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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7-열왕기2,역대기,스,느,에,욥1(강의정리)자유게시판요한복음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7-열왕기2,역대기,스,느,에,욥1(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43)

04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17 - 열왕기2,역대기,스,느,에,욥1

04,09,25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성경을 알아도 깔끔하게 !!

지난 시간에 한 것을 먼저 요약하고 시작하겠는데, 그런데 성경공부를 하면서 이렇게 진도가 나가버리면 듣는 사람은 좀 피곤한데, 이것도 쑤시고 저것도 쑤시고 하니 말이다. 그렇게 머리 속에 넣어서 술술 풀려서 나오면 좋은데, 안에서 엉켜버리면 다른 것을 더 넣어봐야 엉킨 것을 더욱 엉키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깔끔하게 정리가 되면 줄줄 딸려서 나오는데, 마치 고디(?)를 빨아먹을 때에 똥구멍(?)까지도 쏙 모두 다 빼먹듯이 말이다. 성경을 알아도 그렇게 알아야 하는데, 진도를 나간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고 말이다. 오히려 혼잡스러우면 머리가 더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열왕기상하를 공부했는데, 이것이 깔끔하게 뽑혀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 방도가 무엇인고 하니까, 즉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싸움인데, 이것이 중첩되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열왕기인데,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고, 물론 예수님 당시도 그러했고 말이다.

◈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

예수님은 요한복음 18장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런데 그 말을 본디오 빌라도 알아먹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정상인데, 아니면 눈치를 차리는 것이 정상인가?

(요 18: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사실상 사람의 눈이라는 것은, 시력으로 좌우되는 것이지 영적으로 조절되는 것이 아닌데,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히려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다는 것이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라고 했으니 말이다. 거기에 대해서 "그러면 당신 나라는 무엇인가?" 라고 하면, "내 나라는 니가 봐도 몰라" 라고 하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정작 그 진리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주지 않는데, 그러나 진리가 분명히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전부로 아니, 그 진리의 세계는 없는 것처럼 간주가 된다는 말이다.

◈ 목사님, 천국이 궁금한데요?

어떤 사람이 저에게 전화를 했는데, 천국에 대해서 너무나도 궁금해서 장시간 통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 양반이 "천국이 어디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해서, 제가 대답하기를, "천국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체로 여기에 와 있습니다" 라고 했는데, 지금 크로스빌리지에 보면 천년왕국에 대해서 질문한 사람도 있고 말이다.

◈ 예, 천국은 보이지 않는 약속의 세계입니다 !!

아무튼 천국은 보이지 않는 체로 분명히 와있는데, 그런데 왜 보이지 않는고 하니, 그것은 바로 눈에 보이는 세계가 모두 다 덮고 있으니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렇게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사실은 창세기부터 계속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세계를 두고서 두 글자로서 '약속' 이라고 하는데, 즉 '약속의 지배를 받는 세계' 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세계는 어디에 지배를 받는가? 인간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세계에서 모두 다 능력이 나오는데, 이러한 두 능력간의 싸움이 지난 시간에 공부한 '열왕기상하' 라는 것이다. 이제 기억이 좀 납니까?

* 질문 - 그때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라고 하면, 그렇다면 지금은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라고 할 수 있나요?

역시 마찬가지인데, 언제인가 한번 강의를 했지 싶은데, 역사와 묵시에 대해서 말이다. 보이는 세계를 '역사' 라고 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묵시' 라고 하는데, 인천에서 강의를 했는가? 이것은 좀 어려운 내용인데, 그것은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말이다.

◈ 사무엘상하 - 두 능력간의 싸움 !!

아무튼 보이는 세계에서는 인간의 능력이 나오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는 약속의 능력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열왕기상하'에서 보이는 세계를 추구한 사람의 이름은 사울 왕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추구한 사람의 이름은 다윗 왕이라는 말이다. 즉 사무엘상에서 이쪽은 사울 왕이고, 다른 쪽은 다윗 왕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다윗 왕의 입장이라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란 말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바로 '외로움' 때문에 그러한데, 시편의 경우에, 대부분의 시편을 다윗이 지었다고 할 수가 있는데, 거기에 보면 다윗이 누구를 의지하는가? 사람을 의지하는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가? 놀랍게도(?) 보이지 않는 분을 의지한다는 것이다.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이야기하는데, 도대체 그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다윗이 여호와를 의지해서 무엇을 얻었는가? 그것이 말이 쉽지, 장사를 하면서 그것을 외운다고 해서 손님이 한 사람 더 오는가?

◈ 시편 1편 - 율법을 묵상하는 자는 복이 있다 !!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 1: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 1: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시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그것이 시편 1편에 나오는데, 이러한 시편 1편의 주제가 무엇인고 하니, "율법을 묵상하는 자는 복이 있다" 라는 것인데,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이냐는 것이다. 아니, 율법을 묵상한다고 해서 어떻게 돈이 되느냐는 말이다. 돈이 되어야 복이지 말이다.

그런데 계속해서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 라고 하는데, 여기서 "들어오지 못한다" 라고 하는 것은, 들어오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니까지 것이 어디를 들어와? 어서 나가. 지옥에 갈 놈이 감히 어디를 들어와" 라는 식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을 좋아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도 묵상하지 않는 놈이 어디서 감히 까부는가? 어서 빨리 꺼져" 라고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내용이 시편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다윗이 별로 힘도 없는데 얼마나 당당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 다윗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아요 !!

