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8우리교회여름수련회 3강자유게시판호세아

2008우리교회여름수련회 3강

이름 : 오용익(IP:59.3.201.241)

(2008년 우리교회 여름수련회, 강의 : 이 근호 목사)

제 3강, 호세아

호세아 2장부터 13장까지 흐름이 있습니다. 그 흐름은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여기 ‘남편의 계획’이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은 그 앞에 하나 붙여야 됩니다. ‘숨어 있는 남편의 계획.’ 숨어 있는 남편의 계획이라는 말은 그 반대말이 있어요. 그 반대말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남편’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의 시대에는 남편종교, 대자연을 남편으로 인정해서 신을 남편화 시키는 그런 종교가 유행을 했는데 그 남편종교를 바알종교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너는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지 않고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신에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나타나 있는 신, 또 다른 하나는 숨어 있는 신입니다.

이 두 종류의 신 중에서 하나님은 ‘숨어 있는 신’ 쪽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 외에, 숨어 있는 신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숨어 있는 신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나타난 신은 신이 아니니라.’ 그런 뜻이거든요. 옛날 사람들은 나타난 신을 가지고 남편으로 삼고 자진해서 그 남편의 아내로서 남편의 혜택을 입으려는 심산으로 종교생활을 해 왔었습니다.

그것을 먼저 알아야 호세아전체를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호세아에서는 ‘너희들이 알고 있는 상식적인 나타나 있는 신 말고 진짜 숨어 있는 하나님의 계획, 숨어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너희들이 아느냐’고 따집니다. 그래서 호세아를 알기 위해서는 ‘인간들의 나타난 신은 어떻게 만드는가, 인간들은 어떻게 신을 만드는가’를 알면 호세아의 어려운 문제가 풀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신을 어떤 식으로 만드는가?’ ‘종묘사직’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서울에 종로 5가에서 3가 사이에 종묘라는 것이 있습니다. 동양에서 신을 섬길 때 신에게 나아가는 길이 종묘와 사직, 두 가지 계통이 있습니다. 조상신을 섬기는 것을 종묘라 하고 사직은 농업형경제구조에서 생산물을 신과 함께 갈라먹기 하는, 더불어 즐거워하는 식의 제도로 신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옛날 임금들이 임금이 되면 반드시 선배 신들에게 제사를 했고 그 제사를 종묘라 하고, 사직은 농사를 잘 짓도록 도와주는 그런 신에게 제사하는 우두머리로서도 왕은 자기역할을 다 해 줘야 합니다. 만약에 왕이 신에게 제사 드리는 일을 잘 못하게 되면 그 해 농사를 망치는 수가 있어요. 농사를 망치면 백성의 원성이 높습니다.

‘목사님, 그것은 옛날이야기가 아닙니까?’ 옛날뿐만이 아니고 오늘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비가 와야 할 때에 비가 안 오면 ‘아, 대통령을 잘못 뽑았구나.’ 누구나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 신을 가지고 ‘대자연’이라 합니다. 대자연이라는 것은 변화한다는 겁니다.

변화해서 돌아가는데 그 돌아가는 변화에 눈치를 채서 알아맞히면 그 해는 복을 받고 변화하는 것과 거꾸로 나가면 그 인생은 종친 인생이라는 겁니다. 그 변화하는 것을 중국에서는 숫자로 표시해서 내놓은 것이 기원전 3세기쯤에 나온 주역입니다. 주역의 시초는 한자의 시초가 되는데 거북이 등딱지의 쪼개진 눈금의 가지를 가지고 점을 쳤는데 그것을 숫자화 시켰습니다.

수화목금토, 오행을 가지고 오각형을 만드는데 그 오각형이 거북이 등딱지 같은 거예요. 그것을 가지고 상생과 상극, 서로 돕는 것과 서로 대치하는 이 두 원리를 가지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거예요. 대자연은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와요.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죠. 대자연 그것 뭡니까? 음양입니다.

대자연이 음양이고 음양이 대자연입니다. ‘+, -’, 이것이 대자연입니다. 전자기학에서 전자가 음극과 양극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음양이 통합된 하나된 것을 가지고 태극이라고 합니다. 그 태극에서 음양이 상생과 상극으로 나오면서 그 모든 오행으로 다 움직이는 겁니다.

대치되는 것은 멀리하고 상생되는 것을 합치하면 그것이 순리에 부드럽게 녹아지는 것이 때문에 그 인생은 아주 행복은 인생이 되고 만약에 대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면 그 인생은 팔자 더러운 팔자, 뭘 해도 저주받는, 나가도 저주받고 들어가도 저주받는 팔자가 되는 겁니다.

중국에서 저주받는 경우란 나쁜 짓해서 저주받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흐름에서 역행하면 저주를 받고 대자연의 흐름에 순행하면 복을 받는다고 되어 있어요. 나쁜 짓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본래 대자연의 변화 그 자체가 좋은 것인데 그것에 역행하는 것이 나쁜 짓이 되는 겁니다. ‘남을 해치지 말라’는 것은 대자연은 스스로 돕는데 그것을 해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조선의 건축구조물을 보면 자연을 해치는 방향이 아니고 자연에 순응하는 쪽으로 건축을 하게 됩니다. 초가집을 짓든 기와집을 짓든 다 그렇게 짓는 겁니다. 모두 다 자연에 화합하려는 정성 같은 것이 깃들어져 있어요. 그런데 인간들이 순응해 왔던 대자연의 이치 중에 하나가 ‘있음’입니다.

