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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7-민수기(강의정리)자유게시판민수기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7-민수기(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1)

04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07 - 민수기

04,06,12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십계명에 제사법이 뒤따라온 사연은?

지난 시간의 강의를 잠시 요약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데, 그분은 십계명 말고도 제사법을 연달아 주셨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백성들은 이 십계명을 전혀 지킬 수 없는데, 사실상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라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를 씻어주는 제사법이 십계명 다음에 반드시 뒤따라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계명을 주고는 "너희들은 못 지켜" 라고 하니까, 그런 이야기를 듣는 우리들은 기분이 좀 언짢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너무나 우습게 보지 않느냐는 것인데, 그런데 로마서 7장 7절에 보면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참고로, 저는 성경을 이렇게 살펴볼 때 가능하면 교인들에게 맡기지 않고 저 혼자서 읽는데, 다같이 읽으면 틀리지 않으려고 글자에 신경을 쓰다보면 내용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서 말이다. 물론 분위기가 잠이 온다든지 하면 다르지만 말이다.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 율법 - 내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깨닫게 !!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죠? 어떤 경우에 죄를 아는고 하니, 하나님의 빈틈이 없는 법, 즉 율법이 들어왔기 때문에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안다는 것이다. 디모데전서 6장에도 보면,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런 계명이 있음으로서 우리가 얼마나 돈을 사랑하는 죄인인가를 깨닫는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대번에 변명을 할 것이 분명한데, "아니, 돈이 있어야 먹고 살아가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뭐가 그리 나쁩니까?"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렇게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면,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그런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또한 마태복음 10장 37절의 말씀이 있으니, 처나 자식이나 아비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게 죄가 된다는 것을 알지, 만약에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죄가 되는지 아느냐는 것이다. "하나님, 우리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라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데 말이다.

(마 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 성경말씀 - 넌 지키지 못해 !!

이렇게 교인들은 성경을 제대로 보지 않기 때문에 자꾸만 자기 변명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모르니 말이다. 그런데 성경을 보게 되면, 자기가 얼마나 변명쟁이(?)고 죄인인가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즉 성경은 우리가 그 어떤 말씀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그러니 지킬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실컷 스트레스만 받는데, 물론 지킬 수도 없고 말이다.

제가 이렇게 성경공부를 같이 해보면 느끼는 것이, 물론 우리교회 교인들도 마찬가지인데, 사람들이 그렇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아쉬운지 말이다. 하지만 조금 전에 살펴본 로마서 7장에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하는가?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롬 7: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이것이 무슨 의미인고 하니까, 죄가 자기 마음속에 잠잠히 있다가 갑자기 밖에서 "탐내지 말라" 라는 법이 들어오니까, 잠잠하든 그 자기의 죄가 발동을 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탐내는 죄를 지어보아야 하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어릴 때는 "간음하지 말라" 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다가, 커서 그런 소리를 들었을 때, 그때부터 잠재되어있던 인간의 자기 주특기가 발동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야, 그것 참 재미있겠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잠언서에 보면 "몰래 먹는 떡이 맛있다" 말씀이 있는데, 그냥 먹으라고 한 소쿠리 가득 주면 잘 먹지 않다가도, 엄마가 먹지 말라고 해놓고 선반 위에 숨겨놓고 가면 그것이 얼마나 먹고 싶은지, 지시를 어겨가면서 먹는 떡이 실제로 맛도 엄청 좋다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다들 해보셨지 싶은데, 그리고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요? 그렇게 성경은 인간심리에 대해서 너무나 잘 지적해놓고 있다는 것이다.

(잠 9:17) 도적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 다만 살인의 상황이 조성되지 않았을 뿐 !!

그리고 성경말씀에서 "살인하지 말라" 라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인데, 우리가 어느 특정한 사람을 실제로 죽여야만 살인자가 아니라, 그런 일을 하지 않았어도 우리도 살인을 할 수가 있는 잠재력을 항상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아직 그러한 살인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우리에게 조성되지 않은 것뿐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복수는 하지 말고, 심판은 하나님께 맡겨라" 라고 하면, 자기가 복수할 만한 일이 없을 때는, "하나님, 이게 얼마나 지당하신 말씀인지요. 저는 복수 같은 것은 몰라요" 라고 하다가, 그러나 그런 복수극을 펼쳐야만 될 급박한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하나님, 잠시만 눈을 좀 감아주세요. 이번 일만 하고 복수의 칼을 거두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방에서 사시미 칼을 들고 나와서 "야, 이리 나와. 아버지의 원수" 라고 하면서 마구 설치고 난동을 부린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소소한 모든 것에 복수의 행위들이 다 첨가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보복이라는 것이 근원적으로 인간의 행위에 모두 다 깔려있다는 것이다.

◈ 인간의 최종 복수극은, 신에 대한 보복 !!

이러한 인간의 보복 중에서 최종적인 것이 무엇인고 하니, 신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에 대한 보복 방법이 바로 또 다른 신을 등장시키는 것인데, 다른 신을 믿음으로서 이전에 자기가 믿고 있던 신에 대해서 복수를 한다는 것이다. 혹은 신을 완전히 포기하든지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은근히 신에게 약을 올린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을 믿을 수 없어. 내가 믿게 해봐. 믿게 해봐"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신이 아무리 자기에 압박을 가하고 믿으라고 윽박질을 해도, 역시 자기도 한 고집한다는 것을 그러한 보복으로서 보여준다는 말이다.

◈ 제사법 - '대신 죽으심'의 희생이 !!

