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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80905b 울산강의-창세기 38장자유게시판창세기

20080905b 울산강의-창세기 38장

이름 : 한윤범(IP:59.6.189.196)

20080905b 울산강의-창세기 38장

(강의:이근호 목사)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이 그런 꿈 이야기하고 난 뒤에 그 다음에 지금 요셉과 몇 명이냐 하면, 요셉과 열 명, 요셉은 어떤 위치에 있느냐 하면, 요셉은 주님이니까 창세기 27장에서 했지요. 소용돌이치지요. 열 명을 끌어당길 때 요셉이 주가 되려면 아이러니 하지만 열 명의 도움을 받아야 돼요. 쉽게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지실 때 누구의 도움 받습니까? 가룟 유다죠. 가룟 유다가 아니면 예수님이 십자가 팔릴 일도 없고 죽을 일도 없어요.

둘 다 하나님의 약속이라 하는 것은 무에서 유를 하는데 자기들은 둘 다 있다는 거예요. 둘 다 유에요. 유니까 둘 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서 지금 어떻게 이뤄지는가 속수무책이에요. 어떤 대안이 없어요. 대안이 없지만 유는 항상 자기의 본성을 드러냅니다. 지금 쉽게 이래 되잖아요. 누가 강자냐 하면, 형제 열 명이 강하고, 요셉은 약자가 돼요. 하나님께서는 약자를 강자 속에 보냅니다. 열 명은 요셉을 미워하고, 요셉은 미움 받죠.

꿈에 의했던 간에 아버지가 너무 사랑해서 하여튼 간에 형들이 양들 칠 때 벌판에 있을 때 요셉이 잘 있는가 안부 물으려 아버지 심부름으로 형들을 만납니다. 만나면서 요셉은 두 개의 과정을 겪죠. 하나는 뭐냐 하면, ‘죽는 것’과 그리고 ‘사는 것’ 이 두 가지의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 경험에 결정적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으니 누구냐? 열 명 중에서 유다입니다.

여러분, 나중에 이스라엘이 둘로 나눠지지요. 한쪽은 무슨 나라입니까? 유다. 북쪽은? 이스라엘인데 그게 무슨 지파에요? 요셉 지파입니다. 요셉 지파가 주동이거든요. 그리고 시편에 보면 항상 하나님은 유다를 택했고, 요셉은 택하지 아니했다 했습니다. 제가 했지요. 분류작업.

하나님의 약속의 분류작업은 참, 처음엔 어떠냐 하면, 일 번은 무에서 유 이렇게 하고, 이 번에 있는데서 분류가 되고, 삼 번에 뭡니까? 그 분류된 곳에서 뭐가 나온다? 주가 나왔어요. 무에서 유가 돼야 될 텐데 무에서 유가 되는 것이 아니고, 현재 있는 것은 무에서 유가 되기 위해서는 유는 뭐로 바뀌어야 하느냐 하면, 무가 돼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무는 유가 돼야 되고, 인간이 갖고 있는 유는 무가 되고, 이 두 가지가 같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요셉이 죽을 뻔했다가 살아나는.

앞으로 요셉의 모든 인생이 그렇습니다. 죽을 뻔했다가 살아나요. 옥에 갇혀서 거기서 갇힐 뻔했다가 살아나요. 이것은 바로 요셉 내부에서 유는 뭐로 바뀌어야 돼요? 무로 바뀌어야 되고. 이게 끝이 아니에요. 그 없는 무에서 그 다음에 유가 되는데 없는 무에서 유가 될 때는 반드시 하나님 약속대로 됩니다. ‘요셉아, 네 꿈 꾼 것, 헛것 아니데이.’ 그러면 네가 왜 고생해야 되느냐? 네 자신이 유기 때문에 유는 무로 바뀌어야 무에서 유가 되거든요.

그런데 인간이 어느 세월이 유에서 무로 바뀝니까? 그러니까 이 작업을 함께 병행하는 거예요. 이게 오늘날 우리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내 하는 소리 있잖아요. ‘여러분, 제발 성깔대로 사세요.’ 성깔대로 살면 우리의 유가 그대로 유만 나올 때 그것을 성깔을 죽이고, 죽이는 동시에 나는 이제 망했다 했는데 거기서 망하지 않고 도리어 어느새 구원의 길로 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다 이 말이죠. 신앙생활이 같이 병행해요.

요셉의 이야기는 그림으로 그려 볼까요? 간단합니다. 이게 구약입니다. 여기 십자가, 신약. 요셉의 이야기 전체가 어디로 가느냐 하면, 예수님에게 가고, 예수님은 예수님의 몸으로 계시거든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머리로 계신 그 몸에는 요셉에게 일어났던 모든 하나님의 약속이 같은 몸이라는 이유 때문에 안에 똑같이 여기다가 적용이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김 집사님이고, 강 집사님이고 이래 돼요.

그리스도 몸 안에서 요셉에게 일어났던 모든 경로와 경과, 영어로 path 했잖아요. 이번에 수련회 참석했던 사람은 아시죠. 모든 경과가 그리스도 몸 안에 있다는 이유 때문에 요셉의 경로가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되는 겁니다. 가만있으면 돼요. 가만있으면 여러분, 울 일도 생기고, 우는 가운데 웃을 일도 생기고. 그걸 오늘 아침에 썰물, 밀물 했어요.

