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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마1:18ㅡ21 원제: 성령으로 나심 . 부제: 성령의 나심으로 나타난 언약의 본질과 그 성취자유게시판마태복음

마1:18ㅡ21 원제: 성령으로 나심 . 부제: 성령의 나심으로 나타난 언약의 본질과 그 성취

이름 : 채한욱(IP:122.42.42.52)

성령은 언약의 말슴이다. 고로 설교로 선택한 본문도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 즉 언약으로 시작 하였으면 언약으로 진행하고 언약으로 결론 짓는다. 그중심은 예수그리스도이다. 전자의 열 네 대 라는 글 에서는 3번 중첩 되어지는 열 네 대의 의미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에서 나타난 언약의 약속과 성취과 아브라함과 다윗의 연대(14대) 안에서 어떻게 성취 되었는가를 짧게 살펴 보았다. 이제 본문을 통해서는 부재목 그대로 예수그리스도의 성령의 나심으로 나타난 언약의 본질과 성취를 살펴 보고자 한다. 왜 그런고하면 예수그리스도는 언약의 본질에 대해서는 실존이요 성취의 확증 으로써는 실상 이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 하니라'' 로 시작 되는 본문을 통해서는 인간의 보통출생법 나신 분 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 되신 분의 로써의 예수님, 그러므로 죄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자기 백성을 자기 죄에서 구원 할자 이 분이 예수그리스도 이시다 라는 통상적인 구속사적인 개념 보다는 1장1절에 표현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라고 표현된 하나님의 언약의 본질과 성취를 이제 예수그리스도의 나심으로 시작 되어지는 말씀 속에서 그의미를 살펴 볼수 있어야 할것이다. 성경은 언약의 말씀 이라고 하였다 본문의 짧은 구절에서도 언약을 구성하는 요소 들이 있는데 먼저 예수그리스도의 성령의로 잉태 하심이라 함은 이는 언약의 본질을(생명) 이루는 개념이고 아들 이라는 개념을 통해서는 언약의 영속성을, 저의 백성들의 죄로 표현된 죄의 개념을 통해서는 언약의 지향점을, 마지막으로 구원의 개념을 통해서는 언약의 본질인 생명이 어떻게 죄와 사망에서 구원 즉 죄를 정복 하고 다스리는 언약의 성취성 등을 예수그리스도의 나심을 통해서 볼수있다

생명의 잉태는 언약의 본질임과 동시에 중심이 되는 개념이다 언약을 말하면서 이 생명의 개념을 빠뜨린다면 앙코 없는 찐방이다 언약은 생명으로 시잦해서 생명으로 끝난다. 그러므로 언약의 시작은 무엇으로 시작 해야하는가? 반드시 생명으로 시작 해야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라고 본문이 시작되는 이유도 여기있다. 왜그런가 예수님은 언약의 실재이기 때문에 언약의 시작이 그의 나심의로(잉태) 시작 되는것이 당연 하지 않겠는가 언약이 생명으로 시작 되어야 할 당위성은 첫 창조의 창조언약이 생명의 언약인것을 우리가 익히 아는바와 같다 첫 창조도 언약을 생명으로 시작하고 새 창조의 언약도 생명으로(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시작된다.

이제 언약의 성취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잉태)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언약은 동일하게 자기 백성을 언약백성으로 다시 태어 나게 하는데(중생) 이는 언약의 시작을 언약의 실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으로 시작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나심과 같이 성도의 새 생명남을(중생) 통해서 언약을 이루어 나가신다. 그러므로 성도의 중생은 하나님의 언약의 시작과 함께 묵시적 이루심의 의미를 보여 주기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언약의 본질이 생명의 시작(중생) 이기때문이다. 이중생을 통해서 언약의 시작과 끝을 볼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언약의 본질인 중생의 개념이 애매모호 하다. 이는 요한복음에서 중생의 사건을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바람의 역사로 말하고 있고 또 에수님의 성령의 잉태 되심의 신비와함께 불가지론 으로 치부 되어온 연유일 것이지만 그러나 중생은 생명 본질의 근원성 보다는 그 역동성을(회개) 통하여 중생의 개념을 이헤 할수 있어아 정확 하게 파악 할 수있다 . 이는 하나님을 그 근원성을 통해서는 알수없고 그의 활동성과 역동성(예ㅡ아버지가 내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14:10) 을 통해서 알수있고 이것은 열매를 보고 그나무를 알 수있는것과 같은 원리이다. 중생의 사역은 성령이 생명을 잉태케 하는 사역이다, 언약을 예수님의 성령령의 잉태케 하심으로 이루어 나가시듯 이제 자기 백성을 동일하게 성령으로 중생케 하심으로 언약을 성취해 나가신다.

