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6-출애굽기4,레위기(강의정리)-잘린부분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6-출애굽기4,레위기(강의정리)-잘린부분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1)
예를 들어서, 자기는 고아원도 방문하고 착한 일을 많이 했는데, 그런데 아이가 너무 아파서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주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 라는 데살로니가전서 3장의 말씀이 생각나게 해서 회개하도록 해주신다는 것이다. 즉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이 곧 죄라고 말이다.
또 갑자기 아내가 병이 들어서 죽어간다면, 앞길이 하도 망막해서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하곤 했는데, 그런데 로마서 14장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라고 말이다. 그러면 "아하, 이것은 하나님 손에 달려있는 문제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이다.
(롬 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그러니 우리가 평소에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되면, 습관적이 아니라 심도 있게(?) 말이다. 그렇게 하면 그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비록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고 해도 항상 이 성경말씀이 우리 귓가에서 왕왕 거리면서 제대로 깨닫도록 지적을 해주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자기 아내나 자식들을 자랑하고 싶다가도, "누구든지 그렇게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자는 예수님에게 합당하지 못하다" 라는 말씀이 또 생각나서 회개하도록 하는데, 그렇게 말씀으로 말이다. 이것이 바로 신약과 구약이 다른 점이라는 것이다.
◈ 지금부터 레위기를 !!
이제 이 시간에는 '레위기'를 하도록 하겠는데, 먼저 이 레위기를 하기 전에 민수기를 먼저 조금 살펴보고 하겠는데, 왜냐하면, 그냥 레위기를 먼저 해버리면 이 레위기가 너무나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목사님이 성경을 다 읽어보라고 해서 이 레위기를 읽어보기는 하는데, 이미 한 이야기가 또 나오고 또 나오고 말이다. 아니, 무슨 술 취한 신랑이 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너무나도 지루하고 짜증이 난다는 말이다. 그런데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니 그렇게 짜증도 내지 못하고 말이다. (지루? 짜증?)
아무튼 성경을 큰 마음을 먹고 창세기부터 읽기를 시작하다가도 항상 포기하는 곳이 바로 이 '레위기' 라는 것이다. 이것이 항상 되풀이가 되어서 성경을 읽는 진도가 나가지 않는데, 그래서 보통 일년에 한 두 번씩 이런 이들을 되풀이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 레위기는 제가 출애굽기를 하면서 이미 모두 이야기를 다 했다고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 레위기 - 안 쪽은 깨끗하고, 바깥쪽은 더럽다 !!
이 레위기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안 쪽은 깨끗하고, 바깥쪽은 더럽다" 라는 것인데, 물론 성막을 기준으로 해서 그 안과 밖이 그렇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성막에 들어갈 때는 더럽지만 나올 때는 깨끗하게 되어서 나온다" 라는 것이다. 일종의 변압기라고 할까요? 110볼트로 들어가서 220볼트로 나오고 말이다. 일단 이 성막을 통과하기만 하면 거룩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금은 여담 같지만, 제가 어릴 때 우리 집에서 큰마음을 먹고 전축을 하나 샀는데 얼마나 신기하던지 말이다. 1800년대에 벨이 전화기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는지, 사람들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밖에 나가서 상대방이 왔는지를 밖에 나가서 확인도 하고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악마의 조화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일으키는 기적의 완성이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화기는 파장이 그냥 음파로 바뀌는 것에 불과한데, 그러니 요즘 이것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게 여기지 싶은데,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파' 까지도 모두 다 파악해내는 것이 현대과학인데, 요즘은 그런 것을 사진으로까지 다 찍어내고 말이다.
◈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
장치를 이야기하려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튼 레위기에서는 그 어떤 장치를 했는지 일단 들어가면 죄가 모두 없어지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옥시크린을 왕창 풀었는지,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그렇게 되느냐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제사' 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제사에는 5가지의 종류가 있는데,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그리고 '화목제' 라는 것이다. 혹은 속죄제와 속건제를 같은 것으로 여겨서 4가지라고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일단은 '죄 있음'이 들어가면 '죄 없음'으로 나오는데, 그것을 레위기에서 설명을 해놓았다는 것이다.
◈ 제사의 4가지 요소 - 성소, 제사장, 제물, 안식일 !!
이러한 제사가 레위기에 기록되어있는데, 이런 제사를 드리려고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고 하니, 먼저는 '성막과 성소'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두 번째로는, 그런 작업을 해야할 '제사장'이 필요하고, 그리고 세 번째로는 '제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로 필요한 것이 바로 '시간'인데, 앞의 것들은 인간이 준비할 수 있지만, 그러나 이 시간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안식일인데, 즉 거룩한 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 또 다른 특별한 날을 만들어서 제사를 드리고 말이다. 그러므로 아무 때나 제사를 드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공간성' 이고 말이다.
