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성경공부
하나님과의 성경공부
이름 : James J Lee(IP:71.191.106.248)
거의 한 달이 넘도록 내가 미친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알지를 못하고 감을 잡을 수 없어서 성도의 칼럼에 글을 올리려는데 글 쓰기가 없군요. 그래서 게시판에 올립니다. 관리자께서 성도의 칼럼에 옮기셔도 좋습니다.
성경을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한지가 1개월이 넘어 온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성경 읽는데 보냈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목사로서 목회하고 선교사로 돌아다니며 20년 정도만 잡아도 꽤되는 시간일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성경을 읽었는가를 말하려는게 아니고 그 많은 시간이 요즈음의 성경 읽기와 공부하는 것과 비교를 하면 너무 어이없고 허망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늦게 깨닫는 미련한 인간이다.
성경을 읽기 위해 기도하고 시작하면 언제부터인가 하나님께서 말씀을 걸어 오신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이냐? 이런 일이 왜 하나님께서 일어나게 하셨느냐? 이 단어는 므슨 뜻이냐? 등등.
처음에는 내 생각인줄 알고 나도 생각이 깊어졌구나 하면서 나 자신을 흐믓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질문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 때는 회개의 눈물과 콧물의 폭포가 흘러 나올 때였다. 하나님의 임재하심, 하나님의 존 전에서 하나님과의 성경공부. 하루 종일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서 삶에 대한 회개.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내 생각대로 하나님을 생각한 죄들.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한 절을 나갈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격이 쏟아져 내 속으로,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크나큰 파도의 연속인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산다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과의 대화를 모르던 삶이 얼마나 엉터리 인가를 처절하게 보여 주신다. 책망과 징책이 아니라 사랑과 포근함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이라고 표현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그 단어 밖에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루 종일 대화, 너무도 마음이 무너지기만 한다. 매 순간순간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헤어날 수 없고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오는 것은 감사의 눈물뿐이다. 왜 이런 하나님을 몰랐나요? 네가 찾지를 않고 엉뚱한 것만 찾았다고 말씀하신다. 그 엉뚱한 것을 찾은 것이 인생의 고통과 좌절과 낙망뿐이었음을 나는 안다. 하나님을 찿고 하나님을 만나야 인생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좌절 후에, 자신의 포기 후에 온다는 것을 깨닫는다. 필요를 채우기 위해 세상으로 눈을 돌리고 찾고 또 찾고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물론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그동안 찾던 것들은 냄새도 맡을 수 없는 쓰레기들인 것을 알게되는 허망함을 맛보게 되지만.
그 결과는 온갖 죄악과 방황과 낙심과 좌절뿐이며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나온 것조차 모르는 지경이 되고 하나님이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없으면 아무도 다시 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과의 생활이 이런 것인 줄은 상상도 못했었고 하나님은 엄위하시며 무서운 불로서 소멸하시는 분으로만 알고 있었으나 하나님과의 문자적인 만남이 주는 두려움임을 깨달았다. 죄인들을 지옥에 보내시는 그 무서운 분이 나와 대화를 하시다니!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정말로 자상하시고 무식함에 대해 너무나 친절히 깨닫게하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시는 분이신 것을 다시 다시 깨닫게 된다. 앉았다 일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눈물이 앞을 가리고 식사 때나 샤워 때나 화장실에 앉아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감당할 수 없어 숨이 차오르는 것을 순간순간 경험한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는 말씀 밖에는 드릴 수가 없다. 내가 아는 말이 그게 다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나를 자랑하고자 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어서 이 글을 올립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사는 인생 제가 알기로는 더 좋은 다른 삶은 없습니다. 아니 필요치 않습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가 없는 완전함입니다.
몇 시간 전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합니다.
뜬 금없이 하나님이 말을 걸어 오신다.
얘야!
네
사람들에게 꼭 되어야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 세상 사람들에게 꼭 이루어져야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이다.
없기는요? 아퍼서 죽어 가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가족들은 다 병이 꼭 낫기를 바라자나요?
그런 사람들이 병이 났는 것과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는데? 왜 그 사람들이 살아야되느냐? 이유는?
그래도 병이 낳으면 좋지요.
병이 낳으면 좋다고 내가 그랬냐?
...............
