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0-사사기1(강의정리)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10-사사기1(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43)
04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10 - 사사기1
04,07,04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십자가 - 접근하면 발포한다 !!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의 종교성을 알아야 하는데, 바로 그러한 인간의 종교성 때문에 예수님께서 걸림돌로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걸림돌인데, 즉 '십자가=걸림돌' 이라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십자가에 대해서는 "야, 여기에 십자가가 있다. 우리 같이 따먹자" 라고 할 수 없는데, 마치 유치원생들이 사탕을 먹듯이 말이다. 이렇게 "어, 이게 뭐지? 왜 이래?" 라고 할 수밖에 없는 걸림돌이란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모두가 다 믿지 못하도록 뭔가 장치를 해놓았는데, 즉 "접근하면 발포한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되니, 십자가를 안다고 하면서도 십자가에는 접근하지도 못하고 먼발치에 서서 기념사진이나 찍고 그만 돌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십자가 안에는 전혀 들어가지도 못하고 말이다. 그렇게 해놓고는 십자가를 안다고 사기나 치고 말이다.
◈ 피의 증인이 두려운 인간들 !!
그런데 십자가에는 피가 흐르고 그 십자가에 다가가면 피가 발리게 되어있는데, 그것이 겁이 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피를 묻히게 되면 피의 증인이 되어야 하니 말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 것이 다 박살이 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무섭고 두려우냐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에 결코 제정신으로는 다가가는 법이 없는데, 다만 십자가를 멀리서 바라보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관광코스로 잡아놓기는 하지만, 그러나 다가가지도 못하고 기념사진이나 한 장 찍고는 그만 돌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 질문 - 마태복음에 보면 인자를 거부하면 용서를 받아도, 성령을 거부하면 용서받지 못한다고 되어있는데,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요?
(마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인자(人子)' 라는 개념 속에는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곡해를 당하는 요소가 들어있는데, 즉 인자가 버림을 당하도록 되어있다는 것이다. 즉 버림을 당하는 것이 바로 인자의 운명이란 말인데, 구약에서 인자를 고난받는 분으로서 예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아들' 이란 의미가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구약의 예언이 고난받는 분이니, 신약에서 인자가 되시는 예수님이 고난을 받는다는 말이다.
◈ 나자리안 그레고리의 삼위일체론 !!
그리고 성령을 훼방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 성령의 훼방인데, 왜냐하면 성령님이 단독적으로 하시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나자리안 그레고리의 삼위일체 이론인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일을 하실 때는, 따로 따로 하시는 것은 없고 모두가 다함께 일을 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이론에 의하면 성령께서도 단독적으로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증거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령을 훼방한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에 의심을 품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하신 일을 말이다.
◈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그리고 신명기 !!
이제 우리 교재 63페이지를 보겠는데, 지금부터 그동안 한 것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그리고 신명기의 각각 앞부분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 출애굽기는, 모세와 그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잘 부합되지 않는 신앙의 차이가 그대로 대조를 이룬 채 애굽에서 빠져 나왔으며, 백성들의 노예근성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희생이라는 방식으로 언약을 체결하게 된다는 점을 보이고 있는 책이다.
◈ 출애굽기 - 하나님이 달라 !!
이렇게 모세와 그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서로가 잘 부합되지 않는 신앙의 차이가 있는데, 그것이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채로 애굽에서 빠져 나왔다는 것이다. 출애굽기에서 이것이 중요한데, 그렇게 신앙이 서로 잘 부합이 되지 않은 채로 애굽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 애굽이 바로 조금 전에 박 집사님이 말한 바로 그 세상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것 때문에 분통이 터지든지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아무튼 그러한 세상과는 점점 더 멀어져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멀어지니까 하나님께서 박 집사님과는 계약을 하지 않는데(ㅋㅋ), 서로 주고받고 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안 되니 말이다.
그렇게 점점 더 멀어져가면서 무엇을 느끼는고 하니, 자기가 분명히 더 옳은 일을 했는데, 그런데 왜 그만한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들이 생기게 된다는 말이다.
◈ 애굽의 하나님과 광야의 하나님 !!
그러므로 애굽에서 보았던 하나님과, 애굽에서 멀어져가면서 바라보는 하나님이 서로 다른데, 사실은 애굽에서 보았던 하나님은 가짜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정의롭고, 자기가 옳고 착한 일을 하면 '팍팍' 도와주는 그런 애굽에서 바라보던 하나님은 말이다.
그런데 애굽에서 멀어져 가면서 광야에 있으면서 바라보는 하나님은, 애굽의 잘못도 물론 지적하지만, 그러나 자기 자신들에게 있는 잘못도 그에 못지 않게 크다는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것을 느끼게 하는 하나님이 곧 광야에서 바라보는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기에서의 하나님의 차이점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교재 72페이지에 있는 레위기를 보자.
** 레위기에서 십계명의 실현불가능성을 보여주며, 인간의 구원에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를 보여준다. 즉 피 있는 제사는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인간을 평가하는 견해이며, 인간 편에서 볼 때는 하나님의 위엄이다.
십계명은 인간이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제가 누누이 강조했는데, "니가 이런 이런 것은 지키지 못하지?" 라는 의미에서 십계명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십계명을 들어다보면서, "아하, 나는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는구나" 라고 하는 것을 명심하는데서, 그렇게 하면서 피가 있는 제사의 가치가 더 부각이 된다는 말이다.
