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8-제사,욥기2,시편,잠언1(강의정리)자유게시판잠언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8-제사,욥기2,시편,잠언1(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43)

04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18 - 제사, 욥기2, 시편, 잠언1

04,10,02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추도예배'와 '제사'에 대해서 !!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주위의 여러 사람들을 동원해서 진리가 무엇인지 깨닫도록 해주시는데, 부모나 친척들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니 그것을 두고 귀찮게 여기고 번잡스럽게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자기를 괴롭히느냐고 하면서 말이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인데, 하나님의 그런 합력한 선이 바로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라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늘의 천사보다 더 찬란하고 영화롭게 하는 과정이 바로 어머니나 친척들을 통해서 추도예배나 제사 등의 문제가 생기게 한다는 말이다. 그런 것이 모두 다 성도를 참 성도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이고 간섭이라는 것이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제사는 결국 '돈'의 문제 !!

* 질문 - 저는 어머니에게 추도예배나 제사 중에서 하나를 택하시라고 하면서, 만약에 제사를 택하면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는데요? 물론 추도예배도 어머니에게는 제사와 같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식에게 그렇게 하지를 못하는데, 지금 어머니가 자식에 묻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고 하면, 자식이 그렇게 나오면 좀 곤란하다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제사문제는 조상을 섬기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돈' 문제인데, 제사를 지낼 때는 가족들에게 항상 돈을 뜯어낼 수 있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니 말이다.

그러니 그것도 일종의 영업이 될 수 있는데, 각각의 형제들에게서 얼마씩 각출을 하고, 그래서 제사를 지내는 시장을 보고 나서 나머지는 자기 호주머니에 넣을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친척들이 그런 요구를 한다는 것은, 그런 제사를 핑계로 한번 제대로 어른 소리를 들으면서 놀아보자는 것인데, 술이나 진딱 처먹으면서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처음이니 괜찮지 않으냐고 하기도 하는데요? 목사님을 모시고 추도예배라도 드리면 되지 않느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말은 되지만, 그런 것이 다 핑계라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서, 처음이니 안 된다고 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사실 복음을 알고도 그런 추도예배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저도 참석을 하곤 했는데, 그러나 이런 경우는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추도예배든 뭐든 간에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기 때문에, 주저주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돌아가신 분이 자기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관계가 다 얽혀있기 때문에, 그러한 분들을 위해서 자리를 마련하고, 음식을 대접하자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추도예배로 대체할 입장이 되지 못하는데, 복음을 모르는 상태에서 추도예배를 드리게 되면 그것이 바로 제사라는 것이다. 절을 하고 말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말이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지만, 제사는 조상을 섬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문제는 바로 돈이라는 것이다. 즉 "너희들이 돈을 좀 내라. 우리는 먹고 놀겠다" 라는 것이란 말이다.

* 질문 - 지금 어머니 연세가 칠순인데요?

진짜 효도는 칠순잔치가 아니라,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인데, 그것이 자식된 최고의 도리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호와의 증인처럼 하지 말고, 전과 후를 제대로 설명을 해드리라는 것이다. 아무리 칠순이라도 공부를 하고 배워야 하니 말이다. 인생의 경험이 많아도, 그것은 자기 이기주의에 불과하니까, 말씀을 배워서 깨닫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이 세상은, '돈' 아니면 '복음' !!

* 질문 -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내용을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하면 엄청 좋아하던데요?

하도 기존교회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 상대적으로 그런 반응을 보이는데, 물론 말씀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사람이 왜 제사를 용납하는고 하니, 그렇게 모여서 친목을 도모하는 것인데, 죽은 조상은 뒷전이고 말이다. 먹고 놀 수 있는 기회를 하나 더 만들자는 것이다.

나이가 마흔에 접근하면 이런 것을 보면서, "아하, 세상이 이렇구나" 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사실상 의외로 단순한데, 즉 "돈 아니면 복음" 이라는 말이다. 이 세상은 둘 중에 하나이니 중립지대는 없다는 것이다. 돈을 사랑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든지 말이다.

◈ '욥'의 경우에 !!

구약의 욥의 경우에, 돈도 날리고, 장차 자기에게 힘이 되는 자식도 없애고, 그리고 마누라에게 욕을 얻어먹고 말이다. 그래서 욥은, 자기가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아마 여러분도 그런 경험을 했지 싶은데 말이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자식에게서 버림을 받고 마누라에게도 욕을 바가지로 들을 수도 있는데, 하지만 정작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 두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너를 모른다" 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란 말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 내게 왜, 왜, 왜 !!

아무튼 욥은 이유도 없이 자기가 고난을 받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고난이 마구 줄줄이 닥쳐오니 말이다. 그럴 때에 '엘리후' 라는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와서 하는 말이, "욥,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죄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고난이 닥쳐오면 "아하, 주께서 고난을 주시는구나" 라고 여겨야지,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버렸구나" 라고 여기는 것은, 그것은 곧 악한 자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점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셨다는 것이다.

◈ 잊지 말자 - '나'는 피조물 !!

