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9-여호수아(강의정리)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9-여호수아(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43)
04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09 - 여호수아
04,06,26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서론, 질문과 답변 !!
* 질문 - 제가 교인들과 이야기를 하면, "너는 성경에서 왜 그 본문만을 이야기하노?" 라고 하는데, 그래서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한다"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으라고 주셨다" 라고 해도, 그들은 "우리가 그것을 지켜야 한다" 라고 하면서, 자기들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성경은 우리보고 지키라고 주었다고 하는데,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답변 - 그럴 때는 갈라디아서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서 성경실력(?)이 일취월장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시험에서 떨어진 자들인데, 물론 합격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고 말이다. 교인들이 그렇게 아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래도 소위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는 목사들이 그렇게 알고 있으니 큰 문제라는 것이다.
(갈 5: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갈 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 질문 - 대부분 과거부터 그런 목사에게 배워왔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주장을 받아드리지를 않는데, 물론 처음에는 저도 그러했는데, 성경에는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라고 했는데, 그들이 귀가 없어서 그런가요?
* 답변 - 그것은 당연히 믿음이 없어서 그러한데, 그러니 우리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단지 우리는 그냥 전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리고 천국을 이야기하면서 마치 자기가 보고 온 것처럼, 그래서 천국에 가면 자기 땅이 있고 어떻고 하면서, 마치 땅 따먹기 식으로 말하는데요?
* 답변 - 성경에 그러한 천국은 없는데, 아무튼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이상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천국을 보고 온 사람은 사도바울이고, 그러한 사도가 오직 쓴 성경이 기준이지, 더 이상 인간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사사로이 풀면 안 된다는 말이다.
* 질문 - 요즘 이단이 신학교에서 많이 생긴다는데요?
* 답변 - 섬 무당이 사람을 잡는다고, 신학교에 가서 공부는 하기 싫고, 하지만 사람은 많이 모으고 싶고 해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골라서, 그런 것만 교회에서 설교랍시고 마구 하는데, 이제 그런 기능인만이 양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학교에서 말씀이 아니라 그런 테크닉만을 배운다는 말이다.
◈ 이제 본론으로 들어와서 !!
이제 본론으로 들어와서 계속해서 공부하겠는데, 지난 시간에는 신명기를 했는데, 우리가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를 살펴보니,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다 정해졌다는 것이다. 우리가 원치 않는 것으로 구원을 마무리하시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원치도 않는데 하나님께서는 찾아오셔서 천국이 있다고 하면서, 우리들을 강제로 그곳으로 데리고 가는데, 우리를 그냥 데리고 들어가면 살지를 못하니 사람을 바꾸어서 데리고 가시는데, 그것이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나오는데, 이미 구조가 확정되어있다는 것이다.
◈ 약속의 땅 - 약속이 지배하는 땅 !!
출애굽기를 보면 원하지 않는 탈출을 시키고, 그리고 레위기와 민수기를 통해서는, 우리 인간의 마음가짐을 바꾸어서 데리고 가는데, 그래서 그 땅을 '약속의 땅'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약속의 땅을 풀이하면, 땅은 땅이로되 약속이 지배하는 땅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약속을 모르고, 약속을 믿지 않고, 약속을 거부하는 자는 모두가 다 이러한 약속의 땅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약속의 땅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여호수아부터 구약의 끝인 말라기까지 간다는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위한 것이고, 그 뒤의 여호수아부터 말라기까지는 무엇인고 하니, 약속의 땅이 있는데 과연 그 약속의 땅이 무엇인지를, 즉 수많은 환난과 어려움을 통해서 그 약속에 대해서 이야기해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약속을 보여주니까, 그들이 무엇을 깨달았는고 하니, 아니 깨달아야 하는고 하니, "아하,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힘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것인데, 그러니 이 약속의 땅은 자기들의 힘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 누구의 힘인가? 장차 오실 메시야를 통해서 통치를 받고 다스림을 받는 그 세계가 바로 천국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나라' 말이다.
◈ 약속인가? 구원인가?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지 150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그러한 기독교 교육이 "나, 구원시켜 줘" 라고 하는, 즉 자기를 극락에 보내달라고 하는 것인데, 그 당시의 사람들은 극락밖에 아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자기가 죽어서 좋은 곳으로 보내달라고 하는, 그런 구원론 중심으로 성경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부흥사들도 그러했고 말이다.
그런데 이미 외국에서는 19세기부터, 물론 종교개혁 때도 그런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 성경은 자기를 좋은 곳으로 보내달라는 게 아니라, 그 핵심이 곧 '약속' 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그 약속을 위해 자기가 있다고 여기는 게 아니라, "나, 좋은 곳에 보내 줘" 라는 것으로 여기서, 그렇게 자기가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천국이 목적이고, 약속은 하나의 수단 !!
그러니 목적은 자기가 천국에 가는 것이고 약속은 하나의 수단이 되고 말이다. 그러니 약속은 자기가 천국으로 가는 하나의 이용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약속 가운데 십자가가 있어도, 그 십자가는 자기를 천국에 보내주는 도구라는 말이다.
