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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3-창세기부터요약,사무엘상2자유게시판사무엘상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3-창세기부터요약,사무엘상2

이름 : 구득영(IP:203.223.97.243)

04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13 - 창세기부터 요약, 사무엘상2

04,08,20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창세기 - 아하, '나' 말고 누군가가 있구나 !!

사무엘상을 하기 이전에,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공부를 해왔는지 창세기부터 한번 간추려보겠는데, 진도를 나가다보면 앞에 한 것을 잊어버리니 말이다. 이렇게 다시금 반복을 하면 많은 도움이 되는데, 우리가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해왔는지 말이다.

창세기에서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옆에 선악과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선악과를 따먹으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바로 이러한 조건 속에 놓여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을 정의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죽는 존재이다" 라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다" 라고 하면 안 되고 말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거기에 대한 징벌과 저주를 받도록, 그렇게 지어진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죽게 되어있는 존재이다" 라고, 자기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처럼 "내가 누구인가?" 라는 것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하면 죽고, 지키면 살도록 되어있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그 죽음은 이 땅에서의 죽음인가요?

물론 그 죽음은 영원한 멸망까지도 포함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정리를 해버리면,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의 절반 이상은 해결이 되는데, 그러면 그 다음의 문제는 무엇인가? 선악과를 그렇게 따먹었으면 죽음인데, 즉 그렇게 말씀을 어겼으면 죽는 존재인데, 그 다음 문제는 곧 "어떻게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길 수가 있는가?" 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구원문제가 창세기 3장 이후에 나온다는 말이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공부하려는 사무엘상까지, 아닌 요한계시록까지 계속된다는 것이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가는 것, 바로 그것인데, 하나님께서 성경을 우리에게 왜 주었는고 하니까, 우리는 이미 죽은 자인데 산 자가 되었다는 것을 통보해주는 책, 그것이 곧 성경이란 말이다. 즉 "너는 죽어야 당연한데, 살게 되었다" 라는 것이다.

◈ 다시 정리하면 !!

다시 정리하면,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고 하니까, 첫째가 "너는 누구인가?" 라는 것이고, 둘째가 "너는 죽어야 하는데 살게 되었다" 라는 것이고, 셋째가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해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전환이 되었는가?" 라는 것이다. 어떤 분이 개입해서 그렇게 되었느냐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전체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창세기이든, 사사기이든, 욥기이든, 아가서이든 말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이다. 그런데도 말씀을 듣지 않아서 죽었다. 그런데 제3자가 개입해서 살았다" 라는 것이다.

◈ 여호와가 누구입니까?

그렇다면 누가 개입을 했는가? 구약 때는 하나님의 약속이 개입을 했는데, 그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두고서 '여호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여호와가 누구입니까?" 라고 물으면, 여러분은 답변하기를, "여호와 하나님은 약속을 주신 분입니다" 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답변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라는 것인데, 물론 말은 맞지만, 그렇게 되면 실질적으로는 아무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고, 그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는가?

* A : 여호와가 누구입니까?
* B : 예,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 A :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B : 예, 여호와입니다.
* A : 이발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 B : 예, 미장원 옆에 있습니다.
* A : 미장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 B : 예, 이발소 옆에 있습니다.

그러니 미장원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면, 이발소 옆에 있다고 대답하면 안 되고, "여기서부터 어디 어디로 가서 몇 미터를 가면 됩니다" 라고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자기로부터 출발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호와가 누구입니까?" 라고 하면, "예, 저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주신 분입니다" 라고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약속을 주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그러면 약속을 몇 %를 지켜야 합니까? 30%입니까? 50%입니까? 100%입니까?" 라고 하는데, 대답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그 약속은 우리의 몫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라는 것이다. 그 약속은 전문적으로(?) 지키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바로 자기 약속을 주신 주(主) 여호와 하나님인데, 그분이 자기의 열심으로 그 약속을 이루어낸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시고, 또 지키고 하시네요?

물론 그렇다는 말이다. 이렇게 좋은 질문을 종종 하시는데, 그것을 두고 '맹세' 라고 한다는 것이다. 맹세의 의미가 무엇인가? 이 맹세는 요구하는 것이 아닌데, 즉 "내가 맹세한다" 라는 것은, 그 맹세를 지키는 당사자가 바로 '나' 라는 말이다.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6장에 보면, 하나님은 맹세하시는 분으로, 자기 맹세는 자기가 이루신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맹세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

(히 6:1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히 6: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교인들은 이것을 모르는데, 왜냐하면 믿음이 없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설령 믿음을 강단에서 목사가 이야기해도, 교인들은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데, 그러니 목사는 당연히 "얼씨구나. 내 밥이로구나" 라고 하면서 마구 때려준다는 것이다. "선교헌금을 해라. 십일조를 해라" 라는 식으로 말이다.

