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4-사무엘상3(강의정리)-잘린부분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4-사무엘상3(강의정리)-잘린부분
이름 : 구득영(IP:203.223.97.243)
◈ 모세와 바로, 다윗과 사울 !!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죽을 뻔했는데, 누구 덕분이 살아남게 되는가? 애굽의 공주마마의 은혜를 입어서, 그녀의 양자로 들어가서 살아남게 되는데, 그때 유모가 모세의 엄마가 되고 말이다. 즉 '애굽' 이라는 탈출을 해야할 나라와 '모세' 라는 탈출을 할 나라를 서로 같이 붙여놓고는, 결국 이쪽 나라가 저쪽 나라를 극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이 사무엘에서 이렇게 사울과 다윗을 같이 붙여놓고는, 다윗이 사울을 극복하도록 하시는데, 그렇게 해서 다윗은 커지고 사울은 망해버리고 말이다. 즉 힘이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기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이러한 장면을 보면서, "목사님, 복음도 모르는 이 세상에서 혼자서 외롭습니다" 라고 하지 말고, 이 세상에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 복잡한 시장의 한 복판에 말이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한쪽으로 쏠려있는지, 그것이 똑똑히 보고 깨달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가정교육을 시키고, 학원에도 보내고, 학교에서 치맛바람도 일으키고, 또 시장에서 콩나물 값도 한번 깎아보면서, 그런 이 세상에서 제대로 한번 살아가는 가운데서, 진짜 복음이 무엇이며, 왜 우리가 공짜로 구원을 받았는지, 그런 것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 소년 다윗과 장군 골리앗 !!
그렇게 해서 사무엘상 17장에 보면, 그 유명한 소년 다윗과 골리앗과의 전쟁이 나오는데, 사실은 이 부분이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하도 많이 들어서 쉽다고 여기지만, 그러나 친숙하다고 해서 쉬운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이 부분이 왜 어려운고 하니, 지금 골리앗의 적이 누구인가? 사울인데, 즉 골리앗이 사울 왕과 그의 군사들을, 즉 이스라엘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골리앗과 사울은 적인데, 어떤 점에서 여기가 어려운고 하니, 지금 골리앗과 사울 중간에 조그마한(?) 적이 하나 들어가 버리는데, 그가 바로 다윗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골리앗이 다윗을 공격하고, 또 사울이 다윗을 공격해서, 다윗 혼자서 도망을 가고, 둘 다 쫓아오고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이것을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보면, 현재 기독교의 적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불교인데, 그런데 둘 다 복음의 적, 즉 예수님의 원수라는 것이다. 제 말이 맞지요? 바로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투에 참여하게 되고, 또 이스라엘로부터 도망치게 되고 말이다. 아직 어리고 전쟁에 참여할 나이도 아닌데 말이다.
이러한 경험을 교인들이 해봐야 되는데, 그런데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회장 목사를 두려워하고, 또 복음을 아는 부교역자나 집사를 무시하기에 말이다. 우리가 복음을 이야기하면 교인들이 무시하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고 하니, 자기 당회장 목사님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 당회장이 무서워요 !!
* 집사 : 목사님, 그건 아니지 싶은데요?
* 목사 : 집사님, 입 좀 다무세요.
* 집사 : 왜요?
* 목사 : 지금 집사님의 이야기가 맞지만, 하지만 지금 이 칠곡에 이렇게 죽어 가는 심령들이 있는데, 그들의 구원이 우선이지 않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교회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야지요.
* 집사 :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닌데요?
* 목사 : 왜 마태복음에 보면 그렇게 되면 나라가 둘로 깨어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 집사 : 저는 그런 거 몰라요.
* 목사 : 아무튼 좀 조용해 하세요.
이것이 바로 복음을 아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특별한 혜택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경험을 무서워하면 안 되는데, 재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수가 있다는 말이다. 지금 사무엘상에 있는 그대로, 즉 성경대로 하는데 왜 재수가 없다고 하면 되겠느냐는 것이다.
◈ 사울이 골리앗을 치려는 이유는?