무슨 말인고 하니, 지금 이렇게 시편을 지을 때 다윗을 따르는 무리들이 몇 명인가? 사울에게 쫓겨서 말이다. 약 500명 정도로 보는데, 얼마 되지도 않는데 말이다. 물론 저쪽은 200만 명 정도이고 말이다. 그러니 도저히 비교가 안 되는데, 그런데 이 500명이 얼마나 당당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전투를 할 때 몇 명이었는고 하니, 기드온의 군사가 300명이었다는 것이다. 기드온이 처음에 군사를 모집할 때 몇 명이 왔는고 하니 2만 명이 모였는데, (만 명이 아닌가?) 그렇게 해서 300명이 남았다는 것은, 67명이 왔는데 한 명을 남기고 다 집으로 돌려보내는 꼴이라는 것이다. 그런 정도로 하나님은 인간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신앙생활은 약속을 의미하는 것, 끝 !!

그러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약속을 믿어야지, 사람의 숫자에 연연하게 되면 신앙생활이 조금은 고로운데(?), 즉 힘들다는 말이다. 없다고 생각하면 많고, 많다고 생각하면 없는데, 그런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많고 적음에 연연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뭐라고 했는가? 결코 애굽의 말과 병거와 그 숫자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 세상 왕은 제거되고, 이스라엘은 망해야 !!

다시 한번 설명을 드리면, 열왕기상하의 주제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의 싸움인데, 이 보이는 세계의 지도자가 열왕기상에서는 왕이었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왕을 왜 주셨는가? 진노해서 없애버리기 위해서 주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왕을 제거해버리면 무엇이 날아가 버리는가? 왕이란 보이는 세계를 지배하니, 그 왕을 제거한다는 것은 보이는 세계가 박살이 나고 만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열왕기상하 마지막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멸망이고, 유다나라의 멸망이란 말이다.

◈ 땅은 없어도 약속만 있으면 !!

그래서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없는데, 그런데 무엇이 있는가? 약속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OK인데, 즉 땅은 없어도 약속만 있으면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이고 '객'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남은자' 라고 하고 말이다. 성경을 이렇게 보면 된다는 것이다.

* A : 목사님, 하나님이 세운 나라인 이스라엘이 왜 망합니까?
* B : 집사님, 이스라엘은 보이는 세계이니 당연히 망해야 합니다.
* A : 그러면 이스라엘은 없는 것이 아닙니까?
* B :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체로 여전히 있습니다.
* A : 아니, 보이지 않는 이스라엘이 어디 있습니까?
* B :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백성들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 A : 그래도?
* B : 어허,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렇게 약속을 믿는 자들이, 그런 자들을 '남은자(레멘트)' 라고 하는데, 즉 이런 약속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된 이스라엘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왕은 어디 있는가? 왕은 약속 안에 들어있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약속대로 오신다는 것이다. 다니엘서에는 이것을 '인자' 라고 하고 말이다.

* 질문 - 좀 무식하게 표현해서, 성경에서 이 약속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요?

약속이 전부인데, 물론 사람들은 약속 말고 성경에 다른 것도 있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약속 밖으로는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질문 - 하지만 사람들은 죄를 짓기 이전의 약속은 왜 끄집어내지 않느냐고 시비를 거는데, 그것은 약속이 아니냐고, 어떤 여자 분이 저에게 그런 질문을 얼마나 집요하게 하는지 말입니다.

그것은 성경에서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인데, 즉 하나님께서 끄집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을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는데, "새하얀 도화지가 깨끗합니까? 아니면 그림이 없는 상태입니까?" 라고 말이다. 그림이 없는 상태이지, 결코 깨끗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언약은 노아언약이 최초이고 그 이전에는 없었는데, 물론 그 이전에는 약속이 있었는데, 그러니 그것은 인간이 빠진 상태에서, 즉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에 이루어진 약속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인간이 전혀 개입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회의를 할 때 동석시키지를 않았으니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그 여자 분은 아직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서, 종인 주제에 자꾸만 주인노릇을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야 하는데, 왜 언약을 보면 노아언약부터 나오는데, 그런데 지금 집사님에게 질문을 한 그 여자 분이 어디에 불만이 있는고 하니, 죄를 짓고 난 뒤의 언약 말고, 죄를 짓지 이전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뭔가 준 것이 있는데, 왜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그 여자 분은 인간을 파트너로 본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는데, 즉 하나님께서 인간을 파트너로 사용했는데, 그러니 자꾸만 인간이 죄인이라고만 하지 말고, 인간이 잠시 실수한(?) 것이니까, 그러니 근본적으로는 죄인으로 보지는 말자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과 막 먹자는 것인데, 즉 하나님께서 그렇게 시켰으니, 인간은 그 약속을 지킬 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 다니엘 - 땅도 없다. 왕도 없다. 그런데 나라는 있다 !!

그건 그렇고, 조금 전에 하다만 것을 다시 살펴보면, 아까 인자가 구약의 다니엘서에 나온다고 했는데, 이 다니엘서에서 어려운 점이 무엇인고 하니, "땅도 없다. 왕도 없다. 그런데 나라는 있다" 라는 것인데, 이러한 경우가 과연 가능한가? 그런데 다니엘은 그런 경우를 약속한다는 것이다. 땅도 없고, 왕도 없는데, 그런데 나라는 있다는 말이다.

◈ 다니엘 - 여기가 곧 인자의 나라 !!

그래서 다니엘은 바벨론 70년 포로생활 이후에 돌아가지 않는데, 왜 돌아가지 않는가? 자기 나라는 자기 살고 있는 여기에 지금 있다는 것이다. 즉 자기의 나라는 약속 안에 있는 것이지, 기존의 이스라엘이라는 지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다시 어쩌고저쩌고 해도, 그것은 결코 자기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다니엘에게 있어서 '자기 나라'는 장차 올 '인자의 나라' 인데, 다니엘은 그것을 두고 "인자가 오면 내 백성은 영원무궁할 것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인자는 어디서 오는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데,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짜 나라가 성사된다는 것이다.

(단 7: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단 7: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 요한복음의 충격적 발언 !!

제가 말은 이렇게 쉽게 했지만, 사실 믿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렇다고 교인들에게 강요할 수도 없고 말이다. 보이지 않은 세계를 믿으라고 하는 것이니 그렇다는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요한복음에 나오는데, 먼저 3장 27절을 한번 보자.