교인들은 무엇을 지키려고 교회에 나오는데, 그러니 '맹세' 라는 의미도 전혀 모르고, 또 약속을 누가 지키는 지도 모르고, 믿는 구석은 자기 행함밖에는 없고 말이다. 즉 전혀 하나님에 대해서 믿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속으로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뭐하노? 내가 알아서 잘해야 구원을 받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것을 잘 지켜라" 라고 해놓고는 가버리고 없는데, 그러므로 자기가 알아서 열심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열심히 지켜서 이렇게 복을 받은 것이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사용한 수법인데, 지금도 마귀는 교회를 통해서 성도들이 천국에 가지 못하도록 유혹을 하고 가로막는데, 복음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도록 말이다. 마치 핸드볼에서 골키퍼가 수비를 하듯이 그렇게 가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맹세라는 것이 자기가 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 우리는 매일같이 맹세하는 인간이지만 !!

성경 마태복음에서 우리에게 맹세를 하라고 했는가? 아예 그런 맹세는 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수시로 하는 맹세와는 상관이 없지만 말이다. 물론 우리가 맹세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닌데, 자꾸만 자기 행함으로 바꾸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해도 우리 마음대로 하는데,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말이다.

(마 5: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마 5:35)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주께서 구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맹세를 하는 보고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또 맹세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구원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맹세를 해도 지킬 만한 능력자가 맹세를 하신다는 것이다. 개코도(?) 맹세를 지키지도 못할 인간들이 자기 맹세를 한다고 난리를 피운다는 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맹세는 주께서 하시고 주께서 다 이루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맹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고 하니까, 자기의 택한 백성은 반드시 건지고야 말겠다고 하는, 그것도 포함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 맹세의 내용물 속에 말이다.

◈ 성도는, 두려움이 없어야 !!

그러니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잘 믿는 자로서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봐도 참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데, 그런데 이상하게도 두려움이 없다" 라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주의 사랑 안에서 모든 심판을 다 이기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두려움이 없는 가운데서 주님의 일을 하도록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 학원이 좀 힘이 들어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모두 마귀의 시험임을 경험토록 하셨다고 보면 된다는 말이다. 아무튼 우리는 그런 주님의 맹세로 인해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 창세기 정리 - 죽었더라, 죽었더라, 그러나 !!

여기서 창세기를 다시 정리하자면, 성경은 우리 인간을 만드는데 있어서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옆에 선악과를 심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죽었다고 볼 수 있는데, 선악과 효과로 말이다. 그래서 창세기에서는 '죽었더라' 라는 것을 반복하는데, 그런데 그것이 생명으로 전환이 되는데, 누구 덕분인고 하니까, 제3자가 개입을 했는데, 그분이 바로 약속을 던지는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은 자기 맹세에 의해서 반드시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란 것이다.

* 질문 - 그러니 마태복음의 "맹세하지 말라" 라는 것은, 우리의 맹세는 별 의미가 없다는 뜻인가요?

물론 당연한데,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비판하지 말라" 라는 것도 같은 의미이고 말이다. 즉 비판할 자는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산상설교가 모두 그러한데, 우리에게 "무엇을 하지 말라" 라는 것은, 그것은 진짜 제대로 해낼 수 있는 분은 따로 계신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목사는 비판할 가치도 없고 말이다.

◈ 출애굽기 - 가족에서 국가형태로 !!

이제는 출애굽기를 살펴보겠는데, 이 출애굽기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가 되는데, 무엇으로 되는고 하니, 국가형태로 성취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약속을, 다른 말로 하면 맹세인데, 즉 하나님의 자기 맹세를 이루기 위해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의 형태로 최초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출애굽기라는 말이다. 그 이전에는 국가가 아니라, 가족형태였는데,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그 족보를 가지고 있는 패밀리 말이다. 그렇다면 왜 가족형태에서 국가로 바뀌었는가? 그렇게 되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 왕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즉 국가가 있어야만 왕이 등장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바로 국가형태로 해서 왕이 등장하면 되는데, 왜 먼저 가족형태가 등장했는가? 그렇게 가족이 있어야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는데, 이것이 참 재미있는데, 즉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출애굽기에 들어가면 국가가 아들이 되는데, 즉 이스라엘 민족자체가 아들이란 말인데, 이것이 로마서에서는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기 위해서 라고 한다는 것이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그러면 왜 국가형태가 되어야 하는가?

다시 이야기하지만, 왜 이렇게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왕이심을 알리기 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왕이심을 알려야 하는가? 이것이 좀 어려운데, 이미 악마가 우리의 왕이기 때문에 그러한데, 그러니 왕의 교체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 사망이 아닌, 은혜의 왕 노릇 !!

이것이 로마서 5장에 보면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 구절을 너무나도 좋아하는데, 과거에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을 하다가 이제는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시는데, 곧 은혜의 왕이라는 말이다. 은혜의 왕 말이다.

(롬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롬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예를 들어서, 미용기술이 제일 뛰어난 사람을 '미용왕' 이라고 하고, 또 노래를 제일 잘 부르는 사람을 '가수왕' 이라고 하듯이 말이다. 가수왕이라고 하니, 조용필이 생각나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요? 야구에서는 홈런왕이나 타격왕이 있고 말이다.

아무튼 예수님은 무슨 왕이라구요? 은혜의 왕, 즉 용서를 해주시는데 왕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에게는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 없다는 말인데, 즉 창녀이든, 세리이든, 강도이든 말이다. 그렇게 용서를 해주고 자비를 베푸는데 '짱' 이라는 말이다.

