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8-신명기(강의정리)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8-신명기(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1)
04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08 - 신명기
04,06,19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출애굽기 - 산 위의 거룩이 산 아래로 !!
지난 시간에는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대해서 공부를 했는데, 그 차이점이 무엇이었는가? 출애굽기는 거룩이 산 위에서 산 아래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 내부에서 여러 가지 충돌이 생기게 되는데, 즉 모세가 십계명을 받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십계명을 들고 산밑으로 내려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출애굽기를 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우리기 믿는 것은 인간이 지어낸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만들고 십계명을 짓고 했느냐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을 한번 믿어볼까, 괜찮은 율법을 한번 지켜볼까" 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이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준비해놓은 것들이 이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점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어떤 현상들이 일어나는고 하니, 자기가 알아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돈도 안 되고 하니, 그만 일종의 취미라고 여겨버리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알아서 택하고 버리는 것이 말이다.
여러분은 출애굽기와 민수기를 공부하면서,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믿음이 없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에 목숨을 걸었는데, 모세에게 말이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이 와도 여전히 모세에게 매달렸다는 말이다. 그래서 모세를 모욕하면 죽이려고 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모세에게는 율법이 있으니 말이다.
◈ 언약궤의 등장 - 거룩이 더러움을 이기다 !!
다시 말씀드리지만, 산 위의 거룩이 산 아래로 내려왔는데, 무엇으로 내려왔는고 하니까, '언약궤'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언약궤는 너무나도 거룩하기 때문에, 12지파들 가운데서 레위지파 외에 다른 지파들이 접근하면 모두 다 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약궤가 멈추어서면, 요즘 말로 하자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아무 지파나 함부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심지어 레위지파도 함부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48번으로 하는 순번제로 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너무나도 거룩하니 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하지만, 산 위의 거룩이 산 아래의 거룩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언약궤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거룩한 언약궤가 진격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고 하니까, 그렇게 마구 넘치면서 흐르던 요단강도 그냥 갈라지고, 그렇게 튼튼하던 여리고 성도 힘없이 무너지고, 그렇게 적들도 모두 물러난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러한가? 왜 적들이 다 줄행랑을 놓는가? 이 언약궤는 외관상으로 보기에는 하나의 나무상자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것은 바로 오직 이 언약궤만이 거룩하고, 다른 모든 것들은 다 더럽기에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즉 거룩이 더러움을 이기는 차원에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 언약궤 홀로 블레셋을 폭격하다 !!
이것을 보다 더 확실하게 머리에 새기기 위해서 사무엘상을 보겠는데, 5장을 보면 이 언약궤를 그만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기게 되는데, 그런데 이 언약궤가 가는 곳곳마다 말썽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언약궤도 빼앗고 했으니 자기들은 당연히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말이다. 마치 핵폭탄을 자기 집안에 들인 것과 동일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첫째로는 언약궤가 다곤신을 이겼는데, 둘을 같이 두었더니만 다음 날에 보니 그 다곤신상이 자빠져 있는데, 목이 부러지고 손목이 끊어지고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아스돗으로 옮겨갔는데, 거기에서도 독종이 임하고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금 에글론으로 옮기는데, 거기서도 전혀 감당이 안 되고 해서, 그래서 결국은 이 언약궤가 다시 이스라엘로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삼상 5:1)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지고 에벤에셀에서부터 아스돗에 이르니라
(삼상 5:2) 블레셋 사람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
(삼상 5:3)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찌기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삼상 5:4)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남았더라
제가 박사교회에 있으면서 이 사무엘상을 설교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 언약궤가 돌아다니는 위치를 조사했는데, 지명들을 일일이 확인해서 그 거리를 계산해서 따져보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이야기하자면, 대구에서 출발을 했다면 지리산으로 해서 순천과 하동으로 해서, 그리고 통영을 거쳐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남쪽지방으로서, 전라남도의 보령 근처라고 보면 되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은 이 블레셋을 정복하지를 못했는데, 그런데 이 언약궤는 혼자 돌아다니면서 모두를 다 쳐부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전리품으로 사로잡힌 언약궤가 말이다. 그리고 나서는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언약궤는 썩어빠진 이스라엘도 감당하지를 못하는데, 그래서 벧세메스 사람들이 그 궤를 들여다보다가 그만 50,070명이나 죽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까, 산 위에 있는 거룩을 사람들이 전혀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러운 인간들이니 말이다.
(삼상 6:19)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고로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삼상 6:20) 벧세메스 사람들이 가로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뉘게로 가시게 할꼬 하고
◈ 은혜 위에 은혜러라 !!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 그래서 요한복음 1장에 보니, "은혜 중에 은혜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도 예수님이 전혀 감당이 안 되는데, 그래서 그분이 자기의 영광을 감추시고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로 오셨기에, 그래서 우리와 예수님의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요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 비천한 거룩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
그렇게 낮고 낮은 종의 모습으로 오니, 그것이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잘 나오는데, 사람들이 우습게 여겨서 그분의 옷을 벗기고 침을 뱉고 그야말로 함부로 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분명 창조자인데, 그래서 우리는 모두다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자기를 낮추시고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것도 죄인의 모습으로 왔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은 너희들이 나를 몰라서 그렇게 하는데, 나중에 한번 두고봐라" 라는 식으로, 그런 마음가짐으로 이 세상을 살았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 라는 것인데, 결코 사람이 하나님이 된 것이 아니고 말이다. 원래는 하나님인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무서운 하나님인데, 하지만 그분이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그런데 그 어떤 인간보다도 더 낮고 비천하게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와의 만남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즉 거룩은 거룩인데, 놀랍게도 우리보다 더 낮은, 즉 '비천한 거룩' 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이 땅에서 활동하셨다는 것이다.