나는 혼자서 한참을 눈물이 나오도록 웃었다. 하나님이 코메디도 하시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끝맺으시는 것을 믿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하나님 이 사랑에서 깨지 않게 해주세요. 아버지께서 부르실 때까지.
이근호(IP:117.♡.141.4)
08-08-23 07:53
그렇다면 목사님에게 다음과 같은 공격성 질문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답변하실렵니까?
(1)당신은 예수를 믿습니까? (2)너만 주의 종인가? (3)앞으로 개혁주의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버릴건가? (4)목사님과 같은 고백만 하는 사람만 교회에 남고 나머지 다 교회를 떠나도 그들을 붙잡을 비책이 있습니까? 예를 들면, "목사님같은 그런 멋진 고백이 하게 되면 그 때 다시 교회 다닐테니 그 때까지 나보고 교회 나오라고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면서 교회를 떠나는 교인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습니까? (5)목사님 같은 고백을 했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구원된 겁니까 아니면 그것으로 모자라서 앞으로 계속 말씀에 대한 순종적 삶을 추가적으로 더 보태야 구원받는 겁니까? 아니면 저절로 순종이 일어나는 겁니다. 만약에 순종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혼신을 힘을 다해 죽기 살기로 순종을 시도해도 순종이 계속 진척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처음부터 구원이 안 된 사람입니까 아니면 구원이 유보된 사람입니까 아니면 더 높은 도약적 순종에 필요한 힘을 비축하기 위해 잠시 숨고르기 기간에 들어간 것입니까 아니면 지금에 와서 구원에서 탈락된 사람입니까?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린 이유는, 목사님을 폄하하거나 의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십자가 마을을 이런 식으로 비난하고 있으니 목사님의 조언을 듣기 위함입니다.
James J Lee(IP:71.♡.106.248)
08-08-23 13:22
제 글이 이렇게 도발적인 목사님의 글로 이어질 줄은 생각을 못했군요. 그리고 멋진 고백이다라는 말씀은 좀 그렇군요. 이 글을 쓴 것은 개만도 못한 나란 인간이 어떻게 이런 은혜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마음에 쓴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지나온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의 문제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화석화 된 것을 깨닫는 회개의 시간이 되었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를 형제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지금도 제 마음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형제 자매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고통으로부터 평안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질문을 하셨으니 성실히 대답하겠습니다.
(1) 당신은 예수를 믿습니까?
이 질문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파악이 잘 안 되는군요(제가 좀 둔합니다). 단어 때문에 나온 질문인지 즉, 하나님을 믿느냐 아니면 예수님을 믿느냐 하는 질문으로 받겠습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답변이 나올 질문이 아니고 다른 질문이라면 대답할게 없습니다. 정신 나간 사람들의 질문에 답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고후 11:23).
(2) 너만 주의 종인가?
저는 왜 이런 질문이 나와야 되는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형제인지, 그런 사람에게 그것부터 물어보고 십군요.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라고요.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출 33:19).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이미 주의 종인걸 모르고 하는 질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라고 부른 그 말은 구약의 유대인들이 입에도 올리기를 꺼리던 여호와 하나님 그 분이십니다. 그 “주”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그분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바울은 부른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주의 종입니다.
(3) 앞으로 개혁주의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버릴건가?
이 질문도 의도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이군요. 제 신앙에 대해서 걱정을 해서 하는 질문인지 아니면 사상검증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제가 사실 대로 답변을 하지요.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개혁주의 신학이 무엇인지, 카톨릭이 무엇인지, 감리교가 무엇인지, 장로교가 무엇인지, 이런 것 하나도 모르고 교회도 다니지도 출석도 안 했을 때에, 인생의 캄캄한 마지막 벼랑에서 죽음 바로 앞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 때 예수님이 개혁주의신학을 믿으면 영생을 약속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서 구원을 받았지 개혁주의신학을 믿어서 구원 받은 게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 같은 정말 개만도 못한 인간을 은혜를 베푸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믿게 하셔서 구원하심에 감사할 뿐입니다. 영원히 영광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 돌릴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만이 나의 생명이고 그분만이 나의 진리이시고 그분만이 나의 길이시기 때문에 개혁주의신학을 버리던 안 버리던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만이 전부이지 그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개혁주의신학과 예수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또한 개혁주의신학과 나의 생명과도 상관없습니다.
