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8-신명기(강의정리)-잘린부분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8-신명기(강의정리)-잘린부분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1)
◈ 문제는 믿음이 없기에 !!
그러니 교회가 진짜 교회다우려면, 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지, 왜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구약성경을 통해서, 특히 신명기와 여호수아를 통해서 제대로 이야기를 해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에발산과 그리심산의 이런 내용들을 가지고 말이다.
그런데 전혀 연결이 되지 않으니, 교인들이 과거에 절에 가던 그런 사고방식으로 교회에 와도 전혀 부담감이 없이 듣고 '아멘' 이라고 하면서 앉아있다는 것이다. 목사는 그렇게 해야 월급이 많아지는데, 항상 그렇게 돈에 관련이 되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말씀을 보다가도 문득 한국교회를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암담하기가 짝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제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말이다. 왜 성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는지, 여호수아에서 축복산과 저주산이 왜 나오는지, 그러한 것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아예 관심조차도 없는데, 그것은 믿음이 없어서 그러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믿음이 없으면 이러한 내용이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목사가 제 아무리 성경을 백 독을 하라고 윽박질러도, 그렇게 읽으면 무엇을 하는가? 성경이 보이지를 않는데 말이다. 그러니 십자가의 안목을 가지고 이렇게 성경을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어떻게 되지요?
전혀 그러한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데, 지적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난 사람은 오로지 주님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시골 할머니들 가운데서도 그러한 분들을 여럿을 보았다는 말이다.
그런 할머니들이 과거에 교육을 제대로 받았는가? 대부분이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를 못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복음을 아는 그러한 할머니들의 고백은 대부분이 이러한데, "우리가 자식이 많고, 오래 살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예수님이 내 죄를 용서해주었으면 그만이지. 이제는 아무런 걱정도 없어" 라고 한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는 어떠한가요?
어린아이들은 말로 고백을 하지는 못하는데, 고백을 할 정도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개념들을 조합을 해주어야 하는데, 하지만 아이들은 그러한 조합능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자기가 알고 있는 좁은 범위 내에서만 골라낸다는 것이다. "엄마, 이제는 동생하고 사이좋게 지낼게" 라고 말이다.
하지만 히브리서에도 나오지만, 마냥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두고서 믿음이 없다고 하지 말고, 그냥 어린아이의 믿음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가 정말 말씀대로 살아가는지, 그것은 성령께서 인도하실 문제이고 말이다.
(히 5: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저희는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히 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 질문 - 이 세상의 지식이 많다고 해서 성경의 내용을 아는 것과 관계가 없지요?
물론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제가 아는 분 가운데서, 제일교회에 다니고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데도, 그러나 이 복음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 질문 - 최고수준의 지식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그렇지 않나요?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복음을 아는데, 하지만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천박스럽게 하고, 유치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복음은 분명한 복음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중심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인데요" 라고 하면, 그러면 오케이라는 것이다.
* 질문 - 우리가 택함을 받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한 도구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4살 먹은 아이가 그만 죽었는데도, 그런 가능한가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 아이가 성경의 이런 내용들을 모를지라도 얼마든지 부모에게 복음을 전한다든지 하는, 그런 도구로서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아이도 구원을 받았고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십자가에서 선택이 나오는데, 그런 선택이 나오면서 선택된 사람에게는 십자가의 중심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4살 박이 아이의 경우에도, 자기는 몰라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십자가의 중심이 나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방금 질문한 것과 같이, 그 아이의 죽음을 통해서 라든지, 그렇게 해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것은 70세가 된 노인의 경우에도 동일하고 말이다.
◈ 구약의 에발산이 신약의 십자가 !!
하지만 어른들의 경우에는, 그런 것을 알면서도 믿음이 바쳐주지 않아서 도저히 믿지를 못하겠다고 난리라는 것이다. 일종의 반발심으로 말이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하나님이 어디에 있지? 십자가만 대수이냐?" 라는 식으로 말이다. 심지어 하나님은 인간이 만들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들은 복음을 이상하리만큼 거부하는데, 즉 에발산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돌려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지 말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언약궤를 저주의 에발산이 아닌 자꾸만 축복산인 그리심산으로 가지고 가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약에서처럼 십자가로 가야 축복을 받는데, 왜냐하면 이 십자가가 바로 저주의 형틀인데, 즉 에발산(?)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저주는 싫다고 하면서, 축복산으로 슬금슬금 옮겨간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그냥 악세사리 정도로만 여기고 말이다.
