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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6-출애굽기4,레위기(강의정리)자유게시판레위기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6-출애굽기4,레위기(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1)

04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06 - 출애굽기4, 레위기

04,06,05 강의: 이근호 목사, 정리: 구득영

◈ 모세의 3번에 걸친 시내산 등반기 !!

출애굽기를 마지막 시간으로 살펴보는 시간으로서, 오늘 정말이지 중요한 것을 강의하겠는데, 예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을 말이다. 그러니 정신을 집중하고 좀 긴장을 하면서 잘 들어야 하는데, 일단 출애굽기 24장부터 살펴보자.

먼저 모세가 시내산에 몇 번을 올라갔는가? 3번을 올라갔는데, 처음으로 올라간 것은 19장에 나오고, 이 때는 40일만에 말씀을 모두 다 외워서 내려온다는 것이다. 즉 아무 것도 가지고 내려오지 않는데, 머리 속에 집어넣어서 내려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20장에 나오는 십계명이고 말이다.

(출 19:20)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그리고 두 번째 올라가는 것은 출애굽기 24장에 나오는데, 이때는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주신 말씀이 새겨진 두 돌판을 가지고 내려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31절(?)의 십계명인데, 그런데 백성들이 모세를 기다리다가 그만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섬기고 말았는데, 그래서 40일만에 모세가 내려와서는 이 광경을 보고서는 그만 이 두 돌판을 던져서 돌판이 깨어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출 24:1)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과 함께 여호와에게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출 24:2) 너 모세만 여호와에게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그래서 모세는 처음 돌판을 본 그대로 만들어서, 다시 그 돌판을 가지고 산 위로 올라갔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십계명을 다시 기록해주심으로, 그것을 받아서 내려온다는 것이다. 바로 이 두 개의 돌판이 그 유명한 법궤에 담기게 되는데, 이때도 40일을 금식하며 산 위에 있었고 말이다.

(출 34:4) 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대로 시내산에 올라가니
(출 34:28)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일 사십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여기서 우리가 궁금한 것은, 모세가 처음에 올라가서 말씀을 외워서 내려왔으면 되는데, 왜 또 올라오라고 하시느냐는 것이다. 물론 세 번째는 돌판이 깨어졌으니 다시 올라가더라도 말이다. 그것은 바로 '돌판'을 주기 위해서 인데, 처음에는 그냥 빈손으로 내려왔지만, 두 번째는 이 돌판을 받아 가지고서 왔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돌판을 주시는가? 성경에서 바로 이런 점이 어렵다는 것이다.

◈ 굳이 돌판이 왜 필요한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모세가 처음에 시내산에 올라가서 외워 가지고는 산밑으로 내려와서 백성들에게 이야기를 했고, 그것을 백성들이 모두 받아 적었으면 다 되었는데,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잘 가르치면 될 텐데, 그런데 왜 이렇게 '돌판' 이라는 것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그렇게 돌판을 준다는 것이 24장 12절에 나오고 말이다.

(출 24: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너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특별히 모세가 돌판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하나님께서는 굳이 이렇게 친히 돌판을 마련해서 주시는가? 즉 이렇게 친히 돌판을 주어서 가르쳐야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이다. 도대체 돌판이 없으면 뭐가 안 되기에 말이다.

◈ 돌판은 '깨어짐'으로서 가르침이 !!

성경을 보면서 이런 점이 참으로 어려운데, 이미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서 알 것은 다 아는데, 그런데 왜 돌판이라는 것이 굳이 또 필요하냐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이 돌판이 내려오다가 어떻게 되는고 하니,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즉 우상을 섬김으로 말미암아서 깨어지는데, 바로 그 '깨어짐'이 가르침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출애굽기 24장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런데 다시 돌판이 내려오는 것은 32장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고 하니까, 앞으로 모세가 산 아래에 내려가서 백성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해야 하는지, 그런 지시사항들이 계속해서 나온다는 것이다.

25장에는 성소를 짓는 것인데, 증거궤, 전설병을 놓는 상, 등대 등이고 나오고, 26장에는 성막을 만드는 것에 대한 것이고, 27장은 번제단과 성막의 뜰이 나오고, 28장은 제사장의 옷에 대한 것이 나오고, 29장은 제사장의 직분과 제사에 관한 것이고, 30장은 향단, 생명의 속전, 물두멍, 관유와 향 등에 대한 것이고, 그리고 31장은 안식일 등에 관해서 나온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어디에서 하는고 하니까, 산 위에서 하나님과 모세가 서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 둘이서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산밑에 있는 백성들은 이런 내용을 전혀 모른다는 말이다. 오로지 모세 혼자서 이러한 내용을 다 듣고 지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 민중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그러면 과연 하나님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있는가? 즉 길을 가는 할머니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을 하겠냐는 말이다. 아마 "나도 좀 알지.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자비롭고 대단히 훌륭한 분이시지. 나도 옛날에는 교회에 좀 나가곤 했어" 라고 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이 할머니가 알고 있는 하나님과, 즉 사람들이 산밑에서 알고 있는 하나님과 방금 제가 말한 출애굽기 24장에서 32장에 나오는, 그러한 모세가 직접 산 위에서 만난 하나님과 과연 같은 분인가? 물론 글자는 같을지 몰라도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게 분명히 다른데, 그런데도 왜 한국교회는 이러한 점을 이야기해주지 않으니, 그 얼마나 비겁하냐는 말이다. 그저 "하나님은 좋으신 분입니다. 열심히 기도하시면 그대로 됩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민중들이 알고 있는 그런 하나님만을 맨 날 이야기하느냐는 것이다. 그야말로 '그 나물에 그 밥' 인데, 마구 밀어 부치고 말이다. 사실 민중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데, 그런데 마치 다 아는 것처럼 여기고, 그렇게 사기를 치는데, 그저 목사나 잘 섬기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밀어 부친다고 해서 모세가 만난 그 하나님을 과연 만날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제가 참으로 답답한데, 복음이 중요한 것이지 눈에 보이는 교회가 문제가 아닌데,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아야만 하는데, 그런데 여기에는 목사도 그렇고 장로도 그렇고, 이런 말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빌고 비나이다. 가정에 복을 주시고, 사업이 잘 되게 해주시고, 교회에 부흥성장의 복을 주시고, 나라가 잘 되게 하소서" 라고 하지 말이다.

