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장 35-44절 제목 :떡을 먹이신 예수님
막 6:35-44 (떡을 먹이신 예수님)
이름 : 우리교회(IP:220.81.176.150)
본문 : 마가복음 6장 35-44절
제목 : 떡을 먹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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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08-08-31 13:35
떡을 먹이신 예수님
2008년 8월 31일 본문 말씀: 마가복음 6:35-44
(막 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막 6: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가니』
(막 6: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막 6:37)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막 6: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가로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막 6:39)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막 6:40) 『떼로 혹 백 씩 혹 오십 씩 앉은지라』
(막 6: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막 6:42) 『다 배불리 먹고』
(막 6: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막 6:44)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하지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5000명을 먹었던 기적입니다. 이 기적에 참여해서 떡과 고리를 먹었던 모든 자들이 두 번 다시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아니했다는 점이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것은 신의 기적을 인간들이 제멋대로 이해해서 일어난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현실만을 믿습니다. 현실이란 만져지는 겁니다. 자기 돈 주고 싼 떡과 고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기도로 인해서 주어진 떡과 고기를 먹으면서 그들은 실제 현실의 떡과 고기를 맛있게 먹은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그들에게 비현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자기네들이 먹었던 떡과 고기는 현실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하늘의 현실과 지상의 현실이 교차되는 지점에 그들이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늘의 현실을 접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재주나 힘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네 인식을 고집했습니다. 즉 지금까지 그들이 생각했던 세상의 틀과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은 채 하늘의 현실을 맞이한 것입니다.
떡을 먹은 이들은 공짜로 떡을 준 예수님을 붙잡아서 자기 세계의 지도자로 초청하려고 했습니다. 즉 자기 세계가 깨어지지 않은 채 유지하면서 예수님을 끌어당겨서 그 세계를 더욱더 지켜주고 키워주기를 요청한 것입니다. 그들은 떡을 잘못 씹은 겁니다. 그들 현실의 눈에서 보면 떡이요 고기로 보이지만 예수님의 눈으로 보면, 피와 찢어진 살점이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배불리 먹었습니다. 그러나 이 배부름으로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방식으로 배불리게 하지 않는가를 알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야하는 길과 인간이 지금껏 살아오고 또한 살아가야 할 길이 서로 달랐습니다. 서로 방향이 다른 길을 산 자들끼리 오병이어의 기적 안에서 잠시 접촉하게 된 것입니다.
교차되면서 만난 것입니다. 이 기적 이후에 예수님은 예수님의 길로 가버리고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왔던 그 길대로 가버립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은 오직 십자가 사건 뿐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늘과 땅이 제대로 만났습니다. 그 순간이 지나면 하늘의 길은 부활과 승천으로 이어지고, 인간의 길을 지옥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교회 와서 ‘내 것 얼마나 많이 챙겼느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도대체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간단 말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자만이 하늘의 현실에 낚아채인 자입니다. 갈 길이 다른 두 노선이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서 윤곽을 드러냅니다. 하늘의 현실에 낚아 채인 자의 특징은 뚜껑이 있습니다.
이 뚜껑은 이러합니다. 고린도전서 3:21-23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1:3에 봐도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층층이 우리 머리 위에는 하늘의 권위가 누려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해서 불신자들은 자기 머리 위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달랑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오병이어의 기적이란 지금까지 인간들이 살아왔던 방식과 다른 방식의 삶이 따로 있음을 알려주는 기적입니다. 보통 인간들의 삶이란 자기 노동으로 삽니다. 그래서 인간들에게는 힘든 노동과 재미나는 놀이, 이 둘 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생각을 못합니다.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여유롭게 놀기 위함이요, 노는 이유는 사람 사는 보람과 결과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병이어 기적은 아무런 노동이 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니 사람들은 흔쾌히 예수님을 붙잡아서 자신의 지도자로 삼으려고 한 것입니다. 산 건너 물 건너서 그들이 예수님을 모셔가기 위해 쫓아왔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찾는 까닭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지”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활주로에 있는 비행기를 예를 들면, 하루 종일 활주로만 뱅글뱅글 도는 비행기는 실은 비행기가 아니라 비행기 흉내를 내는 자동차일 뿐입니다. 진정한 비행기라면 날아가야 합니다.
그 사람들은 만나의 진정한 의미를 몰랐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를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이 광야라는 환경은 그 어떤 농사나 사업도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인간들이 갖고 있는 재주를 발휘해서 양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근원적으로 차단시켜 놓은 환경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매일같이 만나를 대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나가보면 이슬처럼 사방에 깔려 있는 것이 바로 만나라는 겁니다. 이 만나를 대하게 되면서 그들의 애굽 땅에 살던 생존의 방식을 더 이상 소용없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 힘으로 자기를 살리는 식이 아니라 땅에 떨어진 만나를 주워 먹고 사는 것이 하나님과의 동행의 증거입니다.
이처럼 만나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자기 백성의 사고방식을 바꾸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나란 당장 하루에 필요한 양식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이 만나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갖는 미래에 대한 약속도 아울러 듣게 됩니다. 즉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급선무가 아니라 ‘나는 도대체 하나님과 더불어 어디로 가고 있느냐?’를 물어야 될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배불리 먹은 남은 것을 거두게 했습니다. 배불리 먹은 자의 눈에 바로 ‘남은 12광주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즉 자신들이 배불리 먹은 그 양식은 결코 자신이 애써서 얻어낸 것이 아님을 압니다. 12광주리는 제자들을 말해줍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그 제자들에게 해결책을 세워보라고 하셨습니다. 즉 12제자군과 나머지 5000명을 따로 갈라놓은 것입니다.
12제자들 빼놓고서는 다 가버리고 두 번 다시 예수님과 다니지 아니했습니다. 즉 자기 인생관을 으깨지는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2제자들은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만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예수님과 합류해서 천국가게 된 자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지를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계신 그곳에 예수님이 섬기시던 하나님이 계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