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4-출애굽기2(강의정리)
04칠곡강의(뒤에서본한국교회)04-출애굽기2(강의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201)
04칠곡강의 [뒤에서 본 한국교회] 4 - 출애굽기2
04,05,22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귀신들린 예수님 ??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고 귀신을 내어쫓고 하니, 그것을 두고서 그 당시에 소위 선지자들이라는 자들이 하는 말이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도 모르고, 또 예수에게 마귀가 들렸다고 했는데, 그것도 보통 마귀가 아니라 마귀 중에서도 최고의 고수가 예수에게 들어갔다는 것이다.
(마 12:22) 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마 12:23) 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마 12:24)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그리고 사도바울도 고린도 교회에 전도를 하러가니까, 그 교회 당회장이 역시 사도바울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는 사도가 아니라 가짜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 사도바울이 화가 나서 하는 말이, "너희 교회는 악마의 일군을 당회장으로 세워놓았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고린도후서 11장에 나오고 말이다.
(고후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 11:5)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 생각하노라
* 질문 - 12사도를 가롯유다 대신에 스데반(?)을 넣는 무리들도 있다고 하던데요?
12사도는 그냥 12명이 아니라 구약 이스라엘의 12지파와의 연속성, 즉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스데반이 아니라 맛디아가 들어가는데, 사실 스데반이 들어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순교한다고 다 사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함께 경험한 사람이어야 되는데, 요셉과 맛디아 중에서 하나님께서 추천한 맛디아가 들어간다는 말이다.
(행 1: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행 1: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행 1:23)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행 1: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 질문 - 지난번에 미처 질문을 하지 못했는데, 왜 공룡의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요?
우리는 창세기 7장의 노아홍수 때 멸종했다고 볼 수가 있는데, 그 사건으로 자연계의 모든 것이 변했다는 것이다. 진화론에서는, 이 공룡은 왜 '쥬라기공원' 이라고 영화가 있는데, 바로 그 쥬라기 시대의 동물로 본다는 것이다. 쥬라기 시대의 동물로 말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유카탐(?) 반도에 커다란 유성이 그만 떨어져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화재가 생기고 또 엄청난 폭발력으로 대기권에 구름이 오랜 기간 동안에 뒤덮이게 되고 엄청난 변화가 발생하는데, 그것이 태양을 막아서 빙하기가 시작되는데, 그래서 식물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공룡도 먹을 것이 없어서 함께 멸망했다는 것이다.
* 질문 - 요즘 지구의 나이를 40억년이라고 하는데요?
진화론에서는 보통 우주의 역사를 150억년으로, 지구의 역사를 50억년으로 보는데, 인류의 역사는 500만년 정도로 보고 말이다. 하지만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이런 연대가 사실은 모호한데, 이러한 지구의 나이측정은 소위 '탄소동위원소' 방법을 동원하는데, 이것은 수 백년이나 수 천년 정도는 비교적 정확하지만, 그런데 이런 측정법은 만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전혀 정확하지가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성경은 아예 처음부터 믿지 않기로 작정을 하고 덤비는 자들이니, 무슨 소리인들 하지를 못하겠느냐는 것이다. 성경은 지구의 역사를 약 만년 정도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과학자들은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도 없다는 말이다. 다만 지금의 기준을 가지고서 과거를 무한대로 늘여놓았다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 인간들에게는 천년이라는 시간도 엄청난데, 우리는 백년이지면 족한데, 그런 자기 인생의 열 배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말이다. 또 백 배, 천 배를 말한다는 것이 감히 가능하겠느냐는 말이다. 또 우리의 기억력도 단 하루만 지나도 잊어버리는 것들이 50%가 넘고 마는데, 지난 어제를 정리하는 것도 30분이면 되고, 그리고 지난 2004년도도 정리해보라고 하면 2시간이면 족하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럼 공룡과 같은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나요?
노아홍수 때에 엄청난 대격동이 일어났기 때문에 놀라운 단절이 일어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진화론 가운데서도 연속적 진화론이 아니라 '단절 진화론'이 지지를 받는데, 즉 종(種)이 그만 갑자기 생겼다는 이론이 말이다.
* 질문 - 홍수 후에 노아의 일곱 식구들만 남았는데, 그렇다면 피부색깔이 어떻게 다른가요?
노아의 후손들이 그렇게 되었는데, 함은 아프리카, 셈은 유럽, 그리고 야벳은 아시아이고 말이다. 물론 그것은 환경에 피부가 적응하기 위해서 그렇게 각각 다른 멜라닌 색소를 만들었다고 보는데, 이러한 미시적인 변화는 인정을 하지만, 그러나 종의 변화와 같은 그런 거시적 변화는 단절되었다고 본다는 것이다. DNA도 잘못 되어진 것은 중간에 다 없어지는데, 더 강력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 질문 - 노아 때부터 지금까지는 역사는 어느 정도 보는가요?
약 6천년 정도를 보는데, 그리고 단절된 부분도 있고 해서 만년까지 보기도 하고 말이다. 현재 지구 인구가 60억인데, 이것을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을 계산해서 거꾸로 소급해서 올라가면 5천년 정도의 역사가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전쟁과 천재지변을 고려해도 만년 정도이고 말이다. 하지만 진화론자들처럼 100만년 이상으로 하면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 단군의 역사가 반만년, 즉 5000년인데, 3000년 전으로만 올라가도 인간들이 거의 없으니 신화가 난무하고 완전히 전설이라는 것이다. 고구려 시대만 해도 인간과 용이 서로 같이 사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만년도 엄청난데, 인구증가도 거의 마지막에 수직적으로 곧장 올라가는 것이니, 인구가 많은 것도 사실상 최근의 일이라는 말이다.