바로 이러한 인간의 모든 잠재되어 있는 죄까지도 다 씻어주기 위해서, 이 제사 속에는 뭐가 있는고 하니까, 물론 십계명은 "네가 안 지키면 10대에 이르도록 저주를 받는다" 라고 하는, 일종의 협박공갈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제사는 그것이 아니라, 감사하게도 '희생'이 들어있는데, 그냥 희생이 아니라, '대신 죽으심'의 희생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믿으면 천당이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이고 말이다.

왜 인간들이 자기가 착해지려고 하겠는가? 그 이유가 바로 이러한 '대신 죽으심'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대신해서 죽으신 분이 다 이루셨는데, 그런데 그것을 믿지 않고 자기가 이루려고 한다는 것이다.

◈ 어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

예를 들어서, 이미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고 다 정리를 해놓았는데, 그런데 뒤늦게 딸이 들어와서는 "어머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라고 하면서 그릇들을 또 다시 씻으면서 난리를 피운다는 것이다. 물론 용돈을 좀 기대하면서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정리가 되는가? 그러면 어머니가 또 다시 정리를 해야하니 얼마나 귀찮으냐는 것이다. 물론 그런 마음이야 기특할지 몰라도 말이다.

다시 말해서, '대신 죽으심'은 그렇게 대신해서 죽으신 분이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루었음을 선포하는 것인데, 그러니 그것을 믿으면 그분의 의(義)가 들어와서 오늘 지금 당장 죽어도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대신 죽으심'이니 말이다.

◈ 자존심인가, 대신희생인가?

그런데 인간에게는 누구나 다 자존심이 있어서, 자기 힘으로 천국에 가려고 하지, 즉 자기가 알아서 착해지고 거룩해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결코 하늘에서 내려오는 제사법 속에 들어있는 '대신 희생'은 받아드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소위 "많이 배우고, 가정교육 잘 받고, 복음을 안다" 라고 하는 자들이 이 '대신 죽으심'을 받아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이 '대신 죽으심'을 받아드리면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대신 죽으신 분이 그만 주인공이 되어서 자기를 다스리고 지배하게 되니, 이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자기 자존심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결국 친구가 사기꾼 !!

쉽게 말하면, 아버지가 재산이 100억 정도 되는데 자기가 50억을 자기 몫으로 챙겨 가지고서, 그렇게 돈을 가지고 집을 나서게 되면, 돈 냄새를 맡고 친구들이 들끓게 되고 결국은 모두 다 날리게 된다는 것이다. 사기꾼이 아닌 친구들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데, 결국에는 사기꾼이나 친구나 모두 같은 말이 되지만 말이다. 남에게 지기를 싫어해서 비싼 스포츠카를 그냥 뽑고 하는데, 그 돈이 아버지의 대신 희생에서 나온 줄도 모르고, 폼만 잡다가 모두 날려버린다는 것이다.

우리교회에도 이런 분이 있었는데, 자기 아들이 7억을 날렸다는 것이다. 제가 그 말을 듣고서 얼마나 화가 나든지, 술집에 가서 김 마담에게 허랑 방탕하게 놀다가 날린 게 아니라, 친구들과 같이 마음을 모아서 사업을 한답시고 폼을 잡다가 그렇게 모두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왜 TV 드라마를 보면, 사업을 한다고 하면 넓은 사무실과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전화를 받고 하는데, 그리고 밤이 되면 술집에 가서 여자나 꼬시고 말이다. 그것은 드라마의 내용이지, 실제로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게 사업을 하다가는 한 달 안에 모두 다 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 아버지, 제사법이 뭐예요?

아무튼 그런 드라마가 요즘 젊은이들을 망치는데, 우리교회의 그 양반도 그 흉내를 내다가 모두 날려버렸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보통 강심장이 아니라면 집으로 돌아오지도 못하는데, 설령 돌아와도 "아버지, 미안합니다. 제가 지금은 힘들지만 앞으로 최선을 다해서 갚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바로 아직도 아버지의 마음, 즉 제사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아버지, 제가 아버지 돈을 다 날렸으니, 제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라도 7억은 안 되더라도, 그 절반이라도 빨리 갚겠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결단코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성경말씀은 그런 것을 전혀 용납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사람은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전혀 감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탕자비유 - 자존심이 아닌, 오직 아버지의 사랑이 !!

성경에 보면 탕자비유가 나오는데, 이 탕자는 계속해서 탕자로 남아야만 하고, 그리고 아버지가 좋은 옷으로 입히고 소를 잡아서 잔치를 벌이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탕자 속에는 무엇만 있으면 되는가? "저는 7억을 날린 놈인데, 그런 저를 아버지의 사랑이 다 용서해주었습니다" 라고 하는, 그 아버지의 사랑만이 남아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자기가 또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즉 자기의 자존심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 넘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곧 '신자' 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자꾸만 스스로 완벽해지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100% 마귀의 유혹인데, 우리가 살다가 보면 말의 실수도 하고 행동도 잘못할 수 있는데, 그런 것에 대해서 스스로 자책하지 말라는 것이다.

◈ 배 집사님, 성깔대로 사세요 !!

배 집사님도 남들과 이야기하고 다투다보면 말을 실수할 때가 있고, 너무 심했다고 여길 때가 있었을 것인데, 하지만 그런 후회를 결코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귀의 시험이라는 말이다. "내가 조금만 더 행동을 잘했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내가 너무 했지" 라고 하는, 그런 것들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는 행동이란 것이다. 자기가 주인공이 되는 말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이미 패배한 것이고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것을 가지고 싸우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다 이루심을 가지고서 싸우고, 또한 감사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감사하면서 싸워야만 주님의 종인데, 그런데 자기 것을 가지고 싸우면 자기의 종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 증인밖에는 되지 않고, 자기 잘남의 모습밖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은 마귀의 종이 된다는 말이다.

