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0-전도서(강의정리)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0-전도서(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43)
04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20 - 전도서2
04,10,16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물레방아 도는 내력은 ??
* 질문 - 복음을 전하기는 전하는데요?
이 십자가의 복음은 죽은 거지 나사로를 코앞에 데리고 와도 믿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사로가 죽어서 가보았으니 자기는 다 알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는데, 택함을 받지 못했으면 말이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 9절에 보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말이다.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고전 2:9)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자기의 그 어떤 행동과도 전혀 상관없이, 자기가 전과 12범이고, 자기 가정과 남의 가정을 박살을 내었어도, 그보다 더한 짓을 했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어떤 경우에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이 복음밖에 없다는 말이다.
* 질문 - 가을을 타는지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어요?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이 십자가의 복음은 봄을 타든, 가을을 타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골프나 다른 것을 즐기는데, 그렇게 골프를 쳐보면 골프도사가 얼마나 많고, 낚시를 해도 낚시도사가 얼마나 많은지, 어찌 그리 잘난 놈들이 많은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서도 자기도 그렇게 잘났다고 한번 해보지만, 그러나 제대로 되지 않으니 또 허망함을 느끼고, 그러면 또 다시 다른 것을 찾아서 시도를 하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욕망을 따라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집사님이 전도를 하는데, 그것이 옳고 좋은 일이라고 여기는데, 그런데 그 전도도 자주 해보면 그 방면에 전도도사가 또 따로 있다는 것이다. 자기는 한 달에 3명이나 했다고 너무나 좋아하는데, 저쪽에서는 30명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거기서 또 허망함을 느끼고 말이다.
그것을 철학에서는 '프럭스'(???) 라고 하는데, 즉 "인생은 흐름이다" 라는 것이다. 조영남이 노래한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이라고나 할까? 마치 독 안에 든 쥐가 여기로 올라갔다가 떨어지고, 또한 저기로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공부할 '전도서' 라는 말이다.
◈ 인생은 일종의 게임 !!
학교에 가보면 교사들이 두 가지 타입이 있는데, 물론 다른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하나는 승진을 하려는 쪽과,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냥 인생을 즐기면서 그런 것에 아둥바둥하지 않는 쪽이 있는데, "골치 아프게 무슨 승진시험이고, 나는 그런 것은 싫다" 라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는데, 둘 다 자기 성질대로 할뿐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런 것도 고스톱처럼 일종의 게임이라는 것이다. 즉 자기와의 싸움이고 타인과의 싸움인데, 그리고 또 주위에 있는 수많은 시선과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승진시험을 치던, "세월아, 네월아" 라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모두가 다 나름대로 게임을 한다는 말이다.
* 질문 - 하지만 직장에서 그런 승진하는 것이 정당하면 되는데, 그냥 아부나 뇌물로 승부를 하려고 하니,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까?
하지만 인생은 그런 것도 모두 포함이 된 일종의 게임인데, 예를 들어서, 여기 이렇게 장기와 바둑을 두고 있다면, 어떤 바둑은 둘 줄 모르지만 장기는 둘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가 바둑에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바둑에 대해서 훈수를 하지 못하겠지만, 하지만 장기판에 가서는 자기가 장기를 알고 있으면 얼마든지 훈수를 한다는 것이다.
◈ 아부는 아부대로, 시험은 시험대로 !!
무슨 말인고 하니, 직장에서 아부를 하는 사람은 '승진시험' 이란 바둑은 모르지만, 그러나 '아부' 라는 장기는 잘 안다는 말이다. 비록 보기에 좀 눈꼴시러워서 그렇지 말이다. 그러니 인간이 자기가 잘하는 것에 대해서 실력발휘를 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부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아부하는 게임이 자기 적성이 맞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아부를 하지 않고, 고지식하게 시험을 잘 쳐서 승진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면 되고 말이다.
◈ 인간은 다들 자기 적성에 맞게 !!
직장을 그만두고 학원을 하고 식당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의 적성에 그것이 맞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직장상사에 아부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잘한 것이 아니고 말이다. 자기는 그런 직장에 있는 것이 자기 적성에 맞지 않기 때문에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또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부는 하지 않지만, 대충 대충 적당히 하는 사람은 그것이 자기 적성에 맞고 말이다.
마치 개미가 음식이 있으면 후각으로 그것을 찾아가듯이, 인간은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누가 말린다고 될 문제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영생을 얻을 자는 영생을 얻게 되어있고, 영생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백 날을 교회에 데려다놓아도 그 교회만 개판을 만들고, 자기는 또 그 교회에 나오지도 않고 말이다.
* 질문 - 제가 만약에 제 삶 속에서 복음적인 요소를 찾지 못한다면요? 이렇게 성경공부라도 하면 좀 나은 것 같고, 목사님도 말씀을 하셨지만 인간은 자기 적성이 맞게 그렇게 살아가는데, 그것으로 그냥 끝인지, 아니면 복음을 알면 차이가 좀 나는지 말입니다.
그것이 말이 안 되는 것이, 복음적인 요소 자체가 없는데 찾기는 어떻게 어디에서 찾겠는가? 그리고 살아가는 것도 차이가 좀 있기는 한데 말이다. 어떤 차이가 있는고 하니까, 사람이 움직여서 성과가 있으면 참으로 좋을 텐데, 하지만 그 어떤 일을 달성해 놓으면 반드시 그 양만큼의 허탈감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자기가 원하는 여성과 결혼을 했다면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말이다. 물론 그러면 성취감은 있겠지만, 그것이 6개월을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또 다른 정복 대상자를 찾아 나선다는 말이다. 마치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말이다.
◈ 말씀에 비추는 것 자체가 !!