사실상 시간개념으로 보면 1000년만 되어도 엄청난데, 그러니 3000년이라고 하면 벌써 전설이라는 것이다. 아득해 보이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경우도 불과 B.C. 2500년 전의 일이고 말이다. 그때만 해도 반은 짐승이고 반은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신과 인간이 함께 살았다고 생각했고 말이다. 그런데 5000년 전이라고 하면, 아니 사람이 모이든지 해야 국가가 되던지 하지, 사람도 없는데 무슨 국가를 이루고 하겠는가? 그냥 조금씩 모여서 살았지 말이다.
* 질문 - TV나 매스컴을 보면, 거의 원숭이 수준의 인간들이 불을 가지고 나오는 것을 두고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데요?
불을 사용하는 것이 원숭이를 닮았는데, 그런 것이 다 엉터리라는 것이다. 그런 것은 상상이라고 보면 되는데, 그리고 현재 진화론에 의하면 5만년 전의 소위 크로마뇽인이 지금의 우리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들은 현재 우리 모습과 똑같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얼굴은 변하지 않는데, 그러니까 원숭이와 같은 그런 다른 얼굴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을 가지고서 장난치는 것이고 말이다.
* 질문 - 그럼 소위 'U.F.O.'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나요?
'U.F.O.'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미확인비행물체' 이니 그것은 말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계인과 조우가 어쩌고 하는 것은, 그것은 3가지 정도로 설명을 하는데, 공상과학영화와 같은 것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런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 동원된 것이고 말이다.
첫째는 '집단 히스테리' 증세로서 일종의 '정신착란현상' 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조작설' 인데, 대부분 주장들이 여기에 속하고 말이다. 그리고 셋째는, 그것은 그냥 우리들과 똑같은 지구인들인데 자꾸만 외계인으로 관련을 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물리학에서는, 'U.F.O.' 같은 것이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시속 500km로 날아가 버리면 그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리는데, 지금 지구는 공기로서 밀착이 되어있으니 말이다. 공기는 빈 공간이 아니라 기체인데, 그런데 이 기체를 뚫고 나가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마찰음이 생기는데, 그렇게 되면 시속 500km만 되어도 유리창이 다 깨어진다는 것이다.
왜 전투기가 그렇게 크지 않는데도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면 시끄러워서 수업을 못하는데, 그런데도 'U.F.O.' 같은 것이 보통 시속 1000km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것도 서서히 속도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날아가는데, 그런데 그것을 본 사람이 가만히 서 있다는 것은, 즉 밀었는데 넘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빈 공간이 아니라 공기가 밀착되어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이런 것들이 물리학적으로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럼 이런 'U.F.O.'도 자꾸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면요?
그렇게 계속해서 교육을 시키면 얼마든지 하나의 사실로서 자리를 잡을 수가 있는데, 지금 현대에서 보니 그리스신화 같은 것이 우습지만, 신과 인간이 연애를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것이 과학이고 진리였다는 것이다.
왜 소크라테스가 신을 거부한다고 해서 사형을 당하지 않았는가? 신을 인정하지 않고 청년들을 타락시킨다 죄목으로 말이다. 그는 무신론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태양이란 신이 수레를 타고 가는 현상으로서, 그것이 바로 그 당시의 과학인데,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함께 같이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인간의 의식 가운데서 상상해내는 것인데, 그러니 어린아이들에게 기도를 시키면 두 손을 모으고 경건하게(?) 하듯이, 그렇게 'U.F.O.'를 가르치면 믿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가르친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의식 가운데 그런 것이 다 들어있기에, 그래서 그런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럼 그런 것들이 또 다른 우상을 만드는 것인가요?
사실상 인간은 우상을 만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리워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서 믿는 자가 복되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 십자가가 자기의 죄를 씻는다는 것을 믿으면 되는데, 하지만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면서 믿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있는 증거를 무엇으로 보는고 하니, 보이지 않는 십자가에서 찾지 않고, 교회당 건물이나 교육관 건물을 짓는데서 찾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마치 그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 줄로 가르치는데, 혹은 개인적인 경험을 강조하고 말이다. 헌금을 백 만원 했더니만 사업이 줄줄 잘 풀리고, 노래를 한 곡조 뽑았더니만 김치 냉장고가 들어온다는 식으로 말이다. (오잉, 웬 김치 냉장고?)
◈ 예수님이 아닌 떡을 믿는 인간들 !!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고 하니, "나를 믿어라" 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으면 되는데, 그런데 인간들은 마치 오병이어의 사건처럼 예수님께서 주시는 떡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그런 떡을 따라간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으로부터 돌아서는데, 왜 그런가? 예수님에게서 자기들이 바라던 떡이 더 이상 안 나오니 말이다.
그냥 예수님을 믿으면 되는데, 하지만 인간들은 예수님에게서 반대급부를 원한다는 것이다. 즉 "내가 믿으면 당신 나에게 뭘 해주겠소?"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이것은 일종의 거래이고, 전혀 자기를 부인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데,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것을 다 아시고 일부러(?),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쫓아라" 라고 하셨는데, 그러니 누가 그런 예수님을 믿겠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목사도 마찬가지인데, 아니 목사가 더욱 심하다는 것이다. 자기가 개척교회를 하는데, 그것을 키워주면 하나님은 자기편이고, 아니라고 하면 온갖 인상을 다 쓰고 말이다. 그러니 그러한 인간이 큰 교회 당회장이 되어도, 매사가 또 그런 식인데, 예를 들어서, 바자회를 하나 열어도, 그것이 잘 되면 하나님의 축복이고, 적자가 나면 징계를 내린 것이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서, 프로젝트를 하나 벌리면 하나님은 무조건 자기를 도와주어야만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면 자기가 벌을 받는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그렇게 자르고 재단해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목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다 말이다.