◈ 계속해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의 종교적 행태를 너무나도 잘 아시기에,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산 위로 부르셔서, 그 내막을 25장, 26장, 27장, 28장, 29장, 30장, 31장에서 계속해서 밝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인 출애굽기 25장에서 31장을 전혀 모른다고 하는 것은, 적어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완전히 '꽝' 이라는 말이다.

요한복음 3장 14절에 보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 라고 하는 말씀이 나오는데, 기억이 좀 나세요? 그 뒤에 나오는 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라고 하는 유명한(?) 구절이 있고 말이다.

아무튼 여기에서 '들린다' 라는 것은 십자가에 달려서 들린다는 의미인데, 그렇게 인자가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 곧 진정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그런 하나님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 모세에게 예고하시고, 예수님은 완성하시고 !!

이렇게 예수님께서 보여주는 하나님이 곧 모세가 산 위에서 만난 그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한 것은 미리 예고한 것이고, 예수님은 그것을 완성하셨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은 모세에게 예고하시고, 예수님은 완성하셨다" 라는 것인데, 바로 이 캡슐을 벗어난 하나님은 가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방식으로만 일을 하신다는 말이다.

◈ 왜 돌판에 십계명이 새겨져야만 하는가?

지금부터 제가 감히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받았던 이 돌판의 비밀을, 즉 깨어져야 가르침이 되는 비밀을 공개하도록 하겠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더 강조하지만, 이미 백성들은 출애굽기20장에서 십계명을 이미 다 알고 있는데, 그런데 왜 돌판에 그 말씀이 새겨져야만 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25장부터 31장까지 나오는 성소, 성막, 제사장, 제사법 등등, 이런 모든 것들이 왜 필요하냐는 것과 연결이 되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십계명이 있으면 되었지, 즉 십계명만으로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왜 굳이 돌판에 그 말씀이 새겨져야만 하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25장부터 31장까지 나오는 성소, 성막, 제사장, 제사법 등등의 방식이, 그런 것들이 십계명과 더불어서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 돌판에 십계명이 새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좀 어렵고 생소한 이야기이지 싶은데, 이런 이야기는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 질문 -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깨닫게 됩니까?

깨어져야만 깨닫는다는 것인데, 하지만 이렇게 깨어지게 되면 산밑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저주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깨어진다는 것은 계약이 깨어진다는 것이고, 그것은 조금 전에 말한 그 캡슐 밖으로 나갔다는 말이다. 즉 그들은 이제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그러므로 구원을 받지 못 한다는 말이다.

* 질문 - 십계명의 내용과 출애굽기 24장에서 32장까지 지시내용과의 연관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그것이 모세가 세 번째 올라가면서 밝혀지는데, 여기서 출애굽기 32장을 9절부터 한번 살펴보자.

(출 32: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출 32:10)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출 32:11)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출 32:12)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이렇게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진멸시키려고 하자 모세가 말리는(?) 부분인데, 그런데 33장 5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목이 곧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또 그들을 진멸시켜 버리겠다고 하는 것이다.

(출 33: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순식간이라도 너희 중에 행하면 너희를 진멸하리니 너희는 단장품을 제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 하셨음이라

◈ 세 번째로 산에 올라가는 모세 !!

이제 3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 번째로 산 위로 올라오도록 하시는데, 그래서 모세가 돌판을 두 개 만들어서 가지고 올라가는데, 물론 새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세기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세운다는 것이다.

(출 3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출 34:2) 아침 전에 예비하고 아침에 시내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출 34:3)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며 온 산에 인적을 금하고 양과 소도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
(출 34:4) 모세가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그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여호와의 명대로 시내산에 올라가니
(출 34:15) 너는 삼가 그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지니 이는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히 섬기며 그 신들에게 희생을 드리고 너를 청하면 네가 그 희생을 먹을까 함이며

이제 제가 지금까지 한 것을 한번 정리해보겠는데,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께서 얼마나 빈틈없이 완벽하게 일을 하시는지, 그것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아마도 놀라지 싶은데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20장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 하나님의 백성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모세가 그들을 떠나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데, 그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약을 위반하고 우상을 섬겼다는 것이다. 그러자 모세가 내려오면서 돌판이 깨어짐으로서 계약도 깨어졌는데,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그들을 다 진멸시켜 버렸다는 것이다.

◈ 모세언약 - 모세를 통해서 새로이 만드는 나라 !!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다 깨어지고 나니, 모세 한 사람만이 홀로 남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모세를 통해서 모세가 가지고 있는 언약, 즉 모세언약을 준수하는 거대한 나라를 만든다는 말이다. 물론 백성들이 모두가 다 죽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마음에 흡족한 사람은 모세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 살아있어도 다 멸망을 당할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되자 출애굽기 32장 32절에서, 모세가 자기 백성들을 제발 살려달라고 비는데, 생명책에 기록된 자기의 이름을 걸고서 말이다. 그냥 죽여버리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모두 다 진멸되어버리니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살려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34장에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고 다시 세 번째로 시내산으로 올라오라고 하는 내용이라는 말이다. 깨어진(?) 백성들을 살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출 32:31)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출 32:32)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 왜 다시 돌판을 만드는가?