처음에도 말했지만, 우리가 시련을 당하든 당하지 않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피조물을 만든 목적인데, 그러니 욥이 잠시동안 자기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렇게 성경공부를 하면서, 욥처럼 그렇게 자기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적은 없었는지, 바로 그러한 점을 말씀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욥기가 보여주는 것은, "이런 일은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 만약에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이다" 라는 것이 욥에게 실제로 일어났는데, 마치 최악의 드라마처럼 말이다. 그래서 욥이 자살할 순간까지 왔는데, 스스로 죽을 수는 없고, 그래서 욥이 뭐라고 했는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라고 했다는 것이다. 욥이 자기 인생자체가 그 얼마나 괴로웠으면 이런 이야기를 했겠느냐는 말이다.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기억 ??

어려운 말이지만 좀 들어놓으면 보약이 되고 좋은데,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가 평소에 살아갈 때는 '기억'으로 살아가는데,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인간의 마음속에게는 기억만 있다" 라고 주장했는데, 아무튼 사람은 그렇게 기억으로 사는데, 그러니 현재의 자기 생각도 이러한 기억의 창고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몸이 굉장히 아프면, 즉 치통이나 두통이 엄청 심하게 되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든지 하면, 즉 자식이나 부모가 죽는다든지 하면 어떻게 되는가? 기억으로 사는가? 아니라는 말이다. 과거가 아닌 현재에만 집착하면서, 과거에 함께 있었던 아름다웠던 것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고, 지금 현재가 자기의 전부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예를 들어서 신혼을 가서 이틀동안은 너무너무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었는데, 서로 밤낮을 가지리 않고 사랑과 존경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삼일 째는 그만 무슨 일이 있어서 대판 싸웠다면 어떻게 되는가? 과연 행복한 신혼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이것을 수학적으로 생각해보면, 좋았던 것이 48시간이고 그렇지 않은 것이 24시간인데, 그러니 24시간은 좀 남아있어야 하는데,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쁜 것만 남아있지 말이다. 그러므로 좋았을 때의 그 시간과 나빴을 때의 시간이 결코 같은 시간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 그러나, 인간은 현재만을 바라보고 산다 !!

인간이란, 정작 괴로울 때는 따지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은 다 때려치우고 오직 현재만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기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독일의 시인인 헬들레르(?)는 "인간은 현재만을 바라보고 산다" 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는 말이다.

물론 평소에 좋았을 때는 과거에서의 그 관계를 가지고 바라보는데, 즉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나에게 잘해준 사람이구나. 그러니 좋은 사람이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과거를 본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에게 시련과 어려움이 닥치면, 과거는 그만 날아가 버리고 현재의 자기 형편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현재의 자기 고민거리가 있을 때는 과거 받은 은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자기 자신이 괴로우니 그렇게 하신 하나님을 싫어하고 말이다. 제가 언젠가 겁도 없이(?) 이런 설교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번거롭고 귀찮고 싫어질 때가 있다고 말이다.

이제 교재 125페이지를 살펴보자.

** 신앙이란 환경을 초월한 것이며, 물질적인 축복과 건강까지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아벨이 그러했고, 이유도 없이 아내를 빼앗기고 자기도 죽게 된 밧세바의 남편도 그러하고, 욥도 그러하다.

◈ 과연 축복이란 무엇인가?

그들뿐만이 아니라, 신약의 스데반 집사와 12사도들도 그러했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축복인가? 축복이란, "곧 부활이요 생명이 되신 분과 함께 있는 것이다" 라는 말이다. 이것이 베드로전서 4장에 나오는데, 12절에서 14절을 살펴보자.

(벧전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벧전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즐거워해야 !!

여기 12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시작하는데, 분위기가 벌써 심상치 않다는 것이다. 이 사랑이 세상에서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는 시련을 주기 위해서 불시험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즐거워해도 무엇을 가지고 즐거워하는고 하니,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는 말이다.

예수님의 고난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나오는 고난인데, 즉 분명히 자기는 잘못이 없는데, 왜 자기가 대신해서 당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당하면, 그것을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말라는 것인데, 그것이 성도에게는 제대로 된 코스라는 말이다.

◈ 놀이동산과 유격훈련의 차이점은?

혹시 놀이동산과 유격훈련의 차이점을 알아요? 놀이동산은 가는 곳마다 재미가 있는데, 이에 반해서 유격훈련은 가는 곳마다 새로운 시련이 닥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도가 가는 길이 좁은 길이지, 넓은 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즐거워하라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니 말이다.

그리고 여기 14절에 보면, 오매불망 바라던 것이 나오는데, '복' 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자가 복이 있는고 하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교재 125페이지에도 있지만, 한국교회는 무엇이 축복인가? 잘살면 축복이고, 못살면 저주로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니라, 민중들을 위한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탕이 얼마나 해로운데 말이다. 이도 썩게 하고, 몸도 망가트리고 말이다. 이렇게 성경말씀과도 전혀 맞지를 않지만, 한번 목회에 성공을 해보겠다는 심보로 사기를 친 것이 "잘살면 축복이요, 못살면 저주이다"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민중들이 그렇게 알고 좋아하기에 말이다.

◈ 어머님께 용돈을 500만원만 드리면, 끝 !!

