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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2-이사야2(강의정리)자유게시판이사야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2-이사야2(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43)

04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22 - 이사야2

04,11,06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너'와 '나'의 하나님은 다 가짜 !!

* 질문 -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그 복음을 소개하면, 그래도 성경을 나름대로 비판적으로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하는데요? 예수님께만 너무 치우치지를 말고 말입니다.

그런 주장이 듣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그러나 균형이라는 것이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인데, 예수님이 무슨 균형을 맞추었는지 물어보라는 것이다. 조직신학을 어설프게 알면 또 그런 소리를 하고 말이다. 결국은 서로 받은 것이 다르니 그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복음을 전해야 하고 말이다.

◈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왜 모르는가?

지난 시간에 이사야서를 마지막에 시작을 하면서 전체적으로 간략하게 말씀을 드렸는데, 다시 요약을 해보면, 이 이사야서의 특징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과 동행하며, 또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왜 하나님을 모르는가?" 라는 것이다. 거기에 대한 정답은 단 하나인데, 하나님이 찾아오지 않았으니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왜 하나님을 모르는가?" 라는 의식 가운데는 무엇이 담겨있는고 하니, 우리가 열심히 제대로 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다고 하는, 그런 의식자체를 이사야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는 말이다. 즉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님은 전부가 다 허구라는 것이다.

◈ 우상은 언약이 없어 !!

그래서 이사야서에서는 인간이 만든 하나님을 두 글자로 '우상' 이라고 하는데, 우상과 진짜 하나님의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우상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없고 하나님에게는 언약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상에는 왜 그런 언약이 없는가? 우상은 인간이 만들기 때문에, 도저히 언약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언약자체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그러므로 언약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물론 사람도 언약을 만들면 되기는 되는데, "지성이면 감천이다. 바치면 복을 받는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언약을 만들어도 전혀 소용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만들어도 전혀 그 언약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실효성이 없는 언약은 언약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만든 언약은 미래성도 없고, 미래에 된다는 보장도 없고, 그냥 과거를 회고적으로 서술할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의 역사는 미래를 미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상태에서 과거를 회상하듯이 현재 자기 느낌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인간의 역사는 미래를 미는 힘이 없어 !!

그래서 인간의 행함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인데, 지금 자기의 행함이 미래를 전혀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아무리 열심히 행해도 미래에 하나님께서 갚아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이 인간의 행함이 가지는 치명적인(?) 약점이고 말이다.

◈ 미래는 하나님의 언약대로만 움직여 !!

그렇다면 미래는 무엇이 주도하는가? 하나님의 언약대로만 움직인다는 것이다. 즉 '언약' 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자기 맹세대로 미래는 그렇게 펼쳐지는데, 그 맹세는 하나님의 자기 능력에서만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위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언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죄악으로 드러나고 말이다.

* 질문 - 그래도 인간들은 끊임없이 행함을 추구하잖아요?

그것이 바로 인간들이 죄인이기 때문인데, 물론 인간의 행함은 확률적으로도 전혀 '제로'이고 말이다. 왜 그런고 하니, 예를 들어서, "동쪽에서 해가 뜬다" 라고 하는 것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데, 그것은 서쪽에서 해가 뜰 확률은 제로이고 동쪽에서는 100%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동쪽에서 해가 뜬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알게 하신 것인데, 그러니 인간은 무엇만 아는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해를 주관하신다는 것만을 알뿐이지, 즉 내일 동쪽에서 해가 뜬다는 것은 인간이 전혀 보장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인간은 단지 확률적으로만 알뿐 !!

그렇게 하나님께서 해를 주관하신다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발견할 수가 있는데, 즉 신앙인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아멘'이라고 하겠지만, 그러나 불신자들은 "아니냐, 그것은 확률적으로 그래"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인가? 아니면 확률인가?" 라고 하는 논쟁이 일어나고 말이다.

이번에 보이저 5호가 화성에 간다고 난리를 치는데, 그것은 울트라(?) 컴퓨터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근거에 의해서 계산을 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일일이 다 해놓고는 미국 사람들은 기도를 하고, 한국 사람들이라면 돼지머리를 놓고서 고사를 지내고, 그렇게 난리를 친다는 것이다.

◈ 인간의 행함은, 일종의 몸부림 !!

이번에 나사의 왕복우주선이 그만 폭발을 해서 7명이나 죽고 했는데, 어디 확률이 모자라서 그렇게 되었는가? 사람들의 목숨도 그렇고, 그게 도대체 돈이 얼마인데 말이다. 우리로는 상상도 못하는 금액인데, 그러므로 인간의 행함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만들어준 조건 속에서 움직이는 일종의 몸부림이라는 것이다.

◈ 인간은 마치 묶인 강아지와 같아서 !!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이야기하기를, "인간은 마치 목에 밧줄이 묶여있는 강아지와도 같다" 라고 했는데, 즉 막대기에서 밧줄의 길이까지, 그렇게 일정한 범위 안에서만 자기가 알아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 아무리 설치고 마구 돌아다녀도, 결단코 막대기와 그 묶인 줄의 범위를 벗어나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너는 묶여있다" 라고 하면, 개의 입장에서는 엄청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유로워" 라고 항변하지만, 하지만 분명히 묶여 있는데, 성경에서는 그런 묶여있는 막대기를 두고서 '죽음'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는 그렇게 묶여서 날마다 늙어가고, 물론 인간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 죽음의 막대기에 매달린 것이 곧 인간 !!

