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5-출애굽기3(강의정리)-잘린부분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5-출애굽기3(강의정리)-잘린부분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1)
◈ 약속에 전능하신 하나님 !!
다시 말해서, 성경에서 전능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무엇이든지 다 할 수가 있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은 자기가 맹세한, 즉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이루는데 전능하시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양보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룻기에 있는, 사실 거기에 있는 여인들의 보통 기구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오미는 이 기구한 자기 운명을 따르지 않도록 며느리들을 자기 친정으로 돌려보내려고 하는데, 어차피 이방나라인 모압 여자들이니 자기 나라고 다 돌아가라는 것이다.
요즘 KBS에서 방영하는 "이것이 인생이다" 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팔자가 더러운 사람들을 다 모아 놓았는데, 아이를 낳고 신랑에서 맞아서 쫓겨나고 말이다. 그러한 사람들만 모아서 매주 다큐로 보여주는데, 그 얼마나 비참한 인생인지, 눈물 없이는 못 보는 내용들이란 것이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정말이지 우리나라에 그렇게 처절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지 놀랐다는 것이다. 사기를 당한데 또 당하고, 남편에게 버림을 받았는데, 자식에게 또 버림받고 말이다.
◈ 룻, 그때가 바로 사사시대 !!
그런데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가 바로 그런 경우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오미는 그러한 상황에서, 자기 팔자가 제 아무리 더러워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며느리 룻이 자기 시어머니의 그 더러운 팔자 속에서도 하나님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즉 자기 시어머니를 그렇게 비참하게 만든 하나님이야말로 상상 속의 하나님이 아니라,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룻 1:16)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다시 말해서, 약속의 땅을 떠났다고 해서 마구 조져버리는 그 하나님이야말로 진짜 약속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룻이 "어머니의 하나님의 곧 저의 하나님입니다" 라고 하면서, 이 시어머니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거기서 이 룻이 보아스를 만나고 해서, 다윗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때가 바로 사사시대이고 말이다.
성경에서 특별히 "그때가 사사시대이다" 라고 하는 것은, "약속의 땅이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라 그야말로 지옥을 방불케 하는 땅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너무나도 타락한 시대인데,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즉 전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말이다. 물론 그들에게는 그러한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라, 자기 행함의 땅이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자기들 노력여하에 따라서 생산물이 생기니 말이다.
그런데 약속의 땅은 어떠한가?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소출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물론 믿음이 있으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지만 말이다. 여러분 같으면 과연 거기에서 살고 싶겠는가? 아마도 환장하지 싶은데 말이다.
◈ 결국 이스라엘은 다시 허공 속으로 !!
결국은 그 약속의 땅에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홀라당 모두 날아가 버렸다는 말이다. 아브라함 이후에 B.C 586년에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함으로서 남의 나라가 되어버리는데, 즉 1500년의 역사가 완전히 날아가고 나라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들은 유리방황하는 민족이 되고 말이다.
