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59: 9-15 (온통 어두움 뿐)
사 59: 9-15 (온통 어두움 뿐)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이사야 59장 9-15절
제목 : 온통 어두움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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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8-09-17 21:02
온통 어두움 뿐
2008년 9월 17일 본문 말씀: 이사야 59:9-15
(사 59:9) 『그러므로 공평이 우리에게서 멀고 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두움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 행하므로』
(사 59:10) 『우리가 소경 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 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 때 같이 넘어지니 우리는 강장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
(사 59:11) 『우리가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공평을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
(사 59:12) 『대저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거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
(사 59:13) 『우리가 여호와를 배반하고 인정치 아니하며 우리 하나님을 좇는데서 돌이켜 포학과 패역을 말하며 거짓말을 마음에 잉태하여 발하니』
(사 59:14)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
(사 59:15)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시고 그 공평이 없은 것을 기뻐 아니하시고』
오늘 본문은 그동안 자기 세상관을 고집하다가 다 그것이 거짓되고 허망하다는 사실을 알고 후회하는 대목입니다. 특히 ‘우리가 여호와를 배반하고’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시한 세상 구조를 거부한 결과로 나옵니다. 즉 인간들은 나름대로 세상을 구조적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 이해가 결국 하나님이 제시한 세상 구조를 배척하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내가 보았던 세상 구조는 잘못된 것이었고 이 현실 세상은 모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의 구조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들의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세상은 결국 ‘어두움’이다 는 말입니다. 어두움이란 개인적인 노력과 성실로 개선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땅거미져서 어두워진 세상을 개인적으로 열심이 부채질 한다고 해서 물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두움으로 덮쳐진 세상에서 개인적인 윤리와 도덕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두움은 그냥 어두움으로 보면 됩니다. 바로 이러한 안목이 성도에게만 주어지는 안목입니다.
세상 전체를 어두움으로 보게 되면, 여기서는 크기나 규모를 가지고 우열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 되어 버립니다. 큰 빌딩이나 작은 빌딩이나 어두움에 묻혀버리면 구분되지를 않고 양쪽 다 어둡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이 세상의 그 어두운 속성을 철저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빛이 얼마나 고맙고 고귀한가가 확실하게 다가오는 겁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사람들은 무얼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아름다운 추억을 조립하고들 있습니다. 다채롭고 화려하게 자신의 긴 꼬리를 장식하지만 그러한 자기 역사 쌓기가 도리어 자신을 더욱더 힘들게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어두움의 특징은 무섭다는데 있습니다. 어두움 속에는 알 수 없는 공포심으로 충만해있습니다.
인간은 줄기차게 두려움과 두려움을 드러냅니다. 자신을 두렵게 하는 모든 것이 외부에서 온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공포란 자신의 기억이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어두움을 물러 받았습니다. 어두움으로 가득 차 있는 인간의 마음에서 공포가 유발합니다.
온갖 것들이 다 공포거리로 다가오는 겁니다. 마음의 평안이란 없습니다. 이 공포를 지워버리기 위해서 인간들은 세상을 나름대로 구조틀을 가지고 다듬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이 지어낸 세상 구조는 다 꿈에 불과합니다. 시편 73:19-20에 보면,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의 세계는 ‘전원 사망’입니다. 왜 전원 사망인가요? 모두들 꿈을 꾸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꿈이 아닌 참된 현실은 거지 나사로가 갔던 그 천국의 관점에서 세상을 소급해서 보는 것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은 모두 연극 무대에 지나지 않고 그 연극 무대가 철거되면 남는 곳은 지옥, 아니면 천국, 천국 아니면 지옥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세운 세상 구조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 땅에서 분주하기 이를 데 없는 일상의 삶을 삽니다. 정신없이 삽니다.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것 가운데서 형상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만든 세상구조입니다. 자신이 과거 경험한 것이 축적이 되어 정리했다고 주장하는 세상 구조입니다.
그것이 ‘어두움’에 묻혀 있는 어두움이라는 사실은 그들은 알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무서운 공포에 쫓기듯이 부지런히 도망치면서 살지만 실은 그런 식의 세상관은 모두 자신이 지어낸 허망일 뿐이라는 점을 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지옥에 온 사람들의 맨 처음 탄식이 뭐겠습니까? “어찌하여 내가 이곳에 왔는고!”가 될 것입니다.
즉 지옥에 온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신 세상 구조를 뒤늦게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세상 구조를 배격하게 만든 것은 자신이 만든 허망한 세상구조틀임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이 살려고 힘들고 애써 왔는 것은 모두 하룻밤의 꿈으로 깨어져 흩어져 버릴 것들이었습니다.
꿈이란 비현실이요 비실체입니다. 꿈만을 꾸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없건만 실제로는 모든 인간이 다 꿈만을 지어내면서 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인간이 지어내는 꿈이란 공포로 가득 차 있는 꿈입니다. 무서움을 유발시키는 꿈들입니다. 마음의 평화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사실을 말해줍니다.
즉 여호와를 배반하면 결국 남는 것은 모든 것이 ‘어두움’에 해당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과연 하나님의 대안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어두움에 대해서 충분히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자기 자신이 철저한 어두움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매일같이 자신의 기억을 준해서 새로운 세상 구조를 창출하는 그런 자아요, 그 세상 구조로 인해 공포를 늘 유발시키면서 살아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어두움에 충실할 때 비로소 빛이란 나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외침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압니다. 빛이란 내가 만든 세상 구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진 결과로 우리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빛이란 하나님의 구조만이 현실임을 알려주시는 계기입니다.
즉 세상이란 지옥과 천국으로만 되어있는 구조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꿈처럼 유령처럼 홀연히 다 날아가고 흩어져버릴 인식들입니다. 에베소서 4:8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생각한 세상 구조만 고집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순종의 아들들이었으며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당기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랬던 우리들이 에베소서 5:14에 보면,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듣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이 명령은 인간의 노력으로 저지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들이 이 명령을 지킬 범주를 벗어나서 주어지는 겁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식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사람을 찾아가는 식으로 빛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겁니다. 우리 속에 빛이 들어온다면 우리는 오로지 빛으로만 감시하고 평화를 얻게 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밑바닥을 보게 하소서. 지남철이 있어 지옥으로 갈 자와 천국으로 갈 자를 당기고 있는 그 하나님의 구조를 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