우리가 이렇게 성경공부를 함으로서 그것을 점검하게 되는데, 그것이 큰 효과라는 것이다. 점검해서 얻어지는 효과가 아니라, 점검하는 그 자체라는 말이다. 그래서 성경인데, 이때 '경(經)' 이라는 한자가 '거울' 이라는. 즉 비춘다는 의미라는 말이다. 물론 거울 '鏡' 이란 한자 따로 있기는 하지만,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불경의 '경'은?)
* 질문 - 그러니 성경공부를 해서 새로운 것이 자꾸만 습득되는 개념이 아니라 비추어 본다는, 즉 "거울을 보고 사는가? 아니면 보지 않고 사는가?" 라는 것이란 말씀이지요?
그렇게 말씀을 보지 않고 살아가면 계속해서 자기 변명과 자기 방어가 시도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자기 의(義)인데, 물론 지옥에 가는 자들의 특징이고 말이다. 지금 기존 교회들을 보면 다들 얼마나 잘났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그렇게 거울에 비추어보면 어떠한가요?
그야말로 'X-RAY'에 비치는 바로 그러한 모습인데, 그냥 죽어있는 해골바가지라는 것이다. 얼마 있지 않으면 모두들 죽을 우리들이 마치 지금은 죽지 않는 것처럼 설치는, 바로 그러한 장난(?), 그런 철딱서니 없음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하지만 그렇게 본들 자기 모습이 변화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변화는 없는데,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더 그런 자기 모습이 밝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밝혀지면서 나오는 것이 '고마움'이고 말이다. "아하, 이런 인간도 구원이 되는구나. 참으로 놀라워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주님이 함께 계신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안심이 되고 마음이 푸근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더욱 더 겸손해지고 말이다. 여전히 'X-RAY'에 비치는 해골바가지이고 뼈다귀이지만 말이다.
◈ 인간은 기억을 다 못하기에 !!
우리 인간은 모든 현상으로 머리 속에 기억을 하지 못하는데, 즉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기존의 있던 것은 잊어버리게 되고, 그 기억의 자리에 새로운 것이 들어온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잊어버리는 것이 가치가 없어서 잊어버리는 것이 아닌데, 하지만 새로운 것을 취하다보니 잊어버린다는 말이다.
왜 아파트에 가면 멀쩡한 가구들이 쓰레기로 많이 나오지 않는가? 그것은 바로 새로운 가구를 샀기 때문에 그러한데, 그것을 처음에 구입할 때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까지 했는데, 하지만 새로운 것이 오니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만 집에 불이 나서 새로 산 가구가 못쓰게 되어버리면, 기존의 있던 기구가 얼마나 필요하겠는가?
◈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어 !!
그렇게 주님께서는 수시로 새로운 것을 찾는 우리의 본성에 대해서, 새로운 것을 주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과거에 있었던 것을 새롭다고 하면서 주신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전도서 1장 1절부터 나오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전 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 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 1: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전 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전 1: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여기 9절에서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 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찾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새롭다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그것이 정말이지 새로워서 새로운 것이 아니라, 잠시 그동안 잊어졌기 때문에 새롭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새로운 것이 없다" 라는 것을 '차이'로 보면 어떤가요?
참 멋진 말을 했는데, 저는 그것을 놀이동산에 있는 '회전목마' 라고 하고 싶은데, 흰색의 목마도 있고, 파란색도 있고, 또 빨간색도 있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처음에는 이것저것 나름대로 골라서 타는데, 그런데 어느 순간이 되면 "아, 희고 파란 것도 별 의미가 없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이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다 알지 못하는데, 왜 평소에 호박 같은 자기 마누라라도 어떤 때는 예쁘게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 질문 - 그것을 본질에는 변화가 없고, 그냥 차이만 있다고 말입니다. '해체철학' 하고 비슷합니까? 모든 민족을 동일하게 보자고 하는, 화이트헤드의 말입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차이만 있다는 것이다. 해체철학과는 조금 다른 말인데, 그리고 모든 민족을 동일하게 보자는 것은 해체철학이 아니고, 그것은 이미 그 이전에 나왔다는 것이다.
* 질문 - 어떤 때는 자기 마누라라도 예쁘게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을 좀 더 설명해주시죠?
그렇게 자기 마누라가 예쁘게 보일 때가 있는데, 물론 얼마 가지 않지만 말이다. 그것은 바로 그동안 마누라를 예뻐했던 그 마음이 소홀함을 당했다는 것이다. 자기 마누라가 예쁜 것이 아니고, 마누라는 예쁘지도 못나지도 않다는 말이다. 자기가 예쁘다고 볼 경우에만 예쁘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런 경우인데, 이렇게 책상 위에 꽃이 있다면, 그 꽃은 자기가 이름을 부를 때만 의미가 되어서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런 김춘수의 '꽃' 이라는 유명한 시(詩)가 있는데, 그 양반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말이다. (아닌데, 11월 29일에 가심) 그렇게 사람은 의미를 줄 때만 의미가 있는데, 아내가 남편을 대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
-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눈짓이 되고 싶다.
----------------------------
◈ 인간은 자기 욕구와 부합이 될 때만 의미를 !!
이렇게 인간은 자기 욕구와 부합이 될 때만 의미를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의미는 가치를 말하는데, 즉 "야, 저것이 진짜 댁길이다(GOOD!)" 라고 했을 때, 그것은 바로 자기의 욕구를 만족시켜주었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 내가 이 나이에 애들하고 놀리 ??
예를 들어서, 20살 때 어느 술집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여자가수를 보았는데 너무 좋았다고 한다면, 그런데 나중에 마흔이 되어서 그 술집의 그 자리에 앉아서 노래를 들었다면 어떻겠는가? 그냥 시시하다는 것이다. "내가 애들하고 놀리? 이 나이에"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환갑이 되어서 그 자리에 앉아보면 또 괜찮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이렇게 사건과 항상 부딪치게 되어있는데, 이것을 '경험', 혹은 '체험' 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람마다 모두가 다르다는 것이다. 10개의 사건에 부딪치는 사람이 있고, 5개만 부딪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부딪칠 때마다 인간은 자기 욕구와 부합해서 자기 의미로 저장하는데, 그것을 '기억' 이라고 하고 말이다.