지금 집사님이 추도예배 때문에 고민이 있는데, 하지만 저는 그것이 진리가 아닌 모두 돈의 문제라고 했는데, 만약 집사님이 지금 사업을 벌려서 성공을 해서 어머니에게 한 달에 500만원씩 용돈을 한번 주었다고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머님이 다른 사람의 말은 전혀 안 듣고, 그 어떤 친척의 말도 듣지 않고 오로지 집사님의 말만 듣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돈으로 산다는 것인데, 말씀이 아니고 말이다. 그런 사람에게 전혀 돈과 상관이 없는 복음을 이야기하니, 그것이 먹혀들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기회를 통해서 어머님이 왜 죄인인가를 드러내셔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주님 앞에서 어머님은 이러이러해서 죄인입니다" 라고, 그렇게 하는 것이 진짜 제대로 된 효도이고 말이다. 뭔가를 양손에 좀 들고 가면 더 말빨이 먹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는데, 어떤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는고 하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욕을 들어야 말이다. 그때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 즉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이 구절을 얼른 치워버리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 아니, 복이 도대체 몇 개야?

또 사람들이 얼른 치우기를 원하는 구절이 있는데, 하지만 우리는 역시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누가복음 6장에 있는 말씀인데, 복이 줄줄이 나온다는 것이다. 심방을 가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 참 좋은데 말이다. 물론 그 뒤에 저주가 줄줄이 달아서 나오고 말이다. 이번 집사님 아이 '돌'에 이 본문말씀이 어떨지, 어떻게 괜찮아요?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눅 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눅 6: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눅 6:22)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눅 6: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눅 6:24) 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눅 6:25)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눅 6: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이러한 대목이 어디에 있는고 하니, 만화책이 아닌 성경책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분명하게 성경책 속에 있는데, 그런데 기독교 신자는 무엇을 믿는 사람인가? 분명히 성경말씀인데, 그렇다면 이런 부분을 빼놓고 믿어야 하겠는가? 아니면 포함을 시켜서 믿어야 하겠는가? 이 부분을 화이트로 성경에서 지우면 되는가? 복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데 아까워서라도(?) 지우지 못하지 싶은데, 그러니 예수님은 복과 저주를 구별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복은 저주가 되고, 이 세상 사람들이 저주라고 여기는 것은 저주가 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그러한 방식으로 이 마지막 종말에 나타나서 말씀을 하신다는 것이다.

◈ 구약에서의 복은 신약에서 저주로 !!

이것을 제가 기독교 잡지에 기고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역삼각형을 두 개를 그려서, 사람들이 흔히 구약에서 복이라고 하는 것은 신약에서는 저주가 되고, 그리고 구약 때에 저주라고 여기는 것은 신약 때에 복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중간에는 십자가가 있고 말이다.

이제 십자가가 이해가 좀 되지요? 이 십자가로 말미암아서 저주가 복이 되고, 또 복이 저주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욕을 들으면 그것이 저주가 아니라 복이 되고, 예수님도 없이 배가 부르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저주라는 말이다.

여러분이 기존 교회를 30년 이상을 다녔다고 하는데, 과연 이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목사의 책임도 있지만, 30년 이상을 누가복음 6장이나 베드로전서 4장을 진지하게 제대로 읽지 않은 여러분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말이다.

◈ 구약은 신약의 모형 !!

바로 이러한 복음이 구약에서는 지금 우리가 살펴보는 욥기를 통해서 미리 앞당겨서 이야기되었는데, 물론 구약의 다른 곳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즉 구약은 신약을 미리 앞당겨서 보여주는 '모형(模型)' 이라는 것이다.

◈ 구약 때는 추도식을 어떻게 했는가?

이왕 제사와 추도예배의 문제가 나왔으니 그것을 좀 이야기하자면, 즉 "구약 때는 제사를 어떻게 했는가?" 라는 것인데, 아브라함이 죽었을 때 제사를 드렸는가? 주기적으로 말이다. 또 이삭이 죽었을 때 제사를 드렸는가?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구약 때 신앙인들은 누구에게 제사를 드렸느냐는 말이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했는데, 그러면 자기 조상들에게는 제사를 왜 지내지 않았는가? 다른 민족들은 다 제사를 지냈는데 말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안에서 믿는 조상은 죽은 자가 아니라, 즉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의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서 살아있다는 말이다. 아니, 살아있는데 무슨 제사가 필요 하느냐는 것이다.

"아이코, 아깝다" 라고 하는 것은 실패한 자에게 해당하는 것인데, 즉 죽은 자라면 그렇게 애통해할 수도 있는데, 하지만 먼저 제대를 해서 하늘나라에 마구 놀고 있는데, 무슨 애통해하고 가슴 아파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제사는 현재 살아있는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지내야 하지 말이다. "주여,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세요" 라고 하면서, 그렇게 자기를 위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 이미 산 자에게 무슨 제사가 필요한가?

그러므로 조상에게 제사를 드릴 생각을 하지 말고, 그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저와 같은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나요?"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한 예배가 제사이고 추도식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구약의 성도들은 살아있는데,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은 백날 그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해도, 이미 죽은 놈은 지옥에서 부자가 물 한 방울을 아쉬워했던 그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뭐라고 했는가? "너의 형제들에게 나사로를 보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나사로가 다시 살아서 간다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라는 것이다. 즉 진짜 구원을 받은 사람은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지, 그러므로 나사로를 다시 살려서 고생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눅 16: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 이근호 이병 !! - 휴, 꿈이었어 !!