이렇게 해서 모세는 3번째로 산 위로 올라가서 다시 돌판에다 십계명을 새겨서 내려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러한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시는가? 조금 전에 질문하기를, 그 연관성이 무엇이냐고 했는데, 지금 사람들이 무엇을 착각하는고 하니,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사람들이 우리나라 애국가에 하나님이 나오고 하니,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은데, 그러나 실제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보니, 지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분명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아닌데 자기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모세에게 세 번째로 산 위로 올라오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부터는 이 모세의 세 번째 언약에 종속되는 조건하에서 구원을 받게 된다는 말이다. 즉 그들은 범죄를 함으로 말미암아서 분명하게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데, 그런데 모세가 세 번째로 올라가서 가져오는 그 돌판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살아가게 될 때, 비로소 그들은 언약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 모세언약 - 모세의 이름을 담보로 !!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모세와 계약하기를 어떻게 하셨는고 하니, 하나님은 생명책에 기록된 모세의 이름을 담보로 해서, 즉 모세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구원해주기로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세언약' 이고 말이다.

예를 들어서, 집주인이 자기 건물에 세 들어있는 사람들이 세도 안 내고 말썽을 피우자 열을 받아서 쫓아내려고 하는데, 그런데 5층에 '앞선수학학원' 만큼은 세도 잘 내고 해서 주인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수학학원의 원장이 주인에게 와서 하는 말이, "저는 계약대로 했으니, 저를 좀 봐서라도 저들을 너그럽게 봐주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집주인이 하는 말이, "그러면 나도 조건이 하나 있는데, 저 사람들이 당신 말을 앞으로 잘 듣는다면 내가 그렇게 해주겠다" 라고, 그렇게 계약을 맺었다는 말이다.

* 집주인 : 저 놈들이 집세도 제대로 안 내고 말썽을 피워?
* 학원장 : 하지만 저는 잘 내었잖아요.
* 집주인 : 물론 그렇지.
* 학원장 : 그러면 저를 봐서라도 저들을 좀 봐주면 안 되나요?
* 집주인 : 그러면 조건이 하나 있다.
* 학원장 : 그것이 무엇이지요?
* 집주인 : 저 사람들이 당신 말을 잘 들으면 그렇게 해줄게.
* 학원장 : 정말이지요?
* 집주인 : 그렇다니까?
* 학원장 : 감사합니다.

◈ 돌판의 가르침 - 너희들은 아니야 !!

이제 여러분도 이해가 조금 되지 싶은데, 언약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이렇게 언약을 맺는다는 말은, 그 언약의 대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을 자격이 있어서 맺은 것이 아니라, 그들은 자격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제가 강조하고 싶은데, 이렇게 자격이 없다는 것을 무엇을 보고 아는고 하니까, 두 번째로 받은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 깨어진 것을 보고서 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 돌판이 깨어졌다는 것이 바로 가르침을 담고 있는데,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치는가? 사실 이것이 중요한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구원받을 자격이 없음을 모르는데, 그렇게 모른다는 사실을 깨우치기 위해서 애꿎은 돌판만 깨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미 백성들이 십계명을 모두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것은 모세가 다 외워서 내려왔고 말이다. 그런데 다시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만들게 해서 그 돌판을 깨트려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20장에 십계명이 먼저 나오고, 다시 모세가 올라가서 돌판을 가지고 와서는 던져서 깨어지게 하고, 또 다시 돌판을 만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출애굽기의 구조가 참으로 기가 막히지 않는가? 이렇게 돌판이 깨어지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할 시간" 이라고 하면서 작별을 고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이제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진멸을 당하는 일만 남았는데, 그런데 그때 모세가 가로막고 나서서 자기 이름을 걸고서 다시 백성들을 살려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다시금 불러서 깨어진 돌판을 원상 복귀시키고, 이제부터는 이 돌판을 중심으로 해서 같이 움직이면 자기 '언약백성'으로 삼아주시겠다는 것이다.

◈ 증거궤 - 무엇을 증거하는가?

이제 깨어진 돌판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이해가 좀 되지 싶은데, 그래서 이 돌판이 들어가는 궤짝을 두고서 '증거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법궤', 혹은 '언약궤' 라고 말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왜 증거궤인가? 도대체 무엇을 증거한다는 말인가? 그것은 바로 "너희들은 나에게 원망하고 대들어서 내 백성이 아니었는데, 하나님이 세 번째로 은혜를 베푸셨기에 내 백성이 되었다" 라는 것이다.

* 질문 - 그러면 그 증거궤를 보고 자기들은 언약의 백성이 아니었음을 안다는 것인가요?

당연한데, "저희들은 이러 이러한 우상숭배를 했던 놈들입니다" 라는 것과, 그리고 그것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증거궤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진다는 것이다. 자기들의 그 추하고 더러운 과거가 모두 다 들어있기에 말이다. 사실상 증거궤에 들어있는 돌판은 멀쩡하게 있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그 앞에 있었던 깨어진 돌판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이제 출애굽기 25장부터 한번 살펴보겠는데, 성경을 이렇게 보니 지금 한국교회가 시끄럽고 어쩌고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당장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성경을 통해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 왜 성막을 만들어야 하는가?

일단 지금부터 출애굽기 25장부터 설명을 하도록 하겠는데, 25장, 26장, 27장은 무엇을 말하는고 하니, 모세가 하나님께 두 번째로 올라갔을 때인데, 지금 밑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모세는 모르고 있는데, 물론 하나님은 잘 알지만 말이다. 25장 8절 이하에 보면, 지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무엇을 만들라고 하는고 하니, '성소'를 지으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출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출 25: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 모세를 통해서 보여주는 하나님만이 진짜 하나님 !!

다시 강조해서 이야기하지만, 이미 민중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하나님은 모두가 다 가짜 하나님이고, 오로지 모세를 통해서 직접 보여주는 하나님만이 진짜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들도 아론과 그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진짜 하나님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기 본성대로 적당하게 돈을 투자하든지 해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데, 그런데 그러한 것이 몽땅 다 가짜 하나님임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하나님은 도대체 어떠한 분인가? 진짜 하나님은 아주 구체적으로 성막과 성소를 만들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시는가? 굳이 왜 성막과 성소를 필요로 하느냐는 말이다. 여기에서 히브리서 9장 23절을 살펴보자.

