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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등대교회 9월 28일 갈1장4-10절 복음이 무엇인가강의갈라디아서

등대교회 9월 28일 갈1장4-10절 복음이 무엇인가

이름 : 우리교회(IP:124.59.86.24)

등대교회 갈1장 4-10절 복음 vs 다른복음

우리교회(IP:124.♡.86.24)

08-09-28 22:36

우리교회(IP:220.♡.176.150)

08-10-05 13:08

등대교회080928a갈1장4-10복음이무엇인가a

등대교회080928a 갈1장4-10 [복음이 무엇인가a]
(강의:이근호 목사)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이렇게 우리 인간에게 알려지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성경을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방민족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그 내막과 하시는 일과 마지막 마무리까지 저희들이 알지 못했을 것인데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장차 일을 하시고 지난 일을 어떻게 했는지를 소상하게 이렇게 알려주셔서 저희들이 이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진면목을 알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바라기는 같이 모이는 주님의 백성들이 그전보다 더 하나님을 분명히 알고 안 만큼 하나님을 더욱더 섬겨서 천국 가서 주님을 영원히 섬길 때 그전부터라도 하나님을 원 없이 섬기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피조물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집회의 시종을 하나님께서 주장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오늘 제가 마음속으로 정했던 본문은 갈라디아서 1장 4절에서 1장 10절까지입니다. 신약성경 302페이지. 주제는 [복음이 무엇이냐?]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1장 4절에서 10절까지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아멘.

이 본문을 설명을 해서 ‘복음이 무엇이냐’를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용어부터 제가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용어니까 제가 지어낸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복음’ 있다는 겁니다. 다른 복음이 있다는 말은, 다른 복음이 여기에 등장했으니까 다른 복음 말고 ‘진짜 복음’ 따로 있지요. ‘너희들이 다른 복음을 좇아가니까 내가 참 속상하다. 그런 자에게 저주가 있다. 진짜 내가 전한 복음을 알아들어야지’라고 했거든요.

그러면 여기에 이 위치에 있는 사람은 어떤 내용과 어떤 내용을 다같이 알아야 되느냐 하면, 다른 복음도 알아야 되고 그리고 진짜 복음도 알아야 돼요. 그리고 이 둘 사이가 얼마나 극대 극으로 확연하게 완전히 이 두 개가 완전히 사도가 다르다고 이야기했으니까 우리도 같이 아, 이래서 다르고, 이렇게 해서 두 개가 다르구나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지요.

만약에 이 둘 사이의 내용의 차이를 모르게 되면, 갈라디아서 1장 4절에서 10절에 읽어보면 두 번씩이나 나오는 게 결과가 나오지요. 뭐냐 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래 돼있지요. 이것도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제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렇게 돼있지요.

그럼 여러분들이 성경책을 덮고, 교회도 이젠 안 나왔다고 치고, 그냥 이 유원지에서 어떤 사람을 만난다든지 해변가에서 거닐던 누굴 만나든지 직장에서 누굴 이야기할 때 성경도 모르도 등대교회도 안 다니고 그냥 보통 평범하게 하루 일상 직장 다니고 애 키우고 할 때 누가 여러분을 향하여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을 때 일단 기분 나쁘죠.

기분 나쁜 것은 기분 나쁜 것이고, 그 ‘저주를 받을지어다’ 할 때 그 저주 안에 담겨있는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를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누가 여러분들이 길가다가 그런 경찰 없습니다만 경찰이 ‘저주를 받을지어다’ 또 약간 정신이 이상한 미친 할아버지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할 때 ‘뭘 받으라고요?’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 저주가 뭔데요?’ 그걸 되물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죠?

아하, 저주? 내가 아는 저주는 이런이런 내용이, 이런 일이 생기면 저주다. 하는 그게 이미 익히 알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등대교회 처음 뵈면서 우선 궁금한 게 누가 여러분한테 ‘저주를 받으라’ 할 때 어떤 내용이 나한테 온다는 이야기일까요?

뒤 쪽에 머리가 꽁지머리. 우리 노회에 그런 목사님 계시는데 꽁지머리 한.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는 것이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닌데 그러면 기분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기분 나쁜 이야기인데 어떤 경우가 기분 나쁜 이야기냐? 그 사람이 나한테 ‘이 사람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 꽁지머리야.’ 도대체 내 미래가 어떤 식으로 망가진다는 이야기인지 도대체 뭐가 저주냐 말이죠. 항목들을 손으로 지어내 보는 거예요.

자녀분이 계십니까? 자녀가 졸지에 아프다든지, 성적이 떨어진다든지, 사업을 하시는 분은 사업이 부도가 난다든지, 아내가 아프다든지, 집에 불나든지. 하여튼 저주가 될 수 있는 것, 모든 걸 몽땅 모아봅시다. ‘에이, 저주 받으라’ 할 때 그걸 몽땅 모을 때 우리가 그걸 ‘저주가 무서운 거구나. 야, 저주 받으면 안 되겠구나’라고 그렇게 생각해서 ‘‘그럼, 당신 나한테 저주 받으라 하지 말고, 말 좋게 해서 복 받으세요’라고 하면 참 좋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죠.

방금 우리가 생각했던 저주거리 있잖아요. 그걸 주워 모을 때 오늘 본문 10절에 뭐냐 하면, “사람을 좋게 하는” 기준에서 나오는 저주가 돼요. 쉽게 말해서 이건 뭐냐? 가짜 저주가 돼요.

우리가 오늘 이야기할 게 뭐냐? 다른 복음과 복음을 설명하는데 다른 복음과 진짜 복음과 설명을 해도 50분 강의하고 10분 쉬고, 또 50분 강의하고 끝날 건데 이 강의를 다 들었다고 칩시다. 미리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다 들었다고 쳤을 때에 ‘마지막 강의 느낌이 어땠습니까?’ 하면 사람들이 물을 때 ‘방금 강의 들으니까 느낌이 별로 안 좋으네요’ 이렇게 했으면 저는 강의 대성공한 거예요. 왜냐하면 실제로 그 말이니까요.

종이 뭐라고 합니까? 약간 복잡하게 이야기해버렸는데. 여기 사도 바울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좋게 하면 뭐가 아니다? 그리스도 종이 아니라는 거예요. ‘오늘 강의 기쁘지요?’ ‘아, 기쁜데요.’ 답변 이렇게 해야 돼요. ‘나한테는 별로 기분 안 좋은데 아마 당신 강의한 것, 하나님 들었으면 되게 좋아할 걸.’ 그렇게 돼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돼야 그게 진짜 그리스도 종이고, 그 그리스도 종에 동의를 해줘야 그 사람은 제대로 진짜 복음과 다른 복음을 사도 바울처럼 알아먹는 사람 편에 소속돼있다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아, 벌써 강의 초반부터 복잡해지잖아요. 되게 복잡하다고요. ‘아이고, 그냥 복잡하게 하지 말고 우리 기분 좋은 대로 하세요’라고 하고 복 받으세요. 복 압니까? 여러분 성적 올라가고, 저주는 성적 내려가고. 사업이 못 되는 건 저주 받은 것이고, 복은 반대로 하면 되잖아요. 사업이 잘 되고 복 받고. ‘그냥 그런 식으로 갑시다’ 하면 마지막 결론이 뭐냐? 역시 사람이 좋게 했기 때문에 사람이 좋게 한 쪽은 어느 쪽이다? 진짜 복음이 아니고 어느 쪽입니까? 실컷 저주 받을 다른 복음을 전한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아까 기도할 때 ‘성경을 몰랐으면 성경이 없었더라면 하나님의 뜻을 몰랐습니다’ 제가 이렇게 기도했는데 저는 신경 써서 기도한 거예요. 성경을 몰랐더라면 갈라디아서 1장을 몰랐더라면 하나님을 몰랐는데 갈라디아서 1장을 펼쳤다. 그리고 목사님이 강의했다. 비로소 알았던 하나님이라면 여러분들은 땡 잡은 거예요.