◈ 예수님마저도 앵벌이 시키는 인간들 !!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어떻게 오셨는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빈손으로, 아니 피를 철철 흘리시려고 오셨는데, 그런데 인간들은 예수님을 이용해서 돈을 벌려고 하니, 이것은 완전히 예수님을 그야말로 껌팔이 소년으로, 즉 앵벌이를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니 진짜 성도라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모든 것을 다 잃도록 만들어서, "아하, 이래서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구나" 라고 깨닫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동안 뿌옇게 흐리든 자기 시야가 깨끗이 되면서, 예수님의 사랑이 자기 마음속에 가득 담기게 되는데,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는 놀라운 인간이 되고 말이다. 그것은 곧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신다는 말이다.
* 질문 - 그러면 욥기 같은 경우는 잘 읽어야 하겠네요?
욥기 8장 7절에서 빌닷이 이야기한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꾸중은 들은 잘못된 내용인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빌닷에게 그런 말을 하도록 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 구절을 교인들이 이사를 하면 이것을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고, 그리고 온 사방에 다 붙어있다는 것이다. 중국집은 물론이고 다단계판매 사무실에까지, 심지어 조폭 사무실에도 이것이 버젓이 붙어있는데, 물론 마귀의 말이니 잘 어울릴 수도 있지만 말이다.
(욥 8: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욥이 친구들이 한 이야기들이 다 틀린 것인데, 그런데 인간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욥은 이런 친구들의 말에 대해서 기가 차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는데, "그래, 니가 똑똑하다. 니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가?" 라고 말이다. 아주 측은하게 여기면서 말이다.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났는고 하니까, 옛날에는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다들 무식했는데, 그래서 글자라도 좀 아는 사람이 자기가 목사라고 하면서 설교를 했는데, 그 당시에 그러한 역할을 주로 한 사람들이 소위 부흥사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은혜를 받았다고 자칭하는 자들이 신학교에 우르르 몰려갔고, 그래서 자기들도 그렇게 부흥사들을 따라서 설교를 하니 그런 현상들이 대물림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경본문이 과연 옳은지 그른지,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무슨 소리를 해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 질문 - 그런데 왜 지금 교회에서 욥기를 그렇게(?) 하나요?
사실 처음부처 편이 나눠져서 있는데, 그래서 욥의 세 친구가 욥을 공격하는데, 욥의 친구들은 마귀 쪽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쪽에는 욥 혼자 밖에는 없는데, 그러니 그들이 욥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런 공격하는 말 중에 하나가 "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라는 것인데, 그러니 이것은 결코 욥을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악마가 하나님을 위해서 고난받는 사람을 더욱 더 고난받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말하기를, 욥이 벌받을 짓을 했다고 하는데, 즉 욥에게 잘못이 있으니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욥은 자기가 그런 짓을 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그러나 사실 욥의 친구라기보다는 악마의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이 하는 말이, "욥아, 니가 아직도 너의 잘못을 모르고 있으니 더욱 벌을 받아야 한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교만하냐는 말이다. 남의 사정도 모르고 말이다.
◈ 욥기 - 아무런 죄도 없이 고난받는 예수님을 미리 !!
그러니 이 욥기가 뜻하는 바가, 아무런 죄도 없이 고난을 받는 예수님을 구약에서 미리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뭐라고 말하는가? "예수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즉 자기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니, 그런 예수를 믿는 자는 지옥에 간다" 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 당시 후기 유대인들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비단 이 욥기뿐만이 아니라 모든 구약의 성경말씀은 예수님과 연결이 되어야만 제대로 해석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인간의 자기 잘남만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마귀가 인간에게 심어준 성경해석이고 말이다.
◈ 성도의 특징 - 옳은가? 아닌가?
그러니 오늘날 성도들이 바로 욥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귀의 친구들이 이들을 노려보고 있는데, "네가 잘 되는가, 안 되는가 한번 보자" 라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상냥하게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말이다. 여기에 비해서 성도는 무엇인가? "옳은가, 아닌가?" 라는 것만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잘 되는가, 안 되는가?" 라는 것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말이다.
목사님이나 신학생들과 같이 공부를 해보면 가장 안타까운 것이 바로 이런 점인데, "여러분, '옳은가, 아닌가?' 라는 것만 생각해야지, 다른 엉뚱한 것들을 전혀 생각하지 맙시다" 라고 해도, 그런데 거기에 "잘 되는가, 안 되는가?" 라는 것이 왜 자꾸만 들어가느냐는 것이다. 자꾸만 "목사님, 만약에 이것이 옳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겠지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성도라고 한다면 엉뚱한 생각은 하지 말고, 이러한 진리만을 생각하고 오로지 진리만을 외쳐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님과 같은 분이 바로 성도의 모습인데, 성령에 충만해서 올바른 설교를 하고 돌에 맞아서 죽고,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그분은 진리만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 글레디에이터 - 주연, 다윗과 우리야 !!
우리야와 같은 경우에도, 하나님께 헌신하고 다윗에게 모함을 받아서 예쁜 마누라는 빼앗기고 자기는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이다. 물론 예쁜 마누라가 아니라고 하면 데리고 가든 말든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만은, 그러나 양도 딱 한 마리밖에 없는 진짜 예쁜 마누라인데 말이다. 그러니 그렇게 예쁜 마누라를 가진 사람을 너무 부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의 직속상관인 다윗에게 빼앗기게 되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다윗의 음모로 자기는 전쟁터에서 화살에 맞아 죽고 말이다. 이런 사실을 하나님께서 아신다면, 화살이 피해서 날아가도록 해주면 되는데, 그냥 화살을 직통으로 맞아서 죽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랍게도 이러한 우리야를 통해서 일을 하시는데, 즉 바로 그 사건을 통해서 다윗을 회개시킨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것이 바로 성도가 가야만 되는 길인데, 이 우리야가 바로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다는 것이다. 억울한 희생자로서 말이다.
