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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5-사무엘하(강의정리)자유게시판사무엘하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5-사무엘하(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43)

04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15 - 사무엘하

04,09,1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하나님의 정확하심 !!

우리가 지금 이렇게 구약을 공부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무엇이 정확한가?"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진리라는 것은 명확하고 정확해야하니 말이다. 뭔가 흐리멍텅하다면 믿을 것이 되지 못하는데, 우리가 사람도 정확해야 믿을 수가 있지 않느냐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확하게 말씀해주셨다는 조건 아래에서 믿는다는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이랬다, 저랬다" 라고 하면, 도대체 어느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모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마치 중국 무술영화에서, 한 사람이 여기 저기에서 마구 나타나는 것처럼, 그래서 도대체 누가 진짜이고 가짜인지, 즉 누구에게 활을 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특히 이렇게 성경공부를 할 때는 정확한 것이 무엇인지, 즉 정확하게 알아야 하고, 정확하게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 사무엘하 - 택함을 입은 자만이 구원을 !!

오늘은 사무엘하를 시작하겠는데, 먼저 이렇게 사울 왕이 있고,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다윗 왕인데, 그렇다면 여기에서 하나님의 정확한 뜻이 무엇이냐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택한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울이라는 왕이 있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많이 있다고 해도, 오직 하나님께서 택한 자만이 구원을 받고, 택함을 받지 못한 자는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다윗' 이라는 왕은 택함을 받은 사람들의 왕이라는 것이다. 즉 선택한 민족의 왕으로서 다윗을 선택해서 심어놓았다는 말이다.

◈ 다윗을 중보자로 자기 백성을 !!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일을 하시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오직 선택한 민족만 구원을 받는데, 그렇게 선택한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중보자로서 다윗이란 왕을 보내서, 바로 그 왕을 통해서 선택한 자기 백성을 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 예수님이 하늘에서 왔다는 것은 아시죠?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왔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태어나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데, 그것을 그냥 하늘이라고 해버리면, 그 하늘 위에 또 무엇이 있느냐고 하면 문제가 생기니 말이다. 구름 위에 별, 별 위에 하늘, 그럼 하늘 위에는?

◈ 영적 세계에서 육의 세계로 !!

하지만 이렇게 성령으로 오셨다는 것은, 인간들이 이렇게 느끼는 물질세계의 외부에서 뚫고 이리로 오셨다는 말이다. 즉 영적세계에서 그렇게 오신 것을 성령으로 오셨다고 한다는 말이다. 과학을 하는 사람이 참 문제인 것이, 자기들이 육에 속해있기 때문에 아무리 현미경과 망원경을 가지고 연구해도, 육에서 나온 것은 육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은하세계에 별이 3천억 개가 있고, 또 그런 은하세계가 3천억 개가 된다고 해도, 그래서 지구와 같은 곳이 있어서 생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들, 그것이 진리인 성경말씀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것이 모두 다 육의 세계인데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이 걱정이 되어서 말하기를, "목사님, 만약에 저 우주에 외계인이 살고 있다면 성경이 다 거짓말이 아닙니까? 우리는 정확한 것을 믿어야 한다는데,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라고 하는데, 그러니 과학자의 말이 맞으니 성경을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성경을 버리면, 그 성경 속에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도 버리게 되고,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도 애초부터 없었고, 그러니 천국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도 없고, 그러면 죄를 지어도 들키지 않으면 되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현대과학이 말하는 것처럼 쥐뿔도 아무 것도 아니고, 죽으면 그냥 또 다른 분자와 원자 등의 에너지로 변하게 되는데, 에너지 보존 법칙에 의해서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일단 기분은 좋은데, 심판주가 없으니까 무슨 짓을 해도 되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얼마나 허무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자살이 많은데, 자기가 지금 이렇게 존재하는 이유도 없고 말이다. 결국 자기는 일종의 연탄재(?)에 불과한데, 아무리 연탄재에 옷을 입혀보라는 것이다. 그것이 연탄재이지 다른 가치 있는 무엇이 되는지 말이다.

◈ 말씀이 육신이 되매 !!

물론 그런 인간의 허무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지어낸 것은 아니고,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그냥 육의 세계에서 태어나서 육의 세계로 끝을 맺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누군가가 성령으로 침투를 했다는 것이다. 즉 이렇게 '육의 세계' 라는 고무풍선이 이렇게 있는데, 이 고무풍선 속으로 밖에서 구멍을 뚫고서 들어왔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이제부터는 육과 함께 영이 공존하는 그런 세계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이것을 "말씀이 육신이 되매" 라고 하는데, 제가 이것을 여러 군데에서 강의를 하면서 얼마나 많이 강조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고 하는 것, 그것보다 더 크고 놀라운 사건이 있으면 나와보라는 말이다. 세상에 그것이 말이 되는 소리이냐는 것이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냥 보이지 않는 그 상태로 하늘에 계시면 되는데, 그런데 몸소 보따리를 챙겨서 육의 세계에 같이 합류를 했다는 것, 그것보다 더 놀라운 사건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 오잉, 사람을 낚는 어부 ??