왜 이런 말이 있는데, 군대에 갔다온 남자들의 특징이 악몽을 꾼다는 사실인데, 다시 군대로 초대하는 영장이 나오는 말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저는 군대에 갔다왔어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어휴, 꿈이었구나"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 정도로 군대에 가서 시겁(?)을 했다는 말인데, 저도 그런 꿈을 제법 많이 꾸었다는 것이다.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고 하니, 군대에는 자유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힘이 든다는 것이다. 하물며 이 세상에서 전혀 자유도 없이 그민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자기 자신의 욕심에 헉헉거리면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이, 이러한 세상을 다시금 살아야 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힘이 드느냐는 말이다.

여러분은 과연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은가? 그때의 좋은 기억만 남아서 그렇지, 실제로는 돌아가기가 싫다는 말이다. 저도 과거로 돌아가라고 하면, 아무리 젊고 잘나갈 때라고 해도 단호하게 'NO' 라고 말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힘이 들어서 숨이 차는데, 또 다시 살라고 하는 것은 고문이라는 말이다. 또 다시 그 골치 아픈 수능시험을 쳐야되고 말이다.

◈ 저기 날아가는 새들처럼 !!

그러니 죽는 것만 기다리는 것이 성도의 모습인데, 사도바울이 그렇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그는 죽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을 믿는 나이 많은 사람이 얼마나 부러운지, "좋겠다. 제대할 때가 다 되어서" 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런 것이 바로 불신자들이 도저히 흉내를 내지 못하는, 흉내를 내려고 해도 안 되는, 그런 새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제사나 추도식이 문제가 아니고, 그런 것이 곧 자기 자신을 좀 더 일찍 천국으로 보내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이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특히 남편이 그렇게 제대로(?) 나갈 때는 제발 아내가 뒤에서 좀 팍팍 밀어주라는 말이다. 그만하라고 눈치를 주지 말고 말이다.

시집을 온 여자들이 제일로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니가 들어와서 우리 집안이 망했다" 라는 것인데, 물론 제일 듣기 좋아하는 소리가 그 반대이고 말이다. "니가 들어와서 우리 집안이 흥했다" 라는 것 말이다. 그럴 때 여자는 시집을 온 보람을 느끼는데, 하지만 성도는 그런 것조차도 이겨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제 시편을 !!

욥기는 그 정도로 하고 이제부터 시편을 보겠는데, 교재 '뒤에서 본 한국교회' 129페이지를 보자.

** 시편은 성도가 속된 세상에서 갖게 되는 여러 가지 괴로움을 묘사하고, 그 괴로움 속에서도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진정한 찬미와 영광이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내용이다.

정말로 그런 여러 가지 괴로움이 묘사되고 있는지, 시편 90편을 한번 살펴보자.

(시 90: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시 90: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시 90:4)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시 90:5)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시 90: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시 90: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시 90: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시 90: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시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 성도는 이미 거처가 있어 !!

여러분도 이런 시간이 아니면 시편을 볼 시간도 없지 싶은데, 바쁘니(?) 말이다. 여기 1절에 살펴보면,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라고 하는데, 성도는 이미 거처가 있다는 말인데, 즉 그렇게 이미 단단하게 바탕이 되어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못 먹어도 고"(?) 라는 말이다.

그런데 3절에 보면,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라고 하는데, 즉 아무런 쓸데없는 짓은 이제 그만하고 티끌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9절에 보자면,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라고 하는데, 왜 분노 중에 지나가는가? 우리가 감추고 감추고 해도, 그러한 가장 은밀한 죄악도 주님 앞에서는 한 순간에 모두 다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10절에 보면,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고 하는데, 우리 인생이 그와 같이 마치 화살처럼 날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평생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라는 말이다. 매일같이 죄를 짓고, 또 그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마지막에 결국 티끌로 돌아가야 하는데, 우리 인생 자체가 티끌로 만들어진 것이니 말이다.

◈ 아담아, 주제 파악이나 잘해라 !!

원래 '아담' 이라는 이름 자체가 '흙' 이라는 의미인데, 즉 "평소에 자기 주제 파악을 잘하고 다녀라" 라는 것이다. 자기가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흙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인 주제에 하나님처럼 되려고 제발 좀 설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성경이 바로 그렇게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데, 사람이 그렇게 자기 죄를 알게 되면, 그때부터 모든 것이 은혜이고 모든 것이 고마움이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티끌인데, 그런데 무엇이 감사하지 않고 고맙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 인간은, 자기 죄를 알 때 가장 기뻐 !!

그래서 제가 항상 강조하는 말이, "사람은 자기 죄를 알 때 가장 기쁘다" 라는 것인데, 바로 그럴 때 휘파람이 절로 나오고 춤이 절로 나온다는 말이다. 제 아무리 천하에 타고난 몸치(?)라도 해도 자기도 모르게 어깨춤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 중에 하나가 바로 다윗인데, 다윗이 제사장 옷을 입고 하나님의 거룩한 법궤 앞에서 춤을 추었는데, 이것을 보고 누가 빈정거렸는가? 자기 마누라이자 사울의 딸인 미갈이 "왕이 체통도 없이 망나니들이 추는 춤을 추고, 그야말로 밑바닥 인생들과 똑같은 하는 짓을 한다" 라고 했는데, 그래서 미갈은 하나님으로부터 평생 아기를 낳지 못하는 징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때 여자가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저주였는데, 즉 "니가 바로 자식도 하나 낳지 못하는 천하지 천한 여자이다. 그런 사고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도 모르고, 자기밖에 모르는, 그야말로 비천한 여인이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갈은 남은 여생을 쓸쓸하게 보내었다는 말이다.