이중생으로 인한 생명의 창조는 언약의 시작과함께 완성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 이기 때문에 이중생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 하지 아니하면 언약을 시작 할수도 없고 성취를 바라 볼 수도 없게한다.(본질적인 면에서 중생은 언약의 시작이고 완성이다.) 이러한 언약의 종국적인 완성을 보여주는 중생의 개념이 이러한 연유에서 애매모호 할것 같으면 어떻게 언약의 본질을 이해하고 언약의 실재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할수 있겠는가 중생은 하나님이 언약의 주 가 되심을 창조의 세계를 통해서 보여주는 계시의 확증이며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나심을 예수님의 실존을 통해서 자증함과 같은 변개치 못할 실존적 실체와 같은 증거이며 보이지않는 성령이 성도안에 내주하심으로 경험케 하는 내재적 인식의 원천과도 같다.

이러한 사실들을 재삼재론 하는 이유는 그만큼 중생의 개념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경이 예수님의 언약사역을 그의 출생으로 부터 시작하는 이유 이지않겠는가 이러함에도 중생은 성령의 보이지 않는 사역이니 불가지론이다, 조직신학의 구원의 서정에서 한자리 차지하는 케케묵은신학 이론으로 치부하여 꿔다논 보리자루와 같이 여기지 아니했는가 그로인한 폐해는 언약사상의 모호 함과함께 성도의 혼돈의 산앙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이란 본문의 출발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언약을 예수님의 출생을 통해서 시작하시고 성취하실것을 계시하는 첫 창조언약의 선언이며 약속이다. 이제 첫 창조를 통해서 언약하신 하나님이 창조완성을 통해서 이루시고 성취하신것 같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잉태케 하심을 통해서 동일하게 이루시고 성취 하실것을 확증 하신 주께서 예수 그리스도의33년의 삶과 사역을 통해서 온전히 이루 셨고 이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기 백성들에게 동일하게 이루셨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통해서 언약의 어떠함을 총 체적으로 보여주는 서언과 함께 결론적인 말씀이다. 즉 첫 창조언약을 통해서 생명의 언약을 약속하신 주께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나심을 통해서 이 사실을 확언 하는 것이다,

이근호(IP:117.♡.143.142)

08-09-29 07:48

언약의 본질이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죽을 인간을 죽이는 것을 통해서만 비로소 생명의 능력이 발휘되기 때문입니다. 귀하처럼 주장해버리면 성경이(혹은 언약)이 마치 사라들에게 생명을 주려고 처음부터 시도한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애초부터(창세기 3장) 아담을 죽게 하신 하나님의 취지가 잘못된 조치가 되어버립니다. 생명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그토록 소원이라면 애초부터 사람들을 죽게 한 선악과는 에덴동산에 심지 말아야 할지 않을까요? 귀하의 주장 같으면 그냥 생명나무만 달랑 있어 계속 영원히 살게 살게 하시든지 아니면, 비록 선악과 나무를 따먹었으도 생명나무도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것이 일관성 있는 하나님의 조치가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귀하의 '생명 주장'은 사람들이 평소에 마음 깊숙히 원하고 있는 영원불멸에 열망을 성경이나 언약에 사용하여 노골화시킨 느낌이 드는군요. 복음적이기 보다는 종교적이다는 말입니다.

우인숙(IP:211.♡.40.118)

08-09-29 09:31

요번주일 오 목사 설교에 나온 해남 대흥사의 천불전의 모습이 떠오르는 글이네요 ..곡성강의도 생각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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