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4:18 (자빠져 죽은 사람)
삼상 4:18 (자빠져 죽은 사람)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사무엘상 4장 18절
제목 : 자빠져 죽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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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8-09-28 13:17
자빠져 죽은 사람
2008년 9월 28일 본문 말씀: 사무엘상 4:18
(삼상 4: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사십 년이었더라』
하나님의 궤와 인간이 무슨 관련성이 있습니까? 여러분 집에 있는 어떤 가구나 상자가 여러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한다면 이는 무슨 괴기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것입니다. 물건은 물건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는 것이 오늘날 사람들의 의식입니다. 물건에서 어떤 기(氣)가 나와서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것은 미신 세계에서나 위협이 될 뿐입니다.
물건은 살아있지 않고 그저 있으며, 단지 인간만이 산 채로 살아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살았다는 것은 꼼짝도 하지 않고 숨만 내쉰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을 주위의 것은 자신의 것으로 전환시키면서 살아 있는 겁니다. 흔히 귀하다는 다이아몬드를 집에서 잃어버렸을 때, 예민한 사람은 자살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귀한 물건이 평소에 자신의 것이라고 여겼기에 자신도 그 다이아몬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자신도 ‘귀한 존재’라는 존재감을 누리고 있었는데 그 귀한 다이아몬드가 사라지면 졸지에 자신이 ‘귀한 존재’의 근거가 상실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살 맛이 안 나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평소에 자신이 기대한 자아가 되지 못한다면 자아를 박탈되었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시험에 떨어졌다든지, 사랑하는 자를 사별했다든지, 자식을 여의다든지 하면 살 맛을 잃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주위의 것들을 삼키는 방식으로 소위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립니다.
목표를 잃고, 기대감이 무너져 내리게 되면 도대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종잡을 수 없게 되어 있어 스스로 폭파시키는 방식까지 고려하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 제사장의 죽음은 ‘충격’에 의한 죽음입니다. 그의 죽음은 평생을 두고 쌓아온 인생관 전체가 다 거짓이었음이 들통나버리고 새로운 현실을 만난 충격으로 인한 죽음입니다.
평소에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으로 다음과 같이 책망을 받은 상태입니다. “너는 네 자식을 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구나”(사무엘상 2:29) 즉 엘리 제사장에 있어 하나님에 관한 것은 별로 충격이 되지 않더라도 자식의 인생에 화가 임하는 것은 충격으로 받을 수밖에 그런 일생을 살아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엘리 제사장은, 자신의 제사장이라는 것과 사사라는 것과 남들 눈에 신과 백성을 중매하는 거룩한 중보자 역할을 하는 일, 이 모든 것도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자식에게 어떤 해가 주어지지 않고 도리어 복이 되게 하기 위한 들러니 같은 일들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의 그 목적성이 알지 못하고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자식 사랑을 대신할 그 어떤 목적성을 용납하지 않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자기 자식만 잘된다면 하나님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충성할 용의가 되어 있는 것이 엘리 제사장입니다. 쉽게 말해서 엘리 제사장은 자신의 자식 사랑과 하나님의 일을 연계시켜 놓은 것입니다.
목사가 목회를 하는 이유는, 정작 본인이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그 사랑의 가족에서 그 어떤 화나 불상사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신에 대한 자신의 희생과 열심히 그 저주를 사전에 저지하겠다는 요량으로 목회할 수가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의 궤의 능력을 본인은 늘 믿어왔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궤의 가치를 그 자체로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이 복을 받는다는 조건 하에서 하나님의 궤의 가치와 능력을 인정해주겠다는 겁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일을 눈으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믿어나가겠다는 의도 밖에 안됩니다. 즉 “신께서 내가 원하고 내가 보고 싶어하는 것들을 조금씩 드러내 주는 범위 안에서만 나도 조금씩 신의 존재와 사랑을 인정할 용의가 되어있다”는 식의 흥정 놀이에 해당됩니다.
이것이 엘리 제사장의 의식이요 세상관이요 사고방식이요 신앙의 내용입니다. ‘나의 것’, 곧 ‘나’를 다치게 하는 신은 되어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신에게 은연중에 협박을 하는 셈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인간들이 이러한 반발도 아랑곳 하시지 않습니다. 짤려야 될 자는 딸리고 살려야 될 자는 살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방침이십니다.
즉 하나님의 일이나 하나님의 물건이 그 어떤 것도 인간 소속으로 편입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엘리 제사장은 현재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기와 겨냥한 일이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야를 겨냥한 일임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현재 나에게 일어나고 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가 잘 되고 못되고 와 상관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의 일관성이라는 궤도를 안 벗어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나로 인해 내가 충격받을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자기 위주인가를 평소에는 모르고 있다면 누가 나를 모함하거나 약을 올리게 되면 잠도 못하고 밥을 못 먹을 정도로 충격에 빠집니다. 적어도 동물들은 그러하지 않습니다.사료만 주면 아뭇 소리없이 감사히 먹습니다. 길 옆에 무심히 핀 들 풀도 그저 바람부는 대로 불다가 누가 와서 베면 그냥 곱게 베어나갈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은 사랑받을 만한 존재이어야 하고 신은 자신을 당연히 건져야 하는 좋은 신인 줄 여깁니다. 바로 이러한 욕심이 ‘하나님의 궤’ 정신과 위배됩니다. ‘하나님의 궤’는 함께 있지 못한 자와 함께 있을 자는 구분하는 능력이 나옵니다.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도 해산하다가 궤가 빼앗기도 가정이 풍지박산 난 것을 듣고는 본인도 죽어갑니다.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라고 말입니다.
그녀는 평소에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 집안과 영광일 일치시킨 오류를 범한 겁니다. 정말 하나님의 궤와 함께 있을 자는 자신을 하나님의 궤 앞에서 죄인으로 간주할 줄 아는 자입니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성물은 속죄와 대속과 관련있는 장치인 것을 압니다. 그런 하나님의 물건을 자기 소유화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물건을 통해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본인이 종속되기를 원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인간 본인의 뜻을 꺾는 것이 충격이 아니라 도리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진다는 그 자체가 충격으로 다가오면서 감사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개척교회 하는 목사가 , ‘개척교회 성공’이라는 자신의 뜻이 뭉개지도록 일하시는 그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감사하는 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교회 일은 모두 예수님의 존재성과 지금도 일하심과 관련있지 결코 목사 본인의 존재와 일함과 관련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자빠져 죽은 자가 됩시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 더 이상 놀랄 일이 남아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기대감을 늘 꺾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