◈ 오늘 본문, 이것이 출애굽기이다 !!
이제 드디어 오늘 본문으로 와서 출애굽기를 살펴보도록 하겠는데, 여기까지 오는데 시간이 좀 많이 걸렸는데, 아무튼 여러분이 출애굽기를 공부하면서 몽땅 다 하려고 하지 말고, 누군가 이 출애굽기를 물으면 단박하게 "이것이 출애굽기이다" 라고 대답할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박스에 하나씩 들어있는 아이스크림처럼 말이다. 그렇게 "이것은 창세기이다, 혹은 출애굽기이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단박 단박하게 잘게 썰어서 입에 들어오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니 성경의 온갖 내용들을 모두 다 파헤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이것저것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려고 하다가 정작 중요한 핵심을 놓쳐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흐지부지하게 말이다.
설교를 듣고 난 뒤에 교인 중에서 누군가가 "그러면 목사님, 정작 핵심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면, "그건 나도 몰라요" 라고 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아니 핵심도 제대로 모르고서 도대체 무엇을 설교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되면 성경을 제 아무리 백 독을 하고 달달 외워도, 그런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 우리 목사님, 역시 대단해요 !!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성경을 읽으라는 이유 중에서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인데, 교인들이 성경을 한번 읽어보면 목사님이 얼마나 존경스러운지 말이다. 그래서 "이 어려운 것을 어떻게 공부했지. 대단하네. 사례를 올려주자" 라는 결론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물론 제대로 성경을 읽었으면 그런 목사를 당장에 쫓아내겠지만 말이다.
◈ 출애굽 - 이상한 나라로 가자 !!
그렇다면 이 출애굽기의 핵심은 무엇인가? "애굽이라는 세상 나라에 살다가 이제는 세상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 간다" 라는 것인데, 그러니까 이쪽에는 애굽이라는 확실한 나라가 존재하는 반면에, 저쪽에는 나라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랍게도 없는 나라를 만들어서 그들을 집어넣는다는 말이다.
다시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그들을 없는 나라까지도 만들어서 출애굽을 시키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사실상 애굽에 있던 히브리인들이 부르짖은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애굽에서 탈출시켜 달라고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하나님, 우리의 소원은?
그들은 지금 당장 먹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힘이 더니까 조금만 더 편안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노동시간도 조금 줄여주고 말이다. 정권을 교체시키든지, 즉 독재국가에서 민주국가를 만들어주던지 해서 말이다. 아무튼 아예 이 애굽이라고 하는 나라자체에서 해방되어서, 빠져나가도록 해달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광야에서 모세를 원망하면서 뭐라고 하소연했는가? "아이쿠, 그래도 그때가 좋았는데, 우리가 언제 애굽에서 도망쳐 나오게 해달라고 했는가? 그냥 조금만 더 편안하게 살도록, 고생을 좀 덜하도록 해달라고 했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 너희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나그네' !!
그러니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그들의 요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냥 애굽에서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면 되는데, 바로를 어떻게 꼬시든지 갈아치우든지 해서 말이다. 그런데 왜 그들을 통째로 집어들어서 애굽에서 나오도록 했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애굽에서 나오도록 하는 것은, 그들이 바로 '나그네' 임을 알게 하는 것인데,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이고, 고아이고, 과부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말이다. 바로 이런 방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애굽이라는 나라에서는 도저히 정붙이고 발붙일 곳이 없도록 한다는 사실인데, 오늘날 우리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 소돔과 고모라 사건을 길게 늘어뜨리면?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 사건을 알지요? 창세기 19장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사건이 잘 기록되어 있는데, 이 소돔과 고모라 사건을 짧은 시간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보면, 이것이 출애굽기에서는 모든 장에 걸쳐서 길게 기록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 소돔과 고모라는 며칠 사이에 하나님에 의해서 박살이 나고 말았는데, 즉 롯의 가족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물론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롯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던 그 도시에는 유황불이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이것을 길게 늘여놓은 것이 바로 출애굽 사건이라는 것이다.
물론 출애굽 때는 유황불은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에 떨어진 유황불은 예수님의 재림 때의 모습인데, 그래서 이 소돔과 고모라 사건은 장차 인자가 올 때를 미리 예비했다는 것이다. 즉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은 예수님 재림 때의 상황을 미리 앞당겨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것이 누가복음 17장에 나오고 말이다.
(눅 17: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눅 17: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눅 17:30)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러니 이렇게 소돔과 고모라 때 롯의 가족들이 도망쳐 나오는 것과, 그리고 이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망쳐서 나오는 것, 이 두 가지 사건이 그야말로 갈 바를 모르고서 그냥 뛰쳐나온 것으로, 그 상황이 정말이지 똑같다는 것이다. 갈 바를 모르고 나왔으니 말이다.
이렇게 애굽에서 나와서 곧바로 약속의 땅으로 가지를 않고 광야로 가는데, 그 중간에는 홍해바다가 있고 말이다. 그리고 이 홍해를 건너고 광야에서 40년을 보내는데, 그리고 그 뒤에 광야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건너는 강이 바로 요단강인데, 그래서 찬송가 291장에서 "요단강 건너서 만나자" 라고 하는데, 그러니 지금은 40년 광야생활이라는 말이다.
◈ 예수님은 왜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셨는가?
이렇게 40년 광야생활이라고 하니, 신약에서 예수님의 40일 광야생활이 기억나지 않는가? 예수님은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하필 40일을 광야에서 금식하셨는가? 왜 기존 이스라엘 땅에서 하지 않고 굳이 광야에 나오셔서 금식을 했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광야에서 40일을 말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는 현재 기존에 있는 이스라엘을 이스라엘이라고 여기지를 않았다는 것인데, 즉 지금의 이스라엘은 엉터리이고 그야말로 이방민족과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아닌 이 애굽에서 나와서, 그렇게 해서 광야 40일을 거쳐서 본격적인 자기 활동에 들어가신다는 말이다.