그렇다면 왜 사울이 골리앗을 치려고 하는가? 이것이 참으로 어려운데, 지금 사울이 골리앗을 치려고 하는데, 힘을 의지해서 말이다. 그런데 사울도 그렇지만 이 골리앗도 역시 힘을 의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가 힘과 힘을 의지하면, 당연히 힘이 센 놈이 최고가 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씨름선수나 역도선수가 최고라는 말이다.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왕직을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인데, 따라서 적이 왔으면 백성들이 무엇을 기대하는가? "사울 왕, 이겨라. 이기면 우리 편, 이기면 우리의 왕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이겨라. 이기면 내년에도 당회장이고, 월급도 올려준다" 라고 말이다. 지금 그들은 여호와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데, 그런 것은 관심이 없고, "야, 힘이 센 자가 우리편이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지금 사울과 골리앗은 둘 다 힘과 힘을 의존하는데, 하나님이 아닌 힘의 원칙밖에는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사울은 지금 매우 난처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자기가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자기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소유한 골리앗을 앞에 갖다 놓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울은 지금 이스라엘의 왕답게 백성들에게 무엇인가 보여주고 싶은데, 자기 힘으로 말이다. 그런데 지금 자기 앞에 자기보다 더욱 더 큰 힘이 버티고 있으니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렇게 조치를 하셨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의 여호와 전쟁은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오늘 강의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지 싶은데, 여기에서 사무엘상 17장 47절을 한번 살펴보자.
◈ 다윗 -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 !!
(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말은 하기 쉬운데, 즉 "구원은 돈과 재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하는 것이 말은 쉽지만, 그러나 그것을 믿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다윗은 이것을 믿었는데, 그래서 감히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다윗의 이러한 믿음은 '댁길이다' 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다윗은 자기들이 반드시 이긴다고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이다. 그 차이점을 아시겠지요? 다만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자기들이 이기고 말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중요한 것은, '나'의 승리가 아니라 !!
그러므로 구원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누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 속했다" 라는 것이다. 이근호가 구원을 따낼 수 있는가? 그야말로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목사가 아무리 복음을 안다고 해도, 그 목사가 구원을 받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구원은 예수님에게 속한 것이지 목사에게 속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다시 말해서, 전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이긴다" 라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속했다" 라는 것인데, 즉 그렇게 여호와께서 시키는 대로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물맷돌을 돌렸다" 라는 것이다. 다윗이 야구선수 출신이라서 골리앗을 맞춘 것이 아니고 말이다. 골리앗을 지금 완전무장을 하고 있는데, 하필이면 돌이 골리앗을 죽일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장해제가 된 이마를 찾아가서, 그 자리를 맞아서 골리앗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하셨는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이다. 만약에 도망을 갔다면 미사일이 되어서 따라갔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즉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음을 알리는 것이 여호와 전쟁의 목적이라는 말이다.
◈ 소위 복음을 안다는 목사들의 함정은 어디에?
그러므로 복음을 아는 목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하나님의 예정된 대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라는 것이지, "제가 말하는 대로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깨놓고 말해서 "구원은 예수님이 하시는 것이지, 이근호가 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다.
소위 복음을 안다는 목사들이 이런 함정에 참으로 쉽사리 걸려드는데, 따지고 보면 복음을 어설프게 알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늘 이렇게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 라고 하니까, 제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 질문 - 많은 목사들이 자기가 가르치는 대로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요?
그러므로 그러한 자들에게는 구원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라, 목사 자기 자신에게 속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나 구원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께 속해서 주어진 은혜이지, 자기가 관리하고 자기가 책임질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자식들이 사고를 쳐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를 해야 하는데, 아무리 골치 아픈 아내가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맨 날 외박만 하는 남편이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이다. 모든 것이 다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말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상식이 무너지는 가운데서 주님의 뜻을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주로부터 와서 주로 말미암고, 또 주님께로 돌아가는데, 우리가 바로 그 가운데 있는 줄로 압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서 다 해결했다는 것을, 이 세상에 나가서 감히 전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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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김세윤 교수님이 근본주의를 엄청나게 비판을 하던데, 이 근본주의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국어사전에는 안 나오는데 말입니다. (백과사전에는 있는데, ㅋㅋ)
근본주의가 국어사전에 나오는 그런 수준의 용어는 아니고, 신정통주의와 대비해서 생긴 말인데, 원래는 없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 신정통주의가 등장하니, "나는 그것을 안 할거야. 차리리 근본주의로 갈거야" 라고 해서, 그것을 주장하는 자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여기서 신정통주의라는 것은, 원래 정통주의가 있는데 이것이 자유주의로 빠져버리는데, 여기서 자유주의는 성경은 믿을 것이 못되고, 그 가운데서 역사적인 것만 골라서 믿자는 것인데, 그래서 예수님을 역사적 인물로 다루고 하는데, 그런데 그렇게 해서 "아니야. 우리는 신정통주의로 갈거야. 자유주의는 너무 심해" 라고 하는데, 그런데 그러한 과정에서 "아니야. 나는 신정통주의도 싫어. 나는 근본주의로 갈거야" 라고 하는 자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렇게 자기들의 원칙을 만들어 가는 것인가요? 그리고 원리주의자들은 어떤가요?