여기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늘 강조한 것이 너무 많아서 헛갈리지 싶은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실 때, 바로 그것 자체가 거룩이고 다른 것들은 모두가 다 더러운데, 즉 세속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정해주셨다는 것은 성소만이 거룩하다는 말인데, 즉 거룩하지도 않은 자가 이 성소 안으로 들어가면 죽기 때문에, 그래서 거룩한 제사장만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수기 16장에 보면, 고라자손이 이런 원칙을 어겨서 땅이 갈라져서 일만 명 이상이나 죽고 했다는 말이다. 자기들이 제사장으로 일을 한번 해보겠다고 해서 말이다. 그리고 제물도 하나님께서 지정한 것을 해야지, 아무렇게나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제물로 정해서바치면 제물을 바치는 자가 그만 죽고 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더러우니 말이다. 즉 지정된 제물이 아니면 더럽다는 것이다.
(민 16:47) 아론이 모세의 명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민 16:48)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민 16:49)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일만 사천 칠백명이었더라
◈ 성막은, 오로지 하나님이 정한 것에 의해서 !!
그래서 레위기의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죄를 거룩으로 바꾸어주시는 그러한 장치에 들어가는 것은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정한 것에 의해서 비로소 거룩이 유지되고 보존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 전체가 신약에서는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거룩하다는 것이다. 그런 자들이 곧 성도이고 말이다.
이렇게 되면 아마 여러분 가운데서 질문하기를, "그렇다면 목사님, 죄를 거룩으로 바꾸어주는 장치인 이 성막의 구조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미리 당겨서 보여주는 것입니까?" 라고 하지 싶은데, (아닌가?) 당연히 'O.K' 라는 것이다. 즉 성막과 성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미리 앞당겨서 보여주는 것인데, 영화에서 일종의 예고편이라고나 할까요?
◈ '제사'에 대해서 !!
이제 제사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겠는데, 먼저 '번제'로서, 이 '번제(燔祭)' 라는 것은 말 그대로 남김이 없이 다 태우는 제사라는 것이다. 그냥 봐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자존심이 있기에 일단 깨끗이 청소를 다하면 대신 용서해주겠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죄를 지은 만큼 그 값을 치르면 용서를 해주겠다는 말이다. 안셀무스의 '만족설', 혹은 '보상설' 이라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은 보상을 받고서 포로를 놓아주든지 용서를 해주지, 그냥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 속죄제는 그 죄의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귀에게 값을 쳐주는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하나님은 마귀와는 거래를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마귀는 그러한 하나님의 거래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스스로에게 대가를 원하고 그렇게 용서를 하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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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족설 [充足說, satisfaction theory] - 캔터베리 대주교 안셀무스가 주장한 속죄론. 만족설 또는 보상설이라고도 한다. 그에 따르면 태초에 하느님은 천사들을 창조하여 하느님 나라에서 살게 하였으나, 이들이 타락하자 그 손상을 메우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였다. 그러나 아담 역시 범죄함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여 죄는 인간의 의지 속에 깊이 뿌리박게 되었으며, 죄는 곧 인간이 하느님에게 바쳐야 할 의가 결여된 것을 말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구원론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인간(아담)의 범죄로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차질이 생기고 하느님의 영예가 훼손되었다. 훼손된 영예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함으로써 인간이 지불해야 할 모든 대가를 대신 지불함으로써 하느님은 만족해 하고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었다는 설이다. 테르툴리아누스와 키프리아누스도 이와 같이 주장하였다. 충족설은 사람의 죄가 무한히 큰 것일지라도 희생은 하느님 자신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는 것이므로 영원한 희생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마땅히 소유할 수 있는, 인간을 소유하도록 하느님이 허락하였다. 이와 같은 논리는 법률적 원리와 논리적 표현이 스콜라철학적 방법에 의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죄의 심각성, 즉 하느님이 쉽게 용서해주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주는 반면, 배상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인간의 죄는 하느님에게도 어떤 긴장을 주었다고 하며, 사람도 물론 그 긴장을 느낀다고 한다. 이 설은 가톨릭의 도덕신학에서도 하나의 필요한 요소로 간주한다. - 야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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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죄의 대가가 바로 속죄제와 속건제인데, 여기에서 이 두 가지 제사의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속죄제는 하나님께 지은 죄에 대한 것이고, 또 속건제는 이웃에게 지은 죄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죄는 속죄제로, 또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죄는 속건제라는 것이다. 사실상 제물은 별반 차이가 없고 말이다.
◈ 화목제 - 이거 먹어봐 !!
마지막으로는 '화목제'가 있는데, 우리가 다 바쳐서 번제를 잘 드리고, 그리고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곧 속죄제이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남아 있는가?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먹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화목제' 라는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귀하게 간직하라" 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 얼마나 멋이 있는지(?), 지금부터 다음의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대화를 한번 잘 들어보라는 말이다.
* 아버지 : 아들아, 니가 사고를 친 것이 있지?
* 아 들 : 예, 있습니다.
* 아버지 : 그러면 그것을 보상해라.