◈ 기존의 이스라엘은 곧 애굽 !!
그러면 예수님이 계시던 곳이 과연 애굽이 맞는가? 그것이 마태복음 2장에 나오는데, 동방박사들이 가고 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헤롯이 예수님과 그 가족을 헤치려고 할 때 예수님께서 어디로 도망을 가는가? 분명히 베들레헴에서 북쪽이 아닌 남쪽 애굽으로 피신을 가는데, 그런데도 마태복음 2장 15절에 보면 이것을 반대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 2:13)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마 2: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마 2: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여기 15절에 보면 뭐라고 기록이 되어있는가? 분명 이스라엘에서 애굽으로 갔는데, 그런데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러내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분명 지리적으로는 애굽으로 들어갔는데 말이다. 그리고 애굽에서 나올 때는 엉뚱하게도 예레미야 18장(?)을 대놓고 말이다. 그러니 결국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애굽이란 결국 기존의 이스라엘을 말한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곧 애굽이라는 말이다.
우리들은 흔히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금식기도를 하는 것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는고 하니까, "아하, 우리가 애굽에서 나왔는데, 워낙 우리가 인간이 덜 되어서, 우리 힘으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로 도와주시는구나" 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 인간의 힘으로는 천국도, 지옥도 못 가 !!
제가 성경공부를 하면서 부탁하는데, 매일같이 100번을 생각해도 모자라는데, 우리가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힘으로 천국에 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우리들이 노력해서 약속의 땅에, 즉 천국으로 가겠다고 하는 것은 전혀 말도 안 되는데, 그리고 이것보다 더 힘든 것은 나쁜 일을 했다고 해서 지옥에 간다는 생각이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착한 일을 했다고 해서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나뿐 일을 했다고 해서 지옥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주님의 일은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절대 우리의 힘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을 놓치게 되면 그야말로 도로묵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코카콜라를 만드는 공장에 가보면 왜 컨베어벨트가 돌아가지를 않는가? 병들이 그 위에 줄줄이 다 세워져있고 말이다. 그런데 거기에 있는 선반 옆에서 개미 두 마리가 싸움을 하는데, 그러다가 또 친하게 지내고 말이다. 하지만 그 개미들이 싸움을 하든지 말든지, 친하게 지내든지 말든지, 그 켄베어벨트 시스템에 의해서 선반 위에 놓인 병들은 그 개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순서대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 불신자 - 약속을 무시 !!
다시 말해서, 약속의 땅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제대로 진격하게 되어있고, 들어갈 사람은 들어간다는 말이다. 만약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점을 놓친다면, 그것은 마귀에게 자기 영혼을 팔아먹은 것이고, 곧 불신자라는 것이다.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움직인다고 하는 점을 놓치면 말이다.
제 아내가 TV 드라마를 하도 많이 보니 저도 어쩔 수 없이 따라서 보는데 (정말?), 사실 이런 드라마 내용은 뻔한데, 특히 아침 드라마는 말이다.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면 보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지만, 아무튼 매일같이 하는 이야기가 남자가 바람을 피워서 아이를 낳았느니 어쩌고 하는 것들인데, 그러면서 언제나 질질 짠다는 것이다.
◈ 천당에 가는 것과 상관이 없는데, 왜 흥분하는가?
그런데 목사인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얼마나 웃기는지 말이다.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바람을 피우든 피우지 않든, 그런 것이 구원을 받는 것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러한 구원에 대한 기쁨은 없고, 언제나 그런 이 세상의 문제를 가지고 울고불고 한다는 것이다. 겨우 개미 두 마리 싸우는 일에 말이다. 심지어는 그것이 해결이 안 된다고 자살을 하고 말이다.
물론 그렇게 믿음의 눈으로 본다고 하면 그 어떤 드라마도 아무런 재미가 없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싶으면 그냥 자기들끼리 하면 되지 시부모에게 허락을 받고 어쩌고 하는데, 아니 그런 것하고 천당에 가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에다가 자기 인생의 전부를 다 건다는 것이다.
* 질문 - 저는 목사님 때문에 사는 것 자체가 별 재미가 없는데요?
앵, 저 때문에 말입니까? 저보고 책임을 지라고 하면 할 수 없이 지겠지만, 아무튼 그냥 살면 된다는 것이다. 누가 죽었다고 해도 무덤덤, 살았다고 해서 무덤덤, 그렇게 이 세상에 대해서 살아가면 된다는 말이다. 다만 주님의 콘베어벨트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언제나 감사하면서 말이다.
* 질문 - 제가 동기장례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니, 어느 목사님이 저보고 대범하다고?
사실 우리 인생이 그런 것인데, 저도 제 몸뚱아리를 경북의대에 기증했는데, 죽으면 그냥 가져가라고 말이다. 그렇게 하면 자식에게도 좋고 그 얼마나 편리한가? 초상을 칠 때도 그렇고, 관도 필요 없이 가볍게 치를 수 있는데, 그리고 한식날에 차도 밀리는데 굳이 벌초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저는 그런 것이 바로 부모의 자식사랑이라고 여기는데, 물론 여러분도 그렇지요?
아무튼 출애굽기가 무엇인고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슨 짓을 해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데, 마치 콘베어벨트가 돌아가듯이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는데, 그 와중에서 모세가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다. 누구 때문인고 하니, 개미 두 마리 때문에 말이다. 그렇게 개미들에게 매일같이 시달리는데, 그것이 바로 출애굽기의 광야시절이라는 것이다.