◈ 레위기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에 대해서 !!
지금까지가 출애굽기에 관한 것이고, 그러면 레위기는 무엇인가? 지난 시간에 언약궤의 내막에 대해서는 레위기에서 이야기를 했는데, 이 레위기에 보니 하나님을 달래는(?), 즉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제사가 나오는데, 몇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는가? 5가지라는 것이다. 만약에 이런 제사가 없다고 하면 언약궤을 담당하는 레위지파도 죽는다는 것이다. 즉 제사장도 말이다. 어디에서 감히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과 같이 상종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 같이 양을 바치고 피를 뿌리고 태우고 하는데, 그것을 '상번제(常燔祭)' 라고 하고 말이다. )
그렇게 제사를 드리는 형식에 따라서 5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시기에 따라서도 또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즉 상번제는 일기를 쓰듯이 매일같이 드리는 제사인데, 즉 "아침에 양 한 마리, 또 저녁에 양 한 마리", 그렇게 매일 같이 피를 뿌리고 태우고 하니까, 거룩한 하나님께서는 속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셔서 그들이 승리토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레위기의 내용이라는 말이다.
◈ 민수기 - 거룩한 분과의 동행 !!
그 다음에 민수기인데, 그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과의 동행' 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지난 시간에 신앙생활은 자기 혼자서 열심히 하고 땀내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헬스나 자기 혼자 하고, 등산과 같은 취미생활은 그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신앙생활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같이 등산을 하면 힘이 빠질 때 도와주고 하면 좋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그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우리를 통째로 끄집어서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다 하다가 안 되면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끌고 가신다는 말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 반대로 가려고 하는데, 즉 우리는 넓은 길로 가려고 하고, 주님은 좁은 길로 가자고 고집을 부리고 말이다. 항상 그렇게 싸운다는 것이다. 물론 언제나 주께서 이기지만 말이다.
이러한 거룩한 분과의 동행이 바로 민수기인데, 그렇다면 이 민수기에서 거룩한 하나님과의 동행이 제대로 이루어졌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무려 하나님을 10번이나 믿지 못하고 시험을 해서 하나님을 그만 화나게 했다는 것이다. 마치 출애굽 때의 10가지 재앙처럼 말이다.
◈ 이스라엘의 구호 - 애굽으로 돌아가자 !!
그렇게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내세운 구호가 있었는데, 그 구호가 바로 "애굽으로 돌아가자" 라는 것이다. 이것이 11장에서 13장에 나오는데, 또한 한 가지를 더 추가하면, 자기들의 지도자는 자기들의 손으로 뽑겠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원망으로 인해서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서 죽게 되고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 동조해서 탐욕을 부리다가 죽은 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모세와 같은 레위지파의 '고핫자손' 인데, 그들의 주장이 무엇인고 하니, "아니, 모세 당신만이 지도자인가? 우리도 한번 그런 일을 해보자" 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2만명 이상이나 죽임을 당했는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게 하심으로서, 자기가 과연 누구의 편인지를 보여주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죽은 나무인 지팡이에서 싹이 난다는 것이 어디 말이 되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아론의 믿음이 좋아서 그렇게 싹이 나게 하고, 또한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는 이런 싹이 난 생명의 지팡이가 인도를 하겠다는 것인데, 즉 생명이 죽음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인도하겠다는 말이다. 생명이 죽음을 극복하는 말이다.
◈ 모세언약 - 모세를 생명의 기준으로 !!
그래서 이 테스트(?)를 할 때 다른 지파들의 지팡이도 함께 가져오게 하시는데, 그러나 다른 지파들의 지팡이는 전혀 싹이 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아론의 지팡이는 살구나무에서 싹이 나듯, 그러한 싹이 난다는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말이지 생명의 물줄기는 어디에 있냐는 것인데, 즉 하나님께서 누구의 편을 들어주느냐는 말이다.
사실은 그들 모두가 다 똑같은 인물인데, 생명과는 상관이 없는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기준으로 삼은 인물이 있는데, 그가 바로 그 당시가 모세언약의 시대이기에, 모세가 그런 인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론은 모세에 포함되는 것이고 말이다.
◈ 민수기 22장 - 모압자손의 등장 !!
오늘은 민수기 마무리를 해야 되겠는데, 일단 여기서 민수기 22장을 살펴보자.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고핫자손을 비롯한 반란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이스라엘 외부에서는 누가 달려들었는가? 그들이 곧 '모압' 이란 민족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의 후손인가? 창세기 19장에 보면 좀 낯뜨거운(?) 장면이 있는데, 즉 롯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그녀들이 남편이 없기에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서 동침을 했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후손이 바로 '모압'이고, 그리고 '암몬'이라는 것이다.
(창 19:36) 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
(창 19:37)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창 19: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족속의 조상이었더라
◈ 모압 자손의 등장 - 저주는 없다 !!