‘있음을 통해서 있음이 나왔기 때문에 그 먼저 있는 있음을 존중해주고 그 먼저 있는 있음과 부드럽게 연결될 때 복을 받는 겁니다. 그래서 대자연속에 있는 조상신, 우리보다 조상님이 먼저 계시거든요. 이것을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대자연과 인간 사이는, 대자연은 아버지고 인간은 대자연의 아들이라는 겁니다.

대자연의 아들인 인간은 아버지인 대자연에게 효도를 함으로 말미암아 대자연의 복을 받는 겁니다. 대자연에 효도를 하려면 어느 집부터 먼저 해야 되느냐? 자기 집부터 먼저 해야되지요.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하는 그것이 대자연의 순리에 맞는 거예요. 이것은 동양종교가 그렇고 서양종교는 바알종교입니다.

바알종교는 들어갔다가 나오는 종교입니다. 여기에 넓은 대지가 있는데 그 넓은 대지위에 씨를 뿌리면 싹이 트고 그 싹이 자라서 나무가 되고 나중에 열매가 맺히는 겁니다. 그런데 나무가 죽으면 다시 재가 되고 흙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랬다가 여기가 죽음의 층인데 이 죽음의 층을 뚫고 다시 생명으로 이어지는 거지요.

그렇다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는데 겨울이 되어서 다 죽었다가 봄이 되면 다시 싹이 터서 이어지지요. 이렇게 죽음의 층을 뚫고 생명이 나오듯이 사람이 죽으면 다시 생명으로 나오는 거예요. 죽은 자리에는 먼저 죽은 선배들, 죽은 부모, 조상들이 모입니다. 이 분들의 기운을 받아서 이분들을 대신해서 나머지 영원한 삶을 우리가 대신 살아주는 거예요.

동양종교보다 더 이전으로 가면 원시시대에 그런 것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 경우가 내려오고 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만 파푸아뉴기니아에서 조상들의 시신을 먹는 것은 배고파서 먹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죽은 시신을 뜯어 먹음으로써 그 아버지와 나는 하나가 되는 거예요. 효도중에 제일 효도, 최고의 효도는 아버지 뜯어먹는 것입니다.

그게 흉측하다고 보이기에, 실제로 아버지의 살점이 아니지만 그들의 영혼만은 내가 뜯어 먹겠다는 것이 조상 제사입니다. 49일 동안은 영혼이 떠나지 않고 있으니까 49제라 해서 49일동안 제사를 드리고 나서 ‘부모님, 이제 그만 가이소. 49일이나 머물러 계셨으면 되었지요. 이제 그만 우리도 할 일 해야 안 됩니까’ 해서 보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 가려고 버티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신혼여행지에서 죽었다든지 하는 경우, 억울해서 도저히 이 땅에서 못 떠나겠기에 해결 보고 떠나겠다는 겁니다. 체조금메달 딸 것을 심판이 잘못해서 은메달밖에 못 딴 경우에 한이 맺혀서 귀신이 되어서 체조경기장을 배회하는 경우.

빨리 49제 지내서 돌려 보내버려야 돼요. 귀신의 문제점은 사람을 해코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귀찮게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귀신은 진드기처럼 사람을 귀찮게 합니다. 비 줄줄 오는데 하얀 소복 입고 머리는 풀어 헤치고 택시 기사 가는데 앞에 막아서서

“아저씨….”

“왜요?

“내 한 좀 풀어주세요.”

‘귀신은 우리를 귀찮게 하네 ♬’ 귀신은 우리를 귀찮게 합니다. 한을 풀고 가겠다는 거예요. 공동묘지 근처에서 늘 나타나는데 머리 좀 단정히 묶고 오면 되는데 꼭 머리를 풀어 헤치고 나타납니다. 왜 머리를 묶지 않는가 하면 한이 맺혀서 머리 묶을 마음이 없는 거예요. 화장도 전혀 안하지요. 귀신 쫒는 방법은,

“아저씨….”

“뭔데? 왜 안 가는데?”

“제 한 좀 풀어 주세요.”

“에라이, 귀신아! 그거 법이 바뀌어서 이젠 해결 못한다. 이제 그만 가라.”

“예, 아저씨! 안녕히 계세요.”

이렇게 보내버리면 됩니다. 이것이 윤회사상이고 영혼불멸설입니다. 영혼불멸설이 어디서 나왔나? 바알종교에서 나왔습니다. ‘인간은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살아 있다.’ 이것이 기독교인줄 아시지요? 아닙니다. 아니올시다. 기독교는 영혼불멸설이 아닙니다. 새롭게 창조하는 겁니다. 누구의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다른 말로 하면 하늘에 속한 형상으로.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할 때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간다’(마 22:30)고 했잖아요. 여러분들이 교회 다닐 때 무엇을 알아야 되느냐 하면, ‘하나님 나도 안다. 그거 뭐 우리 할아버지한테 많이 들었다. 신? 그거 뻔한거지. 그게 뭐 별것인가?’ 합니다. 맞습니다. 신이라는게 다 거기서 거깁니다.

