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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4-사무엘상3(강의정리)자유게시판사무엘상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4-사무엘상3(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43)

04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14 - 사무엘상3

04,09,04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사사와 왕의 차이점 !!

지난 시간에 이스라엘에 왕이 등장했음을 공부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달라고 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 왕의 이름이 사울인데, 이러한 사울 왕이 있기 이전에는 사사시대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사사시대와 왕이 다스리는 시대가 어떻게 다른지 알면 된다는 말이다.

이것을 좀 쉽게 말해보면, 사사가 다스리던 시대에는 사사는 일시적인 일만 감당을 하고, 그 다음부터는 자기 역할이 끝난다는 것이다. 마치 단역을 맡은 탤런트처럼 말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만 잠시 감당하고, 그 다음 일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반해서 왕은 '세습제' 라고 해서, 자기가 왕으로 있을 동안에는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말씀으로 통치를 해야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사와 왕의 차이점을 말해보자면, 사사는 책임이 없는 반면에 왕은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사사는 그냥 하나님께서 시키는 데로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신이 인도하시는 데로 말이다. 하지만 왕은 하나님의 신이 임하면서 동시에 본인이 책임지고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사사에게는 자기 백성이 없는데,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사사는 자기 백성이 없기에 책임이 없지만, 하지만 왕은 자기 백성이 있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왕과 사사의 차이점이 확연하게 드러났는데,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면, 여기에 하나님이 계시고 땅에 인간들이 있는데, 사사는 책임자가 아니기에 그냥 빠져버리지만, 그러나 왕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왕을 통해서 인간에게 이야기하고, 인간은 왕을 통해서 하나님께 이야기하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왕 제도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 왕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 중보자 !!

제가 방금 상당히 중요한 내용을 이야기했는데, 이것을 다시 이야기하면, 왕이 있음으로 말미암아서 인간들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왕을 통해서 나아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왕이 있는 것이 좋겠는가? 아니면 없는 것이 좋겠는가?

이런 왕이 있음을 말미암아서 '중보자' 개념이 생기게 되는데, 즉 왕이 있음으로 인해서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고, 왕을 통해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왕이 중보자 역할을 하는 것인데, 그래서 이런 왕을 '메시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왕이 있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없는 것이 좋은지를 물었는데, 왕이 곧 책임자이기 때문에 말이다. 백성들의 못남을 왕이 책임을 지는데, 그러니 왕 앞에서 자기의 잘남을 자랑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려고 오셨지, 의인을 부르려고 오신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 여기 맛있는 과일이 있는데, 먹으면서 합시다. 멜롱 ??

저는 신앙생활에 중요한 것을 '확신'으로 보는데, 물론 구원에 대한 확신, 그런 것이 아니고, 도대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여기에 대한 분명한 정리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기를 키우든, 전업주부를 하든, 장사를 하든, 그런 것에 상관이 없이 말이다.

◈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가?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면 사람이 행복해지는데, 학원이 잘 되던 안 되던, 인터넷이 되던 안 되던,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이 말이다. 우리가 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실히 안다면, 그것보다 더 복된 인생이 없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은 책임자가 따로 있어서, 그분이 책임지고 제 자리로 돌려놓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 세상은 반드시 다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로마서 11장에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주님의 자리가 제자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주님에게서 왔고, 그리고 우리 힘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로 말미암아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어디에 도착한다구요? 주께로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35절에 보면,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라고 하는데, 이것을 대부분이 쉽게 넘어가 버리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너희들 중에서 누가 먼저 하나님께서 드려서, 그 대가로 구원을 받게 된 사람이 있는가?" 라고 반박하듯이 묻는다는 것이다. 물론 없다는 뜻에서 말이다.

(롬 11: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롬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먼저 드려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나와서 주께로 돌아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무엇을 해드렸더니만, 주께서 거기에 대한 대가로 구원을 베푸는 게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모든 영광을 주님께만 세세토록 돌린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도라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즉 모든 것이 예수님 중심으로 통일되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 질문 - 하지만 이 세상은 멸망을 받아서 없어지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게 해서 없어지는 것도 있고, 또 새로이 생기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제가 방금 이 세상이 누구로부터 왔고 누구에게로 돌아간다고 했지요? 그것이 바로 '주(主)' 라고 했는데, 그 주님이 바로 구약의 메시야이고, 그 메시야가 등장해서 하는 일이 무엇인고 하니, 오늘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왕' 이라는 말이다.

◈ 그러면 왕이 있는 것이 부담스러운가?

제가 다시 묻겠는데, 왕이 있는 것이 좋습니까? 아니면 없는 것이 좋습니까? 왕이 있는 것이 편한데,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져주니 말이다. 그러니 왕이 있는 것에 대해서 부담을 느끼지 말고 편안하게 여겨달라는 것이다. 괜히 왕이 있어서, 하나님에게 지배를 받고 또 중간 보스(?)인 왕에게 지배를 받으니 못살겠다고 하지 말고 말이다.

그것은 왕에 대해서 오해를 해서 그러한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왕을 주신 것은 부담을 줄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히 해야될 모든 것을 우리는 전혀 이루지를 못하니, 이 세상에 우리가 제대로 이룬 것이 어디 있는가? 지금 우리가 맛있게 먹은 사과도 현미경으로 살펴보면 병균이 우글우글 하는데 말이다. 포도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제대로 씻는다고 해서 되겠는가? 그래도 우리는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데, 성경말씀은 아내는 아내의 도리를 다하고, 남편은 남편의 도리를 다하라고 하는데, 말은 쉬운데, 그것을 누가 모르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서로가 자기 도리를 다하고 살아가느냐는 말이다.