그런데 이 모압의 후손들이 모여서 나라를 이루면서 잘 살고 있는 곳에, 그렇게 대단하다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는 것이다. 이때에는 '발락' 이라는 자가 왕이 되어서 모압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래서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진행해서 모압 평지에 이르렀을 때, 이들이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의 기이한(?) 행적을 들었기에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나름대로 준비를 했는데, 그것이 바로 '발람' 이라는 나름대로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는 선지자에게 돈을 좀 주면서 부탁하기를, 제발 그들을 저주를 좀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방 선지자로서, 엉터리이지만 말이다.
(민 22: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진행하여 모압 평지에 진쳤으니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이더라
(민 22:2)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민 22:3)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의 많음을 인함이라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의 연고로 번민하여
(민 22:4)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음 같이 우리 사면에 있는 것을 다 뜯어먹으리로다 하니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민 22:5) 그가 사자를 브올의 아들 발람의 본향 강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가로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하였고
(민 22:6) 우리보다 강하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쳐서 이기어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 모압, 발람, 발락이 보여주는 것은?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모압' 자손과 '발람' 이라는 선지자와 '발락' 이라는 왕을 두었을까? 그것은 오늘 우리들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고 하니, "하나님께서 함께 해서 생긴 축복은 외부에서 어떤 저주를 해도 전혀 저주가 되지 않는다" 라는 것인데, 덤프트럭으로 저주를 24시간 동안 주루룩 갖다 부어도 말이다. 그래서 발람이 저주를 해도 그 저주가 저주가 되지 않고 축복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는 자들은 이것 자체가 축복이기에 외부에서 아무리 공격을 하고 저주를 퍼붓고 해도, 그 축복은 절대로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기 때문에 말이다. 그것이 로마서 8장에 보면 나오는데, 한번 살펴보자.
◈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있는가?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는데, 그러니 누가 우리를 감히 정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데, 감히 어느 누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가?
◈ 오직 예수님의 기도덕분에 !!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자면, 이렇게 하나님이 계시고 그 우편에 예수님이 계시고, 또 한 사람이 이렇게 있는데, 그런데 이 양반은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다. 기도를 해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예배를 드려도 건성으로 하고, 매일같이 야구경기나 보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께서 그러한 인간을 위해서 먼저 스스로 기도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기도의 능력에 의해서 그 어떤 자라도 그 관계를 끊을 수가 없는데, 제 아무리 마귀라고 해도 말이다. 그 사람은 그것도 모르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그냥 살아가는데 말이다. 오직 예수님의 기도덕분에, 하나님의 사랑이 계속해서 넘쳐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은 "어떻게 그런 일이, 그래도 자기가 기도를 좀 해야지" 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 즉 믿지를 못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또 그것이 그냥 믿어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는데, 자기 기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행하심을 믿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너무 교인들에게 행동지침을 통해서 너무 과도하게 짐을 지운다는 것이다. 마치 자기가 행동을 잘못하면, 주님과의 그런 관계가 끊어지는 것처럼 협박을 한다는 말이다. 바로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모압이나, 암몬이나, 불레셋이라는 이방나라들이 가졌던 사고방식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이다.
◈ 로마서 8장이 이미 민수기 22장에서 !!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아닌 그 외부에 있는 이방종족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즉 인간의 '종교성' 이라는 말이다. 즉 로마서 8장에 나오는 그 내용이 이미 구약의 민수기 22장에서 미리 펼쳐졌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이 이스라엘의 모습이기도 한데, 그들이 곧 이방민족이 아니던가?)
그러면 아마 이런 의문점이 생기지 싶은데, "목사님,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나님께 사랑을 받을 만큼 대단합니까?" 라고 말이다. 그것이 곧 민수기 23장에 나오는 내용인데, 그들이 결코 잘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 20절과 21절을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구절인데,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민 23:20)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민 23:21)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이게 바로 선지자 발람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이스라엘의 정체를 낱낱이 다 선포하는 부분인데, 발람이 본의 아니게 가짜 선지자가 진짜 선지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지금 이스라엘이 어떤 입장인고 하니, 발람에 의하면 "하나님은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않고,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않는다" 라고 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금도 계속해서 용서해주신다는 말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놀라운 용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외부에서 그 어떤 저주가 들어와도, 그것이 결코 저주가 되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축복이 여전히 유지되면서 영생에 나라에 들어가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허물과 패역을 그때 그때마다 다 없애주는 기능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말이다.
◈ 마귀는, 언제나 선악주의 !!
그렇다면 마귀는 무슨 역할인고 하니, 마귀는 바로 '고소하는 자' 라는 것이다. 마귀는 처음에 아담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있었는데, 이 악마가 잘 알고 있는 것이 곧 '선과 악' 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선악을 인간을 유혹해서 인간에게도 줌으로서 인간도 같이 합류하도록 했는데, 그러니 마귀는 항상 '선악주의' 라는 것이다.
앞에서 마귀는 '고소하는 자' 라고 했는데, 그런데 고소를 하려면 법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마귀는 법에 대해서는 도사라는 말이다. 그래야 고소를 하지 말이다. 욥기에서도 악마가 고소하는 자이고, 스가랴에서도 그렇고, 이렇게 마귀는 언제나 성도를 고소하기 위해서 벼르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완벽하게 살아도, 파파라치를 시켜서 조사하면 걸리지 않는 인간이 없다는 말이다.
