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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 강의(08. 9. 26) 2강자유게시판디모데전서

광주 강의(08. 9. 26) 2강

이름 : 서경수(IP:116.37.101.23)

광주 강의(08. 9. 26) 41-2

두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첫 번째 시간 마지막부분에 약간 어려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뭐냐 하면, 교회 왔는데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있다. 제가 문제 내겠습니다. 교인이 20명인데 18명이 신자고 2명이 가짜 신자라고 할 때, 역시 교회지요. 그러면 2명이 신자고 18명이 가짜신자라면 이건 교회입니까, 교회 아닙니까? 이것도 교회죠.

그런데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교회 출석하는 사람 중에 신자가 다수고 가짜는 소수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어요.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첫째시간에 한 것 다시해 보겠습니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란 하나님의 식구에요. 하나님의 식구이면 책임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책임자죠. 하나님이 책임자가 되셔서 식구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 자식들이 되죠. 그래서 하나님의 식구가 되는데,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이 낳은 자식이 아닌 가짜 자식이 들어온다.’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아버지와 참된 자식이 있는데, 자식이 2명밖에 안 되는데, 18명이나 되는 가짜가 여기 들어와도 역시 이것은 교회가 되는 겁니다.

다수가 옳다고 해서 교회 되고, 다수가 가짜라고 해서 교회 아닌 게 아닙니다. 항상 책임자가 아버지께서 책임자가 된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봅시다. 교회가 무엇인가 하면, 교회라는 것은 아버지의 권위, 하나님 말씀의 권위, 예언의 권위입니다. 예언의 권위가 1명이라도 살아 있으면 그게 바로 교회가 되는 겁니다. 예언의 권위를 거부하는 사람이 섞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여기에 말씀이 들어오게 되면 결국 이 사람들은 말씀에 의해서 분리가 일어나요.

‘목사님,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말씀이 살아있는 곳. 이게 교회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말씀이 살아있지 않은 교회가 있나. 교회는 다 말씀이 살아 있지.’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거든요. 그러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8명이 말씀을 안 좋아하고 그냥 교회에서 노는 것이 재미있다. 그런데 2명은 ‘말씀대로 합시다.’ 라고 나왔을 때, 결국은 18명이 누굴 쫓아냅니까? 2명을 추방하게 되어 있죠.

그러면 추방된 2명이 교회고 18명은 가짜가 되는 겁니다. 그 이유가 뭐냐?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제 두 번째 시간 해 봅시다.

그러면 그 말씀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디모데전서 5장 뒷부분을 봅시다. 여기 교회 안에 과부가 있는데 두 종류의 과부가 있어요. 과부라는 말은 표현이 고상한 것은 아니지요? 고상한 말로 하면 ‘미망인’입니다. 사실 미망인이나 과부나 그게 그건데.

어쨌든 교회에 과부가 있는데, 두 종류의 사람을 통해서 한쪽은 하나님의 가족인 사람, 한쪽은 가족이 아닌 사람. 이렇게 나눕니다. 나누는데 바로 말씀으로 나눠요.

5절에 보면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여기에서, 참 과부는 뭐냐?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고 했어요. 그러면 구원받지 못할 과부는 소망이 어디 있습니까? 일낙을 좋아하지요.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것이 아니고 세상적인 쾌락이나 이런데 두는 사람 같으면 이 사람은 교회 다녀도 하나님의 가족이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말하기가 참 조심스러운 것이 뭐냐 하면, 방금 첫째시간에 ‘어떤 나쁜 짓을 해도 구원 받는다.’고 했는데, ‘지금 와서 왜 딴소리 합니까?’ 이렇게 나올 수 있거든요. 사람을 죽여도 하나님의 예언을 믿는 사람은 구원받는다면서요? 맞습니다. 그 말 옳습니다. 그러면 세상 일락을 좋아하는 사람을 왜 성도 아니라고 하느냐?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과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척하는 사람과의 차이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되면 현재 자기의 처지에 대해서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중간 과정이 되고 하나님 배후에 자기 자신이 잘 되는 것에 소망이 있다면 하나님은 수단이고 원래 자기가 기대했던 바를 이룬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자기를 믿는 게 돼요.

이것은 어떻게 들통 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질 때, 다른 말로 하면, 참 과부가 나타날 때 서로 차이가 나면서 들통 납니다. 이렇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가 기대하는 바가 있어요. 이게 수직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참 과부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직적으로가 아니라 수평적인 것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수평적인 것을 기대하고 그것을 채우며 살아가는데 다 채우지 못해 미흡한 것을 하나님께 요청해서 채우려고 하나님을 이용하지요.

