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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소요리문답공부 12(20030223)자유게시판[신학]

소요리문답공부 12(20030223)

이름 : 오용익(IP:59.3.201.241)

소요리문답공부 제 12강 (이 근호목사, 2003년 2월 23일, 우리교회)

제 17과 성육신

제 22문 하나님이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람이 되셨습니까?

답)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참 몸과 지각있는 영혼을 취하사, 성령의 권능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탄생하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

제 17과 성육신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육신 앞에 聖자가 붙어 있습니다. 성(聖)스러운 육신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육신은 성스럽지 못한데 성스러운 육신은 오직 한분밖에 없다.’ 그래서 聖肉身입니다. 문제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람이 되셨습니까?’ 인데요. 이 질문에서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 성립되는가? 그것부터 생각해 봅시다.

보통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관계가 있습니다. 어떤 관계냐 하면 아버지와 아들 관계입니다. 두 사람이 있다고 해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남남일수 있잖아요.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남남일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그대로 받아서 해야 됩니다. 아버지의 뜻을 그대로 수행해야 될 책임자를 아들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보지 않고 자꾸 아버지가 아들을 낳았다는 쪽으로만 생각해요.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면 어떤 문제점이 생기냐 하면, 지상에서 부모 자식 간이란, 부모가 먼저고 아들이 나중이 됩니다. 부모가 있어야 그 다음에 아들이 태어나죠.

만약에 이것을 하나님에게 적용시키면 ‘아버지와 아들관계니까 아버지만 있었던 시절이 있었고 아버지가 아들을 낳으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있게 되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한때 없었던 때도 있었다.’ 이렇게 되어 버려요. 그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피조물이 되어 버리죠. 여호와의 증인이 바로 그런 겁니다.

‘예수님이 없었던 때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래야 아들이니까.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아들은 그런 뜻이 아니고 아버지의 일을 그대로 수행하는 분으로서의 아들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할 때 이렇게 정립한 겁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낳았다. 그것은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들이 없었던 적은 없다’고 단서를 붙여 놓았습니다.

삼위일체라는 것이 뭐냐 하면, 아버지 먼저 있고 아들 생기고 그 다음에 성령 있고 그것이 아니고 그 세분은 영원토록 함께 계시고 없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그 신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그것을 삼위일체라고 하거든요. 이런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에 ‘아버지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아들이 있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다 보니까, ‘내가 예수 믿어주지만 그것은 더 이상 예수에게 매이라는 뜻이 아니고, 예수는 제켜버리고 아버지하고 바로 상대하라고 일시적으로만 우리에게 예수님을 붙였구나’ 이렇게 엄청나게 잘못 생각할 가능성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가 죄로 오염되었기 때문에 자기 구원에 대해서 너무 성급하게 나서다 보니 자꾸 주변 인물들을 이용하려다 보니 그런 성급한 결론들이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이 구원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예수님께 속하는 그것이 구원의 목적입니다. 내가 구원받는 그것이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희망사항이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할 때는 그 목적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통일되는 것이 목적입니다(엡 1:10). 제가 어느 글에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인간이 구원되는 목적은 예수님 바라보라고 예수님 안에 소속되라고 구원하는 겁니다. 아버지는 예수님밖에 몰라요.

우리는 그분의 몸의 지체로서 딸려 나온 상태에서 구원되는 것이고 여전히 아버지는 아들에게만 관심이 있고 우리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빌립보서 2:11에 보면 ‘모든 이름으로 무릎을 꿇고 아들을 주로 인정함으로써 아버지께 영광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빌립보서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거기에 있어요. ‘예수님을 누가 옹호해 주느냐? 예수님을 누가 위해 주느냐?’ 여기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그걸 볼 때 천주교나 개신교 신학들을 보면 제가 가슴 아프고 답답한 것이 한 두 개가 아닙니다.

