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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소요리문답공부 17(20030330)자유게시판빌립보서

소요리문답공부 17(20030330)

이름 : 오용익(IP:59.3.201.241)

소요리문답공부 제 17강 (이 근호목사, 2003년 3월 30일, 우리교회)

제 22과 그리스도의 낮아지심

제 27문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 어떠합니까?

답)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곧 그의 강생하심인데 또한 비천한 지위에 나셔서 율법아래 복종하시고 금생에 여러 가지 비참함과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을 받으시고 묻히셔서 얼마 동안 죽음의 권세아래 거하신 것입니다.

지난시간에 한 것이 ‘왕으로서의 그리스도’라고 했는데 왕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특징이 뭐라고 했습니까? 왕의 특징이란 ‘지시하는 자’였고 그 왕을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그 왕의 지시를 받는 것, ‘내가 누구로부터 지시를 받아야 돼’라고 그것을 인정할 때 그것이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왕이다. 잘났다’ 이렇게 끝나면 안 되고 ‘그분은 날 지시하는 것이 마땅하고 나는 그분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나의 행복이다’ 이런 관계가 될 때 왕과 신하의 관계입니다. 그런 사람에 한해서 왕이 가졌던 왕에게 주어졌던 모든 것도 신하의 것이 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제 22과 ‘그리스도의 낮아짐’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짐’이 한자 말로 비하(卑下)라고 되어 있습니다. 卑下, 비천하고 낮다, 비하라고 되어 있지요? 묻는 것이 뭐냐?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 어떠합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시비를 또 걸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왜 낮아져야 되는데요? 그리스도가 높아지면 탈납니까? 높아질 필요도 없고 낮아질 필요도 없고 평범하게 오시면 될 것이 아닙니까? 왜 의도적으로 낮아져야 되는가, 그것부터 먼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거룩을 이렇게 숫자나 양으로 표시할 수는 없는 문제지만, 수직선을 그어놓고 0을 중심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1, 2, 3 이렇게 되고 0 아래로 내려 갈수록 -1, -2, -3 이런 식으로 내려간다고 봅시다.

내려갈수록 천하고 올라갈수록 고귀하죠. 만약에 예수님께서 +4쯤에 오셔서 ‘이 천한 것들 올라가!’ 이렇게 외친다고 했다면 그걸 듣는 사람들이 ‘아, 예수님의 거룩은 +4만큼 거룩한 분이구나. 우리는 천하구나.’ 그러면서 올라갔는데 뚝 떨어지고 다시 올라갔다가 뚝 떨어지고 여기에 올라갈 수가 없어요.

-5는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그래요. 지난시간에 ‘군사부일체’가 나왔는데 그런 유교집안에서 가정교육을 아주 잘 받은 사람, 표창장 같은데 보면 ‘품행이 방정하고’ 라고 나오는데 소위 그런 사람은 올라가기가 남보다 더 수월하다고 보는 거죠. 수월하다고 보고 올라가는데 그만 올라가다가 다시 뚝 떨어져 버립니다.

아무리 해도 인간은 이 거룩의 위치에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폴짝 폴짝 뛰지요. 이 간격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길가에 ‘부모에게 효도하라’ 같은 문구를 죽 붙여 놨어요. 제가 그걸 보면서 ‘저것도 다 돈이 들어갔을 텐데 누가 저렇게 해 놓았을까’ 했는데, 아마 그 근처에 유교단체 같은 것이 있지 않나 싶어요.

자기 단체를 선전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은데 제가 보기에는 그 모습 자체가 지옥이라는 겁니다. 지옥이 다른 것이 지옥이 아니고 거룩에 이르지 못함, 거룩 세계에 이르지 못한 것이 지옥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누가 왔느냐 하면, 천사가 왔지요. 천사가 윗동네에서 아랫동네로 왔어요. 왔지만 천사는 낮아지지 않습니다.

그냥 위에 머무르는 식이었죠. 그러니까 천사를 본 사람들이 ‘잘못했습니다. 우리는 죽어 마땅합니다. 거룩한 분을 뵈었으니 이제 우리는 죽었습니다’ 하는 이야기를 많이들 했어요. 그렇게 천사들을 많이 보냈어요. 그러면 아브라함, 모세, 이사야 이런 사람들은 어떠냐? 이런 사람들은 아래에 속해요.