내가 집에 있는 부모로부터, 먼저 있는 있음에서 왔듯이, 그 부모는 더 먼저 있는 부모인 대자연, 신에게서 왔기 때문에 내가 부모에게 잘 해주면 그 부모에게 효도했다는 소문이 이 지하다방(조상들이 모여 있는 죽음의 세계, 곧 대자연의 세계)에 퍼질 것이고 그렇게 소문이 퍼지면 신에게 복을 받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복을 받으려면 우선, 죽은 조상에게 일차로 잘하고 그 다음에 살아 있는 부모에게 잘하면 그가 복을 안받을래야 안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세상 모든 신을 믿는 사람들의 공통점입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성경에는 효도가 없습니다. 오늘 제가 충격적인 발언을 합니다. 성경에는 효도라는 것이 없어요.

지금 연세 많은 분들은 얼굴이 좀 어두워지는 기색이고 젊은 분들은 ‘음매 기 살아’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성경에는 효도라는 것이 없어요. 물이 거꾸로 흐르는 법이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한테 다 주고 손 털고 그대로 죽으면 그만입니다. 그게 부모입니다. 부모라는 것은 자식한테 다 주고 가면 그만입니다. 문제는 자식이 하나가 아니라 둘, 셋이라서 문제입니다만.

자식은 부모에게 맡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에게 맡겨놓은 것이 없어요. 다 털고 가야 됩니다. 자기가 숨기든 말든, 부모를 생각하든 말든 다 줘버리고 가는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이 부모한테 이야기하는 겁니다. ‘줘라. 자식에게 다 줘라.’ 자식에게 다 주면 나중에 자식이 입 싹 씻고 버리면 어떻게 하는가?

‘줄 것은 다 주고 버림받을 때 그냥 버림받는 것이 부모가 가야 할 길이다’라는 겁니다. 부모가 자식 잘 키웠다고 그렇게 유세를 떨지만 부모가 자식에게 남긴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죄를 남겼습니다. 이 업보를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자기 성질, 자기 못된 것 다 자식한테 물려줬는데 자식이 무슨 죄가 있어서 그걸 다 물려줬습니까?

죄를 줘놓고 그걸 교육시킨다고 그 죄가 달라집니까? 제가 지금 바른 소리 합니다. 태생이 더러운 태생으로 만들어 놓아놓고 회초리 때려서 교육시킨다고요? 애들이 얼마나 뺀질이인데 교육 잘되겠습니다. 눈치 때려서 자기 유리한대로 다 빠집니다. 때릴 때는 ‘잘 할게요’ 하지만 눈치껏 다 빠져나갑니다.

어릴 때나 재롱도 피우지 크면 시켜도 안합니다. 부모는 부모고 나는 나입니다. 키워준 것으로 끝나는 것이지 키워준 대가를 바라는 것은 기존의 효도사상에서 나온 것인데 이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물은 거꾸로 흐를 수가 없어요. 물은 그냥 내려가는 겁니다. 감추어진 신은 효도가 없지만 인간들에게 나타난 신은 효도 외에는 신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대안이 없습니다.

효도가 가장 적합한 대안입니다. 효도하면 죽은 조상과 교류가 된다는 식으로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기독교가 추도예배 같은 것으로 사람을 꼬시겠다고 합니다. 바알종교란 한마디로 ‘어떤 인간도 이 대자연의 공간에서 못 벗어난다’는 겁니다. 지금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타난 종교, 거짓종교의 특징을 이야기합니다. 나타난 종교, 대자연의 신은 ‘이 공간을 죽어도 못 벗어난다’는 겁니다. 감추어진 신, 숨어 있는 신은 ‘내가 벗어나게 해 줄게. 흙에 속한 인간, 60이면 60, 70이면 70, 흙에 속하면서 고생 무지 했는데 내가 청산해 줄게’입니다.

흙에 속해서 계속 고생했는데 계속해서 또 썩어질 흙에 속한다면 제대도 못하고 참 비참한 것 아닙니까? 베드로가 주님이 ‘죽으러 간다’고 하니까 자기도 죽으면 되는지 알고 ‘주여, 저도 같이 죽으러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야, 오지마라.”

“저도 주님과 함께 죽겠습니다.”

“오지마라. 내가 가는 길을 너는 모른다.”

초등학교 아이가 엄마를 졸졸 따라가면서, ‘엄마! 어디 가는데? 엄마 어디 가는데?’ 합니다. ‘나 목욕탕 간다. 나는 여탕, 너는 남탕이다. 오지 마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우리가 여기서 생각하면서 ‘천국, 저기 있다’라고 하는 천국은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사도바울은 ‘십자가 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지나서 있는 것이 아니고요. 우리가 지금 있는 이 오미자체험마을을 지나면 생다래 마을 나옵니다. 그러면 생다래마을과 오미자체험마을과 같은 동네입니까, 다른 동네입니까? 다른 동네지요. 이 장소 지나서 생다래거든요.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십자가 지나서 천국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것은 잘못된 거예요. 십자가 안에 천국이 있어요. 그래서 천국에는 어린양의 보좌가 있습니다. 너무 어렵게 했는데 쉽게 해 봅시다. 베드로가 가겠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처소를 만들지 아니하면 베드로가 거기 갈 수가 없어요.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내가 가서 자리를 마련해 줄게.”

“지금 가겠습니다.”

“지금은 안 된다니까.”

“내가 자리를 마련하면 네가 오겠다고 안 해도 내가 가서 너를 데리고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1-4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내가 다시 올게.”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내가 다시 올게. 징징거리지 마라. 내가 다시 올게. 그런데 지금 네가 가려고 하는 세계는 네 상상의 세계이고 그것은 진짜 천국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바알종교죠. 바알종교에서는 대자연이 만들어 놓은 그 아이디어, 상상력, 큰 자연을 두고 천국이라고 하는 겁니다. 여호와증인들이 발행하는 잡지, ‘깨어라’에 보면 나오죠. 골프장 그려져 있는 낙원의 그림이 나오죠. 그런데 이슬람에서의 천국은 뭡니까? ‘네가 마호메트의 법을 잘 지키면 일곱처녀가 너를 시중을 들것이다.’