◈ 저는 이 정도밖에 안 됩니다 !!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하면 행동을 올바르게 할 수가 있을까?" 라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한데, 아니 부부싸움을 해도 그것이 제대로 곱게(?) 잘 싸워지던가요? 실컷 싸우고 나서 "내가 좀 말을 가려서 했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한 쓸데없는 반성도 아닌 반성 같은 것은 하지 말고, 그냥 자기 성질대로 살라는 말이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자기 행동을 수정하고 고친다고 해서 마누라가 감동을 먹고 하지는 않는데, 물론 그러한 여자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고 말이다. 그러므로 그냥 "저는 이 정도밖에 안 됩니다" 라고 솔직히 고백하면서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성장을 하고 커간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그 얼마나 포장을 제대로 잘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내가 얼마나 못난 놈인가?" 라는 것을 깨닫는 것인데, 그래서 자기는 아무리 반성을 해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바로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잘남이 아니라 못남을 말이다.

그렇게 해서 주님께서 주신 사랑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알고 깨달아 가는 것이지, 자기의 완벽함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아는 것이 성도의 모습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런 제사법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가? 그 어떤 인간도 십계명을 지키지 못함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 부자청년 - 저는 영생보다 돈이 좋아요 !!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부자청년이 나오는데, 그 청년은 십계명을 다 지켰다고 했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는가? "그런 쓸데없는데 신경 쓰지 말고, 영생이나 받아라"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 청년은 영생보다 돈이 더 중요하기에 돌아가 버렸고 말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다 지켰다고 해서 결코 그것이 영생이 될 수가 없는데, 중요한 것은 제사법이지 말이다. 물론 십계명을 모두 지킬 수도 없지만 말이다. 이 청년은 십계명은 알았지만, 그러나 그 뒤에 나오는 제사법, 즉 예수님의 십자가는 몰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십계명+제사법' 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지만 이 청년은 십자가를 모르니 주님의 대신 희생을 모르게 되고, 또 그분의 용서하심을 모르니 영생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돈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저도 돈이 좋은데?)

(마 19: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 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 다시 정리하면 !!

지금까지 한 것을 다시 정리하겠는데,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가?" 라는 것인데, 십계명을 만드신 하나님만이 진짜 하나님이고, 다른 하나님은 모두 가짜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십계명 뒤에는 반드시 제사법이 따라오게 되어있는데, "그러면 굳이 십계명은 왜 주셨는가?" 라는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로마서 7장에 의하면, 그 이유가 곧 "우리를 더욱 더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제사법은 왜 주셨는가? 그것은 바로 그 어떤 인간이라도 예수님의 대신죽음으로, 즉 하나님의 용서하심으로 말미암아서 구원을 얻는 것이지, 자기 힘으로는 결단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주셨다는 것이다. 그런 십계명과 제사법을 주신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 성경은 상식(?)이 누구인지 몰라 !!

제가 이런 강의를 하면서 참으로 아슬아슬한(?) 것은, 이 성경말씀이 너무나도 일반적인 상식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오히려 정반대인데, 그러니 듣는 사람들이 과연 어떤 마음가짐으로 듣는지, 정말이지 의구심이 든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의 일반적인 상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주었다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서 더욱 더 잘 키워서, 그 사랑을 이 세상에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못난 인간에게 사랑을 주셔서 착한 사람이 되었으니, 이왕 착한 사람이 된 것 더욱 더 착해져서, 더욱 더 하나님께 영광을 많이 돌리자" 라고 말이다.

◈ 사도바울 - 나의 상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

그러한 일반상식의 대가가 누구인고 하니,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인 사울 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이 옳다고 철두철미하게 믿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가 진짜 하나님을 일대일로 만나고 보니, 기존의 자기 생각은 그야말로 와장창 다 깨어져버리고, 자기는 죄인 중에서 괴수이며, 그런 자기를 찾아오신 하나님 사랑을 인하여서 자기는 그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 쪽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저 쪽에서 용서하심이 자기에게 다가올 때 그때 비로소 새 사람이 되고, 그때부터는 자기 자신의 증인이 아니라 예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증거하는 말이다. 여기서 로마서 5장을 살펴보자.

(롬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롬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 19절에 보면,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라고 하는데, 여기서 제가 질문을 하나 하겠는데, "그러면 아담이 죄인 된 것같이, 그의 후손 중에서 죄인이 아닌 사람이 있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을 빼고 말이다. 지금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 성경은 너무나 선명한데, 그런데 !!

그러니 이 성경말씀이 얼마나 확실하고 간단한가? 단지 우리의 상식과 맞지 않아서 그렇지 말이다. 즉 한 사람이 죄인 됨으로 말미암아서, 그 뒤에 따라 나오는 인간들은 그 누구도 자기 입에서 의인이라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죄인이 됨으로 이미 모두가 죄인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융통성을 발휘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 생각은 하들들 말라는 것이다. 이미 다 끝난 상황이니 말이다.

◈ 오직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

그런데 위의 로마서 5장의 말씀에서 계속해서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의인이 아닌 자도 있는가?" 라는 것인데, 결코 없다는 것이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지옥에 갈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마치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후손들이 모두가 다 죄인이 된 것과 동일한 이치인데, 이와 같이 이제는 한 사람의 의인, 즉 예수 안에 있기만 하면 모두가 자동적으로 의인이 된다는 말이다. 자기의 행함과는 전혀 관계없이 말이다.