◈ '양심'이란 이름으로 !!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인간은 이러한 악마와 동일한 품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인간은 이미 '양심' 이라는 이름으로 자체적으로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프로이트는 '초자아' 라고 했는데,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양심의 가책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도둑질을 하다가 주인에게 들켜서 그만 둔기로 때리고 도망을 치고 말았는데, 그런데 그 도둑놈이, 아니 그 강도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그 다음날에 미안하다고 쪽지를 적어놓고 가는 바람에, 그 종이에서 그만 자기 지문이 나와서 잡혔다는 것이다.
◈ 가룟유다가 왜 자살을 했는가?
이것이 성경에도 나오는데, 가룟유다가 자살을 해서 죽었는데, 그가 왜 자살을 했는가? 그것은 바로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라는 것이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지금 우리는 선악의 기준을 가지고서 매일같이 우리를 괴롭히는 '양심'이란 괴물을 날마다 품고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꿈속에서도 함께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성령이 없는 사람은 양심만 있고, 성령이 있는 사람은 성령도 있고 양심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심은 우리를 고발하고, 성령은 십자가의 피를 가지고 우리에게 들이댄다는 말이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살아간다는 것이다.
◈ 잠시, 양산 부부세미나를 !!
몇 년 전에 양산에서 수련회를 하면서 상당히 과격한 소리를 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꽤 충격을 받았다는 말이다. 늘푸른 교회와 연합해서 한 수련회였는데, 뭐라고 했는고 하니까, 남편의 경우에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쓸데없이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아내에게 솔직하게 고백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백이면 백이 다 반드시 후회한다는 것이다. 결코 마누라가 용납하지 않으니 말이다.
흔히 사람들은 자기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솔직히 다 털어놓으면,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잘했다고 칭찬을 들을 줄 알겠지만, 그래서 모든 일이 잘 무마될 줄 알지만, 그러나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한 방법이 바로 마귀가 우리를 더욱더 자기 의에 사로잡히게 하는, 그런 악마의 전형적인 수법이라는 것이다.
◈ 착하게 살려고 애쓰지 말자 !!
여기에 대한 주님의 수법(?)은 무엇인고 하니까, "아니, 이야기를 하나 마나 이미 다 끝난 일을 가지고서 왜 시비를 거느냐?"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미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했다고 하는데, 그런데 왜 되도 못한 인간의 양심을 가지고서 시비를 거느냐는 말이다. "내 양심은 아직 괜찮아" 라고 말이다. 그러니 괜히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TV드라마를 보면, 남편이 술을 한잔 마시고 와서는, "여보, 미안해. 내가 사실 과거에 동거하던 여자가 하나 있었어. 이해하지" 라고 하면, 그 아내는 "여보, 괜찮아요. 사실은 저도 있었어요(?)" 라고 대답을 하겠지만 말이다. 아닌가? 대화내용이 좀 이상하긴 한데 말이다.
아무튼 자기가 실제로 그렇게 한번 해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마누라 얼굴색깔이 완전히 달라지지 말이다. 그러니 착하게 살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인데, 어디 집구석을 박살낼 일이 있느냐는 말이다. 특별히 착하다고 해서 용서해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 저를 채찍으로 때려주세요 !!
이렇게 서툴게(?) 착한 일을 하다보면 결국 목을 매달아 자살하게 되는데, 만두공장 사장, 대우건설 사장 등, 이런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가지고 기도원에서 악마의 하수인들이 교인들을 때려잡는데 최고의 채찍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또 교인들은 스스로 그들이 그렇게 때려주기를 바라면서 교회에 나오는데, 즉 일종의 매조키즘인데, 그러면 목사는 새디스트가 되어서 마음놓고 그들을 때리고 말이다.
사실 천주교의 고해성사도 그런 것인데, 아니 도대체 신부하고 자기의 과거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 교회는 예수님을 이야기해야지 자기 과거를 가지고 신세타령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제자훈련이나 큐티 등을 할 때 얼마나 힘이 드느냐는 말이다. 믿음도 없으면서 자기의 과거를 들추어낸다고 말이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없는 것도 만들어내야 하는데, 드라마틱하게 보이려고 말이다. 이게 무슨 초등학생의 일기장도 아니고, 물론 그렇게 하면 잠시동안 마음에 쾌감이 올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이 몇 시간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게 무슨 짓인가? 무슨 '뽕'도 아니고 말이다.
남편이 아내에게 자기 과거를 고백하면, 물론 그 당시에는 잠시 서로가 감격할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아내도 넘어가 주고 말이다. 그러나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것이 언제 마누라 입에서 부메랑이 되어서 다시 터져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니, 과거에 그랬잖아" 라고 하면서 말이다.
◈ 부부사랑 - 나도 못난 남편, 너도 못난 마누라 !!