일곱 처녀까지는 아니어도 세 명의 처녀가 드는 시중은 받았잖아요. 십자가마을 수련회에서 식사시간에 물 잔들고 밥공기 들고 다니는 처녀들이 있었어요. 그런 것이 다 인간들의 아이디어입니다. 뭔가 모자람, 결핍된 것을 보충해주는 것이 천국입니다. 그 자체가 다른 종교입니다.

호세아에서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호세아 2장을 보겠습니다.

호세아 2:15-16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어디서 나왔습니까? 어디선가 기어 나왔잖아요. 물속에서 기어 나왔지요. 제가 아까 저녁 먹은 뒤에 개울가에 갔는데 세상에, 물속에서 다슬기가 기어 나와요. 그 고동모든 것을 가지고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낮에는 숨어 있어요. 밤 되니까 슬슬 다 기어 나와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이 대자연속에는 없는 나라입니다. 그림으로 그리겠습니다. 여기에 대자연이 있습니다.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별 쳐다봐도 여기에서는 아무것도 안 나옵니다. 그냥 별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대자연의 두께를 뚫고 여기에 보이지 않는 나라가 숨어 있는 거예요. 이 숨어 있는 나라가 이 대자연의 두께를 뚫고 톡 튀어나온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첫째시간에 뭐라 했지요? 이게 무슨 층? 약속 층이죠. 이것은 무슨 층? 생존 층. ‘대자연속에서 내가 살아가겠다. 대자연이여, 우주여, 어떻게 사주팔자를 보면 내가 밥 먹고 살 수 있습니까?’ 모든 것이 생존 층입니다. 그런데 여기(약속층)은 뭡니까? ‘이미 너는 살았어. 새삼스럽게 살려고 할 필요도 없어.’

생명을 아예 주사기 바늘 가지고 집어넣어요. 애들 튜브에 바람 집어넣을 때처럼 생명을 그냥 집어넣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다른 생존층에 있는 모든 나라가 죽음에서 튀어나온 이스라엘, 다슬기처럼 튀어나온 이것을 다른 민족이 이길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이것은 이미 죽음이고 이것은 이미 생명이기 때문에 이쪽은 ‘죽고, 죽고’이지만 이쪽은 ‘살고, 살고’ 이거든요.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죽음의 세력이 너를 이기지 못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너는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으니 네가 잠그면 잠기고 열면 열린다.’ 음부의 권세가 죽음을 이기지 못한다. 무엇을? 교회를.

호세아 2장에서는 ‘숨어있는 남편’이라고 했는데 다른 말로 하면 숨어 있는 남편, 또는 숨어 있는 나라, 물론 그 나라 속에 숨어 있는 남편이 들어 있지만, 숨어 있는 나라가 뚫고 들어 왔을 때, 이 나라를 ‘게 섰거라’ 하고 따라온 나라가 있어요. 그게 누굽니까? 이집트 군대지요.

이집트 군대는 앞서 간 히브리인들이 통과하니까, 그들도 인간이고 자기들도 인간인데 그들이 통과하는 바다 같으면 얼마든지 자기들도 통과할 수 있다고 그렇게 믿었던 겁니다. 그렇게 믿으면서 말을 달려서 ‘게 섰거라’ 하면서 앞서 간 히브리인들 전방 100미터까지 접근 했는데 갑자기 절벽처럼 양 옆에 서 있던 물 벽이 자크 열렸다가 다시 닫히듯이 무너져서 다 함몰되어 죽고 말았어요.

이 광경이 요한계시록에도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15장입니다. 이래서 성경이 어렵기도 하지만 신나기도 합니다. 누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5:2-3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됐습니다. ○집사님 입에서 이런 찬양이 나온다는 것이 참…, ‘해바라기 꽃, 당신만을 그리워하며…♬’ 이러다가 갑자기 찬양이 나와요. 이게 옛날 지상에서 출애굽 할 그때뿐 인 줄 알았더니만 마지막 천국 갈 때 그 바다가 유리바다이고 그 밑에 뭐가 깔렸어요? 불이 깔렸어요.

옛날에는 물이 깔려 있고 그 바다는 하나님의 백성만이 통과하고 애굽사람들은 물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는 구원받은 사람들은 불을 통과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불을 통과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옛날 출애굽 구조하고 우리가 구원받는 구조하고 동일한 구조라는 것이 요한계시록 15장의 이야기입니다.

어린양의 모세의 노래, 그때 모세가 인도했잖아요. 그것도 중요하지만 제가 지금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애굽군대가 따라오면서 ‘저것들은 뭔데? 똑같은 인간인데 저것들은 건너가고 우리는 못 건너가나?’ 했는데 하나님께서 막아버려요. ‘이게 어디! 생명도 없는 게 감히 어디를 들어와. 들어오지 마. 죽여 버립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죽음을 통과하지 못하면 천당에 못 들어갑니다. 죽음을 이기지 못하면 구원 못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생존 층에서 죽음을 이길 힘, 재주가 있다, 없다? 없어요. 그것을 이스라엘이 알아요. 제사지내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무슨 짓을 해도, 예배참석하고 다 해도 우리 힘으로는 죽음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나오지를 않습니다. 나오지를 않으니까 방법이 뭐겠어요? 1) 운다. 2) 안되면 그냥 포기한다. 3) 안되어도 해 본다. 4) 자기를 누구의 아내로 지칭한다. 몇 번입니까? 4)번입니다. 시장에서 여자들끼리 싸울 때 안 되면 그래도 누구를 부릅니까? 집에서 빈둥빈둥 놀면서 올림픽 수영만 보고 있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부릅니다.