교인들이 이런 마음가짐으로 교회에 나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이것도 지키고, 저것도 지키자" 라는 마름으로 교회에 나오니, 남들도 괴롭고 본인도 역시 손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미워하는 것도 살인죄가 되니 그 어느 것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른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여기가 수학학원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이렇게 수학책들이 이렇게 있는데, 이것 중에서 그 어느 것이라도 풀지를 못한다면 그냥 가볍게(?) 놔두면 되는데, 하지만 "3번과 6번은 풀 수 있다" 라고 나오면 엄청 피곤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가 풀었다고 하는 3번과 6번도 엉터리로 풀었고 말이다.
신약에서 어떤 부자청년이 예수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자기는 십계명 중에서 9개를 지켰는데 그만 하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그 하나를 메우기 위해서 엄청 노력을 했다는데,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9개도 전혀 지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애굽에서의 가짜 하나님의 기준에서 자기가 지키고 맞춘 것에 불과하지 말이다.
(마 19: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 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하지만 인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기들이 다 맞춘 것으로 여겼는데, 그런데 광야에서 진짜 참된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까, 즉 십자가에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정말 제대로 된 하나님을 만나고 보니,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맞춘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중요하고, 그래서 피의 제사가 구원을 해준다는 말이다.
이제 교재 75페이지에 있는 민수기를 살펴보자.
** 민수기는 한번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서글픈 여정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들어가 살 만한 사람이 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곳은 비어있는 곳에 아니라 싸움이라는 것을 통해 쟁취해야 될 곳이기 때문이다.
◈ 민수기 - 서글픈 여정 !!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 한번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그렇게 40년 전과 40년 후가 쪼개지면서 실패한 사람들이 된다는 것이다. 즉 홍해는 건너왔지만 그 건너왔음이 실패로 끝나버린, 그러한 서글픈 여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실패를 했는가? 그들의 마음속에 진짜 하나님이 들어오지 않고, 과거 애굽에 있던 바로 그 하나님이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말이다. 그들이 특별히 어떤 나쁜 짓을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즉 애굽에서의 하나님을 자꾸만 잊지를 못하니 말이다. (아, 그때가 좋았는데!!)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데,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고 하니, "나 같이 못난 인간도 구원을 받는구나" 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렇게 잘난 나인데, 왜 소원대로 해주지를 않는가?" 라고 말이다. 즉 자기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하나님은 자기를 도와주지 않느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자기의 소원대로 해주는 하나님을 고수하다보니까, 결국 실패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가짐이 "이렇게 못난 놈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셔서 천국으로 넣어주시는구나" 라고 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그런 하나님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교재 81페이지에 있는 신명기를 살펴보자.
** 신명기는 받은 율법을 재천명함으로서, 인간에게는 구원받는 문제보다도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이 우선이라는 점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 신명기 - 왠지 고마운 하나님 !!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고 하니, 자기 구원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천국이 아니라, 천국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왠지 하나님이 좋고, 왠지 하나님이 반갑고, 왠지 하나님이 기다려지고, 왠지 하나님이 그렇게 고맙다는 말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든 일에 고마움으로 일을 하면, 모든 것이 다 고맙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평불만을 가지고 일을 하면 모든 일에 다 불평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고맙게 여기고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한가??)
마누라가 성질이 더럽고 아무리 자기 마음대로 생겼어도, 고맙게 여기면 그녀가 하는 것이 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것이다. 물론 타주는 커피도 맛있고 말이다. 그런데 불평이 넘치면 아무리 맛있는 밥상을 차려주어도 인상을 쓴다는 것이다. 하는 짓마다 다 밉고 말이다.
장사를 해도 손님이 막 들어오려고 하는데, 그런데 옆집에서 호객행위를 해서 데리고 가버리면, 그야말로 한바탕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일로 고소도 하고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손님이 발길을 돌린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면, 그 얼마나 고마우냐는 것이다.
◈ 잘했군, 잘했어 !!
왜 옛날 동화책에 보면, 어떤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무엇을 좀 사오라고 시켰는데, 그래서 할아버지가 시장에 나가서 물건을 샀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꾸고 또 바꾸고, 또 바꾸고 해서 결국은 썩은 사과를 사서 오게 되었는데, 그래서 누군가가 이것을 보고, 이제 저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쫓겨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이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물건을 바꾸었다고 할 때마다 하는 말이 '잘했군'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노래가 하춘화의 그 유명한 '잘했군, 잘했어' 인데, 정말로 그 노래는 이 동화에서 유래를 했다는 말이다. 물론 그것은 법적으로(?)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아예 처음부터 잘한 것으로 여기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 영감?
* 왜 불러?
* 뒤뜰에 뛰어 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소?
* 보았지.
* 어쨌소?
* 이 몸이 늙어서 몸보신하려고 먹었지.
* 잘했군, 잘했어 !!
*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이런 것이 바로 고마움인데, 이 신명기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그러니 자기 구원에 너무 집착할 것이 아니라, 고마우신 하나님이 고맙게 인도하신다는 것에 대해서 고맙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신명기에서 말하는,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심령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 넘치는 천국인데, 오직 사랑과 사랑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저는 어릴 때는 교회에 다니지 않아서 유행가 가사에 관심이 굉장히 많았는데, 물론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는 그냥 시시하고 천박한 것으로 여겼지만, 시시한 남녀간의 사랑이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다시 그 가사들을 보면, 그 대상을 주님이라고 생각하니 얼마나 가사들이 좋은지 말이다.