◈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

이것이 민수기 23장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발람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데, 이스라엘 가운데는 왕이 있는데, 그 왕은 자기 백성의 허물을 용서해주신다는 것이다. 즉 자기 백성의 허물을 나무라지 않고 자비를 베푸시는 왕으로서,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과 결합이 되어있다는 말이다.

(민 23:21)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아마도 여러분이 성경전체의 윤곽을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잡을 수 있지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어떤 부분에 대해서 감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고 하니,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으면 되는데, 왜 하필이면 왕이 있어야 합니까?" 라는 것인데, 그 이유는 바로 지금까지 악마가 우리의 왕이 되었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 성화론은 악마의 도구 !!

이러한 악마의 주특기가 무엇인고 하니까, "너는 아직까지도 왜 완벽하지 못하지? 이번에 또 실수를 했지? 그러니 죄인이고 천국에 가지 못하잖아. 그러니 더욱더 열심히 해서 완벽하게 되어야지" 라고 하는데, 물론 선악의 기준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악마는 우리에게 초조와 불안을 계속해서 심어준다는 것이다.

제가 이러한 성화론을 항상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곧 마귀의 시험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즉 "너는 왜 완벽하지 못해? 이번에 또 실수를 저질렀지?" 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바로 주께서 은혜의 왕 노릇 하는 것을 부인하는 꼴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 성화론은, 결국 하나님을 라이벌로 !!

그러면 성화론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뭐라고 하는고 하니, "그래, 예수님이 은혜의 왕은 맞기는 맞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예수님을 이용하면 되겠어? 그런 은혜의 왕 앞에서 우리가 좀 더 잘해야지" 라고 말이다. 즉 "아버지가 좋다고 해서 함부로 굴면 안 되고, 우리가 자식된 도리로서 더욱더 잘해야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대인저러스한(?) 주장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왕이신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을 자기의 라이벌로 여기고, 즉 자기도 괜찮은 인간이라고 하면서, 그분을 따라붙으려고 하는 전형적인 악마가 따먹으라고 준 선악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는 칭찬을 받을지 몰라도, 그러나 그것이 성경을 보면 얼마나 악마적인 것이지가 잘 드러난다는 말이다.

◈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다시 정리하면 !!

다시 정리하면, 창세기는 가족형태인데 반해서 출애굽기는 국가형태인데, 즉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이스라엘은 아들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육적인 관계가 아니라 영적인 관계인데,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과 어떻게 육적인 아들의 관계를 맺을 수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이것을 성경에서는 '영적' 이라고 이야기하지를 않고, 약속의 관계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자녀인 이삭은 전혀 육적인 아들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 라는 말이다. 바로 그런 약속의 아들이 국가의 형태로 된 것이 곧 출애굽기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 약속된 땅으로 가는 旅程 !!

그렇게 해서 국가가 생겨났다면, 이제는 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약속의 백성이 생겼으니 거기에 합당한 약속의 땅이 있어야만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약속된 땅으로 이동하는 것이 레위기, 민수기, 그리고 신명기라는 것이다. 즉 약속된 땅으로 가는 여정(旅程)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정상적인 경로로 갔는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그것은 바로 결국 자기들의 행함을 의지하기 때문인데, 그런 자기들의 행함에 기초해서 보니, 그런 땅에는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자기들의 힘으로는 말이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메뚜기 같고 그들은 장대와 같으니, 그러니 도저히 게임이 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광야에서는 마실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전혀 없고 말이다. 그러니 자기들의 행함에 비추어볼 때, 도저히 이러한 광야노정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시험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곧 자기 행함을 의지하기 때문인데, "예수님, 제가 작년에 큰 죄를 지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짓을 했는지 저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당분간 교회에 나오는 것을 자숙하고, 인간이 좀 되었다 싶으면 나오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런 시험이 찾아오면 곤란하지만, 그러나 주님이 허락하시면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민수기 21장과 요한복음 3장 !!

그럴 때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자기 행함을 의지하다가, 그것이 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행하는지 그렇게 않는지를 묻지를 않는데, 자기가 자기에게 되물어서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이 내용이 민수기 21장에 나오는데,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하다 불뱀에 물려서 죽어갈 때, 하나님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놋뱀을 높이 달았는데, 이렇게 놋으로 뱀을 만들어 달았다는 것은, 우리도 뱀에 물리는 것이 당연한데, 그런데 이 놋뱀을 쳐다보는 사람은 즉시 나음을 입는다는 말이다.

(민 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민 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민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민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그런데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이 놋뱀을 무엇으로 지칭하는고 하니, 예수님의 십자가로 본다는 것이다. 높이 들리는 것을 그렇게 보는데, 옆으로 눕히는 십자가는 없으니 말이다. 즉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의 죽음이 십자가 형태로 그렇게 높이 들리는 것으로 이야기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다음에 뭐라고 했는고 하니, 누구든지 저 놋뱀을 보는 자가 구원을 받는 것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했다는 것이다.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다시 말해서, 민수기 때의 놋뱀 이야기가 내용 하나 빠트리지 않고, 그대로 신약시대로 이동을 해서 십자가에 그대로 박혀버린다는 것이다. 즉 놋뱀을 바라본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은 것처럼, 십자가를 들이댈 때 그 십자가를 믿은 사람들은 다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왜 컴퓨터를 조립할 때 제일 기분 좋은 것이 딱딱 들어맞을 때인데, 아닌가? (이 목사님이 컴퓨터를 조립할 줄도 아시나? 부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ㅋㅋ) 바로 이러한 놋뱀의 원리가 십자가에 그대로 딱딱 들어맞을 때도 역시 그렇다는 말이다. 이 놋뱀을 쳐다본 사람들이 믿음이 좋다기보다는, 모두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군지렁거린 사람들인데, 그런데 그 놋뱀을 보고서 다 나았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자기 잘난 사람이 아니고 말이다.

