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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출 5: 1-2 (여호와가 누구관대)우리교회출애굽기

Re..출 5: 1-2 (여호와가 누구관대)

이름 : 이근호(IP:)

여호와가 누구관대?

2003년 10월 19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5:1-2

5: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가서 바로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5:2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우리 자신이 고생 하는 것을 기정 사실화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 몸이 정상이 아니끼 때문입니다. 정상이 아닌 자가 정상인 자가 누리는 모든 것을 다 얻고자 하는 것은 탐욕입니다.

이미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그 상황 안에서만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참으로 힘든 인생살이입니다. 그러면 성도에게는 어떠합니까? 성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힘듭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소망의 나라가 이미 장만되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로마서 5:3-4에 봅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줄 앎이로다"

왜 하나님께서 성도에게도 동일한 고생을 시키시는 것입니까? 환난이나 고생이 없이는 감추어진 소망이 성도 안에서 현실화되지 않기 때문이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 보기에 하나님의 뜻도 잘 알고 하나님으로부터 막중한 임무를 띠고 세상에 나서니 참으로 신날 것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께서 어떤 자들 만나게 주느냐 하면, "여호와가 누군데?"라는 자들과 만나게 됩니다. 전혀 모세 말이 먹힐 수가 없는 자들을 만나게 합니다. 이럴 때 성도는 좌절을 느낍니다.

자... 여기서부터 중요한 문제가 나타납니다. 성도는 자신을 좌절케 하는 그 불신자의 말을 처음에도 아주 강하게 부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경험을 자주하게 되면, 비로소 자신이 서있는 현 위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바로 이런 전환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부로 성도로 하여금 불신 세계 속에 집어넣으시는 겁니다. 즉 철없이 하나님의 말씀만 대할 때는, 누가 뭐래도 자신은 하나님이 말씀만을 순종하는 천하의 경건한 자인 줄 알고 자신의 토대는 누가 뭐래도 하나님과 한편으로 같이 서 있는 것인줄 알았는데 막상 세상에서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사명을 감당하면서 무수한 좌절과 실망과 욕설과 비웃음에 직면하다보면, 은근히 부화가 나는 겁니다.

즉 "하나님이여, 왜 저를 좌절케 합니까? 왜 제 말이 남들에게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까? 왜 제 전도에 보람을 주지 않으시려는 겁니까?" 그러니까 이런 반항이, 결코 성도를 멸망케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천국 가는 노정에서 당연히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희희낙락하는 식으로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도 그러하다면, 예수님도 그러하다면 오늘날 우리들이야 말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면 어떤 사태가 벌어집니까? 바로 오늘 본문에서 바로왕이 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바로왕의 답변이 참으로 솔직합니다. 너무 솔직해서 신자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가짜 신자노릇 하는 사람의 근원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답변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왕은 말하기를, '간다', '못간다'가 아니라 대뜸하는 말이, "여호와가 누군가 내가 그 신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는 것입니다.

물론 바로왕의 대꾸는 오늘날 모든 불신자들이 신자들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바로 자칭 신자라고 우기고, 평생을 버텨왔던 사람에게는 심금을 울리는 정곡을 찌른 발언입니다. 사람은 누구와 대화할 때는 일단 상대방이 속셈을 알기 위해서라도 잠시 그 사람 입장이 되어보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소위 신자라고 자처했던 본인이 평생 자신을 속여왔다는 솔직한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겁니다. "맞아 맞아, 나는 근 40년간 착각의 늪에 빠져 있었어. 그동안 자신도 모르고 매주 교회라는데를 나가서 스스로 마약을 맞고 싶어했어. 그래 그렇다. 여호와가 누군데? 여호와라는 단어 자체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내가 여호와라는 신에게 무슨 혜택을 받은 적이 있는가 말이다. 그래 그렇다. 이제 정신 차려야 한다. 여호와라는 신을 안 믿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을! 내가 스스로 내 마음에 자물쇠를 채운거야. 이 바보, 이 바보, 한국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불신자의 말이 진리였어.