(히 9: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 모형과 그림자의 특징은, 항상 실체에 붙어있어 !!

여기에 보면, '모형(模型)' 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즉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 이라고 말이다. 바로 이것이 히브리서 8장 5절에도 나오는데, 거기에서는 '모형과 그림자' 라고 하고 말이다. 이러한 모형과 그림자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항상 실체에 붙어있다는 것이다. '그림자 따로', '실체 따로'가 아니고 말이다.

(히 8: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 성소와 성막은 그림자이고 모형 !!

그러니 우리가 이것을 좀 쉽게 그림을 그려서 생각해보면, 여기에 시내산이 있고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것이 곧 하늘나라의 실체인데, 이 실체에 시커먼 그림자가 이렇게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그림자에 해당되는 것이 앞으로 모세가 산밑에서 만들어야 될 '성소'와 '성막'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그림자는 하늘나라의 실체와 연결되어 있는데,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체는 전혀 보이지 않고, 그들은 이 그림자만 보게 되지만 말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과 성소만을 쳐다본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두꺼비가 혀를 내밀면 혀의 뿌리는 보이지 않고 혓바닥만 보이는 것과도 같다는 말이다.

◈ 언약 - 두꺼비가 파리를 날름 삼키는 것 !!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마치 두꺼비가 혓바닥으로 파리를 날름 삼키는 것과도 같은데, 순식간에 혓바닥으로 '확' 하고 안으로 빨아드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모형과 그림자를 통해서 자기 백성을 '쏙' 하고 안으로 빨아 당기시는데, 그것이 곧 하나님의 구원방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스스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그러한 욕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모두 알아서 '쫙' 펴서 또한 돌돌 말아서 붙이고 당기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쫙' 하고 혓바닥을 펴서 말아 붙이는 것이 바로 '언약' 이라는 말이다. 마치 에스칼레이트에 올라타고만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2층으로 올라가듯이 말이다.

그러한 언약에 있어서, 밖으로 내미는 언약은 성소와 성막이고, 그리고 안 쪽에 있는 언약은 히브리서에도 있듯이 오직 예수님의 공로이고, 행위이고, 의로움이라는 것이다. 즉 모형은 모세이고 그 실체는 예수님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단번에 모두 이루셨다는 공로가 드러난 것이다. 그렇게 모형에 잡혀서 딸려 나온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고 말이다.

◈ 신약의 십자가는, 출애굽기의 모세언약 !!

이러한 것이 신약에서는 어떻게 표현되는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서 우리 인간들을 모두가 다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그런데 그 십자가에서 '쫙' 뻗어 나온 성령에 의해서 똘똘 말려든 사람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구약에서는 어떻게 되는고 하니,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 깨어짐으로서 그 누구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고, 즉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데, 그런데 그 구약시대는 십자가가 아니라 모세언약을 가지고서 '쫙' 당겨서 똘똘 말아버리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의 과정이라는 말이다.

◈ 그 놈의 '십계' 영화 때문에 !!

이런 엄청난 내막이 성경에 다 들어있는데,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한국교회는 너무나도 깜깜하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사를 보면 출애굽기를 제일 설교를 많이 했다고들 하는데, 도대체 출애굽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그냥 애굽에서 탈출하는 내용으로만 소개하지, 마치 '십계' 라는 영화처럼 말이다. 어떻게 '꽉' 잡아서 당기는지, 그것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도대체 그냥 덮어둘 수 있는 내용인가?

◈ 성막구조를 다시 정리를 해보면 !!

성막과 성소가 너무나 중요해서 다시 정리를 해보면, 실체는 보이지 않지만 혓바닥처럼 내미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 날름거리며 내미는 것이 '성소'이고 '성막' 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이 성소와 성막의 차이점은 무엇인고 하니, 성막 안에 성소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제물인 짐승을 잡아서 태우고 하는 것은 성소가 아닌 밖에서 하는데, 즉 성막에서 말이다. 이에 반해 성소에는 제사장만이 들어가는 곳으로서, 그 안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는데, 성소는 제사장이 제사를 드릴 때마다 들어가지만, 지성소는 제사장이 일년에 한번만, 즉 대속죄일(7월10일)에 들어가는데, 거기에는 법궤가 놓여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모두 합쳐서 보통 '성막'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성막은 가로가 약 23m, 세로가 45m정도이고, 문은 동쪽밖에 없는데, 즉 에덴의 동쪽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성소는 약 2층 정도의 높이가 되고, 성소의 제일 바깥은 수달의 껍질을 가지고 입히는데, 비가 내려도 새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면서도 이동식으로 만들어져서, 해체와 조립이 아주 용이하도록 되어있다는 것이다.

◈ 성막과 성소는 일종의 모델하우스 !!

그런데 이 성막을 히브리서에 보면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즉 모형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왜 아파트를 분양하기 전에 먼저 모델하우스를 보여주지 않는가? 그런데 그 모델하우스에 들어가서 산다고 하면 바보라는 말이다. 모형은 "아하, 그렇구나" 라고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히 8:4)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좇아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히 8: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이러한 성막과 성소는 일종의 드라마를 찍는 '세트' 와도 같다는 것인데, 제가 황령산(?)에 만들어놓은 세트장에 가보았는데, '바람의 파이터' 인지, 아무튼 그런 것도 촬영하고 했는데, 그런데 실제로 보면 합판을 가지고 만들어놓았는데, 이발소가 있어도 실제로 이발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세트장이니 말이다.