◈ 당신은 경제적 무능력자 - 으아악 !!

남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말은, '경제적 무능력자' 라는 것인데, 그런 말을 들으면 남자는 죽고 싶다는 것이다. 누가 여자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하는가? 경제적 무능력자라고 말이다. 여자는 그냥 신랑 월급이나 제대로 받아서 살림만 잘살면 되지 말이다. 물론 "살림도 못하는 여자가 어디서" 라고 하면 좀 곤란해지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남자에게는 "살림도 못하는 남자가 어디서" 라고 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경제적 무능력자' 라는 것은 그야말로 치명타인데, 이러한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결혼도 하지 않는 남자들도 있고 말이다. 사실 여자에게 아무리 잘해주어도 그런 '경제적 무능력자' 라는 꼬리표를 떼기가 쉽지 않은데,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으니 말이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그 어떤 인간도 남자가 할 도리를 제대로 하고, 여자가 할 도리를 제대로 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남녀간에도 서로가 자기 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인데,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인간의 도리를 제대로 한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택도(?) 없는 소리인데,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 왕은 사랑 덩어리이고, 해결사 !!

그래서 오늘 본문말씀인 사무엘상에도 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왕을 주는데,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왕에 대해서, 그 왕을 우리는 사랑으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부담감이 아니라 말이다. 즉 왕은 사랑 덩어리라는 말이다. 저는 이 표현을 참으로 좋아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왕은 그야말로 사랑 덩어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왕이 없지? 나는 왕이 있어" 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너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지? 나는 사랑이 있어" 라는 말과 같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왕은 그야말로 해결사인데,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실 때는 무엇을 파악해야 하는고 하니, 도대체 예수님이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 그것을 한번 손으로 꼽아보라는 말이다. 말만 가지고 예수님이 해결사라고 하지 말고, 한번 헤아려보라는 것이다.

◈ 예수님은 해결사 - 1. 죄의 문제 2. 죽음의 문제 3. 율법의 문제 4. 악마의 문제

다시 말씀드리겠는데, '신앙인' 이라고 하는 것은 왕을 믿는다는 것이고, 곧 그 왕이 해결자임을 인정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해결자가 도대체 무엇을 해결했기에 그렇게 믿느냐고 물으신다면, 다음과 같이 4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째는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둘째는 죽음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영생이요, 부활이다" 라고 하심으로 말이다. 셋째가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주셨는데, 더 이상 하나님의 율법에 얽매이지 않도록 말이다. 마지막 넷째가 악마로부터의 해방인데, 악마가 더 이상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분이 악마를 이기셨기에 말이다. 바로 이 4가지를 합쳐야 구원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이야기해보자면, 예수님은 먼저 우리의 죄를 해결하신 분이고, 그 다음에는 죽음을 해결하셨고, 그 다음이 율법을 해결하셨는데, 법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이 교회법이든 도덕법이든 간에, 그 어떤 법에서 대해서라도 모두 다 해결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그 무슨 짓을 했던지 간에, 즉 도둑질을 했던지, 강도짓을 했던지, 더 이상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분이 주신 사랑 덩어리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고도 아직 윤리와 도덕법에 얽매여 있다면 참으로 난처한 문제인데, 사실상 저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 A : 예수님을 믿습니까?
* B : 예.
* A : 그러면 예수님은 왕이시죠?
* B : 예.
* A : 그 예수님이 무엇을 해결하셨는지 압니까?
* B : 알지요.
* A : 예수님이 무엇을 해결하셨습니까?
* B :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모든 법을 다 해결하셨습니다.
* A : 그런데 당신은 왜 아직도 법에 얽매여 있습니까?
* B : ? ? ?
* A : 그러면 앞에 말한 것은 다 거짓말이 아닙니까?
* B : ? ? ?

다시 말해서, 과거에 사고를 치고 나쁜 짓을 한 것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과거는 지난 것이니 말이다. 즉 과거는 없다는 것이다. 왜 과거가 없는고 하니까, 과거의 '내'가 없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만약에 김 집사님이 16살에 담배를 피웠다면, 지금도 16살이고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지구상에는 그런 사람은 없는데, 17살이 되면 16살은 사라져버리니 말이다.

* 질문 - 그것을 존재의 연속성으로 보면 안 됩니까?

그런 것은 존재의 연속이 아니라, 인간은 아예 자기 그림자를 둘둘 말아서 끄집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위로 '싹둑' 하고 잘라버리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기에 자꾸만 과거의 문제 때문에 사건들이 터진다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이 주로 그렇다고 하는데, 물론 우리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일주일 전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한 달 전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렇게 해서 결국은 크게 싸운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올바른 인간이 되면 되는데, 과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데, 과거에 자기가 제 아무리 개떡같이 살았어도 그 과거는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인간에게 왜 과거가 그렇게 따라 나옵니까?