‘여보, 일 터졌다. 이리 좀 온나.’ 이렇게 남편 부르지요. 그래서 호세아에서 ‘인간들아, 너희 남편, 보이지 않는 남편 벌써 대기해 있다’는 것이 호세아의 주제입니다. ‘너는 혼자 살아왔지. 왜 남편이 있는데 혼자 살아가냐’고 하는 말입니다. 남편이 폼으로 있느냐는 말이죠. ‘네 힘으로 안 되잖아.’ 안 되는데 안 되는 정도가 아니고 세상 생존 층에 열중 했죠.

우리도 남들처럼 생존 층에서 살아 보려고 애썼던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감추어진 약속의 층이 생존 층에 침투해서 새삼스럽게 웬 아저씨가 하나 와서 ‘당신이 내 아내고 내가 당신 남편이다’라고 해서 어느 날 이렇게 남편을 보는 거예요. 그게 아까 본 호세아 3장입니다. 숨어 있는 남편이 있었다. 그 숨어 있는 남편을 보기 전까지 우리는 세상의 눈에 보이는 남편을 섬겼다는 겁니다.

그 남편이 누구냐? 숨어 있는 남편 말고 대자연,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 신이 있고 신에게 순응해야 팔자를 편다는, 궁합도 맞고 아주 사주가 좋다는 그런 것들, 옛날에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미신이라고 하면서도 재미로 다 봐요. 그러한 자연에 순응하고 그 자연에 순응하는 법칙들을 모아놓는 것이 뭐냐? 동양사상에 나온 효도가 중심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면 복 받는다.’

‘눈에 보이는 아버지에게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 무슨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섬기느냐?’ 얼마나 기독교 신자가 욕을 많이 얻어먹습니까? 불신자들이 하는 상투적인 소리가 뭐예요? ‘부모한테 제사도 안 드리면서 무슨 복을 받아? 네 부모한테 잘해야 하늘이 복을 주지.’ 그런 사람들에게 ‘부모라는 것은 다 털고 가면 그만 입니다’라는 소리를 하면 기절할 겁니다.

‘그래서 복 받나?’ 이러고 있거든요. ‘당신은 뭔가 두려워하고 있다고.’ 뭐냐 하면 생명이 없기에 죽을까 싶어서 벌벌 떨고 있는 거예요. 생명이라는 것을 받아 본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 힘으로 생명을 얻어 보려고 벌벌 떨면서 온갖 것, 이것 해보다가 저것 해보다가 효도 해보다가, 재수 좋은 쪽으로 온갖 짓 다 해보려고 하는데 그거 다 헛짓입니다.

‘부모한테 효도하는 것이 성경에 없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 또 시비가 들어올 겁니다. ‘이제 이 목사 막 간다’고 할 텐데 성경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나이든 분들은 짐을 지우지 말고 네가 섬겨라’고 하고 있고 에베소서 6장에 보면 부모 공경이 나오는데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망나니 같은 자식은 부모의 걱정거리’라는 대목이 있어요. 십계명에도 제 5계명에 부모공경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교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부모가 계시를 받았어요. 옛날에는 목사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옛날에는 목사라는 것이 없었고 성경교사도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계시를 받은 전달자입니다.

계시의 매개체입니다. 잠언서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합니다. 왜?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식에게 알려줄 계시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대표적인 것이 나중에 유월절 제사를 드리게 될 때.

“아버지!”

“왜?”

“이 유월절 양은 무슨 뜻이며 이 피는 무슨 뜻입니까?” 그 때에,

“아들아, 너 몰랐지? 옛날에 애굽에 있을 때 우리가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단다. 세상에, 문설주에 피를 바르니까 저쪽은 다 죽고 우리는 다 살고,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거야.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우리는 양의 피를 잡고 그 양의 피 속에 함께 있음으로서 우리는 이미 생명을 얻은 민족이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좀 더 해 봅시다.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감추어진 생명의 세계가 죽음의 세계를 뚫고 와서 유일하게 생명이 있는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죽음 속에 있는 다른 나라가 이스라엘을 결코 이긴다, 못 이긴다? 이길 수가 없어요. 백전백패 이길 수가 없어요. 이길 수가 없는데 나중에 이스라엘은 백전백패 다 집니다.

왜 그럴까요? 이스라엘이 약속을 담아야 되는데 뭘 담았느냐 하면 바알신을 담았어요. 나라와 형식만 이스라엘일 뿐이지 마음가짐은 생명이 어디서 오는가를 놓쳐 버렸어요. 한번 묻습니다. 생명은 어디서 옵니까? 간단합니다. 한 글자입니다. 피에서 오잖아요. 생명은 유월절 제사를 드리는 가운데 그 유월절 피에서 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유월절 그 피로 말미암아 죽은 우리가 살았다는 그 의미를 가져야 하는데 이 사람들이 계속해서 제사를 드리다 보니까 관성이 붙으면서 시시해져서 이젠 형식으로 하는 거예요. ‘어이, 제사다. 제사. 하나님 기다린다. 얼른 드리자. 귀찮아 죽겠다.’ 마치 시집온 새댁에 한 달에 한 번씩 일 년 열두 번 제사 드릴 때 그 제사가 정신이 들어가겠습니까?