그러니 제대로 된 부부사이가 되려면,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못난 남편, 너도 못난 마누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자기들의 과거는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둘 다 못난 사람끼리 만났으니 예수님 덕분에 한번 살아가 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부간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가요? 진짜 오랜만에 좋은(?) 말을 한번 했는데,
그러므로 주님께서 일괄적으로 모두 다 처리하신 일을 가지고서, 자기가 나서서 새삼스럽게 냄새나는 쓰레기통을 뒤집듯이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무슨 큰 소망을 보겠다고 말이다. 아니, 도대체 자기의 잘남을 다시금 끄집어내어서 어떻게 하겠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남의 못남을 다시 짓밟겠다는 것인가?
◈ 왜 모압민족과 발람을 부각시키는가?
이제 다시 민수기로 돌아와서, 주위에 이방민족들이 많은데, 그런데 왜 하필이면 하나님께서 이 모압민족을 등장시키고, 또 발람을 부각시키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스라엘 민족이 받은 축복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이것을 어렵게 이야기하면, 신약시대 성도들이 예수님 때문에 어떠한 큰사랑과 혜택을 입고 있는지를 미리 당겨서 민수기 23장에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아하, 그 하나님이 이분이고, 또 이분이 그 하나님이구나. 동일한 하나님의 사랑이구나. 그렇구나" 라고 말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발람' 선지자의 행동인데, 이 발람이 돈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한 사실은 잘 알텐데, 그런데 이 발람이 누구에게 책망을 받는고 하니, 우습게도 자기 소유인 당나귀에서 야단을 맞는다는 것이다.
(민 22: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뇨
(민 22:29)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는 연고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
(민 22:30)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네가 오늘까지 네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든지 네게 이같이 하는 행습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느니라
굳이 요즘 말로 하자면, 자기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그만 입을 열어서 주인을 책망한다는 말이다. 혹은 승용차가 입을 열어서 말을 한다고 할 수 있는데, 주인을 차를 타고 시동을 걸고 가려고 하는데, 자동차가 그만 입을 열어서 말을 한다는 것이다. "이 바보같은 놈아, 하나님의 사자가 저렇게 지키고 있는 것도 보이지 않는가?" 라고 말이다.
이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당나귀도 주님 손에 있고, 그 당나귀를 타고 있는 발람 선지자도 주님 손에 있는데, 그러니 그들이 저주하려고 하는 이스라엘은 오죽 하나님 손에 있겠느냐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모압이든지 그 어떤 민족이든지 간에, 어느 누가 쳐들어와도 전혀 겁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모두 용서하시고 축복하는데 누가 감히 시비를 거느냐는 것이다.
◈ 진짜 위기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하나님을 원망할 때 !!
하지만 여기에 하나 조건이 있는데, 외부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할 때는 겁낼 필요가 전혀 없는데, 문제는 이스라엘 내부에서 하나님을 공격할 때인데, 그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외부에서 핍박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러나 자기 내부에서 의심이 일어나서 예수님을 믿는 것을 시큰둥하게 여기고 폼을 잡으면 감당이 안 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외부에서 사회친구들이 교회에 가는 것을 핍박하고 차별을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그런 것은 아무리 저주를 해도 축복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마음속에서 흔들리기 시작하면 곤란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 이스라엘 내부에 또 내부가 !!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이스라엘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그런데 민수기 25장에 가면, 이상하게도 내부에 또 내부가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여인인 모압여자와 음행을 하기 시작하고, 또 하나님도 바꾸어서 모압 신을 섬겼다는 것이다. 여호와는 이제 지겹고 새로운 모압 신이 훨씬 더 좋다는 말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언약궤로 블레셋과 이스라엘을 동시에 공격한 바로 그 멋진(?) 솜씨로, 왜 법궤가 혼자 돌아다니면서 블레셋을 박살을 내었잖아요? 또 이스라엘도 당하고 말이다. 바로 그 솜씨로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해도 가만히 두지 않고 박살을 내었는데, 그때 그들이 염병으로 인해서 그만 24,000명이나 죽었다는 것이다.
(민 25: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민 25:2)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민 25: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민 25: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을 떠나리라
(민 25:5)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민 25:9)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명이었더라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음 10절에서 13절이 더욱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 25: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민 25:11)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민 25:12)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민 25:13)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 이스라엘 내부의 내부 !!
다시 정리하겠는데, 외부에서 들어오는 적은 아무리 강해도 저주가 되지 않지만, 그런데 왜 내부에서 다른 신으로 교체를 원한다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걱정이 되는데, "만약에 제가 의심을 하게 되면 지옥에 갑니까?" 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가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전혀 염려할 것이 없는데, 왜냐하면 우리의 내부를 지키는 또 다른 내부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이 곧 거룩한 제사장, 즉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이라는 것이다. 어디 성도라고 해서 믿음이 항상 좋은가? 전혀 그런 것이 아닌데, 언제나 천사와 같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언제나 감사와 평안함이 흘러 넘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교회에 가서는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아멘' 하다가도, 집으로 가서는 어떻게 하는가? 아이들만 보면 열을 받아서 "너거들, 밥 묵었나?" 라고 하면서, 자기 성질을 마구 부리다가 받은 은혜를 모두 다 날려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은혜가 날아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 제사장 언약 - 영원한 언약, 평화의 언약 !!
히브리서에 보면 예수님을 두고서 '영원한 제사장' 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민수기 25장 10절 이하에 보면, 무슨 언약이 나오는고 하니까, '영원한 언약'이 나오는데, 즉 하나님께서 영원한 언약을 준다는 것이다. 혹은 '평화의 언약' 이라고도 하고 말이다.