물론 그러한데, 그래서 김세윤 교수가 이러한 근본주의자들을 공격한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리고 원리주의자들은 어떤가요?
'원리주의' 라는 것도 모두 같은 부류인데, 이런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이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아마 김세윤 교수가 비판하는 것은 그들의 율법주의적 성향 때문인데, 복음은 도외시하고 말이다.
* 질문 - 어제 기독교 TV를 보니, 부흥사가 나와서 생쇼(?)를 하던데요?
쓸데없이 그런 것은 보지 말고 그냥 연속극이나 보면 되는데, 그런 것을 다 가르쳐주는 데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두들 배워서 그렇게 하는데, 그렇게 배울 수가 있으니, 물론 복음이 아닌 것은 분명하고 말이다. 다들 자기 힘을 키우는 마귀의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080728 오후 5시 45분에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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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본주의 [根本主義, fundamentalism] - 20세기 초부터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교파 사이에서 자유주의에 대립하여 일어난 보수파(保守派)의 신앙운동. 처음에는 침례파에서 일어났는데, 이어서 장로파의 J.G.메첸에 의해 ① 성서무류론(聖書無謬論), ② 예수의 처녀강탄(處女降誕), ③ 육체적 부활, ④ 예수의 속죄사(贖罪死), ⑤ 예수의 이적(異跡) 등 5대 강령의 신조가 제창되었으며, 1920년경부터는 정치가인 W.J.브라이언에 의해 진화론(進化論)이 부정되면서부터, 전 미국 교회에서 문제가 되기 시작하여 한때는 자유와 보수의 대립이 더욱 격화되었으나 그 후 점점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 신정통주의 [新正統主義, neo-orthodoxy] - 19세기 자유주의신학에 대한 반동으로서 시작된 신학사상. 대표적인 학자는 바르트·브루너·아울렌·틸리히 등이다. 미국 신학계에서 많이 통용되는 용어이다. 자유주의로 불리는 19세기의 신학에서그리스도교는 과학적인 문화와 결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문화에 대한 신뢰가 쇠퇴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반응이 그리스도교 지도자들 가운데 일어났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적 메시지의 근원을 위기에 놓인 문화를 초월한 데에 두어야 한다는 것에 일치하였다. 즉 성서에다 하느님 계시의 기초를 두려는 창조적 노력이 대두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정통주의의 운동 초기에는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자유주의적 통일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에 중점을 두었다. 신정통주의의 중심적 주제는 종교적 진리와 문화적 진리의 근본적인 차질을 천명하고, 죄의 중대성과 보편성에 대한 새로운 강조를 하는 것이고, 선인과 성육의 그리스도와의 뚜렷한 구분, 훌륭한 사회라도 그것은 하늘나라에 유사한 것일지언정 곧 하늘나라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신정통주의도 과학적 탐구와 가설을 정당시하고 있는 점에서는 자유주의와 일치하고 있다. 무로부터의 창조와 아담의 타락과 같은 교리가 다시 신학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자연이나 인간의 기원에 관하여 과학적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 성육신이 신정통주의 신학의 중심적 교리임에도 불구하고, 성육신의 표현과 설명은 정통주의에서와 같은 비중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신정통주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독자성과 건전한 신학의 중요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1930년대 초에 소개되었고, 1960년대에 들어와 한철하와 윤성범 사이에 신정통주의 신학논쟁이 있었다. -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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