◈ 여호수아, 사사기 - 약속의 땅은 없었다 !!

그 다음에 신명기 이후에, 여호수아와 사사기인데, 그런데 이 여호수아와 사사기에는 놀랍게도 약속의 땅은 없더라는 것이다.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무사히 도착을 했는데, 그런데 그들이 생각한 약속의 땅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약속의 땅은 있기는 있지만, 그러나 '언제나' 약속의 땅은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할 때만 약속의 땅이 되고, 그렇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관심을 돌려버린다면, 그 땅은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라 그만 이방나라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약속의 땅이 되었다가 이방나라가 되었다가, 이방나라가 되었다가 약속의 땅이 되었다가, 그렇게 반복이 된다는 말이다. 즉 이스라엘이 이방민족을 지배했다가, 이방민족이 이스라엘을 지배했다가, 그렇게 말이다. 이스라엘이 교만하다 싶으면 적들이 쳐들어오고 말이다.

* 질문 - 그러니 지역적 의미는 없다는 것이지요?

당연히 없는데, 민족의 의미도 없고 말이다. 오직 예수님만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인데,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그게 바로 천국이라는 것이다. 따로 어떤 특정 지역이 있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특정한 어느 교회가, 어느 가정이 천국이라고 감히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찬송가에도 있듯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니" 라고 말이다. 그렇게 일시적으로 천국이 된다는 말이다.

◈ 부부싸움도 하나님의 은혜로 !!

그래서 부부가 신나게 싸움을 했더라도, 물론 그 당시에는 지옥 같지만, 하지만 "아이쿠, 우리는 이런 부부싸움이나 하는 못난 놈과 년인데, 그런 우리를 구원시켜주셨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라고 하면서, 둘 다 그런 마음을 먹으면 그 가정이 그 순간에 천국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가정은, 제 아무리 서로 치고 박고 싸우고 이웃이 신고해서 경찰이 출동하고 난리가 나더라도, 예수님만 생각하면 갑자기 서로가 겸손해져서 그 순간만큼은 천국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약 10초 정도가 되겠지만 말이다.

흔히들 다음과 같은 것을 경상도 기질이라고 하는데, 사실 사람들마다 모두가 다르지만 말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모두 다 시원하게 털어 내어버리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냥 그대로 가만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기분이 좋아도 꾹 참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조금만 좋아도 난리가 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경상도 출신의 남자와 여자는 자기 감정의 표현을 그렇게 잘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도 "나는 예수님의 사랑이 너무너무 고마워" 라고 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너무나 묵직해서(?) 말이다. 그런데 서울이나 이북출신 사람들은 조그만 은혜를 받으면 서로 난리가 난다는 것이다. 아마 여러분도 그런 것을 조금은 느끼지 싶은데 말이다. (그러면 충청도와 전라도는?)

* 질문 - 그러면 앞으로 우리의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천국이고, 그렇지 않으면 천국이 아니라는 말씀인가요?

제가 아까 이야기를 잘못한 것 같은데,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여기에 하나님의 손바닥이 있다면, 사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라고 했을 때, 그들이 주님의 손바닥 안에 놓여있다면, 그것이 바로 천국이라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천국이라기보다는 언약의 나라라고 하는데, 아무튼 자기가 주님의 손바닥 안에 있음이 느껴질 때 말이다. (???)

◈ 천국은, 자기보다 주님이 크게 느껴질 때 !!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보다 주님의 은총이 더욱 더 크게 느껴질 때, 그것이 바로 천국이라는 말이다. 자기 눈동자에 주님의 십자가가 꽉 차서 엄청나게 크게 보일 때 말이다. 그럴 때는 학원이 아이들이 많든 적든, 그런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또 자기 자식이 공부를 좀 잘하든 못하든, 그런 것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주님의 십자가만 가득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느 양궁선수가 목에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서 활을 쏘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8점 이상만 맞추면 금메달을 따는데, 그렇다면 과연 그 선수에게는 십자가와 활 과녁 중에서 어느 것이 크게 보이겠는가? 과연 그 선수에게 과녁 말고 십자가가 더 크게 보이겠느냐는 말이다. 진짜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5점을 싸도 괜찮다고 하면서, 과녁보다는 십자가가 더 크게 보어야 하는데 말이다. 예가 너무 잔인(?)했는가?

그런데 그렇게 해서 금메달을 딴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해버리면, 그것은 가짜라는 것이다. 은혜는 꼴지를 해도 역시 은혜인데 말이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용서보다도 다른 것이 더욱 더 크게 보인다면, 금메달과 같은 것이 말이다. 그것은 전혀 은혜가 아니라는 말이다.