◈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왜냐하면, 사랑이 있으면 항상 좋은데, 그래서 사랑이 없으면 언제나 우울하다는 말이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결혼하는 것도 사랑 때문인데, 물론 '돈, 돈' 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없으니 그 대타로 나온 것이고 말이다(정말??). 진실로 사랑을 하면 돈도 극복이 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랑을 주님께서는 신명기를 통해서 보여주시고, 인도하셨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먼저 가서 약속의 땅에서 기다릴 테니, 너희들 앞에 홍해가 있든지, 요단강이 흐르든지, 여리고 성이 막아서든지 간에 내가 있는 곳에 오겠다면 길은 열린다" 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믿는 것을 두 글자로 '믿음'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무화과나무에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주님이 곳으로 인도함을 받으면, 그 구원의 주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겠다" 라고 했는데, 그것이 뭐가 그렇게 기쁘고 즐거우냐는 것이다. 고생길이 훤한데 말이다. 그것은 바로 당겨주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 이 전도사님, 이번 수요일에 설교를 !!
제가 교회에서 처음으로 정식(?) 설교를 한 것을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데, 영주동부교회에서 전도사 시절로 있을 때인데, 로마서 3장을 설교했다는 것이다. 당회장 목사님이 "이 전도사님, 이번 수요일에 설교를 한번 해보세요" 라고 해서, 그래서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말이다.
◈ 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랑이고 의(義)입니다 !!
제가 설교원고를 존댓말로 적어서 몽땅 다 외웠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주신 사랑이고 의(義)입니다" 라는 것을 설교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제대로 된 정답인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헌금이나 봉사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義), 즉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 그것을 먼저 알고, 즉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먼저 알고 무엇을 달라고 해도 하자는 말이다. 엉뚱한 하나님을 붙들고 달라고 하지 말고 말이다. 그렇게 설교를 30분 동안을 하니, 교인들은 '멍'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목사님이 듣고서 "전도사님, 설교를 잘하네요" 라고 격려를 해주었는데, 문 목사님인데, 지금은 중국에 가셨다는 말도 있고 말이다. 그렇게 격려를 해주니 그때부터 용기가 났고, 또 그 당회장 목사님이 설교를 할 기회를 자주 주셔서, 일일이 원고를 다 적고 외워서 그야말로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결코 원고를 보지 않고 교인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감회가 새로운데, 아무튼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하나님에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거창한 봉사나 헌금이나 전도 등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의(義)이고, 자신이 준 사랑이라는 것이다.
◈ 유행가 가사에도 은혜가 ??
그런데 유행가 가사를 가만히 보면, 물론 대부분이 남녀간의 사랑인데, 이러한 사랑에도 돈을 가지고 사랑을 농락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천박한(?) 사랑이라고 할지라도 돈을 가지고 상대방을 농락하거나 이용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저 여자가 돈이 좀 있으니, 실컷 데리고 놀다가 차버려야지" 라고 말이다. 대중가요도 그런 내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수 현철은 '사랑은 나비인가 봐' 라고 했는데, 얼마나 아름다우냐는 말이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라는 것도, 그 가사내용이 얼마나 좋으냐는 것이다. 아니 여기에 무슨 돈이 들어가고, 흥정을 하고, 또 거래를 하느냐는 것이다. 그냥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좋은데 말이다. 이런 입장에서는 오히려 찬송가 가사보다도 대중가요가 더 낫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선희의 'J에게' 라는 것도 있는데, 혹시 J가 바로 예수님이 아닌지 말이다. (ㅋㅋ)
그러므로 '신명기' 라고 하는 것은, "제발 자기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지 말고, 사랑으로서 내가 먼저 가서 있을 테니까, 너희들은 내가 있는 곳으로 오기만 하면 길은 '좍' 열리게 되어있다" 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의로움으로, 사랑으로 인도를 하시니 말이다.
◈ 누가 복 있는 사람인가?
여기서 시편 1편을 보겠는데, 여러분들이 쓸쓸하고 외로울 때마다 이 구절을 보시면 되는데, 어지간한 괴로움은 모두 해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저의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어느 구절에서 기쁨이 오는고 하니, 여기서 복이 있다는 것은 커미션을 챙겨서 그런 것이 아니고 말이다.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 1: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 1: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시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기 마지막 6절에 보자면,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이미 결정된 현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악인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는데, 하지만 말씀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들, 즉 복이 있는 자들은 아는데, 아무리 악인들이 발광을 해도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의인이' 라고 할 때, 그 '의(義)' 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가?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지 결코 율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이 곧 제사법인데, 그래서 '피의 제사'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여러분, 삼촌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까?
제가 아까 말한 영주동부교회 전도사 시절에 로마서 3장을 설교하면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 설교책에 나온 예화가 너무 좋아서 그대로 따와서 들었는데, 즉 "여러분, 여러분 삼촌이 십자가에 죽었습니까? 아니면 이모가 죽었습니까? 여러분의 하찮은(?) 목숨을 위해서 죽으신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바로 그것이 사랑이고, 그 사랑을 알고 감사하고 있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라고 말이다. 너무나 명설교(?) 라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말이다. (ㅋㅋ)
아무튼 여기서 말하는 '의'는 율법성취를 통해서 나오는데, 그 율법성취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즉 행함이 아니라 율법 안에서 보여주는 사랑, 그 사랑이 바로 의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의인의 회중에 들고, 그렇지 않으면 광야에서 축출이 되어서 다 뽑혀나가는데, 그것이 바로 신명기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 축복과 저주의 그리심과 에발산 !!