신학토론이나 논쟁을 통해서라도 이런 것을 전달해야 할 텐데 그들은 그런 허점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그러면서도 그런 엉터리를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고, 물론 모든 것은 예수님이 알아서 하실 문제지만 제가 굉장히 답답합니다. 오늘은 그 문제를 말하고자 함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십니다. 피조물이 아닙니다.

‘예수는 최초의 피조물이며 최고의 피조물이다’ 라는 것은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보면 나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의 증인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세상에 신이 둘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여호와가 최고’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중요하고 훌륭한 것은 알지만 같은 피조물인데 어떻게 우리가 피조물을 섬기느냐’고 합니다.

이런 주장은 옛날 아리우스주교 주장의 되풀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나의 교리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는데 사실은 단지 교리 이야기만이 아니에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람이 되셨습니까?’라고 묻고 있는데 사실은 이렇게 묻는 것은 잘못입니다. ‘어떻게’라는 것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닌 겁니다.

예를 들어서 자기 아내보고 ‘너는 어떻게 여자가 되었어?’라고 묻는 이것은 쓸데없는 질문입니다. ‘여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이것은 됩니다. ‘너는 어떻게 여자가 되었지?’ 그것은 아내의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성염색체의 선택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겠죠. 그런데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이 되셨습니까?’라고 이 신앙고백에 등장해야 되느냐하면 그 당시 사람들이 자꾸 주장하기를 ‘하나님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하니까 그런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기독교에서는 ‘아니야. 하나님도 사람이 될 수 있어’라고 변호, 반박을 해야 될 필요성이 있었거든요. 그 필요성 때문에 이렇게 나온 겁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는가?’에 대해서 이 책의 답변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야 사람이 하나님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말에 담긴 의미는 두 시간의 강의를 들어야 겨우 알아들을 것입니다. 구원관에 있어서 이것은 신의 영역이고 이것은 인간의 영역입니다. 사람들은 ‘인간이 어떻게 신이 될 수 있는가?’ 여기에 골똘하고 관심이 있어요.

미래도 모르고 고통 속에 있으며 번뇌와 아픔과 절망 속에 있으니까 ‘어떻게 신이 되어서 이것을 벗어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여기에 중간에 누구 하나를 채우는 거예요. 이 채우는 중간자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양쪽 다 겸비한 요소로 보는 거예요. 성경에서 메시아라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을 행하는 자가 메시아인데 이것이 중세 때 천주교에 와서 이렇게 변합니다.

메시아가 하는 일을 보지 않고 그분의 구성요소가 구원의 요소를 갖고 있다고 보게 됩니다.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되어 있다는 겁니다. ‘사람 = 영혼 + 육체.’ 어떤 사람은 사람이 육과 혼과 영으로 되어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양궁과녁처럼 안쪽부터 영이 있고 그 바깥에 혼, 그 바깥에 육, 이런 식으로 구성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육은 근육질, 혼은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것, 영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봅니다. 그래서 이 육에 속한 사람은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기에 이 사람이 혼으로 거듭나야 되고 또 혼에 속한 사람은 영으로 거듭나서 두 번 거듭나야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이게 순복음교회 조 용기목사나, 성결교회 계통의 목사들의 주장입니다.

소위 세대주의자들도 이렇게 주장하죠. 두 번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인 케에르케고르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인간은 동물적인 요소와 윤리적인 요소와 영적인 요소,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천주교는 이렇게 보지 않고, 이것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지론인데,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되어 있다고 봤습니다.

육체가 영혼을 담았는데, 신적인 영혼을 담은 거예요. 동시에 인간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인간적인 요소를 담은 거예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신의 통로와 인간의 통로, 양쪽 기능을 다 가지고 있어서 인간의 통로로 들어와서 신의 통로로 빠져나가는 작전을 하나님이 꾸몄다는 거죠.