십자가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백날 애를 쓰는데 이 십자가 가는 길이 여기서 너무 매끄러워. 참기름 발라 놨어요. 십자가에서 쭉 밀리잖아요. ‘아이고, 못 살겠다.’ 나가떨어지면 여기서 뭐가 있느냐? 은혜의 손길이 와요. 긍휼의 손길이 와서 ‘안 되지?’ ‘안 됩니다.’ ‘내가 널 불쌍히 여겨줄게.’ 잡아당기죠.

가면서 우린 또 뭘 발견합니까? ‘역시 난 있어’라고 이제는 ‘함 살아봐’ 또 쭉 미끄러지고. 그럼 또 불쌍히 여겨 주시고. 주님의 공로로 구원받고. 또 주님의 공로, 공로 하면서도 슬슬 자기 힘으로 발휘해서 말씀대로 해서 복 받아야지 까불다가 쭉 미끄러지면 또 주님의 긍휼로 도와주시고. 그래서 이 사람은 평생 동안 누구의 공로? 주님의 공로만 증거하는 사람이에요. 자기 속에 밀물, 썰물, 밀물, 썰물 계속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봐야 돼요. 말씀을 보게 되면 우리가 얼마나 아침에 깨어나면 어느새 벌써 이만큼 나의 유가 오늘도 이것 자랑할 게 있고, 오늘 이것 자랑해야지. 돈 많이 벌어서 돈 자랑해야지. 오늘 공부 잘해서 공부 자랑해야지. 또 나의 유가 가득 들어있어. ‘주님이여, 지금 죽으면 안 됩니다. 죽으면 애 장가가는 것 못 보면 안 돼. 재림하지 마이소. 우리 딸 시집보내야 돼’ 또 하나님의 약속보다 유가 가득. 쭉 미끄러지고 또 애 먹이면 ‘주여, 빨리 와 버리소. 저 꼬라지 못 보겠다, 주여, 빨리 재림해버리소.’ 이렇게 또 하고. 만날 이 생활이 반복되면서 그걸 주님의 공로로 돌리죠. 이게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요셉이에요.

그렇다면 요셉에서 무슨 경로를 밟아야 돼요? 요셉에서 주님의 경로를 발견하면 돼요. 왜? 요셉이 주님의 경로를 발견하는 그 길 그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적용시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요셉이 주님의 경로를 발견할 때 보통 많은 목사들이 주장하는 게 뭐냐 하면, 요셉이 뭔가 팔렸지요? 은 몇 개에? 은 스무 개에 팔렸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은 몇 개에 팔렸습니까? 서른 개. 열 끗 차이네.

‘팔렸다’는 말은 뭔 뜻이냐 하면, 소용없다. 유의 세계에서 아무짝도 소용없는 거예요. 계시를 했던 꿈을 꿨던 별이 절하고 하여튼 간에 지금 당장 아무짝도 쓸모없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요셉으로 하여금 팔리게 하신 이유가, 이 유의 세계에서는 소용없는 인간이에요. 예수란 분이. 소용없기 때문에 남들이 이걸 버렸지요. 그래서 이걸 버린 받은 돌이에요. 제가 부산 강의할 때 했잖아요. 전에 제가 그런 말 했지요. 무슨 말인지 모릅니까?

예수님을 믿을 이유가 없어요, 우리가. 돈 되는 것도 아니고. 물론 돈 된다고 거짓말하지만, 사기 치지만. 아무 소용없는 거예요. 버림받은 돌이에요. 이게 베드로전서에 나오잖아요. 버림받은 돌이 모통이 돌이 된다고. 참 신기해요. “누가 알았으리요. 똑똑한 놈에겐 다 감추시고 어린아이에게 나타나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그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아버지의 약속은 이 유의 세계에서는 쓸모없고 오직 무의 세계에서만 하나님께서 그 비밀의 실효성을 효과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사용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제가 아까 이야기했던 죽는 것, 죽는 것은 기정사실이죠. 여기 요셉이 왔을 때 형들이 와서 18절에 봅시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왔다” 그러니까 개꿈, 앞에 ‘개’자를 집어넣었어요. 개꿈 꾼 자, 아무 쓸데없고 소용없는. 다른 의미로 보면, 네 꿈이 이기느냐, 아니면 내 힘이 이기는가, 해볼까?

제가 부산강의에서 제일 먼저 운 던진 게 뭐였던가요? 사람이 도 닦고 이게 소용없다 했지요. 예수님이 뭐라 했습니까? 요한복음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게 아니다” 그 이야기를 오늘날 교회, 안 믿는 사람 말고. 교회 소위 믿는다는 사람에게 할 때 좋아라 할 사람이 그 중에서 몇 명 되겠습니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 바로 이게 유의 세계, 인간이 만든 유의 세계는 허구의 허상의 세계, 가상의 세계입니다.

제가 부산강의 잠깐 해볼까요?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해보겠습니다. 사람이 있는데 물컹한, 사모님 기억나시죠? 물컹한 문어라 하자. 그러면 누가 봐도 이건 물컹한 문어잖아요. 그런데 물컹한 문어가 말을 해서 ‘나는 문어입니다’ 이래 하면, 이거 안 쳐주지요. 다만 물컹한 문어만 보이죠. 지금 우리가 몸이 있잖아요. 하나님이 쓰시기만 하면 되는데 우린 여기서 꼭 뭘 끄집어내느냐 하면, 나를 끄집어내요. ‘주여, 나는 아직도 내 마음은 이십 대입니다.’ 누가 그걸 물어봤느냐 말이에요. ‘집안에 애가 세 명인데.’ 누가 물어봤나?