◈ 역사는, 기억과 기억의 조화로서 !!
인간은 그렇게 해서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데, 그때 저장을 해놓은 자기 기억과 조화를 해서 무엇을 만드는고 하니, 개인의 '역사'를 만든다는 것이다. 즉 "20살에 이렇게 고생을 했고, 30살에 이렇게 고생을 했으니, 40살에는 그만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라고 하면서, 그렇게 고리를 만들게 되는데, 그것은 물론 남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자기만의 게임이니 말이다.
예를 들어서, 여기에 이렇게 퍼즐이 있는데, 이것을 저는 이렇게 이렇게 깔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은 또 다르게 깔아서 맞춘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그냥 아무렇게나 까는 것이 아니고 모두들 자기의 기억했던 것을 가지고 그렇게 깐다는 말이다. 즉 자기가 경험했던 것을 가지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사람마다 모두 인생관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다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의 경험과 기억이 또 따로 있기에 말이다.
◈ 성격차이는 당연한데 !!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결혼을 하자말자 종종 헤어지곤 하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들이 살아온 경험과 기억들이 모두 다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옛날에도 그러했지만 말이다. 즉 각자의 사건들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데, 그것을 두고서 '성격차이' 라고 한다는 말이다. 즉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꼭 저의 경험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마누라가 자꾸만 잔소리를 해대는데, "여보, 설거지를 하면서 왜 그릇을 엎어놓지 않아요? 물기가 그대로 남잖아요."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신랑은 뭐라고 하는가? "아니, 엎어놓으나 바로 해놓으나 어차피 또 사용할 건데, 너무 그렇게 야단을 치지 말아"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 이제는 여자가 돈을 벌고 남자가 살림을 살면, 그렇게 서로 입장에 바뀌어서 난리를 피우고 말이다. 이제는 신랑이 "내가 오늘 집안을 청소하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는데, 신발에 흙이나 틀고 들어와야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인간은 경험은 모두 우발성 !!
그렇게 인간은 자기가 경험한 것을 의미를 만들게 되는데, 그런 경험은 누가 주는 것인가? 이 경험은 '우발성' 인데, 즉 자기가 골라잡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가 다른 사람의 인생관을 강요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이야기하면, 복음은 찾아온 사람에게만 해당이 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에서, 즉 자기의 욕구와 만나서 의미가 생기고, 그런 의미가 모여서 기억이 되고, 그러한 기억이 모여서 자기만의 인생을, 즉 자기만의 역사를 만든다는 것이다. 즉 "나만의 역사가 나만의 인생관이 된다" 라는 것이다.
◈ 하지만 십자가 앞에서 모든 것이 '꽝' !!
이제 제가 하는 말의 뜻을 알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인생관이 십자가 앞에 가면, 즉 자기의 그런 과거와 모든 경험들이 다 묵사발이 되어버리고, 남는 것은 오로지 하나뿐인데,"너는 죄인이야" 라는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말이다. 한국사람이든, 미국사람이든, 그 누가 그 어떤 우발적인 경험을 했던지 간에, 모두 그렇게 박살이 나고 만다는 것이다.
* 질문 - 시간의 중심을 십자가로 볼 수 있나요? 목사님이 이전에 말씀하기를, "십자가를 중심으로 해서 과거로 빨려 들어가고 미래로 빨려 들어간다" 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십자가에서는 시간이 모두 깨어지고 마는데, 시간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게 시간을 염두에 둔 것이 바로 구속사인데, 저는 그런 구속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십자가까지는 모이지만,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는 역사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 십자가는 마치 블랙홀과 같아서 !!
다시 말해서, 이 십자가는 마치 블랙홀과도 같아서, 그 앞에서는 모든 질량조차도 다 없어지고, 그냥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십자가는 모든 것을 다 빨아 당겨서 없애버리는 블랙홀의 그 중심 구멍과도 같다는 말이다.
이렇게 십자가 앞에서 인간의 모든 역사와 경험이 없어지는데, 즉 자기가 어느 교회에 다녔고 성경을 얼마나 읽었고 기도는 얼마나 했는지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빨려 들어가서 튀어나올 때는 어떠한고 하니, '의미 없음'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바로 이 '의미 없음'이 두 글자로 '복음' 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 전도서의 '복음' - 5번 헛되도다 !!
이것을 전도서에는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헛되다고 하는 것이 5번이나 나오는데, 4번을 헛되다고 해놓고는, 마지막에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전 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하는가? "아니야. 헛되지 않아" 라고 주장을 는데, 하지만 전도서는 그것을 두고 "그것도 이미 다 과거에 한바퀴 돈 것이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옛날에 있던 것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 질문 - 보통 사람들이 "시간이 있고, 그 속에 내가 살았지" 라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게 하는데, 그리고 역사는 있는 것이 아니고 역사를 만든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각자 자기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가 자기에게 있다고 할 수 있고 말이다. 그러니 서로의 역사가 다 달라야 한다는 말이다.
◈ 아니, 삼성하고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야?
그래서 제 마누라가 "야, 이번에 삼성이 이겼어" 라고 하면, 저는 뭐라고 대답하는고 하니까, "그것이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 있지" 라고 하는데, 참으로 멋진 말이라는 것이다. 저는 그것을 통해서 복음을 정리하게 되는데, 그러니 마누라 있음이 저에게는 하나의 경험이고, 그것이 복음을 연구하고 증거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두 유 언더스탠드?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연속을 보고 있으면, 마누라가 시비를 거는데, "당신은 왜 연속극을 보는데?" 라고 말이다. 그러면 저는 "왜? 내 재미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기쁜 것은, 복음이 다 맞아떨어진다는 말이다.