◈ 예수님에게 덤탱이를 씌우는 인간 !!
우리가 바로 그런 개미들인데, 그리고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러한데, 즉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 왜 우리 집 아이가 꼴지를 합니까?", "오늘 수입은 왜 이것밖에 안 됩니까?" 라고 하면서, 매일같이 하나님께 원망을 늘어놓고는, 그렇게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신 그분에게 덤탱이를 다 뒤집어씌운다는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렇게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고난을 받는다면, 구약 출애굽기에서는 바로 모세가 미리 그런 고난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모세가 고난을 당함으로 말미암아서,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앞당겨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모세가 미리 말이다.
그러니 이 출애굽기가 무엇인고 하니, 애굽이라는 세상 나라에서 나와서 미지의 나라에 들어가는데, 즉 인간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상이 되지 않는 그런 나라에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자기들끼리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자기 사랑으로 동행을 하신다는 것이다. 즉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말이다.
◈ 원망하며 원망하며, 앞으로 앞으로 !!
그런데 그렇게 함께 동행을 하면서도 곱게(?)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애굽적인 속성으로, 즉 이 세상에서 하던 한 가닥 하는 그 버릇으로 모세를 원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출애굽기를 한번 읽어보면, 그들이 얼마나 모세를 많이 원망하는지, 그것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민수기도 역시 그렇게 진행되고 말이다.
다시 이 출애굽기를 총정리를 해보자면, 첫째가 "애굽에서 떠나서 약속의 땅으로 간다" 라는 것이고, 둘째가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 라는 말이다. 이 두 가지가 바로 출애굽기의 내용인데, 그리고 셋째로 이 모세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 출애굽기 총정리 - ① 애굽에서 떠나서 약속의 땅으로 간다 !!
②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면서 들어간다 !!
③ 이 모세가 바로 예수님이다 !!
그런데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냐는 것이다. 목사든 집사든 상관없이, 정말 예수님 덕택에 천국으로 가면서도 쉴새없이 예수님을 마구 씹어댄다는 것이다. 대들고 따지면서 말이다. 예를 들어서, 철야기도를 했는데 왜 우리 아이가 대학에 떨어지느냐고, 또 십일조를 잘했는데 왜 더 손해를 보느냐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 당시에 이렇게 덤비지를 않고 곱게(?) 천국에 간 사람들이 있었는데, 창녀와 세리, 그리고 십자가 한 편의 강도와 같은 자들 말이다. 사실상 그들은 누구를 원망하고 말고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나 그분의 은혜가 큰지, 그리고 자기들에는 개뿔(?)도 그런 것이 전혀 없으니, 또 윤리와 도덕도 자기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창녀와 세리, 강도, 38년된 병자와 같은 자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을 구원해준 것만 해도 너무나 감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나는 의인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구원시키려고 왔다" 라고 했는데, 즉 애굽과도 같은 이 세상에서 출세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눅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이것이 중요한데, 모세의 이러한 40년 광야생활을 예수님은 40일 동안 모두 다 완수하셨다는 것이다. 죄송하게도 모세는 실패했는데, 자기 백성들의 원망에 너무나도 화가 나서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을 내리치고 말이다. 하나님은 그냥 반석에 대고 말만 하라고 하셨는데, 두 번이나 내리쳤는데, 이 일로 인해서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데, 물론 자기 세대만 말이다. 그것이 바로 민수기 20장에 보면 나온다는 것이다.
(민 20:10)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민 20:11) 그 손을 들어 그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민 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예수님은 어떠한가? 성공했다는 것이다. "돌이 떡이 되게 하라,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자기에게 경배하면 이 세상을 다 주겠다" 라고 하는, 이러한 마귀의 유혹을 모두 다 물리쳤다는 것이다. 말씀을 가지고서 하셨는데, 그것이 마태복음 4장에 나오고 말이다.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마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 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마 4: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마 4: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 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 구원은, 콘베어벨트를 돌리는 분의 능력 덕분에 !!
이렇게 예수님이 승리하고 나니 천사가 나와서 수종을 들었는데, 이렇게 예수님이 성공한 것이 바로 조금 전에 이야기한 콘베어벨트 시스템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승리는 그냥 자기 혼자만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승리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싸움질이나 하는 개미 두 마리에 지나지 않는데, 그런데 그 벨트를 돌리는 분의 능력 덕분에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콘베어벨트가 돌아가는데, 그 옆에서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해도,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오직 그것을 돌아가게 하는 것은 발전기 덕분인데, 그것이 곧 주님의 사랑이고 말이다. 그러니 결코 우리의 착한 행동이나 사랑이 전혀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의 사랑, 그 사랑하심 덕분에 천국에 간다는 것이다.
이것을 얼마나 중요한지, 이런 점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을 제대로 모르고, 흔히 말하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차원이 되어버리면, 그것은 바로 자기의 행동여하에 따라서 구원이 결정되고 만다는 것이다.
◈ 지옥은, 인간의 잘남이 가득히 !!
그렇게 되면 35년 동안을 예수 믿어도 그 다음날 바로 헛방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잘남을 믿는 것인데, 도대체 그렇게 위험한 짓을 왜 하느냐는 말이다. 만약에 저 같으면 아마도 불안해서 한 숨도 제대로 자지를 못하지 싶은데 말이다. 그렇게 되면 백발백중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잘남이 가득한 곳이 바로 지옥이니 말이다.
* 질문 - 그렇다면 나중에 이러한 고백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누가복음 17장에 있듯이, "명령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라고 말입니다.