성경을 덮었고, 교회도 안 다니면서 아는 축복과 저주는 이게 뒤바뀐 겁니다. 반대입니다. 그거는 내가 좋아하고 내가 평소에 교회 왔으면 이런 복이라고 받아야지 그런 게 있다면, 그거는 성경을 덮었을 때 나올 가짜 복음이고, 그게 바로 저주 받을 길을 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펼치면 성경을 봐야 되는데 선입감이 있잖아요. 성경 보기 전에 ‘압니다. 알아요. 내 다 압니다. 예수 믿고 복 받는 것 내 알아요.’ 그게 가짜거든요. ‘그럼 당신 말대로라면 예수 믿고 복 받지 말란 말입니까?’ 예. 예수 믿고 복 안 받아야 그게 복이에요. 왜냐하면 내가 원하고 있는 복하고, 하나님이 복음을 통해서 주시는 복하고 서로 반대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 또 그러면 듣는 사람 기분 나쁘겠지만 성경에 이게 있어요. “너희들이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좁을 길로 가라” 왜냐하면 넓을 길로 가면 멸망으로 가는 길인데 특징이 많은 사람들이 동행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동행 아시죠? 최성수의 [동행]. 많은 사람들이 외롭지 않고 동행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생명으로 가는 길은 특징이 뭐냐 하면, 찾는 이가 없어요. 그래서 별명이 뭐냐? ‘좁은 길’이라 돼있다 이 말이죠. 좁은 길의 특징이 뭐냐? 외로워요. 찾는 이가 없어요. 동행자가 드문드문 있는데 글쎄, 그 사람도 언제 또 넓은 길로 이탈할지 장담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소리하는 저나 듣는 여러분이나 차라리 성경을 덮어버리고 좁은 길, 넓은 길을 안 들었으면 그냥 기분 좋게 교회 다닐 건데 괜히 교회 와서 좁은 길, 넓은 길 해서 우리 선입관하고 반대로 이야기했을 때에 갈등이 생기지요. 도대체 교회 와서 진짜 저주 아닌 저주 받아버리면 나만 손해 아닌가? 자기 머리 속에 계산기만 팍팍 돌아가는 거예요.

성경의 뜻은 이겁니다. 하나님께서 진짜 자기 뜻을 위하여 누굴 보냈다는 겁니다. 진짜 이거는 석가모니도 아닙니다. 공자도 아닙니다. 진짜 자기 뜻을 보냈는데.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사시는 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가족 중에 한 분을 보냈어요.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누굴 보냈느냐 하면, 아들을 보내요. 아들을 보냈기 때문에 이 아들을 보내게 되면 특징이 뭐냐 하면, 이 세상에 땅에 있는 사람들이 전혀 못 알아먹는 이야기를 하셔요.

이 아들이 땅에 오게 되면 사람들이 환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이 아들을 핍박을 하고 미워죽겠어. 적개심. 적개심 있지요. 울분. 쳐 죽이고 싶은 생각. 하늘에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적개심, 분노를 가지고 쳐 죽이고 싶은 그런 모습과 그런 말씀과 그런 내용으로 전달하면 사람은 여기에 적개심을 가지고 아들을 추방시키죠.

할 때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 뭐냐 하면, 바로 [십자가]라는 겁니다. 이 십자가가 뭐냐 하면,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했건만 사람들은 자기 영광을 우선해서 하나님 아들마저 세상으로 추방시켜버립니다. 죽음으로 추방시켜버린 증거가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 사람들은 손 털었어요. ‘아이고, 이상한 인간 보냈다. 우리가 죽였다.’ 손 털어버렸어요. 그래서 모든 이야기는 끝났어요.

웬 미친 사람 와서 내가 하나님이고, 하나님 뜻을 알고, 내가 하나님 아들이고, 구름 타고 오고 하다가 보냈지. 이야기가 그걸로 드라마 끝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뭐냐 하면, 분명히 죽였는데, 쉽게 말해서 밟아죽였는데 발 떼니까 사흘 만에 꿈틀거리면서 되살아났어요. 그걸 여러분 뭐라고 하는 줄 압니까? 야, 너무 무시한다. 그걸 ‘부활’이라 하지요. 사람들의 부활은 사람 죽었다 살은 걸 부활이라 하는데 그건 부활이 아니고 소생이고요.

부활의 의미는 뭐냐 하면, 너희를 인하여 미워죽겠다 해서 죽은 내가 되살아났기 때문에 더 이상 너희들은 내 앞에서 자기 의롭다, 나는 잘났다, 나는 훌륭하다는 소리를 두 번 다시 못하게 만든 사건이 뭐냐? 이 부활 사건입니다. 따라서 앞에 뭐가 있느냐 하면, 십자가 해서 부활, 이게 한 세트가 돼요.

세트가 되서 너희가 죽인 자를 사흘 만에 살아나서 이것이 바로 마지막 때에 구원받는 토대가 되게 한다. 구원받는 근거가 되게 한다. 성경에는 ‘증거가 되게 한다’ 이래 돼있어요. 십자가와 부활이 너희들이 구원받는 오직 유일한 근거가 되게 하겠다는 겁니다. 전에는 너희들이 몰라서 미워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마라.

이제는 너희들이 평소에 십자가의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평소에 우리는 딴 꿍꿍이를 가지고 교회 오고 우리는 성경 봐도 다른 흑심을 가지고 봤다는 것이 이미 들통 난 입장이기 때문에 이제는 다시는 그러지 말고, 내가 십자가에 죽음이 첫째는, 너희의 죄를 지적하기 위해서 피 흘렸지만 두 번째, 너희들 때문에 흘린 피는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너희들의 모든 죄마저 피가 이걸 의롭게 용서함, 없애는 피로써 내가 하나님께서 주셨다. 따라서 ‘이 피를 보고, 이 피를 믿고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이 피로 말미암아 주님의 희생과 공로로 말미암아 내가 거뜬하게 천국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라는 고백을 하라 이 말이죠.

그래서 방금 한 이야기를 복잡하게 할 것이 아니고 간단하게 적으면 이렇습니다. 구원받은 사람, 성도죠. 성도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 ‘증거’라면 괄호해서 자랑하는 사람, 그리스도에게 감사하는 사람, 그리스도에게 고마워하는 사람,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 여러 가지 있지만 이 세 가지 전부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 이것이 바로 방금 제가 이야기했던 한 문장입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려면 뭘 통과해야 됩니까? 그전에 뭘 증거했느냐를 봐야 되겠죠. 그전에는 나는 나를 증거하는 사람. 증거하는 사람 괄호합시다. 나는 나를 자랑하는 사람, 나는 나에게 감사하는 사람, 나는 나에게 고마워하는 사람, 나는 나에게 뭐합니까? 사랑하는 사람. ‘나’ 속에는 뭐냐? 내 자식도 포함되고, 남편, 아내 다 포함돼있죠. 내 소유물, 내 재산, 내 사업체, 내 학력, 내 인물, 쌍꺼풀 수술 다 포함돼있지요.

나는 오로지 죽을 때까지 나만 증거하는 사람이었는데 이것 때문에 하나님 아들과 만나보니까 이것이 전체가 뭐였고? 죄였고, 이 죄 때문에 주님께서는 죄를 씻어주기 위해서 죄인, 용서받을 우리한테 죽음을 당합니다. 용서해줄 사람에게 오히려 피해를 봐서 죽게 되는데 고맙게도 사흘 만에 하나님께서 살려줘서 ‘이 짓은 네가 한 짓이니까 네 죄를 알렸다 하시고, 하지만 용서해 줄게’라는 그러한 상황이 현실이 우리한테 덮쳐버립니다.