◈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에서와 같이, '말라' 라는 것을 왜 주셨는가? 여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20절에서 뭐라고 대답했는고 하니까,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라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논리(?)인데, 즉 율법을 준 것은 그것을 전혀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율법을 대하면 대할수록 죄가 점점 더 증가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 뒤에 보면 정말 눈물나는 말씀이 있는데, "그러나 죄가 더 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라고 말이다. 죄가 넘치는 곳에 은혜가, 즉 주님의 용서가 넘친다는 것이다. 출애굽기의 구조를 따르자면, 십계명을 준 다음에 반드시 제사법이 따라오는데, 즉 십자가의 용서하는 은혜와 그 능력이 넘친다는 것이다. 제사법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니 이것을 어떻게 이 세상의 윤리와 도덕에 비교하겠는가? 비교할 게 따로 있지 말이다.

흔히들 교회가 장애인들을 돌보지 않고, 이웃들에게 밥을 퍼주지 않는다고, 그렇게 자기들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시비를 걸고 하는데, 정부를 향해서도 그렇고 말이다. 그러나 한번 생각을 해보라는 것이다.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가를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죄 중에는 "나는 장애인이다" 혹은 "나는 가난하니 개판으로 살란다" 라는, 그런 자기 자존심을 여전히 유지하려는 죄, 그것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나 부한 자나, 장애인이나 멀쩡한 사람이나 모두 다 포함이 되어있다는 말이다.

◈ 교회 - 당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죄인입니다 !!

그러므로 교회가 해야할 것은 가난한 자를 도와주고 말고 할 것이 아니라, "당신은 누가 뭐라고 해도 죄인입니다" 라는 사실을 까발겨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당신이 구원을 받을 길은 결코 돈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당신의 모든 실체가 적나라하게 다 드러나서 회개할 때, 그때 비로소 당신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라고 해야한다는 것이다.

◈ 왕 노릇 - 빈틈이 전혀 없이 지배함 !!

그리고 21절에 보면,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라고 하는데, 여기서 '왕 노릇'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도대체 '왕' 이란 무엇인가? 왕의 특징은, 빈틈이 없이 구석구석 완벽하게 지배함을 의미하는데, 그것을 두고 왕의 기능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제가 만약에 건방지게도 여기에서 왕이라고 한다면, 여러분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나'에게 반항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면 '나'는 왕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왕은 반항하지 못하도록 몽땅 다 지배한 상태이어야 하니까 말이다. 즉 반항이 없는 쪽에서는 왕일지 몰라도 반항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거기서는 왕이 아니라는 것이다.

◈ 새로운 의(義)의 왕이 나타나서 !!

원래 우리는 죄를 지은 죄인이기에 죄가, 즉 악마가 우리의 왕이었는데,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토록 죄 가운데 있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 왕에게 반항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왕은 구석구석 지배를 하기 때문에 반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다가 지옥으로 그냥 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데 새로운 의(義)의 왕이 나타나서 기존의 왕을 물리치고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왕 아래 있는 자들 중에서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이 있는가? 전혀 없는데, 왜냐하면 그분이 참된 왕이기에 말이다. 그런 왕 아래 있으면, 단 한 사람도 빠진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왕의 능력으로 구석구석 다 지배를 해주니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의 왕으로서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고 하면, 우리도 역시 예수님의 의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어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왕이시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백성들이 예수님을 두고 "나의 왕이시여" 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이기 때문에 왕이라는 개념이 없는데, 노무현 대통령을 보고 누가 왕으로 생각하는가? 하지만 진짜 왕 앞에서는 꼼짝 말아야 하는데, 왕이 다 책임지고 감당하기 때문에, 이런 왕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자기 권리를 주장하거나 변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왕이 달라고 하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빼앗겨야 하고 말이다. 왕은 전체를 지배하니 말이다. 이렇게 로마서 5장이 끝난다는 것이다.

◈ 바울아, 우리는 더욱 더 죄만 지으면 되겠네 !!

사도바울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서 모두들 좋아했겠는가? 아니면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었는가? 당연히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고 하니, "당신이 그러한 주장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얼씨구나' 하고 더 많이 죄를 더 지을 것이다" 라고 말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가 아닌가요? "아니, 하나님의 법은 지키라고 준 것이 아니라, 우리 죄를 더욱더 죄 되게 하기 위해서 주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이제는 마음놓고 죄를 더 지을 것이 아닌가?" 라고 말이다. 사실 우리가 매일같이 듣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바로 로마서 6장에 나온다는 말이다.

(롬 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롬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 과연 너는 누구의 종인가?

이렇게 사도바울 당시나 오늘날이나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서 덤벼드는 성향이 똑같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항상 그렇게 해왔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보고서 하는 말이, "그렇게 은혜가 넘친다면 우리가 더욱 더 죄를 짓겠다. 예수님은 은혜를 더 많이 주고, 우리는 마음대로 죄를 더 짓고, 그러면 서로가 짝이 맞아서 더 잘되었네" 라고 말이다. 그렇게 반발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발에 대한 사도바울의 답변이 궁금하지 않는가? 그 답변이 너무 명쾌해서 놀라운데, 상식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대답은, "아무리 그래도 좀 착하게 살아야지" 라는 것인데, 그러나 사도바울은 그것이 아니라, "이 놈아, 지금 니가 누구 종이고? 너 자신의 종이냐? 아니면 예수님의 종이냐?" 라고 하면서, 오히려 다시금 묻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야, 자유다. 이제 마음대로 죄를 짓자" 라고 하는 것은, 그것은 여전히 자기를 왕으로, 즉 자기를 주체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그러니 자기 주인이 따로 있다는 생각은 하지를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용해먹으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자기 뒤를 좀 봐주는 분으로, 그래서 자기가 죄를 짓고 사고를 치면 그것을 해결해주는 정도로 여긴다는 말이다. 자기가 왕초이고, 주님은 자기 뒤를 따라 다니는 것으로 말이다.