엘리야나 에녹같은 사람 올라갔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뚝 떨어져 버렸어요. 그런데 엘리야냐 에녹도 다 마찬가지로 자기들이 잘나서 올라간 것이 아니고 그냥 폼으로 올려 보낸 거죠. 여기서는 아무리 해도 팔짝 뛰어도 올라갔다가 다시 그만 내려가고 맙니다. 여기에 현재 있는 사람이 65억입니다.

이 가운데 ‘떼제공동체’라는 것이 있습니다. 천주교계통의 공동체, 기독교계통의 공동체, 불교계통의 공동체가 있어요. 불교계통의 공동체 중에 최근 내한한 틱나한의 공동체가 있어요. 이 사람은 베트남의 중인데 이 사람의 주장은 ‘순간순간 감사, 순간순간을 살아라’ 하는 그것을 가지고 공동체를 만든 사람입니다.

‘떼제공동체’는 천주교계통의 공동체이고 기독교계통에서 최근에 한국에서 많이 알려진 공동체는 ‘밥퍼주는 사랑’ 그리고 ‘두레공동체’ 이것도 많이 들어봤지요? 이 공동체의 특징이 영성훈련입니다. 영성훈련을 어떻게 하는가? 제일 밑에 육적인 요소, 그 다음에 혼적인 요소. 다음에 영적인 요소가 있는데 ‘육에서 혼으로 발전하고 혼에서 영으로 발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는 것이 영성훈련의 기본지침입니다.

육적이란 짐승 같은 것이고, 영적이란 신 같은 것이니까 그 사이에 인간이 있습니다. 영성훈련이란 짐승 같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인간을 다시 신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되는 거죠. 짐승에서 인간은 윤리 도덕이 필요해요. 윤리 도덕으로 다루는 것은 대인관계, 부모와의 관계, 형제관계, 친구관계, 기업체의 상사와의 관계를 바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서 신으로 발전하는 것은 무소유, 다 버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짐승에서 인간되는 것은 윤리, 도덕으로 되기 때문에 윤리, 도덕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사람은 혼까지는 되는데 여기서 뭐가 안 되는가? 무소유가 안 됩니다. 신의 경지인 무소유까지 이르려면 공동체 훈련을 해야 돼요.

소유란 사유재산인데 그 사유재산을 공동체에 완전히 헌납하고 공동생산, 공동소비로 나아가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겁니다. 애 장난감 살 돈이 필요하면 아무개, 얼마, 이렇게 장부에 기입하고 공동의 소유인 돈을 꺼내가는 겁니다. ‘네 것 내 것 없이 필요에 따라 쓰고 능력에 따라 일하는 것’ 말이 얼마나 좋습니까?

할머니들 같이 능력 없는 사람은 조금 일하고, 하루 세끼는 다 얻어먹고, 젊은 사람들은 힘이 남아도니까 하루 열 시간 일하고, 열 시간 일했다고 네 끼 먹으면 안 되고 역시 세끼 먹는 것, 이런 것은 다 지옥입니다.

소유가 없으니까 남의 것을 빼앗을 필요도 없고 가진 것도 없으니까 빼앗길 고민을 안 해도 되니까 ‘천국이 따로 있겠는가? 이것이 천국이지’ 라는 계산에 의해서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 영성훈련이라는 것을 하는 겁니다. 짐승에서 인간, 곧 육에서 혼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필요한 것이 윤리, 도덕이라고 했는데 이것을 두자로 하면 사랑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사랑’으로 하고 신으로 가는 단계에서는 ‘무소유’입니다. 신의 경지에 들어가면 그 다음에는 침묵입니다. 말을 안 해요. 꼭 우리교회 같아요. 우리교회는 완전히 신의 경지에 있는 것 같아요(?).

틱 나한이라는 사람은 걷는 것을 통해서 신의 경지에 나아가는 거예요. 그냥 막 걸으면 안 되고 1미터 걷는데 한 시간, 그렇게 하는 방법도 있고 또 다른 방법은 벽에다 점을 찍어 놓고 그것을 마냥 주시해요. 그런 가운데 뭔가 깨달음이 온다는 거예요. 발걸음으로 하는 방법, 점을 찍어서 하는 방법, 이것도 저것도 어려운 사람들은 ‘남묘호랑개교’처럼 주문을 외우는 방법을 써요.