왜 낚시를 하는 곳에 가보면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다들 조용하게 앉아서 열심히 진지하게 하는데, 컵라면이나 먹으면서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은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까?" 라고 한번 물어보라는 것이다. 대부분이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고 하지 말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낚시이고, 월척을 낚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고기를 잡는 것이 중요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베드로였는데, 이 베드로에게는 고기를 잡는 것이 낚시의 수준이 아니라, 자기의 본업이니 말이다. 그것을 팔아야 자기 가족들이 먹고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자기 장모도 살리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난데없이 "이제부터는 그런 물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지금 베드로가 육의 세계에 있지만, 자기의 내부도 역시 육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육에 예수님의 말씀이 침투해버렸다는 말이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라" 라는 영이 말이다.

◈ 영적운명, 영체, 영적사람 !!

바로 그 영이 베드로의 운명을 쥐고 흔드는데, 그래서 베드로는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갈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에 코가 왕창 낀 운명이 되는데, 그것을 '영적운명'(?) 이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제가 안산에서 강의할 때 아주 신비로운 용어를 사용했는데, '영체(靈體)' 라고 말이다. 성경적 용어를 하면 '영적사람' 이라고 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베드로가 완전하다는 말이 아닌데, 우리가 알다시피 그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결코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영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완전하다는 말이 아니라, 육이 육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침투한 영, 즉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이 그 사람을 인도할 때, 바로 그것이 영적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을 이야기하면서, "완전하다, 실수가 없다, 죄를 짓지 않는다" 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술 담배도 전혀 하지 않고, 교통신호도 잘 지키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하는, 그런 것들은 모두가 다 인간들이 조작해낸 영적인 것이란 말이다.

정말이지 영적인 사람은, 그 사람이 교도소를 자기 집처럼 드나들고, 사람을 때려서 죽이든, 삶아서 죽이든,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그런 것을 아무리 해도 한 글자로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 '육(肉)'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까 집사님이 여기 수학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렇게 가르치는 것도 육이고, 배우는 것도 육이라는 말이다. 즉 육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침투해버리면, 약속이 그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고, 즉 그 사람을 약속이 인도해서 약속의 세계로 집어넣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택한 자만 건진다는 원리라는 말이다.

◈ 영은 영이 와야만 !!

다시 말씀드리지만, 선택한 자만 구원한다는 원리가 무엇인고 하니까, 육은 육을 선택할 수 없는데, 즉 자기가 자기를 천국에 넣어달라고 하나님께 똥배를 내밀어도 안 된다는 것이다. 육은 영을 선택할 자격이 없는데, 육은 백 날을 해봐야 육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영이 와서 육을 찍어주어야, 그 사람은 영이 사는 약속의 세계에, 즉 천국에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까 말한 다시 과학을 이야기해보면, 그들이 아무리 뛰어난 물리학을 하고, 획기적인 생물학을 하고, 그리고 진화론을 주장한다고 해도, 그런 것은 모두가 육에서 나왔기에 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창조론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 영적 사람 - 하나님이 장악한 사람 !!

그러니 '영(靈)' 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우리 육의 세계에 찾아오신 것이 바로 영적인 사건이고, 그것이 육의 세계만 침투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부 깊숙이, 즉 우리 마음까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침투해서 장악을 하시고, 또 우리를 인도하셨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자를 두고서 영적인 사람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성령이 오시게 되면 그 사람을 떠나지 않지만, 그러나 구약에서는 성신이 왔다가 악신이 왔다가, 그렇게 교체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은 개인의 구원문제가 아니라, 그 집단이 어떻게 선택적으로 인도함으로 받게 되는지, 그것을 보여주는 역할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지금까지 강의한 것을 다시 정리하면, 정확한 것이란 무엇인고 하니, "선택한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인데, 우리교회 장로님이 기도를 하면서 "택한 자마다" 라고 하는데, 물론 상투적으로 그렇게 해도 안 되고, 또 들어서도 안 되는데, 사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정확하다는 말이다.

오직 선택한 자만이 구원을 받고, 그 선택한 자에게만 성령이 오시는데, 그 성령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 약속이 육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러면 이 약속이 이기는가? 육이 이기는가? 당연히 약속이 이겨서 그 사람을 약속의 세계로 데리고 가는데, 그것이 바로 택함을 입은 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원리이고 말이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런 과정을 설명했는데, 그렇다면 여러분이 궁금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렇다면 "약속이란 무엇인가?" 라는 것인데, 제가 아직 이 약속을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약속으로 구원을 한다고 해놓고는, 정작 이 약속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 약속은, 다윗이 해야만 하는 일 !!

바로 그 약속을 오늘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데, 그것을 다윗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바로 이런 다윗이 해야만 하는 일이 곧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다윗이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고 하니까, 장치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란 말이다.

◈ 오늘날 신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여기서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하겠는데, 오늘날 신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인데,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직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그러니 우리의 전도와 같은 것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까도 우리가 말했지만, 류광수 목사의 다락방 전도를, 저는 그것을 일종의 판촉사업이라고 하는데, 즉 사업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증거해야 하는 것은, "내가 전도를 했다, 기도를 했다, 설교를 했다" 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곧 성도의 역할이란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에게 들어와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증거하게 한다는 말이다.

◈ 성도는, 자기 죄와 주님의 희생을 증거해야 !!

만약에 자기가 사고를 쳤다고 하면, 옆에서 "아이쿠, 이제 당신이 끝났다. 죄를 지었으니 말이다. 천당에도 당신과 같은 인간은 받아주지 않아"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 순간에 바로 우리는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라고 말이다. 바로 그런 일을 하라고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도라는 것은 완벽한 것도 아니고, 죄가 없는 것도 아니고, 죄는 죄대로 계속해서 발생하는데, 그래서 자기의 죄가 없음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죄 때문에 누군가가 무슨 일을 하셨다" 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라는 말이다.