물론 나중에는 느헤미야가 12지파 중에서 유대 지파와 베냐민 지파와 함께 달랑 돌아오는데, 자기들끼리 성경공부를 하는데, 성전도 깨어졌는데 말이다. 물론 잡족들과 함께 다시 유대나라를 세우기는 하는데, 그러나 이때는 이미 세상나라인데, 바로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그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셔서, 자기 백성을 다시 모으시는데, 바로 이런 시나리오로 인류역사가 진행되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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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간단한 역사 (네이버에서)
* 이스라엘의 여명
-B.C 2093~2083 아브라함이 고향인 메소포타미아 우르를 떠나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
* 이집트 탈출과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
-B.C 1447~1438 모세의 출애굽기-이집트로 간 야곱 혈속 70인의 후손 60만명이 430년간 종살이 후 탈출
-B.C 1230~1175 모세의 인도로 가나안땅에 정착
-약 200년간 지파체제로 사사들의 지도아래 산악지대에서 생활
* 제 1차 성전시대(B.C1024~586)
-사사시대 지속에 따라 각 지파간 계층간 갈등 심화 >> 신체제와 질서 요구 >> 왕권수립
-사울(B.C 1012~1004) : 이스라엘의 초대왕
-다윗(B.C1004~965) : 블레섹을 쳐부수고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까지 세력 확장
-솔로몬(B.C 965~926) : 이스라엘 역사에서 부와 지혜, 그리고 명예의 상징
-북왕국 이스라엘 (B.C 925~721) : 남북 차등정책 발표에 반발 여로보암이 이끄는 에브라임의 노동자 집단이 반란 >> 호세아 왕때 아시리아 실만에셀 5세의 공격으로 함락
-남왕국 유다(B.C 925~586) : B.C589 시드기야 왕이 바빌로니아로 끌려가고 대부분의 귀족들과 주민들 일부가 포로로 압송
* 제 2차 성전시대(B.C 538~A.D 70)
-이산과 포로
-페르시아 시대 이스라엘(B.C 536~B.C 332) : 고레스의 예루살렘 성전재건축 허가 >>B.C 515년 완성
-B.C 333알렉산더 대왕의 팔레스타인 점령
-마카비 전쟁(B.C 167~B.C 164) : 유다 공동체내 헬라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간의 시민전쟁 성격
-히스몬 왕조( B.C 142~B.C 63)
-로마통치와 헤롯왕조(B.C 63~A.D 70) : 헤롯왕조 사후 셋으로 분할 >> 아켈라우스, 헤롯 안티파스, 빌립
-제 1차 유대반란과 예루살렘의 멸망 : 호구조사령 거부 선동에서 시작, 60만명의 사상자와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 유대의 종말 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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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보김'이 등장하는가?
그러니 지금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땅을 주겠다는 것을 기분 좋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언약대로 한다고 하니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울어버리는데, 그렇게 울어버린 땅 이름이 '보김' 이고 말이다.
지금 제가 강의하는 내용들이 여러분에게 굉장히 낯설게 들리지 싶은데, 여기서 일단 사사기 2장 1절부터 보겠는데, 5절까지 살펴보도록 하자.
(삿 2:1)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삿 2:2)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삿 2:3)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삿 2:4)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삿 2:5) 그러므로 그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니라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일단 여기서 여호와의 사자가 나오면 천사라고 보면 되고, 여기 1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라고 하는데, 즉 하나님께서 열조에게 한 맹세를 어기지 아니하고 그대로, 즉 언약대로 한다고 하니까 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한가?
4절에 보니,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라는 것이다. 즉 백성들이 그만 소리를 높여 울어버렸다는 말인데, 왜냐하면 이제부터 자기들 인생은 그야말로 완전히 조져놓았다는 것이다. 20절부터 계속해서 살펴보자.
(삿 2:20)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 열조와 세운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은즉
(삿 2:21)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삿 2:22) 이는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 것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삿 2:23) 그 열국을 머물러두사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시며 여호수아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셨음이 이를 인함이었더라
여기 22절에 보면,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라고 하는데, 즉 이스라엘 백성들만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도 그들을 시험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제 그들을 공격하겠다는 말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방민족들을 쫓아내지 않고 남겨두는데, 그들이 이스라엘을 유혹하고, 거기에 넘어가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려고 말이다. 그러니 이 약속의 땅이 그들에게 얼마나 가시방석이겠느냐는 말이다.
◈ 출애굽, 과연 잘한 것인가?
이런 차원에서 출애굽을 보니, 출애굽한 것이 결코 잘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일단 출애굽을 했으면 좀 편안하게 인생을 즐기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고생고생해서 광야를 겨우 지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니, 하나님께서는 그때부터 오히려 군기를 잡기 시작하는데, "이제 여러분들은 군대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십시오" 라고 하면서, 여기 저기서 조교들이 나와서 얼차레를 가하고 말이다. 그러니 그들이 울만한데, "엉엉, 우리는 이제 죽었구나" 라고 하면서 말이다.