◈ 로마서 6장 - 누가 시다바리인가?

영화 '친구'에 보면 '시다바리' 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렇게 여긴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도바울에게 시비를 걸었던 놈들의 생각인데, 즉 사도바울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 라고 하니, 하지만 그들은 그 넘치는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서 죄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6장에서 사도바울이 하는 말이, "아니, 누가 누구의 시다바리인가?" 라고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제가 문제를 하나 내겠는데, "아담이 먼저인가? 아니면 우리가 먼저인가?" 라는 것인데, 바로 그것은 "우리 아버지가 먼저 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먼저입니까?" 라는 것과도 같은 말인데, 그것은 당연히 아담이 먼저라는 말이다. 아담이 있으니까 비로소 우리가 나왔다는 것이다. 아담에게서 우리가 복제, 즉 번식이 되어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우리가 까불거리며 노는데 할아버지가 오시면, "어이쿠, 할아버지 오십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문제를 하나 더 내겠는데, "예수님이 먼저인가? 아니면 우리가 먼저인가?" 라는 것인데, 물론 예수님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까 할아버지의 경우처럼 "예수님, 고맙습니다" 라고 하면 되는 것이지, "예수, 너는 내 시다바리 아이가?" 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핑계삼아서 하는 이야기가 그따위 소리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을 주(主)라고 인정하지 않고, 자기 밑바닥을 닦아주는 그런 양반 정도로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이런 잡소리(?)가 나오는 것이지, 정말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한다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지 말이다.

◈ 그냥 예수가 아닌, 주(主) 예수 !!

그러니 감히 어떻게 대들고 따지기는 무엇을 따진다는 말인가? 그저 황송할 따름이지 말이다. 그것이 곧 사도행전 16장 31절에 나오는,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행 16: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행 16: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행 16:31)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예수님 앞에 무엇이 붙는가? 그래서 '주(主)' 예수라는 것이다. "저의 주인님이여, 저의 어르신이시여, 저는 당신을 인하여서 영생을 얻었습니다" 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이것을 두 글자로 '신자(信者)' 라고 하는데, 그러므로 신자라고 하면 과연 그런 어르신 앞에서, "저는 오늘도 착한 일을 했습니다. 고와와 과부를 돌보았습니다" 라고 하면서 까불고 설치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가끔은(?) 몰라도 말이다.

지금까지 제가 강의한 것이 "십계명+제사법", 혹은 "십계명+십자가" 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이것을 시내산 위에서 모세 혼자서 산밑에 있는 백성들에게로 가지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것을 제가 지난 시간에 이야기를 했는데, 혹시 기억이 나는가요?

◈ 다시, 십계명 다음에 제사법이 왜 필요한가?

그 시내산 이야기가 바로 출애굽기의 마지막 부분이었고, 그 다음이 레위기인데, 이 레위기는 무엇을 이야기하는고 하니, 이 레위기는 제사법에 관한 것인데, 이 제사법에는 5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제사법이 왜 필요한가? 십계명 다음이 제사법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십계명은 출애굽기, 그리고 레위기는 제사법이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이 5가지의 제사법을 레위기에서 다루고 있는데, 이 제사법에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 그리고 화목제라는 것이다. 이렇게 5가지인데, 여기서 번제와 소제는 한 세트로 묶을 수 있고, 속죄제와 속건제도 한 세트로 묶을 수가 있고, 그리고 나서 화목제라는 말이다.

그런데 번제와 소제는 그 의미가 "모두 다 바친다" 라는 것이고, 그 다음의 속죄제와 속건제는 죄가 없는 상태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고, 그리고 또 화목제는 곧 "내가 주는 선물을 받아라" 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파티에 초청을 한다는 말이다. 아무 흐뭇해하시면서 말이다.

◈ 제사를 3가지 부류로 나누어보면 !!

제사를 이렇게 3가지 부류로 나누는데, 왜 이렇게 나누는고 하니, 여기서 번제는 동물성이고 소제는 식물성이고, 그리고 속죄제는 하나님에 대한 범죄이고, 속건죄는 이웃에 대한 범죄이고 말이다. 또한 화목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고 말이다.

십계명 다음에 제사법을 주는데, 그리고 그 제사법은 3가지 세트로 나누어지는데, 왜 그렇게 나누어지는고 하니, 하나님께 바치기는 해야 하는데 무엇이 없는 상태에서 바쳐야 하는가? 그 순서가 어떻게 되는고 하니, 먼저 처음으로 죄가 없는 상태에서 바쳐야 하고, 그리고 둘째로 모두 다 바쳐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셋째로 하나님이 흐뭇해져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제사법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이다.

◈ 정리하면, 제사법 - ① 죄가 없는 상태에서 바쳐라 - 속죄제, 속건제 !!
② 모두 다 바쳐라 - 번제, 소제 !!
③ 하나님께서 흐뭇해서 선물을 주신다 - 화목제 !!