* 질문 - 교회에서 구원을 받으면 앞으로 우리가 천국에 간다고들 하는데, 그런데 그 천국에 대해서 지옥을 불못이라고 하는 것처럼, 그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없지 싶은데요?

천국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옥을 너무나 겁을 내서 그렇다는 말이다. 천국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에 보면 나오는데, 요한계시록 이전까지는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임했다는 것을 느낄 때,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세상보다도 더 큰 분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는 외롭지 않고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 어떤 환난이나 핍박이 와도 주님이 자기를 놓치지 않고 있음을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천국이라는 말이다.

◈ 고개를 떨구는 욥, 이사야, 사도바울, 그리고 ??

욥의 경우에, 자기가 그렇게 애매히 고난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하나님이 나타나니 자기 모습을 부끄러워하면서, "하나님, 무지한 놈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바로 그 무지한 놈입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고개를 숙이면서 말이다.

그러니 욥은 지금 자기가 아픈 것, 긁어서 살점이 떨어져나간 것, 자식이 죽고 재산이 다 날아간 것, 그런 것은 일체 생각이 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을 직접 만난 그 감격에 몸을 떤다는 것이다. 너무 너무 좋아서 말이다. (그러면 마누라가 떠난 것은?)

(욥 42: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 42:2)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욥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 42: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선지자 이사야도 마찬가지였는데, "화로다. 망하게 되었도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고서 말이다. 그렇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줄도 모르고, 자기 혼자 잘나서 설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망해도 당연하다고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는 말이다.

(사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사 6: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사 6: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그것은 사도바울도 똑같았는데,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기새등등하게 가다가 누구를 만났는고 하니, 바로 그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여, 정말로 살아계셨네요" 라고 하면서 역시 고개를 떨구었다는 말이다. 아니, 식음을 전폐했다는 것이다.

(행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행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행 9: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행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행 9: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행 9: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행 9: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행 9: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행 9: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 질문 - 그러면 기존 교회의 주장은 하나도 맞는 것이 없네요?

그냥 마귀라고 여기면 편안한데, 자꾸 교회라고 여기니 가슴이 아프고 속이 쓰리다는 것이다. 물론 100명중에서 한 명 정도는 아닐 수 있는데, 그것은 없다고 보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렇게 없는데, 그런데 만나면 너무 너무 반갑다는 말이다.

◈ 사무엘상하 - 괜찮은 왕 하나, 열 백성 안 부럽다 !!

아무튼 이렇게 들쑥날쑥하면 안 되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까,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사무엘상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편안할 때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가만히 있다가, 자기들이 힘들면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들쑥날쑥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백성들이 어떻게 놀든지 간에 하나님의 나라가 되면 괜찮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무엘상' 이고, '사무엘하' 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무엘상하는 무엇인고 하니까, 왕을 하나 주어서 그 왕이 잘되면, 백성들이 자기들끼리 제 아무리 까불고 설쳐도 그 나라는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왕 덕분에 말이다. 사무엘상하는 바로 그러한 제도를, 즉 시스템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여기에 비해서 사사기와 여호수아는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 복종을 할 때는 일이 잘 풀리고, 그렇지 않고 조그만 교만해지면 적들이 와서 쑤셔댄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무엘상하는, 백성들은 원래 그런 놈들이니까, 아예 백성들에게 묻지도 않고 괜찮은 놈(?)을 하나 박아서, 바로 그놈 덕분이 다른 놈들이 기쁨을 누리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놈이 그 유명한 '다윗' 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다윗이 누구인가?" 라고 할 때는 "예, 하나님이 심어놓은 왕입니다" 이라고 하면 정답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왕의 역할은 무엇인고 하니, 자기만 잘하면 백성들은 덩달아 혜택을 본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라는 말이다.

◈ 왕 하나 잘 만나면 인생 끝 !!

그래서 장차 오실 메시야도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데, 여기서 다윗의 자손으로 온다는 것은, 우리는 그 메시야 하나만 잘 만나면 그 어떤 짓을 하더라도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관계가 왕과 백성의 관계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 그것은 오늘 이 시간에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분위기상 하고 넘어가야 하겠는데, 이 부분이 엄청 중요하니 말이다. 여기서 로마서 5장을 보겠는데, 16절과 17절을 살펴보자.

(롬 5: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우리 인간들은 범죄에서 전혀 벗어날 수가 없는데, 만약에 스스로 벗어날 수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다 사기꾼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죄는 우리 인간들이 다룰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오히려 우리의 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욕망은 우리 자신보다도 더 강한데, 즉 자기가 자기 자신의 욕심을 관리할 수 없다는 말이다.

◈ 내 마음 나도 몰라 !!

우리의 마음은 이미 댐이 터져서 욕심이 철철 넘치고 있는데, 도저히 다시 담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와장창 깨어진 항아리이니 말이다. 그렇게 욕망이 넘치고 새버리니, 우리는 보는 것마다 다 욕심을 내는데, 옆에 학원이 잘되면 시샘을 하고 말이다. 특히 수학학원이 잘되면 말이다. 또 집주인의 입장에서 가게세를 받는다면, 그 가게가 장사가 잘되면 세를 더 받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온갖 핑계를 다 대면서 말이다.