과거가 따라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라고 악마가 우리를 부추기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니 인생을 니가 책임져야지 왜 예수님에게 맡기느냐?"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인간이 바보라서(?) 당하는 것인데, 이 악마는 태어날 때부터 거짓말을 하는 놈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해결해주지 않아. 니 문제는 니가 알아서 해결해" 라고 하는데, 즉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인간에게 개과천선이란 있을 수 있는가? 그런 것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자기가 16살 때는 담배를 피웠지만, 하지만 46살 때는 무슨 짓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미리 앞당겨서 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하셨기에 말이다. 그것이 바로 4가지 해결책에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람이 되면 되는데, 그런데 자꾸만 자기가 정리하고 자기가 만드는 자기 사람이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내 사람'이 되려고 하는데, 그러나 그렇게 되어버리면, 그만 주님의 왕 되심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 목사님, 신앙생활은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목사님, 신앙생활은 어떻게 합니까?" 라고 물으면, 저는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할 수가 있는데, "당신은 당신의 과거와 단절이 되어있습니까?" 라고 말이다. 만약에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과거와 끊어져 있다는 것이니, 과거에 미련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에 미련을 둔다면 그것은 결코 신앙생활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문제를 자기가 해결하려고 나서지 말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인간은 마주치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지, 자기가 만들어 가는 상황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들 자기가 만들어간다고 여기는데, 그것이 아니라 마주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즉 마주치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물론 작전을 짜고 어쩌고 해서 상황을 만든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것도 몸이 아프면 어떻게 되는가? 병원에 갇혀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퇴원할 생각부터 먼저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인간은 주어진 대로 반응만 하면서 살아갈 뿐이지, 자기가 무엇을 꾸미고 어쩌고 한다고 하는 부담감에서 해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4가지 문제를 다 해결하셨다는 말이다.

◈ 천국에서 성도는 무엇을?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다 해결하셨다면 도대체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 즉 천국에서 성도가 할 일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보통 무지무지하게 할 일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 대한 정답은 이렇게 보면 되는데,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말이다. 그것이 바로 정답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고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러니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것이다.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바로 그 예수님의 자리에 우리가 들어가는데, 그러니 우리가 천국에서 무엇을 하는고 하니,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에 감사하게 되고, 하나님은 그렇게 사랑을 받은 것을 보고 싱글벙글 기뻐하시는, 바로 그런 '관계'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 그냥 바라만 보고 있지 !!

예를 들어서, 갓난아이와 엄마의 경우에 어떠한가? 그냥 서로 쳐다보기만 해도 좋아서 싱글벙글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냥 좋다는 말이다. 성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이것이 시편 131편에 보면 나오는데, 한번 찾아보자.

(시 131: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 131:2)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시 131: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기에 1절에 보자면, "내 마음이 교만치 않고, 내 눈이 높지 않고,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합니다" 라고 하는데, 이것이 요즘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로마서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말이다.

(롬 11:20)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그리고 여기 2절에 보면, "내 심령이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고,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라고 하는데, 마치 젖을 다 먹고 난 아이가 너무나 만족해서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싱긋이 웃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3절에 보면,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라고 하는데, 어떻게 바라보라는 것인가? 마치 젖을 실컷 먹은 아기가 어머니를 바라보듯이 하라는 말이다.

◈ 마치 젖 뗀 배부른 아이처럼 !!

이번에 러시아 인질사태에서 어린아이만 200명 정도의 사상자가 났다고 하는데, 어른들은 자기들이 다치면 정부를 욕하고 데모를 하고 난리를 치는데, 하지만 아이들은 어떠한가? 그 끔찍한 현장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면서 놀고 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말이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셨기에, 아이처럼 그 주님의 마당 안에서 뛰어 놀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마음놓고 그렇게 아이들처럼 뛰어 다니지를 못하는가? 그것이 바로 문제인데, 주님은 이미 우리 인생의 4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해 놓으셨는데 말이다.

◈ 문제는 인간의 교만함 !!

그것이 바로 우리의 교만 때문인데, 자기가 훌륭한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돈 10원의 가치도 없는 자신의 품위유지, 위신, 체면, 그런 것 말이다. 그런 것을 예수님을 믿었다면 무더운 날 윗통을 벗듯이 그렇게 좀 벗어버려야 하는데, 사실은 발가벗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모두 다 벗어버려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 법에 구애를 받지 말고, 물론 교통법규는 지켜야 하겠지만, 윤리나 도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젖을 뗀 아이처럼 만족하면서 주어진 대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살아가면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원하는 바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 이미 시작된 천국의 작전 !!

흔히들 천국에 대해서 오해하기를, 이 천국을 죽어서 가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그러나 천국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즉 시작된 천국이라는 것인데, 물론 아직까지 눈으로 나타나고 계시가 되지는 않았지만 천국의 작전(?)은 개시가 되었다는 말이다.

* 질문 - 복음을 알면 이렇게 된다는 것이지, 자기가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물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의 세계이고 말이다. 우리가 만족하는 것도, 이 세상에서는 아이의 성적이 올라간다든지, 취직이 되었다든지 하면 만족하겠지만, 하지만 그런 것도 없이 젖을 뗀 아이처럼 그런 만족을 누린다면, 주님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큰복이라는 것이다.

* 질문 - 자칫 잘못하면 화엄경에 있는 것처럼 "믿음이 없이는 극락에 갈 수 없다" 라고, 그렇게도 들릴 수가 있겠는데요?

물론 종교의 그런 교리들은 다 비슷해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하지만 불교에서는 무엇이 없는고 하니, 그 어떤 경우라도 특정 메시야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교에는 "당신들 바보지? 예수를 믿게. 스스로 당신이 신이 되면 되지, 왜 그 양반을 믿는가?" 라는 것인데, 이것이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점이라는 것이다.