그러니 그야말로 성경을 완전히 거꾸로 가르쳤다는 것이다. 즉 "약속에 의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라는 것과, "구원받는데 약속이 필요합니다" 라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 아버지는 이런 분입니다" 라는 것하고, "우리 아버지는 이러한 분이기 때문에 저에게 도움이 됩니다" 라는 것은 방향이 정반대라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중요하게 되고, 최종적으로 자기가 남는 것이지 아버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는 분명히 뭐라고 하는가?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라" 라고 하는데, 그런데도 인간들은 자기가 좋은 곳에 가는 것만 생각해서, 그래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마저도 이용해먹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면 말이 통하지 않는데, 그렇게 되는 원인을 한번 분석해보라는 것이다. 그 원인이 바로, 하나님은 자기를 구원시켜 주는 분으로, 그야말로 똘마니(?)로 여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교회에 다니고 헌금도 잘 하는데, 어떻게 자기를 무시하고 도와주지 않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도 그렇게 여기고 말이다. 그런 깡패기질을 가지고, 그것을 유지하면서 교회에 다닌다는 것이다.
◈ 예수님, '나'를 부인하라구요 ??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 라고 말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라고 하는데,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고, 잃고자 하는 자는 얻을 것이다" 라고 하고 말이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그러니 쉽게 말해서, "내가 좋아라고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좋아라고 내가 있다" 라는 것이다. 정말로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이야기인데, 창세기 1장부터 있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창세기가 왜 있는가? 우리가 있기 전에 어떤 분이 계셨는데, 그 뒤에 우리가 생겼다고 하면, 그러니 그분을 위해서 우리가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구약에서보다 한 술 더 떠서 하는 말씀이, 그것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나오는데, 우리는 이미 우리의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도 오로지 그분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고 말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약속을 위해서 피조물이 존재 !!
그런데 구약성경인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우리는 만드셨는데,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다" 라고 하는데 초점이 있다면, 신약은 한 걸은 더 나아가서, "내 것은 없다. 나의 모든 것은 예수님 것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이 알아서 관리하고 인도하신다는 말이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니, "약속을 위해서 피조물이 있다" 라고 하는 것인데, 즉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서 있다는 것이다.
◈ '나'를 위한 하나님 ??
그런데 이것도 모르고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꾸만 하나님을 '나를 위한 하나님'으로 여기고, 그렇게 해서 여호수아부터 말라기까지 가니,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고, 아무리 데리고 다녀도 생각자체가 "좋아, 좋아,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좋아, 좋아" 라고 하는데, 그런 모든 것이 다 자기를 위한 것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니까, 생수가 터져 나와도 자기를 위한 것,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도 자기를 위한 것, 적들이 물러가도 자기를 위한 것, 그렇게 전부가 다 자기를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아니라 말이다. 이것이 바로 육에 속한 인간의 한계라고 할 수 있데, 그것을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이야기했는데, 구약은 무엇인고 하니까, 인간의 죄를 드러내기 위해서 있다고 말이다. 그분의 에베소서 강해 '영적전쟁'에 보면 나오는데, 제가 그 책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를 해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아니라, 이미 '죽었던 죄인' 이라고 해야 되지 싶은데, 그렇지 않나요?
이럴 때는 정말이지 '멋지다' 라는 표현밖에 다른 말은 할 수가 없는데, 그런데 그 이야기를 기존의 목사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기 싫은 것이지 몰라도 말이다. "내가 살아야 성화가 되잖아" 라고 하면서 말이다. 성화론이 성립이 되려면, 그 성화의 주체자인 '내'가 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내' 솜씨가 발휘되고 말이다.
그런데 자기가 죽었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자기가 살아있어서 솜씨를 마구 발휘해야, 목사는 교인들에게 기가 살고, 물론 교인들은 기가 죽고 말이다. 그렇게 해야 목사의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는데, 그런데 지나게나 다 죽었다고 해버리면, 뭔가 표시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인들을 영적으로(?) 지배하려는 욕심들이 그렇게 나타난다는 말이다.
◈ 예수님의 죽음을 맛보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 !!
이렇게 죽었던 '나'를 살린 이상, 그 다음부터는 주님께서 관리를 하는데, 즉 우리는 양이 되고 그분은 목자가 되어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어떻게 인도를 하시는고 하니, 예수님께서 왜 죽었는지를 아는 그 죽음의 맛을 보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누구 때문에 돌아가셨는지, 그 죽음의 맛을 보도록 말이다.
그렇게 해서 "아하, 나의 이러 이러한 점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구나" 라고 깨닫게 되는데, 자기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구비구비마다 그때그때마다 주님이 사랑을 베푸셔서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스스로 "내가 죄를 지었다" 라고 여길 때, 그때가 바로 가장 마귀의 시험이 드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자기가 죄인임을 당연시해야 하는데, 그럴 때 자기가 실수해서 그렇다고 여기는 것은 평소에 자기에 대해서 아주 높은 점수를 매겨놓았기에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가 살다가 보면 욕을 할 때도 있는데, 그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욕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이다. 그렇게 욕을 할 때, 잠시(?) 자기의 본색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을 두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돌아가셨는데, 내가 이렇게 나쁜 짓을 하다니?" 라고 한다면, 그때 마귀가 찾아와서 하는 말이 "더 후회해야지. 더 낙심해야 돼. 너는 그래서 안 되는 거야. 더 완벽해야지" 라고 하면서 약을 살살 올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죽고 사는 문제는, 착하다고 해서 더 사는 것도 아니고, 악하다고 해서 빨리 죽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은 다 주님의 소관이라는 것이다.
◈ 김선일 아버지의 땡깡 ??