◈ 이놈아, 그것도 성적이라고 !!

쉬운 예를 들자면, 자기 아이가 학교에서 10등정도 하기를 기대했는데, 그런데 중간고사에서 그만 20등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개 패듯이 패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아이를 왜 때렸는가? 물론 공부를 잘 하라고 때린 것인데, 그러면 공부를 못해도 자기가 못하는 것이고, 또 공부를 못하면 살아가는 것도 자기가 힘든 것이지, 부모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것은 바로 부모의 명예나 위신과 상관이 있는데, 그러면 부모의 명예가 높아져서 무엇을 하겠는가? 결국은 그것이 부모의 욕심임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때릴 때는 실컷 때려놓고는 "아이쿠, 니 같은 것 때려서 뭐하노? 공부를 못해도 니가 못하는 것이지" 라고 하면서 멈추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멈추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란 말이다.

◈ 이것이 곧 온유, 화평, 양선, 이웃사랑 !!

바로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과 상관없이 예수님께서 여전히 자기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또한 아이에게 앞서서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멈추기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성경에서는 '온유' 라고 하고, '화평' 이라고 하는데, 실컷 때려놓고는 말이다. 또한 '양선 '이고, '이웃사랑' 이라는 것이다. 성질이 더럽다고 하지 않고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것은, 자기 행동에 자기 욕심에서 나왔음을 자각하고, 그것이 욕심을 깨닫는 순간 "아하, 내가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하고 있구나" 라고 하는데, 바로 그런 모습이 온유이고, 화평이고, 양선이고, 이웃사랑이란 말이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런 것은 인식의 차원이 아닌지요?

물론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인식이 기초가 되어있는데, 성령을 받으면 그런 것을 자연적으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의 부족함을 말이다. 그렇게 해야만, 자기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자기 의(義)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하, 그것이 나의 의(義)였구나" 라고 깨닫는 순간, 그것이 온유로 바뀐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런 것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주님께서 깨닫게 하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약속이 우리 고집보다는 더욱 더 세니 말이다. 물론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육인데, 그러한 육에 하나님의 약속이 침투하면 약속이 반드시 육을 이기게 되는데, 물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도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특징은, 무엇이든지 다 철저히 육으로 전환시키는데, 전도, 기도, 구제 등등, 이런 모든 것들을 다 육적인 것으로 바꿔버린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자랑하기에 분주한 것이 인간인데, 그것이 육적인 인간의 특징이라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영에 육이 부딪쳐서, 육이 그만 퉁겨서 나가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게 되면 완전주의가 되는데,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영은 육이 있어야 영의 값어치를 하는데, 즉 영이 오면 육이 퉁기는 것이 아니라 육이 더욱 더 육답게 된다는 것이다. 육이 무엇이 문제인지가 보다 더 확실하게 드러난다는 말이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는 빛이 오면 어둠이 퉁기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더욱 더 어둠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빛의 역할이란 말이다.

◈ 영이 오면 육의 정체가 드러나기에 !!

현대 물리학에는 이 빛이 유일하게 질량이 없는데, 질량이 없기 때문에 어느 곳에도 침투가 가능한데, 그리고 침투를 해도 질량의 변화가 전혀 없기 때문에, 침투한 곳에 대해서 들추어내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질량이 있어서 더하게 되면, 그렇게 더한 것으로 인해서 변질이 되는데, 하지만 빛은 질량이 없기 때문에, 이 빛으로 비추면 원래 그대로 있으면서도 그 정체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육적인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단순히 개인적인 지식에 불과합니까?

인간은 지식뿐만이 아니라 행동도 그렇게 하게 되는데, 즉 인간은 머리뿐만 아니라 온 몸으로 육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지식이라고 해버리면, "머리는 그러하지만 행동은 조심하면 되지 않느냐?" 라는 것인데, 그것이 아니라 지식을 포함해서 행동도 모두가 육을 증거해주는데, 그런데 육을 육으로 드러나게 해주는 것은, 영을 받은 사람에 한해서만, 즉 택함을 받은 사람에게만 그렇다는 말이다.

◈ 영에 속한 사람은, 자기가 육이었음을 고백하게 !!

지금 질문하신 이유는, "영이 있는 사람이 죄를 짓지 않는다" 라고 생각해서 그러한데,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제가 누차 강조하지만, 영이 있는 사람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있는 것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영이 왔기 때문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육에 속한 사람은 무엇을 해도 자기 자랑을 하게 되고, 반면에 영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육에 속했음을 깨닫는 사람이고 말이다. 자기가 무엇을 해도 육에 속한 것인데, 그런데 고맙게도 영이 침투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있음을 말이다.

◈ 영적인 사람 -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 !!

예를 들어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성경공부를 한답시고 모여있는데, 여기에 예수님이 계신다고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가 지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가 다 육인데, 그리고 그분만이 혼자서 영이니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영적인 사람으로 바꾸는데, 그렇게 우리를 바꾼다는 것은 완전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도하신다' 라는 말이다. 그렇게 예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면, 우리의 육적인 것들이 모두 드러나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일을 정확하게 하시는 모습이란 말이다.