역사 자체는 없는 것이고, 또한 사람마다 역사는 다 다른데, 그것은 그렇게 개인이 만들어가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역사가 각 사람마다 튀어나오니, 이것을 두고서 "역사를 생산한다" 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이것을 '산포(散布)', 즉 '흩어진다' 라고 하는데, 삼포만두가 아니고 말이다. 즉 "역사는 나오면서 흩어진다" 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렇게 해서 큰 것을 정리하면 하나의 민족의 역사가 되는 것인가요?
물론 당연한데, 우리는 한국민족이라는 우발성 속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임의성(?)' 이라고 하는데, 즉 자기가 선택하지 않고 주어졌다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한국민족이기 때문에 "아, 대한민국, 으라차차차"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베트남 사람들은 이런 것이 당연히 싫다는 말이다. 지금 베트남 사람들은 돈을 버는데 미쳐있는데 말이다.
◈ 하이데거 - 인간은 던져진 존재이다 !!
이것을 두고서 '던져진 존재' 라는 의미에서 '피투성 존재(被投性 存在)' 라고 하는데, 즉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이 세상에 그냥 던져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툭'하고 던져진 존재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
※ 던져진 존재 -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 중에 '던져진 존재'란 말이 있다. 한자로 표현할 때는 '피투성 존재(被投性 存在)'라 하고 독일어로는 'Geworfenheit'라 쓴다. 뜻인즉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의사와는 전연 관계없이 이 세상에 던져졌다. 누군가에 의하여 던져지고 무언가에 의하여 이 세상 안으로 던져졌다. 이렇게 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이 세상 안에서 살아가도록 규정되어졌기에 '세계 내 존재(世界內 存在, In der Welt Sein)'라 일컫는다. - 네이버에서
------------------------------------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는 왜 그렇게 가난한가?" 라고 하는 것이 말이 안 되는데, 즉 가난한 우리 아버지가 자기를 낳았지, 자기가 부자인 아버지를 선택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왜 아버지는 나를 낳으셨나요?" 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안경 - 나는 왜 볼펜이 아닌가 ??
예를 들어서, 여기 이렇게 안경이 있는데, 이 안경이 말하기를 "나는 왜 볼펜이 되지 못했는가?" 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자기를 그렇게 안경이라고 불러주기 전까지는 안경이 없었는데, 그러니 안경은 누군가가 안경이라고 부를 때 비로소 자기는 안경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너는 이제부터 안경이다" 라고 하면 그것이 계속해서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경이 한다는 말이 "나는 이제부터 안경을 안 할래" 라고 한다면,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 안경은 자기에게 그렇게 안경이 안 된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안경 됨은 자기 말고 누군가가 자기를 안경이라고 불러준 것이 재료가 되어서 그렇게 된 것이기에 말이다.
◈ 나는 제주감귤이 싫어 ??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예? 재미가 있다구요? 여기 이렇게 제주감귤이 있는데, 이것을 분명히 사람이 만들었는데, 그런데 이 제주감귤이 의식이 있어서 한다는 말이 "나는 제주감귤이 싫어. 거제도 감귤을 할거야" 라고 한다면, 상대방이 뭐라고 하겠는가? "너는 제주도에서 자라고 만들었기 때문에 제주도 감귤이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제주감귤이 제주도가 아니고 거제도 감귤이라고 하면, "나는 거제도 감귤이 될 거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져버린다는 말이다. 제주도 감귤이기 때문에 "나는 거제도 감귤이 될 거야" 라고 하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거제도 감귤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고로, 울릉도는 감귤이 아닌 탱자임, ㅋㅋ)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왜 여기 이 집에 태어났습니까?" 라고 하는 말 자체가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맞습니다" 라는 말과 같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 아버지에게 왜 자기를 낳았느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그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면 그런 질문을 할 필요도, 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
바꾸어서 말하면, "하나님이 누구입니까?" 라고 묻는 것 자체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창조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묻는다는 것이다. 즉 인간들이 신을 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만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부터는 맛이 가서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을 거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본성에 어긋나는 발언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된 진원지가 바로 악마라는 말이다.
* 질문 - 니체가 "신은 죽었다" 라고 한 것도 신의 존재를 인정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네요?
당연히 그러한데, 니체까지 갈 필요도 없이 로마서 1장 28절에 보면,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인간을 이 말씀 한 마디로 그냥 다 조져버리는 것인데, 즉 하나님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싫어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누구인가?" 라고 하면서 자기 혼자 고민하고, 그렇게 하면서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인 줄 모르고 말이다. 그래서 20절에 보면, "핑계치 못할지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그렇게 주디(?)를 벌리고 나불거리는 니는 누구인가?" 라고 하나님께서 묻는다는 말이다.
(롬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롬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 질문 - 그러면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거부하는 인생을 살게 되네요?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인생을 다 일치시켜서 말씀한다는 것이다. 철학은 그렇게 못하고 다 각자 각자 달리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각자의 권리를 존중해주자는 의미에서 말이다. 하지만 성경은 이것을 하나로 뭉쳐서 뭐라고 하는고 하니, '아담 안'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아주 얄밉도록(?) 간단하게 말이다.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 안' 이고 말이다.
* 질문 - 사춘기의 아이들을 보면 '하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는데요?
그것은 청소년들뿐만이 아니라 나이가 80세가 되어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떡을 먹으라고 하면 죽어도 안 먹다가 먹지 말라고 하면 먹는다는 말이다.
* 질문 - "인간은 왜 행동하는가?" 라는 글을 쓰신 목적은 무엇인가요?
정말 재미있는 내용인데, 그리고 그 이유가 서론에 나와있다는 것이다. 즉 성도도 아닌 성령도 받지 못한 것들이 성도이고 싶어 할 때, 그들은 어떤 행위론과 윤리관과 인생관이 펼쳐 보이는지, 바로 그것을 살펴보고 고발하는 차원에서 썼다는 것이다.
◈ 만약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었다면 !!