지금까지 공부한 것은 이렇게 정리를 해주시면 되고, 오늘은 여호수아를 한번 해보자는 말이다. 지난번에 '할례'는 했지 싶은데, 그리고 이 여호수아서에 그리심산과 에발산이 나오는데, 이 에발산 밑에 하나님의 제단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심산은 축복산이고, 에발산은 저주산인데, 그러니 사람들은 당연히 축복의 산인 그리심산에 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축복의 산인 이 그리심산에는 하나님의 제단에 피가 없는데, 그러니 피가 있는 산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저주가 있는 곳에 가야지만 용서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맞은 편에 있는 축복의 산에서 축복이 날아온다는 말이다. 이것이 여호수아서 8장에 나오는데, 그래서 나중에 이 제단이 이동을 하게 되는데,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베풀어주시고 말이다.
(수 8: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유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으니 이는 이왕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한 대로 함이라
◈ 여호수아 - 약속은 변함없이 이루어진다 !!
여기서 여호수아서의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그 내용을 한 마디로 뭐라고 할 수 있는고 하니까, 조금 어려운 내용인데, "모세에게 약속한 것은 비록 모세가 없더라도 그대로 이루어진다" 라고 하는 것인데, 바로 그것을 여호수아가 증명해낸다는 것이다. 즉 모세는 지금 죽고 없더라도 모세에게 주신 약속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여호수아서 전편에 흐르고 있는 내용이라는 말이다.
◈ 하나님의 허수아비가 될 때 !!
그리고 이 여호수아서에 있는 모든 전쟁은 사실 모세에게 이미 다 예고를 한 것인데, 그러면 아마 "목사님, 그렇게 되면 여호수아는 허수아비입니까?" 라고 질문하지 싶은데, 물론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 여호수아가 허수아비가 되어야만 여호수아가 승리하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허수아비가 될 때만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허수아비가 말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런 하나님의 허수아비를 싫어하지 안 되고 오히려 영광스럽게 여겨야만 하는데, 여호수아가 어떻게 승리했는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허수아비, 다른 말로 모세언약의 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승리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 이제 신발을 벗고 !!
그것이 어디에 나오는고 하니, 여호수아서 5장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전에도 여러 번 이야기를 했지만 다시 한번 더 살펴보면, 이것이 여호수아서의 핵심부분에 해당하는 것이니 말이다. 여호수아서 5장 13절 이하를 보자.
(수 5: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수 5:14)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수 5:15)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여기 13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 가는 길에서 칼을 빼고 선 한 사람을 만나고서 하는 말이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라고 하는데, 아마 여호수아는 자기가 전쟁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러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이것이 어디서 까부노? 신발을 벗어라" 라고 하는데, 그래서 여호수아가 얼른(?) 벗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신발을 벗는다는 말은 "이제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라는 것인데,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제부터 자기를 앞서서 인도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군대장관을 따라나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군대장관은 천사인데, 그러면 이 천사는 누구의 말을 듣겠는가?
물론 이 군대장관은 하나님의 종이지만, 특별히 여기에서는 '언약의 종' 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모세언약의 종이라는 말이다. 이미 민수기에서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언약한 것이 있는데, 그 약속은 어떤 경우라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여호수아 11장 20절을 살펴보자.
(수 11:20)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
◈ 모세에게 명하신 약속, 그대로 !!
여기에 보면 마지막 부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라고 되어있는데, 지금 모세가 어디 있는가?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그만 죽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세에게 내린 하나님의 언약은 어떻게 되는고 하니까, 그 후손에게 그대로 그대로 모두 다 실천에 옮기게 된다는 것이다. 약속대로 말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다시 오겠다" 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지금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면 반드시 다시 온다고 하는 것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다시 재림하셔서, 즉 자기 백성들을 다시 건지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고 하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시인할 것이고, 나를 부인하면 나도 저를 부인할 것이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마 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마 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 달란트가 비유가 아닌, 누가 나의 종인가?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어떤 내용이 있는고 하니까, 어떤 주인이 있었는데, 그 주인이 타국에 출장을 가면서 종들에게 다섯, 둘, 그리고 한 달란트를 맡겼다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달란트 비유(?)' 라고 하는데, 이것은 정말이지 주인이 없더라도 주인의 약속을 믿고 일을 잘 하고 있는 자가 이 셋 중에서 누가 주인을 사랑하지를 확인하는 비유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누가 진짜 종이고 엉터리 종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주인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니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주인이 있던지 없던지 간에 열심히 일을 하는데,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개판(?)이라는 것이다. 주인이 없으니 이전과는 다르게, 즉 자기의 판단으로, 자기 마음대로 일을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주인이 돌아와서는 "개판을 친 놈은 나와?" 라고 해서 처단(?)을 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마 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마 25: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 질문 - 그러면 기존 교회에서 소위 '달란트 비유' 라고 하면서 하는 해석은 잘못된 것인가요?
그렇게 뭔가를 남겨야 된다고 하는 놈들은 사기꾼이라고 보면 되는데, 거기서 예수님의 사랑이 나와야지 엉뚱한 소리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평소에도 그렇게 받아서 일을 성실히 했다는 것이다.
◈ 누가 신랑을 진정으로 사랑하는가?