(눅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 십자가를 자기 이전과 이후 !!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그런데 그 당시는 시간적으로 보면 아직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기 이전의 상태이기 때문에 이러한 행함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라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이며,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만 구원받는다는 것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무익하다고 고백하는, 그런 자기의 믿음 좋음으로 인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바로 그러한 예수님의 공로만을 내세우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다. 마치 개미가 벨트 위에서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라고 해서, 즉 자기의 겸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자기 밑에 있는 벨트가 꾸준히 움직이기 때문에 자기가 가는데 말이다.
◈ 자기 반성에 변함이 없는 인간 !!
사람이 행동을 할 때는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 내가 잘 했는가, 아니면 잘못했는가?" 라고 하면서 반드시 측정을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가 자기 점검을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박사든 일자무식한 사람이든 간에 모두가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언제나 자기 점검을 하는데, 아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말이다.
이렇게 모든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은 그 아담과 하와의 유전자를 둘 다 반반씩 이어받았기 때문에, 사람은 항상 태어나서 자기 반성을 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반성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반성한다고 해서 천국에 가고, 반성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튼지 이런 반성은 우리 평생의 짐인데, 즉 우리의 한계이고 속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너무 심각하게 볼 필요까지는 없고, 인간은 그렇게 자기가 매일같이 반성을 하지만, "내가 잘했는가, 아니면 잘못했는가?" 라고 하면서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믿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자기 잘못에 대해서 너무 심각하게 반성하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 세상에서는 그러한 반성을 하는 인간을 아주 훌륭하게 여기지만, 하지만 인간은 반성을 한다고 해서 더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 인간에게 개과천선은 없어 !!
흔히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시집을 온 며느리가, 친구의 시어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갔다와서는, "아이쿠, 우리 시부모님에게는 잘 해드려야지"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마음대로 되는가? 그런 마음이 얼마나 가겠는가? 그러므로 인간에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은 없고, 다만 자기 반성만이 있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대오(大悟)' 라는 말이 있는데, 말 그대로 크게 깨우쳤다는 것인데, 하지만 사람은 아무리 반성을 해도 새로운 악이 속에서 올라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25의 상태에서 착한 일을 하고 또 반성을 해서 30으로 점수를 만들어놓아도, 그것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60의 악이 새롭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늘 '새롭게' 말이다. 그러니 인간은 자기가 그동안 축적해놓은 선을 가지고는 도저히 새로운 악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 반성은 일종의 취미생활 !!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어서 반성이 일종의 취미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자기 반성으로 자기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착각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그런 착각은 하면 할수록 자기에게 점점 더 무거운 짐이 되니 말이다. 지금은 울면서 반성해도 돌아서면 웃는 것이 인간인데,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어떻게 되는고 하니까, "전에 내가 한번 울었지" 라고 하면서, 자기를 반성하고 괜찮은 인간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더욱 위선자가 되고 말이다.
* 질문 - 반성과 회개의 차이점은 무엇이지요?
반성이라는 것은 자기 잘못을 후회하는 것이고, 이에 반해서 회개는 자기 발 밑에서 누가 움직이는지, 그것을 제대로 안다는 것이다. 즉 "나를 구원하신 분이 누구인가?" 라고 하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하는 것이 곧 회개라는 말이다.
여기에 비해서 반성은 매일같이 하는 것인데, 즉 가스배달을 하면서도 "내가 그 사람에게 너무 투박하게 했어. 좀더 친절하게 해야되는데, 그렇게 안 한다고 해놓고는 또 그렇게 했네" 라고 하는 것이 곧 반성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반성하면 다음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가? 역시 또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성질이 나면 "에이, 씨" 라고 하고 말이다.
* 질문 - 그렇다면 새벽기도시간에 한 것은 대부분 반성에 해당하나요?
당연히 모두가 반성인데, 물론 그렇게 반성을 해놓고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면 되는데, 그것에 의미를 두어서, 즉 반성한 자기는 점수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사업을 벌리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 거야!" 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이 바로 미신이라는 말이다. 물론 인간이 반성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자기가 복을 받는 위대한 힘으로서 소유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욱 더 위선에 빠지고 말이다.
그런데 그것도 간증이랍시고 자랑하고 다니면, 그것에 또 우루루 사람들이 모여들고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교회에 다니면서도 자기 자신을 개조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만 몸의 컨디션이 좋을 때는 좋다가, 몸이 아플 때는 화를 내고 말이다.
그러므로 변한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냥 환경에 적응할 뿐이지, 그래서 십자가의 포크레인으로 퍼서 구원을 받는 것이지, 즉 매달린 자기 힘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포크레인에 찍히는 힘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 질문 - 성경에서 인간이 거듭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요?
성경에서 거듭났다고 하는 것은, 자기 혼자 살다가 누군가가 끼어 드는 것을 두고서 말하는데, 그것을 영적으로 거듭났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혼자 사는데, 성령이 끼어 들어서 너무나 부실한 우리와 함께 사시는데, 그것을 두고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육으로 거듭난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고, 오직 영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즉 성령님이 함께 계셔야 한다는 말이다.
◈ 출애굽기 - 매일같이 모세를 원망하며 미지의 나라로 !!
이 출애굽기를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희생적인 은총과, 그것을 모세가 보여주고 말이다. 거기에 반발하는 인간의 반발심이 같이 엮어져서 레위기와 민수기까지 나아가는데, 출애굽기가 그 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출애굽기란, 미지의 나라에 가기 위해서 정들었던 애굽 땅을 떠나는 것인데, 어떻게 떠나는고 하니, 자기들을 건져준 모세에게 매일같이 원망하고 다투면서 나아간다는 것이다.
◈ 출애굽기 - 1단계는 '거저 구원', 2단계는 '원망' !!
그러므로 출애굽기의 1단계는 거저 구원이고, 2단계는 원망인데, 출애굽기가 이러한 두 가지 스토리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는 제가 이 중에서 '거저 구원'에 대해서 언급을 했는데, 이것을 다시 한번 설명해드리면, 여기서 출애굽기 14장 14절을 한번 보자.