그러한 자기 자신의 욕망과 욕심에 대해서 자기 스스로도 깜짝 깜짝 놀라곤 하는데, "이런, 내가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나"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것은 아무리 후회를 하고 반성문을 써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 돌아서서 그런 짓을 또 하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게 기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차라리 반대로 나가면 되는데, 자기가 어느 정도까지 개판인지 말이다. 기회가 되면 한번 실습을 해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보면, 아마도 여러분이 예상한 것보다 더 개판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니 말이다. "이 정도 했으면 밑바닥이겠지" 라고 여기겠지만, 그러나 그 순간에 더 엉터리이고 개판이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얼마나 개판인지를 잘 알기 때문에, 우리의 의사를 전혀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따로 왕을 세우신다는 것이다. 그분이 누구인고 하니, 18절 이하에 보면 나오는데, 찾아서 읽어보자.

◈ 예수님은 은혜의 왕 !!

(롬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롬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롬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이렇게 예수님은 은혜의 왕인데, 그것은 우리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인데, 그 예수님이 은혜의 왕 노릇을 함으로 말미암아서, 가수왕이 아니고, 요리왕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영생에는 전혀 우리의 행함이 포함될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이 영생은 오로지 은혜 때문에 주어진 것이지, 즉 전적으로 예수님 때문에 준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들의 행동여하에 따라서 주어진 것이 아니고 말이다.

◈ 인간은, 죄를 벗어나지 못하듯, 은혜도 벗어나지 못해 !!

여기에 대해서 "그렇다면 목사님, 우리가 믿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라고 질문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저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과연 여러분은 죄를 짓다가 짓지 않을 수가 있는가?" 라고 말이다. 당연히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분이 왕이기 때문에, 즉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어버리면, 우리 마음대로 믿고 안 믿고,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믿게 되어있는데,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말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안 믿고는 못 견디게 하시는데, 즉 우리가 골라잡은 메시야가 아니고, 그와 반대로 메시야가 우리를 골라서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빼도 박도 못하는 신세인데, 마치 충성스런 왕의 신하처럼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왕의 하수인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구약의 다윗을 통해서 설명을 한다는 것이다. 다윗이 정말 그러한지, 여기서 시편 51편을 보겠는데, 제가 강의 처음부터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은 마귀의 시험이니 말이다. 그리고 자기 인생을 책임지려고 하지도 말고 말이다. 그렇게 책임을 질 수도 없지만, 설령 진다고 해도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시편 51편에 대해서 !!

이 시편 51편은 다윗은 기록한 것인데, 무슨 일이 있을 때 기록한 것인고 하니, 성경에 보면 소제목 비슷하게 적어놓은 게 있는데, 거기에 보면 "밧세바와 동침한 후에 선지자 나단이 나타났을 때" 라고 되어있다는 것이다.

(시 51:1)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시 51:2)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시 51:3)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시 51:4)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6)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시 51: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시 51:8)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시 51: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그렇다면 다윗이 바세바와 동침한 것은 분명히 죄가 틀림없는데, 여기서 선지자가 나타난 것은 잠시 뒤로 미루고, 즉 "밧세바와 동침한 후에" 라고 했다면, 그렇게 되면 과연 다윗이 구원을 받았겠는가?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면 말이다. 아마도 다윗이 반성을 했으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지금 이것이 반성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 다윗은 반성이 아니라 !!

이렇게 다윗이 죄를 지은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면 여기에서 반성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윗은 여기서 자기가 죄를 지은 차원이 아니라, 자기는 아예 처음 태어날 때부터 죄악 덩어리 가운데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로 죄가 때가 되어서 발작(?)을 해서, 자기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로마서 7장의 이야기인데, 그런데 사람들이 이러한 점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이다. 즉 다윗이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들어있던 잠재되어있던 바로 그 죄가 때가 되매 다윗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했다는 것이다. 자기 속에 다른 무엇이 있어서 말이다.

로마서에는 그것을 "기계(契機)를 타서(?)" 라고 하는데, 즉 그것이 계기(동기)가 되어서 다윗이 그렇게 사고를 치게 되었다는 말이다. 자기 속에 있는 자기도 모르는 놈이 그 정체를, 즉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는 말이다. 자기가 도저히 감당도 못하는 놈이 말이다.

(롬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여기서 다윗의 놀라운 점이 무엇인고 하니, 다윗이 자기의 죄를 반성한 게 아니라, "내가 누구인가?" 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말인데, 그러면 이것이 무슨 뜻인가? 나단 선지자가 미리 온 것이 아니라, 즉 밧세바와 동침을 하려고 하는 순간에 온 것이 아니라, 나단 선지자는 이미 일이 다 저질러지고 난 다음에 왔다는 것이다.

◈ 다윗의 착각 - 그래도 내가 왕인데 !!

그것은 바로 다윗 자신이 그동안 자기가 왕이면서도 자기가 누구인지를 몰랐다는 것인데, 즉 자기가 잘나서 나라꼴이 잘 되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즉 "내가 제대로 잘만 하면, 내 책임 하에서 백성들이 잘될 것이다" 라고, 그렇게 큰 착각을 했다는 말이다. "내가 가장인데, 내가 행동을 똑바로 하면 자식들이 잘 될 것이다" 라고 말이다.