우리가 젊었을 때는 등산도 하고 마치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러나 나이가 한번 들어보라는 것이다.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관절염으로 다리도 아프고, 숨도 엄청 차고, 그것이 제대로 안 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죽음이라는 막대기에 매달려있기 때문에 말이다. 마음은 원하겠지만, 육신이 그렇게 날마다 늙어가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수학에서 '2+2=4'는 과연 진리인가?

이것은 학문의 세계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수학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2+2=4' 라는 것이 진리인 줄로 알았던 그런 순진한(?) 시대가 있었는데, 그런데 러셀 이후에 '2+2=4' 라는 것이 진리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규정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축구는 11명으로 게임을 하는데, 만약에 월드컵에서 12명이 뛰었다면 반칙패(?)가 되고 마는데, 그러면 왜 12명은 안 되는가? 그것은 자기들끼리 11명으로 뛰자고 만들어내었다는 것이다. '피파' 라는 단체에서 말이다. 처음부터 12명으로 뛰자고 했으면 반칙도 아니고 아무런 일도 없는데, 그러니 그것은 하나의 룰이고 약속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약속은 약속의 틀 안에서만 반칙이 성립되는 것이지, 그런데 그 틀을 벗어난 사람에게는 전혀 반칙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자기들끼리 알아서 축구게임을 하겠다고 하는데, 누가 도대체 뭐라고 하겠는가?

◈ 언약을 믿지 않으면 죄도 없어 ??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인데, 이 언약에 의해서 죄가 생겨나고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웃기고 있네. 나는 그런 거 몰라" 라고 하면서 언약을 포기하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죄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나는 믿지 않는 것이 죄이다" 라고 했는데, 그러면 어떤 경우에 그 사람은 죄가 되지 않겠는가? 예수님께서 "나는 믿지 않는 것이 죄이다" 라고 하는 그 자체를 믿지 않는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는 죄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 세상은 둘로 나누어지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곧 죄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것이 아니라 "예수와 상관없이 나쁜 짓을 해야 만이 죄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말이다. 바로 이러한 두 부류의 싸움이 오늘날의 진정한 싸움이라는 것이다.

◈ 이사야가 왜 고난을 받는가?

여러분은 '이사야서' 라고 하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저는 '고난받은 주의 종'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나는데, 그런데 이사야가 왜 고난을 받는가? 사실은 이 질문과 "예수님은 왜 고난을 받는가?" 라는 것이 동일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강의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제가 다시금 질문을 던지겠는데, "이사야가 왜 고난을 받는가?" 라는 것이다. 먼저 정답을 이야기하자면, 장차 오실 예수님의 영이 먼저 이사야에게 임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사야는 자기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알려주기 위해서 고난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사야만 놓고 보면, 이사야 외에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과 다르기 때문에 고난을 받는데, 즉 하나님이 다르다는 것이다.

◈ 여호와가 다르니 결국 !!

전부가 같은 '여호와'가 아니냐고 할지 몰라도, 물론 껍데기는 여호와가 맞기는 맞는데, 그런데 알맹이는 이사야가 알고 있는 여호와와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잇는 여호와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전혀 정반대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무화과나무가 과실을 많이 맺고, 외양간에 소가 가득하면 어떻게 복인가? 복이 아닌가? 분명히 복이 맞는데,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는 자기가 무슨 통뼈라고(?), 그렇게 무화과나무에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복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한 선지자의 이야기가 과연 그 당시에 먹혀 들어가겠는가?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물론 오늘날에도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고난' 이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까, "왜 당신은 주류가 아닌가?" 라는 것인데, 즉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로,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 한 게임에 축구공은 왜 22개가 아닌가?

얼마 전에 삼촌에게 병 문안을 갔는데, 삼촌이 축구를 보면서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데, "왜 공을 하나만 가지고 저렇게 빼앗으려고 고생을 하지? 그냥 한 사람에게 하나씩 22개를 주면 될텐데" 라고 말이다. 물론 축구를 처음 보는 사람 같으면 모르겠지만, 기존의 축구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도대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론 축구 룰이 그렇기도 하지만, 기존의 자기가 알고 있던 그대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축구를 그렇게 해버리면 원래의 룰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 유명한(?) '관습' 이라고 하는데, 그리고 '관행', 혹은 '문화' 라고 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제도와 상식에 대해서 쉽게 습득해서 적응하려는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서 오셔서 사람들을 향해서 "지금 너희들이 지금 믿는 하나님은 악마이다" 라고 해도, 그것을 거부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서 죽였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지금 우리가 믿는 것이 좋다" 라는 말이다.

* 질문 - 그렇다면 인간은 그런 관습을 즐겨한다는 것입니까?

물론 인간이 관습이나 관행에 얽매이는데, 그렇게 인간을 근본적으로 얽매이게 하는 것을, 갈라디아서 4장에서는 뭐라 하는고 하니, "육에 속한 사람의 특징은 법적(法的)이다" 라고 하는데, 즉 육에 속한 사람은 법에 민감하다는 말이다.

◈ 육의 특징은, 법에 얽매여서 행동을 !!

다시 말해서, 육의 특징은 법에 얽매여서 행동을 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것은 엄청 어려운 이야기인데, 인간에게 있어서 육적인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그것은 바로 법을 의식하면서, 즉 법에 신경을 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란 말이다.

예를 들어서, 택시운전을 하는데 모든 법을 초월해서 자기가 가고 싶은 데로 가는 사람은, 그야말로 영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법을 어겼다고 해서 사고를 내는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왔을 때 자기는 서고 싶어서 선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파란 불이 들어왔을 때는 가고 싶어서 가고 말이다.