어느 날 차를 타고 오는데 아주머니 둘이 대화를 해요.

“집사님, 이번에 집회에 갑니까?”

“못 간다. 제사 있다. 제사 때문에 이번 집회에 못 간다.”

생존 층이 너무 우선이고 생명의 층, 약속의 층은 나중이라. 약속이 뭔지 알아요? 숨어 있는 것이 침투하는 것이 약속이거든요. 약속이 뭐냐 하면 우리가 안했는데 이미 마련된 거예요. 아까 들어오실 때 이미 강냉이를 삶아 놓았잖아요. 우리가 안 삶았어요. 우리는 그냥 뜯어 먹기만 하는 거예요. 강냉이 알맹이 하나하나가 생명이라면 우리는 그냥 뜯어 먹는 재미로 사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생명이 늘 상 있다고 생각하고, 관심이 없으며 주위나라 다른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 그게 더 재미있어 보이는 거예요. 지금 진도가 호세아11장까지 다 나가버렸습니다. ‘너희가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리는구나. 꼴 좋다. 너희 제사장들아.’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늦게 오신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첫째시간 둘째시간 한 것을 다시 요약하고 가겠습니다. 첫째시간에 불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용광로 속에 다니엘의 세 친구를 집어넣었더니 그 중에 숨어 있는 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1’이 있었기에 불속에서도 그들이 살았어요.

따라서 이쪽을 가지고 산자라고 하고 불속에 집어넣는 이쪽은 졸지에 불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죽어야 될 죽은 자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산자가 되고 그 반대쪽은 죽은 자가 되는데 왜 그러냐 하면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홀로 독점합니다. 인간들은 계시를 받은 적이 없기에 본인이 신을 지어내고 신과 자기사이에 무엇을 한다고 했습니까?

흥정과 거래와 타협을 합니다. ‘하나님, 정성 이만큼 드리면 복 주시겠습니까?’ 만 날 거래를 해요. ‘기도 이만큼 하면 복 주겠습니까?’ 만 날 거래와 흥정에 나섭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독점했고 선지자가 독점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느냐? 감추어진 세계, 위층에 약속의 층이 있어요.

이제부터 중요합니다. 아래층에는 무슨 층이 있다고 했습니까? 생존의 층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물었잖아요. 여기서 생존의 층을 벗어날 수 있는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죽을 때까지 인간은 자기 생존만이 우선입니다. 신자든 아니든 관계없어요. 죽을 때까지 우리는 먹고 살면 그만이라는 식입니다. 어쨌든 간에 살아야 돼요.

‘주여, 살려주옵소서.’ 이것밖에 몰라요. 그러니 생존의 층에 정신이 빠져 있는 사람이 자력으로 약속의 층을 잡아당긴다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약속의 층이 침투하죠. 침범합니다.

‘천국은 침범하는 자가 빼앗는다’(마 11:12)고 하죠. 약속의 층이 생존의 층을 침범해버리면 졸지에 ‘아하, 내가 생각하는 세계가 전부인줄 알았는데 하나님하고 예수님하고…’, 제가 무슨 단어를 썼습니까? ‘담판.’ 창세전에 예수님하고 하나님하고 담판을 한 어떤 결과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것은 어떤 행함도 아니고 열심도 아니고 거저, 공짜로 주어집니다.

거저 주는 것을 받는 것을 가지고 두 글자로 믿음, 혹은 선물이라고 합니다. 절대로 뭐는 아니다? 내 행함은 절대로 아니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지, 행함으로 살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님이 담판해서 주신 그것을 네 글자로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우리 행함이 아니고 창세전에 예수님하고 하나님하고 두 분이 담판 지은 거죠. 이것을 품에 이렇게 담았다 이 말이죠. 마지막 구원받을 때 뭐만 끄집어냅니까? ‘주여, 기도 많이 했습니다. 성경공부 많이 했습니다. 헌금 많이 했습니다.’ 이것 다 소용없어요. 뭘 끄집어내요. ‘주여, 이것 내가 한 것은 아닌데 주님 주신 것 하나님의 의가 있습니다’라고 딱 내놓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의는 율법을 지켜서 됩니까? 율법 말고 다른 의 입니까? ‘율법외의 다른 의’, 율법 외의 다른 의가 한자로 뭡니까? 피!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의가 생긴 것을 밥 먹고 살기 위한 이 바쁜 와중에 24시간 눈만 뜨면 어떻게 먹고 사나 하는 그 바쁜 와중에 난데없이 ‘구원은 하나님의 의로 받는다. 왜? 신구약이 그러니까, 이 성경, 약속이 그러니까.’

이런 생각이 불쑥 솟아 올라와요. 그런 생각이 나게 되면 다른 사람이,

“너는 어떻게 구원되었는데? 너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하더니 그래서 구원된 거야?”

“열심히 봉사해도 그 행함으로 구원되지 못한다.”

“그럼 어떻게 되는데?”

“예수님이 하신 공로, 예수님이 하신 그 의를 내가 그냥 수용함으로 구원받는 거야.”

“그래도 교회 봉사 많이 했으면 네 자랑할 것도 많을 텐데 좀 해라.”