덮치게 되면 성도는 두 가지를 잊지 않습니다. 하나는 뭐냐? 그전에는 누구만 사랑했다? 나는 나만 사랑했다는 걸 잊지를 못해요. 평생 동안. 나이 구십이 될 때까지 나는 나만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도 못하고, 그게 또 안 잊도록 고맙게도 매일같이 하루 종일 나와요. 밑에서. 눈만 뜨면 누굴 사랑합니까? 눈만 뜨면 나만 사랑하죠.

제가 오늘 아침에도 그런 예를 들었는데 개그우먼 정선희 있지요. 정선희 남편이 고 안재환 씨잖아요. 서른여섯에 돌아가신 분, 자살하신 분인데 안재환 씨가 자살을 왜 했습니까? 객관식으로 할게요. 일번, 소말리아 난민을 위해서. 이번, 남북통일을 위해서. 삼번, 가스값, 기름값 내려고. 사번, 지 사업 안 되서. 사번이죠. 보세요. 안재환 씨가 거룩한 죽음을 죽은 게 아닙니다. 안재환 씨가 죽은 것은 지 사업 안 되서 죽은 거예요.

죽을 때가지 뭡니까? 나는 나만 사랑하는 거예요. 우리는 안재환 씨 자살했다고 욕하잖아요. 욕할 것 못 돼요. 그 안재환 씨나 지금 앉아 있는 우리는 다를 것 뭐가 있어요. 예수 믿어도 소용없어요. 예수 믿어도 평생 갑니다. 예수 믿고 집사, 장로 심지어 목사가 되도 나는 나를 사랑함을 잊을 수가 없어요. 먹고 마시는 것이 다 누굴 위해서? 나를 위해서. 애 쓰고 땀 흘러 일한 게 다 누굴 위해서? 나를 위해서.

이걸 너무 부끄럽게 여기지 마세요. 우리가 바로 받았던 이 몸이 아담의 몸이거든요. 아담의 몸에 합류돼있어요. 본성이 섞여서 온다고. 어떤 사람 욕심이 없다고 하지만 욕심이 없다고 우겨도 늙어보세요. 항상 마음속에 ‘아이고, 10년만 젊었으면.’ 욕심이 없기는 뭐가 없어요. 가게 열어놓고 손님 두 명 올 때는 ‘주여, 열 명 오면 욕심을 내지 않겠습니다.’ 한번 해보세요. 열 명 와 보세요. 이십 명 돼야 유지가 되지. 이십 명 와 보세요. 오십 명 돼야
빨리 가게 하나 더 확장하지. 오십 명 와 보세요. 주식회사 하려면 천 명은 와야지.

나는 ‘나’란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심지어 이 정도입니다. 이런 예가 있으니까 하는 겁니다. 교회에서 이런 예가 있으니까. ‘목사님, 우리 엄마 지옥 가면 나도 지옥 가랍니다.’ 왜? ‘나는 우리 엄마 너무 사랑하니까.’ 왜 같은 아주머니인데 당신은 엄마 지옥 가는데 왜 안 따라갑니까? 그 사람이 할 말이 없어요. 자기는 효도한다고 자랑하고 있는데. ‘나는 우리 엄마 지옥 가면 나도 지옥 가랍니다.’ 자랑하고 있는데.

제가 뭐라고 반박했던가요? 옆집 불쌍한 할머니는 왜 안 가겠어요? 답변해 보세요. 왜 안 가겠어요? 그거는 자기 엄마 아니잖아요. 더 불쌍해도 엄마 아닌 것은 신경 뚝이에요. 엄마를 사랑한 게 아니고 엄마 속에 뭐가 들어있습니까? 내가 박혀있어요. 내가 박혀있으니까 도대체 나란 인간은 내 몸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보는 것 전부다 날아가서 전부다 박혀있어요.

등대교회가 만약에 내 교회 같으면 부흥되라고 기도할 거예요. 여기서등대교회 있다 삐져서 옆에 교회 가면 이 교회 망하라고 기도 저주 받으라고. 이제 저주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이야기하는 ‘저주’는 사도 바울 본인이 내리는 게 아니고, 하나님 되시는 예수님께서 내리는 저주고, 우리가 평소에 이웃에게 저주 받으라 하는 것은 뭐냐 하면, 평소에 나는 이런 일은 안 됐으면 좋겠다. 자기가 일방적으로 만들어낸 지어낸 저주에 벌벌 떨고 있다고.

만약에 예를 들어서 주님께서 저주가 아니고 복을 받는다면 그 복의 크기는 어느 정도로 대단해야 되느냐 하면, 내가 예수님 알기 전에 알았던 그 저주마저 너끈하게 그걸 덮어버릴 수 있을 거기에 개의치 않을 정도가 돼야 제대로 예수님께 복은 겁니다. 좀 크게 노세요. 크게 놀아야 돼요. 마귀한테 잡혀서 벌벌 떨지 말고.

주님에게 큰 복을 받아 버리면 그동안 ‘안돼, 안돼. 그것만은 안돼’라고 했던 그것이 시시한 일이 됩니다. 사소한 일이 돼요. 인생 살다가 그럴 수도 있지. 항상 나만 챙기고 나만 살다가 남들은 생각도 안 하다가 나만 욕심 채웠는데 그 정도는 받을 수 있지. 이렇게 그냥 쉽게 넘어가는 거예요. 쉽게 넘어가는 이게 뭐냐? 그게 예수님이 주신 마음의 평안과 축복입니다. 온유와 화평입니다.

내가 원했던 목적을 쟁취해서 얻은 그러한 복은 조금만 어떤 변화요건이 오면 깜짝깜짝 경기 납니다. 내가 얼마나 끌어 모은 돈인데 이걸. 펀드가 적게 나와서 가지면서도 불안해요. 밤잠을 못 자. 하지만 예수님의 큰 복, 참된 복음을 통해서 큰 복을 받아버리면 ‘그까지 것, 별로.’ 거기에 대해서 충격을 덜 받지요.

결과적으로 어느 것이 축복입니까? 가져놓고 벌벌 떠는 것 하고, 주던 안 주던 늘 싱글벙글 하고 어느 쪽이 복입니까? 싱글벙글이 돈으로 살 수 있는 겁니까? 시장에 가서 ‘웃음 주세요.’ 하면 돈 주고 살 수 있는 겁니까?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우리 사정을 알아요. 예수님이 우리 사정을 알기 때문에 진짜 좋은 걸 주시려고 해요. 우리가 흔히 아는 좋은 것 말고, 진짜 좋은 것. 그런 축복을 주시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것 정리해봅시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제 강의는 정리할 때 어려워요. 진짜 복음이 있고, 이것만 알면 안 된다 했지요. 반드시 뭘 알아야 된다? 다른 복음. 다른 복음은 빨간 걸로 해봅시다. 진짜 복음과 다른 복음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진짜 복음은 하나님이 뭘 기뻐하느냐? 하나님의 기쁨이어야 진짜 복음이라면, 가짜 복음의 특징이 뭐라 했습니까? 사람을 기쁘게 하는 거예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이게 다른 복음입니다.

이 이야기를 우리가 들었다 칩시다. 귀가 있어 들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들으면 용감하게 ‘오케이. 좋습니다. 저는 다른 복음 버리고 이것 하겠습니다’ 이래 나서면 되는데 성경에 갈라디아서 1장에 이런 내용 있어도 겁이 나서 주춤주춤 물러가요. ‘아이고,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그런 이야기는 신앙생활 십오 년 지나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물러간다면 다른 복음이 계속 따라 붙는다고.