그리고 그 앞에 나오는 '열 처녀 비유'는 무엇인고 하니,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한 부류는 신랑이 없다고 여기는 신부들이고, 또 다른 부류는 신랑이 있다고 여기는 신부들이란 것이다. 각각 다섯 명씩 말이다. 그래서 신랑이 없다고 하는 신부들은 나중에 신랑이 올 때 기름을 준비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신랑이 항상 자기와 함께 있다고 여기는 신부들은 기름을 준비해놓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신랑이 막상 오자 뒤늦게 허겁지겁 기름을 준비하지만,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름을 준비했다고 해도, 신랑이 하는 말이 "치아뿌라. 니하고는 끝이다" 라고 말이다. 즉 자기들 마음대로, 자기들 편한 것만 생각하는 악한 신부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랑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니 이러한 비유들이 전부 무슨 의미인고 하니, 그리고 앞에 비유가 또 있는데 무엇인고 하니까, 누군가가 예수님을 믿는 어린아이를 먹고 입히고 보살펴주었다면, 그런데 그것이 나중에 보니까 어린아이에게 한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에게 했다는 말이다. (그것은 18장에 있는데??)
(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 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이것은 예수님께서 재림할 때까지의 그 기간을 두고서 이야기한 것인데, 즉 예수님께서 승천하고 난 다음에 재림 때까지는 그 기간이 좀 있는데, 그런데 그 기간에 사람들이 개판이라는 것이다. 즉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용하고 예수님을 등쳐먹으려고만 하지, 정말로 예수님과 함께 함께 있고 싶어하는 자들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하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자기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멀찍이 다른 동네에 있는, 즉 지금 자기와는 당장에 상관이 없는 그런 자들은 다 추려내시겠다는 것이다.
◈ 기다림이 아니라, 신랑이 항상 있다고 생각하라 !!
* 질문 - 목사님의 해석이 이해가 되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식의 해석은 어떠한가요? "기다리는 자에게는 기회가 주어진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 해석은 용납할 수가 없는데,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기에 말이다. 일은 주님이 하시는 우리는 일을 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운전을 할 수 있어도, 그런 것을 한다고 하면 안 되고, 운전을 하다가 들여다 박아서 가는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여기 '열 처녀 비유'는 굉장히 쉬운 것인데, "신랑이 항상 있다고 생각하라" 라는 것이다. 자기 약혼자가 굉장히 보고 싶다는 것이다. 신랑이 오후 5시에 온다고 했는데, 그런데 너무나 좋으니 아침부터 설치기를 시작하는데, 그런데 문제는 이 약혼자가 싫은 신부 아닌 신부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신랑이 온다고 해도 별로 관심이 없고 오히려 귀찮아한다는 말이다. 물론 겉으로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벌써 그 마음가짐이 서로가 전혀 다른데, 그러니 예수님이 보시는 것은, 예수님이 없을 때, 즉 평소의 마음가짐이 어떠하냐는 것이다.
◈ 모래에 이름 쓰고, 얼굴 그리며 점찍고 ??
그것이 바로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대중가요에서 말하는 사랑인데, 가수 이수미의 '바닷가에서' 라는 노래가사를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그 얼마나 보고 싶었던지, 바다가에서 이름을 쓰고, 얼굴을 그리면서 눈과 코에 점을 찍는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은?)
그것이 바로 상대방에 대한 그리운 마음인데, 이런 그리운 마음이 없는 자는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전도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해도 사랑이 없으면 '꽝' 이란 말이다. 즉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분에 대한 그리움이 없으면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고 나서 자기가 얼마나 컴퓨터를 잘하든지, 운전을 잘하든지, 그런 게 전혀 문제가 아니라, 신명기에서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 곧 '사랑' 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에 대한 사랑이 없을 때는 결국에는 모든 것이 다 날아가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다름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이고 말이다.
◈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죽음의 현장에까지 !!
혹시 지난주일 오후설교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하나님이 죽으시는 현장까지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시는가? 그것은 바로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즉 "왜 이분이 이렇게 죽으셨는가? 아하, 이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구나" 라고 말이다. 즉 자기 목숨까지도 내어놓으셨는데, 바로 이런 사랑이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 여호수아서 - 붙이시매 전쟁 !!
여호수아서를 다시 더 한번 정리하면, 모세에게 이야기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그러니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완전히 주님에게 매인 종이 되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가 멈추어지면 그냥 더 공격을 하면 된다는 말이다. 캄캄해질 때까지 말이다.
이것을 두고 뭐라고 하는고 하니,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아주 독특한 용어인데, '붙이시매 전쟁'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복음을 아는 목사님들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말이다. (아닌가?) 그리고 구약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들은 이 '붙이시매' 이라는 단어를 제일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붙이시매 전쟁' 이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하고 싶지 않은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적들을 붙여주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냥 가만히 있는데 적들이 달려들어서, 그렇게 자기들이 덤벼들다가 자기들이 와장창 다 나가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이렇게 하나의 인물로 그려보면, 적군들이 "야, 여기에 이스라엘이 있다. 공격하라" 라고 해서 마구 달려드는데, 그런데 그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앞에 나오셔서 적들을 막아 서버리니, 적들은 그냥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여호수아서에도 나오고 또 사사기에 나오는데, 아무튼 이스라엘은 가만히 있는데 적들이 마치 찍찍이 쥐들이 달라붙듯이 그렇게 달려들어서 사정없이 붙었다가, 또한 사정없이 다 나가떨어진다는 것이다. 배 집사님은 가만히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시비를 걸 듯이 말이다. (ㅋㅋ)
◈ 난 가만히 있고 싶은데 !!