그러니 제사는 제일 먼저 드리는 것이 번제나 소제가 아니라, 일단 속죄제와 속건제를 먼저 드리고, 그리고 나서 다음에 번제와 소제를 드리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화목제를 드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인간이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께서는 과연 받으시겠는가? 놀랍게도(?) 전혀 받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왜 제사를 받지 않는가?

바로 이것이 중요한데, 하나님께서 왜 제사를 받지 않는고 하니, 이 제사법 자체가 율법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을 왜 주셨는가? 아까 말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를 들추어내기 위해서 주었다는 것이다. 죄를 까발리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므로 이 제사법을 준 이유는, 우리가 제사를 완벽하게 드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 제사를 드리면서 "아이쿠, 이 못난 놈아. 이 제사도 제대로 드리지를 못하는가?" 라고, 그런 못나고 못난 자기 자신을 발견하라고 주었다는 것이다.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말이다.

여러분의 표정들이 영 믿지를 못하겠다는 것 같은데, 이것이 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히브리서 10장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는데, 1절부터 한번 읽어보자.

(히 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히 10: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히 10:3)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히 10: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히 10:5)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여기 3절 말씀에 보면,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라고 하는데, 분명히 제사는 죄를 생각나게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 돼, 안 돼, 우리 인간들은 안 돼. 우리 인간들 말고 누군가가 오셔야만 돼" 라고 말이다.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상한심령 !!

그리고 또 5절에 보면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께서는 다른 한 사람을 준비하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아무리 제사를 드려도 안 되니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는 안 돼" 라는 것인데,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는 아무리 제사를 드려도 안 된다고 하는, 그런 '상한심령'을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시편 51편에 나오고 말이다.

(시 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예를 들어서, 제가 간음을 했다고 하면, 마음으로 해도 한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십계명에는 분명히 간음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러니 말씀을 어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사가 필요하니 양을 잡아서 드리는데, 그 드리는 것이 온전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죄는 죄대로 남고 제사를 드리는 죄도 또 추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곱빼기(?)인데, 그러니 우리는 무엇을 하면 할수록 죄가 엉키고 또 엉킨다는 말이다.

* 퀴즈 - 여기서 제가 어려운 문제를 하나 내겠는데, 제대로 한번 잘 맞춰보라는 것이다. 다음 중에서 구원받는 길은 무엇인가?

① 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
②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③ 헌금을 잘 해야 한다.
④ 전도를 많이 해야 한다.
⑤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

어렵지요?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1번에서 4번까지는 교회에서 그렇게도 강조하는 것이니 말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장사가 되니까 말이다. 목회에서 성공하는 것은 이것밖에는 없는데, 즉 "돈 바치고, 시간을 바쳐라" 라고 하는 것 말이다. 그렇게 하면 목회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이다.

사실 여기서 돈이나 시간이나 같은 것인데, 시간을 바치라고 하는 것은, 돈을 들이지 않고 노동력을 착취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것이 전혀 아니라 '상한심령' 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오직 상한 심령이 된 상태에서만 십자가를 깨닫게 되니 말이다.

◈ 자식은, 부모가 얼마나 못난이인가를 고발하라고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식들을 왜 주셨는가? 잘 키우라고 주셨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무슨 재주로 말이다. 그런데 아이를 왜 주셨는가? 그것은 자기 자식을 키움으로 말미암아서, 자기 자신이 얼마나 못난 인간인가를 알라는 것이다. 즉 아이를 자기 성질대로 때리고, 분풀이하고, 화를 내면서 말이다. 그렇게 하면서 "아하, 나는 자식도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못난 부모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서, 그렇게 해서 주님의 십자가를 만나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 남편과 아내는 서로 싸우면서 !!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못난 남편과 못난 아내를 만나도록 하셨는가? 그것이 바로 적절하기 때문인데, 하나님은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분인데, 그것은 서로 못난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서 열심히 잘하면 선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가 못나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니 자기 자신들이 그 얼마나 못났는가를 제대로 알라는 것이다.

그러니 언제 부부사이가 가장 좋을 때라고 할 수 있는가? 서로가 못난 인간임을 깨달을 때, 즉 부부싸움을 대판하고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고 있을 때, 바로 그 순간이 가장 제대로 된 부부모습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한바탕 싸우고 나서 합방을 하는 별난(?) 부부도 있다고 하던데 말이다. 아무튼 서로 "자기, 이거 먹어" 라고 하는 때가 좋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가 못난 남편이고 아내임을 알게 되면, 신랑이 퇴근을 하면 얼른 나가서 "이제 오십니까?" 라고 하면서 절을 90도로 하게 되고, 남편은 현관을 들어오다가도 놀라서 "아이쿠, 왜 이러십니까?" 라고 하면서 아내보다 더 낮게 엎드리고 말이다. 물론 24시간 중에서 2.4초 정도 되겠지만 말이다.

◈ 일부러 착해지려고 하지 말자 !!

그러므로 우리가 TV 드라마를 한편 보더라도 십자가 복음의 눈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이 세상이 그 얼마나 엉터리인가가 드러나니 말이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더라도 자기가 일부러 착하게 보이려고 한다면, 그것도 안 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악마의 유혹인데, 물론 일부러 악하게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냉정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복음적인 TV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면 엄청 히트하지 싶은데요?

복음을 제대로 아는 작가나 감독도 없고, 물론 거기에 투자할 투자가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복음적인 작품이 나오겠느냐는 말이다. 설령 만들어도 제작비도 못 건질 뻔한데 말이다.

* 질문 - 교회에서 구제사업을 하는 것은 어떤가요?