“자랑할 것이 뭐가 있겠나? 교회 봉사야 밥 먹고 사는데 유리할까봐 다 하는 짓인데 그것은 소용없고 진짜 구원받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룬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 받는다.”

이런 생각이 난데없이 우리 안에서 피어오릅니다. 그렇게 피어오르게 하신 분을 호세아에서는 ‘이제부터 네 남편이라 불러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남편이 되면 우리는 졸지에 뭐가 됩니까? 아내가 되지요. 아내가 되면 뭐가 유리하냐 하면 아내는 자기가정에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아내는 가장이 아니거든요. 제가 이번에 십자가마을수련회 기간 동안 잠언을 강의했는데 잠언의 마지막 대목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여자는 남자의 아내가 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여자는 사람이 되면 안돼요. 그러면 짐승이 될까요? 짐승도 되면 안 되고 여자는 천사여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면 여자가 부담이 되죠. ‘내가 무슨 천사야? 악마인데’ 라고 하는데 제가 말한 천사란 여자보고 완벽하라는 뜻이 아니고 여자는 남자에게 소속되지 않으면서 남자를 돕기 위해서 여호와로부터 주어질 때 그게 바로 ‘슬기로운 여인은 오직 여호와께로 말미암는다’는 겁니다. 그것은 내가 골라잡은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 인간되라고 보조로 붙여준 겁니다.

그게 여자의 존재이유입니다. 그래서 잠언서에는 여자를 위해서 어떤 남편이 되라는 기준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자는 남편만 있으면 그것으로 된 겁니다. 책임은 자기가 질 것이 없습니다. 잔소리도 안 듣는 것을 어쩌란 말입니까? 그것은 남편책임이죠. 그래서 남편 앞에서 여자의 할 일은 남편이 가진 모든 것이 여자의 것으로 공유가 돼요.

남편 하나 잘 만나면 여자는 거저먹는 겁니다. 로마서 7장 한번 볼까요? 하나님은 아내를 닦달내지 않습니다. 아내를 상대로 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내 남편하고 상대해요. 우리가 죄가 있다면 남편 잘 만난 죄밖에 없어요. 옛날에는 법을 세운 분이 남편이었어요. 그러나 그 남편과 헤어지고 이제는 십자가지신 분이 우리의 남편이고 그분의 영이 우리의 남편이에요.

하나님은 나하고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네 남편 불러와. 네 남편 불러와. 나는 너하고 상대 안 해.’ 그 남편과 상대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로마서 7장에 나옵니다.

로마서 7:1-6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 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전에는 율법이 너의 남편이었는데 그 남편이 죽고 난 뒤에는 이제부터 누구와 결혼했느냐 하면 로마서 6장 7절에 있는 대로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다’고 하는데, 이제는 성령의 아내가 된 겁니다.

우리가 옛날에는 법을 섬겼지만 이제는 법을 섬기지 않고 십자가지신 예수님을 섬긴다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니까. 종묘사직, 기존의 인간의 아이디어라는 것이 별게 없어요. 결국은 ‘대자연에 순응해서 살아계신 분에게 효도하면 하늘도 감동하겠지’ 라는 그러한 의식이 구조적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존의 층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복을 받으니까. 교회 가는 것도 절에 가는 것도 전부 복 받아야 산다는 것인데 이스라엘은 이미 산채로 끌고 들어와요. 살기는 뭘 더 살아요. 이미 산 인간이 뭘 더 삽니까? 이제는 ‘이렇게 구원받은 것이 주의 덕입니다’, 그 이야기만 하도록 생명 층이 뚫고 들어와요. 이제는 우리 남편이 막 생명을 부어 주는 거예요.

다만 우리 할 일은 ‘남편을 남편이라고 부르기만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주’라고 합니다. ‘주여, 예수님은 우리 남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요 아내요 마지막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우리 신랑이라는 것이 요한계시록 22장에 나오잖아요. 그래야 성경이 앞뒤가 다 맞아요. 출애굽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들어맞아요.

다 들어맞게 되어 있어요. 참 신기하게 짝이 없어요. 행함으로 열심낸다고 복받는 것 아닙니다.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지요. 1) 어떻게 하면 내가 구원받습니까? 이것은 맞습니까, 틀립니까? 이것은 틀린 거예요. 2) 어떻게 해서 제가 구원되었습니까? 이것이 맞아요. 누구 덕분에? 이것이 바로 날마다 그리스도를 더 알아가는 이것이 성도의 바른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 소식을 듣는다는 것은 우리보고 행하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보고 그 사실을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 층, 생계만 걱정하는 그것을 뚫고 우리하고 의논하지도 않고 예수님과 하나님과 의논해서 약속, 자기의를 폭 심어주는 겁니다.

‘잘 간직해라. 이것이 네 생명이다. 네가 아무리 잘나도 이것 없으면 너는 지옥이야.’ ‘나는 다른 것을 안 본다. 하나님의 의를 본다. 그 하나님의 의는 바로 우리 남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거야.’

제가 호세아를 끝내면서 호세아 중간 중간에 이러한 사실을 방해하는 제사장무리, 오늘날로 치면 거짓목사들이 많이 나와요. 그 사람들의 주장을 보면 형식적인 제사를 많이 강조했어요. 왜? 제사를 해야 돈이 나오니까. 그래서 호세아가 그것을 굉장히 비난했고 아모스에 가면 더 심하게 나옵니다.