◈ 에이 더러워라, 멈춰 서야지 !!

그런데 이에 반해서 똑같은 경우라도, 육적인 사람은 어떻게 하는고 하니, 빨간 불이 들어왔을 때는, "아이, 더러워라. 빨간 불이구나. 서야만 되겠네" 라고 해서 서고, 역시 파란 불이 들어왔을 때도 더러워서 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빨간 불과 파란 불을 의식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영적인 사람은 그것이 아니라, "빨간 불일 때 가면 앞사람이 다치겠네. 그만 서야지" 라고 하고, 또 "파란 불일 때 서게 되면 뒤에 차가 싫어하겠지. 가야지" 라고 해서 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규칙이 영적인 사람의 경우에는, 자기 밖의 규칙이 아니라, 이제는 자기 안에서 자기 자유에 의한 규칙으로 변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영적인 사람은 자기 안에서 그만 법을 완전히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 제사제도를 통해서 구속력을 !!

과거 농경시대에는 여자가 시집을 가면 시댁에 법들이 엄청 많았는데, 왜 그런고 하니 농경시대에는 남편, 시부모, 그리고 시조부모, 이렇게 집단적으로 모여있어야만 되었기에 말이다. 농경시대에는 그런 집단적 노동력이 농사라는 산업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유지시키는 대표적인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제사제도인데, 즉 그런 '제사' 라는 규칙을 지킴으로 말미암아서, 그런 규칙을 내려준 집단에 대해서 무조건 복종하고 순응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 아버님,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

그런데 그렇게 농사를 짓던 새댁이 그만 서울로 올라와서 취직을 하게 되었다면, 자기도 취직을 하고 남편도 취직을 해서, 그렇게 회사에서 경리를 보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수출도 엄청나게 밀리고 해서 야간에는 잔업까지 해가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시골에서 시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오기를 "내일 모래가 제사이니 빨리 내려오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에 일이 그렇게 밀려있어서 도저히 휴가를 내지 못해서, 할 수가 없어서 대답하기를, "아버님, 바빠서 도저히 시간을 내기가 힘들겠습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아버지의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제사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조상 대대로 다져왔던 그 체제가 하루아침에 모두 날아가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법에 적응하고 순응해야 한다는 것에 숙달이 되다가, 그것을 위배함으로서 지금부터는 그런 법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자기를 숙달시킨다는 말이다.

◈ 뇌물교사, 물러가라 !!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단속하다가 허용해주면, 그것으로 만족해하는 학생들이 있는가? 그 다음에는 학교에서 술을 마시려고 하고, 그 다음에는 학교행정에 간섭하고, 또 학생노조를 만들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선생들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 복음의 마지막 적(敵)은, 자기 의로움 !!

그렇게 인간은 법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에는 나오는 유명한 '자기 의(義)' 라는 것이다. 인간의 행함은 법을 동원시키니 말이다. 사도바울은 바로 이것을 복음의 마지막 적(敵)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자기 의로움'을 그렇게 여겼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렇다면 결국 행함을 동원해서 자기 의로움을 합리화시킨다는 말인가요?

그야말로 '아멘'인데, 정확한 지적이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강하게 외치는 것은, 자기도 역시 과거에 그러했다는 말이다. 자기도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는 완벽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어떻게 되었는가?

다시 이야기하겠는데, 법과 연관이 된 것이 무엇이라구요? 한 글자로 '육(肉)' 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영적인 사람이 되면 법을 지킬 의무에서 해방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법을 지킬 의무에서 해방된다고 하는, 이런 이야기를 기존교회에서 하면 난리가 나겠지만, 장사가 안 되니 말이다. 기존교회는 법으로 유지가 되고, 또 돈으로 유지가 되니 말이다.

◈ 교회에 왜 오는가? 바로 '자기 의(義)' !!

교인들은 교회에 와서 법을 지킴으로서 무엇이 생기는고 하니까, '자기 의'가 생기고 말이다. 즉 교인들은 그런 자기 의를 만들기 위해서 교회에 온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의로운데, 이번 주에 복을 안 주기만 해봐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교인들은 이런 것을 원하고, 그것을 중간에서 커미션을 받아먹고 챙겨주는 놈들이 목사이고 말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계속해서 규칙을 정하는데, "집사님, 이번 달에 선교헌금을 했습니까?"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교인들은 선교헌금을 하면서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기분이 그렇게 좋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는 선교헌금까지도 한 그런 괜찮은 인간인데, 그러니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에게 복을 주지 않을 수가 있느냐는 말이다.

◈ 힘드는 만큼 당당해지는 것이, '자기 의(義)' !!

기존교회에서 이번 10월에 무엇을 하는고 하니, 소위 '대심방' 이라는 것인데, 원래 9월인데 정기노회 때문에 늦추어서 말이다. 목사들은 무척 힘이 들어서 싫어할 것 같은데, 사실은 좋아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대심방은 마치 돌아온 제삿날과 같아서 한번 해치우고 나면 큰소리를 칠 수 있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 여보, 정말 수고했어 !!

사실 제삿날이 얼마나 힘이 드는가?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는 정말이지 힘이 드는데,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맞이한다는 것이 말이다. 그런데 한번 제대로 하고 나면 그 집단에서 큰 소리를 칠 수 있다는 것이다. 힘이 드는 만큼 말이다. 그렇게 힘들게 했으니 당당해지는데, 그러니 그것이 바로 '자기 의' 라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이러한 훈련을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시도했던 자들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인데, 즉 모든 국민들로부터 자기 의가 있어야만 행복해진다는 것을 강요했고, 자기들도 역시 고수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똑똑한(?) 인간들이냐는 것이다.