◈ 아빠, 신명기가 뭐예요?
이제 오늘 강의를 마치고자 하는데, 누군가가 신명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미 갈 사람은 다 가버렸습니다" 라고 하면 되는데, 즉 애굽으로 가자고 하던 조상들은 이미 다 떠났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후손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빙빙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알았는고 하니, "아하, 우리 엄마 아빠 세대는 그렇게 개떡이고 개판이었구나" 라고 하는, 즉 부모세대들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 하나님은 약속의 땅에 자기 이름을 !!
그래서 이제는 지도자 모세도 없고 그의 지팡이도 날아가 버린 상황에서, 정말이지 하나님의 관심은 무엇인고 하니, 인간들의 구원이 아니라 약속의 땅에다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두려고 하는데,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맹세를 이루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신명기를 제대로 알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없으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비록 이 세상에서 우리 자신밖에는 모르는 자들로 태어났지만, 그러나 이제는 복음을 알아서 저희들이 하나님의 도구임도 알았습니다. 그저 우리 좋은 대로가 아니라, 오로지 주님이 기뻐하는 데로 쓰임을 받게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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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저희들이 이렇게 목사님을 통해서 성경말씀을 구체적으로 배우고, 알아듣고 이해하게 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그리고 그것도 어떤 도구로 사용되기 위함입니까?
물론 하나님의 은혜인데, 초대교회의 경우에도 경찰이 예수를 믿는 사람을 죽인다고 했을 때 그들이 모였겠는가? 겁이 나는 사람들은 토끼지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아직 경찰이 와서 잡아가지 않는데, 사자굴에도 넣지도 않고 말이다. 지금은 그런 좋은(?) 시절인데, 하지만 안일해지고 태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하는 성경공부는, 환경이 좋고 나쁘고 하는 것을 떠나서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라는 것이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말씀공부로 인도함을 받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말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성도의 본분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지옥으로 간다는 말은 아니고, 언제 말씀에 '뽕' 하고 가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아무튼 하나님의 은혜라고 보면 되는데, 지금 우리가 이렇게 모이다가도 여건들이 허락되지 않으면 모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빠서 도저히 안 되는데, 억지로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도 양심에 가책을 받아서, "목사님, 그래도 제가 일주일에 한번은 나옵니다" 라고 하다가, 그 다음에는 한 달에 한번, 그 다음에는 일년에 한번, 그러다가 그 다음에는 "예, 나중에 나이가 좀 들면 나오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양심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도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르고, 그런다고 해서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고 말이다. 그것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인도하실 문제이고, 우리는 지금 이렇게 모여서 성경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를 고맙게 여기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 말이다.
* 질문 - 에베소서 6장 1절에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라고 하는데, 이제 말씀을 공부하면서 이것은 이해가 되는데, 그런데 오히려 전에는 별로 고민하지 않던, 3절에 나오는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라는 말씀이 어려워요.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요?
(엡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엡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엡 6: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것만이 도구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그 형편도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만 이야기한다면, 즉 장수하는 것은 세속적인 축복이니 버렸다고 하면, 예수님을 믿는 그것만 복이 되니 다른 환경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지 않은 것이 되는데,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그렇게 하면서 장수하고 형편이 나아지는 것까지 다 합쳐서 예수님을 잘 믿으라고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이 잘살고 오래 사는 것을 두고 복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을 주 안에서 부모를 잘 공경하는, 주께서 그러한 전체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즉 장수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예수님을 잘 믿는, 그런 사람을 주님께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자기도 그렇게 해달라고 하면 안 되는데,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역할이 있고, 자기는 자기 나름대로 주님의 도구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질 믿는데 죽었다고 하면, 그것은 그 사람 나름대로 그런 도구로 쓰임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각자가 다 다르다는 말이다. 그것이 로마서 12장에 나오는데, 각자가 쓰임을 받는 곳이 다들 다르다는 것이다. 은혜의 분량이 다 따로 있다는 말이다. 지옥에 간다는 말이 아니고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복의 기준이, 오래 살고, 잘 먹고 하는 것에 맞추어지면 어떻게 되나요?