구약시대의 성막도 그러한데, 모두가 세트라는 것이다. 물론 제사장도 세트이고, 십일조나 안식일도 그렇고 말이다. 그렇게 세트이니 실체로서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십일조나 안식일을 지키고 말고 할 것이 없는데, 어디까지나 세트니까 말이다. 드라마를 모두 찍고 나면 다 철수시키는데, 그러니 이제는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렇게 날름 내미는 그 혓바닥에 말려서 올라가면, 그것은 단번에 지신 그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서 우리의 모든 죄는 다 없어졌다고 하는 것을, 그것을 미리 앞서서 보여주는 일종의 모델하우스이고, 드라마의 세트장이고, 영화의 예고편이라는 말이다.

◈ 사도바울 -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

그러니 그 혓바닥에 말리기만 하면 실체 속으로, 즉 예수님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막은 일종의 미끄럼틀인데, 타기만 하면 예수님 안으로 주루룩 들어가니 말이다. 그래서 빌립보서 3장에서 사도바울은 뭐라고 하는가? 자기가 온전히 이루었다는 것이 아니라, 부활에 이르기 위해서 십자가를 쫓아간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 안으로 빨려간다는 것인데, 그분의 온전한 이루심에 의해서 말이다.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 3: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 하지만 모형에는 실체에 대한 정보가 !!

그렇다면 이 성소와 성막이 모형이고 그림자이니 정말이지 아무 것도 아닌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실체에 대한 정보와 내막이 모두 들어있다는 것이다. 왜 모델하우스에 가면 방과 부엌과 싱크대 같은 것이 다 있지 않는가? 하지만 그것은 자기가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여주는 것이란 말이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장차 오실 실체에 대해서 '이미지' 라도 보여주어야만 하는데, 왜 요즘 TV에 방영하는 '역사 스페셜'이나 '생로병사' 같은 프로를 보면 '가상 스튜디오' 라고 있지를 않는가? 즉 손에는 잡히지는 않지만 시뮬레이션으로라도 보여준다는 것이다. 왜 공상과학영화에 보면 실체는 없는데 영상으로 나타나서 말을 하는, 그런 식으로 말이다.

◈ 모세의 시뮬레이션 !!

바로 이러한 이미지이고 시뮬레이션이 바로 모세가 산에 3번 올라가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외워와서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을 그대로 백성들에게 전달했고, 그 다음에는 십계명을 범했을 때의 죄를 씻어주는 성소와 성막에 대한 이야기를 24장부터 32장까지 하고, 그리고 마지막인 세 번째로는, 어떻게 해서 성막의 구조가 그러한 백성들의 패역한 죄들을 모두 다 용서해줄 수 있는 장치가 되는지를, 그것을 32장부터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정보가 이미지로서 성소와 성막에 이미 다 들어있다는 말이다.

이런 성소와 성막에서 분주하게 일하는 자들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한 마디로 말해서, "거룩하다" 라는 것인데, 즉 세속과는 구별된 거룩한 사람들이 성소와 성막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마치 난쟁이 마을에서 난쟁이들이 왔다갔다하면서 움직이듯이 말이다.

그것을 우리는 영화처럼 쳐다보면서, "오, 저기에 난쟁이 마을도 있었구나" 라고 하는데, 그것은 지금 우리가 속한 이 세계가 아니라 우리와는 단절된, 즉 다른 구별된 세계처럼 보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난쟁이가 아니니 말이다.

다음은 밖에서 성소와 성막을 바라보면서 하는 대화인데, 한번 엿들어(?) 보자는 것이다.

A : 아저씨, 저 사람들은 옷이 왜 저렇게 이상하게 생겼어요?
B : 그것은 거룩한 옷이기에 그렇단다.
A : 왜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하지요?
B :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그렇단다.
A :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구요?
B : 그래. 저기 옆에 보이는 것이 있지? 그것이 성소인데, 그곳에 말이다.
A : 아하, 그렇군요.
B : 하나님이 거룩하기에 그들도 그런 거룩한 옷을 입어야해.
A : 만약에 입지 않으면요?
B : 만약에 입지 않게 되면 불에 타서 죽는단다.
A : 야, 신기하네. 그러면 저는 그런 옷을 입고 일을 하면 안 됩니까?
B : 물론 안 되는데, 넌 레위지파가 아니니까 말이야.
A : 그렇다면 저들 중에서 특별히 이상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B : 저 사람들은 레위지파 중에서도 아론지파 제사장들이지.
A : 제사장들이라구요? 아무나 하면 안 되나요?
B : 안 되고 말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뽑아서 세운 자들이어야만 돼.
A : 그러면 저들의 속옷도 거룩합니까?
B : 물론이지. 모든 것이 다 거룩해.
A : 그런데 저 사람들의 옷에서 반짝반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B : 그것은 보석이야.
A : 누가 만들었지요?
B : 하나님의 신이 임한 사람이 만들었어.
A : 그러면 보석이 도대체 몇 개입니까?
B : 12개인데,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몸에다 지니기 위해서 그렇단다.
A : 어, 그런데 저 사람들은 무엇을 가져갑니까?
B : 그것은 놀랍게도 '피'란다.
A : 예? 피요?
B : 그렇지. 피란다.
A : 그 피를 어디로 가져갑니까?
B : 성소로 가져가는데, 그 성소 안에 지성소가 있고, 거기에 법궤가 있고, 그 안에 돌판이 들어있지.
A : 그래서요?
B : 그 법궤 위를 '시은좌' 라고 하는데, 거기에 일년에 한 번씩 피를 뿌려줘야 돼.
A : 왜 그렇게 피를 뿌려야 됩니까?
B : 우리들의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원망을 보여주는 돌판이 법궤 안에 들어있다고 했잖아?
A : 예, 그랬지요.
B : 그러니 그렇게 피를 뿌려서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함을 받아야만 돼.
A : 그렇게 하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나요?
B : 물론 받을 수 있지. 하나님의 은혜로 말이야.

◈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아이디어 !!