이번에 이라크의 김선일씨 같은 경우에도, 그냥 빨리 돌아오면 되는데,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겠다고 남아서 버티다가 비참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일이 가슴 아프게 되었어도,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면 되는데, 그런데 그 아버지는 그만 자기 아들이 죽었다고 국가가 보상을 해야 한다고 땡깡을 부리고 하는데, 그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자체를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면 안 되는데, 그러니 평소에 살아있을 때 누구를 위해서 살았는지, 즉 누구의 종으로 살았는지,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김선일씨의 아버지처럼 자기 아들의 목숨 값을 내어놓으라고 한다는 것이다. (어, 하나님도 자기 아들 때문에??)
◈ 세례요한 - 이 자식들, 도끼 맛을 좀 볼래 !!
이 약속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원래 이 세상은 하나님을 위해서 만들어놓은 것인데, 그런데 창세기 3장을 거쳐오면서 인간이 되 먹지 못하게 모두가 다 하나님 탓이고, 자기가 잘못되어도 하나님이 다 책임을 져야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고방식이 여호수아에서 말라기까지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구약전체에 걸쳐서 말이다.
바로 그것을 정면으로 맞닥트린 것이 세례요한인데, 그래서 "이 놈의 인간들아 너희 발 밑에 도끼가 놓여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는 인간들이 상상하는 그런 좋은(?) 나라가 아니고, 그야말로 캄캄한 나라인데, 통곡하는 날이고, 절망의 날이고, 심판하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인간이라면 자기 주제파악을 해야 하는데, 자기가 어디서 흘러왔으며 누구를 위해서 있는지 말이다. 그것이 기본이 되어야만 하는데, 그런데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잘남의 솜씨자랑을 하려고 하다가 모두가 다 망했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망할 수밖에 없는고 하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고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런데 현실을 왜곡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 세상이 있는 것처럼 윽박지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과연 하나님께서 그것을 용납하시겠는가? 이렇게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자기가 노력해서 착하게 살려고 해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10년을 살던 100년을 살던 말이다.
◈ 출애굽기와 신명기의 율법은?
신명기를 보면 여기에 대해서 몇 가지 당부하는 것이 있는데, 여호수아서에 들어가기 전에 한번 살펴보자는 것이다. 이 신명기의 율법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율법과는 조금 다른데, 신명기에서는 규칙을 몇 개 더 지킨다고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 10: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신 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신 10: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신 10: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신 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말라
그런데 여기 16절에 보면,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로마서 2장에서 말한 것인데, 이것이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육체의 할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마음을 할례를 어떻게 하느냐는 말이다. 이 '할례' 라는 것은 자른다는 의미인데, 자기가 자기 마음을 무슨 수로 끊느냐는 것이다.
(롬 2:2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롬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중들이 산 속에서 머리를 왜 빡빡 미는가? 시원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과의 관계를 자르기 위한 것인데, 하지만 그 머리카락이 가만히 있겠는가? 또 다시 자라는데 말이다. 그러니 바보들이 아닌가? 눈감고 아옹하는 것이지 말이다. 한 순간 자기 욕심을 없앴다고 해서 그 욕심이 계속해서 잠잠히 있는가?
◈ 여보, 잔소리 좀 그만해 !!
남자가 마누라에게 제발 잔소리 좀 하지 말라고 그렇게 협박을 하고 으름장을 놓아도 그것이 며칠을 도대체 가겠는가? 물론 제 같은 경우에는 아내가 잔소리를 전혀 할 줄을 모르니, 그럴 필요가 없지만 말이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인데?(ㅋㅋ)
아무튼 불과 며칠을 가지 못해서 그 잔소리가 잡초처럼 여기 저기서 마구 올라오는데, 차라리 잡초라고 하면 제초제라도 뿌리던지 해서 어떻게 해볼 수가 있지만,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인데 도대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 그러니 십자가에게 함께 못박아야 !!
그래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그것을 끊는 것이 아니라 자기는 십자가에 함께 못박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그 다음에 모든 관리를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쪽에서 알아서 하시고 말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 본성이 어떠한지 일일이 다 끄집어내면서, "이래도 니가 니 힘으로 구원을 받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사랑했다" 라고 하면서,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알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성화가 튀어나오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인데, 어떻게 자기 본성을 그렇게도 모르는지, 사실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성화와 같은 것을 통해서 감추려고 한다는 것이다. 착한 일 몇 개, 나쁜 일 몇 개, 이런 식으로 매일같이 계산을 하고 말이다.
◈ 결국은 살고자 하는 욕망 !!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인간의 밑바닥에는 언제나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데, 이것을 밝힌 사람이 프로이드이고 말이다. 즉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인을 공격해야하고 말이다. 하지만 모두 다 죽여버리면 자기도 없어져버리고 마니,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자기 자신에게 타협을 하고 흥정을 하는데, "참아야 하느니라. 성질을 좀 죽여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해놓고는 참았으니 참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위로하고 하는데, 왜 '취중진담' 이란 말이 있지 않는가? 술의 힘을 빌어서 자기의 억눌린 감정을 한번 폭발시켜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겠지만 말이다. 이미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말이다. "나는 그렇게 시시한 놈이 아니야. 단지 때를 만나지 못해서 그렇지" 라고 하면서 말이다.
◈ 술 취한 남편과 그 마누라 !!
* A : 나는 그렇게 시시한 놈이 아니야. 단지 때를 만나지 못해서 그렇지.
* B : 그만하고 들어가서 자거라.
* A : 니, 나를 무시하지?
* B : 아이들이 깨니까 그만 자라니까. 내일 아침에 보자.