◈ 아니, 인간이 하나님을 상대하다니?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이런 점을 한번 생각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요단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에 드디어 들어갔는데, 그런데 그 약속의 땅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라, 늑대나 맹수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자기들을 노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과거 애굽 땅에 있었을 때에 누구와 상대를 했겠는가? 하나님이 아닌 애굽과 상대를 했다는 것이다. 즉 사람과 사람들이 서로 상대를 했는데, 그런데 광야를 거쳐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는, 외부에 있는 인간들이 아니라, 그들은 들러리에 불과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을 상대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신분상승이냐는 것이다. 즉 신분이 바뀌었다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신분상승에 속한 자들은 구원받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러면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이 무엇이겠는가? 정말이지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 밖에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의 눈치도 보지 말고 상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늑대이고 짐승들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님, 저는 참 욕심이 많지요" 라고 하면서 살면 된다는 것이다. 즉 구원을 받은 사람은 그들과는 신분이 전혀 다르니 말이다.
반면에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떠한가? 철저히 사람들하고만 상대를 하는데, "니가 돈이 많나, 내가 많나?", 혹은 "니 자식이 잘났나, 내 자식이 잘났나?" 라고 하면서 말이다. 이런 것이 그 얼마나 지저분하고 저질인가? 그러니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 저는 죄가 참 많지요?" 라고 하면서,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면 된다는 것이다.
◈ 출애굽 - 신분이 바뀐다 !!
그러므로 출애굽은 무엇인가? 이전에는 사람들하고 상대를 하다가, 이제는 신분이 변해서 하나님을 상대하고 의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 말씀에 자기를 비추어보면서, "하나님, 제가 죄인이 맞습니다. 용서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항상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라고 하는데, 구원을 받은 자라면 당연히 그렇게 살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현실로 나타나는고 하니까, 이전에는 매일 같이 부부싸움을 하다가 이제는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뚱단지 같은 말인고 하니, 구원을 받기 전에는 사람과의 싸움을 하다가, 구원받고 난 뒤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상대하니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 부부싸움이란, 믿음이 있는 자가 먼저 꼬리를 !!
물론 제 이야기는 전혀 아니지만, 과거에는 서로가 "집안이 어떻고, 가문이 어떻고, 시어른을 제대로 모시니 못 모시니" 라고 하다가, 이제는 어떠한고 하니, 제가 "여보, 커피를 좀 타주세요" 라고 하면, 아내는 "당신이 알아서 타 드세요" 라고 하는데, 그러면 "예, 알겠습니다" 라고 제가 먼저 순종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 싸우는 재미가 없는데, 한쪽이 꼬리를 내리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꼬리를 내리는가? 이제는 사람과 상대하는 신분이 아니니 내린다는 말이다.
그렇게 옆에서 짖어도, 어떻게 짖는 개를, 아니 개가 아니라, 이것은 순전히 실수임(ㅋㅋ), 짖는 분을 야단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냥 고맙게 생각을 해야하는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배우자이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항상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고 하니,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나에게 왜 붙여주셨을까?" 라는 것이다. 이렇게 항상 배후에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니 부부싸움도 시시해지고, 결국에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다가 같이 사는 것도 시시해지면?)
어떻게 제 말에 동의가 되지 않나요? 표정들이 영 시원찮은데, 저만 그런가요? 굳이 이것을 남자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 먼저 양보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꼬리를 내리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은 할 수 없고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하나님을 의식하고 긴밀하게 그분과 교류를 한다는 것은, 성령을 받은, 즉 이미 구원을 받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물론 밖에 있는 짐승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고 말이다. 그러니 교인들이 밖으로 뛰쳐나가도, "아하, 하나님께서 우리교회가 정신을 차리라고 그렇게 하시는가 보다" 라고 하면서, 배후에 있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 교인들이 떠나려고 하면, 심방을 가서 복음을 전해야 !!