그래서 이번에 나올 책에 보면, 항상 사람들이 교회에서 뭘 집어넣느냐 하면, 내가 기도했다. 나는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헌금 얼마 하면 됩니까? 나를 내세워요. 이게 유의 세계에요. 주님께서 이걸 지우는 방향으로 작업하십니다. 너를 지워버리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 전부다 주님의 것. 이게 유의 세계에서 ‘주님의 것’으로 될 때 무가치하단 값이 뭐냐? 요셉은 몇 냥? 20냥. 예수님은 몇 냥? 30냥. 결국은 우리가 주님의 것이 됐다하는 것은 주님의 값을 주고, 세상에서 무가치한 우리를 주님 나라에서는 가치 있는 인간으로 창세전에 예정한 거예요.

예수님만 값을 치루고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에 버림받은 자가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딴 사람한테 동창회 가서 예수님 얘기해보세요. 술맛 떨어진다고 나가라 합니다. 예수와 버림받은 자에요. 그런데 버림받았는데 이쪽에선 버렸지요. 이쪽에선 뭐라 합니까? 값을 주고 샀으니. 값이 무슨 값입니까? ‘피’값으로.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보면, 피 값으로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들고 천국에 집합해요. ‘여기 다 모여라’ 해서 집합장소가 천국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당했던 버림받은 자들의 총집합이에요. 그런데 그 집합이 그냥 버림받은 것이 아니고 약속 때문에 주님이 훑는 소용돌이 때문에 버림받은 거예요. 주님이 버림받은 자를 훑으니까 같이 버림받는 자들이 줄줄이 튀어나오는데 그 튀어나온 자들이 모여서 집단으로 버림받은 자들이에요. 그게 모퉁이의 머릿돌이 성전 되는 거예요.

전부다 약속, 아까 세 가지 원칙이죠. 무에서 유, 분류작업, 주가 되신다. 이 세 가지 작업을 우리 안에서 발현시키기 위해서 꽃을 피우기 위해서 빈 수레 같은 우리를 사용하시는 겁니다.

그럼 나는? 또 나는. 여기 나가 자꾸 걸림돌이 돼요. 우린 죽을 때까지 나를 못 버립니다. 우리가 덩치가 있는 이상 나를 못 버려요. 예를 들어서 봅시다. 우리가 버렸다, 버렸다 하는데 때려보세요. ‘아야’ 하지. 사람이 나는 아무리 나는 도 닦고, 성화됐다, 나는 날 버렸다 해도 막상 아프면 이게 귀가 아프다든지, 손톱이 아프면 옆 사람이 아픈 게 아니에요. 어떤 목사님이 아픈 게 아니고, 내가 아파.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없고, 어떤 몸통이 아픈데 그걸 구태여 표현하자면 그게 ‘나’라.

그게 욥이 바로 갈등을 일으킨 점이 그 점입니다. 왜 하필이면 내가 아프냐 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똑같은 말을 해요. 하필이면 ‘너’라는 거예요. 그게 답변이에요. 머리 나쁜 사람 모른다. 다시 이야기할게요. ‘주여, 하필이면 내가 왜 아픕니까?’ 하니까 하나님은 ‘글쎄. 그러니까 네가 내 사람이지.’ 이상하게 많은 사람 가운데서 참 축복을 주셔서 널 아프게 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워요. 아프기는 본인이 아픈데. ‘내가 아픕니다.’ ‘네가 아픈 게 아니라 내가 일하는 장소가 아프지.’ 그러니 그걸 ‘나’라고 자꾸 끄집어내는 게 문제에요. 어쨌든 간에 아프기는 내가 아프거든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이걸 못 버려요. 아파서 내가 아프고, 좋으면 지가 좋아.

이번에 우리나라 야구대표팀이 금메달 땄잖아요. 참 걱정돼요. 내년 일월 되면 뭐냐 하면, WBC 세계야구대회 있다고. 또 따야 돼. 일등 해야 돼. 심히 걱정 돼. 보통 문제 아니라. 이승엽 선수가 한국에서 있다 일본 간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지금 홈런 못 친다고 그렇게 구박받고 2군으로 밀리고 그렇다고. 한번 수준을 높여놓으니까 어지간해서는 감사가 나올 틈이 없어. 그때 하나님 방법은 뭐냐 하면, 아프게 하는 거예요. 왜? 원인이 우리 없이 처음부터 너라는 조차도 없는 데부터 새로 시작하자. 새로 시작하면 범사에 감사할 것이다.

이런 말이 있어요. 여러분 사극 보면, 나는 사극 보면서 심히 마음이 괘씸한 대목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비운의 왕비’라 하지요. 뭔 뜻인지 아시죠. 슬픈 운명을 타고난 왕비. 세상에 비운이 어디 있습니까? 그동안 이 여편네가 하나님께 얻은 먹은 축복과 은총과 햇빛과 공기를 계산해 봐라. 얼마치인지.

무슨 비운이 있어요? 해부해 보세요. 심장이고 간이고 소장, 대장 전부다 하나님께서 키워왔는데 무슨 비운이에요. 비운의 왕비라고? 세상에 비운이라는 게 없습니다. 비운을 논할 만큼 은혜 적게 받은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가룟 유다도 그동안 은혜 받은 것 계산하면 예수님 팔아먹으면 안 돼요. 그동안 은혜만 생각해도. 태어난 것만 해도 감사한데 무슨 비운이에요. 무슨 어머니 나를 왜 이리 태어나게 했습니까? 어쨌다고.