* A : 내일 아침에 보면 어떻게 할 건데?
* B : 그만하고 들어가서 자거라.
어때 여러분도 많이 경험을 했지 싶은데, 물론 저는 경험을 많이 한 것이 아니라 많이 보면서 지나왔는데, 사실 남자에게 있어서 제일 비겁한 것이 술 먹고 집에 가서 큰소리치는 것인데, 여자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꼴 보기 싫겠느냐는 것이다. 남자인 제가 봐도 그런데 말이다.
이런 것이 전부가 다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적인 모습인데,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주제파악을 하지 못하는 모습인지, 하나님은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데, 자기는 살려고 난리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것 자체가 핀트가 어긋나니 죄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미 죽은 놈인데 자꾸 살려고 벌떡 벌떡 일어나려고 하니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 약속의 땅 - 확실하게 살려줄 테니 나만 믿어라 !!
여기에 비해서 약속의 땅은 무엇인고 하니, "확실하게 살려줄 테니 나만 믿어라" 라는 것이다. 적들이 아무리 많아도, 암몬, 미디안, 블레셋 등등, 온갖 적들이 다 있더라도 그들은 꼼짝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 우리는 하나님을 모른다. 하나님은 별로이고, 저들이 더 좋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베푸신 사랑을 버린다고 하면, "저 적들이 쳐들어 와서 너희들을 엄청 괴롭게 할 것이다" 라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뇌물을 가져다 바치고 온갖 짓을 다 하다가, 그렇게 해도 안 되니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라고 하면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엉뚱한(?) 사람에게 성신을 보내어서, 그들이 곧 사사인데, 그들이 기적적으로 적들을 물리쳐서, "아이쿠, 이제 한 숨을 놓았네" 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사기' 라는 것이다.
◈ 사사기 - 제발 살려주세요, 알았다 !!
여호수아와 말라기 사이에 이 사사기가 들어있는데, 이 사사기가 왜 있는고 하니까, 약속의 땅이 무엇인고 하니, "너희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내가 살려주겠다" 라는 것인데, 그것도 사랑과 용서와 자비로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영생을 주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의 경우에도, 지금 그녀가 5번째의 남자를 버리고 6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데, 그런 것은 불문에 부치고 그냥 영생을 주겠다는 것이다. 남자를 한 트럭으로 사귀더라도 말이다. 그것이 바로 천국인데, 그냥 주겠다는 말이다.
◈ 목사들은 악덕 중간 도매상 !!
그런데 이렇게 그냥 주겠다고 해도 굳이 자기의 행함으로 천국에 가겠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인데, 그러니 세리와 창기들이 천국에 먼저 간다는 것이다. 공짜로 받았으니 말이다. 십자가 한 편의 강도의 경우도 그렇고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똥고집이 왜 그렇게도 센지, "그냥 줘도 못 먹는다" 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중간에서 가로챈 놈들이 있어서 그런데, 그들이 바로 목사들이란 말이다. 주님과 교회가 바로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이 되듯이 말이다. 그런데 중간 도매상들이 마구 농간을 부리듯이, 지금 목사들이 그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나쁜 놈들인지 모르는데, 소위 '성화'를 주장하면서, "이 목사처럼 되어라"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자기 밑에 똘마니로 머물러 있으라는 소리인데, 십자가를 지지도 않은 인간들이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이다.
◈ 명저, 뒤에서 본 한국교회 !!
이것이 우리 교재 '뒤에서 본 한국교회'에 보면 나오는데, "십자가를 지지도 않은 인간에게 복종하는 자는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겠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문장 하나 하나가 제법 괜찮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런데 요즘 목사들 중에서 뭐라고 하는고 하니, "너희들, 목회자를 좀 섬길 줄도 알아봐라" 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저에게 "목사님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 같습니다" 라고 하는데, 크로스빌리지 질문란에 보면 그런 사람이 있는데, 최고의 사랑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주제파악을 할 수 있도록 이야기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사랑이 없는 자인가?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도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너희들은 죽는다" 라고 말이다.
◈ 사랑이란, '쫘악' 째는 것 !!
그러므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하나 주는 것이 아니고, 아이가 왜 우는지를 알아서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암 환자에게 있어서 의사의 사랑은 칼을 들고 아픈 부위를 수술해주는 것인데, 그 사람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간에 말이다. 암을 칼로 제대로 도려내어서 그것을 제거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까 질문한 섬기는 문제에 있어서도, 목사가 그렇게 했다고 삐칠 것이 아니고, 평소에 자기가 이웃을 얼마나 섬겼는지 한번 되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성질대로 아무렇게나, 마치 마누라에게(?) 대하듯이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그러니 비록 자기에게 듣기 싫고 아픈 소리를 해도 사랑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 사랑이란, 사람을 좋게 하지 않는 것 !!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서 뭐라고 했는가? 만약에 사람을 좋게 한다면 자기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사도바울이 사람을 미워했는가? 사람을 좋게 하지 않는 것이 곧 사랑이라는 말이다.
(갈 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의 개념도 달라져야 하는데, 사랑을 주고받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런 것은 연애할 때나 써먹는 것이고 말이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무슨 말이 있는고 하니,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 라고 되어있는데, 그러니 진리와 상관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아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목사님,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재미없습니다 !!