◈ 그렇다면, 다윗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지금까지 강의한 것을 안다고 여기고 진도를 좀 나가겠는데, 다윗이 해야할 일이 무엇이었는가? 장차 오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인데, 그러면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무엇을 증거한다는 말인가? "키가 얼마이고, 얼굴은 어떻게 생겼으며, 몸무게는 어떠한가?" 라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는 않은데, 왜냐하면 예수님을 실제로 보면서도 믿지 않은 사람이 더 많으니 말이다. 실제로 본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을 빤히 쳐다보면서도 "당신이 나를 구원해? 웃기지 말라.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는 주제에" 라고 하면서 비웃은 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십자가에 달린 강도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아무리 쳐다보아도, 쳐다본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의 뺨을 때리고, 못을 박고, 그렇게 예수님의 몸에 손을 스친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는데, 따라서 예수님을 증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형태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영이시고 우리는 육인데, 그런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 속에 오셨다는 말이다. 그렇게 영이 육에게 먼저 찾아오심으로서 육이 자기의 정체를 드러내는데, 그러한 일을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통해서 하신다는 것이다. 즉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구약에서는 바로 다윗을 통해서 보여준다는 말이다.

◈ 다윗 - 왕, 제사장, 선지자 !!

다윗이 그렇게 보여주는 것을 3가지로 요약(?)을 할 수가 있겠는데, 첫째는 '왕'이고, 둘째는 '제사장'이고, 그리고 셋째는 '선지자' 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3가지가 놀랍게도 다윗에게 모두가 다 있다는 말이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흔히들 '삼중직(三重職)'이라고 하는데, 칼빈에 의해서 유명해졌고 말이다.
오늘 사무엘하를 공부한다고 했으니, 여기서 사무엘하를 한번 찾아보겠는데, 사무엘하 6장 14절에서 23절을 지금 잠이 오는 분이 있으면 잠도 깨울 겸 한번 읽어보면 좋겠는데, 누구 없으세요?

(삼하 6:14)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삼하 6: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
(삼하 6:16) 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
(삼하 6:17)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예비한 자리에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삼하 6:18)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삼하 6:19)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의 무론 남녀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떡 한 덩이씩 나눠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삼하 6:20)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가로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날 어떻게 영화로 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날 그 신복의 계집종의 눈 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삼하 6: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삼하 6: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삼하 6:23)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으니라

◈ 에봇을 입고 제사를 드리는 다윗 !!

지금 나오는 이 이야기가 매우 중요한데, 여기에는 신학적인 요소들이 많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물론 교인들은 잘 모르는데, 하지만 한 구절 한 구절마다 엄청난 신학적인 내용들이 말이다. 여기 14절에 보면, 다윗이 춤을 추는데, 그런데 파티복이 아닌 제사장만이 입는 '에봇'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자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이미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인데, 자기가 무엇을 했음을 증거하면 안 되고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윗이 해야할 일도, 역시나 장차 오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란 말이다.

그러한 예수님의 역할 중에서 지금 다윗이 두 번째인 '대제사장'의 일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옷이고, 거룩한 옷이니 말이다. 즉 아무나 입는 그런 옷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한 거룩한 사람만 입는 옷, 바로 그 옷을 다윗이 입고서 춤을 추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7절에 보면,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장면이 있는데, 하지만 모세언약에 의하면 이런 제사는 대제사장이 드리게 되어있지 다른 사람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이 에봇을 입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는 것이다. 만약 사울이 그렇게 했으면 사무엘에게 맞아 죽었지 싶은데 말이다.

◈ 예수님을 보여주는 다윗 !!

이것은 바로 다윗이 제사장의 역할을 해야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 이것은 아까 말한바와 같이 영이 육에 침투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인간 속에 침투했는데, 그 하나님이 하실 일을 다윗이 미리 앞당겨서 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하신 일의 정확함인데, 왜 강의를 시작하면서 정확한 것을 믿어야 한다고 했는데, 바로 그 정확함 말이다.

이것이 영적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인데, 이러한 영적인 일이 일어나는 현장에 육의 일도 일어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짧은 본문에서 바로 이 육의 일을 보여주는 자가 바로 사울의 딸인 '미갈' 이라는 것이다. 물론 다윗의 마누라이기도 하고 말이다.

◈ 왜 미갈이 육적인가?

그 미갈이 다윗의 그런 에봇을 입고 춤추는 행동을 보고 뭐라고 했는가? 여자의 입에서 영적인 말이 나왔는가? 아니면 육적인 말이 나왔는가? 너무나도 육적인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고 하니, 영적인 것은 예수님의 일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러니 육적인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몽땅 빠져버리고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는 위신과 품위와 체면과 명예, 그리고 권위 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목사들을 많이 만나봐서 알겠지만, 목사들이 소위 '영적권위' 라고 주장하면서 튀어나온 것들이 모두가 육의 요소들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가 소유한 체면과 위신과 명예와 카리스마 등등, 바로 그런 것들이 다 육의 요소라는 말이다.

지금 이 미갈이 왕비인데, 그래서 하는 말이 "당신이 그렇게 춤을 추고 까불고 싶으면 침대에서나(?) 그렇게 하든지 하지, 어떻게 위신과 체통도 없이 왕이라면서 그렇게 춤을 추는가?" 라는 것이다. 그래도 자기가 왕비인데, 그래서 자기 밑에 있는 궁녀들에게서 권위를 세우려면, 자기 남편의 왕다운 카리스마의 모습으로 세우게 되는데, 그렇게 해야 왕의 권위도 서고, 자기 왕비의 권위도 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렇게 왕이 주책도 없이 몸을 드러내고 엉덩이를(?) 마구 흔들면서 춤을 추고 있으니, 자기 부하들 앞에서 자기 체면이 도대체 뭐가 되느냐는 것이다. 그런 것은 은밀한 침실에서나 하지, 공공의 장소에서 그렇게 해버리면 왕비의 입장이 어떻게 되느냐는 말이다. 그래도 '국모(國母)' 인데 말이다.