* 질문 - 민노총이나 정의구현사제단과 같은 단체들도 그런 의미가 있지요?

당연한데, 모두 자기 의로 똘똘 뭉친 집단들인데,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고 했는데, 그 말씀을 한번 곰곰이 음미해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말씀에 의하면 천국에 들어가고 못 가는 것은 무엇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고 하니, 그것이 바로 한 글자로 '의(義)' 라는 말이다.

(마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에브리바디, 천국에 못 들어가 !!

그런데 이것을 이미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알아차리고서 전체 국민들을 대상으로 '의' 교육(?)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가니 말이다. 예수님이 천국을 이야기했으니 이미 천국은 있는데, 하지만 천국은 의가 있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의를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만들었는고 하니,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자기 행함으로 지켜서, 그렇게 하면 의가 생기고, 그렇게 해서 생겨난 의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여겼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고 한 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너희들 중에서 아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도 역시 들어가지 못하니 말이다. 그러니 제자들이 큰 착각을 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의 원래 육의 본성이 그렇다는 말이다.

◈ 시험이 없는 공부는 없어 !!

예를 들어서, 시험이 없다고 하면 학생들이 공부를 하겠는가? 그런 학생은 없다는 것이다. 운전면허도 시험을 치니 공부를 하고 말이다. 제가 국가고시에 유일하게 합격한 것이 이 운전면허시험인데, 사실 이것도 엄청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보면 다른 사람을 욕할 문제가 아니라, 복음을 알고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여전히 법을 지켜서 자기 의를 한번 만들어보겠다고 교회에 나온 작자들과 그것을 이용해먹는 먹사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육적인 인간들이냐는 것이다.

◈ 니고데모의 어리석은 질문 !!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가 뭐라고 했는가? "예수님, 어떻게 하면 제가 천국에 갈 수가 있습니까?" 라고 했는데, 이러한 니고데모의 질문의 의도는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그렇게 토대가 되어서 한 그 어떤 행동이 자기로 하여금 천국에 넣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의 그러한 어리석은 질문에 대해서, 그 토대를 니고데모 자신이 아니라, 그 토대를 외부에 두어서, "니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인간에게서는 그 어떤 경우에도 의가 나올 수 없기에 말이다.

이렇게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생각이 완전히 다른데, 니고데모는 "내가 토대가 되어서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 라는 것이고, 예수님은 "밖에 있는 성령에 의해서 밀어 넣음을 당해야만 한다" 라는 것이니 말이다. 즉 육으로 난 것은 육으로 시마이(끝?) 인데, 오직 영으로 난 것만 영으로 이어지고 말이다.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 믿음에서 믿음으로 !!

사도바울은 이것을 그 유명한 로마서 1장 17절에서 강조하기를, "행함에서 믿음으로" 라는 게 아니라, "믿음에서 믿음으로" 라는 것에서 의(義)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사도바울은 "믿음에서 믿음으로" 라고 함으로서 일부러 인간의 행함을 빼버리는데, 왜냐하면 의(義)를 생산하는 주체자는 인간이 아니라 따로 계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로마서에는 기쁜 소식, 즉 '복음' 이라 하고 말이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한국교회를 강 건너 불 구경을 하듯이 바라만 보고 있느냐는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심각한데 말이다. 이것은 보통 중요한 문제가 아닌데, 자기가 아무리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헌신하고, 전도에 열심을 내고 해도 안 된다는 말이다.

◈ 여기는 바리새인들의 천국 !!

만약에 그렇게 천국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아마 그곳은 바리새인들의 천국이라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자기 직업도 없이 그것에만 매진한 사람들인데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완벽하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조차도 마음속으로 음욕을 품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즉 오른쪽 눈이 보고 범죄한 그것을 자기 손으로 뽑아내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어쩔 수가 없는데, 그렇게 인간은 아무리 법을 지킨다고 해도 자기 자신을 자수하는 것은 여전히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여기는 도미노 게임장, 바리새인들 앞으로 !!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산상설교를 누구에게 말씀하시는가? 그 대상이 바로 바리새인들인데, 무슨 말인고 하니, 그 바리새인들 뒤에는 제자들과 우리 자신들이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인간 최고의 정점에 있는 자들이니 말이다.

다시 말해서,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앞자리에 있다면, 그 뒷자리에는 줄줄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구원을 바겠다는 놈들이 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을 밀어버리면, 그 뒤에 있는 인간들도 모두 다 줄줄이 넘어진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게임이 있지요? 처음 하나만 '툭'하고 건드리면 줄줄이 다 넘어지는 말이다. - 아하, 도미노 게임 !!

◈ 기도를 해도 남을 의식하는 것이 인간 !!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에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라고 했는데, 그러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지 않는 인간이 과연 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이런 것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그 나라와 그 의만 구하는 인간들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마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그리고 예수님은 기도할 때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렇게 기도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니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기도가 되는가?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하면, "여기는 기도하는 골방" 이라고 그 입구에 적어놓는 것이 인간인데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반드시 무엇을 해도 남을 의식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기도를 하든지, 금식을 하든지, 그리고 구제를 하든지 말이다. "내가 지금 일주일 금식을 했는데, 조금 볼에 살이 좀 빠졌지?" 라고 하는 것이 인간이란 것이다. 마치 그것을 훈장이나 되는 것처럼 교회 목사들은 경쟁을 부치는데, 그렇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떠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 한국교회는 '육'으로 만들어진 작품 !!