지금까지 강의한 것을 다시 정리하면, 인간은 자기에게만 주어진 우발적인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이 이런 경우인데, 30년 동안을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그만 교통사고가 일어나서 하루아침에 장애자가 되었다고 하면 말이다.
자기는 그런 것이 TV 드라마나 VJ 특공대에나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더욱이 그것도 상방과실도 아니고, 일방적으로 뒤에서 들이박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억울하고 황당하겠느냐는 것이다. 평생동안 휠체어를 타야만 하니 말이다.
그런 경험은 특수한 것이지 보편적인 경험은 아닌데, 그런데 그렇게 장애자가 되고 난 뒤에는 전에 다른 장애자인 친구가 "너는 경험을 하지 않아서 몰라" 라고 했던 것이 잊혀졌었는데, 사실은 무의식 속에 남아있던 것이지만 말이다. 그것이 회상이 되면서, "아하, 이렇게 되니 그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했구나"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그렇게 되면서 그 말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말이다.
◈ 이제는 그 장애자의 경험을 자기 '의미'로 !!
그렇게 자기가 장애자가 되는 경험을 했는데, 이제는 그 장애자의 경험을 '의미'로 만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만 자살할까요? 아내와 이혼할까요?" 라고 하면서 말이다. 사실 그렇게 되면 자기 신세가 쭈글스러운데(?), 과거에는 나이트클럽에도 가서 춤도 추고 하다가, 이젠 그냥 의자에 앉아있어야만 하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인간의 욕구는 무엇인가? 물론 인간의 욕망은 마귀가 준 것인데, 그러니 의미가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의 정당화는 인간의 기억인데, 그런데 인간은 자꾸만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을 정리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장애자가 되어도 올림픽에도 나가고 인간답게 살잖아" 라고 말이다. 그러니 필요 없는 기억들은 지워버리고,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을 그렇게 편집해나간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그렇게 장애인이 되어도 인간승리를 했다고 하는 것만 골라서 말이다.
◈ 역사를 만들러 산으로 갈까요 ??
이런 것이 모아져서 자기 역사가 되고, 그 역사는 한 줄로 세우게 되는데, 그 역사에는 물론 과거도 있지만, 현재와 함께 미래상도 포함이 된다는 것이다. 장애인이 되었다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훈련해서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고 국위선양을 하고 연금도 받고 하는, 그러한 꿈을 꾸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나중에 자기의 '인생관'이 되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합니까?" 라고 누군가가 질문을 하면, "제가 이렇게 뜻하게 않게 장애자가 되었지만, 그러나 앞으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봉사하는 보람있는 인간이 되겠습니다" 라고 하는, 그 생각은 영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 왜 '죄' 인가? 그 이유는 단 하나 !!
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전체를 통 털어서 한 글자로 조져버리는데, 그것이 바로 '죄(罪)' 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죄인가? 그 사람이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말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봉사를 하겠다고 하는데 말이다. 자기는 그런 꿈도 꾸지 못하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이 전체가 왜 죄가 되는고 하니, 이 전체가 어디에서 나왔는고 하니, '아담 안'에서 나왔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바람을 피우고 마누라를 패고 도둑질을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이 십자가 앞에서 모든 것이 다 죄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 자체가 말이다. 왜냐하면, 그 이유는 단 하나인데, '아담 안'에 있기에 말이다.
◈ 심판의 기준은 오직 십자가 !!
다시 말해서, 이 십자가는 이 세상의 인간이 경험하고 해서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만든 모든 의미를 다 총괄해서 심판을 해버리는데, 그러니 바로 그 심판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자기의 경험과 역사가 아니라, '십자가' 라는 말이다. 그것도 마지막 심판 때에 말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나를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의 능력을 받아서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이 곧 '그리스도 안' 이란 말이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러니 저녁에 한참 축구를 열심히 보고 있는데, 마누라가 와서 다른 곳에 틀려고 하면 "이게 어디서. 하늘같은 남편이 축구를 보고 있는데?" 라고 하지 말고, "아하, 이것이 복음이다" 라고 하면 양보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TV를 하나 더 구입하면 해결되지 싶어도, 그러면 새로 산 TV를 보려고 또 싸우겠지만 말이다.
* 질문 - 장애인 올림픽은 연금도 없고, 영 문제가 많나봐요?
연금을 기존 올림픽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적게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장애인 연금이 축소되고 올림픽 메달 연금을 받든지 해서, 그러니 따지고 보면 혜택이 없다는 말이다.
◈ 아담 안과 예수 안 !!
그건 그렇고, 지금 이 부분이 오늘 공부한 것 중에서 제일로 어려운 부분인데, 이것을 그림으로 한번 그려보면, 자기가 결혼을 해서 의미를 만들고, 또 기억을 해서 그것이 역사를 만들고, 그것이 인생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이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대로 움직인다는 말이다. 물론 그것은 아담 안인데, 그러니 무엇을 해도 죄가 되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 안' 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 글자로 '은혜' 라고 하고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죄가 있는 곳에 뭐가 넘친다구요? 은혜가 더욱 더 넘친다는 것이다. 그것이 로마서 5장의 말씀이고 말이다.
(롬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롬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 '나'만의 구속사를 !!
하지만 여기에 비해서 지옥으로 가기로 작정된 불신자들은 어떠한가? 예수님의 은혜가 없기 때문에, 이 '아담 안'에서 자기의 힘으로 구원을 받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경험으로 알게 된, 즉 착한 일하기, 교회봉사하기, 헌금하기, 기도하기 등등, 그렇게 그것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의 의미를 만들어서, 소위 '자기만의 구속사'를 만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는 7살 때 어떻게 했고, 17살 때 어떻게 했고, 또한 27살 때 어떻게 했고" 라는 것을 가지고, 그렇게 해서 자기 역사의 미래에서는 "장차 나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인간은 자기 인생관을 주장하게 되는데, 그런데 그것이 바로 로마서에서 말하는 '행함' 이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행함을 주장하게 되는가? 도무지 은혜를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어차피 여기 이 아담 안에서 행함으로 결판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인간은 도저히 이 아담 안을 벗어날 수 없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은혜가 이것을 감싸버린다는 것이다. 즉 은혜가 덧입혀진다는 말이다.