교회에서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어떤 사람이 질문하기를, "오늘 목사님의 설교가 어떠했지요?" 라고 하면, 그냥 자기는 자기도 모르게(?) "그게 설교인가요? 사기꾼이 하는 소리이지"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발끈해서 "아니, 사기라니요?" 라고 말이다. 이렇게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단들을 부추겨서 진짜 복음을 아는 사람에게 자꾸 들이밀고 부딪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적들을 공격하도록 말이다.
아마도 다들 이런 경험들이 있지 싶은데, 자기는 정말이지 그냥 가만히 있고 싶은데, 이야기를 하면 입도 아프고 말이다. 그런데 자꾸만 옆에서 입을 열도록 한다는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터지도록 해서 말이다.
* A : 김 집사님, 이번 남전도회 모임에 참석하세요?
* B : 저는 가만히 있기로 했기에 참석을 못합니다.
* A : 교회와 목사님에게 불만이 많아서 참석을 하지 않지요?
* B : 그거야, 당연히 불만이 있지요.
* A :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요?
* B : 저는 이제 입을 다물기로 했습니다.
* A : 아니, 왜 입을 다물어요?
* B : 목사가 사기꾼이니 그렇지요. 교인들도 그렇고요.
제가 과거에 교사로 있을 때 회식에 가면 술도 안 먹고 정말 가만히 있는데, 아가씨 다리도 안 만지고 아무튼 가만히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술을 마시면 안 됩니다" 라고 고함을 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자꾸만 시비를 건다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살아가면서 성도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방법은,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복음적인 문제가 난데없이 터진다는 것이다. 그때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고 보면 된다는 말이다.
◈ 석원태 목사의 일갈 !!
경향교회의 석원태 목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데, "김선일의 죽음은 개죽음이다" 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살아있을 때 살려달라고 빌었는데, 그것은 전혀 순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파문이 일어났는데, 온누리 교회의 하용조 쪽에서는 흥분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제가 리플을 달아놓았는데, 석원태 목사의 말은 개가 들었으면 참 욕들을 이야기라고 말이다. 아니 어느 개가 자기를 죽이려고 온 천사(?)를 보고 살려달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개는 주인이 죽이면 가만히 그냥 '캐갱' 거리며 죽는데, 그러니 개보다 더 못하다는 것이다. 사실 김선일 씨는 선교가 아니고 돈을 벌려고 간 것인데, 그러니 얼마나 섞는 냄새가 심하게 진동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 김선일, 그리고 스데반과 삼손 !!
아무튼 우리는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그 어느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 없는데, 참새가 한 마리 떨어지는 것도 말이다. 아니 스데반 집사가 죽을 때 살려달라고 했는가? 스데반 집사에게는 자기가 죽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붙이셨다는 말이다.
삼손의 경우에 그가 죽을 때 살려달라고 했는가? 죽는 것을 영광스럽게 알고 기둥을 벗삼아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삼손의 죽음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구원이 주어지는데, 그러니 이 '붙이시매 전쟁' 이라는 것은, 적들이 들어 붙게 되는데, 그러니 이스라엘이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적들이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누가 한 것인가?
◈ 전쟁은 모세언약에게 맡겨라 !!
그것이 바로 모세언약이 전쟁을 수행한 것인데, 그 언약대로 실현되는 과정 속에서 승리함이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는 주는데, 그것이 바로 '여호수아서' 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여호수아서나 사사기를 보고서 "야, 이스라엘 잘한다. 최고다"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사기 4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여자 사사 '드보라' 라고 있는데, 군대장관인 '바락' 에게 전쟁에 나가라고 하니까, 이 사내놈이 그만 겁이 내서 나가를 못한다는 것이다.
* 드보라 : 바락 장군, 지금 전쟁에 나가세요.
* 바 락 : 예? 전쟁터에 말입니까?
* 드보라 : 그래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 바 락 : 그래도?
* 드보라 :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당신 손에 붙였기 때문에, 무조건 승리합니다.
* 바 락 : 그러면 당신이 저와 함께 가면 가겠습니다.
* 드보라 : 이제 당신은 남자 망신(?)은 다 시킨 줄 아세요.
* 바 락 : 감사합니다.
* 드보라 : 감사하기는, 당신은 이제 이 일로는 영광이 없어요.
* 바 락 : 그래도 감사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해서 전쟁에서 승리를 하기는 했는데, 그 영광은 누가 다 가지고 가는가? 적장 '시스라'는 정작 '야엘' 이라는 너무나도 평범한 아줌마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마는데, 그것도 얼굴에 그만 비참하게도 말뚝에 박혀서 말이다. 그렇게 적장이 죽고 난 다음에, 즉 일이 다 마무리가 되고 난 다음에 시스라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 이미 한 승리를 만끽하도록 !!
이것은 바로 인간의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데, 구원받은 자들에게 이미 한 승리를 만끽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끽하게 하시는데, 때로는 이단들을 붙여서 시비를 걸게 하고 말이다.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될 때 상대방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에게 온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구나" 라고 여기면 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붙이셔서 일어난 일로서, 아무튼 우리는 복음만 전하면 된다는 말이다.
◈ 여호수아서 24장에서 왜 요셉의 뼈가 !!
그리고 이 여호수아서 끝에 보면 중요한 대목이 나오는데, 보통 사람들이 잘 놓쳐버리는 부분으로서, 여호수아 24장 32절과 33절의 말씀을 살펴보자.