(요 3:27)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여기서 뭐라고 하는가? 세례요한이 아주 충격적인 발언을 하는데, 하늘에서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치 감나무의 감을 따먹듯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하늘나라가 아니라는 말이다. 즉 줘야 받는 것이지, 주지 않는데 어떻게 받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은 8장 23절에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자기 자신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러니 이것을 도대체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누가 믿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야말로 결정타라는 말이다.

(요 8: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단지 주셔서 믿었고, 그 주신 분은 하늘에 계신 예수님 !!

그러니 이러한 두 구절의 말씀을 합쳐보자면, 먼저 3장 27절에서는 하늘에서 주어야 받는다고 하고, 그리고 8장 23절에서는 예수님은 하늘에 속했다고 하니, 즉 "하늘에 속한 예수님이 건져야 너희들이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이다. 그것이 곧 요한복음인데, 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는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그런데 만약에 여러분이 지금까지 한번도 교회에 나온 적도 없고, 전혀 성경을 모른다고 한다면, 그냥 절에만 다녔지 말이다. 그랬을 때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따져서 믿어지겠는가? 아니면 믿어져서 믿어지겠는가?" 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 인간들이 따져서 믿어질 문제가 아닌데, 그런데 "하늘에서 주셔야만 받고, 그렇게 하늘에 속한 분이 예수님이다" 라는 것이 믿어진다면, 그것은 분명히 하늘에서 믿게 주었기 때문에 믿은 것이 분명하다는 말이다. 이 땅에서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40년을 교회에 다녀도 이런 순간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50년 동안을 목회를 했어도 이런 느낌이 유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즉 "주어서 믿었고, 그것을 주신 분은 하늘에 계신 예수님이다" 라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유지가 될 때, 비로소 신앙이 유지가 된다고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 그런 믿음이 있으면 흔들림이 없어 !!

만약에 그것이 유지가 된다면, 다른 것들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삼위일체 등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을 흔들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리적인 것들이 꼬여서 좀 헷깔릴 수는 있지만, 믿음의 근본을 무너지게 하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진짜 그런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어떤 교리가 추가가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하늘에서 예수님이 주셔서 믿었다" 라고 하는 근본적인 믿음이 결코 흔들리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조금은 혼란스러울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없는 사람은, 교회에 좀 다녔다고 해도 교리적인 문제에 들어가면 그만 자빠져서, "나는 그런 식으로는 믿지 못한다" 라고 하면서 반항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근본적으로는 믿음이 없으면서도 흉내를 내려고 한다는 말이다.

◈ 다니엘서에도 요한복음의 내용이 !!

제가 요한복음을 왜 갑자기 이야기했는고 하니, 이 요한복음은 다니엘서 이후에 나오는데, 그러니까 요한복음은 예수님 시대의 이야기인데, 그러니 이러한 시대적으로 뒤의 이야기인 요한복음의 내용이 당연히 다니엘서에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니엘서에 의하면 "땅도 없고, 왕도 없지만, 그러나 나라는 있을 수 있다" 라고 되는데, 무엇으로 있게 되는가? 그것은 바로 '약속' 인데, 그 약속은 '인자' 인데, 즉 신약의 표현으로 이야기하자면, '예수님의 통치' 라는 말이다.

◈ 예수님의 통치근거는, 바로 '새언약' !!

그렇다면 예수님이 통치를 하시는데, 무엇으로 통치하시는가? 즉 통치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말이다. 세상 왕들처럼 힘인가? 그 통치방법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데, '새언약'으로 통치를 하신다는 것이다. 장차 오실 그 약속의 인자가 통치하는 방법이 오직 새언약으로만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언약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수많은 율법 중에서 하나라도 집어넣으면 폭발해서 깨어져 버린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그 새언약이 예수님의 피와 살이기 때문에 말이다. 오직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고 마셔야 영생을 얻기 때문에, 거기에 율법적 요소는 전혀 가미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천국은 새언약의 나라 !!

그러니 현재 하늘나라는 율법이 아닌, 오직 예수님의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새언약의 나라라는 것이다. 즉 죄를 씻어주고, 은혜의 통치를 하는 나라라는 말이다. 그것이 다니엘이 예언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저 받은 나라인데, 그 안을 들어다보니 그저 용서해주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천국의 모습이고, 하늘나라에 속한 성도의 고백이라는 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요한복음 3장 27절과 8장 23절은 정말로 중요한데, 이 두 가지를 연결해서, "우리는 땅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구원은 오로지 하늘에서 주셔야만 받고, 그렇게 하늘에 속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다" 라는 것이 말이다.

◈ 대한민국은 왜 망하는가?

이렇게 해서 열왕기상하에서는 무엇을 보여주는고 하니까, 보이는 나라와 보이지 않는 나라와의 싸움에서, 하나님께서 왕을 폐함으로 말미암아 보이는 나라는 결국 망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나라는 망하는가? 당연히 망하는데, 아무리 '대한민국 으라차차차' 라고 해도 말이다. 미국, 일본, 중국도 모조리 다 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망하는 그 이유를 알아야만 하는데, 보이는 나라가 왜 망하는가? '새언약에 따라서' 인데, 즉 새언약은 구원을 받는 자에게는 피와 살이 생명이 되는데, 그런데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피와 살을 믿지 않으면 저주가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존의 힘을 자랑하는 나라는 새언약의 원칙에 따라서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 새언약에 속하지 않으면 무조건 저주 !!

그것이 이사야의 내용인데, 이사야서에 보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장차 오실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이방나라는 저주를 당연히 받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새언약에 속하지 않기에 말이다. 그러니 언약이 없다면 무조건 저주를 받는다는 말이다.