◈ 걱정근심도 건방진 까닭에 !!

그렇게 사람이 자기 주체파악을 하지 못하게 되면 불행해지지만, 그러나 주제파악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왜 자기가 걱정을 하는가? 그것은 바로 그만큼 자기가 건방지다는 의미인데, 즉 자기가 잘난 줄 알기 때문에 그런 걱정을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렇게 걱정할 수 있는 목숨을 준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 자기가 아닌, 타인에 의한 고통 !!

이 시편 90편 외에도 엄청난 고통이 있는데, 방금 말한 시편 90편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통이라면, 그렇다면 시편의 나머지 고통은 무엇인고 하니, 혼자서 겪는 고통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서 겪는 고통이라는 말이다.

그런 경우가 참으로 억울한데,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옆 사람이 잘못해서 자기가 수모를 당하고 억울함을 당할 때, 여러분은 과연 참을 수 있겠는가? 안 된다는 말이다.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자기가 박으면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누가 다치든지 간에 말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만 자기 차를 박아서 망가지고, 몸이 다치게 되면 얼마나 화가 나는지 말이다. 만약에 자기 다리가 하나 부러졌다면, 상대방은 두 개가 박살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심성을 잘 알기 때문에 구약에서는 복수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즉 '보복 금지법' 이라는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복수를 하면 자기가 당한 만큼 하는 것이 아니라 두 배 이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판결을 짓기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고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여기에 머물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뭐라고 했는고 하니까, 유대인들은 성경대로 한다고 하면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고 하는 것은 되는 냥, 거기까지는 하려고 했다고 것이다. 사실은 그것조차도 하지 말라는 뜻인데, 그런데 유대인들은 자기가 눈을 다치면 상대방의 눈을 빼려고 하고, 이를 다치면 그대로 이를 빼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수를 장려하는 것인데, 조폭들이나 하는 짓을 유대인들이 했다는 말이다.

◈ 피를 흘리지 말고 살점을 도려내라 !!

그 대표적인 예가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이란 책에 보면 나오는데,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돈을 갚지 않으니까 약속대로 그만큼 그들의 살점을 도려내려 했다는 것이다. 아주 악랄한 장사꾼의 전형적인 모습인데, 여기에 대해서 판사가 뭐라고 판결을 하는고 하니까, 피를 전혀 흘리지 말고 살점을 도려내라는 것이다.

아니, 우리 사람의 몸에는 모세혈관이 다 퍼져있고, 그 혈관 혈관마다 모두 다 피가 흐르는데 말이다. 그러니 그것이 도대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하지 말라는 소리인데, 즉 세익스피어의 재치(?)라는 것이다. 물론 요즘같이 의학기술이 발달했으면 어떻게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고 배웠느냐? 그것은 그런 뜻이 아니라, 오히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대주어야 한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물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도 주고 말이다.

(눅 6:29)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눅 6:30)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하지 말며
(눅 6:31) 남에게 대접하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 예수님은 피해자이자, 용서하시는 분 !!

그러니 이런 말씀을 누가 지킬 수 있는가? 오직 예수님만이 가능한데, 즉 예수님은 죄도 없으신 분이 우리의 죄 때문에 대신 희생을 당하셨다는 말이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피해자도 되시고, 또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는 분도 되시고, 그렇게 해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라고 하셨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하는데, 당하기는 본인이 당하고, 용서도 그쪽에서 해주시고 말이다. 자동차는 우리가 몰다가 박았는데, 오히려 그쪽에서 모두 변상처리를 해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도 안 되는데, 그런데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면서 덜컹(?) 모두 용서를 해주셨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주님은 사랑이시니 우리가 주님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가자고 한다는 것이다. 전혀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는 인간들이 그러한 짓을 하는데, 마치 자기에게 구원받을 권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굳이 권리라고 하면 영원한 저주를 받을 권리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에, 그러한 사랑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혀 주님에게 그런 구원을 베풀어달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말이다.

◈ 다윗이 고난받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살펴보려는 시편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 두 글자로 '다윗' 인데, 이 다윗은 자기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는 사람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당하지 않아도 될 온갖 수난을 다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분이 바로 메시야의 조상인 '다윗' 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다윗의 후손이 되는 분도 같은 운명의 길을 가겠는가? 가지 않겠는가? 분명 동일한 길을 가게 되는데, 그렇게 때문에 후손이고 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다윗의 고난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때 다윗이 이겼는가? 하나님이 이기게 하셨는가? 분명히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는데, 다윗은 골리앗의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 즉 갑옷이 어디에 없고 약한지, 그런 것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년다윗' 이라는 것이다. 다윗은 평소처럼 짐승을 쫓아내듯이 그렇게 그냥 물매돌을 던진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돌을 핵폭탄(?)으로 만들어서,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가서 자기 칼도 아닌 골리앗의 칼로 골리앗의 목을 베에서 승리하도록, 소년다윗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말이다.