이런 부분이 좀 어려운데, 하나님께서 어떤 경우에 영원한 언약이라고 규정을 짓는고 하니, 이스라엘 내부에서 일어나는 죄를 처리했을 때,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체계와 기능을 두고서 말하는데, 그것은 영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약하고 언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말이다.
만약에 인간을 보고 "완벽해야 돼. 완벽하란 말이야" 라고 한다면, 그 완벽함으로 영원한 언약을 대신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니 그것이 영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인데, 한 평생을 잘하다가도, 물론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마지막에 잘못하면 끝이라는 말이다. 20년 동안을 잘 믿다가 마지막에 미끄러지면 말이다.
◈ 영원하다 - 용서가 계속 된다 !!
그러니 '영원' 이라는 것이 어떤 구조인고 하니, '완벽하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용서함을 지탱해주는 언약이 영원할 때, 비로소 그 사람이 어떤 죄를 지어도 용서가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용서함을 유지할 수 있는 언약이 바로 '제사장 언약' 이라는 말이다.
민수기 25장에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엘르아살의 손자인 비느하스와 영원한 평화의 언약을 맺었는데, 이 평화의 언약이 언급된 것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에 보면 다시 제사장 언약이 언급이 되어있고, 신약에 오면 히브리서 나타나듯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 영원한 언약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 민수기에서의 교회 - 거룩하게 해주는 엔진이 매일작동 !!
여러분들은 이 민수기를 마무리하면서 어떤 느낌을 갖는가? 산 위에 있는 거룩이 산 아래로 내려와서 백성들과 동행하시는데, 그런데 결코 백성들이 완전하지 않기에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으로서, 즉 영원한 언약인 제사장 언약에 의해서 내부에서는 계속적인 용서가 가능하고, 그리고 외부에서는 공격이 가해진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이 그 체제를 굳혀간다는 말이다.
여기서 제가 질문을 하나 던지겠는데, 이러한 민수기의 입장에서 보면, 교회란 과연 무엇인가? 교회는 거룩한 곳인데, 그것은 바로 매일같이 거룩하게 해주는 엔진이 작동중임을 믿기 때문에 거룩하다는 말이다. 이 표현이 참 적당한데, '엔진' 이라는 것이 말이다. 외부에서 아무리 저주를 가해도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 지금부터 신명기를 !!
이제 신명기로 들어가겠는데, 교재 민수기 뒷부분이 좀 남았지만 신명기와 중복되니 그때하고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보니, 일단 어느 정도 일이 진행된 것 같은데, 일단 출애굽을 했고, 산 위에서 거룩이 내려와서 동행하시는데, 그래서 백성들도 거룩하게 되어야하는데, 그것은 레위기에 제사법으로 나왔고, 그런데 백성들이 하나님과 동행을 하면서 말썽을 일으키고, 또 용서해주는데, 그것이 곧 민수기라는 말이다. 그러면 일단 끝난 것 같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뒤에 신명기가 분명히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신명기는 무슨 내용을 기록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홍해를 건넜던 제 1세대는 이미 광야에서 모두 죽었기 때문에, 그 이후의 상태를 기록한 것이 신명기인데, 즉 광야 40년이 지난 이후의 기록이라는 말이다. 또한 이 신명기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고, 앞으로의 미래에 관한 것이고, 소망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 신명기, 이전 - 애굽으로 돌아가자 !! 이후 - 약속의 땅으로 가자 !!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여기에 홍해가 있고, 이쪽에는 요단강이 있고, 이렇게 또 광야가 있다는 것이다. 광야에서의 생활을 40년 이전과 40년 그 이후를 나누어보면, 40년 이전의 쪽은 과거를 생각하면서, "살기가 어려우니 애굽으로 돌아가자" 라는 것이고, 물론 그러다가 망해버렸고 말이다. 그러나 신명기 이후는 무엇인고 하니, "이왕 나왔으니 갈 때까지 한번 가보자" 라는 것인데, 즉 "약속의 땅으로 가자" 라고 말이다. 그러니 전혀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에 나오듯이, 일단 출애굽을 했고, 그래서 산 위에서 거룩이 내려와서 동행을 하시는데, 백성들도 거룩하도록 레위기에 제사법이 등장했고, 그래서 광야에서 백성들이 말썽을 일으켜도 용서해주는데, 그러니 이제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구세대의 이야기이고, 즉 "구세대 인물들은 이렇게 하면서 살았단다" 라는 과거 지향적인 것이고, 하지만 앞으로는 "이 광야가 전부가 아니고, 여기서는 우리가 다 나그네이고, 어차피 본향을 찾아가야 한다" 라는 것이다. 즉 "아무리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가 어차피 가야할 곳은 그곳이니까, 그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자" 라는 말이다.
◈ 신명기 -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그래서 신명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그것을 말해주는 책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신명기에는 율법들이 많이 나오는데, 하지만 앞서서 출애굽기에서 나온 율법들과는 그 말하고자 하는 방향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 다른 점 하나만 예를 들자면, 일단 신명기 5장을 보겠는데, 십계명 중에서 안식일에 관한 것인데, 출애굽기 20장과 서로 비교하면서 보겠는데, 지금 공부하는 것이 좀 힘들지 싶은데, 쉬는(?) 의미에서 두 곳을 한번 살펴보다는 것이다.