그런데 흔히들 "집사님, 다른 교회에 가봐야 별 수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목사들이 사람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 얼마나 구차하고 치사하게 구는지 모른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애걸복걸을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기들의 생계가 걸린 문제라고 해도 그렇지, 그래도 말씀을 전한다는 사명이 있다면 그러한 짓만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가 박사교회에 있을 때도 떠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는데, 그러면 일단 제가 심방을 가기는 가는데, 그리고 나서는 "제가 생각하는 복음은 이렇습니다. 그래도 이 복음이 싫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 정도면 되었지, 아니 우리가 그 이상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더 이상 나가면 그야말로 '치사빤스(?)' 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출애굽의 의미를 알았지 싶은데, 이제부터 우리의 싸움은 우리 개인의 싸움이 아니니, 우리가 굳이 실력을 발휘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발휘해보았자 아무런 소용도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우리가 한다고 마귀가 무서워서 도망을 가겠는가? "아이쿠, 나는 너의 착함이 무서워" 라는 마귀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마귀는 우리가 착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우리를 악당으로 만들어버리는데 말이다. 그러니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고 우리는 그냥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 출애굽을 다시 정리를 해보면 !!
여기서 다시 정리를 해보면, 이 출애굽에서 싸움은 하나님의 싸움인데, 그리고 여기에서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군대는 어떠한고 하니까, 사실 적들과 전쟁을 하라고 부른 군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부름을 받은 군대의 본색을 밝히는데 주력을 하시는데, 적들과의 전쟁이 아니라 말이다. 그렇게 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시는데, 그래서 이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로서, 그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신다는 것이다.
◈ 출애굽기 19장 - 다시 하나님을 만난 그 호렙산으로 !!
이제 출애굽기 19장을 살펴보겠는데, 아마 여러분들 중에서 "목사님, 이 정도만 공부해도 제대로 다 된 것이 아닙니까?" 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는데, 즉 지금까지 공부한 이 정도로만 해도 출애굽기를 대부분을 다 알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기 19장에 보면, 무엇이 나오는고 하니 시내산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호렙산이라는 말이다. 처음에 모세가 양을 칠 때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났는가? 그것이 바로 호렙산인데, 바로 여기 이 호렙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약속한 게 있는데, "너는 네 백성을 데리고 반드시 지금 이 자리로 다시 오게 되어있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 모세는 지금까지 하나님에게 이용을 당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백성들을 호렙산으로 데리고 오도록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오직 하나님을 섬겨야만 한다는 것이다.
◈ 인간은 원래, 자기가 자기를 섬기도록 !!
하지만 원래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그 속성이 무엇인고 하니, 인간은 자기가 자기를 섬기지, 타인을 섬기는 속성은 없다는 것이다. 비록 남에게 고개를 숙인다고 해서 남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바로 자기를 섬기기 위해서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항상 자기에게로 되돌아오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마치 부메랑처럼 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남을 섬기는 척 한다는 말이다.
◈ 출 19장 - 언약을 지킴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이 !!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시는가? 이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나를 섬겨라" 라고 하시는데,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게 될 때, 그것을 두고 '하나님의 백성'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가? 그것이 출애굽기 19장에 나오는데, 하나님의 언약을 지킴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고,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출 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출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 언약 - 규칙이 아니라 '어디로 들어간다' !!
지난 시간에 '언약' 이라고 하면 무엇을 생각하라고 했는가? '노아방주'를 생각해달라는 것이다. 흔히 언약이라고 하니, 자꾸만 어떤 규칙을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은 버리고, 즉 규칙이나 규범이 아니라 "어디로 들어간다" 라는 개념을 좀 가져달라는 것이다. "이 규칙은 내가 지켜야지" 라고 하지를 말고 말이다. 그래서 이 언약은 방주 속에 들어가듯이 어디로 들어간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언약의 제일 첫 머리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이 곧 십계명에서의 제 1계명인데,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라는 것인데, 하나님말고 다른 신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한번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과연 이렇게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게 기분이 좋겠는가? 아니면 나쁘겠는가?