그래서 결국 이 사람은 뭐냐 하면, 다른 복음 구분자체를 자기가 싫어하고, ‘아이고, 나는 신학자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에요. 왜 자꾸 성경에 어려운 것 이야기합니까? 쉬운 것 해주세요.’ 쉬운 것 뭐요? ‘그저 복음 믿으면 복 받는다 쉽게 해주세요.’ 쉽게 할 테니까 ‘뭐 한 가지만 믿으라 하소. 두 가지 하면 헷갈리니까.’ ‘한 가지, 복음만 믿으라. 이 땅에서 복 받고 죽어서 천당 간다. 간단한 것만 하세요.’

사도 바울은 복음도 이야기하고 반드시 다른 복음을 이야기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직싸게 한 고생이 바로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고생 직싸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십자가 앞에서 ‘아하, 내가 좋아하는 생각이 이게 하나님하고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고, 여기 두 개나 다 보이는 이 지점에 우리가 서있어야 돼요. 용감하게 나와야 돼요. 둘 다 다 보이는.

다른 복음 지워버리고, 다른 복음 골치 아파하지 말고 ‘이것만 아세요’ 하지 말고, ‘다른 복음도 내가 알고 싶습니다’ 이렇게 나와야 돼요. 둘 다를 여러분 아셔야 이게 성경을 펴서 하나님 뜻을 본 보람이 있습니다. 둘 다 아실 거죠? 이 둘 다가 모이는 곳에 제발 서세요. 이거 다른 복음 지우지 말고. ‘너무 부정적으로 보면 안 되지’ 이렇게 해서 자꾸 지우지 말고. 부정이든 긍정이든 하나님 주신 것은 다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주신 것이 다른 복음이고 구원이라면 이것이 옳고 그르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이게 있어야 이걸 알고, 이것 있어야 이걸 알거든요. 서시기 바랍니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다른 복음과 진짜 복음이 어떻게 차이 나는가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바깥에 서지 마시고, 둘 다 보이는 이 지점에 여러분들이 봐주시면 둘 다 보입니다. 그러면 다른 복음과 진짜 복음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진짜 복음의 내용을 제가 한 세 가지를 이야기할 테니까 그게 아닌 게 다른 복음이니까. 진짜 복음이 1장 4절에 나오니까 하겠습니다.

1장 4절,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이게 끄집어내려면 여섯 가지, 일곱 가지 끄집어낼 수 있지만 복잡하니까 한 세 가지로 해서 이 내용을 중요한 걸 끄집어내겠습니다. 첫째는 뭐냐 하면, 이 세상이 ‘악한 세대’란 걸 알아야 돼요. 내용이 뭐냐 하면, 참된 복음이 무엇이냐? 복음을 왜 알아야 되느냐? 복음을 알아야 구원을 받으니까. 기쁜 소식이니까. 복음을 알아야 하나님 백성이 되니까.

복음이 무엇이냐 할 때 첫 번째는 이 세상이 ‘악한 세대’란 겁니다. 악한 세대가 어려우면 악한 세상, 이 세상이 악한 세상이다. 일부만 악할까요, 전부가 악할까요? 10% 악합니까, 20% 악합니까? 30%는 악하고 70%는 선하다. 그런 겁니까? 안 그러면 99%는 악한데 선한 게 1% 있단 말입니까? 어떤 거냐?

악한 세대를 볼 때 잘 보셔야 돼요. 악한 세대를 볼 때에 구역을 쪼가리내서 이쪽은 악하고 이쪽은 선하고 이렇게 구역을 쪼가리 내는 것이 아니고, 책이 이래 있으면, (참 찬송가도 하나 안 불렀다) 악한 세대가 있으면 여기서 봐서 이거는 나쁜 거고, 이거는 좋은 거고, 사창가니까 나쁜 거고, 이거는 테레사 수녀니까 좋은 것이고. 이렇게 구분해서 나쁜 것도 있지만 좋은 것도 있다 이래 보는 게 아니고 옆으로 봐버려요.

옆으로 보면 똑같이 보면 전부 산딸기처럼 되죠. 이거 하나하고 여기에 또 하나 옆에 있는 두 개를 이렇게 놔버리면 위에 있는 하늘나라는 거룩한 나라요, 이 밑에 있는 나라는 이 거룩한 나라에 비해서 안 거룩하지요. 그래서 악한 세대라 합니다. 뭔 뜻인지 알겠죠. 이래 보는 게 아니고, 옆으로 보게 되면 이 판때기 몽땅 악한 세대에요.

옛날 구약 때 사람들끼리 어떤 사람은 성격 좋은 사람 있고 나쁜 사람 있잖아요. 너는 착하다. 나는 못됐다. 이래 하는데 여기에 누가 오느냐 하면, 시내산에 거룩한 하나님이 강림해버리니까 자기들끼리 착하다, 못났다 이게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는 논의 자체가 성립이 안 돼요.

하나님께서 막상 우리가 가야 될 천국에 갈 때는 여기서 좀 착하다, 좀 못하다 이거는 말도 끄집어내지 말라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모세가 시내산 올라갈 때 거기서 며칠 있었느냐 하면, 사십 일 동안 야영하고 있었는데 사십일 동안 물도 안 마시고 밥도 안 먹고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는데 나중에 산에 내려올 때 보니까 얼굴이 해같이 광채가 납니다.

나는 수덕사의 어느 도사, 조계종의 어떤 중들도 사십 일 하고 그렇게 광채 나는 걸 못 봤어요. 얼마나 광채가 났던지 사람들이 눈이 부셔서 여러분, 태양을 만나면 눈부시잖아요. 태양하고 바로 이야기 못하니까 비껴서 이야기해야 되잖아요. 그 정도로 모세가 하늘나라 사십 일만 있어도 광채가 나서 식사했습니까, 얼굴이 왜 파리해 보입니까? 그런 소리 못해요. 너무 광채가 나서. 그 정도로 거룩해야 하늘나라에서 거룩하다고 넣어줍니다.

그러니까 지상에서 남 구제했다, 좀 고아원 방문해서 도와줬다, 신장 떼어줬다. 그거는 착한 일 축에도 안 낍니다. 그런 것은 하늘나라 통하지 않아요. 적어도 하나님만큼 거룩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기껏 착해봤자 선악과 따먹고, 타락한 동네에서 밥 먹고 사는 수법으로, 밥 먹고 살다보니까 양심에 해서 남한테 좋은 소리 들어서 밥이나 먹고 살려고 하는 그러한 수단에 불고하지, 그거 착하다 하는 것은 자기 목숨 유지 하느라 착함이 안 나와요.

몸 아파 보세요. 막 저주가 나오고 그렇지요. 노인네 나이 많으면 예수고 뭐고 외롭다 하고. 연세 많으면 ‘나는 예수도 귀찮고’ 제가 직접 심방해보니까 오십 년 동안 권사해서 권사한지도 삼십 년 넘은 그런 분이 ‘야야, 예수 다 필요 없다. 찬송가 부르지 마라. 듣기 싫다. 유행가 틀어라’ 그런 분이 한두 분이 아닙니다. 권사뿐만 아니고 목사도 그래요. 목사도 나이가 들면 다 그래 됩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래 될 걸. 평생 기도발 누적해 놓은 것 소용없습니다. 착한 일 한 것 소용없어요.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이 하는 말이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는데. 제가 촌에 박사교회 있을 때 권사님들 장례식, 거짓말 안 보태고 스무 차례 이상했어요. 십일 년 동안 스무 차례 했어요. 어떤 환자는 세 번, 네 번도 했으니까. 젊은 목사로서 오십 년, 육십 년 신앙생활 했으니까 ‘마지막 갈 때쯤이야 주를 사랑하겠지’ 이래 생각하고 기대를 잔득하고 마지막 임종식 의식이 가물가물할 때 물어요. ‘주를 사랑합니까?’ 주 사랑 안 해요. 뭐라 하느냐 하면, 돈을 사랑해요. 죽어가면서도 돈을 사랑해요.