(수 24:32)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이끌어 낸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 곳은 야곱이 세겜의 아비 하몰의 자손에게 금 일백개를주고 산 땅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수 24:33)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도 죽으매 무리가 그를 그 아들 비느하스가 에브라임 산지에서 받은 산에 장사하였더라
여기 32절에 보면, 그야말로 갑자기(?) '요셉의 뼈'가 등장하는데, 지금 여호수아서를 마치는 부분인데, 왜 요셉의 뼈가 나오느냐는 말이다. 이것이 방금 제가 이야기한 부분인데, 이 '요셉의 뼈' 라는 것은 달랑 요셉의 뼈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마치 그림자처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의 약속이 요셉의 뼈라는 것을 앞장세우고 뒤따라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요셉의 뼈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의 약속이 보이는 요셉의 뼈를 통해서 동행해서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 요셉의 뼈는 원래 어디에 묻혀 있는고 하니, 요셉이 애굽에서 죽었으니 애굽에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요셉이 죽을 때 유언을 하기를, 자기 뼈를 애굽 땅에 두지 말고 들고 나가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 요셉의 뼈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함께 !!
그러니 이 요셉의 뼈에는 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약속의 땅을 차지한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함께 묻혀서 오는데, 그래서 여호수아가 요셉의 유언대로 애굽에서 들고 나와서 세겜 땅에 묻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하, 맞네. 하나님의 약속은 빈틈이 없구나"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창 50:24)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창 50: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 제군들, 하나님의 약속을 믿겠는가?
여호수아서 24장에서 여호수아가 전쟁에서 승리를 한 다음에 일장 연설을 하는 것이 나오는데, 무슨 내용인고 하니, 아브라함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약속의 땅으로 왔는데, 그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있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너희들이 아무리 타락하고 애를 먹여도 하나님의 약속은 그 열조에게 주신대로 다 이루어진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 백성들에게 "여러분,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겠는가?" 라고 하니, 백성들이 "예, 믿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자 여호수아가 약이 올라서(?) "안 믿을 거지?" 라고 하니, 백성들이 "아닙니다. 믿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이것을 세 번이나 반복한다는 것이다. 마치 군대에서 "너희들이 이 고참을 무시하지?" 라고 하면, 졸병들이 "절대로 아닙니다" 라고 하듯이 말이다.
* 여호수아 :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거야?
* 백 성 들 : 예, 믿겠습니다.
* 여호수아 : 정말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거야?
* 백 성 들 : 예, 믿겠습니다.
* 여호수아 : 정말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거야?
* 백 성 들 : 예, 믿겠습니다.
그런데 사사기에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는, 그만 모두 망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말씀을 지키지 않아서 말이다. 그러니 얼마나 기가 막히느냐는 것이다. 왜 그렇게 말씀을 지키지 않는고 하니, 나름대로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 여호수아가 그만 죽고 나니까, 즉 눈에 보이는 여호수아가 없으니 개판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가 뭐 아나?" 라면서 말이다.
◈ 이제 여리고 성으로 고고 !!
아무튼 이 여호수아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진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제 여리고 성으로 우리도 한번 들어가 보자는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는 해놓아야 성경말씀이 그 다음부터 제대로 이해가 된다는 말이다.
이제 여호수아서 6장을 보겠는데, 먼저 신명기 12장에 의하면 이 여리고 성이 왜 무너져야만 하는고 하니, 하나님의 이름이 벌리는 전쟁에 의해서 이방민족은 이 약속의 땅에서 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땅 주인이 왔는데, 주인도 아닌 놈들이 더 이상 머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즉 철거대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인정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 약속의 땅에는 누가 사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런 철거대상인지 아닌지는 누가 결정하는고 하니, 제가 아까 여호수아 11장에서도 말했지만, 철거대상인지 아닌지는 모세언약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미 모세언약에서 언질을 준 바가 있고, 물론 모세언약 이전에도 나오는데, 어디인고 하니 창세기 15장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창세기 15장 13절에서 21절 말씀을 살펴보자.
(창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창 15: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창 15: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창 15:16)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창 15: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창 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창 15: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창 15: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창 15: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 요셉의 뼈에 얽힌 사연 !!
여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4대, 즉 400년만에 다시금 돌아오게 되는데, 그때는 애굽 강에서부터 유브라데 강에 이르는, 즉 겐 족속과 여부스 족속에 이르는 땅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요셉의 뼈와 함께 동행해서, 요셉의 뼈가 가는 곳마다, 즉 약속대로 그 족적을 남기게 되는데, 그 약속이 나아가는 앞에는 모두가 다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돌면서 무엇을 앞장세웠는고 하니, 맨 몸으로 돈 것이 아니라 언약궤를 앞세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있는 상자를 말이다. 그 상자에는 모세언약이 담겨있고, 아브라함과 아삭과 야곱에게 한 언약이 다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과연 이 언약을 막을 것인가? 그 누구라도 막을 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 시대에는 이 언약이 새언약으로 바뀌는데, 그 새언약의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까,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들에게는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다.
◈ 두 유 노우? 언약맨 !!
그러므로 히브리서에 보면, 성도는 바로 이 새언약에 의해서, 즉 이미 하늘나라에 들어간 사람의 모형으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맨' 이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어디에 나오지??)
