으면서 자꾸 예수 믿는다고 거짓말하고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애쓰는 건 인정하겠는데, 예수는 함께 있지 않다 이 말입니다. 애쓰는 건 소용없어요. 진짜 함께 있어야 된다니까! 제가 십자가마을에 글 쓴 거 봤지요? 주님이 우리 옆집에 산들 무슨 소용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앞집에 산들 무슨 소용 있어요? 창문 열고 주님이 보인다할지라도 주님이 나와 함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신약성경 한번 보세요. 특징이 뭡니까. 주님은 우리 앞집에 계신 분이 아니에요. 주님이 우리 옆집에 계신 분도 아니고. 나는 주님과 함께 산다고 함께! 함께 살아요. 함께.
예수를 믿으라고 애써라, 이런 거 없어요! 함께 살아요, 함께. 함께 살아야 구원받습니다.
이게 계약서대로 되는 거예요. 계약서대로. 왜 그러냐 하면 인간의 육체는 주님이 먼저 나오는 게 아니고 배고픔이나 돈 없음, 남에게 무시당함. 그리고 속 쓰림. 이런 게 나온다 말이죠.

이런 게 나오면 기대치를 갖고 있으니깐 예수그리스도를 부르고 하나님 불러도, 그 예수그리스도고 하나님이 뭐냐면, 나라는 육체에서 나오는 나의 기대치. 나의 계약에 의해서 내 육체가 잘되는 쪽으로 예수를 임의로 동원된 이 추상명사예요. 예수라 불러도 추상명사고 하나님 불러도 추상명사지 고유명사 아니에요. 전부다 내 육체가 요구하는 대로 육체의 탐심을 내는 대로 그런 하나님이기를 원하고 있다 말이죠.

이게 무슨 신앙입니까. 이게 지 기분 내는 거지 이게 무슨 신앙이에요. 제가 여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에요. 사도바울 편지에 항상 성도는 주님과 함께 있어 주님만 자랑한다. 분명히 책에 나와 있죠? 거짓말 않죠?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뭐냐면, 손에 만져지는 누구밖에 없습니까? 이 팔목 손목 누구 거예요? 내 신체밖에 없다고요. 그리고 내 정신 내 사고방식, 눈만 뜨면 생각하는 것이 관심사가 누구예요?

예수? 아니에요! 누구예요? -아침에 일어나면 오줌 누러 가야겠다,- 누구예요? 누구! 나잖아요! 누구랑 같이 살아요! -지 새끼랑 같이 살지- 자기 육체와 같이 살지!! 그러니 성경 달달 외운다 할지라도 벌 받는 건 뻔해요. 누가 그리스도께 복종해요!! 헐…복종의 대상도 안 보이는데! 복종은 자기 신체에게 복종하지. 그래서 인간은, 인간의 정신은 누구한테 복종한다? 이거 공식입니다.

인간은 어디에 복종한다? 인간은 자기의 육체에 복종한다. 육체에서 욕심나오니까. 인간은 자기 육체한테 복종해요.『고린도후서 10장13절 봅시다.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햐~! 이거 무슨 뜻인지… 여러분 이 뜻 알죠?

판단을 누가 한다고? 내 판단을? “잘했어 이근호! 너 훌륭해!” 판단 누가 한다고요? 자기가 누구를 판단해요? 자기가 자기를 판단하는 거예요. 사도바울은 뭐라 합니까. ‘너 신자 맞아?’ ‘맞습니다,’ ‘맞으면, 너 자신을 판단 하지마!’ 왜? 너에게서는 뭐가 나오기 때문에? 네게서는 네 욕심과 네 죄밖에 안 나오니까!! 그걸 자꾸 판단해버리면 옹호하죠. 자기 하는 것을 어떻게 한다? 맨 날 변호하고 변명하고 옹호하고 그렇겠지요.

성경에 이런 구절 있었나, 다시 한 번 보세요, 예? 이거 한 구절이면 끝나버려요.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고. 현재의 나와 앞으로 되고 싶은 나와 서로 비교하는 거예요. ‘하나님, 나 저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 판단의 기준을 현재와 미래. ‘우리교회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어,’ 그거 어디서 나옵니까. 하나님 계획서에 있습니까? 없어요! 그럼 누구 계약서? 자기 육체의 욕망이죠.

그래서 제가 말하는 결론이 뭐에요. 결론이 뭐야! 최진실이 왜 죽었냐 말이죠! 최진실이 왜 죽었냐면 혼자 살아서 그래요 혼자 살아서. 자, 최진실이가 혼자 살기 때문에 자기 기대치가 못 미치니까 화딱질 나서 죽었잖아요. 그러면 최진실은 못났고 우리는 잘났습니까, 그러면? 우린 지금 성질이 더러워서 그렇지, 누가 악플 쫙 달고 우리교회 이근호 밑에다 악플 5천개 달고. 그 정도 되면 돈도 좀 생기겠징, 걔는 돈이나 벌었으니까 그렇지, 돈푼도 없는 게 그런 거 생기겠습니까?