이러한 것들이 모두가 다 육(肉)에서 나온 것인데, 그러니 지금 한국교회는 육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말이다. 육으로 만든 닭도리탕(?) 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만약에 영적인 사람이라면 그렇게 여기지를 않고,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데, 즉 "나의 행함이 아니라 예수님의 행함으로 인해서 내가 영생을 얻게 되었구나" 라고 말이다.

그것이 믿어질 때 그 사람은 더 이상 자기 행함에 대해서 기대를 하지 않는데, 즉 "이번에 이런 착한 일을 했으니, 다음에 이런 복을 받을 것이다" 라고, 그런 예측과 기대를 더 이상 고대하지를 않는데, 그것이 바로 영적인 사람의 특징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자기 미래가 어떻게 되던지 간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에, 즉 예수님께서 한번 붙드신 자를 의롭다하시고, 그렇게 의롭다고 한 자를 끝까지 책임지고 영화롭게 하실 줄을 믿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과연 내일에 대해서 걱정을 하겠는가? 즉 내일 떠오를 저 태양도, 주님의 손에 의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해서 떠오른다는 것이다.

◈ 이사야 53장에 흐르는 고난, 고난, 고난 !!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이사야서를 보면, 이 이사야서의 전편에 흐르는 것이 바로 '고난' 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별히 53장에서 말이다. 5절에서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 라고 하는데, 아니 그분이 왜 찔리는가? 여기에서 그분이 누구인고 하니까, 곧 하나님의 종인데, 그러한 하나님의 종은 열왕기상 8장(?)에 보면 '왕' 이라는 말이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의 종, 즉 왕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고 하는데, 그러니 그 왕이 친히 알고 있는 백성들의 허물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낫기는 누가 낫는가? 그분을 왕으로 인정하는 백성들이 나음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은 각자 자기 갈 길을 가는데, 그분이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는다는 말이다.

◈ 언약적인 참된 이스라엘의 모습은?

그러므로 이사야서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고난받는 하나님이고, 고난받는 메시야인데, 물론 고난의 원인제공은 바로 '내'가 했고 말이다. 그야말로 육적인 우리 자신들 때문에 그분이 고난받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난받는 그분이 왕이 됨으로서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데, 이러한 왕과 백성의 관계가 이사야서에서 말하는 언약적인 참된 이스라엘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사야 선지자가 자기 백성들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했을 때, 과연 백성들이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는가? 박수를 치며 좋아하기는커녕 전혀 동의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이 그렇게 반대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그분이 고난을 받음으로서 낫기는 우리가 대신해서 나았는데, 그런데 이것을 그대로 수용해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자기들의 착함으로, 즉 자기들의 힘으로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다시 말해서, 자기들이 법을 잘 지킬 수 있다는 그런 가능성조차도 완전히 없애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즉 "우리는 그 어떤 법을 주어도 지키지 못한다" 라는 것으로 확정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목사가 무슨 요구를 해도, 그것을 지킬 수 없다는 쪽으로 수용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 나는, 언제나 탐내는 인간 !!

십계명에 보면 "탐내지 말라" 라고 했는데, 그래서 목사가 "여러분, 탐내지 마세요" 라고 설교했다면, 영적인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래, 맞아. 나는 언제나 탐을 내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구나" 라고 받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가만히 있어봐라. 내가 지난번에 몇 번 탐을 내었지? 5번인가? 이번에는 조금 더 줄여야지" 라고 했는데, 그런데 그만 그 다음 주에 7번이나 탐심을 내었다고 하면 뭐라고 하는가? "주여,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라고 하면서, 그렇게 자기 혼자서 지옥에 갔다가 천국에 갔다가 난리가 난다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바로 "탐내지 말라" 라는 법을 선호하고, 그 법을 목표로 해서 그것에 도전을 하려고 시도하다보니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니, 그만 자기의 내신성적(?)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한다는 것이다.

◈ 신념이란, 예수를 믿는 자기 자신을 믿는 것 !!

그런 사람들이 믿는 것은 하나밖에 없는데, 자기가 법을 지킬 수 있는 자기 가능성, 바로 그것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의 '다 이루심'을 믿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므로 결국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것이다. 즉 예수를 믿는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것은 신앙이 아닌 '신념' 이라고 할 수 있고 말이다.

그러므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가 죄인임을 전제로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즉 "내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해도 역시 똑같은 놈입니다" 라는 것이 깔려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 성도는, 이미 주님 앞에서 죽은 사람 !!

십자가 마을에 보면, 손성식 목사님이 제가 강의한 쓴 '교회를 넘어서' 라는 책을 평가한 글이 있는데, 또 제가 고마워서(?) 거기에다 리플을 달아놓았는데, 즉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를 믿고 난 뒤에는 이미 주님 앞에서 죽은 사람이다"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죽은 우리 자신과 예수님이 분리가 되는가? 전혀 분리가 안 되는데, 만약에 분리가 되면 큰일이 난다는 것이다. 이미 주님 앞에서 죽은 우리가 그만 주님과 분리가 되어버리면, 그야말로 우리는 살길이(?) 막막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분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평생을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면서 우리를 계속해서 살리는 주님의 공로가 나오고, 또한 "너는 죽어야 마땅하다" 라는 것도 함께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고 난 뒤의 성도의 삶이란 말이다. 이것이 어려운가? 정말이지 어려우냐는 것이다.

◈ 나는 만들고 말거야, 하나님의 의를 !!