그래서 이 국모가 화가 나서 하는 말이, "왕이시여, 어떻게 천한 것들이 하는 방탕한 행동을 계집종들 앞에서 합니까?" 라고 하는데, 사실상 이런 것이 마누라가 남편에게 제일 많이 하는 잔소리 가운데 하나인데, 그래서 자기 남편에 어디에 가서 이야기를 하면 겁을 내는 여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말을 함부로 해서 자기 위신을 다 까먹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걱정을 한다는 것이다.

왜 교회에서 제직회를 하는데 보면, 남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뒤에서 여자가 쿡쿡 쑤신다는 것이다. "여보, 이제 그만해요" 라는 의미로 말이다. 왜 그런고 하니, 남편의 체통은 자기가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대로 그냥 두어버리면 남편이 자기 성질대로 하다가 매장되는 수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성질을 부리고 까불어도 남들이 볼 수 없는 집에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 미갈이 받은 저주는?

제가 지금 말하는 모든 것이 육인데, 그러므로 미갈의 행동은 다윗의 영적인 행동을 모독한 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이 미갈에게 어떤 형벌이 주어졌는고 하니, 23절에 보면, 죽을 때까지 아기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임여성의 차원이 아니라 아예 저주를 받은 것인데, 즉 신의 특별한 저주의 관리대상이기에 아기를 낳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왜 형벌인가? 여자는 아기를 낳아야 하고, 특히 아들이 낳아주어야 신의 축복을 받은 흔적을 지닌 여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아기를 낳지 않더라도, 요즘 젊은 여자들은 아들 낳기에 악착같다는 말이다. 즉 자식을 많이 낳으려고 하지는 않지만, 아들을 낳는데는 양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아들이 없는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결혼을 한 것 자체가 불행인데, 사도바울에 의하면 뭐라고 하는가? "주를 위해서 살아야지, 왜 결혼을 해서 가족을 위해서 살아가는지 참으로 안 됐다" 라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오잉??)

* 질문 - 육을 더 육답게 만들기 위해서 그런가요?

인간은 결혼을 하지 않아도 육이 나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또 천주교의 경우에는 둘로 나누었는데, 신부와 수녀들은 결혼을 하면 안 되고, 교인들은 결혼을 허용함으로 말미암아서, 성직자와 비성직자를 구분하는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다 육인데, 육에 무슨 1층과 2층이 있느냐는 말이다.

예수님 외에는 그 어떤 인간도 영이 될 수 없는데, 자기들이 자칭 영적권위를 내세우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데, 즉 바로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는 위신과 체면과 권위를 지키려고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그런 것을 지탱하는 것들이 다 육인데 말이다.

* 질문 - 천주교에서 성직자들의 결혼을 막은 것은?

물론 자기들은 막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렇게 한다고 하는데, 성당에 자발적인 인간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말이다. 신부나 수녀들도 결혼을 하면 되는데 말이다. 자발적이라면 결혼을 해도 수녀가 가능해야 하는데, 그리고 법적으로 혼인신고가 되어있으면 쫓겨나니, 실제로는 결혼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로 막아놓았다는 것이다.

아무튼 제가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사무엘하 6장 14절에서 23절 사이에서 제사장 이야기가 나오는데, 물론 왕의 경우는 다윗이 원래 왕이니 굳이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고 말이다. 그러면 선지자 이야기는 언제 나오는가?

◈ 선지자로서의 다윗 !!

다윗의 선지자 역할은 사무엘하 마지막에 보면 나오는데, 물론 그 중간 중간에 조금씩 언급이 되지만 말이다. 22장에 보면 나오는데, 그렇게 한 칸씩 뒤로 밀려있는 것은 '노래가사' 라는 의미인데, 그리고 이런 것은 대부분이 예언이라는 것이다. 신명기에 나오는 모세가 축복하는 내용도 백발백중 장래에 대한 예언이고 말이다.

(삼하 22:1)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대적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
(삼하 22:2) 가로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삼하 22:3)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흉악에서 구원하셨도다

이렇게 해서 계속해서 나오는데, 그런데 이 예언 중에 무엇이 나오는고 하니, 예수님께서 장창 재림하셔서 불로서 심판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예수님의 재림 때 천사와 함께 오시고 유황불이 떨어지는데, 그것이 이미 다윗의 예언 속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삼하 22:9) 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삼하 22:10) 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니 그 발 아래는 어둑캄캄하도다
(삼하 22:11) 그룹을 타고 날으심이여 바람 날개 위에 나타나셨도다
(삼하 22:12) 저가 흑암 곧 모인 물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둘린 장막을 삼으심이여
(삼하 22:13) 그 앞에 있는 광채로 인하여 숯불이 피었도다

◈ 마지막 때는, 시간이 아니라 신분 !!

조금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만약 여러분이 "목사님, 예언이 언제 이루어집니까?" 라고 묻는다면, "예, 마지막 때에 이루어집니다"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이 마지막 때 중에서도 언제 이루어지느냐고 묻는다면, 그러나 이 마지막 때는 '언제' 라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다 마지막 때이기 때문에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이 마지막 때라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신분'을 의미하기 때문에 말이다.