(출 14: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것이 무슨 뜻인가? 모든 것이 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사람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도대체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하겠는가? 아이들은 영물(?)임을 알아야하는데, 즉 적응의 귀재라는 것이다.
◈ 피아제 - 교육은, 인간의 자의식이 커 가는 과정이다 !!
아이들은 이렇게 자기가 원하는 것은 놓치지 않고 아부까지 하면서 뜯어내고 얻어내는데, 바로 그러한 본성을 키우는 것이 곧 교육이라고 '피아제' 라는 심리학자가 말했는데, 즉 인간의 자의식(自意識)이 커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자의식은 자기밖에 모르는 자립심을 두고서 하는 말인데, 그래서 가장 훌륭한 교육은 무엇인고 하니,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이 되지 않고, 또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리고 살아있다는 자립심도 없다고 하면, 그런 사람은 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 아이가 학교에 가면 왕따를 당하고 자폐증이 되어서 얻어맞고, 결국 자살을 하게 되는데, 물론 사회에 나가서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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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제 (Jean Piaget, 1896∼1980) - 스위스 심리학자. 뇌샤텔 출생. 뇌샤텔 대학에서 연체동물학을 전공하였으나 어린이의 인지발달연구에 관심을 가져 제네바 루소 연구소에서 독자적인 이론을 구축하였다. 어린이의 사고가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을 밝혀 전세계 심리학자들 주목을 끌었고, 인간의 인지발달단계를 감각운동적 지능단계·표상적 사고의 단계·구체적 조작단계·형식적 조작단계로 구분하였다. 그의 연구는 3기로 구분된다. 초기(1920년대) 연구는 어린이의 언어판단과 추리·세계관·인간관계·도덕판단 등의 연구로 대표되며, 이 연구의 계기는 어린이 특유의 사고인 자기중심성 개념이었다. 중기(30·40년대) 연구는 유아·아동에 있어 인식의 기본적 개념인 수·양·시간·공간·속도·확률 등의 발달과정을 해명한 것으로, 어떤 고차원 인식도 그 기원은 유아의 감각운동적 활동에 있으며 그것이 이론화되고 동시에 내면화되면서 일정한 순서를 단계적으로 더듬어 발달해간다고 밝혔다. 후기(50년대 이후) 연구는 발생적 인식론의 구축이었다. 발생적 인식론은 과학적 인식의 발생과 진화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식의 개체발생에 관한 발달심리학적 연구와 인식의 계통발생에 관한 과학사상사적 연구와의 협력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 그는 56년 제네바대학에 발생적 인식론 국제센터를 창설하여 학술적 입장에서 인식론상의 문제들을 이론과 실험으로 해명하였다. 그의 독자적인 입장은 현대 심리학과 교육학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주요저서로《아동의 도덕적 판단(1932)》《지능 심리학(1947)》《발생적 인식론 서설(1950, 3권)》 등이 있다. - 야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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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교육은, '상벌주의' 하나로 !!
그러니 부모가 알아야할 것은, 자식이 부모를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부모도 그런 방식으로 교육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교육은 의외로 간단한데, 즉 '상벌주의'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고 말이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잘못했으니 봐달라고 하는 것은, 아까도 말했지만 그 순간만 넘어가려는 술책(?)이란 것이다. 회개가 아닌 반성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러니 때려야 하는데, 꼭 매로 때려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고, 상징적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말이다.
그렇게 되면 그 아이의 자아가, 즉 상벌주의가 발동해서, "아하, 그렇게 하니 엄마에게 매를 맞는구나. 앞으로 또 그렇게 하면 맞는 것도 그렇지만, 용돈에도 조금 지장이 있겠다. 그러니 그렇게 안해야지"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자꾸만 쌓이고 만들어지는 것이 '자의식'의 성립인데, 그래서 아이가 "내 인생은 내가 책임을 져야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이제 부모의 역할을 끝이라는 말이다.
어차피 자식은 독립하게 되어있으니까, 그렇게 독립할 때 무엇이든지 자기 힘으로 하게 하는 능력을 갖추어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모책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금은 야박하고 비정하더라도,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어서 선과 악밖에 모르기에 이렇게 상벌주의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언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는데, 물론 다 큰 아이를 때리라는 것이 아니라, 말로도 상벌이 가능하니 말이다. 예를 들어서, 돌아서서 "나는 니하고 말하지 않겠다" 라고 하는 것인데, 물론 요즘은 아이들이 부모와 말을 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다가 아이가 크면 과감하게 내보내야 하고 말이다.
(잠 23:13)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 '사랑'으로 자녀교육을 하면 너무나도 위험해 ??
그런데 잘못된 자녀교육이 무엇인고 하니, 소위 '사랑'으로 키운다는 것인데, 여기서 이런 사랑은 정말이지 위험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는, 부모라는 자기 자신이 있기 때문에 자식을 사랑하게 되는데, 즉 자기가 없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자녀교육에 있어서 사랑이 왜 위험한고 하니, 제 아무리 자식이 잘해도 그것이 자기 입맛에 맞지 않으면 자식을 미워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 자식이 자립심이 강하고 다른 것은 모두가 다 좋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부모가 원하는 경우가 아닐 때는 미워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며느리감을 데리고 왔다면 그 부모는 자식을 극도로 미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번도 자기 자식을 독립시킨 적이 없는, 즉 자기 품의 자식이기에 말이다. 자식을 독립시키는 것이 부모의 역할인데, 그것을 제대로 해준 적이 없기에 말이다. 왜냐하면, 자식은 자기 것이기에 말이다. 그래서 며느리를 봐도 자기 타입에 맞는 며느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 과연, 사랑인가? 욕심인가?
그러니 소위 이런 인간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