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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마가복음 7장 1- 7절 제목 :율법과 복음설교마가복음

막 7: 1- 7 (율법과 복음)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마가복음 7장 1- 7절
제목 : 율법과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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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

08-09-14 13:23

율법과 복음

2008년 9월 14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7:1-7

(막 7: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막 7: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막 7: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막 7: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막 7: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막 7: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막 7: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사람마다 개성이 다 다릅니다. 자기 개성만 옳다고 주장할 수 없다. 하나님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같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교인들 모여 있지만 모인 사람 숫자만큼이나 예수가 다 각색입니다. 따라서 내가 믿는 것이 옳다고 우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자들을 대하게 됩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 식으로 하나님 믿기가 우리들이 믿는 식이 아니라는 단지 그 이유만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곧 우리 자신들이 믿는 것 위주로 하나님께 일하신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슨 식으로 일하십니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거론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식으로 믿는 그 방식조차 다 하나님께서 이미 예언한 대로라는 겁니다. 즉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의 주장도 오직 하나님의 예언하신 약속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들의 관심사가 ‘내가 믿는 방식’에 쏠리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예언 해석이 어떠한가에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배척한 이스라엘의 그 어느 행위에 대해서 예수님은 다 선지자 예언 속에 들어있는 내용이라서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만 될 일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들이 우기는 ‘나 만의 방식’도 다 선지자의 예언 속에 들어있는 내용입니다.

예수님 보시기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예언을 전달하는 매개체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야만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만의 구원 방식이 그들과 대조가 되는 상황을 유발하면서 뚜렷해질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짊어지고 가는 민족입니다. 율법의 운반체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그들에게 있어 율법 준수가 합당합니다.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십계명은 모세가 직접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그 안에는 자기 백성이 지킬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대로 준수하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되겠느냐고 따지고 나올 만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보시기에 그런 안목조차 예언대로 되어질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방식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율법은 무엇입니까? 율법은 옛 부대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찢어져야 하는 겁니다. 마치 오래간 만이 고향에 내려가서 만나게 되는 폐가된 옛집을 대하는 것 같습니다. 폐가 속으로 들어가려면 맨 먼저 만나는 것이 거미줄입니다. 그 거미줄은 철거되어야 하겠지요. 이와마찬가지로 거룩한 율법은 철거의 대상일 뿐입니다. 거미줄이라는 율법이 철거되어야 저 안에 생명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법을 철거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데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본인들부터가 법이 아니라 자신을 설명 못하는 처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온갖 법으로 자신의 몸을 칭칭 감고 다닙니다. 즉 법을 통해서 자신의 정당함을 과시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법으로 자기 정당함을 말하지 못한다면 어디가도 자신을 내세울 것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세상은 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속의 한 인간도 법적으로 자기 존재함을 남들 앞에서 증명해낼 것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교인되고 법적으로 남편 되고 법적으로 자식되고 모든 것이 법의 그물망으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누가 자기를 말할 때에도 법적으로 정해진 자리로서 불러달라고 합니다. 그럴 때 법으로 답변하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곧 자기 존재의 당당함을 확인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실로 된 야구공을 끝까지 실을 풀어가면 그 안에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듯이, 법으로 칭칭 감겨 있는 인간을 끝까지 풀어가면 거기에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 앞에 나타나신 것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즉 법으로서는 하나님이 주시려는 생명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법 말고 다른 바탕에 담긴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법을 제외하고 평소에 살아 갈 줄을 모릅니다. 어디서도 법이 있고 그 법을 내가 지키고 있다는 조건 안에서 비로소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하늘 나라에게도 살 권리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보시기에 그것은 어디까지 옛 부대에 불과합니다.

복음이란 법이 없는 곳에 담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법이 없이 자아를 재구성할 수 있을까요? 창세기 12:3에 보면,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구원이 나의 법적인 철저함에서 성사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 외곽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열심히 자기 관리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 쪽에 함께 서 계십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이미 아브라함을 축복과 저주의 기준으로 삼았다. 어쩔건데”라고 나옵니다.

갈라디아서 3장에서 이 구원의 기준을 율법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주어지기 이미 430년 전에 복과 구원의 기준으로 아브라함 식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결코 ‘율법의 행함’으로 구원받고 복받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인되고 구원받았다’는 겁니다.

그 뒤 430년 뒤에 율법이 주어지면서 율법의 존재 역할은 모든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저주 아래 있음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즉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신 새 부대와 새 술은,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지 결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다”입니다. 즉 “병든 자라야 의사가 필요하지 건장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치 않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법으로 자기를 무장합니까? 그것은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만사를 ‘원인과 결과’로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이 원인이 되면 결과는 자신의 행함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 겁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예언을 오해한 겁니다. 선악과는 원인-결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속의 죄를 끄집어내기 위함입니다. 그 죄가 무엇일까요?

그 죄는 바로 ‘지배욕’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늘 나라에게 누가 더 높으냐고 쟁론이 일어났을 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남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도리어 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 하시기를 내가 온 것은 지배하려 함이란 섬기려 하고 심지어 내 목숨까지 대속희생물로 바친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십자가가 우리 발 밑에 있습니다. 진정 구원받는 자라면 우리 속이 타인에 대한 지배욕으로 충만해 있으며 이런 죄까지 십자가의 피로 구원되었음을 믿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가 죽기까지 복종했습니다. 우리는 평생을 두고 그 십자가 자리의 우리의 원래 자리임을 잊어서는 아니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을 법적으로 정당함을 내세우지 말게 하옵소서. 우리 발 밑으로 내려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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