복지정책의 경우에 옛날에는 교회에서 다 감당했는데, 그런데 19세기말에 들어오면서 국가에서 모두 처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이웃사랑' 이란 차원에서 말이다. 사회보험이나 의료보험제도, 그리고 연금제도 등이 모두 그런 것인데, 그러나 그렇게 혜택을 받게되면 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개인적인 자유를 국가에 반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국가는 그 반납된 자유를 수용하고, 먹을 것은 챙겨주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술과 담배를 끊어야 하는데, 그리고 책을 읽어야만 하고 종교생활을 해야 하니 말이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안 받겠다고 하면서 뛰쳐나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술 담배를 못하게 하니 말이다. 그래서 밖에 나가서는 자기 손으로 앵벌이라도 하면서 술과 담배를 즐기고, 또 마약까지도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까지 와서도 손을 벌리는데, 자기들 나름대로 다 구역을 정해서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그것은 제가 과거에 사찰집사(?)를 해보았기 때문에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간증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교회에서 총동원주일을 할 때는 꼭 참석하는데, 일당도 받고 밥도 먹고 선물도 받고 말이다. 하지만 그 돈을 들고서 그만 술을 마시러 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총동원주일이 사람을 다 버려놓는다는 말이다.

◈ 민수기(民數記) - 백성들의 두 번 숫자를 헤아려서 !!

아무튼 지금부터는 민수기를 살펴보도록 하겠는데, 앞선 레위기에서는 진짜 하나님은 '십계명+제사법' 이라는 것으로 사람들을 구원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과연 이 민수기는 무엇인가? '민수의 일기'가 아니고, 백성들의 숫자를 카운터해서 기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수기(民數記)' 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의 숫자를 왜 기록하도록 했는가? 그것도 두 번씩이나 기록을 하도록 말이다. 그런데 첫 번째 기록과 두 번째 기록된 숫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왜 다른고 하니까, 그 숫자를 기록하는 사이에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광야에서 모두 망하는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렇게 망해서 죽은 사람의 숫자 변동사항을 보여주는 것이 곧 '민수기' 라는 것이다.

◈ 그렇게 해서, 도대체 몇 명이나 남았는가?

다시 정리하자면, 민수기란 숫자를 두 번 헤아리는 것인데, 첫 번째 숫자를 헤아림을 통해서,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들었으면, 두 번째 숫자를 헤아림에서 그렇게 백성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는 것이 곧 '민수기' 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첫 번째로 숫자를 카운터하고 나서 그들을 광야로 데리고 다니는 과정에서 탈락자들이 그만 생기게 되었는데, 그리고 두 번째 카운터에 있어서는, 그렇게 해서 잘린 사람들을 빼고 도대체 몇 명이나 남았냐는 것이다. 탈락한 자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결국 이것이 보여주는 바는, 하나님은 사람들을 전도하고 교회를 부흥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만 데리고 가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민수기의 핵심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천당에 갈 욕심으로 따라다녀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 그러한 자들은 모두 다 잘린다는 말이다. 그러니 천당에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대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눈에 보이지 않는 구원자가 광야 길을 동행 !!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광야에서 그렇게 멸망을 당하고 했는데 말이다. 민수기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고 하니까, "지금 우리의 구원자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와 함께 이렇게 험한 인생 길을 동행하고 있다" 라는 것인데, 그것을 좀 알라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자가 함께 동행한다는 것을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동고동락(同苦同樂)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 얼마나 중요한지, 이것을 모르면 탈락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히브리서 2장을 한번 살펴보자.

(히 2: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히 2: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이렇게 살기 힘든 세상에 예수님께서 함께 들어오셨는데, 그 예수님이 자기는 휘파람을 불면서 사셨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아니 우리의 고통 이상을 친히 담당하셨는데, 왜 그렇게 고난을 먼저 받으셨는고 하니,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에서 건져주기 위해서, 그래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고, 그렇게 고난을 받으셨다는 말이다.

여기서 다른 긴말이 필요가 없고, 시편 23편을 보면 이 부분이 얼마나 확실하게 잘 나오는지 알 수가 있는데, 일단 시편 23편을 한번 살펴보자.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여호와는 어떤 분인고 하니, 우리의 목자인데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험란한 인생 길을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상을 베푸시는데, 그래서 우리의 잔에 은혜가 출출 넘친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그 은혜와 사랑을 마지막에 깨닫는다는 건가요?

그 깨닫는 것을 지금 깨닫게 하시는데, 미리 앞서서 말이다. 여기에 나오는 바로 이 '목자'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는데, 트로이의 목마 안에 사람들이 들어있듯이 말이다. 이 목자 안에 주님의 사랑하심과 용서하심이 모두 들어있는데, 그것을 날마다 깨닫도록 해주시고 말이다. 그분이 친히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 말이다.

그런데 그 생명 길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넓은 것이 아니라 좁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교회마다 이런 부분이 헛갈리는데, 즉 '좁다' 라는 것이 말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왜 교회에 나오는고 하니, 좁은 길 대신에 넓은 길을 가기 위해서 라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좁은 문을 들어선다고 해도 넓은 길이 나오기를 원하고 말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좁은 문이라고 하는 것은, 그 좁은 문을 통과해서 나오는 길도 역시나 좁다는 것이다. 껍데기만 좁은 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 질문 - 이 세상에서 교회에 다니는 것 자체가 좁은 길이 아닌지요?

물론 그러한데, 우리가 목사나 장로와 싸운 것도 역시 좁은 길이고 말이다. 그러니 이 길은 그냥 좁은 길이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가신 좁은 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와 싸웠는가? 십자가를 반대하는 자들과 싸웠는데, 그들이 바로 행함을 주장하는 유대인들이란 것이다. 그들은 자기 행함을 내세웠는데, 즉 율법을 자기들이 지켜야 한다고 말이다.