지난 수요일에 사도행전을 설교했는데, 11장에 보면, 성령님에 이끌려서 '아가보' 라는 사람이 "천하에 흉년이 들리라" 라고 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신자들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하는 말이 "내가 신앙생활을 잘못해서 이 지역에 흉년이 들었구나. 평소에 기도를 좀 더 많이 할걸" 이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행 11: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행 11: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행 11: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행 11: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 질문 - 하지만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나요? 특히 자녀교육의 경우에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물론 우리는 지배를 받는데, 하지만 그 환경보다도 더 강한 분이 계신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그 속에 본인도 모르고 부모도 모르는, 뭔가가 또 들어있다는 말이다. 또 어떤 결핍이 있는 가정이라고 해도 얼마든지 주어진 환경 가운데 감사하면서, 또 자기를 낮추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정들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적인 행복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단 선지자가 다윗이 죄를 짓고 난 다음에 찾아옴으로 말미암아서, 이 다윗이 왕이 된 것은 자기가 착해서도 아니고 성실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구원시켜줌으로 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다윗의 그 구원을 통해서 "나는 죄인입니다. 그래도 구원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다윗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편 51편의 내용인데, 그런데 여기 마지막 18절과 19절 말씀에 보면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니, 사람들이 이 부분을 잘 놓치는데 말이다. 여기 18절에 보면, '시온'이 나오는데, 그 시온이 과연 무엇이냐는 것이다.

(시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성을 쌓으소서
(시 51: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저희가 수소로 주의 단에 드리리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대변하는 것인데, 즉 주의 은택(은혜)으로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아달라는 것이다. 그러니 다윗이 하는 말이, 자기가 잘난 왕이기에 예루살렘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직접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자기는 죄인에 불과하고 말이다.

◈ 다윗은, 죄인의 대표자 !!

그렇다면 이 다윗은 무엇인가? 죄인의 대표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인 동시에 말이다. 그렇게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대변해서, 즉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제쳐놓고서 다윗을 대표자로 세워서 그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물론 백성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다 죄 가운데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인인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우리가 바로 주께서 원하시는 것이 상한심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점인데, 그것을 믿게 된 것이 오직 주님의 은혜라는 말이다.

이 정도로 해놓고 이제 사무엘상으로 넘어가겠는데, 그렇다면 신약 때는 누구인고 하니까, 예수님을 통해서, 그리고 구약에서는 노아시대에는 노아를 통해서, 모세시대에는 모세를 통해서, 그리고 이렇게 사무엘상에 들어오면 다윗시대가 되는데, 그때는 다윗을 통해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 사울과 다윗이 공존함으로서 예수님 시대를 !!

그런데 이렇게 다윗이 나타나기 전에 정말로 인간들이 원하는 왕이 있었는데, 그 이름도 유명한 '사울' 이라고 말이다. 즉 사울은 인간들이 원했던 왕이고, 반면에 다윗은 하나님이 직접 심어준 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명의 왕이 동시대에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 시대를 보여준다는 말이다.

그 당시 백성들의 생각에는, 자기들이 생각해주는 왕을 인정해주면 안심을 하겠다는 것인데, 하지만 나중에(?) 하나님은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내가 버리기 위해서 사울을 택했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울은 그야말로 환장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버리기 위해서 자기를 택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인간들의 의견을 받아서 하나님 나라가 운영되는 것이 아닌데, 그런데 인간들은 알던 모르던 살아가는 것이 답답하니, "하나님, 우리에게도 왕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그래, 알았다. 내가 왕을 줄게" 라고 해놓고는 버릴 왕을 주었다는 것이다.

◈ 결국은, 하나님의 승리 !!

다시 말씀드리겠는데, 사울 왕 때에 다윗도 같이 있었는데, 골리앗이 처음에 누구와 싸움을 붙었는가? 사울하고 전쟁을 했는데, 그런데 도중에 소년 다윗이 끼어 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울은 자기 힘으로서 골리앗을 이기려고 끙끙거리는 반면에,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데, 그러니 다윗이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승리한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골리앗을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사울도 물리쳐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골리앗도 적이고 사울도 적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왕은 여전히 하나님만이 왕이신데, 하지만 사울이 호락호락하게 자기의 왕 자리를 포기하겠느냐는 것이다. 택도 없는, 즉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고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을 왕으로 삼으니까, 그때부터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고 하니,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사울은 결국 악마의 종이었음이 보여주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대 성직자들 !!

이것을 좀 어렵지만 예수님 당시의 신약시대로 이야기하자면, 예수님이 계시고 또 유대인 성직자들이 있는데, 여기서 백성들은 모두 유대인 성직자들을 따라갔는데, 물론 예수님은 다윗처럼 오셨고 말이다. 그렇게 되니 유대인 성직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는데, 실제로 죽이고 말았는데, 그렇게 해서 벌어진 사건이 바로 '십자가' 라는 것이다. 요즘 올림픽을 보니 이 십자가가 얼마나 많은지, 선수들 대부분이 목에 십자가를 걸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십자가는 그런 악세사리가 아니라, 그 십자가 속에는 진짜 왕이신 예수님의 죽음이 들어있는데, 그분이 바로 은혜의 왕이고, 용서하심의 주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사람들은 가만히 두지 않고 자기들의 성질대로, 즉 자기의 행함대로 예수님을 제쳐버리고 자기 쪽으로 나아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흔적이 십자가 속에 다 들어있다는 말이다.