지금 이런 말이 전혀 어렵지가 않는데, 그리고 분명히 맞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한때 죄인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이제는 의인이 되었으니, 이제부터 내가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의가 될 수 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조금 전에 이야기한 것과 다른데, 아까는 "평생을 가도 나의 죄만 나온다" 라고 했는데, 그런데 지금은 "이제 예수님을 믿고 나면 의를 행할 수 있는 의인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의(義)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그 전제로 법(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즉 기준이 있어야만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어제는 하루에 5번을 탐을 내었는데, 오늘은 3번을 탐을 내었으니, 2번만큼은 의로워졌다" 라는 것을, 그것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보람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말이다. 교회에 다니면서 술 담배를 끊었다고 하면서 말이다.

◈ 아, 땡기는데 어쩌란 말인가 !!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마음속으로 생각만 해도, 그것이 곧 음욕이고 탐심이라는 것이다. "아, 땡긴다" 라고 말이다. 술을 끊었다고 해놓고는, 그런데 TV에서 백세주 광고만 봐도 침이 넘어가는데, 이름이 예쁜 설중매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법과 상관이 없는 영적인 사람은 뭐라고 하겠는가? 여기 이렇게 술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것을 마시는 것이라고 하니 한번 마셔보는데, 자기는 쓰기만 하고 별 맛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안 먹는다는 말이다. 물론 맛이 있으면 먹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 술을 끊고 말고 하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는 술을 마셔도 남들처럼 기분이 좋기는커녕, 머리만 자꾸 아프고 어지럽고 또 비틀거리는 것이 이상해서 싫다는 것이다. 헛소리하는 모습도 영 아닌 것 같고 말이다. 그러니 그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자유로움 가운데서 구김살이 없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뭔가 억지로 하는, 그래서 삐걱거리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 어떻게 성전에 그 독한 담배연기를 !!

그리고 성경에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것이 없으니, 교회에서 법을 만들었는데, "우리 몸은 성전인데, 이 성전에 독한 담배연기가 들어오면 곤란하다" 라고 말이다. 지금 들으면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그러나 실제로 목사들이 이런 설교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교인들에게 먹혀들었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주님이 보시기에 술을 마시고 안 마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술을 마시지 않음으로 자기가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바로 그것이 언약에 위배되기 때문에 죄라고 보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술을 마시고도 나오지만, 술을 먹지 않는 것에서도 얼마든지 죄가 나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 "나는 앞으로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을 거야" 라고 하는 법을 만들어서, 그 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서, 그렇게 자기가 의로워질 수 있는 방책을 계속해서 간구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나중에 자기의 간증이 되면서, 또 돈이 되고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 구원은 주님의 행함으로, 이미 !!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들은 또 헷깔려서, "그러면 목사님, 우야란(어쩌란?) 말입니까?" 라고 하는데, 우야기는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자기의 행함이 아니라, 외부에 있는 다른 분의 행함으로 구원을 받았으니, 그러니 걱정을 하들들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는 자기 자신의 어설픈 확률이 아니라, 그분의 행함으로 말미암아 이미 확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말인가?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분이 우리를 그런 인간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 구원의 하나님이 하박국에 나오는데, 그 하박국 말씀이 우리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주님께서 자신의 행함으로 지켜서 우리에게 적용을 시킨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면 가끔(?)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기뻐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 이사야와 육적인 인간의 대결구도 !!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는 이사야서의 전체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그러니 육적으로 매달려 있는 사람과, 이런 사실을 알아버린 이사야 선지자 사이의 대결구도, 그것이 이사야서 전체의 흐름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추가를 한다면, 이사야가 알고 있는 이러한 내막을 이사야의 아들도 역시 알게 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스알야숩' 이라는 것이다. 그 이름을 풀이하면, 그 유명한 "남은 자는 돌아오리라" 라는 말이다.

그것이 이사야 7장에 나오는데, 6장 13절부터 한번 읽어보자.

(사 6: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사 7:1)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왕 아하스 때에 아람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왕 베가가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사 7:2) 혹이 다윗집에 고하여 가로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 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삼림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사 7:3)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사 7:4)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종용하라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연기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 말며 낙심치 말라

◈ 잘리고 잘려서 '남은 자' !!

여기에 3절에 보면 이사야의 아들 스알야숩이 나오는데, 그래서 이사야는 자기 아들을 데리고 아하스 왕을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는데, 적들이 아무리 설쳐도 걱정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 '남은 자'가 어떻게 남은 자인고 하니, 잘릴 대로 모두 잘리고 남은 자라는 말이다. 그렇게 잘려서 남아있는고 하는 것이 6장 13절에 나오고 말이다. 여기에 나오는 남은 자, 즉 '거룩한 씨'의 특징은, 잘리고 잘려서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사야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그 당시 남아있는 백성들은 무엇인가? 그들이 이사야의 주장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는 이유가, 그렇게 되면 자기들은 이사야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당연히 잘려야 될 입장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들의 존재가 드러나니까, 그들이 어떻게 이사야에 대해서 공격하지 않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 아니, 잘렸는데 어떻게 구원을?

다시 말해서, 이사야가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잘리게 되어있고, 그런데 만약에 구원받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남은 자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 남은 자에 대해서 잘 나와있는 것이 로마서 9장과 11장이고 말이다.

거기에 보면 엘리야 시대에 남은 자가 몇 명인고 하니, 7천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남게 된 것은 자기들이 남을 만해서 남은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남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남는다' 라는 것은, 이미 그 이전에 자르는 작업을 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말이다.