◈ 좁은 길 - 인간의 행함과 싸우면서 가신 예수님의 길 !!

이에 반해서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는가? 내가 곧 길이다" 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바로 이런 싸움을 하면서 인생을 사셨다는 것이다. 즉 십자가를 반대하는, 자기의 행함을 내세우는 자들과 말이다. 유대인들은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 라고, 즉 "말씀대로 지켜야 복을 받는다" 라고 하고 주장했고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 반해서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아니야. 내가 곧 길이다. 그러니 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라고 하셨는데, 그러므로 바로 그러한 예수님께서 가신 길이 곧 좁은 길이고, 그것이 곧 생명의 길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그러한 예수님의 길을 따라갈 경우에만, 바로 그럴 경우에만 주님께서 우리를 친히 도와주시는데, "이리로 가야지. 아니, 저리로 가야지. 됐어. 거기 오케이" 라고 인도를 하신다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성경에는 여러 가지 말씀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데살로니가후서 1장을 한번 살펴보자.

(살후 1: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살후 1:6)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살후 1:7)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살후 1: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살후 1: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이 얼마나 구구 절절하고 사무치는 말씀인가? 그리고 여기 8절에 살펴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 라는 부분이 있는데, 즉 복음에 복종치 않으면 형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자기가 검사가 되고 판사가 되고 대통령이 되어도 말이다. 그 누구라도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 '사운드오브뮤직'과 '투모로우' !!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참 감명 깊게 본 영화가 있는데, 평생에 잊지 못할 영화인데, '사운드오브뮤직' 이라고 말이다. 혹시 여러분도 아시는지? 그 뒤에 그 영화를 10번은 더 보았지 싶은데, 아직까지도 그 영화보다 더 좋은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만큼은 안 되지만 최근에 비슷한 감동을 느낀 영화가 하나 있었는데, 지구의 종말을 그린 '투모로우' 라고 말이다.

이 영화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와는 수준이 비교도 안 되는데, 마지막 때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인간들이 그 얼마나 비참하게 깨어지는지, 너무나도 실감이 나게 보여주더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영화는 아니고 일종의 재난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지구가 환경의 파괴로 인해서 엄청난 재난을 당하는 말이다. 영화를 찍는데 제작비가 무려 1억8천만 달러나 들었다는 것이다. (1억8천만 달러라면 도대체 얼마야? 2000억인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어느 목사님은 '태극기를 휘날리며'를 백 개를 줘도 이 영화 하나와도 바꿀 수 없다고 했는데, 내용적인 면에서나 화면의 그래픽 처리가 얼마나 뛰어나든지 말이다. 아무튼 이것을 보고 나서 정말이지 제대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사명감까지 들었는데, 누가 뭐라고 해도 마지막에 이 지구는 멸망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조금 전에 우리가 살펴본 8절에 있는,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 라는 말씀과 얼마나 잘 맞아떨어지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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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모로우 (2004, 미국) The Day After Tomorrow
감독 : 롤랜드 에머리히
주연 : 데니스 퀘이드, 제이크 길렌할
영화 줄거리 (Synopsis) : 깨어있어라, 그 날이 다가온다
출처 : www.film2.co.kr

기상학자인 잭 홀박사는 남극에서 빙하 코어를 탐사하던 중 지구에 이상변화가 일어날 것을 감지하고 얼마 후 국제회의에서 지구의 기온 하락에 관한 연구발표를 하게 된다. 급격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남극, 북극의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차가워지면서 해류의 흐름이 바뀌게 되어 결국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이는 거대한 재앙이 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비웃음만 당하고 상사와의 갈등만 일으키게 된다. 잭은 상사와의 논쟁으로 퀴즈대회 참가를 위해 뉴욕으로 가는 아들 샘을 데려다 주는 것을 잊어버리고 만다. 얼마 후 아들이 탄 비행기가 이상난기류를 겪게 되고 일본에서는 우박으로 인한 피해가 TV를 통해 보도되는 등 지구 곳곳에 이상기후 증세가 나타나게 된다. 잭은 해양 온도가 13도나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자신이 예견했던 빙하시대가 곧 닥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잭은 앞으로 일어날 재앙으로부터 아들을 구하러 가려던 중 백악관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잭은 브리핑을 통해 현재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지구 북부에 위치한 사람들은 이동하기 너무 늦었으므로 포기하고 우선 중부지역부터 최대한 사람들을 멕시코 국경 아래인 남쪽으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과감한 주장을 하면서 또다시 관료들과 갈등을 겪게 된다. 이동을 시작한 사람들은 일대 혼란에 휩싸이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잭은 아들이 있는 북쪽 뉴욕으로 향한다. 인류를 구조할 방법을 제시한 채 아들을 구하기 위해 역진하는 잭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또, 인류는 지구의 대재앙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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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지금 여기에서 사도바울이 말하는 것은, '착해라' 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라" 라는 말이다. 즉 "너의 죄를 용서하신 그 복음의 위대함을 알고 감탄하라" 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복음을 안다고 하는 것이, 그리고 그것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좀 알고 살아가라는 말이다.

◈ 민수기에서 잘린 사람들의 특징 - 애굽으로 돌아가자 !!

다시 민수기로 돌아와서, 누군가가 이 민수기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가치를 무시할 때, 그들은 모두가 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줄줄이 탈락해버렸다" 라고 대답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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