(출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그렇게 크신 분과의 관계를 튼다고 하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왜 영화 '목포는 항구다' 라는 것에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오지 않는가? 조폭세계에서 쫄다구로 있으면서 양아치들만 상대하다가 조폭두목과 마주보고 서로 상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이 좋으냐는 말이다.
◈ 하지만 '섬긴다' 라고 하면, 내 주체성은 어디에서 !!
그런데 문제는 '섬긴다' 라는 것에 있는데, 바로 여기에서 기분을 잡치는데, 내부에서 그만 반발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게 섬기게 되면, 자기의 존재와 자기의 주체성은 도대체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도대체 본전을 어디에서 찾느냐는 것이다. 즉 누군가를 섬기기 되면, 즉 그렇게 인수인계를 해버리면 도대체 '나' 자신은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가 부도가 나게 되면 그 회사의 대표이사나 소유주는 그야말로 접시물에 자살이라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자기 것이던 이 회사가 남의 손에 넘어가 버리면,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자기 정체성도 함께 부도가 난다는 것이다.
◈ 복음이 없는 목사는, 자기 잘남이 무기가 되어서 !!
대구에 있는 계명대학교가 원래 미국 선교사들이 헌금으로 만든 학교인데, 지금은 신태식(?) 총장이 모두 다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수들이 엄청나게 데모를 하고 했는데, 10년 이상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하고 있고 말이다. 왜 그렇게 붙잡고 있는가? 그것을 놓쳐버리면 '나' 라는 것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진홍 목사가 이 학교의 이사장으로 있는데, 이 양반은 그야말로 카멜레온인데, 목사가 복음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그야말로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복음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잘남이 그만 자기를 지키는 무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음식도 매너가 있게 먹어야 하고 말이다. 그것이 자기를 지키는 무기가 되니 말이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기 17장에서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산 아래에서 여호수아가 싸우는 싸움이 그런 것인데, 혹시 '김의 전쟁' 이라는 영화를 아는지? 지금 여호수아 장군이 산 위에 모세가 없으면 자기 싸움이 되고 마는데, 그러나 그런 싸움은 사실상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전쟁이 하나밖에 없는데, 오직 하나님의 벌리시는 전쟁만이 진짜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이 싸우시는 전쟁이고 말이다. 즉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 전쟁은 없다는 말이다.
◈ 인간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섬겨야' !!
왜 그런고 하니, 즉 왜 자기의 전쟁이 없는고 하니, 인간에게는 자아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섬겨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 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란 말이다. 없는 자기이니 말이다. 그러니 그냥 '주님의 것'으로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의 것도 일부, 자기의 것도 일부, 그런 것은 전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성도는 오로지 주님의 소유라는 말이다.
사실 제가 이렇게 말은 쉽게(?) 하지만, 그러나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람의 움직임 모든 것이 다 자의식을 가지고서 움직이는데, 크로스 빌리지에서 지난 1월에 '권정희' 라는 여자 분과 엄청난(?) 논쟁이 있었는데, 그 양반 주장이 무엇인고 하니, "사람은 자아가 먼저 형성되고 그 자아의 성화에 의해서 구원이 된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거기에 반해서 저의 주장은, "그런 자아조차도 없애버려야 한다" 라는 것이고 말이다.
* 질문 - 자아조차도 없애버리라고 하는 것은, 불교사상과 같지 않나요?