그것은 처음부터 엉터리인데, 물론 예수님을 믿고, 부모님을 잘 섬기고, 잘 먹고, 또 오래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의 경우에, "당신에게 복은 어떤 것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 사람은 "예, 저의 복은 예수님을 믿는 것밖에 없습니다" 라고 대답할 것이란 말이다. 아니,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노리든 말든 상관없이, 그 사람은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 질문 - 과거에 목사님께서 말씀하기를, 선택을 받은 자는 하나님께서 낚시대로 건져서 구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 때 광야를 그렇게 질질 끄집고 다닌 것처럼, 예수님의 그 은혜를 감추어지게 해서 구원을 시킨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자기들의 못남과 예수님의 은혜를 겹쳐서 구원시킨다는 것인가요?
그리고 4살 짜리 어린아이가 죽은 경우에, 정말 자기가 천당에 간다는 것을 아는가요?
비록 성인이 된 우리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유치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 아이 나름대로는 다 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기준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데, 그래서 우리는 태어난 지 하루만에 죽은 영아라고 할지라도 전혀 장담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해서도 안 되고 말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선택된 자는 천당에 간다" 라는 것인데,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이러이러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하는, 즉 인간의 그러한 모습을 끄집어낼 수가 없다는 말이다. 물론 가롯유다와 같은 악역으로서의 선택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 질문 -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잘못 이해하게 되면, 마치 낚싯대로 끌어올려서 구원을 시키는, 바로 그런 식으로 들릴 수도 있지 싶은데 말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저는 어린아이처럼 구원하는 그것이 더 적합하다고 보는데,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말이다.
* 질문 - 세계적으로 유명한 신학자가 "나는 예수님이 좋아요" 라고 이야기한 것이나, 우리 엄마같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것이나, 오히려 우리 엄마가 말한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는데, 예수님이 보시기에 말이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런 것이 좀 유치해 보이겠지만, 그러나 주님은 그 사람의 행동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제가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는 그 어떤 행동을 하든지 간에, 성부와 성자 사이에 맺은 계약에 의해서만 모든 것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구원도 그렇게 되는 것인데, 즉 그 어린아이를 위해서 천사가 동원되고, 예수님이 기도하고 계신다는 말이다. 2살이든 4살이든 간에 말이다. 예수님께서 기도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 아이의 행동여하에 상관이 없이 말이다. 다만 성경에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말라" 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유치하게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도 있는데, 어떤 사람이 성경공부도 많이 하고 자기 말을 표현도 잘하는데, 그것이 4월까지는 그렇게 잘 하다가, 그 다음에 자기가 하는 사업이 잘 안되니까 말이 그만 격해지다가, 그만 8월이 되니 말이 또 고상해지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정말 그 사람의 취향인지, 그 시점을 잡아서 이야기하기가 곤란하다는 말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특정한 기준을 잡으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 질문 - 제가 4살 먹은 어린아이의 경우에도 구원을 받느냐고 질문한 것도, 우리가 자꾸만 그러한 특정한 것을 기준으로 삼으려고 하니,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느냐는 것인데, 사실은 기준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예수님께서 대신해서 기도해주고 하는 것이 낚싯대로 보일 수도 있지만, 물론 전체적으로 그렇게 표현해도 괜찮겠지만,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고난을 주어서 자기 죄를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나타나는 것인데, 다만 어린아이는 유치하기 때문에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렇다면 고난을 통해서 선택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는 말씀이지요?
당연한데, 그것이 베드로전서 2장 21절에 나온다는 것이다.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라고 말이다. 이것이 4살 박이 어린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성인들에게 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물론 4살을 먹은 아이에게는 하나님의 기준이 따로 있는데, 베드로전서 2장의 이 말씀을 가지고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를 들어서, 성경에 "좁은 길로 가라" 라고 하면, 우리의 경우에, "하나님, 부자는 어떻게 합니까?" 라고 묻고 싶지만, 부자도 역시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즉 그에게도 나름대로 좁은 길이 다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드러나는 것이 거지와 같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2008,07,11 새벽 00시 16분에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