◈ 왕은 사랑 덩어리이고, 해결사 !!

하지만 복음은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니, 인간은 어차피 죄인이고 그 어떤 문제도 자기 힘으로 해결이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 그분의 이름 말고는 구원받을 길이 없는데, 즉 '예수' 라는 이름으로 모든 혜택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왕' 이라는 말인데. 그러니 왕이라고 하는 것은, 제가 누가 강조하지만 '사랑 덩어리' 인데, 괜히 온 것이 아니라 '해결자'의 모습으로 왔다는 것이다.

◈ 하지만 만약에 왕이 잘못한다면?

그러면 만약에 이 왕이 잘못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가 사무엘상을 공부하면서 이러한 질문을 해야하는데, 여기에 대해서 사무엘상 12장에 나와있는데, 13절부터 한번 살펴보자.

(삼상 12:13) 이제 너희의 구한 왕, 너희의 택한 왕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 위에 왕을 세우셨느니라
(삼상 12:14)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좇으면 좋으니라마는
(삼상 12:15)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열조를 치신 것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계속해서 23절 이하를 읽어보자.

(삼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
(삼상 12: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삼상 12:25) 만일 너희가 여전히 악을 행하면 너희와 너희 왕이 다 멸망하리라

◈ 그러나 구약의 왕은 온전치 못해 !!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자면, 여기에 이렇게 구약의 왕이 있고, 또 이렇게 예수님이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구약의 왕을 본받아야 하는가? 다른 말로, 우리가 아브라함과 이삭을 본받아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이렇게 신약시대에 있는데, 그러나 전혀 본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구약의 왕은 그야말로 시원찮고 온전치를 못하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 시원찮은 왕들이 모두가 어디로 쏠리고 있는데, 그것이 어디인고 하니, 모두가 예수님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이나 선지자들도 역시나 그렇고 말이다.

◈ 오직 예수님만이 온전하신 분 !!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서 이들을 바라보게 되면, 무엇을 느끼게 되는고 하니, "아하, 예수님만 온전하시고, 다른 이들은 다 그렇고 그렇구나" 라고 말이다. 누구처럼 말인가? 마치 '우리'와 같이 말이다. 그런데도 온전치 못한 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멀리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었기 때문인데, 역시 우리들도 온전하지 못하니 현재에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가 있고 말이다.

바로 그렇게 성경해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세를 본받자", 혹은 "다윗을 본받자" 라고 하면 정말 곤란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교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라이벌 의식이 남아있어서 말이다. "모세가 그렇게 했으니, 나도 한번 해봐?" 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여기면 안 되고, "아하, 그러면 그렇지. 모세가 자기 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렇게 일을 했구나" 라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것을 모세를 통해서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모세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말이다.

다윗의 경우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그렇게 된 것이지, 자기 능력으로는 여자나 탐하는 인물에 불과하구나" 라고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공부하는 사무엘이나, 또 사울도 역시 그러하고 말이다.

◈ 왜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는가?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 왕을 세움으로서, "인간 왕은 이렇게 부족하다" 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말이다. 그것이 사무엘상 13장부터 나오는데, 어떤 경우가 그렇게 부족한지 한번 살펴보자는 것이다. 8절부터 보자.

(삼상 13:8) 사울이 사무엘의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삼상 13:9)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 제물을 이리로 가져 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삼상 13:10) 번제 드리기를 필하자 사무엘이 온 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지금 이스라엘이 막강한 블레셋과 전쟁을 해야하는데, 그래서 제사를 드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울왕은 사무엘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제사장이 와야 제사를 드리니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사무엘이 오지 않자 사울은 할 수 없이 자기가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지 전쟁에 임할 수 있으니 말이다.

◈ 정작 사무엘이 약속시간에 늦게 와놓고는 !!

그런데 사무엘이 그 제사가 끝나자마자 '짠' 하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오려면 제대로 시간에 맞추어서 오든지, 아니면 오지를 말든지 말이다. 그러니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제사가 끝나자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사가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놓고는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도대체 지금 왕이 무슨 짓을 했습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사울 왕이 하는 말이,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고, 그래서 제가 부득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라고 하는데, 말이 된다는 것이다.

(삼상 13:11) 사무엘이 가로되 왕의 행한 것이 무엇이뇨 사울이 가로되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삼상 13: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 사울 왕은 우리의 판박이 !!

여기에 성경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사울을 왜 등장시켰는가?" 라고 물으신다면, 이 사울의 심정과 바로 우리의 심정이 어찌 그리 똑같으냐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사울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바로 우리가 하는 행동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사울을 비판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박수를 쳐야할 판인데, 그런데 예상외로(?)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서 그런 사울을 공격해버린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울과 눈이 맞은 우리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보여주는고 하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를 우리들끼리 있을 때는 모르는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을 만들어서 우리의 행태를 모두 드러나게 해놓고는, 나중에 가서 뒷북을(?) 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해야 우리의 죄가 드러나고 깨닫게 되지만 말이다.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

여기서 사울의 근본적인 잘못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사무엘상 15장 22절에 있는, 아주 유명한 말씀이 나오는데,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라고 말이다. 여기에는 이렇게 순종과 제사를 따로 구분해놓았는데, 즉 제사를 잘 드리는 것이 순종과는 별 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말이다.

(삼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예를 들어서, 교회에 예배를 드리려 가는데 그만 차가 고장이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 차를 내버려두고서 택시를 타고 갔다면, 그것은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무모한 짓이라는 말이다. 차를 먼저 고쳐야지 말이다.