이들은 하나님께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기대하는 나 되기’ 즉 A에서 A'로 나아가기 원하는데, “이번 일에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참 고맙겠습니다. 이번 일만 도와주시면 하나님께 헌금 듬뿍 하겠습니다.” 라고 나올 때, 결국 이런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식구가 아니었단 말이지요.

정석훈 목사님 설교(http://blog.daum.net/1188-10)를 보면 사주팔자에 대해서 나와요. 사주팔자를 보는, 점치는 인간들은 죽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어요. 저는 거기에 리플을 달았어요. 점치는 사람뿐만 아니고 점을 보러 가는 사람들도 죽여라. 사주팔자가 뭐냐 하면, 소망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에게 소망이 있어요. 나에게 소망이 있다는 말은, 주님은 우리를 이미 죽은 자로 간주하는데 자기는 안 죽고 훌륭하고 멋진 산 자로 기대를 하고 있으니까 여기에서 아무리 하나님, 예수님 불러도 그것은 하나의 들러리에 지나지 않아요.

이런 자는 진짜 내가 원하는 내가 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하나님이고 예수님이고 간에 발로 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내 포부에 의해서 내가 구원받았다고 자부하는 사람. 이게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어요. 나는 뭐가 되고 싶어. 이 땅에서 잘 되고 죽어서 천당 가고 싶어. 내 포부, 내 소망, 내 희망에 의해서 내가 구원 받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언젠가는 말씀이 주어지게 되면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다시 이야기합니다. 못나도 괜찮아요. 못나도 구원 받습니다. 이건 저의 주장이고, 불신자는 내가 못난 것은 내가 용서가 안 돼.

아까 쉬는 시간에 집사님이 필리핀 간 이야기했지요. 필리핀 원주민들이 정말 가난하잖아요. 그런 사람과 비교하면 집사님은 부자지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면 자신은 ‘나는 못난이.’ 항상 나는 저 재벌보다 못났고, 저 교수보다도 못났고, 나는 훌륭한 아버지도 아니고, 훌륭한 남편도 아니고, 너무 자책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양심이 고와서.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예를 들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너무 못났다는 거예요. 주님의 뜻은 못나도 괜찮다고 하시는데. 그런데 내가 못난 것에 대해 내가 용서가 안 돼요. 그래서 자실하는 사람이 있어요. 자살하는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자기가 기대한 내가 되지 못할 때 자기한테 너무 분해서 내가 나를 처벌하는 거예요.

정신병, 우울증 다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심판을 하는 겁니다. ‘너는 왜 내가 원하는 만큼 못 되는 거야. 더 매를 맞아야 되겠어. 정신 차려야 되겠어.’ 하면서 자책을 하는 거예요. 남들 보기에는 무척 성화되고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 사람의 소망은 엉뚱한 소망이에요.

못나도 구원 받는 것은 하나님께 있는데, 나는 하나님을 이용해서 지금보다 더욱 더 잘난 나가 되고자 하는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A라는 지점에서 내가 원하는 A'로 갔습니다. 만족합니까? 아닙니다. 왜냐하면, 산이 여러 개 있는데 네 번째 산은 세 번째 산에 와야 네 번째 산이 보입니다.

제가 수요일 설교시간에 이런 이야기했습니다. 1,000억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는 500억 재산을 일단 가져야 1,000억 가진 사람들의 부인들은 란제리도 수백만원짜리 사는구나. 알지, 지금 월 수입이 100만원 되는 사람이 1,000억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몰라요. 일단 500억 정도는 손에 쥐어야 ‘1,000억 벌면 저 사람처럼 사는구나.’ 하는 것이 보이지, 100만원 버는 사람이 1,000억 버는 사람의 삶을 이해 못합니다.

이것은 돈 뿐만 아닙니다. 소위 훌륭하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제가 TV에서 봤는데, 훌륭한 며느리가 나왔어요. 벌써 20년 전 이야기입니다. 저는 제 아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아내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TV에 나오는 이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봉양하는데 밑반찬을 1,000가지를 했어요. 그것도 아주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해요. 그런데 제 아내는 밑반찬 3가지를 했어요. 저는 3종류 해도 좋아요. 그런데 1,000지는 네 번째 산이라. 나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에요. 내가 아내에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1,000가지를 바라겠어요.