호세아에서는 그것이 주제가 아니고 너의 남편이 있다는 것, 그 남편은 숨어 있는 남편이라는 것, 세 번째는 그 남편은 이미 죽음, 홍해물속에 들어가도 거기서 길을 내어서 너로 하여금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을 부어주는 남편이 바로 여호와 남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데 사람들은 자꾸 이 세상에 있는 바알적인 것,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불멸한다는 등 자꾸 계산을 해요.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고, 남에게는 어떻게 인정받는가’ 하는 계산적인 신, 그것은 자기 생존을 위한 신이거든요. 그걸 우리가 무시할 수는 없어요. ‘나는 그것 모른다’ 할 수가 없어요. 왜? 우리는 부모로부터 그렇게 배웠고 주위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도 ‘너 그러면 재수 없다. 여자가 아침부터 싸가지 없이 잔소리를 왜 하느냐? 집안 재수 없다’는 식의 온갖 터부와 징크스 같은 것들이 뒤범벅되어 있어요. 끔에 절벽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는 것은 그만큼 남을 험담했기에 그런 꿈이 나타난다는 등의 온갖 이론들이 무지하게 있습니다.

우리를 자꾸 뭔가에 의지하게 만들어요. 그게 바알이라는 엉터리남편입니다. 이게 기존에 있는 눈에 보이는 남편입니다. 이게 바알종교입니다. 바알종교는 윤회종교입니다. 죽었다가 살고 살았다가 죽고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 그래서 영원히 돌고 도는 것. 영원히 돌고 도는 것이 이 세상 신입니다. 이것이 불교이고 도교이고 장자 주역이 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 발전한다는 이론도 있고 변형된 것도 있지만 사실은 돌고 도는 거예요. 돌고 돌 것도 없어요. 남편이 십자가에서 피 흘렸으면 끝! 끝입니다. 누가 뭐래도 요나의 기적이죠. 어떤 분, 예수라는 분이 죽고 난 뒤에 어제 이야기 했듯이 이틀 뒤, 사흘 만에 다시 부활했잖아요.

사흘 뒤에 부활했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은 ‘그분을 믿는 자는 죽어도 부활한다’는 이 대자연을 뚫고 들어온 창세전부터 감추어진 복음의 비밀입니다. 그것이 성령을 통해서 뚫고 우리에게 들어와서 ‘이 살을 먹어라. 이 피를 마셔라. 이것이 바로 영생이니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네 남편이다. 다른 말 듣지 말고 네 남편 말 들어라. 너는 내 신부야’라고 호명을 해 주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 숨어 있는 계획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우리는 계획도 없이 그냥 밥 먹고 사는 것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지만 하나님은 차분히 계획대로 출애굽의 유월절 피, 선지자 호세아 보내시고 아모스 보내시고 마지막 때에 예수님 자기 아들 보내셔서 우리의 저주받을 모든 죄를 자기 피로 다 씻어주시고 부활하시고 우리에게 영생 주시어 영원히 혼인잔치를 마련해 주시니 이 계획에 우리가 동참케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79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6,692 묻고답하기 목사님들은 반드시 숙제 해 주시길 (불교영화 감상평) 잠언 최고관리자 08-08-20
6,691 우리교회 사 57:14-18 (겸손한 자)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8-20
6,690 자유게시판 2008우리교회여름수련회 4강 아모스 최고관리자 08-08-20
6,689 자유게시판 녹매교회에 칠곡강의가 실려 있습니다. 신명기 최고관리자 08-08-19
열람 ➜ 자유게시판 2008우리교회여름수련회 3강 호세아 최고관리자 08-08-19
6,687 우리교회 [일반] 영수증 [일반] 최고관리자 08-08-17
6,686 자유게시판 십자가마을 블로그 활용 - 최고관리자 08-08-17
6,685 우리교회 [일반] 십자가마을 블로그 활용 방법 [일반] 최고관리자 08-08-17
6,684 우리교회 [주보] 8월 24일 주보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8-08-17
6,683 우리교회 삼상 2: 12 (불 량 자)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08-08-17
6,682 설교 마가복음 6장 7-13절 제목 :제자의 참 모습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8-08-17
6,681 우리교회 막 6: 7-13 (제자의 참 모습) 마가복음 최고관리자 08-08-17
6,680 강의 불교의 우주론과 구원론 - 최고관리자 08-08-16
6,679 성경신학 불교의 우주론과 구원론 [신학] 최고관리자 08-08-16
6,678 우리교회 [일반] 불교의 우주론과 구원론 [일반] 최고관리자 08-08-16
6,677 강의 서울 8월 15일 강의 엡 3장 14절, 17절 에베소서 최고관리자 08-08-16
6,676 강의 안산 8월 15일 강의 고후 9장 8절 고린도후서 최고관리자 08-08-16
6,675 자유게시판 오늘 문득... 열왕기상 최고관리자 08-08-15
6,674 자유게시판 그 이후 - 최고관리자 08-08-14
6,673 자유게시판 2008우리교회 여름수련회 2강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08-08-14
6,672 자유게시판 2008우리교회 여름수련회 1강 아모스 최고관리자 08-08-14
6,671 자유게시판 무더운 여름나기 디모데전서 최고관리자 08-08-13
6,670 우리교회 사 57: 1- 7 (의인과 무녀의 자식) 이사야 최고관리자 08-08-13
6,669 자유게시판 2008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10강 잠언 최고관리자 08-08-13
6,668 자유게시판 2008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9강 잠언 최고관리자 08-08-13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