고린도전서 16장 22절이 생각나요. ‘누구든지 돈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원래 그 본문이 뭐냐?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래 되거든요. 이 세상은 그걸 용납하지 안 해요. 누구든지 돈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돈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그 생각이 옳다는 걸 유지하면서 교회 오니까 기도를 하고 예배 참석을 해도 항상 머리 속에는 뭐가 남습니까? 돈에 한이 맺혀서 돈, 돈, 돈. 기도할 때마다 기도하면 돈 되니까, 전도하면 돈 되니까, 예배 참석하면 복 받아서 돈 되니까 돈에 환장을 했어.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다” 그 소리 성경에 있는 건 아는데 듣기는 싫어요.

제가 그러면 지옥 간다는 말 하는 게 아닙니다. 이 소리 듣고 ‘아, 죽을 때까지 그러면 돈’ 이 말 하는 게 아니고, 제가 지금 뭘 설명하느냐 하면, 판때기 설명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스무 살 때 예수 믿고 스물 살 때 예수 믿었으니까 육십 살 때 예수 안 믿어. 이러지 마시고, 우리는 교회도 시커먼데 시커먼 악한 세대에서 지가 뛰어봐야 메뚜기, 벼룩이다.

이 악한 세대에서는 뭘 원하느냐? 돈이 인간취급을 받고, 돈이 있어야 사람 대우를 받는 세대에서 지가 뭐 별겁니까? 집사 됐다고 돈 없이 살 수 있습니까, 목사 됐다고 돈 없이 살 수 있습니까? 참, 이 교회는 전도사님 뭐로 밥 먹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목사는 밥 안 먹고 삽니까? 오랜만에 복음 이야기했다. 목사는 전기세 안 냅니까?

이 악한 세대에서 위선적으로 예수 믿는 척, 하나님 사랑하는 척 하지만 솔직하라 말이죠. 솔직하게 딱 깨놓고 이야기하자 말이죠. 복 받아 돈 벌려고 교회 오는 것 아니냔 말이죠. 혹시 교회 다니면 예쁘다고, 귀엽다고 돈 더 줄지. 진짜 내가 노리는 건 돈인데 돈을 얻기 위해서 뭔가 아부하는 식으로, 하나님 부탁한다는 식으로, ‘시키는 대로 해줄게요. 그냥 돈만 주시면’라는 본색으로 왔잖아요. 너나 할 것 없이. 그게 바로 악한 세대라는 거예요.

제 말은 뭐냐? 악한 세대에서 벗어나서 구원받읍시다가 아니에요. 악한 세대에 소속되어 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자. 이게 복음입니다.

그러면 가짜 복음은 뭡니까? 참 재미나요. 다른 복음이 뭡니까? 돈 좋아하면서 나는 예수 믿으니까 돈 안 좋아합니다. 이런 인간들. 다른 복음입니다. ‘아멘’ 하세요. 실제로 돈 주는 예수님 좋아하면서 아닌 척 해서 교회 앉아 있는 것, 그것 다른 복음입니다. 혹시 아닌 척하면 돈 줄까 싶어서.

예수님은 도사입니다. 아무리 이중삼중으로 위장해도 주님은 아십니다. 왜요? 우리 다 깨놓고 이야기하자. 나, 니 안다. 괜히 기도 많이 했다고 복 더 받고 그런 계산 하지 말자. 그것 자체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는데 니 자꾸 니 방식 할래? 니 솔직하게 악한 세대 아닌가? 예수 믿고 목사 되도 구십 넘어도 맨 이 동네다. 노는 동네가 이 동네다 이 말이죠.

실제로 박사교회 장례식하면서 ‘권사님, 소원이 뭡니까?’ 하면 죽을 때 대리석 관에다가. 죽고 난 다음에 대리석 관하면. ‘아이고, 주여.’ 그분한테 ‘주여’ 하는 것보다 ‘아이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절에 다니는지 교회 다니는지 구분이 안 돼. 끝까지 지 자존심이에요. 다 아는데. 시커멓다는 것 다 아는데. 시커멓게 사는 사람들끼리 자존심 세워서 뭐 할 겁니까? 주님께서 ‘돈 싫어하면 천당 넣어줄게’ 이랬습니까?

주님께서 방법은 뭐냐? 악한 세대인 것을 고백하란 이 말이죠. ‘내가 죽을 때까지 돈밖에 모릅니다.’ 고백하라 말이죠. 내가 목사가 되든지 다 깨놓고 화끈하게 이야기하자 말이야. ‘악한 세대 맞지?’ ‘맞습니다.’ 됐네, 그러면. 이게 바로 기쁜 소식이에요. 우리교회에 십일조 하는 게 없어요. 우리교인들 다 좋아해요. 왜? 돈을 좋아하니까. 신났어, 신났어.

두 번째 말씀드리고 십 분 쉽시다. 두 번째가 뭐냐? ‘너 가만 있거라’ 이거는 여긴 없고 출애굽기 15장 15절 나오는 말인데 ‘악한 세대, 너 돈밖에 모르지. 가만있어’ 세 번째가 뭐냐 하면, ‘내가 너를 대신해서 죄 처리 해줄게.’ 하나님 받을 진노, 그 무서운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 하나님 좋아하지 않고 니 좋아하는 그 무서운 진노를 내가 대신 몸을 바쳐서 처리해 줄게. 이게 진짜 복음입니다.

십 분 쉽시다. 십 분 쉬면 안 된다. 가만있어보자. 계산 잘못했다. 더 합시다. 중요한데 끊으면 안 된다니까. 중요한 대목인데.

첫째, 악한 세대. 두 번째, 가만있어. 설쳐대지 말고 가만있어. 뭐 기도발 받고, 헌금, 전도, 예배 일찍 왔습니다. 철야 열불나게 했습니다. 설치는 건 네 자유인데 네 마음대로 하세요. 네 마음대로 하는데 너 구원받는 것 하고 아무 상관없는, 다시 말해서 뭐에 받쳐서? 한에 받쳐서. 이래도 복 안 줍니까? 이거거든. 이렇게 해도 복 안 줍니까? 이거라니까. 주님 뭐라 하는지 압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니 멋대로 해봐라 그래. 가만있으면 가만있고, 설치고 싶으면 설치고, 해봐라 그래.

출애굽기 15장 15절 봅시다. 과연 그런 게 있는지. 또 성경본문도 잘못 이야기 안했는지 몰라. 15장 아니다. 14장 14절. 한 끗씩 틀렸네. 15장 15절이 아니고 14장 14절. 다같이 읽어봅시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가만있어라. 내가 알아서 다 할게. 너 아니까 하는 거야. 너 설쳐봐야 니 자랑, 니 영광밖에 안 되니까. 아니까 하는 거야. 가만있어라. 내가 알아서 할게.