이게 유의 세계에서는 상호비교하고 상호대결하고 경쟁하다보니까 기본적으로 없는데서 내가 있다하는 이 자체를 기적으로 보질 않아요. 놀라운 어떤 기적으로 보질 않는다고. 저 들에 있는 들꽃을 보고 ‘아이고, 왜 이리 이쁘노?’ 그거는 되게 감탄하면서 그 들꽃에다 자기를 집어넣어봐라 말이죠. 지나가는 하나님은 얼마나 ‘이건 왜 이리 이쁘노?’ 그래 이야기 하지요. 그게 솔로몬이 입은 옷도 들풀보다 더 못하다 하잖아요.

항상 우리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어디로 가느냐 하면, ‘원형’으로 데려가요. 원형으로 데려가는데 원형은 그대로 누가 가리느냐 하면, 바로 인간이 만든 악마, 유의 세계, 있음을 세계가 이걸 먹구름처럼 덮어버리니까 우리는 자꾸 옆 사람하고 경쟁하기 바빠서 처음부터 내가 없었다는 원형의 세계를 자꾸 잊어버린다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여기서 놀지 말고 밑에 내려가서 위를 쳐다보게 되면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생명의 면류관도 없고, 사도로써 삼층천도 봤지만 삼층천을 본들 지가 장가를 안 가. 아를 못 낳았잖아요. 아 예쁘고, 헤~ 웃는 것, 딸 어릴 때 두 살 때 원피스 입어보세요. 얼마나 예쁘다고. 나중에 그 딸이 연애하고 돌아다니면 골치 아프지만. 하여튼 어릴 때는 예쁘단 말이죠. 요새 부모들은 걱정된다 이 말이에요. 딸 낳아서 시집도 안 가고 취직도 안 해서 나이 서른 먹어서 백조 되서 하루 종일 드라마 다 보고 있으면 참 부모 골치 아파. 선보면 뭐 티 잡아 다 튕겨버리고. 대충 가지.

왜냐하면 유의 세계에서, 다시 한번 봅시다. 인간이라 하는 것은 인간이 들고 있는 모든 생각들과 사고는 주변에 있던 것들이다. 기존에 있던 것들이 들어온다고. 이게 자기가 욕심에서 재조립해요. 부품이에요. 부품이 전부다 고물입니가. 친구가 가르쳐 준 것, 친척이 갖고 있는 것 나라는 건 하나도 없고 주변에 유의 자랑, 보암직도 먹음직도 이런 것들을 가지고 나의 타고난 죄로 인하여 항상 재조립해서 이걸 가지고 뭐라 하느냐? 이걸 ‘자아’라 하는 거예요.

이게 이십 대 되고, 삼십 대 되면 삼십 대 좋아했던 것, 이십 대 좋아했던 것 다 잊어버리고 삼십 대 또래의 좋아했던 들어와요. 이십 대에는 주로 차타고 뭐하고 놀러가고 배낭여행가고 프랑스 가봤냐 이러지만, 삼십 대 되면 애 낳으면 애 너는 뭐 가르치냐, 몇 등이고 하잖아요. 사십 대 되면 남편 바람 피나, 남편 잘 해주나. 오십 대, 육십 대 되면 남편 집구석에 있어 보기 싫어 미치겠다. 내가 나가야지. 손자 키우는데 힘들어서 못하겠다. 손자 안 키울란다. 이런 이야기한다니까. 이게 전부다 주변에서 가져온 거예요.

이런 인간을 하나님의 분류작업 하게 되면, 일단 일 번이 뭡니까? 일단 어디로 가서? 유를 무로 내려가서 하나님의 약속으로 무조건적으로 네가 구원받았다는 분류작업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합니까? 세 번째, 주님 때문에. 무에서 분류작업해서 너도 모르는 새에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을 이 아래층에서 해주고, 해놓고 올라가죠. 올라가면 일단 구원은 챙겨났고 슬슬 욕심은 ‘구원은 기본이고, 보너스로 복을 받아야지.’ 이래 나온다고. 그럼 쭉 밀려서 저 밑에 갔다가 또 기어 올라와서 말씀 지켰으니 복 받겠습니다. 기어 올라와서 쭉 내려가고 또 기어 올라가고.

이 작업을 이제 요셉을 통해서 봅시다. 요셉이 어떻게 되는지. 오늘 강의 쉽지요. 아래층, 위층 이 문제지요. 굉장히 쉽지요. 요셉이 약속을 이루는데 요셉 혼자 이루는 게 아닙니다. 요셉을 미워하는 자가 있어야 돼요. 미워하는 자 열 명의 형들이죠. 형들이 요셉을 ‘쓸데없다. 쓸모없다. 있으나마나. 너 없어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다’라는 이게 무슨 세계냐? 이게 유의 세계, 있음의 세계라고. 있음의 세계 중에 누구의 도움을 받아서 이게 팔려나가느냐 하면, 20냥 받고 애굽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요셉을 따라 뭐가 가고 있습니까? 이야기해보세요. 두 개의 꿈이 따라가죠. 그럼 이쪽엔 뭡니까? 꿈이 없는 시대죠. 요셉의 꿈이 있으니까. 이게 바로 오늘날 우리 생활이에요. 예수님께서 고생한 것 우린 몰라요. 우리는 내 욕심대로 살 뿐이지, 외부에서 다 해서 나중에 완제품 만들어서 ‘아나, 먹어라’ 하고 내려오는 거예요.