인간의 통로로 들어와서 예수 믿기로 작정하고 결심했나? 오케이. 그러면 그 내부에서 작동을 해서 그 인간적인 육체와 영을 예수님께서 이미 마중 나온 신적인 영혼과 육체가 함께 있기 때문에 여기서 변환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전력변환기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죄악 된 인간이 어떻게 신의 형상을 닮을 수 있느냐? 그것을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거쳐 가면서 예수님이 가진 지,정,의, 예수님이 가진 지식과 감정과 의지, 의지는 전도로 나타나고 감정은 기도로 나타나고 지식은 성경공부로 나타난다고 가르치는 거예요. 이것은 다 틀립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종교화 되어서 사람을 건져주는 일에 환장을 해서 교인 하나 더 꼬드기려고 이 짓을 하는 겁니다. 지금도 부흥사들이 이 짓을 하고 있습니다.

육에서 혼까지만 된 거듭난 사람은 교회 출석만 하면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고 영까지 거듭난 사람은 주님 앞에 헌신하게 된다고 합니다. 헌금 바칠 정도로 영적으로 깨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아직도 육입니까? 신앙생활 10년을 했는데 아직도 육입니까? 혼으로 거듭나야지!’ 여기서 혼으로 거듭나는 단계는 목사 말에 순종하는 수준입니다.

‘그 정도가지고 되겠습니까? 영으로 거듭나야지.’ 영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돈 더 바치는 수준입니다. 그걸 듣는 사람들은 화가 나는 거예요. ‘아, 내가 십수년을 신앙생활하고 장로까지 되었는데 내가 혼의 수준까지 밖에 안 되는구나. 영으로 거듭나야지’라고 해서 더욱더 교회 미치도록 만드는 이것이 부흥사들의 작전이죠.

두 번 거듭난다는 것. 그래서 기도할 때도 ‘주여, 혼적인 나를 영적으로 거듭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이런 변환기(트랜스)역할을 하라고 성육신으로 주었다는 이야기로 해석해서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람이 되셨습니까?’ 답변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참 몸과 지각 있는 영혼을 취하사 성령의 권능으로 …’ 이렇게 하는데 정답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람이 되셨습니까?’ 성령으로 되신 거예요. 왜 성령으로 되셨는가? 그것은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 것 뿐입니다.

그러면 아까 말한 이론이 다 엉터리라면 무엇이 맞는 이론인가? 하나님께서 아들 되셔서 구약 때 하신 모든 약속을 다 이루셨는데, 그 다 이루심안에 뭐가 있느냐 하면, 자기 백성 골라잡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기백성 골라잡아내는 그것까지 해야 그것이 이루심입니다. ‘예수님이 이루어 놓고 그 다음에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다’ 이것은 말이 안돼요.

‘내가 이루어서 최선을 다했는데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다.’ 그게 아니고 반드시 자기 백성 골라내는 마무리 작업까지 누가? 아드님이 혼자 다 이루신 겁니다. 그래서 ‘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까?’ ‘그것은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말씀 안에 구약의 희생제물이 들어 있거든요. 제사의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거예요.

왜? 그래야 우리 죄를 대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누리는 것, 공급받는 거예요. 모든 공로를 아들에게 돌림으로써 그 다음에 아버지께서 영광 받는 거예요. 아버지께 영광이 바로 가는 것이 아니고 아들의 공로를 인정함으로써 그 자체가 아버지로 봐서는 그것이 영광이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요한복음 17장에 예수님의 기도에 나옵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아버지께 영광이 된다’는 겁니다.

요한복음 17:1,4-5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용해서 우리 구원되자’는 쪽으로 예수님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제 복음에 대해서 조금 안다고 생각이 되신다면, 그러면 여러분이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각가지 의문점이 해소가 되었습니까?

해소가 안 된 상태에서 이것이 정답이라고 무작정 삼을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말씀을 깊이 따져가는 가운데서 ‘아하,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이렇게 주장했고 저런 의도로 인해서 그렇게 주장했구나. 그러나 그게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만 높일 때 하나님께 영광되는구나’라는 것을 여러분이 앞으로 분명히 점점 알아 가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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