그리고 사람이 자기가 열심히 ‘하나님 말씀만 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시켜만 주시면 알아서 다 해서 복 받겠나이다’ 이렇게 해도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주님께서 너희들이 그렇게 열심 내는 이유를 아는데 너는 바로 육을 위해서 육의 이익을 위해서 그런 짓 하지. 주님께서 아예 다 아셔요. 네가 열심히 하겠다면 옆에 있는 집사, 저 교인보다 더 나, 옆집의 사람보다 더 나, 내가 생각보다 과거보다 더 나은 항상 육적인 것을 얻고자 네가 그렇게 하나님을 이용하는데 그것은 절대로 더러운 육의 일이지 하나님의 일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일이 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방법은 뭐냐? ‘내 너희들 아 안다. 너희들이 밥 먹고 살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고’ 그리고 아무리 예수 믿더라도 마귀가 한번 휙 하면 ‘알겠습니다. 교회 안 다니겠습니다.’ 언제든지 그럴 요구가 돼있는. 획 ‘가지마.’ ‘예. 알겠습니다. 안 가겠습니다.’ 그럴 요구가 되 있는 줄 다 알아요.

교회 십 년 나왔다가 교회 두 번 빠져서 ‘이번 주 저주 받을까 싶어서’ 그렇게 저주할 것 같으면 애초부터 저주했습니다. 교회 다닐 때 저주했어요. 교회 다니는 것 때문에 복 받고 교회 안 나오면 저주 받고, 그럴 하나님 같으면 교회 다닐 때부터 이미 저주했어요. 왜? 교회 나오는 이유가 뭡니까? 복 받기 위해서 나왔기 때문에 저주했어요.

주님께서는 인간이 하는 것이 얼마나 어설픈지 그걸 우에 갈습니까? 안 갈습니다. 여러분의 가난아기들 기어 다니는 아기가 가만히 관찰해보면, 자기 딴에 엄마가 화날 때, 기쁠 때 지가 간파했다고 어떨 때 예쁜 척 하잖아요. 엄만 딱 보면 뻔히 알잖아요. 쟤가 사탕 하나 먹으려고 빵 하나 먹으려고 저런 짓 하는 거요. 알듯이 주님이 우리가 교회 와서 무슨 짓을 해도 우리는 예쁜 짓 하면 주님은 하나도 예쁜 짓 아니에요.

‘가만있어’를 갈라디아서에 없으니까 빼버리면 이렇습니다. 악한 세대라 하는 것은 바로 수평적으로 볼 때 어떤 인간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다 죄인 된다. 위에서 볼 땐 다 더러워요. 두 번째는 뭐냐? 바로 악한 세대를 위해서 몸을 드시는데 그 몸이 누구 몸입니까? 이 몸이 아니고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악한 세대에다 집어넣었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하고 마치겠습니다. 십 분 쉬겠습니다. 여기 보리차 있거든요. 보리차 이게 안 들어가면 맹물 되죠. 그죠? 이 악한 세대에 여기서 구원받을 사람 있다는 것은 뭐가 들어가야 돼요? 뭐가 들어가야 되잖아요. 이게 보리차 되려면 뭐가 들어가야 되지 그냥 가만있으면 맹물 되잖아요. 집어넣어서 여기 있는 봉지를 자기 것만 자기 백성을 끄집어내는 방식을 하나님이 사용했습니다.

이 집어넣을 때 들어가는 이게 뭐냐 하면, 바로 갈라디아서 3장 1절에 나오는 “어리석도다 갈라디아서 사람들아,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십자가가 바로 보리차, 엑기스에요. 이걸 집어넣어서 행동으론 저주 받을 행동인데 그 예수님 때문에 그걸 전부다 복 받은 것으로 복이라고 그렇게 변화시켜주고 복으로써 만들어내시면서 이 악한 세대에서 끄집어내는 그 전략, 그 계획을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그것이 악한 세대에서 자기 몸, 그러니까 보리차 덩어리 집어넣으셔서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심, 이게 바로 복음입니다. 다른 복음은 자기가 용쓰고, 자기가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움 없도록,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런 식으로 자기 개발, 자기 발전 그거 해서 복 받은 것, 그거 다른 복음입니다.

십 분 쉽시다.

우리교회(IP:220.♡.176.150)

08-10-05 13:08

등대교회080928b갈1장4-10복음이무엇인가b

등대교회080928b 갈1장4-10 [복음이 무엇인가b]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강의를 하게 되면 ‘첫 번째 시간했습니다’ 하면 다 잊어버리고, 두 번째 같으면 다 잊어버리거든요.

첫 번째 뭘 했느냐 하면, 악한 세대, 악한 세상은 특징이 뭐냐 하면, 이 바깥에 못 벗어난다는 것. 더 잘난 사람도 없고, 못난 사람도 없고. 다 못 났죠. 하여튼 같이 뭉개고 살아도 같이 살고, 백 살 넘고 해도 결국은 도토리 키 재기에요. 별난 사람 없어요. 다같이 돈 없이 못 사는 이 세상에 같이 뭉쳐있습니다. 진흙 땅 속에 나는 깨끗하다고 할 사람은 없다는 것, 악한 세대에.

이 악한 세대에 그러니까 판때기, 전라도 말에 판때기란 말 있습니까? 있지요. 이 판때기에 두 번째, 위에서 뭡니까? 위에서 모세처럼 깨끗하신 분, 거룩하신 분, 예수님이 오신 것. 그러니까 이 죄와 예수의 몸이 만나서 여기서 뭐냐? 우리 죄가 해결돼요. 우리 죄가 해결되면서 천국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첫째 시간에 이야기했죠.

4절에 보면,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그 다음에 뭐라고 돼있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렸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몸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무슨 정보가 안에 담겨있어요? 예수님 죄를 분해해 보면 뭐가 들어있어요? 우리 죄가 들어있지요. 예수님이 당했던 고난과 십자가의 버림받으심 이 모든 것이 예수님 본인의 죄가 아니고 누구 죄? 우리 죄 때문에 예수님이 그런 고생을 했다 이 말이죠.

십자가 바라 볼 때 십자가 사건이 아니냐? 이래 보지 마시고, 들여다보세요. 보면 그 안에 뚜껑 열면 뭐가 들어있어요? 우리 죄가 들어있어요. 그 죄가 뭡니까? 뭘 사랑한다? 돈밖에 모르는. 돈이 있어야 내가 살고, 돈 없으면 죽는다는. 이 세상에서 내가 사람답게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되죠. 돈 없으면 인간취급 못 받는다. 이런 자존심, 내 사랑 이것이 뚜껑 열고 보면 그 안에 들어있다 이 말이죠.

나밖에 모르는 인간은 천국에 못 갑니다. 안 받아줍니다. 이런 몸 가지고 천국에 못 가요. 우리는 많은 사람이 가는 길로 갑니다. 넓은 길 되게 좋아해요. 좁은 길로 가더라도 빠꾸합니다. 안 갑니다. 외롭다고. 그 정도로 나는 나밖에 모르는 인간인데 그게 십자가를 통해서 이 안에 뭐가 들어있어요? 나의 타고난 모든 견물생심, 욕심, 돈, 나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남한테 과시욕 이런 게 전부다 이 안에 들어있어서 이 십자가를 부활로 잡아당기면 여기에 누가 다시 딸려 올라갑니까? 이 죄에 해당되는 사람도 주께서 잡아당기면 어떻게 돼요? 잡아당기면 같이 딸려 올라가는 거예요. 이걸 가지고 두 자로 ‘구원’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여기에 목숨 거는 겁니다. 이것 먹고 떨어져라. 이거 먹고 천당 가자. 이런 식으로 다른 복음 없다. 이거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 해결했다. 이거다. 하고 자기 목숨 평생을 바쳐도 이걸 증거한 겁니다. 당신들은 의인은 없다. 주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 필요 없지만 병든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듯이 당신네들이 예수님을 의사처럼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있는냐를 묻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을 볼 때 ‘환자입니다’라는 의식을 가지고, 예수님을 ‘고쳐주세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느냐? 흥정하는 사람이 아니고, 얼마 먹으면 되겠어?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고, 얼마 바치면 복 주겠어? 이래 하지 말고, 그건 돈 놓고 돈 먹기고. 그건 야바위꾼들이 하는 거고. ‘이런 돈밖에 모르는 죄도 용서 받을 수 있습니까?’ ‘된다.’ 그런 이야기가 오고가야 예수님을 복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는 뭐냐 하면, 방금 이러한 세 번째가 약간 어려운데 잘 들어보세요. 일번, 이번 합쳐서 복음 되지요. 이 복음이 덩어리째 하나의 현실이 되어서 이 세상에 이 원칙과 공식이 그대로 우리 앞에 눌러앉아버렸다는 게 세 번째입니다.