이것은 사사기를 할 때 이미 이야기를 다 했는데, 무엇인고 하니, 모세언약에 속하지 않는 이방민족은 무조건 가나안 땅에서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이 저주를 받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대통령이 너무 무능해서가 아니라, 그 이유는 이사야서에 의하면, 새언약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 현재 이스라엘은 과연 새언약에 속하는가?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지겠는데, "현재 이스라엘은 과연 새언약에 속하는 나라인가?" 라는 것이다. 현재의 이스라엘은 이방나라인데, 아까 한 것을 다시 해보면, 현재 하나님 나라는 새언약의 지배를 받는데, 즉 피와 살로서 용서함을 받는 말이다. 그러니 망할 나라는 새언약에 의해서 저주를 받는 나라라는 말이다.

◈ 그러면 망할 나라에 교회가 포함되는가?

그렇다면 그런 망할 나라에 교회도 과연 포함이 되는가? 교회도 역시나 망할 나라에 포함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하늘나라가 그만 내려와 버리면 이 지상에서의 교회는 그야말로 들락날락인데, 즉 교회는 "나타났다, 사라졌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숨을 쉬면 공기가 들쑥날쑥을 하듯이 하늘나라의 특징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 몸에서 숨을 쉬면 공기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데, 그런데 그 공기에게 "니가 사람의 몸 안에 들어갈 수 있는가?" 라고 물으면, 공기의 입장에서는 '예'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들락날락하니 말이다. 물론 자기 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늘나라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교회를 세웠다, 헐었다",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지금도 계속해서 하고 있는데, 하늘나라에서 말이다. 그것이 요한계시록 2장에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에베소, 서머나 등등, 여러 교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래서 교회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질문 - 하지만 그들이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되어야 한다고 하면요?

지금 빌라델비아 교회는 망하고 없는데 그런 말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니 그런 빌라델비아 교회를 본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본받아야 하는가? 본받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즉 약속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하늘나라에 속했으면 걱정을 하들들 말라는 것이다. "하늘나라에 속했으니, 교회생활을 잘해야지" 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나라에 속했다고 하는 것이, 즉 구원을 받은 것은 공짜로 받았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저 받았으면, 그냥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 되는데, 그런데 "그저 받았으니 잘 관리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요한계시록의 교회처럼 촛대를 옮기면 안 되는데" 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촛대를 옮겨도 구원을 받으면 되니 말이다. 촛대를 원래 옮기라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 교회는 하늘나라의 입김에 의해서 !!

물론 땅은 없어도 괜찮은데, 약속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믿으면 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약속이 무엇인가? 새언약인데, 다니엘처럼 새언약을 믿으면 된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망해버리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하늘나라를 대신할 교회가 있는가? 없다는 말인데, 즉 교회는 하늘나라의 입김에 따라서 '생겼다가, 사라졌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0년에서 2003년까지 있다가 그 다음해에 없어지고, 또 다시 2004년에 만들어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데, 그런 것은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교회 자체에 너무 부담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제대로 모이지 못한다고 벌을 받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몇 명이 모이다가도 사정상 어려우면 해체하면 되고, 그러다가 또 다시 복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된다는 말이다.

◈ 다니엘 - 나는 '70이레'가 있어서 안 돌아갈 거야 !!

다니엘서를 보면 얼마나 그런 점에 대해서 부담이 없는지, 다니엘이 뭐라고 하는가? "나는 안 돌아갈 거야. 70이레가 있는데 왜 돌아가는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님이 계시를 주는데, '70이레' 이니, '62+7+1' 이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 백성들 : 우리 성전을 세우자.
* 다니엘 :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 허물어진다
* 백성들 : 그러면 니는 뭘 믿노?
* 다니엘 : 나는 마지막 '한 이레'를 믿는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다니엘은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는, 즉 영원한 제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합쳐져서 '70이레' 인데, 그러니 아까 세례요한이 한 말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지, "하늘에서 주지 않으면 아무도 받을 수 없다" 라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데 어떻게 받지 않을 수가 있는가?" 라는 말이다.

◈ 받고 보니 구원인데, 어찌 은혜가 아닌가 !!

누군가가 "당신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라고 하면, "하늘에서 믿음을 주시는데, 제가 받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고 보니, 예수님의 피이고 살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영생이었습니다" 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아하니 그리 나쁜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주는 것이라서 받았는데, 그런데 그렇게 받고 보니까 그만 구원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냐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두 자로 '은혜' 라고 한다는 말이다. '은혜' 말이다.

그러니 거기에 인간의 행함이 들어갈 자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흔들리면 안 되는데, 물론 '받는다' 라는 것을 가지고 인간의 행함이라고 시비를 걸 수도 있지만, 그러나 에베소서에 보면, 믿음은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질문 - 그러면 '준비한다' 라는 것은 '꽝' 이겠네요? 그러면 이렇게 성경공부를 하는 것은요?

당연히 그러한데, 인간이 준비는 무슨 준비, 그냥 주면 받는 것인데 말이다. 그러한 것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성령을 받을 준비를 한다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말씀을 공부해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그것은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의 뜻이라는 말이다.

◈ 역대기와 한국교회 !!

이제 114페이지를 '역대기와 한국교회'를 하겠는데, 중간에 있는 다음 한 줄만 읽어보겠는데, 얼마나 마음에 가슴에 와 닿는지 말이다. (웬 자화자찬, ㅋㅋ)

** 이 세상 나라는 흥망성쇠가 있어도 다윗의 나라는 영원하고, 국가의 형식은 사라져도 본질은 끊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멋진 문장인가? 요즘 말로 바꾸자면, 교회의 제도와 그 형식은 없어져도 구원받은 백성들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하늘나라는 말이다. 이렇게 하늘나라는 없어지지 않는데, 이미 와버렸으니 말이다. 우리의 형태가 아무리 바뀌어도, 즉 우리가 노숙자가 된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하늘나라의 백성이니 말이다.