좀 어렵지요? 예를 들어서, 지금 어떤 고 3학생이 육군사관학교 시험을 준비중이라면, "당신이 언제 육사생도가 될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데, 그런데 그가 합격이 되어서 3월이 되어서 육군사관학교에 있으면 당연히 육사생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그 학생에게 "당신이 언제 육사생도가 됩니까?" 라고 물으면 말이 안 되는데, 왜냐하면 이미 육군사관학교의 학생신분이 되었기 때문에 말이다.

어떻게 예가 좀 이상한가요? 아무튼 성도는 이미 그러한 신분을 입고 있기 때문에,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는 것은 하나님 소관이고, 이미 성도는 그 예언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두 변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예언을 말할 때 어려운 점이라는 말이다.

◈ 종말에는 중첩이 아니라 나란히 !!

이왕 어려운 것을 했으니 조금 더 해보면, 예를 들어서, 여기 사람이 이렇게 있는데, 이 사람이 눈을 들어서 산을 다 쳐다본다는 것이다. 그러면 가깝고 멀리 있는 것들이 모두 보이는데, 막상 가서 보면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어도, 멀리서 보면 붙어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그래서 막상 갈려고 하면 시간이 엄청 걸리지만, 하지만 멀리서는 중첩이 되어서 서로 가깝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예언도 이와 같은데, 즉 예언이 십자가까지는 서로 중첩이 되어있는데, 그런데 이것이 종말이 되면 다 나란히(?)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방금 말한 산으로 따지면 거리가 없어지는데, 즉 예언에 있어서 종말이 되면 시간이 없어지고, 전부가 다 한통속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 메시야는, 종말이 되면 구름 타고 강림을 !!

이 종말이 되면 하나님이 직접 강림을 하시는데, 위의 22장 19절 이하에 나오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을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알았을까? 몰랐을까?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두고 메시야가 아니라 오히려 사기꾼이라고 했다는 말이다.

만약에 진짜로 메시야라고 하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이 사무엘하 22장에 나오는 다윗의 예언처럼 구름을 타고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초라하게 오면 안 되고 말이다. 과연 그러한지 여기서 마태복음 25장을 한번 보자.

(마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 24: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이렇게 예수님께서 다윗의 예언처럼 마지막 때에 강림을 하셔서 자기 백성을 모으고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 때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당신은 구름을 타고 온 것이 아니기에 메시야가 아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 세례요한 - 당신이 정말 메시야가 맞습니까?

사실 여기에 대해서 세례요한도 의심을 했는데, 그래서 "당신이 정말 메시야가 맞습니까? 제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말이다.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고 하니까, 지금 자기는 물로서 세례를 주지만, 마지막 때는 메시야가 성령과 불로서 이 세상을 심판을 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곡을 창고에 몽고 죽쟁이는 불에 태우고 말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뭐라고 했는고 하니, 세례요한이 하는 말이 맞기는 맞는데, 하지만 아직 예수님 자기에게는 할 일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즉 구름을 타고 와서 자기 백성을 데리고 가기 이전에 할 일이 아직 있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제사장 역할을 해서, 즉 자기 백성들의 죄를 씻어서 용서하는 임무를 마치고 난 뒤에, 왕 적인 위엄이 있는 모습으로 와서 자기 죄를 용서해준 자들에 한해서만 데리고 가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정확하게 일하시는 모습이라는 말이다.

(마 11: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마 11: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마 1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마 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 11:6)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물론 모든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다 선지자의 모습이고 말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놀랍게도 누가 믿었는고 하니, 같이 십자가에 달린 한쪽 강도가 이것을 알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길거리의 소경들과 앉은뱅이들이 믿었고 말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보고 뭐라고 했는가?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했다는 것이다.

(마 20:30) 소경 둘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마 20: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그러니 여기에서 "다윗의 자손이여" 라는 말은, "다윗이 말한 예언을 그대로 이루시는 분이여"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바로 그런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불쌍히 여겨서, 즉 제사장 역할을 잘 감당해서 자기들의 죄를 씻어 달다는 것이다.

* 질문 - 유대인들이 그런 것들을 다 아는데도 예수님을?

하지만 그들이 문자로 알고 있으니 그렇다는 것이다. 신명기의 말씀대로 말씀을 다 달달 외우지만 말이다. 지금도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데, 말씀에 있는 것과 같이 구름을 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문자로 아는 메시야의 한계이고 말이다.

* 질문 - 유대인들은 예언이 중첩되어온다는 사실을 모르나요?

그렇게 오더라도 그분은 예수가 아니라 다른 분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예수는 아니라는 말이다. 예언대로 마지막 때 그렇게 된다고 여기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있어서 마지막 때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타나는 자체가 마지막 때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말씀의 중심이 '때'가 아닌 '예수님' 이라는 말이다. 우리 인간이 그 마지막 때의 징조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보기에 종말의 징조가 아닌 것처럼 보여도, 예수님이 오심으로 모든 것이 마지막 때의 징조로 변환이 되어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 질문 - 예수님께서 "깨어있어라" 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잠을 자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니가 이 시대가 마지막 때인지 아닌지를 알고 있느냐?" 라는 것이다. 보통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이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다" 라고 하는데,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 베드로후서에 보면, "옛날에 말씀으로 만든 것도 잊어버리고, 물로서 심판을 받은 것도 일부러 잊어버리는데, 바로 그런 당신과 같은 놈을 위해서 마지막 때에 불로서 심판을 준비해놓았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렇게 성경을 보니 조금씩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는 것이 보일 텐데, 그래서 우리가 공부한 사무엘하 22장을 다른 곳에서 설교를 듣던지 한다면, 그때는 이러한 내막을 제대로 알고서 듣게 된다는 것이다. 즉 "어, 숯불이 천사들과 함께 내려오는구나" 라는 것이 아니라, "아하, 이것은 마지막 때에 메시야가 오는 것을 보여주는구나" 라고 말이다.