그러니 이런 성소와 성막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은, 우리가 사는 세속적인 우리동네 이야기가 아니라, 거룩한 사람들만 모여서 자기들끼리 노는 동네, 즉 하나님이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나라를 미리 모형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60만(?) 대군이 성막을 중심으로 함께 움직이는데, 하나님이 시키는 데로 그대로 따라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거룩한 언약궤를 중심으로 해서 들어갈 때, 그 앞에는 어떤 막강한 적들이라고 해도 다 패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겠는가?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에게서만 나왔다는 것이다. 인간의 머리 속에 이런 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 질문 - 그러면 레위지파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것인가요?

당연한데, 엄청나게 특별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레위지파는 자기 땅을 가지면 안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물론 먹을 양식은 다른 지파에서 십일조를 모아서 주고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레위지파가 다른 지파에게서 도움을 받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레위지파에게 먹을 준다는 것이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민중들이 먹을 것을 주는 것 같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인데, 물론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조건하에서 말이다. 그래서 목사는 오직 복음을 전한다는 조건하에서 먹고살아야 하는데, 10년 동안을 복음을 전하다가 그 다음날 엉뚱한 소리를 하면 스스로 그만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레위지파와 목사 ??)

* 질문 - 그러면 그런 십일조가 끝난 이유는 무엇인가요?

물론 이런 십일조도 일종의 모형인데, 그 말은 언젠가는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이것을 완성시킬 수 있는데,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으니 십일조도 끝이라는 말이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십일조를 완성시킬 수가 없는데, 의와 인과 신이 들어있어야만 온전한 십일조이니 말이다. 즉 모형은 언젠가는 불이 나서 없어져야만 하는데, 그래서 모델하우스가 불이 나서 없어지는 것이 성경적(?)이 아니냐는 것이다.(ㅋㅋ)

(마 23:2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 질문 - 목사님들이 레위지파에 속한다고 하는데요?

목사는 구약의 제사장이 결코 아닌데, 즉 이제는 레위지파는 없는데, 이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모든 성도들이 다 레위지파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라고 하면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해도, 그것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여겨야 하니 말이다. 장사를 해도 손님이 돈을 주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런 손님을 보내주셨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오늘날 거룩한 제사장이란 것이다.

◈ 한번 목사는 영원한 목사 ??

그러므로 한번 목사는 영원한 목사가 아니라, 오직 말씀으로 봉사하는 직분인데, 만약 그 말씀봉사의 은사가 떨어졌다면 당장에 그만 두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로 아직 은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이 욕심이 나서 엉뚱한 짓을 해서도 안 되고 말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복음으로 살아야지 목사를 바라보거나 의지해서 살면 안 되고, 그러니 목사에게서 복음이 떨어지면 당장에 아낌없이(?)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혓바닥에 문제가 있으면 그 '날름'이 되지 않기에 말이다.

* 질문 - 그런데 목사는 꼭 신학대학원을 나와야 하나요?

무론 꼭 그렇지 않는데, 그래서 요즘은 평신도들이 말씀을 증거하고 하는데, 물론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사를 살펴보면 그런 일들이 한 두 번이 아닌데, 교회사에는 인간들의 모든 아이디어들이 다 들어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회복교회' 라고 해서 '위트니스 리' 계통에서 그렇게 자기들끼리 하고 있는데, 그리고 '워치만 리'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워치만 리는 위트니스 리를 보고서 이단이라고 했는데, 하지만 위트니스 리는 워치만 리를 자기의 스승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조금은 웃기는 상황인데, 아무튼 서로가 입장이 다르다는 말이다.

이런 모임에서는 자기들이 모임을 하면서, 설교순서가 되면 "성령을 받은 사람이 나와서 설교하세요" 라고 하는데, 성직제도 자체를 부정한다고 하면서, 그런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도 실제로 그런 장면을 몇 번 구경을(?) 했는데, 얼마나 답답하든지 그냥 '확' 엎어버리고 싶었다는 말이다. 거기에서 자기 자랑밖에 나올 것이 뭐가 더 있겠느냐는 것이다.

◈ 신학교 - 조직신학, 성경신학, 교회사, 목회학 !!

신학교에 가르치는 것 중에서 조직신학이 있는데, 이것은 성경의 내용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테두리를 배우는데, 즉 "이 선을 넘어가면 이단이다" 라는 것이다. 거기에 비해서 성경신학은 성경의 알맹이를 배우는데, 그것이 곧 구속사이고 말이다. 즉 창조 때부터 종말까지 하나님께서는 어떤 흐름으로 일하시고, 그것이 어떻게 발전(?)이 되었는지 말이다.

그 다음으로 배우는 것이 바로 교회사인데, 여기에는 인간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바르게 하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그러한 모든 인간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가능성들을 공부해서, 나름대로 거기에 대한 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배우는 것이 목회학인데,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그런 것을 배운다는 말이다. 이러한 것을 수업에 빠지지 않고 제대로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면, 그 자격증을 주고 말이다. 물론 돈도 바쳐야 하고 말이다.

◈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바로 설교를 하게 되면?

그런데 여기에 비해서 일반 교인들은 어떠한가? 농사를 짓고, 공장에 다니면서, 돈을 번다고 바빠서 이러한 것을 전혀 배우지 못했는데, 그런데 자기가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그냥(?) 설교를 하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할 수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 이것은 1500년대의 이단이 했던 소리와도 비슷한데, 저것은 1700년대의 이단인데"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그렇게 이런 모든 것들이 이미 교회사를 통해서 다 배웠던 범주 안에서 논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것을 배움으로 말미암아서, "아하, 저런 것은 정도가 너무 지나치는구나" 라고 하면서 안다는 것이다.

◈ 그러면 기존 목회자들에게 왜 그런 문제들이?

그렇다면 이런 것들을 다 배운 기존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왜 그런 문제들이 발생하는가? 왜 교회가 그렇게 개판이 되는가? 일반 교인들은 몰라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말이다. 그것은 신학교에서 교수가 가르치기는 해도 학생들은 배우지는 않고, 오히려 무엇만 배우는가? 신학교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이 궁금하다, ㅋㅋ)

학생들은 세미나에 가서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것, 그런 것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말씀과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 힘을 모으는데 관심이 있으니, 그런 기능을 배우고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더 큰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물론 그런 자들만 신학교에 오겠지만 말이다.