역시 다수의 말이 합리적이고 진리에 가까운 법이야. 그래 여호와라는 무거운 짐, 기독교라는 무거운 짐, 유령처럼 달라붙은 예수라는 가상 인물의 짐에서 이제는 벗어나는 것야 벗어나 보니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것을 말이다. 그래 나는 할 수 없어. 아예 처음부터 모르는 거라고 여기자. 이제 큰 소리칠 수 있어.

여호와가 누구야! 있으면 나와보라고! 이 가짜 허상아! 그 덕분은 지난 세월 동안 나쁜 짓을 줄일 수 있었지만 하지만 계속해서 죄어오는 여호와의 족쇄의 무게보다는 덜 무거웠을 거야!" 라고 말입니다.

아마 어떤 사람이 너무 좋아서 사흘 밤낮을 엉엉울기도 할 것입니다. 마치 신자 처음 될 때 예수님을 몰랐던 죄 때문에 사흘 밤낮으로 엉엉 우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입장에 서 봐야합니다.

그래도 예수이면, 예수님 영을 받은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유도 없이, 조건도 없이 예수님 뿐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바로, 자칭 신자라고 여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이 불신할 수 있는 모든 경우와 그 가장 깊은 한계성까지 다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 신자라는 것이 판명되는 상황, 그런 회의의 깊은 자리까지 이해될 때뿐입니다. 제가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요한복음 11:49-5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즉 예수님의 말이 옳고 그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라는 그 존재로 인하여 로마의 밉상을 받게 되면 국가 전체가 핍박을 받게 되니, 예수를 제거하는 것이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하는 당연한 조치라는 겁니다. 바로 이러한 집권자의 마음과 심정을 우리가 확실하게 이해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다시금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라고 하는 것이 성경에서 요구하시는 바입니다. 바로왕은 현실 속에 있는 자입니다. 결코 비현실을 꿈꾸는 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소위 성도라는 자도 현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다니엘서를 보면, 강력한 현실이 자꾸만 성도를 덮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정한 기간 내에 바벨론 신 이외에 그 어떤 신에게도 기도못한다는 법령을 정했어도 다니엘은 보란 듯이 동쪽 창문을 열고 기도하는 것이 나옵니다. 금신상에게 절하는 자는 용광로 불에 들어간다는 것을 국가법으로 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금신상에 절하는 다니엘의 세친구를 보게 됩니다.

이처럼 살아있는 소망은 환란 가운데 더욱 실제적 힘으로 작용케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신앙의 원천을 불신자를 통해서 의심하고 공감하는 것 가운데 이 실제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활약하고 계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왕 앞에 보내었던가요? 그것은 하나님의 일은 항상 없는데서 있게 하는 방식으로 움직이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즉 이 애굽 통치라는 현실 속에 천국다움이라는 것이 없었는데 그 가운데 '국가 이스라엘'을 창설하므로서 새로 생겨버린 천국으로 인해 이 기존의 현실이 지옥인 것을 비로소 들통나게 하시려는 겁니다.

그런데 천국과 지옥을 가름하는 기준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가 누구관데"가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겁니다. 이 기준을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모세는 바로왕 앞에 가서 하나님의 계획을 일방적으로 전해야 했습니다.

히브리 민족, 즉 야곱의 후손이 되는 히브리민족은 그 출현부터가 타민족과는 차별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이사야 45:15에 보면,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구원자 하나님은 다른 민족에게는 나타내시지 않고 계속 숨겨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만큼은 그 하나님은 유일하게 나타내시는 겁니다. 그것은 모든 인류들이 다 죄로 인해 하늘 나라와 단절된 상태에 놓여 있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에 담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특별히 사전에 계획 하에 인간의 핏줄과 무관한 민족을 이 지구에 심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없는데서 있게 된 민족이요, 죽은데서 살아난 민족, 즉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 고스란이 담겨 있고 보이게 되는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이제 과연 계속 바로왕의 입장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할지 이제는 모세와 더불어 고난받아야 할지는 여러분들의 몫으로 던져졌습니다.

즉 새로 생긴 천국의 사람으로 살면서 그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해야 할지 아니면 그 이스라엘 나라마저 비현실적으로 부정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해 보세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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