◈ 다윗의 제사장 역할에 대해서 !!

여기서 예수님의 제사장 역할을 다시 살펴보면, 조금 긴 내용인데 사무엘하 24장에 보면 무엇이 나오는고 하니, 다윗이 인구를 조사를 하는 것과, 그것으로 말미암아서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는 내용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견자, 곧 선지자 '갓'을 보내서 다윗을 책망하게 되는데, 그래서 갓은 3가지 징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는데, 첫째가 7년 동안 온 땅에 기근이 있는 것이고, 둘째가 다윗이 3달 동안을 도망을 다니는 것이고, 그리고 셋째가 3일 동안 온 나라에 홍역이 있겠다는 것인데, 이 3가지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다.

(삼하 24:10) 다윗이 인구 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삼하 24:11)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삼하 24:12)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삼하 24:13)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왕의 땅에 칠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시 왕이 왕의 대적에게 쫓겨 석 달을 그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시 왕의 땅에 삼일동안 온역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하게 하소서

◈ 하나님의 감동으로 다윗이 인구조사를 !!

여러분은 지금 제가 다윗의 제사장 역할을 이야기하려고 이 대목을 골랐음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제사장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고 하니, 백성들의 죄를 씻어주는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고, 그것은 죄가 있을 때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죄가 있어야 제사가 의미가 있는데, 지금 그러한 죄를 누가 들추어내는고 하니까, (1)하나님, (2)다윗, (3)백성들, 이 중에서 누구인가? 1번, 즉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24장 1절에 나오는데,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라고 말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를 했는데, 그것은 곧 그들의 죄를 까밝히기 위한 것인데, 그 일을 다윗에게 시켰다는 말이다.

◈ 일은 하나님이 시키고, 깨지는 것은 다윗 !!

그러자 다윗이 어떤 식으로 그 일을 하는고 하니, 인구조사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10절에 보면 다윗이 이 일로 인해서 후회를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죄이기에 말이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내용이냐는 것이다. 억수로 어렵다는 말이다. 다윗이 분명히 하나님의 감동으로 인구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죄로 여겼다는 것이다.

(삼하 24:1)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그러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시킨 것이 바로 죄에 해당되는 것인데,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은혜인데, 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씻어주어야 하지만, 그러나 그 죄와 더불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대표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죄를 실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 제사장은 직접 죄의 고통에 동참해야 !!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윗이 예수님을 역할을 미리 보여준다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자기 택한 백성들을 낚시로 건졌는가? 아니면 십자가로 구원을 하셨는가?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를 지실 때에 기분이 어떠했는가? 따끔따끔했는가? 아니면 상쾌했는가? 너무나 고통스러웠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죄 속에 합류하다보니 생긴 고통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역할이 "니, 천당에 가고싶지? 그러면 2시에 그 호수벤치로 나와" 라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이 우리가 당할 죄에 함께 동참해서, 죄의 고통을 몸소 감수하면서 건지신다는 것이다. 즉 죄를 아시는 분이 그 죄를 씻어준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지만 다윗은 죄인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다윗이 예수님이라는 것이 아니라, 다윗은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는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다윗도 우리들처럼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고 말이다.

◈ 하나님의 징벌로 말미암아 인구가 감소 !!

아무튼 이러한 인구조사는 분명히 다윗의 죄인데, 백성들의 잘못이 아니고 말이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자기들끼리 의논해서 조사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다윗의 이런 죄가 3개가 되는데, '7년 기근', '3달 도망', 그리고 '3일 전염병'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3가지의 징벌이 결국은 인구를 감소시키는 일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왜 학원을 해도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나면 세는 것이 재미가 있는데, 줄어들면 세려고 해도 짜증이 난다는 것이다. 숫자가 적어서 훨씬 편한데도 말이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고 하니, 그렇게 불어난 숫자만큼은 자기 역량을 보여주는데, 즉 "내가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크게 하겠는가?" 라고 하는 교만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인데, 그런데 막상 벌을 받고 나니 인구가 얼마나 줄었는고 하니, 7만 명이나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7만 명이라면 엄청난 숫자인데, 요즘도 그렇지만 말이다. 쉽게 말해서, 통장에서 돈이 '확' 하고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삼하 24:14)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
(삼하 24:15)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인이라

그래서 다윗의 부하장수 요압이 다윗에게, 왜 그렇게 미련하게 숫자를 헤아리고 해서 백성들이 죽게 했느냐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나 지금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아무튼 이 부분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다윗은 3가지 징벌 가운데서 어느 것을 선택했는고 하니, 세 번째인 '온역'을 택했는데, 왜냐하면 제일 짧으니 말이다. 그래서 희생도 제일 적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런데 문제는 무려 백성들이 7만 명이나 희생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 주여, 차라리 저를 치소서 !!

그래서 다윗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고 하니, "주여, 이 백성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차라리 저를 치소서"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순간이 바로 제사장답고 왕다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나올 때가 가장 영적인 순간이고 말이다.

(삼하 24: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삼하 24:17)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 과연 무엇이 영적인가?