실제로 우리가 이러한 신앙이 좋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무모한 짓들을 많이 하는데, 집을 팔아서 십일조를 하고 말이다. 부흥회에 참석해서 천 만원씩 헌금을 한다고 약속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순종이 아닌데, 아픈 아내를 내버려주고 교회에 가는 것도 역시나 그렇고 말이다. 율법인데, 즉 자기의 의로움이란 것이다.

◈ 사울 왕의 착각은 무엇이었는가?

지금 사울 왕은 무슨 착각 속에 있는고 하니, 제사를 드리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복이 온다고 여겼는데, 바로 그것이 사울의 잘못이란 말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자기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보자기에 쌓여서 내려오는 벌레와 같은 것을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러나 그것이 순종이 아니라는 것이다. 먹으라고 하면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순종' 이라고 하는 것은, 아 세상 모든 일은 주께서 하시는 것이지, 인간이 하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바로 그것을 아는 것이 순종이라는 것이다.

(행 10: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행 10: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행 10: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행 10: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행 10:15)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면 !!

다시 말해서, 주어진 상황대로 감사하면서 살면 되는데, 하나님께서 열심히(?) 만들어주신 상황이니 말이다. 즉 돈까스 장사를 하면 돈까스를 만들어 팔면서 감사하면 되고, 그리고 돼지를 키우면 돼지를 키워서 내다 팔면서 감사하면 된다는 말이다.

아까 말한 대로, 교회에 가는데 차가 고장이 났다면, "감사합니다. 고치겠습니다" 라고 하면 말이다. 그렇지 않고 "아니, 그렇게 하면 벌을 받을 텐데" 라고 하는 것은, 즉 그렇게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곧 자기 행동여하에 따라서 복이 오고, 또 오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런 복은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성도는 이미 복 가운에 파묻혀 있는데 말이다. 성도는 무엇을 해도 이미 주께서 4가지 문제의 해결자로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놓으셨으니 말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데, 그러나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 어떤 일도 복 가운데 있으니 말이다.

◈ 스스로 살아가는 법칙을 만들지 말라 !!

지금까지 한 것을 간단하게 말해서, 자기 스스로 자기가 살아가는 법칙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모독이니 말이다. 우리는 아무리 그런 법칙을 만들어도, 그렇게 하나 이렇게 하나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말이다. 한 평생을 살아도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무엇을 해도 죄인인데,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부부싸움을 했다고 해서 없는 돈을 털어서 몇십 만원이나 하는 비싼 옷을 싸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것은 시간이 흘러가면 다 해결이 되는데, 그만큼 헛돈을 날렸다는 말이다. 차라리 그것을 통장에서 넣어서 주지 말이다. 물론 도장은 주지 말고 말이다(ㅋㅋ).

◈ 근호씨, 제가 당신에게 부끄러운 여자예요 ??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이 노래를 한다고 해서 자기도 억지로 하지 말고, 제일 좋은 프로포즈가 무엇인고 하니, "나는 당신에게 부족한 사람이야" 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보다 더 좋은 프로포즈는 없다는 것이다. 여자가 남자에게는 "나는 당신에게 부끄러운 여자야" 라는 것이고 말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남자는 정신이 없는데, 너무나 황홀해서 말이다. 파리의 연인이 아니라 파리의 천사라는 것이다.

인간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잘 나오지 않는데, 주로 "니는 니 원칙, 나는 내 원칙이다" 라고 해도 말이다. 은연중에 그런 갈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니, 그것이 무슨 부부이냐는 말이다. 각자가 자기 영역이 있는데, 그런데 무슨 '한 몸' 이냐는 것이다. 자기 비자금도 다들 따로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영역이 깨어지는 순간이 언제인고 하니, "나는 당신에게 부족한 사람이야" 라고 하는, 바로 그때라는 것이다. 그럴 때는 비자금이고 뭐고 모두 다 털어서, 비싼 옷도 싸주고 고급 음식점에서 외식도 시켜주면 된다는 것이다.

아무튼 부부라고 하는 것은 각자 영역의 철조망이 폐지되어야 하는데, 물론 기분이 좋을 때는 폐지가 되는데, 그런데 기분이 나쁠 때는 또 '쫙' 하고 펼쳐진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고압전류까지 설치해서, "오늘은 따로 자자" 라고 하면서 발로 차버린다는 말이다.

◈ 인간은, 자기 영역을 고수하면서 하나님의 전쟁에 !!

그러니 인간의 잘못은 무엇인고 하니, 건방지게도 자기 영역을 고수하면서 하나님의 전쟁에 임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쟁은 결코 사울이 하는 것이 아니데, 그런데도 마치 사울은 자기의 원칙을 세워서 전쟁을 하는 것으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고 하니까, "원칙을 부수자. 해결자는 따로 계신다" 라는 것인데, 즉 "주는 데로 살고, 맡겨서 살자" 라는 것이다. 자기 인생이라고 자기가 알아서 살려고 하지 말고 말이다. 즉 자기 인생은 없다는 말인데, 바로 그러한 점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 사무엘이 늦게 온 이유는?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부러 사무엘이 늦게 왔는데,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아마 사울 왕이 "내가 당신이 오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라고 하면, 사무엘은 대답하기를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하나님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라고 했을 것인데, 그러나 성경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뭐라고 하는가? 13장 13절 이하를 한번 보자.