우리는 미안스럽지. 그러니까 미안스러우니까 요셉이 하는 말이, ‘형들이여, 너무 미안스러워하지 마세요. 나 형들 보고 닦달 안 냅니다. 이렇게 된 것은 다 아버지 뜻입니다.’ 꼭 예수님이 우리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너, 너무 미안스러워하지 마라. 다 이렇게 된 것은 창세전부터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아버지 뜻을 내가 이룬 것뿐이다.’ 요셉에서 예수님을 찾아야 돼요, 하여튼.

요셉을 버렸다는 말은 뭐도 버렸다? 두 개의 꿈도 빠이빠이다, 버렸다 이 말 아닙니까? 꿈의 세계하고 계시의 세계하고, 형들 세계하고 완전히 분리되었어요. 여기서 과연 분리된 세계에서 제가 아까 했지요. 요셉이 꿈을 이루는 데는 누가 필요하다? 예수님이 죽는데 가룟 유다가 필요하듯이, 이 형들이 필요하지요. 과연 하나님께서 분리된 세계에 여기는 아무 일이 없겠느냐 이 말입니다. 있었어요.

이게 누구냐? 요셉이 살게 된 것은 누구 덕분입니까? 유다 덕분이에요. 유다가 죽이지 말고 살려주자. 제일 먼저 제안한 것은 르우벤인데 르우벤은 그때 이야기만 해놓고 딴 데 가버렸어요. 다른 형제들 다 죽이려 할 때 그때 유다가 나서서 ‘죽인들 뭐하리. 죽은 것과 진배없잖아. 팔아먹으면. 하여튼 우리 눈에 안 띠면 그만 아이가’ 하고 유다가 살려줍니다. 유다는 요셉이 예뻐서 살려준 게 아니고. 하나님 뜻인지 하여튼 살려줘요. 요셉은 죽을 뻔 하다가 살았지요. 하여튼 다른 세계로 가버렸고.

이 유다에게 무슨 요셉에게 있는 꿈, 그림을 이리 그립시다. 하나님의 계시, 창세기 25장, 창세기 27장 29절 이 구절이, 하나님의 약속이 양쪽으로 내려오죠. 분류작업 되었습니다. 한쪽은 주가 되어야 될 사람, 요셉에게 적용되고, 또 한쪽은 뭡니까? 주로부터 혜택을 입어야 될 장차 주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될 여기에 또 하나님의 작용하는 거예요. 이게 창세기 38장입니다.

37장 26절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뭐가 유익되노” 자 마침 이스마엘 장사꾼이 오니 팔아먹자. 그래서 그 사람을 해서 웅덩이에서 끌어내서 팔아먹었어요. 그때 르우벤은 볼일 보러 가고 없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유다가 살려줬어요.

38장에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에게 내려가서 형제하고 헤어져서 가나안 사람 수아란 자의 딸을 보고 결혼했는데 딸 이름이 뭡니까? 아니지. 수아란 자의 딸과 결혼했고 애를 몇 명 낳습니까? 애를 세 명 낳지요. 그러니까 지금 유의 세계 아닙니까? 유의 세계에서 유다는 자기의 일상생활해요. 거기에 자기 큰 아들 며느리를 봤지요. 며느리 이름이 뭡니까? 다말이라.

자 하나님께서 왜 성경책에 38장에 유다이야기가 하필 기록돼 있느냐 하면, 유다 개인 가정에 뭐가 일어났느냐 하면, 유의 세계가 뒤집어져서 유에 세계에 깔려있던 무의 세계가 올라오고, 위에 있던 유의 세계가 밑에 깔리는 그러한 희한한 일이 유다 가문에 일어나요.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창세기 38장 마지막에 나옵니다.

38장 27절, 중요한 대목이니까 같이 한번 봅시다. “임신하여 보니 쌍태라” 쌍둥이란 말이죠. 뭐가 떠오릅니까? 창세기 25장 떠오르죠. 25장 23절에 리브가가 임신하고 난 뒤에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하나의 태가 있어요. 항상 하나입니다. 두 명이 낳은 게 아니고. 하나의 태가 둘로 나누이지요. 쌍둥이인데 둘로 나눠집니다. 나중에 마태복음에 보면 나눠져요.

이게 무슨 작업입니까? 분류작업이죠. 분류작업에 있어서 제가 뭐라 했습니까? 유는 뭐로 변하고? 무가 되고. 무에서 유가 되어서 유가 분류작업된다 이래 됐지요. 그런데 여기서 뭐냐 하면, 의가 뭐가 되고? 죄가 되고, 죄가 의가 되는. 무가 유가 되는 것이나, 의가 죄가 되는 것이나 똑같은 거예요. 죄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버림받은 죄가, 유가 무가 되는 것이나, 죄라고 여겼던 것이 의가 되는 이것하고 똑같이 가는 거예요.

이쪽에 요셉은 이미 저쪽 세상에 가버렸어요. 요셉은 하나님이 따로 다뤄요. 장차 요셉으로부터 구원받을 이 지경에서 무슨 작업이 있다 이 말이에요. 예수님은 십자가 길로 가버렸어요. 그러면 남아있는 열두 제자 가운데 아무 일 없습니까? 그들은 다시 어디로 돌아갑니까? 다시 자기 생활로, 유로 돌아가잖아요.