* 질문 - 수학에서의 집합과는 좀 다른 것 같은데요? 포함관계인지, 함유관계인지 말입니다.
그런 집합에 관한 것은 화이트헤드의 '집합론'에 잘 나오는데, 어떻게 부분집합이면서도 도리어 전체를 삼키고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수학에서는 복음의 실질적인 내용이 없는데, 논리만 있을 뿐이지 말이다.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런데 죄가 은혜를 살필 수 있나요?
물론 살펴볼 수는 있는데, 마귀의 하수인들이 예수님을 죽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 죽음의 범위가 확장이 되는데, 즉 부활의 입장에서 죽음이 무엇이냐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숨이 멈추는 것이 죽음이 아니라 지옥에 가는 것이 죽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행함을 주장하는 목사들은 이런 것이 없기 때문에, 특히 CCC 간사들이 심한데, 죽으니 사나 이것으로, 즉 인간의 행함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자의 나름대로의 인생관을 심어주려고 하는데, 즉 "괜찮은 인생관이 너를 구원한다" 라고 말이다.
◈ 목사는 포주임에 분명한데 !!
다시 말해서, "무엇을 행하라. 그러면 의미가 생기고, 그런 의미를 모으면 너의 구속사가 되고, 그런 구속사의 끝에는 찬란한 미래가 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미래는 아직까지 '...' 인데, 끝이 나지 않았으니, 그러게 구라를 친다는 말이다. 그런 인생관 심어주고 팔아먹는 장사를 하면서, 중간에서 커미션을 받고 말이다. 그래서 제가 얼마 전에 글을 쓰면서 목사를 '포주' 라고 했다는 것이다.
* 질문 - 아하, 그런 인생관을 팔아먹는군요. 미래는 '...'이니 구라를 치고 말입니다.
물론 그러한데, "지금까지는 이렇게 이렇게 했기 때문에, 앞으로 이렇게 됩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는 '...' 이 없는데, 여기서 제 말을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 이 없다고 해서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그 은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오는데, 우리가 행함을 잘해서 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이 땅에 있는 모든 종교는 다 인생관을 팔아먹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데, 그래서 점을 치러 가는 것이나 교회에 가는 것이나 똑같다는 말이다. 아까 목사들이 포주라고 했는데, 이 포주의 특징이 바로 매춘부를 장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들의 정신을 말이다. 즉 불순한 동기를 가지고 온 교인들을 신과 연결해주고서 커미션을 챙긴다는 말이다.
교인들의 불순한 동기가 무엇인고 하니, "우리 아이가 고3이라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데", 또 "우리 신랑이 직장에서 진급을 잘해야 하는데" 라고 하는 것인데, 바로 그러한 자들을 신과 연결해주고는 그 대가로 커미션을 챙기니, 그것이 바로 포주들이 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말이다.
* 질문 - 광야의 외치는 소리라고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좀 알 것 같네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야말로 블래홀 중의 블랙홀이라는 것이다. 이 블랙홀조차도 십자가 앞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말이다. 찬란한 미래이고 뭐고 다 날아가고 없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주님을 직접 만나고 보니, 그래서 부활의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니까, 자기가 너무 좁게 이 세상을 바라보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 전도서는, 부활이 없는 관점에서의 인생관 !!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전도서는 무엇인고 하니, 부활이 없는 관점에서 이 세상을 살펴보면, 5번이나 헛되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헛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세상이 아니냐는 말이다. 그것이 제대로 된 인생관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 글을 읽으면 전혀 어려움이 없이 읽을 수가 있는데, 그래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좀 잘못이 있어도, 쉽게 용서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 니가 우발성을 당했구나.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을 경험했구나" 라고 하면서 말이다.
아이들은 잘한 것에 대해서는 기뻐하지만,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좌절할 수 있는데, 어른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닌데, 그런데 심약한 아이들은 그만 자빠진다는 것이다. "야,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잊어버려. 내가 맛있는 돈가스를 해줄게" 라고 하면 되는데, 그런데 엄마가 더 설치면서 "아이쿠, 그렇게 비싼 과외를 해도 안 되고, 나가라 이 놈아"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 복음을 안다면, 속아도 좋지 아니한가?
그래서 성경말씀에 보면, 정확한 구절이 당장 생각이 잘 안 나는데, "복음을 아는 자가 싸우지 말고 참아라. 또 속여도 그냥 두어라.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정도의 넓은 생각의 소유자들인데, 그 정도의 속임을 당해도 괜찮아" 라고 말이다. 고린도전서에 있지 싶은데, 아무런 그런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고전 6:6)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고전 6:7)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 질문 - 그렇다면 행함을 주장하는 자들이 그렇게 무식한 놈들은 아닐 텐데, 왜 그런 짓을 하지요?
이것을(?) 직선으로 만들어서, 바로 그 직선의 끝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이다. '구약' 다음에 '십자가', 그리고 마지막에 '예수님의 재림', 그런 식으로 말이다. 바로 이런 직선을 두고 '개인적인 구속사' 라고 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아까 말한 것처럼 "내가 유아세례를 받았고, 그리고 좋은 대학에 갔고, 그래서 좋은 직장에 갔고, 장가를 잘 갔다" 라고, 그렇게 의미를 둔다는 것이다. 자기가 어려서부터 세례를 받고 열심히 교회에 잘 다녔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 인생이 잘되었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점진적 역사관이네요?
그렇지요. 점점 더 발전한다는 것이다. 점점 더 공적이 쌓여서 그 공적으로 마침내 천국에 골인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천주교인데, 그래서 그들은 믿기는 해도 제대로 믿지 못한 사람들은 연옥에 집어넣어서 훈련을(?) 받고 나온다는 것이다. 마치 패자부활전을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연옥을 '림프스' 라고 하는데, 물론 괜찮은 놈은 바로 천국으로 가고 말이다.