(롬 11:3)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롬 11:4)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롬 11: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요즘 우리 동네에 공공근로를 하는데, 산에 있는 나무를 자른다는 것이다. 물론 큰 나무는 말고 작은 나무를 잘라서 산에 길을 만들고 하는데, 동네에 있는 쓰레기나 좀 치우면 더 좋을 텐데 말이다. 물론 시골과 도시는 공공근로의 형태가 좀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것도 일당이 3만원이 넘으니 서로 하려고 난리인데, 제가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면 결국 그 산에 남아있는 나무는 자기가 남고 싶어서 남은 것이 아니라 남겨두었기에 남았다는 것이다. 자르는 사람이 자르지 않아서 말이다.

예가 좀 적절했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남은 것은 심판주가 남겨두어서 남았는데, 심판을 해도 되는데 이상하게 그 사람에게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심판주인 자기 마음대로 라는 것이다. 자르든지 말든지 하는 것은 오야(?)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해서 잘리지 않은 사람에게서는 무슨 이야기가 튀어나오겠는가? 자기가 잘라서 잘리지 않았다는, 즉 자기의 행함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남았습니다" 라는 말밖에는 말이다. 바로 그런 자가 구원을 받은 자이고, 이사야와 더불어서 이사야서에 나오는 바로 그 '남은 자' 라는 것이다.

◈ 남은 자의 왕, 예수 그리스도 !!

여기서 한 가지 더 이야기해보면, 그렇다면 그런 백성들의 왕은 어떻게 되는가? 그 백성의 임금님은 남은 자인가? 남은 자가 아닌가? 지금 이사야와 더불어 남은 자가 생기고, 그들이 구원을 받았는데, 그렇다면 그 백성의 왕이 되실 분은 어떠한가? 역시 고난받은 '남은 자' 라는 것이다. 죽고 다시 부활하시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낚시대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과 똑같이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아주 버림을 받아서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3일만에 다시 살림으로 말미암아서, 진짜 남은 자는 살아서 남은 것이 아니라, 죽어서 남는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몸소 알려주셨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는데, 그렇게 은혜가 임하니 그 사람은 죽은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행하는 눈에 보이는 왕이 있을 것인데, 그 왕은 과연 남은 자가 맞는가? 물론 남은 자가 맞다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살리신 자만이 '남은 자' !!

그렇다면 그분이 남은 자라고 하면 어떻게 남은 자인가? 우리는 살아있어서, 그렇게 살아있는 채로 남은 자가 되었는데, 그런데 그분은 사람들에 의해서 십자가에게 죽었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살리셔서 남은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분과 함께 한 백성들도, 즉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 자들도 사실은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었는데 왕의 은혜가 임해서 살았는데, 그 은혜는 죽은 자를 살리고 없는 데서 있게 하는 은혜라는 말이다. 그러한 은혜가 임하니 영적인 사람이 되어서 구원을 받았는데, 그렇다면 이들은 은혜를 입기 전에는 무엇인가? 살았다고 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죽은 자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6장의 내용인데, 과연 그러한지 여기서 로마서 6장을 읽어보겠는데, 아마도 제가 이야기한 것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지지 싶은데, 3절과 4절을 한번 살펴보자.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 성도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살아야 !!

어렵지 않는가? 사실 엄청 어렵다는 것이다. 그 의미가 마음에 '탁'하고 와서 닿는 것이 아니라, 살고 죽고 하는 것이 왜 그리 많은지, 굉장히 복잡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엄연히 이렇게 살아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죽었다고 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의미하는 것은, 남은 자에게만 해당이 되는데, 즉 성도에게만 말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걱정(?)을 가지고 있는고 하니,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죽어야 하고, 예수님을 살릴 때에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성도라는 말이다.

◈ 세례란, 예수님과 성도를 묶는 밧줄 !!

물론 이것은 남은 자에게만 해당되는데, 그러니 성도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고 하니, 예수와 더불어서 함께 죽어야 되고, 예수님이 살릴 때 함께 살아야만 성도라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과 성도를 묶는 밧줄을 두 글자로 '세례' 라고 하는데, 이것을 교회에서 하는 그런 물세례가 아니라, 성령세례를 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가 연합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말이다.

◈ '남은 자'를 다시 정리하면 !!

이것을 다시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가 잘 되지 싶은데,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남은 자가 되어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산 것이 아니라 어디서 은혜가 왔는데, 그런데 은혜를 주시는 그분은 어떤 분인고 하니, 바로 '남은 자' 라는 말이다.

그러니 그 사람은 어떻게 해서 남은 자인고 하니, 그 사람에게 임한 은혜 때문인데, 바로 그 은혜는 살아서 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십자가에게 죽은 것을 하나님께서 살려냄으로 말미암는, 그러한 죽은 자를 살려내는 은혜라는 것이다. 죽은 자를 살리는 은혜 말이다.

그런데 그 은혜가 남은 자에게 임했다는 것은, 사실은 그 사람이 살았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임시적이고 일시적인데, 사실 원래는 죽었는데, 그런데 예수님을 죽은 데서 살리신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기 때문에, 그래서 죽은 채로 살다가 이제는 살아있는 채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제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그게 그건데??) 따라서 이렇게 해서 살아난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자랑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를 살려주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되어있고, 즉 그리스도의 공로와 그 은혜로 인한, 바로 그분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서 '의(義)의 종' 이라고 하고 말이다.

예를 들어서, 김 집사님이 지금 자기 이렇게 살아있는데, 아마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본인은 살아있다고 여겼을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 30세에 예수를 믿었다면, 자기가 29살 때도 자기는 살았다고 볼 것이고, 그리고 31살에도 살았다고 여길 것인데,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29살에도 죽었고, 31살에도 사실은 죽었다는 것이다.