제가 주장하는 것은, 불교와는 전혀 다른데, 불교에서 "자아를 버려라" 라는 '무아(無我)사상'은, 공(空)이라고 하는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인데, 즉 자기가 없다는 것은, 전체에 포함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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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아(無我) - 불교의 근본교리로서 만물에는 고정·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 즉 實我(실아)가 없다는 뜻. 한국 불교의 어떠한 종파에서도 이 무아에 대해서는 공통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무아는 석가모니불이 성도한 뒤 최초로 설파한 가르침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는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실천적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무아는 제법무아(諸法無我)라는 이름 아래 설명되고, 무아의 생명은 무아행(無我行)이라는 실천면에서 살아 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고정성이 없는 무아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상이기 때문에 무아성을 자각하여 수양하고 노력함에 따라 역경을 극복하여 향상할 수 있음을 뜻한다. 열반은 무아성의 자각 아래 철저하게 무아행이 이루어질 때 나타나는 경지이다. 무아는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로 나뉘어서 설명된다. 원효(元曉)는 인무아를 외도(外道)나 범부(凡夫)들의 견해를 타파하기 위한 것이며 법무아는 소승(小乘)의 수행자들이 갖는 그릇된 집착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실천적인 면에서는 무소득(無所得)과 무괘애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무소득이란 집착이 없다는 것이며, 무괘애는 무집착이 진전되어 완성된 상태이다. 또한 자비사상도 이 무아에서 전개되며, 결국 대아(大我)가 되는 것이다. 무아라는 말은 시대가 흐름에 따라 공(空: 空性)이라는 말로 바뀌어 사용되었고, 선종에서는 무(無)도 역시 무아의 뜻으로 사용이 되었다. - 야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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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에 비해서 복음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라" 라고 명령을 했다는 것이다. "내가 없으면 미지의 다른 무엇이 있겠지" 라고 하면서 한쪽 다리를 어디인가 걸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아주 구체적으로, "내가 여호와인데 너 몰랐지. 이제 알았다면 섬겨라. 끝" 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러니 너무나도 간단하다는 것이다.
◈ 합일이 아닌 언약 !!
그러나 불교는 신(神)에게 합일한다는 것인데, 자기 바깥에 있는 신과 함께 말이다. 물론 '그리스도 안' 이라고 해서 기독교도 합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그러나 기독교는 합일이 아니고 언약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새언약 때는 예수님의 피와 살인데, 그러므로 "내가 어떻게 노력해서 신이 되는가?" 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그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초등학생에게 "너, 저 자동차 안에 들어가라" 라고 하면 쉽게 알아듣지만, 그런데 "신과 합일할래?" 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어린아이를 대하듯이, 그렇게 우리에게 아주 쉽고 구체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너, 예수님의 피와 살이 생명이 되는 줄 아나?" 라고 하면서 말이다. "너, 신과 통일될래" 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이 굉장히 순박한 것을 의미하는데, "야, 내가 이것을 배우면 신의 추상적인 세계에 들어가서 어쩌고" 라고 하는, 그러한 추상적인 논리를 따지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렇게 상상하는 자기 취미이고, 원래 백수들에게 이러한 취미가 많은데 말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 방주에 들어갈래" 라고 하면, "예,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들어가면 살고 안 들어가면 죽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너, 여리고 성을 돌래" 라고, 해서 그냥 성을 도니까 무너지고 말이다. "너, 요단강에 들어갈래" 라고 하면, 들어가면 강이 갈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면류관도 반납하고 말이다.
이것은 따지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 즉 그런 철학이 아니라 엄연히 일어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예수라는 어떤 청년이 하나 와서 십자가에 죽었는데, 그런데 그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도대체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무슨 장난도 아니고,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잉크를 부어넣고서, "이것이 예수님의 피인데, 이것을 믿을래" 라는 것과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인가? 무슨 흡혈귀도 아니고 말이다. 이렇게 전혀 말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믿으라고 하는데, 그런데 놀랍게도 이것이 믿어지는 사람이 바로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 50인의 신학자들 - 그것이 복음은 아니다 !!
제가 '50인의 신학자들' 이라는 책을 썼는데, 어떤 분이 이 책을 보고 말하기를, "이 책은 읽지 않는 것이 좋다. 들어가면 못 나온다" 라고 좋은(?) 평가를 내렸다는 것이다. 책이 너무나도 흥미진진해서 읽는다고 시간이 가는 줄 몰라서 못 나오는 것이 아니라, 너무 골치 아프고 어려워서 말이다.