거지 나사로의 마지막 직업이 무엇이었는가? 요즘 말로는 '노숙자' 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런데 막상 천사가 와서 VIP 대우를 하면서 천국에 받들어서 모시고 갔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물론 지옥에 가는 인간들은 질질 끄집고 가겠지만 말이다.

◈ 이제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

이제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를 공부하겠는데,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묶어서 같이 간단하게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간단하게 살핀다고 해서 쉬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실 신학생들이나 교수들이 이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어려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제목설교라도 정해서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도 별로 없는데, 자기들 스스로가 별로 자신이 없어서 말이다. 그러니 교인들도 잘 모르고 말이다. 물론 자신 있게 설교한다고 해서 제대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면 먼저 신학교 교수들이나 신학생들, 그리고 목사들이 왜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어려워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자는 말이다.

◈ 왕도 없고, 나라도 없는데, 그러면 백성은?

성경은 창세기부터 시작을 해서 출애굽기, 레위기, 그렇게 흘러가는데, 그런데 열왕기와 역대기에서 나라가 망하는데, 그렇게 나라가 없어졌다는 것은 왕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인데, 하지만 이렇게 왕은 없지만 백성은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백성이 과연 진짜 이스라엘 백성이냐는 것인데, 왜냐하면 나라도 없고 왕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백성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다니엘서의 경우에는, 다니엘처럼 확실하게 믿으면 되는데 말이다.

아무튼 이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왕이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선지자도 아니고 말이다. '성경교사(?)' 라고 할까요?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인데, 즉 일종의 스승이라는 말이다. (목사??) 그러므로 이들에게는 어떤 왕적인 권위나, 또 선지자처럼 그들의 말을 들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도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그런데 왜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보내어서, 이스라엘 백성인지 아닌지 구별도 제대로 안 되는 자들을 이스라엘 땅에다 모아놓았느냐는 것이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이다.

좀더 쉽게 이야기하면, 나라가 망하고 난 뒤에 메시야가 바로 오면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필요 없는데, 그러니 지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망했으면, "네 이놈들, 너희들의 죄를 알렸다. 이제는 내가 간다" 라고 해서, 예수님이 바로 오셔서 그들을 인수인계해서 천국에 보내면 일이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왜 흐지부지하게(?) 메시야도 아닌 성경교사에 불과한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먼저 와서 활동을 하고, 예수님은 나중에 나타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이들을 거쳐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인지, 도대체 그들이 중간에 왜 끼여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말이다.

* 질문 - 보이는 성전을 새로 짓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이들은 기존의 성전을 개축했지 새로 지은 것은 아닌데, 성전을 새로 짓은 것은 스가랴나 에스겔에 보면, 장차 하나님의 신이 임해서 새성전을 짓게 되는데, 그러나 이들은 성전을 보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우는데, 그 성전이 너무 초라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전을 개축했는데 또 허물어지는데, 그러면 허물어질 성전을 왜 그렇게 고치고 하느냐는 것이다.

◈ 에스라, 느헤미야 - 인간의 열심은 안 돼 !!

그런데 아까 다니엘서를 말하면서 '62+7+1' 이었는데, 이들이 바로 '7'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 했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의 노력으로는 하늘나라가 회복이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그것이 곧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역할이라는 말이다. 성경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하고, 성전을 고치고 해도, 그런 인간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울고불고 탄식할 뿐이지 말이다.

쉽게 예를 들자면, 어떤 교회가 너무너무 타락을 했는데, 당회장도 엉망이고 교인들도 그러한데, 그런데 거기에 어떤 부교역자가 와서 보니, 너무나도 엉망이고 비복음적이라고 강단에서 피를 토하면서 설교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방을 가서 교인들을 설득시키고 했는데, 하지만 6개월만에 모든 것이 다 허사로 돌아갔는데, 당연히 그 부교역자는 면직이 되고 추방이 되었고 말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 교회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왜 도와주지를 않느냐고 하면서 원망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란 말이다. 즉 "저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데, 그러면 당연히 차기 당회장이 되어서 제대로 된 교회로 하면 참 좋을 텐데. 그런데 왜 저렇게 쫓겨나야만 하는가?" 라고 말이다. 부광이 아닌 대광 고등학교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교목이 바른 소리를 하다가 그만 쫓겨났다는 것이다.

◈ 괜찮은 사람이 일을 하면 좀 좋을 텐데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하시는가? 하나님에게 왜 그런 절차가 필요했는고 하니,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아예 선입관 속에 "어떤 사람이 들어서 일을 하니 일이 좀 나아지더라" 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을 예수님 앞에서는 하들들 말라는 것이다. 에스리와 느헤미야가 그것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괜찮은 인간이 일을 제대로 하면 나아질 것이라고 하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개과천선을 하는 인간은 없으니, 그러니 예수님 앞에서는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는 것이다. 그런 헛된 망상은 다시는 꿈도 꾸지 말고 말이다.

그것은 신약시대의 사도도 마찬가지인데, 사도가 활동함으로 교회가 개혁이 되고 제대로 될 것이라는 그런 사고방식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결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 나라와 십자가의 효력을 더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 십자가 앞에서 과연 무엇이 아름다운가?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두 다 이루었는데, 그렇다면 그렇게 예수님께서 다 이룬 것을 열심히 전파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지 않느냐고 하는 사고방식, 그것도 역시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이지 아시겠지요?

이런 것이 참 어려운데, 십자가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의 지혜' 인데, 그렇다면 그 십자가를 증거하는 것도 하나님의 지혜인가? 그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이 증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전도를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십자가만을 전하기 때문에, 그렇게 제대로 전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의 협조자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라는 말이다.

◈ 목사님, 제가 컵을 바치고 있겠습니다 !!