그림으로 그리면 이렇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쳐다봅니다. 위를 쳐다보면서 ‘하늘에서 뭐가 내려오지?’ 십자가가 내려온다면, ‘어, 하늘에서 뭐가 내려오지?’ 이럴 때는 내가 지금 살았죠. 이게 일번이에요. 이러다가 두 번째 복음 이야기는 뭐냐? 이게 눌러져버리면 뭐냐 하면, 끽, 끽. 여기에 이 덩어리가 바위덩어리가 ‘끽’하고 눌러버리면 첫 번째는 아직도 살았어. ‘하늘에서 뭐가 오지? 내가 예수를 믿으면 되지? 나는 기도 어떻게 할까? 교회 몇 시까지 나가면 되지?’ 이러다가 갑자기 여기 뭔가 눌러버리면 이 자체가 뭡니까? 따라하세요. ‘끽’

이걸 가지고 뭐냐? ‘예수님의 영광’이라 합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뭐냐 하면,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구원이라든지, 모든 복은 바로 예수님께서 나에게 일방적으로 주신 것이다 이 말이죠. 주여, 영광 돌리려면 뭐하면 됩니까? 이럴 때는 어떤 경우에요? 일번이에요. 진짜 영광은 일번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고, 어떤 때 이뤄집니까? 이번에서 이뤄져요. 영광이 한 52톤, 트럭으로 15톤. 요새 골리앗크레인 많대요. 크레인이 그냥 눌러앉으면 이거는 ‘끽’하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영광 돌릴까요, 말 것도 없어. 그냥 하나님이 날 사용해버려. 그게 주님의 영광입니다.

제가 이게 약간 어렵다 한 이유가 왜냐하면, 사람들은 주님의 영광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주의 영광 돌리기 위해서 지가 계획을 잡아요. 일번 경우에. ‘주님의 복음을 알았으면 양심이 있지. 그렇게 십자가의 용서를 받았으면 지도 양심이 있으면 뭔가 내놔야 되고, 해야 되고, 열심히 설쳐야지. 인간 같으면 염치가 있어야지. 주님 앞에 평생을 드리겠습니다. 이래 나와야지.’ 할 때는 아직도 일번 경우에요. 아직도 영광 맛을 못 봤어. 여기는 뭐냐? 예수님이 하나의 대상이 돼요. ‘예수님 거기 계셔요. 제가 열심히 해서 예수님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이런 게 일번이라고.

그런데 이번은 뭐냐? 그냥 눌러앉아버려요. 눌러앉아버리면 뭘 해드리겠습니다 말할 것도 영광이라 하는 것은 어떻게 착한 일하고, 예배, 영광이 아니고, 먹든지, 마시든지 포함시키면 싸든지. 나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것이 내 일이 아니고, 다 누구 일이다? 나에게 덮쳐버린 덤프트럭, 주님의 자신의 복음을 위해서 나를 원 없이 사용하는 주님의 자기 소유권이 나의 소유권에서 누구한테 넘어갔어요? 이건 내 것인데 주님 지 마음대로 사용하는 거예요. 주님보고 지 마음대로라 하면 안 되지만 주님 지 마음대로 사용하는 권한이 넘어가 버렸어요.

일번 경우에는 ‘주님이여, 이거 영광입니까? 영광 아니지요.’ 이러다가 촐싹대다가 촐싹댈 수가 없어. ‘마음대로 하이소. 하나님 마음대로 하이소.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애를 어떻게 다루든 나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다 내 것이 아니고 주의 것입니다.’ 이걸 한 자 이야기하면, 이게 ‘끽’.

일번 경우에는 뭐냐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이 아주 찬란하게 보이고, 멋있어 보이고, 아주 예쁘게 보입니다. 일번에 의하면. ‘아이고, 나는 언제 저렇게 살꼬? 나는 바보다. 돈만 알고. 교회 십 년 다녔는데 이 집사보다 못하고. 주님은 좋겠다. 너무 착해서.’ 이런 상입니다. 나는 못났는데 멋있어 보이고, 훌륭해 보이고 이래 보입니다.

이번은 주님이 와버리면 여기는 뭐가 나오느냐? 분노와 탄식과 원망과 적개심이 나와요. 마치 올챙이 안에 숨어있던 내장이 튀어나오잖아요. 나의 더러운 내장들이 주님의 영광에 비해버리면 그게 다 튀어나와서 자기가 수습하기도 버거워요. 이거 하면 이것 튀어나오고, 이거 하면 이것 나오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루 생활하면서 뭐가 후회되던가요? ‘아이고, 그런 말은 안 해야 되는데. 아이고, 그 사람한테 그래 이야기하면 안 되지. 내가 생각해도 바보다, 바보. 다신 안 해야지.’ 다신 안한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소고기 불고기를 그리 많이 먹는 게 아닌데. 난 더 있는 줄 알았지. 남들이 얼마나 씹겠노?’ ‘저거는 어디 고기 기걸 들었나?’ ‘아이고, 그때 행동, 나 자존심 완전히 다 뭉개졌다.’ 돌아보면 실수 아닌 게 없고, 실패 아닌 게 없습니다. 전부다.

그런데 그렇게 실수, 버벅거림이 그런 게 퍽퍽 터져 나오도록 이미 작용하시는 주체자가 여러분들을 덮쳤기 때문에 나오는 결과들이에요. 거기서 나오는 영광은 이런 영광이에요. ‘주님이여, 살살 다뤄주세요, 살살. 내가 주님과 함께 가려니 힘들어 못하겠습니다. 좀 내 뜻도 들어주시고 내 소망도 들어주셔서 뭔가 예수 믿는 보람을 가져야지 이거 뭐 기도 백날 해도 안 들어주시고, 일은 더 꼬이고 무슨 낙으로 교회 오겠습니까? 간증도 잘도 하더라. 뭐 해서 바쳐서 복 받고, 병 낫고, 사업 잘 되고, 일 년 만에 교회 짓고 잘도 되더라. 이게 뭡니까?’

바로 그러한 탄식과 적개심과 분노가 이게 나오게 되면 주의 영광과 함께 한 연고입니다. 함께 한 결과입니다. 그 근거는 성경에서 무척 많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에서, 제가 처음에 했잖아요.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은 무슨 복음? 다른 복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무슨 복음? 참된 복음.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기쁘게 하는 그런 구절들만 찾게 돼요.

찾게 되니까 무엇을 자꾸 그냥 넘어가버리느냐 하면, 사도 바울이 실컷 남한테 좋은 일 다 하고 돌아오는 것은, 남들로부터 얻어먹고, 이단소리 듣고, 배척 받고, 매 맞고, 배 곪고, 굶기도 하고, 주리기도 하고. 이런 대목은 그냥 다 넘어가버려요. 나한테 해당사항 없음. 이건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음. 혼자 괄호 쳐서 전부다 그냥 넘어가요. 스데반 집사님 돌 맞아 순교한 것, 그냥 못 본척하고 다 넘어가요.

