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번의 질문과 관련한 궁금입니다.
87번의 질문과 관련한 궁금입니다.
이름 : 고관규(IP:218.55.107.182)
예수안에서 존경하는 이근호목사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그간 이 곳을 자주 찾아보지 못 해서 늘 죄송하였습니다.
제가 저 글을 올린 건 제 친한 친구가 과연 이 곳을 어케 보느냐에 대하여 알고 싶었다는 것보다는
김용옥이를 파헤친 것을 자네는 어케 보느냐를 알고 싶어서,,,그리고 그럼 너는 이 십자가마을을 어케 보느냐를 보고 싶어서 보낸 이멜이었습니다. 그후,,,친구가 보낸 이멜을 이 곳에 그대로,,적나라하게 올렸었습니다.
저는 솔직히,,,,제 친구를 우정으로는 사랑하나,,복음으로는 저런 언급을 한다는 게 충격이었지요, 저는 알면서 제 친구에게 뭐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가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비판한 건 좋으나...비판하는 자기도,,,같은 부류안에 들어간다는,,아니..근대철학의 불가지론의 연속성상에서 말한다면,,,나는 경악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너무 슬퍼요,,
그 이유를 저는 어디서 나온 걸 대충은 압니다. 그 친구는 목회를 접었고,,,함께 개척한 스텝들과의 불화로 일산에서 목회를 접었습니다. 그 내용은 좀 복잡하지요.. 그 친구의 교회인간에 대한 실망으로 보여지는군요,
그러나 자세한 건 모르겟으나...
어케해서 그는 지금 야인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가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비판한다거나,,하는 걸 문제삼자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그가 불가지론을 자기도,,모르게 폭발시킨 게 복음적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너무 갑갑하군요, 이거 어케하지요? 불가지론이 우리 복음을 가진 자들에게 유효한가요?
저 불가지론은 세상의 야그가 아닌가요?
우리가 불가지론의 이론에 아직도 있어야 하나요? 물론 아니겠지만요
목사님의 말씀대로,,,그는 하나님에게 저항을 하는 건가요?
너무 궁금합니다.
도대체,,어케되는 거지요?
이근호(IP:117.♡.144.6)
08-08-25 07:05
목사들은 주일이 다가올 때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지를 실험합니다. 과연 자신의 기도발이 제대로 먹혔는지, 심방을 열심히 했고 집중적으로 기도해주었던 그 교인이 심경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최고로 경건하게 살아온 대가를 과연 교회 부흥과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누가 봐도 감동적인 설교를 했는데 과연 그 감동적인 설교로 인하여 교인들이 자신의 지시에 고분고분하지를 매주 점검합니다. 하루 이틀 실험해보고서 실험을 접는 것이 아닙니다. 수 십년 동안 해봅니다. 뭔가 성경 말씀에 그대로 순종한 자신의 신앙적 태도의 열매가 그 어느 구석인가 맺혀 있을 것이라고 다짐을 하면서 찾고자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만 되풀이할 뿐입니다. 그래서 내리는 결론은 "하나님은 없다!"입니다. 물론 자기 혼자만 알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알려주면 그야말로 목사직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은 아직도 계실걸"을 유지해야 언젠가는 다시 목회할 기회가 있으면 또 목회를 하고 싶어 하기에 노골적으로 "신은 없다!"고 커밍 아웃을 할 수는 없는 입장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목사가 하는 일이 '죽은 자를 살리는 일'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목사로 하여금 불가능한 일에 참여시키십니다. 심지어 목사 본인의 목숨을 바쳐서 역시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목사는 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항상 불가능성을 드러내면서 진척이 된다"고 말입니다. 목사가 아무리 기도하고 성경연구하고 바른 설교를 해도 단 한 명은 죽은 자를 산 자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죽은 자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을 한들 죽은 자가 살겠습니까! 성경에서 '죽었다'는 말은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아무리 가짜 하나님의 존재로서 끊어진 다리를 이어봤자 소용없습니다. 가짜 교인만 양산할 뿐입니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으로 사다리를 걸치는 짓은 부질없는 일입니다. 목사가 물을 것은 본인의 사명에 관한 겁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불가능한 일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이것을 자꾸 '가능한 일'로 이해하니 나중에 스스로 자포자기하고 낙심하게 마련입니다. 즉 되지도 않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목사에게 맡긴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것은 그 목사로 하여금 "진정 나를 사랑하느냐?"를 묻기 위함입니다. 즉 참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확인해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무리해도 되지도 않는 일을 목사에게 사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어짐' 산 자임을 늘 되풀이해서 확인시켜 주십니다. 불가지론, 그것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던 그 사람의 본색이요 본성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