(삼상 13: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삼상 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삼상 13: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을 계수하니 육백명 가량이라

한 마디로 말해서, "이제 당신은 끝장이 났습니다" 라는 것이다. 사무엘이 그야말로 저주를 퍼붓는데, 왕이 망령되이 행했다고 말이다. 사실은 자기가 약속시간에 늦어서 발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미안하다는 말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노력한 사울 왕은 그만 그의 앞길까지 모두 박살이 나고 말았다는 말이다.

* 질문 - 사무엘이 일부러 올가미를 쳐서 사울을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요?

물론 그러한데, 사실상 사울은 처음부터 왕이 될 인물이 아닌데, 그런데도 사울을 나무에 올려놓고는 마구 흔들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떨어지게 하는데, 그 일을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하신다는 말이다.

* 질문 - 다른 사람들은 사무엘을 좋아하던데, 그런데 저는 사무엘의 자기 아들들 문제도 있고, 또한 이런 사울과의 경우에도 좀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말입니다.

물론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는데,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고, 사무엘이 왜 이렇게 사울을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었는고 하니까, 지금 사울은 누가 원해서 왕이 되었는고 하면, 하나님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원해서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일단은 인간들이 원하는 왕을 세워놓고는, 그 내부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다윗으로 드러나는 메시야인데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들이 세운 왕과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가 구별되는데, 그렇게 분명하게 알라고 사울을 세워서 흔든다는 것이다.

◈ 제가 500만원은 보증금으로 !!

기존 교회에서도 보면, 목사가 복음을 전하면 "아이쿠, 참 설교가 좋네요" 라고 하면서도 절대 청빙은 하지 않고, "제가 철야기도를 해서 6개월 안에 5000명을 모으겠습니다" 라고 하는 목사 아닌 목사를 뽑는데, 개판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시골교회는 조건이 하나 더 붙는데, "제가 500만원을 모아서 오겠습니다" 라고 하는 말이다. 전임자를 퇴직금을 주어서 쫓아내어야 하는데, 모아놓은 돈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후임자가 와서 그것을 채워놓는다는 것이다. 일종의 전세금, 혹은 보증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은, 물론 목사도 문제이지만 교인들이 나쁘다는 것이다. 교회는 결코 사업체가 아닌데, 해결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데, 즉 복음이 얼마나 기쁘고 좋은 소식인지 확인하고 그분의 사랑을 증거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 사울은 우리의 자화상 !!

아무튼 이렇게 해서 사울 왕이 물러가게 되는데, 그러면 그 뒤의 스토리가 어떻게 되는고 하니, 과연 사울 왕이 호락호락 물러가겠느냐는 것이다. "미쳤는가? 내가 왕인데 물러가게" 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모든 교회의 당회장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말씀을 보면서 기존 교회를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을 그 얼마나 요긴하게 사용하시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울이 무슨 전략을 쓰는고 하니, 백성들을 자기편으로 포섭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울은 이미 잘렸는데, 자기가 잘린 것을 커버하기 위해서 말이다. 즉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대해서 선지자 사무엘은 단호하게 반대를 하는데, "너는 이미 잘렸다" 라고 하지만, 그러나 사울은 "내가 미쳤나? 이 자리를 내어놓게. 저리 꺼져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까지 다윗은 숨어있는데(?), 아직 등장하지 않고 말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고 하니, 사울이 왕이 될 때 그 왕은 하나님이 주신 왕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신앙의 상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울은 어떻게 하는고 하니,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해놓고는, 그 소유권을 이전해버린다는 것이다. 자기 것으로 말이다.

목사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목사직이나 당회장이라는 라이센스가 결코 자기 소유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교인이 없으면 당연히 그만 두어야 하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사울의 모습인데, 성경에 사울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사울을 통해서 인간의 모든 추악함이 !!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경에 왜 이렇게 사울 왕이 있는고 하니, 이 사울 왕을 통해서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은 다 나온다는 것이다. 온갖 더러운 것들이 말이다. 누구를 상대로 하는고 하니, 다윗을 상대로 그렇게 나온다는 말이다.

그래서 시편 22편에 보면 다윗이 뭐라고 하는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하는데, 지금 다윗이 사울에게 공격을 받아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을 공격하는데, 즉 인간이 하나님의 적이고, 인간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다는 말이다.

(시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 22: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말해서, '나의 소유'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데, "나는 목사이다. 나는 우리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다" 라고 하면서 자기 소유를 주장하는 순간에 이근호는 하나님의 원수라는 것이다. "하나님, 이제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라고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울을 바라보면서, 이 사울의 일이 남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아야 하는데, "아하,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구나" 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이 사울이 하고 있는 행사(行使)는 지금 우리 자신에게서 터져 나오고 있는 바로 그 모습이라는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사울은 잘렸다는 것이다.

◈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역할은?

이제 사무엘상 14장을 보겠는데, 여기 6절에 보면 요나단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요나단은 누구인고 하니, 사울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가 어떤 역할을 하는고 하니까, 사울가문에서 다윗가문으로 왕이 바뀌는데,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 연결고리가 바로 이 요나단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 아버지 사울 때문에 비참하게 죽는데, 다윗은 이 요나단의 자식들을 상당히 대접을 해준다는 말이다.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사랑 때문인데, 여기서 다윗은 예수님이고 사울의 아들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잘못 배웠는데(?), 그 주님의 사랑 때문에 이 세상에서 버림을 받지 않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

여기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14장 6절인데, 지금 요나단이 하는 이야기를 한번 보라는 것이다. 요나단이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다" 라고 하는데, 이것은 이미 언제 배웠는고 하니, 사사시대를 통해서 다 알았다는 말이다.