제가 그 어려운 책을, 없는 머리카락을 마구 뜯어가면서 왜 썼겠는가? 현재 인간들이 어느 정도 머리를 짜내고 애를 쓰는지, 그것이 다 들어있다는 말이다. 그런 작업이 엄청나게 힘이 들고 귀찮더라도 인간들이 하는 주장을 일일이 모두 살펴보면서,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그것이 복음은 아니다" 라는 것이다. 복음, 즉 기쁜 소식이라는 것은, 일자무식한 사람이라도 모두가 다 듣고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목사님의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라는 책을 보면, "신학이란 성경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라고 했는데요?
다시 말해서, 신학을 한다고 해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십자가의 피를 믿으면 구원이 되고, 그러면 오늘밤에 죽어도 낙원에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더 따지고 들어가니, 온갖 쓸데없는 상상력들이 다 동원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자기가 챙기고 싶은 것만은 확실히 챙기겠다는 것인데, 그러니 복음이 아니라 종교라는 말이다. 종교란, 복음에 온갖 잡스러운 것이 모두 섞여서 엉망을 만든 것에 불과하고 말이다.
◈ 하나님을 섬긴다는 의미는?
그러니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하나님을 섬기는데 언약 안에서 섬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언약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출애굽기 24장 6절부터 8절까지 살펴보고 오늘 강의를 마치겠는데, 한번 살펴보자.
(출 24:6)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출 24:7)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출 24:8)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 방주에 들어가라 - 언약의 피니라 !!
여기 8절에 보면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히브리서 9장 22절에 가면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라고, 용서함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피뿌림이 있으면 그 어떤 죄도 다 용서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히 9: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히 9:21)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히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그러니 이것은 결코 어렵고 고상한 철학이 아니고, 종교는 더 더욱이 아니고, 그냥 너무나도 단순한 "방주에 들어가라" 라는 것인데, 그것이 곧 '언약의 피' 라는 것이다. 개념이 성경에서 그렇게 발전(?)을 했다는 말이다.
◈ 하나님은 왜 백성들을 시내산에 불러모았는가?
여기서 다시 정리를 해보면, 출애굽기 2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에 불러모아서 언약서를 낭독하면서 이런 언약의 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도록 했는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으로 불러모았느냐는 것이다. 빨리빨리 인도해서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가지 않고 말이다.
지금부터 제가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하겠는데, 무슨 내용인지를 잘 한번 들어보라는 것이다. (엉뚱한 답변은 하지 말고 말이다. ㅋㅋ)
* 질문자 : 하나님, 왜 우리를 시내산에 불러모았습니까?
* 하나님 : 나 외에 다른 신을 못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 질문자 :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섬깁니까?
* 하나님 : 언약대로 하면 된다.
* 질문자 : 언약대로 하라구요?
* 하나님 : 그래, 언약대로 하면 된다.
* 질문자 : 그러면 언약대로 한다는 게 무엇입니까?
* 하나님 : 피 뿌림을 받는 것이다.
* 질문자 : 피 뿌림을 받으면 어떤 효과가 있습니까?
* 하나님 : 히브리서를 봐라.
* 질문자 : 히브서를 보라구요?
* 하나님 : 그래. 피 뿌림이 있으면 용서를 받는다.
* 질문자 : 그럼 결국에는 '피' 군요.
* 하나님 : 그래, 맞다. 피다.
* 질문자 : 감사합니다.
* 하나님 : 이제 넌 내 꺼야. 알겠지?
* 질문자 : 정말 감사합니다.
* 하나님 : 그렇지. 바로 그거야.
◈ 오직 그분의 '피 흘림'으로 !!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섬기는가? 예수님의 피를 믿으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이라는 말이다. 이것 외에는 다른 방식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분의 피가 아닌 헌금과 전도와 기도 등은 전혀 아니라는 소리인데, 왜냐하면 그런 것을 내세우게 되면 자기 행함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다고 전도와 기도와 헌금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전도를 함으로서 자기 죄를 알고, 헌금을 함으로 자기가 얼마나 돈을 사랑했는가를 알고, 그리고 기도를 함으로서 자기가 얼마나 교만한 자인가를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서, 비로소 그런 사람은 언약 속에 들어왔다고 한다는 말이다.