결국 유다 지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뭐냐 하면, 장차 요셉으로 말미암아 요셉에게 일어나는 계시가 인간에게 주어질 때는 어떤 방법으로 주어지느냐 하면, 하하 내가 의라고 여긴 것이 실은 뭐가 된다? 죄가 되고, 내가 죄라고 여겼던 것이 실은 의가 되었구나.

더 쉽게 말하면 이 공식을 합해버리면, 죄 안에서 뭐가 나온다? 의가 튀어나온다. 십자가 사형 당했던 그 죄수 안에서 죄수 된 우리를 구원하는 의인이 튀어나오는 거예요. 세상에 이런 일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그냥 십자가 죽지 말고 낚싯대로 건지면 왜 안 됩니까? 낚싯대로 건지면 건짐 받는 우리가 잘난 놈이 돼버려요. ‘역시 난 잘났어. 그러니 구원하지’ 이래 되는 거예요.

그러나 십자가를 경과해서 십자가 피를 가지고 들어오게 되면, 내가 바로 예수의 피를 흘렸던 죄인 중의 괴수임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이 죄인을 의롭다 하신 주님의 십자가가 있구나. 십자가가 복음이라. 왜 복음이냐 하면, 십자가 안에서 내가 죄인인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복음이란 말이죠. 죄인을 의롭다 하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인 되었을 때 그 율법 외에 다른 의가 있어서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자신이 내 대신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우리에게 죄인을 의인되게 하는, 포섭해서 품어서 안아서 다시는 죄 있다 하지 않고 없애버렸다 이 말이죠.

제가 주일 날 아침에 그런 설교했는데 여기 물 줘도 되지요. 제가 마지막 설교에 그랬어요. 컵을 들고 여기에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담아요. 이 작업이 필요해요. 말씀을 통해서 죄를 담아 놓고 ‘자, 이 안에 뭐가 있다?’ ‘우리들 죄가 있습니다.’ ‘여기 뭐 있노?’ ‘없습니다.’ 없고 이 안에 뭐가 들어가느냐 하면, 예수님의 피가 담기는 거예요. 그래서 의인되는 거예요. 죄를 없애 주는 것은 무죄죠. 우린 무죄가 아니고 의인이에요. 그냥 단순한 무죄가 아니라 의인 됐다고. 의가 담겨서 이걸 가지고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겁니다.

이 십자가 복음이 앞서서 요셉의 일생을 통해서 어떻게 구현되는가? 우리가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걸 헤쳐서 찾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다 가문에서 두 명이 등장해야 돼요. 한 명은 뭐로 등장하느냐? 여기서 약간 복잡한데 잘 들어보세요. 요셉은 다음 시간에 할 거고. 주께서 허락하시면. 겸손해야 돼.

38장에 유다 집안에서 두 명이 등장해요. 한쪽은 의인이 등장해야 되고, 한쪽은 뭐냐? 그냥 죄인이 아니고, 의인도 아닌 자가 의인이라고 우긴 것 때문에 죄인 된 사람이 있어야 돼요. 우리는 누굽니까? 우리고, 우리가 잘 나가는 것 때문에 졸지에 우리한테 밉상 받아서 죽었던 죄인, 예수님이 돼야 돼요. 이것이 유다 집안에 적용됩니다. 유다에 있어서 의인이라 하는 것은 뭐냐? 자기 것을 힘써 지키는 거예요.

그런데 유다가 자기 것을 지키려고 지킨 게 아닙니다. 사람이 원래 촌 동네에, 요새 촌 동네에 비상 걸렸습니다만, 촌 동네에 십 년 넘도록 도둑 한번 안 들면 아무도 문 열어놓고 가고 열쇠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어느 날 밤에 고추 말려 놓은 것 홀랑 가져가면 그때부터 바쁩니다. 전부다. 단도리하기 바빠요. 열쇠 잠그고 창고 잠그고 자율방범대 소집하고 그렇잖아요.

하나님께서 하는 작업이 그거에요. 가만있으면 놔두는데 하나님이 유다 식구들을 하나둘 씩 죽여 버려요. 죽이면 사람이, 지렁이도 밟으면 뭐한다? 꿈틀하죠. 하나님 쪽에서 먼저 시비 걸었으니까 안 죽으려고 대비할 수밖에 없죠. 여기에 인간이 자기도 모르는 자기의 본색이 노출되는 순간입니다.

교회에서 전에 제가 있던 교회에 새벽기도할 때 보면, 평소에 새벽기도 늘 나오시는 분들은 새벽잠 없는 노인들이 나와요. 놀기 삼아 할 일도 없겠다 교회 오는데, 가끔 젊은 아낙 오면 가슴이 덜렁 내려앉아요. 일 터졌어, 일 터졌어. 보면 어르신네 기도하고 가면 목사도 마지막까지 목사 티를 내야 되니까 할 것도 없이 앉아있는 거예요. 책 보면서 끝까지 남아 있어야 기도 많이 한 소리 들으니까 남아있는데 계속 남아있는 거예요. 저게 한나가? 한나 잘못 건드리면 엘리 되니까 조심해야 되는데.