(4)목사님과 같은 고백만 하는 사람만 교회에 남고 나머지 다 교회를 떠나도 그들을 붙잡을 비책이 있습니까? 예를 들면, "목사님 같은 그런 멋진 고백이 하게 되면 그 때 다시 교회 다닐테니 그 때까지 나보고 교회 나오라고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면서 교회를 떠나는 교인들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습니까?
고백교회 시대의 청문회에 참석하는 기분입니다. 개인의 믿음이 고백으로 판가름될 수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은 과거 교회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권위로 사람들을 억누르려는 제도였습니다. 제가 쓴 글은 고백이 아니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증인으로 사랑을 전하고 싶어서 쓴 글일 뿐입니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제가 한 고백(?)이 정말로 하나님께서 주신 신앙이라고 어떻게 단언을 하고, 또한 제 고백(?)을 기준으로 교회를 떠난다면 그야말로 그 사람들은 자기 길로 갈뿐입니다(행 1: 25). 그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고 자신들의 신념일 뿐이라는 것밖에 그 무엇이 증명되겠습니까? 그리고 목사는 교인들이 떠나는 걸 붙잡아 놓기 위해서 있는 직책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하고 그 분만 사랑하며 그 분의 십자가의 피만 증거하는 직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인들이 떠나는 것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습니까? 떠날 사람은 떠나야 되는 것이겠죠. 교회 다닌다고 구원 받은 게 아닌데 떠나고 안 떠나고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교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죄 용서함 받고 영생을 받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이십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 사람들을 붙잡을 비책은 없습니다. 돈을 무더기로 벌게 해주기 전에는 무슨 비책이….
(5)목사님 같은 고백을 했다고 한다면 그것으로 구원된 겁니까 아니면 그것으로 모자라서 앞으로 계속 말씀에 대한 순종적 삶을 추가적으로 더 보태야 구원받는 겁니까? 아니면 저절로 순종이 일어나는 겁니다. 만약에 순종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혼신을 힘을 다해 죽기 살기로 순종을 시도해도 순종이 계속 진척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처음부터 구원이 안 된 사람입니까 아니면 구원이 유보된 사람입니까 아니면 더 높은 도약적 순종에 필요한 힘을 비축하기 위해 잠시 숨 고르기 기간에 들어간 것입니까 아니면 지금에 와서 구원에서 탈락된 사람입니까?
누가 무슨 고백을 했다 해도, 또한 그 고백을 듣고 고백을 한 사람이 구원을 받았느니 안 받았느니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근호 목사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멋진(?) 고백(?)을 들으면 구원을 받았다 아니다 판결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 인간들에게는 이런 판단을 주님께서 주시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판단 하실 분이십니다(고전 4: 5). 구원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지 한 인간의 고백이 근본이 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순종하려고 해 본적도 없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대로 은혜대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주어진 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전혀 부족함도 없고 부족한 것도 없고 필요한 것도 없고 걱정도 없고 근심도 없고 그냥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살려주시는 대로. 정말 집에서 아무것도 하는 것도 없는데 매일 바쁘게 보냅니다. 행복하고 즐겁고 기쁨의 눈물 속에서 감격 속에서 삽니다. 제가 믿음이 있다는 오해를 하실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는 믿음이 없습니다. 정말로. 그냥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삽니다. “너 돈 벌어 놓은 것 많은가 보다” 하는 분을 위해 말씀을 하나만 더, 저는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고, 친구도 거의 없어졌고, 얼마 동안 아파트 세 낼 정도의 현금이 있을 뿐입니다. 제 자랑으로 듣지 마시고 또 다른 질문이 안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믿음이 정말로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해 주시는 대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셨기 때문에 감격하고 기쁘고 즐거움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요. 아무 근심 걱정도 없고요. 이 마음이 하나님께서 주신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형제 자매님들도 이런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주님께서 주신 평강을 누리시길 바래서 글을 올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글을 읽고 계시고, 보고 계십니다. 한 글자도 거짓이 아닙니다. 만약에 제가 저의 믿음 자랑이나 믿음이 있는 척 과시하려고 아무리 작은 거짓 말이라도 했다면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저를 데려 가셔서 저의 거짓을 증명하셔도 좋습니다. 순종은 생각도 안 해 봤습니다. 그냥 시키시는 대로 삽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제가 이 목사님께서 질문 하신 것에 대해서 답변이 제대로 되었으면 합니다. 제가 글을 잘 못써서요. 겸손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리고 주제넘게 제가 조언할 능력이 없습니다. 예상 하셔서 문제까지 내 주시고 감사합니다. 항상 복음만 전해 주시고 주님께 영광만 돌리시는 목사님이기를 기도합니다.