◈ 자기를 자꾸 뒤돌아보면 미워할 거야 !!

아무튼 제가 여러분에게 부탁하는데, 그러니 너무 자기의 행함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어제는 착한 일을 10개 했는데, 오늘은 20개나 했구나" 라고 하지 말고, 오히려 그와 반대로 자기가 나쁜 짓을 얼마나 했는지 한번 살펴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나쁜 짓을 점점 더 늘어나는데, 왜냐하면 말씀을 알아가면서 나쁜 짓이 무엇인지 점점 더 알게 되고, 그렇게 해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쁜 짓을 100개를 하든 200개를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그런데 인간은 "아, 어제 내가 나쁜 일을 하나 했는데, 그것 때문에 벌을 받지 싶다" 라고 하면서 괴로워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마귀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데, 너무너무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는 말이다. 물론 마누라에게 깨지는 것은 할 수 없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착한 일을 하든 악한 일을 하든, 거기에 의미를 두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사울 왕은 구원을 받았나요? 신약의 가롯유다와 역할이 비슷해 보이는데 말입니다.

사실 그것은 우리가 알 수가 없는데, 물론 가롯유다는 사탄의 종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가 있는데, 또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울은 악신이 들려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성신이 들었다가, 또 악신이 들었다가, 그렇게 일시적으로 되었는데, 신약에서처럼 성령이 영원토록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구약에서는 그렇게 쓰이는 역할에 따라서 되는 것이기에, 제가 감히 이야기할 수가 없는데, 마치 광야 40년 생활에서 죽었던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듯이 말이다. 즉 그들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엑스트라들이니 말이다. 그들이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는 것은 하나님 손에 달린 것이니, 아무도 이야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질문 - 가롯유다도 그렇게 볼 수 없나요?

가롯유다는 처음부터 지옥에 가라고 그렇게 예수님 옆에 붙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했는고 하니, "니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인데"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아무튼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죽는다" 라고, 지금 그렇게 정리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은 말씀을 지키지 못하므로 죽어야 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이 중간에 끼어 들어서, 그 약속의 맹세대로 택한 자는 예수님을 믿게 되는데,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그것은 전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그야말로 기적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을 어떻게 인간이 만들어낼 수가 있다는 말인가? 물론 교회에 다니는 것은 말고 말이다. 교회에는 얼마든지 자기 힘으로 다닐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기적이 일어나면,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 조시로(?) 밀어 부치는데, 즉 성령이 떠나지 않고서 말이다.

◈ 다시 사무엘상을 살펴보면 !!

다시 사무엘상을 살펴보면, 처음에 사무엘이 등장해서 예언을 하는데(??), 물론 한나도 예언을 하고 말이다. 그 예언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고 하니, 장차 앞으로 다윗이, 즉 기름부름을 받은 왕이 등장한다고 되어있다는 것이다. 사무엘에게 그렇게 예언이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린 사무엘은 아직 이것을 모르는데, 왜냐하면 그는 아직 엘리 제사장이 버티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 사무엘은 예언을 하면서도, 이만큼을 '붕' 하고 날아서 다윗이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만 사무엘은 자기가 맡은 바 자기 할 일을 다했을 뿐이라는 말이다.

◈ 왜 엘리 제사장이 잘리는가?

그렇다면 어린 사무엘과 늙은 엘리 제사장 가운데서 누가 잘리는가? 엘리 제사장인데, 그러면 그가 잘린 이유가 무엇인가? 지난 시간에 강의를 했는데, 그가 자식교육을 잘못시켜서 잘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존중히 여기지 않았다" 라는 것인데, 즉 하나님은 자기를 존중히 여기지 않는 자는 하나님도 역시 그를 존중히 여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엘리가 그렇게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은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 그렇게 자식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쓰일 음식에다 먼저 손을 대고, 또 성전에서 수종을 드는 여자들과 행음을 하면서 놀아났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은 결과로서 말이다.

◈ 자식교육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

그런데 이것이 굉장히 어려운데, 왜 그런고 하니까, 사무엘에게도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도 역시 개판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그냥 일률적으로 "역시 부모의 자식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합니다" 라고 이야기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세웠는데, 그렇다면 이유 없이 다른 놈들은 다 비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가 나타나면, 그렇데 않은 놈들은 자진해서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이 잘잘못과는 상관이 없이 말이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알아듣지를 못하는데, 그래서 질문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목사님, 사울은 회개했는데 왜 잘렸습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다윗 왕은 회개를 하니 받아주는데, 왜 사울은 받아주지 않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 찍힌 사람인데,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찍혀서 왕이 되었으면 다른 똥차들은 비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 개개인의 잘남이 문제가 아니고 !!

무슨 말인고 하니, 지금 사울이 잘났는지, 다윗이 잘났는지, 그런 개개인의 잘남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께서 일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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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