그래 마치면 가정 이야기하고 들어보면 전혀 심각하지 않는 것, 남편하고 싸운 것, 갑자기 남편이 사랑이 애정이 식어졌다. 전혀 안 중요한 것, 이런 것. 그분이 온 것은 뭐냐 하면, 기도는 남편 미워서 화풀이한 것이고, 사실은 처방전 얻으러 온 거예요. 목사는 라이센스, 자격증 있으니까. 내린 처방전이 뭐냐 하면, 하루에 성경 석 장 보시고, 예배 빠지지 말고 쭉 참석하시고, 30분 전에 미리 오셔서 찬양하시고, 오후예배 빠지지 마시고. 이게 처방전이라. 내가 이리 내리겠습니까? 보통 이걸 기대하는 거예요.

문제는 이 아낙이, 하나님이 고요하고 평온한 가정에 풍파를 일으키니까 속에 있는 드디어 종교심이 발동하는데 이게 신앙이겠습니까 아니면 극구 자기 것을 사수하겠는 것, 이만큼은 빼앗기지만 남아있는 것은 지키자. 남아있는 것을 지키자는 그러니까 내 것을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거예요.

‘주여, 이것만은 아닙니다. 진짜 이것까지 가져가면 나 교회 안 나옵니다. 이것만은 못 놓습니다. 다만 주께서 시키는 대로 해줄 테니까 이것만은 빼앗지 마세요.’ 주께서 시키는 게 뭡니까? 목사의 처방전이에요. 십일조 떼어먹은 적 있습니까? 십일조 떼어먹었구나. 어허, 그러니까 벌 받지. 반말을 해야 돼. 벌 받지.

사실은 매주일 아침이 되면 교인들이 사주팔자 보러옵니다. ‘주여, 기도 몇 번 했는데 복 얼마나 받겠습니까? 이번에 착한 일 좀 했는데 복 많이 받겠지요? 이번에 애 고3인데 내가 이만큼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데 많이 도와주이소.’ 사주팔자 보러오는 거예요. 사주팔자든 뭐든 가만 놔두세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제가 강의 처음에 뭐라 했습니까?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아무 차질 없이 이뤄집니다.

결국은 하나님은 이걸 무로 돌리는데 유다는 인간의 본성상 내 것을 빼기지 않겠다고 셋째 아들, 셀라를 안 줍니다. 하나님 약속에 의하면 형제간에 자식이 없을 때는 그 형수가 있을 때 형수하고 마지막 아들하고 반드시 혼인해서 둘이 결혼문제, 짝짜궁 사랑문제가 아닙니다. 무슨 문제냐 하면, 자식 생산이에요. 왜냐?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자식이 나와야 되니까 자식 생산의 문제입니다.

이게 서양사를 보면 나오는데, 남녀간에 부부간에 애정문제에서 거론한 것은, 화목한 가정은 이거는 18세기,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때 천성의 문제에요. 그전의 문제는 뭐냐 하면, 부부간에 정은 애초부터 없어요. 남자는 다른 사창가에 가서 풀고, 여자는 여자대로 풀고. 오직 뭐만 하느냐 하면, 자식 생산에 열중한 거예요.

왜냐하면 그 당시 기독교 분위기 때문에. 자식을 낳으면 뭘 받았다? 복 받았고, 자식 없으면 저주 받은 여자에요. 자식 없으면 저주 받은 여자기 때문에 쫓겨나도 할 말이 없어요. 우리나라도 그랬잖아요. 지금은 이 시대 와서 조강지처클럽 해서 조강지처 따지지 옛날에는 선비들이나 조강지처 따지지 밑에는 누가 누군지 그땐 분간도 안 될 시대에요. 상놈 계급에는 대중, 민중들은 그렇게 살았어요.

그때 중요한 것은 사랑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보리 고개가 중요하지. 보리 고개를 넘겨야 난을 치고 시조하지 배고픈데 시조가 어디 나와요. 농민들의 모든 우리나라 노래는 뭐냐 하면, 배고파서 나오는 한 맺힌 노래에요. 선비들의 노래와 민중들의 노래가 달라요. 죽지 못해 사는 거예요. 이 시대도 마찬가지에요

다말은 자식이 있어야 하나님께 사랑받은 여자라 하는 것이 자기 확인이 되는 겁니다. 내가 자식을 낳아야 복 받은 여자라는 것이 분위기가 그렇기 때문에 지금 마지막 셀라, 몇 살 연하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요새는 연하고 뭐고 따지기보다 자식이 문제니까. 하는데 유다가 안 내놓네. 왜? 성경에 나오지요. 그 이유가 나옵니다.

38장 11절. “유다가 그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비 집에 있어서(친정으로 보내버린기라)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그거는 핑계고) 셀라도 형들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사실은 딴 속셈이 있었어요.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12절) 세월이 많이 흘렀지요. 그래도 아무 소식이 없어요. 유다는 우선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 안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왔다 이 말이죠.