◈ 시편 - 억울하고, 억울하고, 억울하고, 억울한 !!

그러니 다윗은 사전에 미리 골리앗을 어떻게 공격하고, 어떻게 목을 베고, 그렇게 작전을 구상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다윗에게는 전혀 그런 시나리오가 없었고, 하나님이 다윗을 그렇게 사용했을 뿐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후로 다윗은 오히려 사울에게서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마는데, 바로 이러한 때 지어진 것이 무엇인고 하니, '시편' 이라는 말이다. 즉 그야말로 억울한 도망자가 된 자기 모습에 대해서 말이다.

어떤 분은 매일매일 자기가 당한 것을 일지로 쓴다고 하는데, 바로 그러한 다윗의 일지가 바로 시편이라는 말이다. 사울에게 억울하게 당하고, 또한 백성들에게도 억울하게 당하고 말이다. 그렇게 억울하고 억울하고 억울하고 억울한 인생살이를 기록한 것이 시편이라는 것이다.

◈ 그렇다면 다윗의 희망은 과연 어디에?

그렇다면 그러한 억울한 도망자의 신세 속에서 다윗의 희망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렇게 당하고 또 당하면서 가지는 즐거움이 과연 무엇이냐는 말이다. 물론 이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절망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과연 그러하냐는 말이다.

시편 23편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고 하면서, 5절에 에서는,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다윗이 이 땅에서 쫓기고 쫓기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더욱 고대하게 되었고, 이 세상에서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 차라리 천국의 문지기로 !!

그러므로 시편 84편에 보면, 3절에서 뭐라고 하는고 하니,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기는 집이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모두 집이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에는 그런 것은 필요가 없고, 자기는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10절에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비록 천국에서 문지기라도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그 어떤 것보다 더욱 좋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다윗의 소원이라는 말이다. 여러분도 아마 시편에 이런 내막이 있음을 평소에 알고 있었지 싶은데 말이다. 아닌가?

(시 84: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시 84: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 84: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시 84:4)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시 84: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 84:6)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시 84:7)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시 84: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시 84: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시 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시 84: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 울며 울며 나르는 갈매기여 내 마음을 !!

여기서 시편 126편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왜 열왕기를 보면 왕들의 잘못으로 인해서 나라가 망하는데, 그래서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 엄청 고생을 하고 말이다. 거기서 성전을 짓기 위해서 다시 본토로 돌아오게 되고 말이다.

바로 그때 부르던 노래가 이 시편 126편인데, 그러니 여기 6절에 살펴보면,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바벨론에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으면 이런 찬양이 나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자격자이어야 하는고 하니까,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서 억울하게 힘든 인생을 살아본 사람에 한에서만, 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이다. 그런 자들만이 이 시편의 찬양이 가능한데, 찬양팀을 조직해서 시편을 그대로 부른다고 되는 게 아니고 말이다.

(시 126: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시 126: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시 126:3) 여호와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 126: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시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 126: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 시편 137편 - Boney M 'Rivers Of Babylon' !!

이제 시편 137편을 보겠는데, 이 시편은, 혹시 알지 모르겠는데 '차표 한 장(?)'(One Way Ticket)으로 유명한 '보니엠(Boney M)' 이라는 흑인 4인조 그룹에 의해서 불려진 노래가사로서 인용이 되었다는 것이다. '바벨론 강가에서' 라고 말이다. "다라라라 다라라라, 따라라라라 딸라라랄라라 따라라"(??)

(시 137: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 137: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시 137: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시 137:4)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시 137: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시 137: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시 137: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시 137:8)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시 137:9)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여기 1절에 보면, 무엇을 기억하면서 울었다고 하는가? 바벨론의 강가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면서 울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동일하게 이 땅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고 하니, 천국을 그리워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울든지 웃든지 그것은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아무튼 웃어도 울면서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우리의 본향도 하늘이고, 우리의 왕은 하늘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아버지도 하늘에 계시고 말이다. 우리는 지금 이 땅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남의 땅에(?) 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지옥과 같은 세상에서 말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누구 하나 우리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 아니, 하나님을 찬양하는 악기를 !!

그런데 이러한 나쁜 놈들이 더욱 더 어떻게 화를 돋우는고 하니까, 2절과 3절에 보면,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지금 이방나라에 포로로 잡혀있는 것도 서러운데, 그런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수금을 가지고서 자기들을 위해서 연주하고 노래까지 부르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즉 "과거에 너희들이 하나님을 잘 믿고 따랐다고 하는데, 과연 지금 꼬락서니가 좋구나. 그때 그 노래를 우리도 한번 들어보자"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이근호 이병, 찬송가 한 곡 발사 !!

예를 들어서, 군대에 가면 예수를 안 믿는 고참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을 놀리듯이, "야, 너거들 교회에 다닌다면서. 그러면 찬송가나 한번 불러봐라. 나는 한 잔 하면서 듣겠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물론 요즘은 그런 일이 없겠지만, 아무튼 과거에는 그랬다는 말이다.

여러분들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는 그렇게 많이 당했는데, 그럴 때마다 마태복음 5장 11절이 생각났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택한 백성에게는 그러한 코스를 밟게 하시는데, 물론 자기가 일부러 그렇게 할 필요는 없고 말이다.