(삼상 14:6)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할례 없는 자들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기드온이 미디안 3만명과 어떻게 전쟁을 했는가? 사람들을 대부분 집으로 돌려보내고 겨우 300명만으로 그들을 박살을 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300명조차도 칼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을 들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무슨 그런 무기가 다 있고, 그런 전쟁이 다 있느냐는 것이다.

◈ 여호와 전쟁의 특징은?

그런데 여기 14장 6절 말씀에서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다" 라고 하는데,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우리가 전도를 많이 한다고 구원을 많이 받는가? 헌금을 많이 한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 그런 법은 없다는 것이다. 즉 구원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에 의해서 되는 것이지, 인간의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교인들이 제 말을 반대하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들 안다고 하는데, 그런데 그렇게 잘 알면서 실제로는 왜 반대로 하느냐는 말이다. 교인들끼리 서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서는 질투를 하고 말이다.

◈ 구원은 마누라 숫자와 상관이 없어요 ??

그래서 제가 하도 답답해서 이런 이야기도 했는데, "구원은 마누라 숫자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라고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결혼을 한 번을 하든, 두 번을 하든,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인데, 물론 이혼을 하든 말든 말이다.

그것을 두고 뭐라고 하는고 하니, "십자가의 피로서 구원된다" 라고 하는데, 이 십자가의 피 앞에서는 모든 양적인 것이 다 무시가 되는데, 그런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이 구원은 그냥 되는 것이지, 자기가 가져서 행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의 구원은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기 소유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소유' 라고 하는 것은, 재산의 소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와도 같은 지적인 소유, 미적인 소유, 권력의 소유 등등, 이런 것들이 모두 포함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날씬하다고 구원이 되는 것이 아니고, 뚱뚱하다고 구원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성격이 좋고 인상이 좋다고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 이 목사님의 인상도 괜찮은데 ??

흔히 교회에서 무심코 내뱉는 말 중에서, "야, 우리 목사님 인상이 참 좋더라" 라는 것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구원을 시켜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럴 때는 정말 돌아버리겠는데(?), 평생을 두고서 우리가 이런 악마에게 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숫자에도 놀아나면 안 되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포크레인으로 집어서 올리는 것인데, 그러니 그 밑에서 가볍고 무겁고 어떻고 하는, 그런 헛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인데, 그런 것은 구원의 필수조건이 전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아무튼 사무엘상 14장에 보면, 요나단과 소년이 달랑 둘이 올라가서 블레셋 군사를 박살을 내었는데, 그래서 땅이 진동하고 큰 떨림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20절에 보면, 블레셋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난리를 피웠다는 것이다. 아마 이게 하나님의 주특기이지 싶은데, 기드온의 경우에도 그러했고 말이다.

◈ 요나단의 승리가 의미하는 것은?

(삼상 14:13) 요나단이 손발로 붙잡고 올라갔고 그 병기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병기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삼상 14:14) 요나단과 그 병기 든 자가 반일경 지단 안에서 처음으로 도륙한 자가 이십인 가량이라
(삼상 14:15) 들에 있는 진과 모든 백성 중에 떨림이 일어났고 부대와 노략군들도 떨었으며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삼상 14:20) 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이 각각 칼로 그 동무를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그런데 이러한 사람의 숫자의 많고 적음에 구애받지 않는 여호와의 전쟁을 누가 방해하고 나섰는고 하니, 그가 바로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이라는 것이다. 사무엘에게 찍힐 때 이미 그의 인생은 박살이 난 것인데, 하나님의 적대자로 나선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제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소유와는 상관이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누가 거기에 대해서 방해자로 나서는가? 바로 성직자라는 것이다. 소유와 상관이 없다고 하면 교회에 돈이 안 되니 말이다. 교인들의 입에서 "헌금을 하지 않아도 구원을 받는다고 하니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 목사는 그야말로 환장을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교인들도 그것을 알지 않나요?

그래서 목사들이 하는 말이,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복은 행함으로 받습니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그 거짓말에 그렇게 호응하고 찬성을 하고 나서는 무리들이 있는데, "목사님, 제가 그렇게 헌금을 해서 복을 받았습니다" 라고 말이다. 그런 무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 질문 - 소위 날고 긴다는 목사들은 그런 이야기는 안하면서도, 간접적으로 행함을 강조하는데요?

물론 그렇지요. 목사들의 행태가 원래 그렇다는 말이다. 아무튼 사울이 이런 소리를 했을 때,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리의 편에 서야만 하는데 누구 편에 서는고 하니, 그런데 못된 왕인 사울 편에 선다는 말이다. 다윗의 편은 불과 500명에 불과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울과 다윗의 관계를 보면서 오늘날 교회의 돌아가는 모습을 비교해보면, 그야말로 족집게라는 것이다. 어찌 그리 서로가 똑같은지 말이다. 기가 막힌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보면,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고, 또 목사님을 반대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해서" 라고 하고 말이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바로 이미 권세를 잡은 자들이 다 그렇게 세뇌를 시켜놓았다는 것이다. 마귀가 노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정말이지 주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아는 것이지, 그런 것을 다 깨부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요나단을 훼방하는 사울 !!