◈ 성도는, 죽었지만 살았고, 살았지만 죽었다 ??

그런데 문제는 29살 때는 자기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그러나 31살 때에는 물론 죽기는 죽었는데 예수 안에서 죽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29살 때는 죽은 자이고, 31살 때는 산 자가 된다는 것이다. 주님의 은혜로 말이다. 물론 사람들이 여기기에는 29살에도 살았고, 31살에도 살았겠지만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인간이 산다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살리시는 것인가요?

그것이 바로 육적인 생각인데, 인간이 살고자 하는 것은 죄라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이사야가 왜 자기 아들을 왕에게 데리고 가는가?

지금 우리가 이 어려운 이사야서에 조금씩 접근하고 있는데, 즉 그 핵심에 다가서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죽음과 삶의 문제를 통해서 말이다. 지금 이사야가 6장에서 은혜를 받고, 그리고 7장에서 남은 자가 나오고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직접 이야기하면 되는데, 그런데 왜 이사야로 하여금 자기 아들 '스알야숩'을 데리고 아하스 왕에게 가도록 하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남은 자는 돌아온다" 라는 꼬리표(?)를 붙여서 말이다.

◈ '남은 자'는, 베이고 잘라낸 다음에 !!

그렇다면 이사야서 전체를 알고 싶은 우리들은 무엇에 주목을 해야 하는고 하니, 어떻게 남은 자만 돌아오는고 하느냐는, 그것에만 주목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전에 반드시 베이고, 잘라내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있어야 비로소 남은 자가 생긴다는 것이다.

아니, 아무 것도 잘라내지도 않고 무슨 남은 자가 있는가? 이렇게 남은 자가 있다는 것은, "이미 너희들은 죽었다" 라는 것인데, 그리고 전혀 자기 행함으로는 남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누구에게 붙어야하는고 하니, 이사야에게 말이다. 물론 이사야의 경우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구원되었는데, 그러니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만 남은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을 살리는 그 은혜가 무엇인고 하니까, 이사야서 53장 5절에 보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제 우리가 이사야서의 핵심부에 접근을 했는데, 그러니 그 은혜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대신해서 죽는 것, 그것이 곧 은혜라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남은 자는 무사히 남게 되는데, 물론 그렇게 남은 것은, 남은 자가 잘나서 남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남게 되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로마서 11장을 보겠는데, 5절과 6절을 집사님이 예쁘게(?) 읽어보세요.

(롬 11:5)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롬 11: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느니라

그 얼마나 좋은지, 만약에 은혜로 된 것이라면 인간의 행위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행위를 거부해야 하는가? 행위를 거부해야 은혜가 은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에는 인간의 행위가 섞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은혜를 받은 자는, 더 이상 '법'이 필요 없어 !!

그런데 과연 이것이 한 평생을 가겠는가? 누가 뭐라고 해도 평생을 가야하는데,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행위를 떼버렸으니 더 이상 '법'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은혜이기 때문에 말이다. 만약에 법에 들어가면 그것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거기에는 반드시 행함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데, 구원도 바로 이러한 것 때문에 가능하다는 말이다. 즉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되는 것이지, 다른 것은 결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것을 알았다면, 더 이상 "목사님, 무엇을 하면 복을 받습니까?" 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아니, 죽은 놈이 더 이상 하기는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다만 "저는 죽은 놈입니다" 라는 것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 저는 예수 안에서 살아있습니다 !!

* A : 너, 살았지?
* B : 아닙니다. 죽었습니다.
* A : 어허, 살았잖아?
* B :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죽었습니다.
* A : 정말이가?
* B : 예. 저의 죄 때문에 정말 죽었습니다.
* A : 그러면 지금 살아있는 것은 뭐꼬?
* B : 저는 제 안에 있는 그리스도 때문에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의 고백인데,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고백을 듣고서, 자기에게도 그런 마음가짐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을 받은 자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몸은 누구 것인가? 우리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를 할 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는 말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김 집사, 이사야서가 뭐꼬?

그러니 앞으로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질문기를, "어이 김 집사, 요즘 성경공부를 좀 한다면서? 그런데 이사야서가 뭐꼬?" 라고 한다면, 뭐라고 대답을 하면 되겠는가? 대답은 의외로 간단한데, "남은 자가 돌아온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남은 자는 10%도 체 되지를 않는데, 그리고 거기에서 또 잘라내니 말이다.

그런데 말이 쉬워서 10분의 1이지, 어떤 모임에서 90%가 모두 찬성을 하는데 자기 혼자서 아니라고 한다면, 그래서 자기 외에는 전부가 다 힘을 모아서 고함을 지르고 설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약 학급이나 교회 청년회 모임에서 그렇게 되면 분위기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아마 그 의견은 "음매, 기죽어" 라고 하면서 철회가 되고 말 것임이 분명한데, 그렇게 이사야의 경우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다 '아니오' 라고 하는데, 자기 혼자서 '예' 라고 한다면, 어디 그것이 CF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그야말로 완전히 왕따를 당한다는 것이다.

◈ 생명길은 찾는 이가 적지만 !!

하루는 어떤 사람이 저에게 질문하기를, "목사님, 천당에 가는 사람이 많습니까? 지옥에 가는 사람이 많습니까?" 라고 하는데, 그래서 제가 "찾는 이가 적은 좁은문이 생명의 길입니까? 아닙니까?" 라고 했는데, 그것이 마태복음 7장에 나오고 말이다. 그러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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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7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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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