더 명확하게 예를 들어보면, 지금 이렇게 제가 물을 마시려고 하고 있는데 누가 옆에서 "목사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물을 따라주는데, 컵을 바치고 있다든지 하면, 그것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귀찮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이렇게 자기 딴에는 뭔가를 한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까 집사님이 뭐라고 했는고 하니, 복음에 율법을 조금이라고 섞어버리면 복음은 '꽝'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그것을 좀더 철저하게 믿어보면, 즉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여기는 사고방식은 전혀 십자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인간들이 어떤 사심(?)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발생적으로 나오는데, 누구든지 다 말이다.

◈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안들 !!

아무튼 신학교 교수들이나 목사들이 이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데,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말이다. 만약에 안다고 해도, 저와 같이 정리를 해버린다면 설교현장에서 뭐라고 설교를 하겠는가? 그러니 그렇게는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설교의 현장에는 오직 예수님 이야기만 해야하고, 예수님만이 드러나야 하는데, 그런데 목사들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증거했더니만, 복을 받았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복은 천국이 아닌, 돈을 의미하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뭐가 되는가?

물론 증거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은 성도의 당연한 일인데, 그런데 제대로 증거하면 되는데, 즉 "우리는 죄인이며, 예수님만이 모든 것을 다 이루었습니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인간들이 어디 그렇게 증거하는가?

지금 우리교회에서 어느 집사님이 말하기를, 목사님이 헌금을 하지 말라고 해서 교회재정이 파탄이 날 지경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하라'와 '하지 마라' 중에서, 그 어느 것을 선택해도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 훼방을 놓는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감사하면 되는데 말이다. 지금 주님은 우리의 모든 마음을 다 관장하고 있는데 말이다.

◈ 주님의 일에 '협조'는 없어 !!

그러니 성도에게 있어서 '협조' 라는 것이 성립이 되지 않는데, 주님의 일에 있어서 말이다. 주님은 그 어떤 순간에도 자기 백성을 관리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목사가 먼저 믿어야 하는데, 목사가 먼저 믿어야지 누구에게 그것을 믿으라고 강요하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오직 주님의 십자가만이 지혜인데, 그러니 주님의 일에 자기가 도움을 준다고 하면서 협조를 하겠다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아까 주전자에 있는 물을 컵에 부어서 마시듯이 말이다. 자기가 무슨 컵을 바치겠다고 설치느냐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예수님만이 다 하시도록, 그렇게 예수님에 맡겨야만 한다는 것이다. 괜히 끼어 들어서 엉뚱한 짓을 하지 말고 말이다. 그래야 주님께서 혼자서 다 이룬 것이 맞지 않느냐는 말이다.

* 질문 - 아마 이런 시빗거리가 나오지 싶은데, "야, 너는 옆에서 보니 너의 유익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너의 복음의 성경말씀과 틀리는 것이 없는데, 그런데 너는 왜 그렇게 인간의 일을 무가치하게 여기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말입니다.

◈ 상대방인 아닌, 주님을 바라보아야?

그것은 무엇과도 같은고 하니까, 신약에서 고넬료와 베드로의 마음을 누가 주장하는가? 둘 다 서로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상대방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관리하고 계시는 주님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주님을 말이다.

그런데 집사님에게 시비를 거는 그 양반은 주님은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이야기를 하는 상대방을 쳐다보고 있는 것인데, 왜냐하면 주님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보이는 것은 앞에는 상대방만이 자기 눈에 들어오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이렇게 '경과(경유?)' 해서 바라보고, 또 저렇게 경과'해서 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보면, 주님이 그냥 계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길이 이쪽도 관리하고 저쪽도 관리하는, 그런 주님의 손길이 보인다는 말이다.

◈ 여보, 그것도 주님의 뜻이야 !!

예를 들어서, 부부싸움을 할 때도 경과해서 보아야 하는데, 그냥 상대방만이 보이니 서로 치고 박고 난리가 난다는 것이다. 교회에 와서 말씀에 은혜를 받고 집으로 잘 가다가 그만 신랑이 매너가 없는 앞차 때문에 운전을 험하게 했다고 해서 열받지 말고, "당신이 그렇게 험하게 운전하는 것도 주님의 뜻이겠지" 라고 하라는 말이다.

그러면 신랑은 뭐라고 하겠는가? "당연하지, 마누라야"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이해해주니 정말이지 고맙다. 나도 심하게 했지" 라고 하게 되는데, 그러면 무엇만 남게 되는가? 주님의 은혜와 공로만이 남는다는 것이다.

* 질문 - 제가 받은 은혜를 마누라에게 전하는 싶은데, 자연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물론 그것 자체가 선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죄라고 할 수 있나요?

그것은 결과를 보아야만 하는데, 그렇게 전하고 난 뒤에 5초가 지났는데, 그러면 인간은 "아니, 내가 방금 무엇을 했지?" 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모르겠는데,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복음을 전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주님이 전하게 했다는 마음이 들면 고마움이 나오는데, 이것이 중요한데, 그런 고마움이 나오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경우밖에 없는데, 자기가 죄인임을 느낄 때 말이다. 참 아이러니한데, 자기의 모든 행동이 죄임을 느낄 때, 그것이 주님의 은혜와 공로만 남기는 것이 된다는 말이다.

◈ 성도는, 자기가 죄인임을 느낄 때 행복이 !!

이것이 성경 안에 있는 독특한 세계인데, 성도에게 있어서 살아가면서 제일 기쁠 때가 죄인임을 느낄 때이고, 그때가 제일로 고맙다는 것이다. 만약에 죄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은 어떻게 되는가?

예를 들어서, 만약에 집사님이 아내에게 주먹질을 했다면, 물론 예를 들어서 말이다. 그때 집사님은 고마움이 아니라 미안함을 느끼는데, 그렇게 되면 자기 마음대로 죄인이 되었다가, 또 덜 죄인이 되었다가, 또 괜찮은 인간이 되었다가, 그렇게 자기가 정해놓은 대로 판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어제 운전을 할 때는 주님에게 고마움을 느끼다가, 오늘은 그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질문 - 그것은 뒤를 되돌아보니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요?