그래서 우리교회의 장로님은 저에게 이야기하기를, "목사님이 복음을 말씀하고 직접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서 교인들 그 자체가 교회이고 천국인데, 그런데 나중에 목사님이 복음을 빼버리고 목사를 좀 알아달라는 식으로 하신다면, 그때는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따봉' 이란 말이다. 장로님이 어떻게 저런 계시를 받았는지, 참으로 놀라울 뿐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들도 그러해야 하는데, 그것은 미움이 아니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 신명기 32장은 너무 어려워 !!
이제 신명기에 나오는 '마음의 할례'가 무슨 의미인지를 아시겠지요? 신명기 마지막인 32장을 보면, 이것이 신학자들을 힘들게 하는 구절인데, 너무 어려워서 잘 접근을 하지 않는데 말이다. 이 신명기 32장은 모세가 자기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앞으로 가나안 땅에 가서 살아가는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들에게 하는 예언의 말씀인데, 13절부터 한번 살펴보자.
(신 32:13)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신 32:14)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신 32:15)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신 32: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신 32: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 어떻게 이런 일들을 미리 알 수가 !!
여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해서 잘 산다는 것이 아니라, 15절에 보면, 여수룬, 즉 이스라엘이 자기들이 잘먹고 잘사니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참 엄청난 내용이 들어있는데, 이것을 앞으로 잘못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잘 살라고 당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 그렇게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들 마음대로 살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또 17절에 보면, 그것이 바로 마귀에게 순종하는, 즉 하나님이 아닌 마귀에게 제사하는 짓이 되고 말이다.
◈ 현대신학자들 - 모세의 예언이 아니라, 후대의 창작물 !!
그래서 현대의 구약 신학자들은 전부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그것은 모세가 예언한 것이 아니고, 아니 모세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왕창 망하고 난 뒤에 역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까지 예언을 했다고 창작(?)을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후대 사람들이 자기 후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소위 '화이트 라이' 라고 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것을 자기들의 말이라고 하면 권위가 서지 않으니 모세의 말이라고 해서, 그렇게 가져다 편집을 했다는 것이다. 모든 구약 신학자들이 다 말이다.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박사학위는 물 건너가고 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이스라엘에 있어서 천 년 뒤에 일어날 일들을 어떻게 일일이 알 수 있느냐는 것인데,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있었고, 그리고 모세는 선지자라는 말이다.
◈ 하늘의 일들을 어떻게 지상의 인간들이 !!
그리고 모세는 이미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일 동안을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물론 밥도 먹지 않았고 말이다. 물론 밥을 먹지 않은 것은 좀 이해가 되지만 물도 마시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았다는 말이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 실제로 그렇게 한번 해보면, 40일이 아닌 4일도 못하지 말이다. 그것도 모세는 3번씩이나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하늘에서 노는 것과 이 지상에서 노는 것은, 그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꾸만 지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가지고서 하늘나라에까지 연장시켜서, 하늘나라를 안다고 까불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늘나라는 시간을 초월하고, 우리 인간들의 육적인 조건을 다 넘어선다는 말이다.
그래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하늘나라의 그 영광의 광채가 얼마나 빛났던지 사람들이 눈을 뜰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분명히 사람이 맞는 것 같은데, 가까이 다가온 태양처럼 보였다는 말이다. 이것이 과연 물리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겠는가? 모세가 전기 에너지로 그런 빛을 내었다면 그 육신이 흔적도 없이 타버리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신 뒤에 분명히 문이 닫혀있었는데, 그냥 뚫고 제자들에게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셨는데,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알게 해주기 전까지는 그들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물위를 걷고 죽은 자를 살리는 것만이 기적이 아니고 말이다.
◈ 하나님의 예언은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
사실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있으면서 굶어죽지 않은 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인데, 그러니 사실 이런 모든 것들이 다 기적인데, 왜냐하면 이런 일들은 이 지상인 1층이 아니라 하늘나라인 2층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예언은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식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미가야 선지자는 천상회의에 참석했는데, 그 주제가 무엇인고 하니, 지상에 401명의 선지자가 있는데, 400명 더하기 1명인데, 여기에서 400명은 거짓 선지자이고 1명은 미기야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천상회의에 참석한 사람은 다 아는데, 지상에 있는 인간들만 모른다는 것이다.
◈ 인간들의 신화창조 !!
인간들이 달에 가고 화성을 탐사하고 참 대단해 보이지만, 그러나 달을 만드시고 화성을 만드신 분이 누구인가? 금요일에 KBS에서 방영하는 '신화창조' 라는 코너가 있는데, 엄청난 크기의 배도 만들고 다리도 건설하고 그 얼마나 위대해 보이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끼리는 대단해 보일지 몰라도, 그것을 가지고 하늘나라에는 갈 수 없다는 말이다.
정말로 대단한 것은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인데, 그러니 그렇게 죽어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이 여기 있으니, 우리에게 하는 말씀이 "죽어도 괜찮다. 내가 책임져줄게" 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약속의 땅이라는 말이다. 이런 윗동네가 지배하는 땅이 바로 약속의 땅이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 믿나, 이 가시나야 ??
그래서 요한복음 11장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니가 이것을 믿는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경상로 사투리로 하자면, "믿나, 이 가시나야?" 라고 말이다. 그러니 죽음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일부러 가지를 않았는데, 그것은 나사로와 그 가족을 미워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인데, 즉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고 생명임을 알려주는 것보다 더 큰사랑이 있으면 나와보라는 것이다. 죽은 자를 살려주는 것보다 더 사랑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 우리의 임무는 주님의 사랑을 전할 뿐 !!