세 가지만 해도 좋은 아내라고 했는데, 사실은 이것도 욕심이라. 아내가 아프지만 말아다오. 보통 아내가 아프다가 안 아프면 처음에는 감사합니다. 그러나 좀 시간이 지나면 감사가 없어지고, 그 다음에 돈 벌어 오라고 합니다. “나 혼자 버니까 너무 힘들다. 다른 여자들은 다 돈 버는데 너는 뭐하나? 내가 돈 버는 기계가?” 이렇게 나옵니다.

그 전에는 ‘제발 아프지만 말아다오.’ 하다가 건강하니까 돈 벌어오라고 하잖아요. 이처럼 사람의 욕심이란 것이 ‘나는 그런 욕심 없습니다.’ 하지만, 막상 산을 하나 넘고 둘 넘고 셋을 넘으면 새로운 내가 미처 몰랐던 낯선 욕심이 내 속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것은 자기에게 소망을 갖는다는 말은 결국 스스로 파멸의 길, 스스로 행복을 깨는 길입니다.

마음을 낮춰야 되는데 갈수록 높아져요. 세상에 어느 인간이 “하나님 아버지, 지금부터 가난하게 하옵소서.”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 지금보다 더 낫게, 더 훌륭하게 되도록 기도 할 것 아닙니까? 이런 기도가 모여 이미 소망이 하나님에게서의 벗어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가짜 과부는 무엇이 소망인가 하면, 11절에 나옵니다.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젊은 과부가 몇 살이냐 하면, 9절에 보면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 60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로서”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50살도 젊은 과부에 속하지요. 젊은 과부는 결혼 정보회사에 등록하지 말라는 말이거든요.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를 배반한다.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왜 거절하느냐? 이들은 틈만 나면 새로 시집가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다시 정욕을 따라 세상 쪽으로 갈 경향이 많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참 과부는 뭡니까? 5절에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그러니까 은장도로 허벅지를 찌르면서 “참아야 하느니라.” 이런 사람은 참 과부고, 큰 교회 가서 어디 돈 많은 홀아비 없나 싶어서 설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나오겠지요?

디모데전서 5장의 전체 내용은, 그 당시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배반한다는 말은 참 믿음이 없었고, 하나님이 은사로 주신 믿음이 아니고 결국 무슨 노림수를 가지고 교회에 오는 그런 가짜 교인들이 숱하게 많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도에 의해 말씀이 주어지면 발칵 화를 내면서 “남편 죽은 것도 억울한데 그러면 만날 ‘참아야 하느니라’ 이런 식으로 살란 말인가? 그러려면 내가 교회 미쳤다가 다니나?” 하고 삐칠 수가 있잖아요.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은 뭐냐 하면, “삐져라” 이 말입니다.

“삐져라”는 것은, 아무리 믿고 싶어도 결국 말씀이 주어지게 되면 자신의 본색이 들통 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어떤 규범을 정한 것이 아니고, 믿음 없는 사람은 결국 그 본색이 드러나서 교회에 관심 있는 척하다가 세상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누가 책임진다? 하나님이 책임진다. 걱정하지 말고 너는 말씀만 전하면 다같이 그리스도를 믿는 것 같지만, 일이 닥치고 이런 저런 상황이 오면 결국 떨어져 나갈 사람은 다 떨어져 나간다는 말입니다.

결국 말씀과 사건과의 만남에서 참과 거짓이 구분됩니다. 이 말씀을 보고 “나는 예수도 믿는다. 예수 믿는 것으로 모자라서 이제는 (나이 60되어서 과부 되었는데 이제는)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지.” 라고 해서 구원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말씀이 주어지게 되면 “아하, 내가 교회 다니면서 엉뚱한 발상을 했구나. 예수 믿는다고 했지만 그것보다는 ‘나도 새 시집가서 뒤늦게 호강해 볼까?’ 하는 생각이 있었구나.” 라고, 말씀의 권위 앞에서 다시 자기 자신의 소망을 지상에서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돌릴 때 그게 바로 참 신자입니다.

내 남편이 죽었다는 그 사건이 뭘 보여주기 위해서? 내가 정말 하나님의 식구인가, 아닌가를 드러내는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남편이 죽은 것이 사건 아닙니까. 내가 일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다. 가짜는 30년, 40년 믿었다고 해도 어떤 사건이 터지면 결국은 자기 본색, 자기 쪽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거예요.