아무튼 요나단이 이렇게 적을 이미 박살을 내었는데, 사울이 어떻게 훼방을 놓는고 하니, 가리늦게(?) 사울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지금부터는 내 지시에 따른다. 내가 적을 박살낼 저녁까지는 아무 것도 먹지를 말라" 라고 했는데, 사울이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가?

이것을 교인들이 잘 모르는데, 사울에게는 나름대로의 자기 원칙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을 할 때는 자신을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재미있지요? 즉 거룩한 전쟁이기 때문에 백성들이 자기 개개인의 욕심을 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사울에게도 나름대로의 원칙이 !!

이것을 사울이 백성들에게 지시를 하는데, 그러니 사울은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어떻게 어떻게 했더니만 전쟁에서 승리를 했다" 라고 하는, 거기에서부터 자기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워서 백성들에게 지시를 한다는 것이다.

왜 과거 미스바에서 금식을 해서 전쟁에서 이기지 않았는가? 사울은 그것을 머리 속에 그대로 담고 있는데, "아하, 밥을 먹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주시는구나" 라고 말이다. 사울은 바로 그러한 방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기교' 라고 하는데, 그런 것이 있어야만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복 받는 기교를 말이다. 이 기교는 그냥 순서대로 따라서만 하면 되는데, 그러니 이것은 순종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즉 방법만을 알아서 그대로 하면 하나님께도 먹혀든다는 것이다. 일종의 무속신앙인데, 곧 점을 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사실 오늘날 우리들도 역시 그렇고, 다들 이런 방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가? 그래서 TV와 같은 매스컴에서 거의 매일같이 하는 말이 무엇인가? "과거에서 교훈을 얻어서 미래로 나가자"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노골적으로 "점을 칩시다" 라고 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 전도사님, 금요일 밤에 혹시 ??

그런데 교인들은 성경을 잘 모르니 그런 무속신앙이 믿음인 줄 알고 따라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고신측의 어떤 장로는 전도사에게, "고난주간인 금요일에 부부와 부부관계를 해야 합니까?" 라고 말이다. 물론 하면 안 된다는 소리인데, 자기는 목요일에 이미 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그러한 질문을 했을까? 어디 금요일에 엉뚱한 장소에서 장로에게 들켰나? ㅋㅋ)

* 질문 - 기존 부흥사들의 논리가 다 그런 것이군요? 성경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습득해서 소위 기교를 부린다는 말이죠?

성경에서 그런 복 받는 방법을 끄집어내는 놈들은 다 삯꾼이라는 것이다.

* 질문 -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해면, 그래서 자기들의 것이 서로 비교해보니 틀렸다는 것이 드러나도 버리지를 않으려고 하는데, 오히려 저를 극단주의자 비슷하게 매도해버리려고 하는데요?

그것이 바로 자기들의 소유 때문에 그러한데, 기득권이고 말이다. 그것이 이미 성경에 다 나와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원수인데, 그러면 그들에게 구원은 어떻게 되었는지 한번 물어보라는 것이다. 뭐라고 하는지 말이다.

* 질문 - 그들은 이미 받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제가 그러면 오늘 집에 가서 자기 혼자서 정말 솔직하게 하나님과 일대일로 한번 대화를 해보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구원을 받으려고 아까 말한 그런 원칙을 지키는 조건하에서 구원을 받는다고 계약을 한 것인데, 물론 마귀하고 말이다. 그렇게 지키면 구원을 시켜준다고 해서, 그렇게 구원을 차후로 미뤄놓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받은 것이 아니고 말이다.

◈ 하나님의 승리는 인간의 기교와는 상관이 없어 !!

그것이 바로 사울이 고수한 법칙인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승리는 사람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모든 것이 주로 말미암아 나왔고 주께로 돌아가니, 전쟁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런데 거기에 인간의 기교를 왜 집어넣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러한 종교적인 기교를 빼버려야 하는데, 예수님의 피로 구원을 받지 우리 자신들의 피가 아니니 말이다. 성경을 우리가 매일 읽어데, 그런데 어떤 때는 두 장을 읽을 수도 있고, 또 석 장도 읽는데, 하지만 그런 지나간 과거는 잊어버리라는 것이다.

◈ 사울의 객기(?) - 죽이겠다 !!

이것이 바로 사무엘상 14장의 내용인데, 아무튼 그렇게 해서 사울이 객기를 부리는데, 자기 명령대로 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죽인다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내가 너를 죽인다" 라는 것을 분석해보면, 자기의 명령대로 행하지 않을 때 죽이겠다고 하는 것은, "나는 너를 죽일 권리가 있다" 라는 것인데 말이다.

목사는 복음만 증거하면 되는데, 그러니 사람을 관리할 생각은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성도 속에는 성령님이 계시니 말이다. 그 성령님이 원하는 말씀을 증거하는, 그런 봉사의 직분이 바로 목사라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누구에게 명령을 할 권리가 없다는 말이다.

◈ 전도사님, 이제 월급은 없습니다 !!

그래서 자기가 아무리 당회장이라고 해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전도사가 있으면, 장로에게 말해서 그냥 월급을 주지 않으면 되지,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할 권한은 없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교인들을 50명을 데리고 가던 말던, 그것은 전도사의 마음이지 자기가 터치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튼 자기는 월급을 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지, 전도사에게 교회에서 나가달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전도사가 청년들과 모임을 하든지 말든지 말이다. 자기가 주의 종이라면,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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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