(출 20:10)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 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신명기 5장 15절은 다음과 같고 말이다.
(신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여기 출애굽기 20장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6일 동안에 천지를 만들고 7일 째는 하나님이 쉬셨기에 백성들도 쉬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명기 5장에서는, 이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가 애굽에서 건져내었기 때문에 쉬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천지창조의 안식일 의미를 알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서, 신명기에서는 추가적으로 주어졌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40년 전 선배들은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는데, 그러니 그런 사고를 가지고서는 아무리 백 날을 안식일을 지키려고 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 신명기에서는, 지금 우리가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할 군번이 전혀 아니기에, 그래서 애굽에서 종 되었던 우리를 끄집어낸 바로 그 하나님과 같은 방향을 취하자는 것이다. 과거처럼 애굽이 아닌, 약속의 땅 쪽으로 몸을 돌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 생명은 이미 하늘나라 뱅크에 !!
이것이 신약성경 골로새서 3장에 보면 나오는데, "이제는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하늘의 것을 생각하라" 라고 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우리는 이미 땅에서 죽었다" 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기에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생명은 이미 하늘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명이 하늘에 은행에 잘 보관되어 있는데, 국민은행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은행의 비밀금고에 우리 생명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각자 이름표를 달고서 말이다. 그러니 이 땅의 것에 결코 주저하지 말고, 그 하늘의 생명과 딱 들어맞는 삶을 살자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말이다.
(골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 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제가 신학교를 졸업할 때 '다윗언약'에 관해서 석사논문을 쓰면서 이런 강의를 했는데, 구약의 약속은 수평적인데, 즉 옆 동네로 이동을 하는 것인데, 그런데 신약에서는 수직적이라고 말이다. 즉 아래동네에서 윗동네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즉 "구약을 똑 바로 세우게 되면 신약이 된다" 라는 말이다.
◈ 구약은 수평적이고, 신약은 수직적이다 !!
왜 이 논문이 중요한고 하니, 말하고 보니 쑥스러운데, 그 당시는 무엇이 유행했는고 하니, 소위 부흥사들의 전성시대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입만 열면 하는 이야기가, 구약 때 아브라함이 무엇을 바쳐서 복을 받았으니, 우리도 그렇게 성경대로 살면 이 땅에서 복을 받는다고, 그렇게 사기를 쳤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역시 그렇지만 말이다.
그래서 제가 그 논문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구약시대는 수평적이기 때문에, 신명기에 나오듯이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을 수가 있고, 또한 광야에서는 힘이 들었지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잘 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잠언서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오른 쪽에는 장수이고, 왼쪽에는 부귀영화라는 것이다.
(잠 3:16)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런데 그것이 구약에서와는 달리 신약에 와서는 어떻게 되는고 하니, 십자가가 서듯이 그렇게 세워진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에서의 고난은 족히 하늘나라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강남에서 아무리 비싼 아파트라도 해도 하늘나라의 초가집(?)에도 비교할 바가 전혀 못된다는 것이다.
제가 이러한 내용을 두란노에서 만든 '그말씀' 이라는 목회자용 잡지에 '성경적 축복론' 이라는 글을 실었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은 반드시 수평과 수직의 차이점을 다같이 이야기를 해주어야지, 신약시대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구약에서처럼 옆 동네로 마구 돌아다닌다고 하면, 그것은 십자가를 무효화시키는 그런 축복론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 질문 - 지금 이 시대는 수직적이라고 했으니, 현재 이 땅에서는 복을 받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분명히 복을 받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모두 받게 되는데, 예수님의 신부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아담의 형상이기에, 아주 극심한 당뇨병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썩는 병에 걸렸는데, 그런데 앞으로는 예수님의 형상을 입기 때문에 결코 썩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흙에 속한 것은 흙으로 돌아가고, 하늘에 속한 것은 하늘로 올라간다" 라는 말이다.
(고전 15:48)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고전 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놀랍게도(?) 어떤 사람은 참으로 기분이 좋다고 하면서, "그것이 정말로 사실입니다" 라고 하는데, 아무튼 지금의 이야기는 제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미 시내산에 있던 것들이 밑으로 내려와서 된 내용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전혀 종교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라는 말이다. 결코 종교적인 입장에서 접근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 새 하늘과 새 땅은 엄연한 하나의 현실 !!
다시 말해서,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것도 엄연한 하나의 현실인 것이지, 결코 우리들의 희망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하늘나라에는 모세와 엘리야와 사도바울이 예수님과 다함께 계신다는 말이다. 오죽 했으면 천사가 와서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감옥에서 나가도록 했느냐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 당시에 자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을 나가게 되는데, 그 덕분에 간수는 예수님을 믿게 되고 말이다.
그렇게 천사가 활동하는 것도 사실인데, 지금 옆방에 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듯 말이다. 그런데 옆방이라는 것이 수평적이니까, 이것을 수직적으로 해서 위에 계신다고 이야기하면 말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실이고, 그것을 믿는 것이 믿음인데, 이 믿음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일 때문에 하나님이 일부러 이 땅에 내려오셨는데, 그것을 우리가 믿어야지 누가 믿겠느냐는 것이다. (아니, 우리가 어떻게??)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신명기 - 과거가 아닌, 약속의 땅으로 !!