진짜 신자는 이런 말씀이 주어지면 “아, 그래. 내가 착각했구나. 내가 잘 믿는 줄 알았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내가 죽을 죄인이구나.” 다시 깨닫고, 남편 죽었다는 사건이 남들보다 재수 없는 것이 아니고 나로 하여금 참 하나님의 식구인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이런 일이 벌어졌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13절 이하를 보세요.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로 짐 지지 말게 하라.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니라”

참 과부는 교회가 관심을 가져주고, 그 외 어려운 사람이 있거든 교회에 짐 지우지 말고 가족이나 친척들이 짐을 지고, 남편을 죽게 한 사건 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인 것을 교회가 하나님의 식구로서 보여줘야 될 책임이 있고, 이것이 바로 말씀의 권위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우리 화평교회는 그렇게 못합니다. 다들 바빠서 그렇게 못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화평교회 교인들의 관심사가 자기 몸 편한 것에 있었지 실제는 하나님의 식구가 아님이 들통 나는 거지요.

그 말씀 들을 때 “아하, 우리가 소홀이 한 것이 있었구나. 우리가 놓친 게 있었구나. 우리가 도와야 될 사람을 제대로 안 도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교회를 이용해서 자기가 도와야 할 사람을 교회에 짐 지우는 이런 것도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식구에게만 주어지는 은총이란 말입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태가 발생하고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인간은 본색을 드러내는데, 그 본색을 통해서 “아이고, 내고 뭔가 잘못 생각했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소망을 뒀구나.” 하고 깨닫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에 권위를 두는 사람은 진짜 신자고, “어쩌라고? 나는 내 할 도리 다했다. 이만큼 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뭘 더 하라고? 그러면 교회 못 다니지.” 라고 자기 본심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사태를 잘 일으키신 거예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식구를 책임지는데, 방법이 뭐냐 하면, 말씀과 돌발적인 사건을 주십니다. 우리는 말씀을 배울 때에 “목사님 말씀 옳습니다.” 라고 하지만, 막상 자기 집안에 무슨 사태가 발생하면 갑자기 원망을 누구한테 합니까? “하나님, 책임지세요. 내가 당신한테 얼마나 많은 것을 했는데 당신은 나에게 뭘 해주셨어요?” 자기 본색을 드러내요.

본색은 누구나 다 드러냅니다. 화 날 때 내더라도 “아하, 디모데전서를 보니까 잘못이 내게 있구나. 나도 몰랐던 죄가 내게 있었구나.” 라고 깨닫는 사람은 다시 소망을, ‘나 같은 죄인 구원하신 하나님’께 두지만, 끝까지 원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바친 돈이 얼만데? 내가 믿으려고 애쓴 노력이 얼만데? 당신은 기껏 하는 짓이 내 남편 죽이나. 도대체 당신이 뭐야? 신이라면 똑바로 해. 당신이 무슨 사랑의 하나님이야?” 라고 대들 수밖에 없는 사태가 왔을 때, 인간의 힘으로는 누구나 하나님께 원망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예언의 은사, 선물을 받은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인간의 힘을 능가해서 “아하, 내가 마귀노릇 했구나. 주님께서 십자가 피로 구원했는데 내가 마귀 짓을 했구나.” 하고 자신의 주재파악을 하고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란 말이지요.

말씀이 말씀대로 이뤄지기 위해서 이런 사태가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진짜 하나님의 식구 같으면 하나님이 책임지고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방향으로 인도하십니다. 이건 우리가 염려할 사항이 아니에요.

사람을 100명 죽였다. 죽여도 소망을 하나님께 두게 합니다. 과부가 되어 정욕으로 말미암아 새 시집가더라도 “내가 젊을 때 이것 때문에 교회를 이용했구나.” 라고 깨닫게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시집을 가도 결국은 소망을 하나님께 두는 일이 벌어집니다. 지고 난 뒤에 나중에 간증하면서 “젊은 여자분들, 남자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나는 두 번 시집갔다가 두 번 다 혼 났습니다.” 이런 식으로 간증할 수도 있잖아요. “소망을 하나님께 둬야 합니다.” 본인 입으로 그런 말할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 식구를 사용을 하되 결국 구원은 인간의 행함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예언대로, 약속대로 택한 백성을 말씀을 주고, 사태를 주어서 기어이 소망을 하나님께 두게 하시는 겁니다. 이게 바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감히 하나님의 뜻을 알겠습니까? 그냥 살 뿐입니다. 그냥 닥치는 대로 살고, 몸의 욕망대로 그냥 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된 것은 다 하나님의 뜻이오니 이 뜻을 우리가 무시하지 않는 그런 교회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2008. 10. 10. 09:04 녹취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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