사실 일반 교인들이야 이런 말을 해봐야 그냥 시큰둥하게 듣다가, 그래도 제가 이런 말을 하면 그래도 좀 반응을 하고, 또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저는 이미 그런 곳에 가서다 배우고 했으니, 그런 내막을 좀 다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저와는 아예 대화를 거부한다는 말이다.

◈ 성도들도 구속사는 알아야 !!

아무튼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그래도 '구속사' 인데, 지금 우리들이 공부하는 것도 역시 '구속사' 이고 말이다. 이렇게 말씀에 관심이 있어야 이런 것을 배우고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이렇게 모여서 끙끙거리겠는가? 도대체 성경자체가 어디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그것을 성도라면 누구나 다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럼 목사님은 이런 내용들을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그것은 신학교 교수들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학교 도서관에 가면 각각의 스승들이 감사하게도 다 앉아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교수들이 자기 공부한 것을 이야기하면서 참고도서나 그런 것은 이야기를 해주니까, 그러면 도서관에 가서 과외수업을(?) 받는데, 그야말로 무릎을 꿇고서 겸손하게 배운다는 말이다. 족구나 탁구를 칠 생각은 꿈도 꾸지 못하고 말이다. 교수들이 10%정도이고, 그 나머지는 다 과외로 배운 것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공교육이 문제, ㅋㅋ)

* 질문 - 그러면 신학교에서 구속사를 강의하면서 복음을 이야기합니까?

물론 수업시간에 교수들도 복음을 이야기는 하지만, 물론 교수 자신이 믿고 안 믿고는 그 다음 문제이고 말이다. 이렇게 교수들은 어떤 내용을 소개만 하지 자기 생각은 이야기하지 않는데, 그런 것을 언급했다가는 당장에 쫓겨나니 말이다. "게러할더스 보스는 이런 이야기를 했고, 헤르만 리델보스는 이런 이야기를 했고",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 예로 천년왕국을 이야기해도,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총신은 전천년설에 약간의 무천년설을 가미하면 되니, 그것만 공부하면 시험을 통과하니 학생들은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서관에 가면 그것이 아니데, 오스카 쿨만, 헤르만 리델보스 등등, 이런 사람들의 책을 모두 볼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천년왕국이 무엇인지 정립이 되고, 거기에 따라서 성경을 보는 관점이 제각각 모두가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천년왕국론에 대한 것이 제대로 좀 공부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공부할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되면 또 세대주의가 무엇이며 그들이 왜 나쁜지도 알게 되는데, 그런데 그런 것도 모르고서 세대주의가 주장한 이스라엘이 1948년에 독립하는 것을 두고 마지막으로 생각해서, 조용기나 조돈제, 그리고 김덕신 목사 등이 2000년이 되면 종말이 온다고 주장했는데, 사실 그들은 세대주의자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 자기들의 말을 취소를 하는 등, 생쇼(?)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세대주의적 사고를 비판하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아니, 당신 교회의 교인은 도대체 몇 명인데, 그 위대한 분들을 그렇게 함부로 비판하는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이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생각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맛이 갔다는 말이다.

◈ 목사 - 죽으라고 공부해야 !!

그러므로 진짜 목사라면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교인들은 크고 목사는 작은데, 그래서 목사는 당연히 교인들에게 봉사를 해야하는데, 그래서 신학교에서 그러한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교인들을 섬기라고 말이다. 그래서 교인들이 이 세상에서 돈을 벌고 살아간다고 너무 바빠서 미쳐 모르는 것을 채워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교인들은 자기 밥벌이한다고 바빠서 성경을 제대로 모르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성경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왜 창세기부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등등, 그렇게 진행되는지를, 그런 것을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공부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서, 출애굽기의 경우에 뭐라고 설교를 해야 하겠는가? "여러분, 이 출애굽기는 모형을 보여주는데, 그러니 지금 와서는 더 이상 십일조와 안식일을 운운하면 안 됩니다. 그런 것은 하나의 드라마를 찍는 세트에 불과하고,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으면 오늘 죽어도 당장 천당에 갑니다" 라고 말이다.

이런 것을 제대로 이야기하기 위해서 목사는 늘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봉사정신으로 말이다. 그런데 매일같이 하는 이야기가 "그렇게 하면 장사가 안 되는데" 라고 하니까, 도대체 그게 무슨 목사가 할 짓이냐는 것이다. 그렇게 할 바에야 차라리 식당이나 해서 돈이나 벌던지 말이다.

◈ 복음을 모르면, '오바댜'를 봐도 자기 착함이 !!

지난번에 배 집사님이 이야기한 부목사님이 정리한 구약 오바댜를 읽어보았는데, 아마도 그분이 구약성경신학을 전공한 것 같은데, 신약은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 오바댜를 자기가 배운 구약성경신학적으로 정리를 하기는 했는데, 하지만 그분은 복음의 테두리를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구약성경신학을 하기 이전에, 아까도 말했지만 먼저 조직신학을 해야 되는데, 즉 제대로 된 테두리 안에서 내용을 채우고 해야되는데,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범위를 모르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고 하니, "어, 여기에 오바댜가 있네" 라고 하면서, 즉 자기가 보는 눈이 있고 그렇게 '오바댜' 라는 성경이 있으니, 바로 성경해석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테두리를 공부하지 않아서 소홀히 해서 그냥 곧 바로 오바댜를 해석하게 되면, 자기는 자기가 문자대로, 즉 성경에 있는 그대로 하기 때문에 정답만 나올 것이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분의 글에는, 제가 보니 정답이 아니라 윤리가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것은 신학이 아니라 윤리학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 오바댜 -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면 하나님께서 보복하신다 !!

