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6:45-52 (예수님은 유령인가?)
막 6:45-52 (예수님은 유령인가?)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마가복음 6장 45-52절
제목 : 예수님은 유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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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8-09-07 13:33
예수님은 유령인가?
2008년 9월 7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6:45-52
막 6: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막 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막 6: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막 6:48)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막 6:49) 『제자들이 그의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지르니』
(막 6:50) 『저희가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더불어 말씀하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고』
(막 6:51)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막 6:52)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제자들은 놀랬습니다. 새벽 3시 경 희멀건 물체가 물 위를 걸어오는 것을 보고 놀랬습니다. “유령이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은 유령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유령의 관점을 볼 수 있어야 제대로 예수님을 이해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있어 유령이란 인간들이 용납할 수 없는 대상자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인간들은 자기네들 동네에 유령이나 귀신이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배격합니다. 유령은 재수 없는 것들입니다. 유령이 끼어들면 모든 평화는 다 깨어집니다. 유령들은 다 제거하고 인간 자기네들만 있는 세계를 꾸준히 추진해왔습니다. 그동안 제자들이 예수님을 용납한 것은 예수님도 자기와 같은 인간류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진정 예수님의 진면목을 보았더면 인간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유령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존재임이 확인될 것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자신들이 납득이 되고 자신이 인정하고 허락하는 것들만 자기 주변에 배치해 왔습니다. 친구나 동료나 가족들이나 혹은 잡종 가구나 침대나 책장이나 옷장이라도 모두 자신들이 이해되는 한계내에서 갖다 놓았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이 거부하는 것은 주저없이 제거해왔습니다. 유령이나 귀신이라는 것은 가차없이 자기네들 주변에서 제거시켜 버립니다. 유령은 유령의 동네에서 살고 이곳 인간들은 인간들만 세상이라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렇게 해야지만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마음의 평화란 인간들이 납득되는 것들에 둘러싸일 때에만 성립합니다.
만약에 이런 평화의 질서 속에 이질적인 것들이 침투하면 그것은 평화가 깨어지기에 배척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사람들은 하나님의 평화가 어떻게 성사되는 지를 몰랐습니다. 로마서 3:25에 보면,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화란 오직 자기 아들 되시는 예수님의 피로만 성사됩니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그토록 지키려는 평화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평화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도리어 하나님과 원수 맺는 형편을 조성해오고 있었던 겁니다. 따라서 인간이 사수해온 평화는 가차없이 깨어져야 마땅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평화를 깨려오신 분입니다. 유령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게 하십니다. 큰 놀라움이 들이닥치게 되면 그 순간, 그동안 사람들이 나름대로 몰두하고 매진해 왔던 모든 작업이나 업무나 노동이나 수고가 다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입니다.
예를 들면, 천주교 신자가 자기 방에 마리아 상을 세워놓고 묵주를 들고 그 앞에서 정기적으로 경배하고 있는데 바깥에 흐르는 강물 위로 예수님을 걸어오시면, 그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되며 그동안 자신이 기도하는 기도행위조차 다 무용지물임을 들통 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수용 없는 짓을 해온 것입니다. 전혀 하나님의 평화를 얻는데 전혀 필요치 않는 일을 한 겁니다.
그저 자신의 마음의 평화만 추구해온 것입니다. 이런 평화는 다 깨어져야하고 박살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맺어지는 하나님의 평화를 누가 흐릿하게 했느냐 하면, 바로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원하는 인간들의 희망이 흐릿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즉 “신이여서, 우리를 제발 놀래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희들을 무서운 속에 놀래키지 말라고 미리 저희들이 기도와 헌신과 헌물과 정성으로 신에게 이렇게 마음을 바칩니다”라는 식으로 신앙 생활을 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깜짝 깜짝 놀라는 것이 싫습니다. 늘 고요하고 안정하기를 원합니다. 즉 사람들은 움직이는 것이 싫고 고정된 것을 원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말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성경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입니다. 즉 지금도 이 세상의 기본판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성경대로 움직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유령처럼 오셨다면 오늘날 우리들에게 예외없습니다.
우리가 소스라치게 놀랄만한 유령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 십년 동안 사수해온 모든 안정된 평화의 질서에 와장창 다 깨어지게 만듭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상상하기를 어떤 사태가 여러분들의 마음의 평화를 깨는 사태일까요? 그 사태를 곧 예수님께서 고맙게도 일으켜 주십니다. 왜 그러시느냐 하면 진정한 하나님의 평화는 오직 예수님의 피를 앞장 세울 때만 가능하다는 점을 알려주시고 싶어서입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피만 앞장 세워서 세상을 움직이게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움직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유령처럼 나타나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실은 예수님께서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일하시고, 말씀하시고, 기적을 베푸신 그 모든 일 속에서도 이미 ‘유령적’으로 움직여왔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 유령성의 낯섬을 파악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마음 평화를 위하여 잘못 해석해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어떠하기에 예수님께서 유령처럼 등장해야 하는지를 알아봅시다.
민수기 14:3-4에 보면,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이라는 세계와 하나님의 약속의 세계가 얼마나 다른 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 교회가 엉터리면 사기집단이라고 매도하는 이유는, 적어도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이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만큼도 약속의 나라를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즉 오늘날 한국 교회는 마치 눈에 보이는 이 세상과 저 천국이 서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이 땅에서 잘되는 것이 신의 축복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그들이 거짓 집단인 것입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적어도 그들이 산 던 애굽하고는 전혀 다른 세계로 끌어간다는 사실만큼은 각오했었습니다. 그들이 문제는 바로 그 약속의 땅에 가기 싫다는 점입니다.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서 여호와를 찾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 세상에 눌러 살고 싶었습니다. 단지 혹독한 압제만큼은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으로 개선되기를 원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막상 그들 곁에 나타난 하나님의 종, 모세와 아론의 주장은 “이곳에서 나가자”입니다. 즉 움직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으로부터 벌받는 자 되기를 원할 정도로 미워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성경대로 움직여나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판 위에 그들을 실었습니다. 그 판에는 어린양의 피가 묻어있습니다. 그래여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관성의 법칙에 의해서 판 위의 사람들은 항상 애굽을 그리워하고 그곳으로 눈 돌리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의 발 밑을 보게 하십니다. 그곳은 원형입니다. 거룩와 생명과 의가 주어지는 원형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유령처럼 나타나셔서 우리의 원형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피없이는 하나님과의 평화는 아예 없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나 위주의 거짓된 평화를 깨어주시고 예수님이 애써 장만해주신 피로 인한 평화 속에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