사람이 악플다는 이유가 시기 나서 그래요. 시기 나서. 돈이 많다든지, 예쁘다든지. ‘하튼 예쁜 것들은 다 죽여야 돼,’ 이런 거. 여기 계신 분은 그런 악플 달릴 일 없지요? 악플 달지요? ‘목회 성공한 사람 다 죽여야 돼,’ㅋㅋ 개뿔 교인이 있어야 악플 대상이 되제,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예쁘고, 우리가 큰 교회 다니면 마찬가지로 또 얼마나 속닥거리고 하겠습니까. 할 때 그리고 나서 자살한다면 우리는 백날 예수 들먹이며 살아도 지는 누구하고 살았어요? 자신의 몸뚱아리하고 살았어요.

자기가 자기를 판단했다고! 이게 성경에 나오잖아요. 성경에 없는 소리 아니에요. 성경에 나오잖아요. 그런데 계약서에 뭐라 합니까. 제발! 제발! 하나님, 예수님이 널 칭찬하게 해야지 네가 판단하지 마라 말이지, 주님이 널 칭찬해준다 이 말이에요. 마지막 결론이 이겁니다. 어디에 근거해서? 계약서! 그 계약서가 뭡니까. 그 계약을 누가 했어요. 그게 바로 새 언약이에요 새 언약.

새 언약에 뭐라 돼있어요. 하나는 예수님의 피! 또 하나는 예수님의 찢어진 살! 맞죠? 제 말 맞죠? 내 살과 내 피로 새 언약을 이루노라! 거기에 나의 육체, 나의 몸뚱이불리기, 나의 고집 안 들어가지요? 하나님이 새로운 계약을 어느 육체와 하나님과 하나님 자신과 누구 육체와 계약시킵니까. 한경직 목사입니까? 누구예요? 계약서 체결한 분이. 주인공이 누굽니까? 예수님의 육체한테.

바로 사도바울이 바로 이걸 증거 하라고 합니다. 이걸. 여호수아11장에 그 진노 받아야할 모든 사람이 결국 뭘 본받았습니까. 아까 여호수아11장20절 했죠? 뭡니까.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하기 위해 뭘 못 받게 했다? 은혜를 입지 못해서 저주받지요? 그렇다면 신약성경의 진짜 구원받은 사람은 뭡니까.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육체관리 해서가 아닙니다. 뭘 받았기 때문입니까?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고 은혜를 줄 자에게 은혜 준다고 어디에 써져 있어요? 하나님의 새 언약 계약서에 있어요. 계약서.

나는 아버지께서 택한 자에게,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칭찬받아요? 지 육체 자랑해서 칭찬받는 게 아니고 <주여! 저는 주의 은혜 없으면 못살겠습니다. 저는 주님의 새 언약이 전부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저한테는 전부입니다.> 그게 계약서 맞습니다. 주님의 계약서에 보면 누구도장? 우리 도장 안 들어가요. 계약서 직인난에 누가 들어가요? 예수님의 살과 피가 계약서에 도장 찍어버리면 이 계약서 난에 뭐가 들어갑니까.

아무개는 창세전부터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구원받기로 계약 확정함! 도장은 누구 도장입니까. 예수님 도장 꽝! 찍어버려요. 이 사람은 빼도 박도 못하게 주님의 은혜를 받아야 돼요. 안 받고 싶어도 은혜를 받아야 돼요. 구원 안 받고 싶어도 받아야 되고 천당 안 가고 싶어도 천국을 가야돼요. 그럴 때 이 사람은 자기 육체를 믿습니까, 안 믿습니까. 자기 육체를 안 믿는 거예요.

아침에 나와서 ‘주여, 내 육체가 이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내 육체가 뭘 생각한다? 오늘은 돈 많이 벌어야지…오늘은 잘난 척 해야지, 쭉 나오다가도 주여, 내 육체가 기껏 뭐다? 이겁니다. 나는 이 육체마저 썩어빠진 육체마저 어디에 복종한다? 나는 주님의 새 언약에 복종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입니다. 이게 성도예요.

이 사람들은 그 다음 13절에 나오는 대로 이 사람은 누구만 자랑합니까. 주 안에서 누구만 자랑해요? 예수님의 육신만 자랑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육신의 욕심이 항상 용광로처럼 들끓습니다. 세상사람, 우리 따로 구분할 필요도 없이 똑같이 눈만 뜨면 자기 생계와 생존 이외는 아무것도 생각할 줄 모르는 그런 육신 덩어리입니다. 하지만 웬 은혜인지 주님의 새 언약을 알게 해주시고 우리 대신 우리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피와 살이 찢어지신 것을 저희에게 믿게 했사오니 이제는 이런 육체를 가지고 주님을 증거 하는데에만 사용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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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