이 오바댜의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면 하나님께서 보복하신다" 라는 것인데, 그래서 "너희들이 그렇게 형제들을 학대했으니, 이제 너희들도 한번 당해보아라" 라는 것인데, 그렇게 되니 보통 생각하기를 "아, 형제를 학대하면 하나님이 보복하시는구나" 라고 해서, 어떤 윤리적인 행동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설교가 되는고 하니, "여러분, 구약에 이런 이러한 내용이 있으니, 우리는 형제를 사랑합시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윤리적인 설교가 되어버리면, 평소에 사랑이 많다든지 형제간에 우애가 있는 사람들은 별로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구, 하나님 생각이나 내 생각이나 같네"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착하다고 여기는데, 그래서 하나님까지 믿으니 얼마나 착하냐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윤리적 접근을 하는가? 그것은 자기는 평소에 그 부분은 괜찮다는 말인데, 그렇게 스스로 착하다고 생각하기에, 자기가 자신 있는 방면으로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동원해서 자기 정당성이나 주장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무서운 오바댜를 보면서도 자기 착함을 생각하고 말이다.

그러니 복음의 테두리도 전혀 모르고, 그렇게 마구 설교를 하니 성경이 도대체 뭐가 되는가? 정말로 진짜 복음이 무엇인지,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하고 나서 성경신학으로 해석하든지, 구속사로 하든지 해야 하다는 것이다.

아니 복음도 전혀 모르면서, 성경을 문자대로 해석을 한다고 해서 거기에서 복음이 나오는가? 사실 그런 사람은 국어나 윤리선생을 시키면 제격인데,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과거에는 신학과를 나오면 국어교사와 윤리교사 2급 자격증을 주곤 했다는 것이다.

◈ 목사님,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

보통 신학교를 졸업하고 방금 목사가 되어서, 비윤리적이고 돈만 챙기는 그런 기존 목사를 비판하면 얼마나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겠는가? 하지만 누구로부터인고 하니, 예수님이 아닌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듣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십자가 복음이 아니라, "바르게 살면 복 받습니다" 라는 것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부흥이 나오고 말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혀 십자가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런데 그쪽에서는 보통 주장하기를, 자기들이 죄도 알기는 아는데, 하지만 성경에서 '하라' 라고 했으니 해야만 한다고 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바로 죄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말이다. 죄를 알면, 그런 것들이 바로 죄이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질문 - 심리학자 융의 '무의식적 자각' 이라는 것이 인간의 죄성을 발견하기 위한 것인가요?

전혀 그게 아닌데, 그 사람은 모든 인류를 통합해서 '원형' 이라고 하는데, 그리고 인간은 과거 낙원의 무의식을 다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양반은 주장하기를, 모든 종교의 뿌리에는 그 원형인 '만다라' 라는 것이 있는데, 뱀 두 마리가 서로 물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원형 말이다. 즉 낙원에 대한 무의식, 혹은 낙원에 대한 추억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에덴동산에 희미한 추억이 있는데, 그리움이 말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기독교이고 또한 불교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물어뜯고 싸우지 말고 낙원으로, 즉 원형으로 돌아가자고 융은 주장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만다라에는 남성 속에 여성이 있고, 또 여성 속에는 남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융은 너무 문명적이고 과학적인 것을 버리고서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개량한복을 입고 환경운동을 하게 되는데, 인간은 기껏해야 여기까지라는 것이다. 요즘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성경말씀을 아무리 많이 연구해도 십자가의 복음이 없으면 신학자라도 여기로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자연을 흉내내려고 하니 말이다.

◈ 다시 출애굽기로 돌아와서 !!

다시 출애굽기를 이야기하겠는데, 성막과 성소를 하다가 잠시 옆으로 흘렀는데, 아무튼 성막과 성소에 있어서, 그 안에 거니는 자들이 어떤 자들이라 했는가? 거룩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거룩은 윤리와 도덕이 아니라는 것이다.

◈ 성소 - 거룩의 능력으로만 버티는 사람들만이 !!

그리고 이것이 제일 중요한 점인데, 그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거룩한 것이 아니라, 여기 있는 성소의 힘으로 성소 안에 들어와 있고, 또한 그렇게 해서 성소 안에서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소에서 거룩의 능력이 나오는데, 이것이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의(義)이고 말이다.

그러니 오직 그분의 의(義)로 말미암아서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지, 결단코 인간 스스로의 윤리가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서 뽑혀 나온 사람들은 제사장들로서, 즉 그들은 아론의 자손들인데, 그렇다면 아론이 과연 믿음이 좋은 인물이었던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고 없었을 때 금송아지를 섬기는데 앞장 선 사람인데 말이다.

그러니 성막 안에서 거닐고 있다고 해서 아주 위대하고 도덕군자처럼 보면 안 되는데, 십계명을 모두 지키고 말이다. 결단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직 성소에서 나오는 거룩의 능력으로만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자기 능력이 아니고 말이다.

◈ 거룩이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음으로서 !!

이러한 거룩을 두고서 '관계성' 이라고 하는데, 즉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해서 거룩하게 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어떤 관계를 맺음으로서 거룩해졌다는 말이다. 그러니 '관계' 라는 것은, 자기 말고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의(義)이고, 그래서 로마서 8장에서 뭐라고 하는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입는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롬 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이러한 모든 것이 다 인간 스스로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즉 '관계성'에 의해서 자기에게 건너왔다는 것이다. 물론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종속적인 관계인데, 그렇게 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의가 인간에게 흘러 들어왔다는 것이다.

왜 삼성과 일본의 어느 건설회사가 서로 경쟁하면서 지은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프르에 지은 쌍둥이 빌딩(?)이 있는데, 왜 그 건물 중간에 다리가 이렇게 연결이 되어있지 않는가? 마치 그런 연결통로에 의해서 흘러 들어왔다는 것이다.

◈ 의(義)가 '성령' 이라는 다리(?)를 통해서 !!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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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7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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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