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7:31-37 (열 리 라)
막 7:31-37 (열 리 라)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마가복음 7장 31-37절
제목 : 열 리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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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8-10-05 13:39
열리라
2008년 10월 5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7:31-37
(막 7: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막 7:32)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막 7: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막 7: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막 7: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막 7:36) 『예수께서 저희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계하실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하니』
(막 7: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가로되 그가 다 잘 하였도다 귀머거리도 듣게 하고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사람들이란 예수님보다 자기 자신이 우선입니다. 이 점을 예수님께서 너무나도 잘 아시기에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고서는 다음과 같이 당부하십니다.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뭐든지 자기 위주이기에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마저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게 마련입니다.
즉 “예수님이라는 분이 오셔서 벙어리를 낫게 했다”고 소문낼 것이 뻔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교회에서, “예수님 덕분에 나 천국가게 되었다”라든지 혹은 “예수님 때문에 우리 교회가 부흥되었다”든지, 혹은 “예수님 때문에 내가 병이 낫고 사업이 잘된다”라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런 잘못된 예수님의 상을 경계하셨기에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야기를 해봤자 진정한 예수님의 본 취지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의 자신들의 기대하는 것과 예수님의 일과 연결 시킬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뜻은, 인간이 천국가는 것이라든지 병 낫는 것이라든지, 복받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찬송가 가사에 보면, “주님의 형상 본받아 날 받아주소서”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즉 그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형상으로 달라지지 아니하면 하늘 나라에게 안 받아줍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몸은 오직 한 몸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뿐입니다. 다른 몸은 못 들어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몸 유지하고 간주하는데 전력을 다 쏟습니다. 즉 자신의 몸을 포기할 의사도 없이 천국이라는 곳에 자기 몸을 그대로 집어넣으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인은 없고 모두들 도 닦는 사람들만 교회에 우굴거립니다. 도를 닦는 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 자신의 생활 태도와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뀌어도 역시 그 몸일 뿐입니다. 물론 천국에 넣어주지 않을 몸입니다.
사람이 몸을 갖고 있으면 병원을 찾게 되는데 결코 병원 좋게하라고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 좋게하라고 찾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기껏 인간의 몸이나 좋게 하려고 예수님이 오셨다면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처럼 벙어리를 낫게 하시고는 그냥 하늘 나라로 올라가면 그만입니다.
산상설교나 하시고 물 위에나 걸어시면서 그것으로 자신의 할 일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적이나 말씀 속에서는 결코 “다 이루었다”는 선언을 할 수 없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고백은 오직 십자가 위에서 터져나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하실 일이, 자기 백성에서 ‘죄에서 구원’을 시도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애쓰고 노력하는 모든 것은 죄에서 구원이 아니라 자기 몸으로부터 구원입니다. 어떻게하든지 몸이 주는 피곤함과 아픔과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자기 몸의 가치를 빛낼 수 있는가를 염두에 두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에서부터 시작해서 몸을 지키는 식으로 살아오기에 자기 몸 빼놓고서는 모두가 타인입니다.
마치 하늘의 별이 멀리 있는 하나의 대상인 것처럼 예수님조차도, 하나님조차도 하나의 대상으로 상대하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죄악에서부터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건져내시려고 하는 겁니다. 그것은 병 고침의 기적에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만 “다 이루었다”는 외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서는 인간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그 귀하다는 몸뚱아리가 죄 덩어리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홀로 사는 존재입니다. 정을 원하고 사랑을 원하지만 모두다 자신의 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발로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몸 가지고서는 천국에서 받아주지 않습니다. 다른 몸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모두 십자가 지시기 전에 십자가가 담고 있는 의미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벙어리를 대중들로부터 따로 떨어지고 하시고 자신의 신체를 벙어리 신체 속으로 집어넣습니다. 이것은 흔히 타인의 신체가 벙어리 자신의 신체 속으로 침투하고 침범하는 것이 됩니다. 이로서 벙어리의 신체는 이제 벙어리 본인만의 신체로 남아 있지를 않게 됩니다. 예수님의 신체의 일부가 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벙어리는 자신의 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몸 위주 같다면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나 모두 영원히 타인으로만 머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명하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위한 ‘에바다’, “열린다”는 보여줄 일을 예수님은 벙어리를 가지고 벌리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일의 모든 완성은 오직 십자가 위에서만 마감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십자가 속에 열어 제쳐보면 그 안에 벙어리가 들어있고, 문둥병자와 죄인들도 들어있게 됩니다. 그들은 모두 죄인들이며 자기 몸에만 최종 가치를 두고 그것을 위하여 신을 하나의 타인으로 상대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을 껴안고 십자가의 죽음 속에서 자신의 몸에 담아 파괴시켜 버린다면 이는 곧 성도로 하여금 두 번 다시 자기 몸에 모든 것을 바치지 말아야 함을 알려주시는 것이 됩니다. “에바다”라는 음성은 곧 “열리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은 천지를 창조하시던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언어는 곧 존재가 되어 실제로 있게 되는 능력을 담고 있습니다.
처음의 인간은 홀로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가치를 챙기라고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자존하고 자립하겠다는 것은 이미 죄가 인간의 마음의 모든 것을 닫아버린 그 이후의 사태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그 죄 속에 갇힌 자기 백성만을 열어놓으시려는 겁니다.
인간의 힘으로 안됩니다. 인간은 자기 몸을 죽어도 못 놓아주는 습성으로 뭉쳐져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자기 몸에 대한 주도권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예수님은 이 죄에서 자기 백성을 건져주시려고 하십니다. 같은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기 파괴가 곧 복음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의 가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