* 아 들 :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값을 다 치르면 저는 자유입니까?
* 아버지 : 아니다.
* 아 들 : 왜요? 저는 제가 할 것은 다했는데 말입니다.
* 아버지 : 이 건방진 놈아,
* 아 들 : ? ? ?
* 아버지 : 아버지가 너에게 공짜로 선물을 줄 테니, 그것을 귀하게 여기겠느냐?
* 아 들 : 공짜로요? 그건 싫은데요? 그러면 저에게 자유가 없잖아요?
* 아버지 : 그러면 죄 용서가 안 되는데, 내가 그냥 준 것이 있어야만 영생을 받는다.
* 아 들 : 예, 알겠습니다.
만약에 이런 아버지의 선물을 아들이 거부한다면, 그렇게 되면 죄가 들어가서 거룩이 되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화목제를 드려야만 하는데, 그렇게 되어야만 그 속에 하나님께서 그냥 공짜로 주신 귀한 영생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제사' 라는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하시는 솜씨가 그야말로 완벽하지 않는가? 죄로 들어가서 그냥 그것만 처리하고, 즉 죄가 없어져서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 묶인 거룩한 백성의 상태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화목제는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위해서 음식을 마련한다는 말이다.
물론 그 제물들은 백성들이 바친 것이지만,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베푸시는 파티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파티에 참석해서 그 음식을 먹음으로 말미암아서, 이제부터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그런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 십자가 - 5가지 제사를 한꺼번에 !!
그러니 예수님의 십자가는 번제도 되고 소제도 되는데, 그렇게 번제가 된다는 것은 피를 바쳐서 자기 목숨을 태웠으니 말이다. 또 모든 것을 영원히 바칠 수가 있기에 소제도 된다는 것이다. 또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지셨으니 속죄제도 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이니 속건제도 되고, 그리고 또 하나님의 사랑도 내세운 것이 되니 화목제도 된다는 것이다. (아하, 그렇군요!!)
그러므로 예수님은 레위기에 나오는 5가지 제사를 십자가에서 한꺼번에 왕창 다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단 한방에 말이다. 단 한번에 말끔하게 하니, '젤콤' 인가? 왜 전에 심형래가 선전했던 구충제 말이다. 아무튼 주님께서는 단 한번에 다 이루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만 거기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러니 전혀 행함이 아니라 말이다. 행함이라면 오로지 주님의 행함이고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물인데, 그것이 바로 '레위기'의 전체내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레위기의 나머지 이야기는 다 무엇인고 하니, 이 제사를 드리는 일에 종사해야 할 제사장들은 어떤 생활을 해주어야 되는지, 이들이 생활을 잘못하게 되면 이스라엘에게 어떤 끔찍한 결과가 초래되는지, 그런 이야기들이 레위기의 나머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시간에 살펴보고, 오늘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진짜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하시는지, 그것을 우리가 알았사오니, 그저 그 모든 감사를 우리 주님께만 드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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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제사를 저렇게 분류를 많이 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이지요?
제사는 3가지 분류인데, 속죄제와 속건제는 인간 쪽에서 무슨 하자가 있기에 인간이 해야되는 것이고, 그 나머지는 마무리 입가심으로서(?) 하나님께서 해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 쪽에서 하는 것은 부실한데, 죄도 있고 모두 다 바치지도 않고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화목제를 통해서 마무리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이렇게 전환장치를, 즉 트랜스를 만들어서 주시는데, 그것이 진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분류를 해야하는지 다시 설명을 하자면, 사실은 5가지이지만, 번제와 소제를 하나로 보고, 그리고 속죄제와 속건제를 하나로 보면 3가지가 되는데, 그런데 이것을 또 인간 쪽과 하나님 쪽으로 이렇게 나누면 2가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 쪽에서 하는 것이 부실하니까, 그것은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섬기는 차원밖에는 안 되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화목제가 제일 마지막에 있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그리고 제사를 드리는 순서는 어떠한고 하니까, 순서도 다 이유가 있는데, '속죄제와 속건제', 그리고 '번제와 소제', 그리고 '화목제' 라는 것이다. 죄를 먼저 씻고 난 다음에, 죄를 씻은 그 제물을 온전히 바치고,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았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화목제를 드리고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이제는 제사를 단번에 드리니 편한(?) 것 같은데요?
물론 지금은 우리가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성경에 기록케 하신 것은 그 의미를 평생을 두고 알라는 것이다. 즉 "이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으니 저는 잘났습니다" 라고 하면 번제에 걸리는데, 왜냐하면 번제는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저는 다 바쳤는데요" 라고 한다면, "그러면 이제 내가 준 것을 잘 간직해야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화목제에 걸린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레위기에 나오는 제사는, 한 평생을 우리가 되새기고 또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항상 십자가 앞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모습이고 말이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이러한 그 엄청난 내용들이 들어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농땡이를 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2008년 6월 13일 새벽 3시 10분에 마침(2005판 재정리)
내일 장사는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