그리고 우리가 이런 주님의 사랑을 자기 친구에게 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가 듣지 않고 외면한다면 너무 낙심하지 말고 모두 다 주님께 맡기라는 것이다. 우리가 매달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말이다. 우리의 역할은 거기까지인데, 다음에 또 사랑을 전할 기회가 주어지면 주저하지 말고 전하면 된다는 것이다.
◈ 그러니 신명기 32장에 얼마나 선명한가?
지금 신명기 32장에 나오는 내용이 너무나 간단 명확하기 때문에, 모세가 여기에 합류하지도 않고서 느보산에 멀리 쳐다보면서 예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너희들이 앞으로 배가 좀 부르다고 나를 버릴 것이다" 라고 하는데,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기에, 결단코 모세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타락을 했다면, 그러면 그 타락한 결론은 무엇이겠는가? 즉 이스라엘은 타락하고 반드시 망하게 되는데, 도대체 그 결론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것이 32장 43절에 나오는데, 여기서 한번 살펴보자.
(신 32:43) 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 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에게 보수하시고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그러니 얼마나 결론이 확실한가?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마귀에게 제사하고 해서 망하고 또 망하는데, 하지만 마지막에 나오는 결론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의 자기 백성만큼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은 하나님께서 속죄해주겠다는 것인데, 바로 그러한 일도 약속의 땅에서 생길 것이라고 모세가 예언을 했다는 말이다.
바로 그 예언대로 이 땅에 메시야가 오셔서, 즉 하나님의 이름이 오셔서 속죄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이 모세가 한 예언이 그대로 성취가 되었다는 것이다. 신명기 34장에 보면, 그런 측면에서 각각의 지파에게, 그래서 12지파에게 축복을 해주셨다는 것이다.
◈ 이제 여호수아서를 !!
이제 여호수아를 들어가도록 하겠는데, 여호수아는 초반부가 조금은 어려운데, 일단 알기 쉽게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아무튼 신명기에서는 조금 전에 말한 '윗동네'와 '아랫동네'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아하, 성경은 마치 지붕이 내려앉듯이 그렇게 내려앉을 때, 비로소 지상에 계시가 접촉이 되는구나" 라고 말이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이 지상에는 인간의 한계, 즉 육의 한계가 드러나고, 물론 하늘나라는 육의 한계를 뛰어넘는, 즉 문이 닫혀있는데 그냥 통과해서 들어오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말이다. 또한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주님이 함께 계시고 말이다.
* 질문 -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계시는 십자가이고, 그냥 계시가 성경인가요? 그리고 약속과 언약은 또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요?
그것이 아니고 계시가 곧 성경인데, 그 성경의 중심이 곧 '십자가' 라는 것이다. 그리고 약속과 언약의 차이점은, 약속을 크게 보고, 이 약속이 밖으로 튀어나온 것을 두고서 언약으로 보면 된다는 것이다. 즉 태양이 빨간색이라면, 태양은 약속이고 빨간색이 바로 언약이란 말이다. 이렇게 태양에서 빨간색이 나오듯이, 약속에서 나오는 것이 곧 언약이라는 것이다. (약속을 담고 있는 틀이 언약??)
* 질문 -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라는 책에 보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지만, 그러나 언약을 알아야만 예수님을 제대로 안다고 하셨는데요?
물론 그러한데, 그 책은 목사님들이 제 강의를 녹취해서 만든 것으로서, 다른 책들과는 달리 그렇게 어려운 책이 아니니 한번씩 다 읽어보라는 것이다.
◈ 왜 유월절에 맞추어서 '도하'를 하는가?
자, 그렇다면 여호수아가 초반에 어렵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소위 '도하' 사건이 나오는데, 즉 강을 건넌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강을 건너는 시기가 일부러 유월절에 맞추어서 건넌다는 것이다. 요단강을 말이다. "어, 강물이다. 언약궤를 가지고 와라. 자, 언약궤를 앞세우고 들어가자" 라고 해서 건너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건너와서 약속의 땅에서 바로 유월절을 지키게 되는데, 왜 그렇게 하는고 하니, 그들은 40년의 광야생활을 실패했다는 것이다. 즉 처음에 홍해를 건너온 사람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다 죽었다는 말이다. 물론 모세도 그러한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 광야에서 뺑뺑이를 돌렸다는 것이다.
(수 5:10)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수 5: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니
(수 5:12)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 홍해를 건너기 전에 무엇을 지켰는고 하니 그것도 역시 유월절인데, 그렇게 유월절에서 살아남은 장자들을 데리고 애굽을 나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필이면 왜 장자를 이끌고 나와야 하는가? 가정마다 다 장자가 있는데, 없으면 여러 가정을 합치면 되고 말이다.
◈ 장자는 각 가정의 보석상자 !!
이 장자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사람 덕분이 아니라 피 덕분에 살아났다고 하는 일종의 '보석상자' 라는 것이다. 그러니 각 가정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그 흔적이 무엇인고 하니, 어린양의 피 덕분에 살아난 장자가 지줌지줌(?) 각각 가정마다 다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장자와 더불어서 가족을 구성해서 애굽에서 뛰쳐나오게 되는데, 즉 우리는 못났지만 장자를 지켜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가정을 지켜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 오직 한 분의 장자, 예수 그리스도 !!
그런데 신약에 보면 이 장자가 단 한 사람밖에 없는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 가정마다 장차 올 예수님을 한 분씩 모시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그 예수님을 미리 앞당겨서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라고 하신 그 예수님을 말이다.