Washington 에서
이근호(IP:117.♡.141.4)
08-08-23 14:01
제가 목사님에게 청문회를 한 것이 아니라 제가 당한 황당함을 그대로 질문 형식으로 목사님에게 안겨 본 것입니다. 언젠가 목사님도 이런 황당함을 당할 공산이 있기에 실례가 되셨는 줄 알면서도 미리 던져본 것임을 앙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지금도 이런 황당함을 십자가 마을 목사님과 성도들이 지속적으로 계속 당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미국에 홀로 계시기에 안 당하시겠지만...
하나님께서 제단 위에서 받으시는 것이 '피'(흠없는) 밖에 없음을 십자가 마을에서 천명하게 되면, 주변에서 벌떼같이 공격합니다. "너만 주의 종이냐, 개혁주의 신학을 짓밟는 자, 예수 믿는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자, 순종을 강력하게 안 가르쳐서 교인들을 방탕으로 몰아넣는 자, 열심히 신앙생활 해보려는 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자 등등의 공격을 숱하게 받고 있습니다. 특히 "너만 주의 종이냐"라는 비판이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 줄 수 밖에 없습니다. "매사에 예수님의 피를 모독하는 자들!"이라고 말입니다. 바라기는 부지런히 활동하는 십자가 피 위력 앞에서 목사님이나 저는 쉬지않고 자아의 가치가 또 뭉개지고 뭉개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강구만(IP:125.♡.86.188)
08-08-23 17:57
모든 만물과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그분이 죄로 가득찬 티끌같은 이땅에 죄있는 육신의 몸으로 오시고, 소위 피조물이라는 인간에게 힘없이 맞아 죽어버렸다는 그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신이라는 그분을 이용해서 나자신 살아보려고 믿는척 해보는것 아니고선 불가능 이다. 수천년 피눈물나는 인류의 역사와 놀라운 문명을 이룩해낸 인간의 가능성과 존엄성까지 무시 당하면서 살아계신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고백 하는것, 이 또한 정상인이 할 짓은 아니다. 더구나 나는 개같은 아니 개보다 더 못한 죄인 이라고 입을 가리고 눈물조차 감추는 종의 감사가 터져 나온다면 누구 말마따나 정신병자가 아니고선 불가능 이다. 그러나 내가 찾고 구하지 않아도 피를 앞장 세우고 찾아 오시는 그분의 사랑 안에서 가능한 용서의 기적이다. 영원히 반복되는 십자가의 기적이다! 새벽에 잠이깨서 (늙는건가?) 본의 아니게 어떤분의 원고 교정 하던중에 죽음 안에서만 만나는 비밀한 사랑을 발견하고 기뻤습니다. 오후엔 제임스 리 목사님의 글에서 그 사랑을 또 만났습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아부지의 그 고집에 눈물이 납니다....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6)
오용익(IP:59.♡.201.241)
08-08-25 10:44
(의 식구, 구자근)
하나님과의 쉬임없는 대화로 감격스러워하는 제임스 리 목사의 흘려보내고픈 그 사랑의 글에
이 목사님의 아무 생각없는듯한 질문댓글에 고마워하고 있었는데
(상대방에게 정신나간 질문으로 보일수도 있음을 뻔히 알텐데도 하시니..)
조금은 기분 안좋을 수 있는 그 질문에 하나하나 성심껏 답하시는 분의
그 댓글에 더 고마운 마음이 생겼고(사람에게 좋게 하는 고백이 아닌걸로 보여서),
비로소 자신의 질문의 의도를 밝히는 그 댓글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의 냄새가 풀풀 눈치채져서
아예 글써글썽거리고 있었는데,
강장로님의 새벽에 고이신 하나님의 비밀한 사랑을 읽을때
마치 귓가에 창세 전부터의 그 비밀한 사랑 이야기가 들리는듯 하여
급기야 눈물만 뚝뚝.. 같이 흘려봅니다.
이제는 바짝 선선해진 가을바람의 영향임을 아울러 고백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