혹시 이 언약맨을 아시는지? 우리는 그냥 사람이 아니라, 우리 속에 하나님의 언약이 작용하고 인도하는 '언약맨' 이라는 말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역시 언약맨인데, 이 언약맨들을 두고 약속의 민족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약과 약속은 조금 의미가 다르기는 하지만, 같은 뜻으로 사용해도 무방하고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구약의 창세기부터 예수님 때까지 하나님께서 여러 단계를 거치게 하였듯이, 지금 우리도 그런 단계를 거치게 되는가요?
여러 단계를 거친다고 하기보다는 적용을 시킨다고 하는 것이 적합한데, 우리가 그 당시처럼 그렇게 광야에서 산다든지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그 적용을 우리가 모두가 다 받게 되는데, 즉 과거에 일어났던 모든 경험들을 다 하게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예배당이 성전이라고 하면(?), 이 예배당을 예수님의 피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들, 또 목사를 제사장으로 간주해서 목사를 건드리면 저주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우리들, 아무튼 그러한 알 수 없는 찜찜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다 경험하고 나서는 "아하, 그것이 아니구나" 라고 하면서, 그게 아닌 것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 질문 - 시대시대마다 선지자가 나타나는데요, 그들은 역할은 어떻게 되지요?
우리가 바로 선지자인데, 우리 전체에 구약성경이 다 뒤집어진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 앞에 난데없이 붙여주는 전쟁, 그래서 이단들이 와서 시비를 걸고 말이다. 물론 믿음도 좋지만, 이 세상을 향한 행함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의 다 이루심을 모독하고, 즉 뭔가가 더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유혹들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닥쳐오게 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다윗처럼, "주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도 번제도 아니고 오직 상한심령입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다윗처럼 유부녀와 간통을 하고, 그리고 나단과 같은 선지자가 와서는 "야, 니가 바로 그 사람이다" 라는 것을 경험을 하는 게 아니라 말이다.
◈ 결국은 죄를 깨닫도록 !!
다윗이 유부녀와 간통을 하고 자기 아들이 그만 죽고 하는 것이, 사실은 죄의 하나의 단편적인 모습인데, 그러한 모든 것이 결국은 무엇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희박했기 때문에 생겼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희박할 때는 난데없는 이런 마음의 갈등을 느끼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오 주여, 오늘 제가 교회에 오다가 늘씬한 아가씨를 보고는 그만 마음에 음욕을 품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으로 간음죄를 지었기에 기분이 찜찜합니다. 혹시 자동차로 박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다윗처럼 몸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으로 했으니 말이다. 예수님은 그것도 간음죄라고 했고 말이다.
사실은 이렇게 생각하고 하는 그런 경험이 아까 말한 것에 포함이 되어있는데, 다윗은 이러한 것을 모두 극복을 했는데, 성령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간음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 인간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런 인간인 것을 알라는 것이다. 간통을 하든지 하지 않든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이 죄인이기 때문에 간통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
그러니 우리도 역시 여자를 보고 엉큼한 생각을 한다든지, 혹은 실제로 여자를 덮치나 그렇지 않으나, 원래 생겨먹은 자기 꼬라지가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경찰서에 가고 말고 하는 차이는 좀 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아하, 주께서 원하시는 것은 나의 '간음안함'이 아니라 '상한심령' 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계기를 통해서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차를 타고 가는데 왜 그런 늘씬하고 섹시한 아가씨를 만나게 하시는가?" 라고 말이다. 얼마든지 만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평소에 마음에 그런 음욕을 품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는데, 그런데 그 짧은치마의 아가씨를 보는 순간 그만 자기 마음을 자기도 모르게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윗이 되게 하시고, 또한 다윗이 고백했던 "주께서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입니다" 라는 것을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예외가 없는데, 무엇이든지 다 그렇다는 말이다. 지금 자기의 나이가 40이 되었다면, 하지만 나이 60이 되어서, 또 70이 되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 자식이 그만 원수로 !!
예를 들어서, 나이 70이 된 교회에 잘 다니던 모범장로(?)가 있었는데, 그날도 교회에 갔다가 집으로 갔는데, 그런데 아들이 술을 좀 마시고 취해 있으니 그만 화가 나서 아들에게 정신 좀 차리라고 밀어버렸는데, 그만 자기 아들이 넘어져서 뇌진탕으로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양반은 평생 무사고(?) 인생이었는데, 그런데 순간적으로 독이 오르다보니 자식이 아니라 원수로 보였다는 말이다. 그렇게도 귀엽다고 얼굴을 쪽쪽 빨면서 키운 자식이 그만 원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이 70이 되도록 살인죄를 짓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처음부터 그러했는데 나이가 70이 되어서야 그것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살인죄를 지었기에 지옥에 갔는가? 그것도 끔찍한 존속살인인데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 그 양반은 원래 죄인이었고, 그래서 지옥에 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구약에 있는 모든 경험들을 다 하게 하신다는 말이다.
◈ 과연 누가 눈 먼 자인가?
또 예를 들어서, 웃시야 왕은 죽을 때 문둥병에 걸려서 죽게 되었는데, 하지만 우리는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눈이 먼 것도 아니지만, 하지만 눈을 뜨면 무엇을 하는가? 장님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데 말이다.
우리가 주님에 대한 사랑이 없을 때 하는 짓들을 보면, 그야말로 눈 먼 자와도 똑같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한 짓을 말이다. "주님이 나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는가? 나는 이제부터 교회에 가지 않을 거야" 라고 말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9장에서 뭐라고 하는가?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눈을 떠도 봉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