◈ 20장에서 십계명을 주고, 24장에서는 피를 흘리고 !!
그러므로 목사는 설교를 하면서 반드시 인간의 죄를 지적해야만 되고, 설교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여러분, 이 모든 죄도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렇게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출애굽기 20장에서 십계명을 주고, 24장에서는 피를 흘리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시는 것, 그것이 바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라는 법칙이라는 말이다.
◈ 그러면 죽도록 공부한 '나'는 ??
그런데 자기가 공부를 엄청 많이 해서 똑똑하다고 한다면, 물론 이러한 경우는 성령을 받지 못했을 때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데, 그런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에이 씨, 그러면 공부는 그렇게 죽도록 한 나는 뭐꼬" 라고 한다는 것이다. 길거리에 있는 저런 노숙자들하고 자기하고 어떻게 똑같을 수가 있느냐는 말이다.
저렇게 젊었을 때 실컷 마구 놀고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즐기다가 예수만 믿으면 천당에 가고, 자기처럼 그렇게 죽으라고 고생 고생해서 골방에서 공부만 한 사람도 예수만 믿으면 천당에 가고 말이다. 그러니 그것이 너무나도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놈하고 나하고 차이점이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자기도 마음대로 실컷 놀다가 마지막 순간에 가서 "저는 언약의 피를 믿습니다" 라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 하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을 섬기는 인간 !!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아직까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 전혀 부인(否認)되지 않았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섬김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만 섬김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 라고 하신 분을 섬기면 되는데, 그렇지 않고 그분을 이용해서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즉 자기 자신을 섬기겠다고 하는, 자기 부인이 되지 않는 상태가 유지되는 이상, 그런 인간은 영원히 그러한 불평불만을 터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도 그러한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불쌍한 인간들인데, 항상 성령께서 깨우쳐주시는 것이고 말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자실 때는 모든 것을 다 고려해서 해결책으로 내어놓으신 줄로 압니다. 그러니 우리가 너무 염려하지 않고 마음 편안하게 십자가의 피만을 믿고 용서함을 받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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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 - 구약 때 제사 제물이 염소와 송아지가 많이 사용되었습니까?
그것들이 그 당시에 많이 키우던 흔한 가축들인데, 그 당시에는 백성들이 대부분 가난했는데, 그런데 언약의 피를 보여주려고 하는데, 너무 구하기가 힘든 값비싼 가축들을 사용하면 곤란했다는 것이다. 물론 소는 등급이 높고, 그 다음이 염소이고 말이다. 그리고 요즘처럼 그렇게 키우는 가축들이 다양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러니 닭이나 개 등은 없었다는 것이다. (돼지는?)
* 질문 - 그런데 양은 있었지 싶은데, 왜 제물로 등장이 잘 안 되는지요?
물론 양은 있는데, 이건 서민들이 주로 했는데, 그것은 다른 등급이 높은 제물의 제사에 다 포함이 되어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은 것이지, 결코 그런 제사들이 가볍게 취급된다든지, 그런 제물은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히브리서를 보면 중요한 제사만을 언급하고 있는데, 양은 서민들을 위한 것이고, 소는 제사장을 위한 것이고, 염소는 방백들, 즉 장로들의 죄를 위한 것이란 말이다. 돌아가신 부모의 제사는 중요하겠지만, 그러나 4대, 5대 조상님의 제사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그런 것들은 부모의 제사에 포함이 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렇다면 하필 왜 이렇게 '피'가 강조되는 것인가요?
오랜만에 참 좋은 질문을 했는데, 지금 사람들이 나중에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에 정신이 팔려있지, 지금 죽어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다만 그 시간이 조금 유보되었을 뿐이지 말이다. 왜 우리가 50년 뒤에는 모두가 다 죽지 않는가? 그래서 그 죽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피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데, 즉 구원은 단순히 애굽에서 구원이 아니라, 바로 자기 죽음에서의 구원이라는 말이다.
2008년 5월 20일 새벽 12시에 마침(2005판 재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