그렇게 유월절을 통해서 나오게 되는데, 그런데 광야생활에서 그만 이 유월절이 도중에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다시금 유월절을 되살려서 약속의 땅에 진입해야 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피가 없이는 승리가 없기 때문에 말이다.
◈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서 !!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 나는 이제 살았다" 라고 하면 안 되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라고 까불거리면 안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대속의 십자가의 피를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면 된다는 것이다. 말단 직원인 주제에 마치 그 회사가 자기 것처럼 여기고 설치면 바로 한 대 얻어맞듯이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구원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를 채용하셨는데, 그런데 인간들은 마치 구원을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를 했다는 것이다. 40년 광야생활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이 말이다. 오늘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 과연 누구를 위한 하나님인가?
그러니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왜 물을 안 줍니까? 먹을 것은 어디 있어요?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 라고 하면서 땡깡을 부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자기들을 위한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도 자기를 위한 회사이어야 하고 말이다.
그러나 말단 사원인 주제에 자기를 위해서 있는 회사가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다. 하나님의 경우에도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종이 아닌가? 그런데 마치 하나님이 자기를 위한 하나님으로 여기니, 세상에 종을 위한 주인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이 갈라진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갈라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직 약속에 의해서, 약속의 땅으로 넣어주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분이 앞장서고, 백성들은 졸따구가 되어서 졸졸 따라가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 장자가 되시는 어린양의 언약궤가 앞장을 선다는 말이다.
◈ '기도'에 대해서 !!
이것을 히브리서에 보면, 우리보다 먼저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신 분이 있다고 계시는데, 그분이 먼저 들어가서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면, 그 기도 덕분에 우리가 하늘나라에 딸려 들어간다는 것이다. 여기서 히브리서 7장을 한번 살펴보자.
(히 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여기 24절에 보면 예수님은 영원히 계신다고 하는데, 이것은 마치 하늘에 떠있는 고정되어있는 인공위성처럼, 지구와 같이 도니 그러한데, 우리가 화장실에 있든지, 회사에 있든지, 교회에 있든지, 항상 고정된 인공위성처럼 고정되고 살아서(?) 그렇게 "아버지, 저 놈은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길로 가면 안 됩니다" 라고, 그렇게 기도하고 간구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 기도덕분에 택함을 받은 자들이 타락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여기서 누가복음 22장을 한번 보겠는데, 이것은 제가 섭섭해서라도 보고 지나가야 하는데, 요즘 이런 잘못된 기도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에서 얼마나 엉터리로 농락을 당하고 있는지 말이다. 물론 그렇게 하고 싶은 교인들의 욕구도 있고 말이다. "기도하면 괜찮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타락한다" 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눅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눅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여기 31절에 보면, 사탄이 시몬(베드로)을 밀 까부르듯 한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왜 밀을 까부르는가? 그것은 밀을 추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그렇게 하는데, 즉 껍데기는 날아가고 알곡만 남으라고 까부른다는 말이다. 그렇게 사탄이 우리를 마음놓고 가지고 노는데, 왜냐하면 사탄은 영적인 존재이고 우리는 육적인 존재이니, 결코 육적인 것은 영적인 것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 !!
그래서 우리는 마치 마귀에게 이기지 못하기에 마치 세간이 그 집주인에게 묶여있는 것처럼 우리도 마귀에게 묶여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강도가 나타나서, 여기서 강도는 곧 예수님인데, 집주인을 꽁꽁 묶여놓고 그 집에 세간을 자기 마음대로 다 가져간다는 것이다. 장롱이든 세탁기이든 냉장고이든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늘나라가 바로 이렇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동안 마귀에게 붙들려서 꼼짝도 못하고 있는데,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마귀를 결박시켜놓고 우리는 자유인으로 데리고 가는데, 그것을 두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나온다는 말이다.
◈ 강도가 되신 예수님 ??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 12: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
왜 이렇게 예수님이 강도가 되고 하는 거꾸로 된 이야기가 나오는고 하니, 그 당시에 하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마귀가 들렸다고 하니 말이다. "그래, 내가 강도 짓을 할게" 라고 하면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다는 것이다.
* 질문 - 보통은 말하기를,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살아가는데, 한번씩(?) 마귀에게 이끌려서 시험받는 것으로 여기는데, 그런데 목사님은 그와 반대로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 악마가 성도를 시험하는 이유는?
악마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매일같이 시험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인데,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는고 하니까,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들의 기도라든지, 착함이라든지, 성실함 등에 전혀 근거하지 않고 구원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마귀로 하여금 마음껏 장난치도록 허용하셨다는 말이다.
매일같이 아침에 성경을 두 장씩 보던 사람이 바빠서 미쳐 보지 못했다면, 그 다음에는 당장 마귀의 시험에 든다는 것이다. "아, 오늘 아침에 아무리 바빴어도 큐티를 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아. 봐라 봐, 일이 터졌네. 차가 그만 '좌악' 긁혔구만. 역시,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 라고 하는데,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귀가 살아있음을 증거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마귀가 마음놓고 우리를 시험하는데, 그러면서도 우리가 믿는 것은 마귀의 시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시험조차도 무용지물로 만드시는, 항상 살아계셔서 기도하시는 예수님 덕분에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 주님의 기도 덕분에 !!
여기서 다시 누가복음 22장을 보겠는데, 31절에 보면 "너희를 청구한다" 라고 되어있는데, 즉 마귀가 하나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서 시험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한다고 되어있고 말이다.