어떤 걸 찾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모이는 숫자를 더하게 하시더라. 이런 것 있잖아요. 사도행전에. 누가복음에 나오죠.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리가 없다. 이런 것.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에는 창대한다. 빌립보서에 뭡니까?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주님 능력 안에서 못할 게 없다. 이런 것.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면 된다. 이런 것. 그런 구절 보여줘야 돼요.

그런데 그런 구절이 앞뒤 문맥만 보면 그 구절이 내가 원하는 구절이 아니고 사도 바울이 자기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봐라. 내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만 전했잖아. 예수님은 가감 없이 다 전했잖아.

찾아볼까요? 고린도전서 7장 봅시다. 29절, 30절,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자나감이니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눌려서 안에 있고 하는 것이 팍팍 올챙이의 내장 터지듯이 개구리 내장 터지듯이 안에 있는 사람들이 좋다는 것, 세상에 귀하다는 것, 이 악한 세대에서 이거는 뭔가 소중하다는 그게 하나님 영광 앞에서는 그게 다 쓸데없는 아무것도 시시하기 짝이 없는 문제 거리도 안 되는 이야기에요.

‘아내가 가출했어요? 목사님, 어떻게 하면 됩니까?’ 문제 거리가 안 돼요. ‘갈 때 차비나 보태주지 그냥 보냈어요.’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같이 하라. 전혀 문제 거리가 안 돼요. ‘이번에 부도 세 번째입니다.’ ‘원래 다 없어질 건대. 잘 됐네. 미리 없애고.’ 문제 거리가 안 돼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일번 경우에 내가 여기 있고, 내가 펄펄 살았고, 하나님 영광이라는 것은 찬란하고, 아름답고, 보기 좋고, 유토피아고, 나도 죽어서 어서 그 나라에 합류해야지. 라고 했는데 막상 하나님의 영광이 복음과 더불어서 우리한테 끽하고 눌러버릴 때는 이거는 우리가 상상도 못한, ‘내가 이 정도까지는 참겠습니다. 내가 참겠습니다’ 하는 것보다 더 눌러버려요. ‘진짜 이거는 못 참겠습니다.’ ‘못 참으면 어쩔래? 어차피 네 것 아니잖아.’ ‘왜 아들 가출하게 합니까?’ ‘내가 했잖아.’ 아들 없는 자처럼 하라고.

그것보다 더 힘든 게 있어요.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는 자같이 하라. 이게 인간입니까? 이게 사람 사는 거예요? 어떤 지경에 놓였을 때에 웃는 게 웃는 게 아니고, 우는 게 우는 게 아니고. 어떤 경우에 그렇겠어요? 뭔가 자기를 박살났을 때, 도대체 나라는 것을 끄집어낼 어떤 틈새하나 빈틈하나 없을 때 뭔가 눌러버렸어. 뭔가 꽉 눌려버렸어, 완전히. 눌려서 거기서 새삼스럽게 추슬러서 ‘여기서 여기까지는 내 것이야. 이건 내 것이고, 이건 내 거야.’ 내 것이라고 건질 게 없을 때 완전히 박살나서 산산조각 나서 가루가 돼버렸을 때는 이런 고백이 나오죠. 내가 지금 웃는 게 웃는 게 아닙니다.

첫째 시간부터 지금까지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첫째 시간은 뭐냐? 연속극 시간입니다. 뿔났다 시간입니다. 아침드라마 시간입니다. 고민, 온갖 고민 다 나옵니다. 다 나와요. 토요일 날 하는 것 있잖아요. 뭡니까? 원수를 사랑하라, 나오지요. 그 드라마 보며 사람들이 얼마나 고민을 합니까? 세상에 저런 인간이 다 있구나. 저건 때려죽여야 된다.

그러니까 제가 첫째 시간에 안 했습니까? 판때기를 이렇게 보면 때려죽일 놈, 약간만 죽일 놈, 상 줄 놈 구분이 되지요. 위에서 보면. 자기는 여기에 속한다? 때려죽일 놈이 아니고 때려죽일 놈을 때릴 놈에 속하지요. 이걸 옆에서 보세요. 옆에서 보면, 지나 개나 돈푼이 있으면 죄 짓겠습니까? 그렇잖아요?

이혼, 이혼, 성격 차, 성격 차 하지만 사실 따져보면 성격 차 아닙니다. 돈 차이입니다. 한 달 수입 오백만 원 보고 결혼했는데 이백만 원밖에 안 갖다 줘. 이혼 가능성 있습니다. 나는 이백만 원짜리 여자 아니라는 거예요. 오백만 원짜리 여자로 왔지 이백 만원으로 온 게 아니다. 너하고 못 살겠다. 지금이라도 오백만 원짜리 남자 있으면 가는 거예요. 이 세상 자체가 돈에 죽고, 돈에 울고, 돈에 사는 겁니다. 그게 한 마디로 돈의 영광이에요. 돈이 영광된 세상이에요.

그래서 여기서 ‘주여, 영광 돌리겠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주께 영광 돌리면 돈 줄랍니까?’ 이런 뜻이에요. 왜? 아직도 자아는 챙길 자아가 있기 때문에. 아직도 나는 이 정도 예뻐야 아내답고, 이 정도 수입 돼야 나답고, 이 정도 학력 따야 생색께나 하고, 이 정도 교회 돼야 목사 소리 하고. 아직도 자기가 살아있으니까 그러면서도 하나님, 영광 돌리면 이 정도 줄랍니까? 계약 또는 흥정하고 있는 거예요. 시장바닥 흥정하고 있어요. ‘얼마면 되겠습니까?’ 이러는 거예요. 그러나 이런 식으로 단 한 명도 구원 못 받습니다.

왜 구원 못 받는가? 덜 착해서 구원 못 받는 게 아니고, 아직도 악한 세대에서 우리 죄를 위해서는 우리 죄라는 개념 있잖아요. 매를 덜 맞았어. 자기 죄라는 개념이 어느 정도라야 죄인 줄 몰라요. 자기가 살아있는 이상은 이 죄는 항상 감추어져 있어요. ‘부족합니다, 부족합니다.’ 그것 지금 잘난 척하고 있는 거예요. 진짜 자기가 죄를 아는 순간은 뭐냐 하면, 나한테 이런 게 있었는가가 튀어나올 때입니다. 그게 뭐냐? 예수님에 대한 적개심. ‘다시는 교회 안 나온다.’

진작 그러지, 진작. 그동안 숨긴다고 애 좀 썼다. 위선적으로 산다고 애 많이 썼다. 진작 그러지, 진작. 이젠 십자가 네 눈에 보일 거야. 나는 주님마저 배반하고 가버린 가룟 유다 같은 놈인데 베드로처럼 세 번씩이나 당신 말 저주한다고 외치면서 간 인간인데, 그 간 인간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사랑이 뒤에 진드기처럼 따라와서 ‘가기는 어디 가. 너는 내 거야. 임마’ 하고 완전히 나를 강간하듯이 날 덮쳐서 ‘너는 내 포로에서 못 벗어나.’

그걸 시편에서 고상하게 이야기했어요. “주는 나의 방패요, 산성이시오.” 그 말 뭔 뜻이냐? 넌 빼도 박도 못한다. “주는 나의 구원의 주시오.” 도마가 뭐라 했습니까? 못 자국 보고 뭐라 했습니까?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오.” 빼도 박도 못합니다.

아까 제가 했잖아요. 십자가 전체가 뭐가 나온다고? 우리 죄 나오잖아요. 우린 이리 안 봅니다. 멋지게 봅니다. 십자가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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