그것은 자기가 주먹질을 할 때가 대비가 되어서 고마운 것이 되어서, 그것은 헛방이란 말이다. 진짜 고마움은 무엇인고 하니, 운전을 할 때도 그것이 죄이고, 주먹질을 해도 그것이 죄라는 것을 느낄 때라는 말이다. 그러니 그 어느 경우라도 범사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범사에 고맙다는 것은, 자기가 고마워하는 지경과 미안해하는 지경이 구별이 되지 않는 경우인데, 일종의 해탈(?)의 경지라고나 할까요?

만약에 자기가 성경을 읽는데 눈이 침침해서 안경을 끼고 보니 성경이 보였는데, 그렇다면 "안경이 참 고맙구나" 라고 하는데, 실제로 안경이 고맙다는 것이다. 그러면 큰 글 성경을 본다면, 그 순간에는 안경이 어떠한가? 별로 고맙지 않다는 것이다.

◈ 과연 고마움의 주체가 누구인가?

그러므로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까, 결국에는 고맙고 말고 하는 것은 자기가 정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하지만 왜 건방지게 자기가 정하고 말고 하느냐는 말이다. 주님의 있음 자체가 항상 고마워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지 않는가?

자기가 마누라를 팰 때 주님이 계시지 않았는가? 그리고 큰 글의 성경을 볼 때는 주님이 없었는가? 늘상 고마워야 하는데, 그런데 자기에는 고마울 때가 있고, 조금 고마울 때가 있었고, 그리고 미안할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변동사항이 있다는 것은, 결코 범사에 고마워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라" 라고 하면, 우리는 "아니, 왜 이러십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고 말이다. 그러니 마누라가 죽었을 때도 감사하는 것은 그야말로 해탈의 경지라는 것이다. (??) 사실은 그것이 해탈의 경지가 아니라 원래 주께서 요구한 바이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임의로 조정을 하는데, 즉 "이것은 주님께 감사하는 것이고, 저것은 마누라에게 고마운 것이다" 라고, 그렇게 말이다. 그렇게 임의로 조정한다는 것 그 자체가 모든 중심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은혜로운 것도 자기가 정해서 은혜롭고, 미안한 것도 역시 자기가 정해서 그렇게 미안하고 말이다.

* 질문 - 마누라를 때릴 때 미안한 마음으로 때리면요? 물론 말장난 같기도 한데 말입니다.

물론 마누라를 때리는 것은 좋은데(?), 그 순간에 자기가 죄인임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에게 감사하는 것은 자기가 죄인임을 느낄 경우뿐인데, 그러니 그런 죄인임을 깨달으면서 때리면 주님께 감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 때리면서 감사하는 인간이 있는가?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상대방을 때리면서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는 경우는 없다는 말이다. 아니, 지금 성질이 있는 대로 나서 패는데, 그런 것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새디스트??)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는 인간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말씀은 인간을 죄인 되게 하는데, 다만 행복한 경우가 언제인고 하니, "범사에 감사하라" 라는 소리를 듣고 자기의 부족함을 느낄 때, 바로 그 순간에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저 같은 인간에게도 때릴 수 있는 마누라를 주시다니" 라고 하면서 말이다. 말을 하고 보니 표현이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 질문 - 그런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서로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얻어맞는 아내의 입장에서는 수준이 필요 없는데, 마누라도 열을 받으면 "그래, 니는 주님께 감사해라. 나는 도끼(?)를 들고 팰 게" 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래, 알았다. 맞을 게" 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득도(得道)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스데반 집사에게서 나온 것인데,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으면서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는 죽어도 당연한 죄인이니 말이다.

이것은 성령을 받지 않으면 불가능한데,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소서" 라고 하는데, 그것은 물론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그렇게 억지로 연기를 할 수는 있지만, "야, 던져라. 내가 맞을 게"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않으면 진심으로 그런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언약에는, 죄와 은혜가 사이좋게(?) 동거를 !!

이렇게 인간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의식이 있을 때만 하나님께 대해서 감사함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언약' 이라는 것이다. 이 언약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그 맞은 편에는 죄가 있다고, 이것은 제가 이미 수백 번은 이야기했지 싶은데, 즉 한 쪽에는 용서하시는 분이 있고, 맞은 편에는 용서함을 받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데반 집사는 언약의 종이 되는데, 지금 우리도 언약의 종이 되어야 하고 말이다.

◈ 인간의 노력은 역시 '한때' ??

그러므로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무엇인고 하니까, 바벨론에서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을 해서, 거기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십일조를 내고, 제사를 좀 흉내(?)를 내고, 이방여인과 혼인한 것을 헤어지라고 하고 말이다. 그렇게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하고, 그렇게 율법을 지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한때' 이었는데, 그러면 그 한때가 이스라엘을 회복토록 했는가? 그때뿐이었다는 것이다.

◈ 이제 우리가 잘 아는(?) '에스더'를 !!

아쉽지만(?)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그 정도로만 하고, 이제 '에스더'를 살펴보겠는데, 아마 이 에스더는 여러분들이 그래도 잘 알지 싶은데, 요즘 이 이름을 지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나운서도 있고 말이다. 물론 이름도 예쁘고 하니 말이다.

이 에스더서의 핵심은 무엇인고 하니까, 에스더가 자기의 아름다움으로 유대인들을 구원했는데, 물론 삼촌인 모르드개는 배후에서 조종하는 인물이고 말이다. 이 에스더가 목숨을 걸고 왕에게 지팡이를 내밀면서 동침을 요구했을 때 어떻게 되었는가?

아하수에로 왕이 그만 눈이 순간적으로 '뿅' 가서 "아니, 이렇게도 내 마누라가 예뻤다니" 라고 하면서 수락을 했는데, 그래서 "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그대의 소원을 말하라" 라고 해서, 그렇게 해서 하만이 죽게 되고 유대민족을 위기에서 구했다는 말이다.