(눅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눅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러니 이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기도를 믿는 것을 두고 믿음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나는 비록 못하지만, 그러나 주께서는 하신다" 라는 것을 말이다. 베드로는 못하지만 자기는 할 수 있다고 하면 안 되고 말이다.
하지만 인간들이 주장하는 것은, "내가 성경말씀을 지키지 못하면 내 믿음은 누가 지키겠는가? 그러니 내가 알아서 해야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 것이 없으니, 남는 것은 자기 성실함이나 착함밖에는 없으니,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 인간들이 말하는 믿음은 행함 !!
* 질문 - 그러니 믿음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그런 기도하심을 믿는 것이지, 자기가 믿는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은 믿음은 아니라는 말씀이죠?
그것을 두고 성경에서는 믿음이 아닌 행함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믿음이라고 할지 몰라도 말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행함이라는 것이다.
* 질문 - 이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인데, 종교개혁을 공부하면서 천주교에 다니는 사람과 이야기를 좀 해봤는데, "저의 헌금을 받으셔서 친구들과의 잘못을 용서해주시고, 화합하도록 해주세요" 라고 기도를 한다고 하는데, 성경구절 어디에서 인용하는 것 같은데요?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 5장 24절의 말씀인데, 물론 마태복음에 그대로 기록되어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나름대로 만들어내는데, 아무튼 자기들은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지킬 수 있다고 여겨서 그러한 짓거리를 한다는 것이다.
(마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 질문 - 그렇다면 그런 내용이 천주교의 성경책에는 나온다는 말입니까?
그것이 아니고, 천주교나 우리나 성경책의 내용은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베소서 4장에 보면, 분을 품어도 해가 지가 전에 물라고 하는데, 여름이면 시간적 여유가 있는데 겨울이 되면 바쁘고 말이다. 분을 풀려고 하면 시간이 촉박하니 말이다. 특히 맞벌이 부부는 밤에만 만나는데, 좀 곤란하지 싶고 말이다.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그러나 이것은 그러한 뜻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산상설교와 성경말씀을 지킨다는 말인가? 하지만 가끔 그러한 현상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바로 주님의 은혜인 줄 알라는 것이다. 전혀 우리의 솜씨가 아닌데, 하지만 주님께서 이유가 있어서 때로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하신다는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게 된다든지, 혹은 있는 것으로 만족하게 되는, 그런 일들이 말이다.
◈ 누가 범사에 감사하겠는가?
예를 들어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어떤 젊은 사람이 혈압이 높아서 그만 뇌출혈로 몸의 팔다리가 마비가 왔는데, 그런데 어느 날 벼락이 자기 근처에 떨어져서 물기로 말미암아서 그만 감전이 되고 말았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마비가 된 것이 다 풀려버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건강하고 말이다.
이런 것이 소위 전기충격요법이라 할 수도 있는데, 뇌와 연결된 신경에 쇼크를 주어서 풀어주는 말이다. 물론 병원에서는 너무 위험해서 이런 무식한(?) 방식을 시도하지 않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으로 말미암아 나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순간에는 자기 다리와 팔이 움직인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그 얼마나 기뻐하겠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팔과 다리가 움직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니 기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 어떤 사람은 수술을 했는데, 방귀가 나오지 않아서 고민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물론 방귀를 뀐다는 것이 그만 설사를 하는 사람도 있고 말이다. 수술을 하기 전에 다 비우지만 그래도 뭔가 남아있었던지 말이다.
◈ 주님은 범사에 감사하도록 사건을 일으켜 !!
그래서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서 감사하게 되는데, 즉 범사에 감사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게 되면 다 잊어버리고, 또 인간 주특기인 골라서 감사하는 상태가 되겠지만 말이다. 그러면 또 주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도록 사건들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이지, 인간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는데, 즉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잃었다가 얻은 그 기쁨을 항상 이야기하는데, 즉 '잃었다가 얻고', '잃었다가 얻고', 그렇게 진행된다는 말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면, 제는 어릴 때 이가 좋지 못해서 사과를 잘 먹지 못했는데, 그런데 가끔 괜찮을 때가 있어서 사과를 씹어 먹어보면 얼마나 좋은지 말이다. 물론 사과도 맛이 있지만, 그렇게 '와작' 씹는 기분이 그렇다는 말이다. 말하고 보니 '인사돌' CF 같기도 한데, 아무튼 그렇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렇다면 잃었다가 얻는 것을 인간이 예상하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있지 싶은데요?
그럴 때는 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예상하지 못한 더 깊은 죄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구약성경이고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사를 제대로 드리지 않았다고 야단을 맞는데, 나중에 실컷 제사를 잘 드리고 얻어맞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전을 수리하지 않았다고 깨어지고, 또 성전을 지어놓고는 얻어터지고 말이다.
인간은 뭔가 하나를 이루어놓으면 그것이 일종의 자기 의로 대번에 전환이 되는데, 기도의 경우에도 처음에 할 줄 모르다가 나중에 좀 하게 되면 엄청 기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기도를 자주 한다고 또 얻어맞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기도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말이다.
* 질문 - 기도를 굳이 시간을 정해놓고 할 필요가 없지 싶은데요?
사도들의 경우에도 오후 3시에 기도시간을 정해놓고 했는데, 그것이 편리하다는 것이다. 왜 편리한고 하니, 그것은 육의 한계 때문에 말이다. '유두고' 라는 자가 사도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그만 3층에서 떨어져서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