왔을 때 다말이 자기 얼굴을 가리고 창녀 짓을 해서 유다와 관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을 보게 되면 요즘 윤리관으론 좀 이상한 게 있어요. 이상한 것 따져볼게요. 7절에 봅시다.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서 악을 행함으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이 7절에서 장자 엘이 지은 죄는 다음 중 어느 것입니까? 일번, 사창가 갔다. 이번, 도박했다. 삼번, 게을렀다. 사번, 모르겠다. 몇 번입니까? 모르지요. 우리는 모릅니다. 모르는데 일번은 아니지요. 창녀하고 잤다. 이건 아니지요. 그 이유가 뭡니까? 창녀하고 자서 죽었다면 아버지 유다도 창녀하고 잤으니까 죽어야 돼요.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첫째 아들이 왜 죽었는지 그거는 모르겠다. 보기에 있지요. 모르겠는데 아마 미루어보건대 두 번째 아들 죽은 게 뭡니까? 하나님의 약속된 자식 낳는 것을 소홀히 했던 그걸 태만이 여겼던. 여기 왜냐하면 오난이 죽은 이유가 뭡니까? 지 아 되기 싫어서 자식 생산을 소홀히 했잖아요. 별로 안 중요하게, ‘이게 뭐 중요하노. 다음에 낳지.’ 했단 말이죠. 그걸로 인하여 여호와께 죽은 걸로 봐서 지금 이 이야기 초점이 하나님 약속의 자식 생산을 도대체 이 유다 집안에서 누가 발견하느냐? 여기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말이죠. 제 짐작인데.

거기다 소설을 쓰고 동화를 쓴다고 이야기를 덧붙인다면 왜 그러면 첫째 아들, 둘째 아들이 다말을 자식 낳기를 싫어했던가? 이야기니까 이거는 하나님 계시 아닙니다. 그냥 덧붙였는데 다말이 아마 못 생겼는기라. 그놈의 자식 낳아봐야 못생긴 자식 낳으면 골치 아플까 싶어서 슬슬 핑계 삼아 때려치워버리고, 더 예쁜 여자 만나서 예쁜 아 낳으려고 그런 계산 안 했겠는가. 그렇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 시아버지가 별로 며느리에 대해서 사랑을 안 주는 것 같아요. 다말이 창녀로 변장해도 얼굴을 대놓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 얼굴 보면 정이 다 떨어져서 면박 쓰고 했지.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야담이 아니고 뭐가 중요하냐 하면, 28절 봅시다. “임신하고 보고 쌍태라 해산할 때 손이 나오는지라” 손이 나올 때 산파가 ‘아이고, 이놈이 장자구나’ 하고 잡았는데 이게 약을 올리나. 손이 나왔다가 나온 손이 빠지네. 빠지고 예상치도 못한 다른 놈이 나와서 바톤터치 해서 먼저 튀어나오네. 손을 잡아서 빨간 홍사로 감아놨는데 그냥 쑥 들어가 버리고, 다른 동생이 튀어나와서 산파가 할 수 없이 먼저 온 놈 받아야 될 것 아닙니까? 나중 된 놈이 먼저 되고, 먼저 된 놈이 나중 돼버렸어요.

이런 일이 뭐 있지요. 기억나지요.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요셉에게 작용하지만 그냥 잠잠해있을 잠잠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던 이 유다 가정에 뭔가 일이 터져서 바로 야곱과 에서에게 벌어졌던 그러한 뭔가 뒤바뀜 현상이 또다시 여기서 터져버립니다. 이것은 뭐냐? 요셉이나 요셉의 복을 받을 이 양쪽 다 어디 통솔 하에 있다? 하나님의 주신 야곱의 하나님의 주의 계시 안에서 못 벗어나는 그런 입장에 놓여있다는 겁니다.

그냥 아 줄 때 쌍둥이 주면 될 건데 하나님이 뭔 재주를 부려서 나오다 하다가 말고. 이것은 뭘 알려주려고 합니까? 먼저 나온 놈이 먼저 나온 놈이 아니라는 겁니다. 먼저 나온 놈이 먼저 나온 게 아닌 것은 무슨 가치관에 있어서 이 유의 세계에서 있음의 세계에서 뭔가 변동이 일어나야 된다. 변동이 없으면 그건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는 겁니다.

소위 나는 착하다 하는 놈은 죄인 돼야 돼요. 죄인이라 여기는 자가 의인되는 어떤 완전히 역전 되는 우리의 기존 상식을 깨는 뒤집어지는 어떤 인간도 자기가, 오만 것 다 나와야 되겠다, 정말. 참, 유의 세계다, 정말. 뭔가 있음에 자기가 의라고 자부하는 것이 뒤집어지는 거예요.

뒤집어질 때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여기 다말이, 참 중요한 것 이것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야곱이 받은 계시를 그 다음 절차로 누가 받아야 됩니까? 당연히 유다가 받아야 될 건데 유다는 유의 세계에서 빠져야 되고, 죄인=무 아닙니까? 의가 없으니까. 죄인이 된 누구 자리? 다말이 여기 자리해서 야곱의 계시가 정작 받을 주체자가 유다는 빠지고, 다말이 받아서 유다에게 전달하는 다말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는. 마태복음 1장에. 완전히 역전된.

따라서 유다는 이번 자식 낳는데 아무것도 기여한 바 없고, 자기가 아무것도 어떻게 보탬이 된 것도 없이 몽땅 누구의 은혜라? 우리 주님께서 알아서 다 해주신 덕분에 세상에 없던 자식 둘 생겼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셋째 아들도 살았고. 셋째 아들도 살았고 아들 둘 생기고 그래서 그들은 둘이 잘 먹고 잘 살았단다. 동화책의 마지막에. 부자 되고 잘 먹고 잘 살았단다. 우리말로 고치면 결국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천국 가서 잘 먹고 잘 살았단다. 이래 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있음에 내 의가 있다고 여기고 이 의를 사수하고 가진 재산과 자식 사수하고 아마 평생 이 식으로 살아갑니다. 익히 아시오니 십자가를 잊지 말고 내가 죽어야 주님이 따로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된 그 공로를 주님께 들을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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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