(마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치 회사에서도 상사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술자리에서 '내주를 가까이'를 한번 불러보라고 권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시편 126편 5절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눈물이 없이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고,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것들이 시편에 다 눅눅히 스며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편구조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교재 129페이지 중간을 한번 살펴보자.

** 시편은 이러한 원수들이 주는 고난으로 인해서,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영광이 더욱 확실해진다는 고백을 쏟아낸다.

◈ 원수들이 주는 고난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

무슨 뜻인가? 어떤 경우에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영광이 확실해지는고 하니, 원수들이 주는 고난으로 인해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가만히 있는데, 원수들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빌미로 해서 공격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말이다.

지금 집사님의 경우에도, 집사님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교회에 가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렇지요? 아니, 제사나 추도예배 같은 것이 불교신자에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냥 자기가 좋은 대로만 하면 그만인데 말이다.

◈ 시편 - 성도라면 고난을 당하도록 !!

다시 말해서, 이 시편이라는 것이, 어느 특정한 성도 혼자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고가는 모든 성도들이 모두 그렇게 당하도록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천국에 가는 길은 넓은 것이 아니라 좁다는 말이다. 찾는 이가 많지 않고 적은, 그러한 좁은 길이란 말이다. 하지만 이 길이 참으로 귀한 생명의 길이란 것이다.

어떤 분이 저에게 메일을 보내기를, "저는 목사님 때문에 완전히 친척들로부터 미친 놈 소리를 듣고, 그야말로 완전히 조져놓았습니다. 물론 가끔은 옛날 생각도 나고 그립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는 다시 저쪽으로(?) 가기는 싫습니다" 라고 말이다. 가끔 문자로도 그런 내용이 날아오기도 하고 말이다.

◈ 시편의 순서는, '찬미 - 고난 - 찬미' !!

그리고 이 시편의 순서가 '찬미-고난-찬미' 인데, 즉 시편의 대부분의 내용이 처음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그 하나님 때문에 고난받는 것이 나오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할렐루야' 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고난이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데, 물론 자기가 사고를 쳐서 받는 고난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당하는 고난 말이다. 즉 복음 때문에 받은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께 영광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기 위해서 성도에게 고난을 주신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시편을 기록한 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인가? 아니면 모든 성도들에게 다 해당이 되는 것인가? 그것을 확인해보기 위해서 베드로전서 2장을 보겠는데, 18절부터 25절까지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베드로전서 2장 -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

(벧전 2:18)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벧전 2: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벧전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벧전 2:23)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우리가 성도라면 당연히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을 어떤 점을 본받아야 하는가? 예수님은 애매히 고난을, 즉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은 그렇게 자기가 당할 만한 일을 해서 당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억울하게 당했다는 것이다.

◈ 성도에게 있어서, 선한 일이란?

그렇다면 성도에게 있어서 착한 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성도에게 착하고 선한 일이란 것이, 아침에 일찍 자기 골목길을 쓰는 것인가? 아니면 독거노인을 돌보아주는 것인가? 아니면 병원에서 가서 전혀 가망이 없는 암 환자들을 돌보아주는 것인가? 사실은 너무 간단한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라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선(善)이, 이 세상에서 말하는 착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 말하는 선은, 자기 조직을 유지하는 것인데, 일종의 '조직 유지책'(?) 이라고나 할까요? 예를 들어서, 현대그룹에서 선한 일과 삼성그룹에서 선한 일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서로의 비밀을 빼내는 것이 각자에게는 선한 일이 된다는 말이다.

◈ 진짜(?) 억울한 사연 하나 !!

어제 TV에서 진짜 억울한 사람을 하나 보았는데, 물론 성경적인 것은 아니고 말이다. 무슨 내용인고 하니, 시골에 사는 50대의 아주 어리숙한 아저씨인데, 2000만원 정도 하는 카니발을 사게 되었는데, 대리점에서 하는 말이 "그럼 500만원만 내시고 나머지는 천천히 갚으세요" 라고 해서 말이다. 촌사람이니, 그들이 자기를 도와준다고 여기고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먼저 500만원을 선금으로 하고 나머지는 할부로 한 것이 아니라, 그 대리점에서 그 돈을 가지고 사채놀이를 했는데, 그리고 그 촌사람이 낸 할부금은 그냥 자동차의 이자로만 다 써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보니 원금은 하나도 갚지를 못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공증문서로 그대로 다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양반이 처음에 계약을 할 때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대리점에서 좋게 다 알아서 해주겠지" 라고 하면서 문서를 제대로 보지 않고, 그냥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어준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자동차 대리점에서 촌사람을 가지고 논 것이지만, 그러나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는 자기 나름대로 할부금을 낸다고 생각하면서 도장을 찍은 것이고, 그러나 그 자동차 대리점에서는 마치 그런 것인 냥 대충 얼버무리면서, 아무튼 자동차를 살 수가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도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500만원을 내면 차를 살 수 있다는 것은 말은 맞지만, 그러나 현실은 그게 아니지 않느냐는 말이다. (이게 진짜 사기??)

◈ 교회도 역시 자동차 대리점 !!