* 질문 - 하나님의 은혜가 죄가 있는 채로 덮친다고 하는 것을 몰라서, 그들이 실수(?)하는 건가요?
지금 이 직선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것인데, 그들은 차츰 나아지는 것을 성화라고 하는데, 1980년에 술과 담배를 끊고, 85년에 여자를 끊고 말이다.
* 질문 - 하나님의 은혜가 덮쳐진 아브라함,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덮쳐진 노아를 왜 이근호 목사는 인정하지 않느냐고 하는데, 즉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일을 하는데 말입니다. 왜 그것을 죄라고 하는지, 그것을 가지고 시비를 건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과거에는 이렇게 직선으로 생각했는데, 그런데 은혜가 임하고 난 뒤에는 그것이 아니라, 물론 아브라함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는데, 하지만 예수님께서 앞당겨서 아브라함에게 침투했다는 것이다. 미리 말이다.
* 질문 - 목사님이 이것을 과거에 강의를 하셨을 때, 어떻게 표현했는고 하니, 자기는 절벽인 줄 알고 걸어갔는데, 그것이 둥근 것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래요?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무튼 사람들이 직선의 자기 역사를 포기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것이 자기 기억이고, 그 기억은 자기에게 유리하고 의미가 있는 것들만 모여있기에 말이다. 그 의미는 자기가 경험한 것에서만 생긴다는 것인데, 그것이 곧 인간의 개인적인 역사라는 말이다.
◈ 인간은 자기가 경험을 해봐야 가치를 !!
예를 들어서, 이런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룰루랄라 랄라룰루' 라고 방언기도를 해본 사람만이 그런 방언에 가치를 두는 것이지, 아무런 방언도 해보지도 못한 사람은 전혀 그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요? 인간은 이렇게 경험을 해봐야 가치를 둔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므로 그런 아브라함과 노아에게 은혜를 주신 분은 하나님인데, 어차피 자기들이 아무리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들은 죽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당연한데, 그들이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쌓아온 자기의 인생관 자체가 다 깨어지고 마니,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성경적 교육관이니 성경적 물질관이니 하는 것들이 다 의미가 없네요? 요즘 성경적 아버지관도 등장하는데 말입니다.
물론 의미가 없는데,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말이다. 어떻게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함부로 그런 헛소리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십자가의 피를 모독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 이제 본격적으로 전도서를 !!
이제 본격적으로 전도서를 보겠는데, 이렇게 공부를 하고 나서 이 전도서를 보게 되면 쉽게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일단 1장을 4절부터 한번 살펴보자.
(전 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전 1:5)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전 1: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 던 곳으로 돌아가고
(전 1: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여기 4절에 보자면,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라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요? 땅은 그대로 있는데, 그 어떤 종류의 인간들이 오더라도, 즉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다 있어도, 의사이든, 판사이든, 목사이든, 또한 도둑놈이든 간에 말이다.
◈ 이 땅에는 헛된 놈들만이 오고가는데 !!
그러한 모든 놈들이 다 헛되고 헛된 놈들이고, 이 땅에 그런 놈들만이 오고간다는 것이다. 마치 땅에 바람이 불 듯이 말이다. 그것이 곧 6절의 말씀인데, 이 바람은 대통령이 그렇게 불어라고 시켜서 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분다는 것이다.
아까 제주도 감귤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가 아무리 거제도 감귤이 되고 싶어도, 그것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도 물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자기 마음으로 고를 수 있다는 것이 불교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런데 왜 사람들이 목사님의 주장을 불교하고 비슷하다고 말들을 하는가요? 제가 보기에 전혀 다른데 말입니다. '지식불교(유식불교?)' 라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것하고 비슷하다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요? 제가 한국교회를 그렇게 절이라고 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되고 말았구만. (ㅋㅋ)
* 질문 - 저도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다니는 친구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했더니만, 그 친구도 불교의 불경하고 비슷한 것 같다고 하던데요? 자기는 불경에 관심이 있어서 좀 읽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저하고 3시간 가까이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말입니다.
지금 제가 말하는 것에는 은혜와 죄가 있는데, 그런데 불교에는 이런 '죄'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불교에는 직선이 아니라 둥글다고 하는 것까지는 비슷하게 되는데, 그러니 이것을 '죄' 라고 규정할 수가 있는 십자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복음은 불교와 180도 다른데, 즉 불교는 자기들의 그러한 주장이 저주의 대상임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 해체철학 - 언어가 진리를 담을 수 없어 !!
인간은 그렇게 직선으로 오다가, 요즘은 철학이나 과학도 직선에서 둥글게 나아가는데, 그것이 아까 질문한 데리다의 '해체철학'이고 말이다. 이런 해체철학이 주장하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그 진리를 언어가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담으면 '죽죽' 자꾸만 미끌어지는데, 그것을 '차연', 혹은 '지연' 이라고 하고 말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언어자체가 진리를 담지 못하는데, 도대체 어느 놈이 진리라고 말하느냐는 것이다. 도저히 언어자체를 담을 수가 없는데 말이다. 그것이 해체철학인데, 그러니 인간은 각자 각자 경험에 의해서 당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당하면서 살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데리라는 스스로 자기를 해체시켰고(?) 말이다.