어떤 기독교단체에서는 주기도문을 수천 번씩 외우는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순복음교단 같은데서는 주기도문 수천 번 외우면 방언이 터진다고 가르쳐요. 떼제공동체, 꽃동네, 이런 사랑을 실천에 옮기는 공동체가 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가? 자기가족끼리만 하면 제대로 실적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 모여서 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런 식의 모든 공동체의 문제점은 이들이 영성훈련을 통해서 -5, -4, 이렇게 점차점차 높아진다는 겁니다. 지도자급에 해당되는 사람은 +5 또는 +6에 해당되기 때문에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 같은 영도자가 되는 거죠. 높아진다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다 일소에 부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천사처럼 높은데 계시는 것이 아니고 제일 밑바닥, - 무한대의 밑바닥에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어떤 인간도 예수님보다 더 낮아졌다는 것 때문에 구원 못 받는 일이 없도록, 예수님이 감당 못할 죄가 아예 없도록, 간음을 천 번 했든 살인을 만 번 했든 예수님이 감당 못할 죄를 일체 남기지 않기 위해서 인간들의 제일 밑바닥으로 낮아진 거예요.

이것은 단순히 십자가의 고통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고통이야 요즘도 필리핀이나 남미같은 경우에 고난주간만 되면 자기혼자 널뛰기 하듯이 하는 사람들 참 많습니다. 자기 혼자 십자가에 자기를 못 박아서 자청해서 고난 받겠다고 난리치는 사람들 많이 있는데 제가 제발 부탁하는데 고난주간에 금식하지 마세요.

고난주일에 금식하지 마시고 그저 하루 한 끼라도 맛있게 먹으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금식입니다. 힘내서 남 사랑하면서 살면 되지, 굶어서 얼굴 찡그려 가면서 ‘엄마 지금 밥하고 있어? 나 지금 금식중이라는 거 모르나?’ 그러지 마세요.

주님께서는 그런 것조차 보탤 필요도 없을 만큼 완벽하게 다 처리를 하기 위해서 제일 밑에 왔는데 십자가는 단순하게 육체적인 고통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죄를 다 받았다는 뜻에서 십자가에요. 모든 죄를 대신 다 받았다는 뜻에서 십자가라는 말이죠. ‘십자가, 아프겠다’ 하는 일시적인 신체적 고통이나 감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에서 혼, 혼에서 영, 이런 식으로 발전할 필요조차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어디에 있더라도, 아파트에 있든 학교에 있든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공동체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기 때문에 일부러 공동체를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관계없이 주님을 알면 한 가족이 되지요.

왜냐하면 주께서 성령으로 다 통제하고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낮아지심’이란 단순히 예수님께서 혼자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나 봐라. 겸손하잖아. 너희도 겸손해라’ 라는 뜻이 아니고 ‘인간이 늘 높아지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인간(아담)은 인간이면서도 신이 되려고 하고 하나님은 신이면서도 사람이 되었다.’

방향이 거꾸로 되었다는 거예요. 그 점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거룩을 어디서 찾아야 되느냐 하면 나보다 더 비참한 모습 속에서 거룩을 발견해야 됩니다. 나보다 더 낮은 곳에 거룩이 있어요. 나보다 더 낮은 곳에서 나 대신 죄값을 받는 그 속에서 진정한 거룩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이 모든 것을 다 일소하는, 금지시키는 예수님의 낮아지심입니다.

아시겠지요? 이것이 빌립보서 2:5-11에 나옵니다.

빌립보서 2:5-11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답변을 봅시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곧 그의 강생하심인데 또한 비천한 지위에 나셔서 율법 아래 복종하시고 금생에 여러 가지 비참함과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을 받으시고 묻히셔서 얼마 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 거하신 것입니다.’

맞기는 맞는데 이것은 너무 현상적으로만 따진 경향이 있어요. 맞는 말인데요. 그렇다면 우리가 방향이 ‘예수님이 고생하셨는데 저는 이제 고생 안하렵니다. 이제는 예수님 이용해서 더 높아지면 되겠네요’, 이렇게 될 수가 있다니까요. 우리가 눈초리를 육에서 혼, 혼에서 영, 이런 식으로 높아지는데 둘 것이 아니라 저 밑으로 낮추는, 우리보다 더 낮아지신 분에게로 낮추는 모습으로 해야 되지요.

다시 해 봅시다. 인간은 육에서 혼으로, 다시 혼에서 영으로 발전하려고 했는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신이면서도 오히려 거꾸로 인간을 찾아오셨기 때문에 방향을 위쪽으로 올라가는 방향에서 반대로 아래쪽으로 고칠 필요가 있어요. 내가 신 되기 위해서 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 되심에 대해서 믿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한 가족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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