◈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 속에 번쩍 !!

그런데 문제는, 과연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했느냐는 것이다. 그때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 속에 잠깐 잠깐, 순간 순간, 그렇게 작용하고 있었다" 라는 것이다. 이 에스더서가 바로 그런 내용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라가 망했다고 해서 너무 낙심하지 말고, 땅이 없고 왕이 없다고 해서 또 너무 낙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이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것, 그것이 곧 '에스라', '느헤미야', 그리고 '에스더' 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해가 되시나요?

* 질문 - 그러면 천주교의 마카베오서는 어떻게 되나요?

그것을 우리는 '마카비서' 라고 하고 하는데, 그 내용을 읽어보면, 약속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약 너희들이 잘하면 약속이 오고, 그렇지 않으면 약속이 오지 않는다" 라고 되어있는데, 그러니 인간의 행함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너희들이 그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잘 견디면 메시야가 빨리 오고, 그렇지 않으면 늦게 온다" 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주님께서 뭔가 이유가 있어서 의도적으로 인내를 준 것이지, 그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인내를 잘하니 주님이 그것을 보고 "아이쿠, 내가 빨리 가야 되겠네" 라고 해서 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고생을 시키는 것도 주께서 다 알아서 고생을 시킨다는 것이다. 일부러 말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마지막에 보면 뭐라고 하는고 하니, "내가 때를 감하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마 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마 24: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 잠시 에스더의 내용을 살펴보면 !!

여기서 에스더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 에스더는 미모에서 시작해서 미모로 마친다고 할 수 있는데(?), 바사(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이 자기 마누라의 미모를 자랑하기 위해서 파티를 열어서 "여봐라, 우리(?) 마누라가 예쁘지" 라고 하면서 왕의 권위를 세우려고 했다는 말이다. 즉 왕이 잘났으면 마누라도 예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마누라가 그만 연회장에 나오지 않으니, 왕이 그만 뿔따구가 나서 신하들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보니, 신하들이 왕의 마음을 알고서, "왕이시여, 저런 여자를 그냥 두면 나라꼴이 엉망이 됩니다. 집집마다 여자들이 남편의 말도 듣지 않고 말입니다" 라고 하니, 왕이 자기 마누라를 그만 조져버렸다는 것이다.

◈ 모르드개와 에스더 !!

그렇게 하고 난 뒤에 대타로 뽑힌 것이 바로 '에스더' 인데, 그때 그 에스더를 누가 추천했는고 하니, 미용실 원장 선생님이 한 것이 아니라, 삼촌인 '모르드개'가 그렇게 했다는 말이다. 사실 모르드개가 그렇게 추천할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과거에 그가 공로를 세운 것이 있었는데, 아하수에로 왕을 음해하려는 인간을 고자질해서 왕의 목숨을 구해주었는데, 그런데 그에 대한 보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중간에 '하만' 이라는 인간이 왕의 총애를 받는다고 해서 깝죽거리면서, "어이, 모르드개, 나에게 인사를 해야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모르드개도 왕에게 공로가 있으니, 그렇게 해서 왕에 대한 공로싸움(?)이 시작되었는데, 그러자 하만이 약이 몰라서 모르드개가 유대민족임을 알고, 그들을 조지기로 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이 나라에서 왕 다음으로 권세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일이 그렇게 진행이 잘 되고 있는데,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그렇게 되었는데, 왕이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왕궁일기를 보는데 거기에 모르드개의 공로가 적혀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왕이 하만을 물러서, 왕에 공로가 있는 사람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으니, 하만은 당연히 최고의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자기인 줄 알고 말이다.

◈ 에스더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장난치기 ??

이러한 에스더서에 나타난 하나님께서 인간을 데리고 노는 장난치기(?)에 보면, 인간이 자기 꾀에 그만 넘어가는 식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너무 욕심이 많고, 너무 잘난 척하고, 천하가 자기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결국 자기 함정에 자기가 빠지고 마는 식으로 된다는 말이다.

◈ 하만의 자기 착각과, 왕비겁탈사건 !!

이런 에스더서에는 두 가지 반전이 있는데, 하나는 무엇인고 하니, 칭찬의 문제에 있어서 하만은 자기 자신을 칭찬하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하만이 누구에게 애걸복걸하는고 하니, 에스더에게 그렇게 하는데 그것이 왕의 눈에 어떻게 보였는고 하니, 자기 마누라를 겁탈하려는 것으로 비추어졌다는 것이다. 자기를 살려달라고 빌고 있는 장면이 그렇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두 가지의 오해인데, 사실은 왕비를 겁탈하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왕이 그 왕비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모르는 척 해버리면 그만인데, 그런데 그때 에스더는 왕이 최고로 사랑하는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두 가지의 오해가 말이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바르게 살아도 결국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사실 하만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한가? 강제로 무엇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로 사정사정을 하려고 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하만을 작살내려고 하는 왕의 입장에선, 그것이 정반대로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세상의 불신자들이 아무리 바르게 산다고 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은 결국 인간의 죄악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질문 - 로마서에 보면, 율법이 없으면 죄가 아니고, 율법이 있어야 죄라고 하는데요?

(롬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물론 그런 의미도 있지만,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것이 이미 유대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율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방나라이지만 율법이 있는 상태로 보아야 하는데, 즉 건드릴 것을 건드려야지 도대체 누구를 건드리느냐는 것이다. 유대인이 그들의 밥도 아닌데 말이다.

유대인은 그래도 택한 민족이고 건드려도 하나님이 건드려야 하는데, 그런데 어떻게 개 같은 이방민족이 유대인을 건드리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나라가 망하고, 땅이 없고 왕이 없다고 해도 말이다. 즉 나라는 망해도 약속의 하나님이 왕으로 계신다는 것이다.

아무튼 하만의 애걸복걸하는 모습이 왕에게 자기 마누라를 겁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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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7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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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