다시 말씀드리지만, 신명기는 과거는 잊어버리자는 것인데, 즉 누가 잘나고 못나고 하는 것을 잊자는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약속의 땅에 제대로 들어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신명기에선 모세도 탈락하는데, 물론 아론도 도중에 죽어버리고 말이다.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 중에서 단 두 명만 들어가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 이라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는 우리가 잘 아는 여호수아는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고(?) 갈렙이 괜찮은 인물인데, 이 갈렙이 바로 유다지파이고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 유다지파가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고, 또 가장 큰 땅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가 조금 전에 이 신명기는 앞선 레위기나 민수기 등과는 좀 다르다고 했는데, 그러면 어떻게 다른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는데, 먼저 7장을 살펴보자. 신명기는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되는고 하니까, 모세가 말했듯이, "과거에는 그렇게 했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마라" 라는 식이라는 말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려면 말이다.
(신 7: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여기에 보면,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 등등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이 나오는데, 이들 족속들의 특징이 무엇인가? 아주 강한 족속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힘이 세니,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같으면 모세에게 "안 되겠다. 다시 돌아가자" 라고 난리를 쳤을 것이라는 말이다.
◈ 이젠 거룩하면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 !!
그런데 지금 상횡은 어떠한고 하니, 애굽에서 나아서 홍해를 건너고 한 앞선 선조들이 모두 다 죽고 난 다음의 광야에서 태어난 2세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에게는 어떤 조건이 붙는고 하니까, 지금 이 후손들이 가나안 족속들보다 얼마나 더 강하든지, 혹은 약하든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거룩하면 가나안 땅에 넣어준다" 라는 것이다. 거룩하면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거룩해지면 들어갈 수가 있는 곳이 약속의 땅이고, 곧 천국이란 말이다. 굳이 요즘 말로 하자면, 돈이 많고 권력이 세고 얼굴이 예쁘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들어간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을 앞선 구 세대들에게도 이야기를 했었지만, 그러나 그들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사고방식은 무엇인고 하니까, 광야에서 살기가 힘들다고 하면서 매일같이 "애굽으로 돌아가자" 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들의 그런 주장이 나름대로는 일리가 있을지 몰라도,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게 되는 약속의 땅은 전혀 염두에 두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7장 6절 이하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도 이 말씀을 너무나 좋아하고 말이다. 6절에서 8절의 말씀을 한번 살펴보자.
(신 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신 7: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 7: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택하셨는가?
여기 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기업으로 택하셨다고 하는데,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숫자가 많고 힘이 강해서 그들을 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은 그런 면에서는 가장 적고 약하다는 것이다.
◈ 신명기 - 나의 맹세 때문에 너희들을 사랑했다 !!
그리고 8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라고 하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특별히 "맹세를 지킨다" 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즉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한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내셨다는 말이다. 그렇게 때문에 이스라엘을 사랑했고 말이다. 그것이 곧 '신명기' 라는 것이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됩니까? 이 부분이 너무나도 중요해서 좀 더 설명을 하도록 하겠는데, 여기에서 일단 로마서 9장 11절의 말씀을 살펴보겠는데, 아까 살펴본 신명기 7장을 염두에 두고서 말이다.
(롬 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여기 보면,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라고 하는데,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까, 그것이 뒤에 나오는데,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라고 말이다. 즉 아직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행위가 있느냐는 것이다.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 왜 선택을? '너는 내 도구이다' !!
그렇다면 무엇인가? 오직 부르시는 이, 즉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즉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자기 맹세로 인하여 완성이 된다는 말이다. 바로 거기에 필요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선택인데, 그러니 선택은 구원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맹세를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 라는 말이다. 즉 완전히 사로잡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이 '선택' 이라는 말이 언제 나오는고 하니, 놀랍게도 40년 전에 애굽에서 나온 구 세대가 완전히 다 날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그때 이야기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까, 이미 구 세대를 통해서 한번 실험(?)을 다 해보았는데, 그런데 실패했다는 말이다. 그들이 하는 말이 매일같이 "하나님을 믿고 손해를 보았다. 그러니 이제는 애굽으로 돌아가자" 라는 것이었고 말이다.
◈ 인간 - 하나님은 너무 힘들어서 못 믿겠다 !!
이렇게 인간에게서 나올 것은 다 나왔는데,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고 하니, 너무나도 힘이 들어서 도저히 하나님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잘라버리고, 40년 이후의 후손들을 선택해서 하시는 말씀이 "봐라. 너희들이 못나도, 숫자가 적어도, 또 힘이 없어도 들어간다" 라고 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셔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맹세를 이루시는 그 능력 덕분이지, 이스라엘의 자체적인 힘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로마서 9장 11절에서 사도바울이 강조하는 내용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신명기 8장 12절 이하를 보면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혹시 너희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그래서 아름다운 집을 잘 짓고, 배부르게 먹고, 또 가진 재산이 늘어나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을 잊으면 안 된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모든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체적인 능력이 아니라, 그것이 모두가 다 하나님 덕분이라고 말이다.
여기서 일단 신명기 8장의 성경말씀을 한번 찾아서 읽어보겠는데, 12절부터 살펴보자.
(신 8:12)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신 8:13)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신 8:14)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