이런 예는 좀 그렇기는 하지만, 만약에 누군가가 돈이 엄청 벌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자기 수입을 조사해보니, 그날 하루에만 2600만원을 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서 "니가 방금 돈을 헤아렸지? 니 돈도 아닌데 말이다" 라고 하시면서, 그러면서 벌을 내릴 것인데, 고르라고 한다는 것이다.

첫째가 지금까지 번 돈을 다 날리는 것이고, 둘째가 자식을 치는 것이고, 셋째가 마누라를 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양반이 3번을 선택했는데, 별로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이 마누라가 아파서 번 돈도 다 날려버리고 자식들도 엉망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여, 차라리 나를 치소서" 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영적인 것이란 말이다. 자기 육 속에 침투한 영적인 것 말이다.

◈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 !!

그것이 바로 장차 오실 예수님이 하실 일인데, 구약의 다윗시대에는 다윗에게 맡겼지만, 그러나 지금은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들이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베드로전서 2장에 나오는데,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라고 말이다.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지금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 뭔가가 떠오른 것이 있나요? "아하, 그때 그 사건이 바로 그것이었구나" 라고 하면서 말이다. 지금 이 3가지 징벌 가운데 사실 무엇을 골라도 문제인데, 그 어느 것이라도 다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윗이 잘못 고른 것이 아니고 말이다.

사실 이것은 망하고 안 망하는 차원이 아닌데, 또 다윗은 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올 때는 심심해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서 온 것인데, 그렇게 하나님이 갓을 다윗에게 보내었다는 것 자체가 의미하는 것이, 이미 다윗은 선택된 영적인 사람이라는 말이다.

◈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림으로 !!

그러므로 다윗은 예수님의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 직분의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아라우나 타작마당 곁에 서서 "나를 치소서" 라고 하고, 또 선지자 갓의 말대로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리니 드디어 나라에 재앙이 그쳤다는 것이다. 그 밭을 주인이 공짜로 주려고 했지만, 값을 주고 사서 말이다.

(삼하 24:24)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삼하 24:25)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 아하, 다윗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보여주는구나 !!

이러한 3가지의 직분을 우리가 알고서 다윗을 보면, 그의 행동이나 여러 가지 모습이 이해가 되는데, "아하, 다윗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보여주는구나. 제사장과 왕과 선지자의 역할을 말이다" 라고 되는데, 이런 것을 공부해보지 않으면 막막하다는 것이다. "다윗이 예수님을 보여준다는데, 그것이 뭐지?" 라고 하지 말이다.

* 질문 -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재앙이 그쳤다는 것이 중요하지 싶은데요?

그 장소가 바로 나중에 다윗의 성전이 들어설 자리인데, 하나님과 그 이름이 임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이렇게 다윗이 영적인 일을 했던 장소가 계속적으로 중요한 곳이 되는데, 그 장소를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이 인도함을 받는데, 다윗에게 준 은혜대로 말이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드러내고, 백성들이 그 죄를 회개할 때 용서하는 방식으로, 바로 그렇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 질문 - 장소가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여기 사무엘하 24장에서는 이렇게 중요한데, 그러나 출애굽기 같은 곳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 질문 - 다윗이 3번을 선택했는데요?

사실상 어느 것을 선택해도 마찬가지인데, 모두가 다 박살이 나고 깨어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런 성경구절을 보면 교인들이 겁을 내는데, "맞다. 지난번에 나도 그런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돈만 모두 날리고 말이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것은 그런 차원이 아니라 평소에 감사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 조그마한 일에도 항상 감사하고 겸손하게 !!

이것을 설교하면 이것을 자기 집구석에다 적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서, 자기가 5년 전에 주식을 해서 2억을 벌었는데, 그런데 집에 아이가 아프고, 불이 나고, 또 도둑이 들어서 모두 날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꾸 자기 집안일과 비교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 엄청난(?) 일과 말이다.

그렇게 하지 말고 아주 조그마한 것에도 감사하라는 것인데, 자기가 집을 나서니 비가 그치면 고맙게 여기면 되는데, "그렇지. 내가 나서니 하늘도 그만 그쳐야지" 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규모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우리 마음에서 항상 겸손한 마음이 넘치고 흘러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제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러면 또 어떤 사람은 "목사님, 날릴 때에 날리더라도 40억을 단 한번만이라도 만졌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이다. 지금 이것은 그런 돈의 문제가 아니라, 평소에 작은 일에도 언제나 감사하는 것이 왕 같은 제사장의 모습이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성도의 자세라는 것이다. 어떤 특별한 일이 터져야 그런 것이 아니고 말이다.

◈ 걱정근심은 우리 인간의 타고난 팔자 !!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지를 못하는데, 예를 들어서, 아이가 3명이 있는 집안은 한 놈을 잘 잡아놓아도 두 명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자가 집에서 전전긍긍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주장하는 것이, 여자라도 집에만 있을 생각은 말고 직장을 가지라는 것인데, 집에 있으면 매일같이 걱정만 하니 말이다.

걱정만 하면 다행인데, 또 어떤 생각을 하는고 하니, "오늘 내가 교회에서 기도를 너무 짧게 했는데,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라고, 그야말로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지난 수요일 설교시간에 "나의 행동여부에 따라서, 복과 저주가 오는 게 아니다" 라고 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 자기의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을 이런 관점에서 보라는 말인데, 평소에 하나님이 우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항상 감사하는 인간을 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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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30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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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