제가 이런 이야기를 괜히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뭐라고들 하는가? 세례를 받고, 성찬식에 참석하고, 주일성수하고, 십일조를 내고, 그렇게 열심히 교회생활을 잘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사기꾼들이 주장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인생이 끝나면 정작 어디에 도착하겠는가? 마치 촌사람의 자동차가 전혀 자기 것이 아니듯, 그렇게 지옥에 가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오직 복음으로만 구원을 받기 때문에 말이다. 이 복음은 정작 목사도 믿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할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을 이야기하면 교회가 장사가 안 되니 말이다. 그러니 오늘날 종교꾼들에게 중요한 것은 교회이지 천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동차 대리점에서도 차를 몇 대 팔아서는 돈이 안 되니, 돈이 되는 쪽으로 하다보니 그런 사기를 친 것이고 말이다.

지금 일반 민중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뭔가를 바쳐서 구원을 받는 것인데, 믿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자기가 교회에 낸 할부금, 그것을 세 글자로 '십일조' 라고 하는데, 그렇게 자기가 한 헌금과 봉사와 전도하기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까 말한 촌사람처럼 일반 교인들도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선입관을 목사들이 교회에서 이용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는 부흥되고, 모두 지옥에 가고 말이다. 물론 집사님의 어머니도 그런 경우이고 말이다.

◈ 왜 성경공부를 해야만 하는가?

그러므로 이것이 어떤 개인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계속해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것이 아닙니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쉬지 말고 공부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구원을 오직 복음으로 가능한데, 그 복음은 예수님의 행위라는 말이다. 예수님의 그러한 대신 행함에서 의(義)가 나오고, 그 의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심으로서, 그 의가 박혀있는 사람만이 완벽한 의의 나라인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죄가 조금이라도 섞이면 가지 못하니, 그 의는 전적으로 예수님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주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義)가 나타나서 !!

이러한 예수님의 의를 '하나님의 의' 라고 하고, 그것을 로마서 1장에서는 두 글자로 '복음'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라고 말이다. 그 하나님의 의에 의해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교회 김대식 성도의 글에 보면 잘 나와있다는 것이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예수님의 행함을 믿어야 !!

다시 말해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들어있고, 이 하나님의 의가 바로 복음이란 말이다. 이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받는데, 행함이 아니라 이것을 믿음으로 말이다. 이런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행함을 입으로 시인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데, 누구든지 말이다. 바로 그것이 로마서 10장의 내용이고 말이다. 그러니 여기에 다른 불순물들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뿐이고, 즉 예수님 말고는 안 된다는 말이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너무나 간단하고 선명한데,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이단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집사님이 4단 같으면, 저는 9단쯤 되는가? 너무 교만한가? 물론 이런 계급(?) 자체가 또 하나의 이단들이 하는 짓거리이지만 말이다.

◈ 시편 - 반드시 고난이 낑겨야(?) !!

이제 시편을 좀 아시겠지요? 하나님의 영광에는 그 중간에 무엇이 끼어야 한다구요? 하나님의 영광을 이렇게 산 정상으로 보면 되는데, 그러면 이런 정상과 정상 중간에 골짜기가 반드시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고난이라는 것이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75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6,792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0-전도서(강의정리)-잘린부분 전도서 최고관리자 08-09-14
6,791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0-전도서(강의정리) 전도서 최고관리자 08-09-14
6,790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1-아가,이사야1(강의정리) 아가 최고관리자 08-09-14
6,789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추석선물 !! - 최고관리자 08-09-13
6,788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2-이사야2(강의정리)-잘린부분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9-13
6,787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22-이사야2(강의정리)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9-13
6,786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9-잠언2(강의정리) 잠언 최고관리자 08-09-13
열람 ➜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8-제사,욥기2,시편,잠언1(강의정리) 잠언 최고관리자 08-09-13
6,784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7-열왕기2,역대기,스,느,에,욥1(강의정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8-09-13
6,783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6-열왕기1(강의정리)-잘린부분 열왕기상 최고관리자 08-09-13
6,782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6-열왕기1(강의정리) - 최고관리자 08-09-13
6,781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5-사무엘하(강의정리) 사무엘하 최고관리자 08-09-13
6,780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4-사무엘상3(강의정리)-잘린부분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08-09-13
6,779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4-사무엘상3(강의정리)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08-09-13
6,778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3-창세기부터요약,사무엘상2-잘린부분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08-09-13
6,777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3-창세기부터요약,사무엘상2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08-09-13
6,776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2-사무엘상1(강의정리)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08-09-13
6,775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1-사사기2(강의정리)-잘린부분 사사기 최고관리자 08-09-13
6,774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1-사사기2(강의정리) 사사기 최고관리자 08-09-13
6,773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0-사사기1(강의정리)-잘린부분 사사기 최고관리자 08-09-13
6,772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0-사사기1(강의정리) 사사기 최고관리자 08-09-13
6,771 자유게시판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9-여호수아(강의정리) 여호수아 최고관리자 08-09-13
6,770 묻고답하기 안재환의 죽음과 지관 스님의 삶 [신학] 최고관리자 08-09-11
6,769 우리교회 사 59: 1- 3 (하나님의 작업방식)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9-10
6,768 자유게시판 불교의 회개문 - 백팔대 참회문 - 최고관리자 08-09-09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