--------------------
※ 차연 [差延, differance(프)] -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독자적으로 만들어 사용한 비평 용어.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독특한 방법으로 만들어낸 신조어로 그의 독자적인 비평작업인 해체비평의 관건이 되는 비평 용어이다. 자크 데리다에 따르면, 'differance(디페랑스)'는 프랑스어 'difference(차이)'의 어미 '-ence'를 '-ance'로 바꾸어서 만든 것으로, 그의 해체적 반인식론(anti-epistemology)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관련어들을 지칭하기 위한 독특한 조어이다. 그래서 차연은 차이(변별성)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연기' 또는 '지연'이라는 의미도 나타낸다. 자크 데리다에게 있어서 단어도 아니고 개념도 아닌 이 용어는 두 가지 의미(차이, 지연)를 모두 작동시키며, 어떤 순간에도 어느 한쪽만의 의미로는 환원되지 않는다. 즉 'difference'의 'e'에서 'differance'의 'a'로의 미묘한 이동은, 결과적으로 텍스트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결정되어 있거나 확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의미작용의 연쇄 속에서 하나의 대체 가능한 언어해석으로부터 다른 해석으로 지연된다는 자크 데리다의 주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차연이 내포하고 있는 두 가지 의미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는 사전에서 단어의 정의를 찾는 원리로서 설명할 수 있다. 즉, 어떤 단어는 그것이 아닌 다른 단어에 의해, 즉 단어들간의 차이에 따라 정의되고, 그러한 정의는 의미의 가능성에 한계를 가지게 한다. 그리고 의미의 가능성은 필연적으로 지연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단어는 그와 다른 단어에 의해서만 정의되는데, 그 다른 단어 역시 또 그와 다른 단어로 이루어진 정의를 필요로 하게 되는 등 이런 식으로 끝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차연이라는 용어 자체도 자크 데리다의 용법에서는 불안정하게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용어를 확정된 개념으로 고정시켜 사용한다면 이 용어가 지닌 효력과 불확정성에 대한 강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 두산백과
-------------------------
◈ 화엄경 - 부분 속에 전체가, 전체 속에 부분이 !!
그래서 인생의 해답을 찾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인데, 그 어느 인간이나 다 똑같으니 말이다. 그러니 여기에 불교적인 모습이 다분히 있는데, 화엄경 같은 경우에 "부분 속에 전체가 들어있고, 전체 속에 부분이 들어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고 하니, 예를 들어서, 밤하늘이 달이 하나밖에 없지만, 그러나 그릇이 깨어지면 파편 하나 하나에 모두 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달은 분명 하나이지만, 그런데 전 세계에 흐르는 강물마다에 모두 달이 있다는 것이다. 동일한 달이 강물에 다 비치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어느 것이 진짜 달인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당시는 과학시대가 아니었기에 그러한 주장이 가능했겠지만 말이다. 즉 하늘에 떠있는 달도 자기가 있음에 알 수 있는, 그것을 '유식사상(唯識思想)' 이라고 하는데, 즉 오로지 자기가 아는 것에서만 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
※ 유식사상(唯識思想) - 우주의 궁극적 실체는 오직 마음 뿐으로서, 외계의 대상은 단지 마음이 나타난 결과라는 불교사상 - 두산백과
------------------------
◈ 청년들아 더 이상 늦기 전에 !!
그러니 이런 내용은 동그란 것 안에서 다 이야기되는 것이고, 하지만 전도서는 다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도서는 마지막에 심판을 이야기하니 말이다. 그래서 "청년들아, 이것 자체를 심판할 수 있는 분이 밖에 또 계시니, 늦기 전에 그것을 기억하라" 라는 말이다. 그것이 곧 전도서 1장 1절에 나오는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즉 '다윗언약' 이라는 말이다.
(전 1: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 12: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 때가 되매, 나타나는데 !!
그러니 하나님의 언약이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 보면 "때가 차매" 라고 하면서, 그렇게 때가 되어서 나타나는데, 때가 되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즉 다윗의 자손이 때가 되매 나타난 것이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미 계시는데, 때가 되매 재림을 하고 말이다. 아직은 나타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마치 연기자들이 무대 뒤에서 대기하다가 자기 순서가 되어서 나타나서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듯이, 그렇게 노아나 아브라함도 무대에서 연기를 했는데, 그런데 그때에는 자기의 구원자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물론 자기가 죄인임은 알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자기가 맡은 연기를 다하고 무대를 내려오니까, 처음부터 계셨던 자기의 구원자인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그러한 예수님을 만나보고 기뻐했다는 것이다.
◈ 아브라함은 '나'를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
그것이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데, 그래서 유대인들이 "니가 아브라함보다 나이가 많나?" 라고 하면서 빈정거리는데,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기들이 보기에 외관상(?)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50세를(?) 넘기지 못해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실제로 아브라함을 만난 것을 이야기하는데 말이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역사 속에 갇혀 있으니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 8: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 8:57)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하지만 아브라함은 보이지 않는 분에 의해서 태어났는데, 그것을 두 자로 '믿음' 이라고 하는데, 그러므로 믿음은 이런 직선의 역사를 넘어서는데, 즉 자기는 죄인이며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죄에서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아브라함은 이런 십자가를 경험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나중에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다 알게 된다는 것이다.
◈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 !!
그것이 바로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서로 대화를 하는데 나타나는데, 그 대화의 내용이 바로 십자가인데, 즉 "주님, 언제 십자가에 돌아가십니까?" 라는 것인데, 그런데 제자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여기가 좋사오니"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산밑으로 내려가야만 십자가를 지게 되고, 자기의 죄도 용서받는 것을 전혀 모른다는 말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냥 놀기 삼아(?) 산 위에서 집을 짓고 다함께 살자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할 수가 없고, 산밑에 내려가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야 만이 모세도 구원을 받고 엘리야도 구원을 받고, 자기 제자들도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 오잉, 처소가 곧 성령 !!
그래서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베드로가 하는 말이 "예수님, 제가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하니, 예수님은 "안 돼. 따라 오지마" 라고 했는데, 아직 그럴 때가 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처소'가 마련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죄인이 영원토록 살 수 있는 처소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에 말이다. 그래서 처소가 마련이 되면 다시 오겠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성령' 이라는 말이다. 엄청 어려운 말이지만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제 성령이 오시게 되면 제자들은 예수님만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이 오게 되면 "아바, 아버지"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